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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Henry/ The Last Leaf (마지막 잎새) 감상문
    영미단편소설 과제 [O.Henry ? The Last Leaf]마지막 잎새는 어렸을 때 동화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으론 병든 한 여자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본인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알게 된 노인이 마지막 잎새를 그린 다음 죽은 내용으로 기억했다. 그래서 나에게 마지막 잎새의 주제란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으로 밖에 기억이 남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마지막 잎새를 읽어보니 희생 말고도 생각해 볼 가치가 많은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잎새를 읽고 내가 생각해 본 것은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 남을 위한 희생, 여성, 예술이다.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폐렴에 걸린 존시는 마지막 잎새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 또한 죽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존시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것만을 기다리면서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포기해버린다. 이러한 것을 친구인 수가 베어만에게 전하고 베어만은 자신도 폐렴에 걸려서 몸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폭풍이 치던 날 존시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린다. 그래서 존시는 베어만이 그린 마지막 잎새를 보고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으면서 끝난다. 여기서 존시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지만, 내가 존시였다면 한편으로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의지를 가지면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그리고 베어만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존시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렸다는 것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 베어만이 ‘Gott! dis is not any blace in which one so goot as Miss Yohnsy shall lie sick. Some day I vill baint a masterpiece, and ve shall all go away. Gott! yes.’라고 말한 것을 보고 베어만은 이미 마지막 잎새를 그릴 생각을 하고 있었고, 같이 여기를 뜨자는 뜻이 마지막 잎새를 그리면 존시는 살아나고, 자기는 죽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베어만이 존시를 위해 희생한 것을 통해 인류애를 느꼈다.그런데 한편으로는 베어만에게 있어서 존시가 의미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For the rest he was a fierce little old man, scoffed terribly at softness in any one, and who regarded himself as especial mastiff-in-waiting to protect the two young artists in the studio above.’ 라는 설명이 베어만은 남들이 볼 때는 실패한 화가였지만 베어만에게 있어서 수와 존시는 예술 그 자체이고, 수와 존시를 보호했다는 것은 베어만이 예술을 지키고 싶어 하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한편 의사는 수에게 존시가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면서 그녀가 마음속에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 그래서 수는 "She wanted to paint the Bay of Naples some day."라고 답한다. 하지만 의사는 "Paint? - bosh! Has she anything on her mind worth thinking twice - a man for instance?"와 "If you will get her to ask one question about the new winter styles in cloak sleeves I will promise you a one-in-five chance for her, instead of one in ten." 이 부분에 대해서 의사는 존시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예술의 가치를 무시한다고 느꼈다. 또한 존시가 남성 또는 옷에 관심이 있어야만 살아날 확률이 높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이 시대의 여성 인권이 낮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수많은 구절 중에서 마지막 잎새를 읽으며 내가 가장 감명 받았던 구절은 ‘it's Behrman's masterpiece - he painted it there the night that the last leaf fell." 와 존시가 떨어지지 않은 마지막 잎새를 보고 "Sudie, some day I hope to paint the Bay of Naples."라고 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림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베어만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걸작을 완성했고, 존시는 삶의 의지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통해 얻는다. 나는 베어만처럼 내 목숨과 바꿀 정도와 존시처럼 삶을 다짐할 만큼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나와는 다른 그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고,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베어만은 그동안 작품을 그린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죽어가면서 그린 마지막 잎새는 그의 인생 중 최고의 걸작이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린 것이 걸작이 된 것에 감동을 받았고, 걸작은 쉽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그리고 베어만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린 그림 때문에 존시는 희망을 느끼고 나폴리 만을 그리고 싶다면서 살아갈 의지를 다짐하는 것이 마지막 잎새에서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문/어학| 2020.12.01| 2페이지| 1,500원| 조회(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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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영문학입문 레포트-셰익스피어 Sonnet 18
    영어영문학입문 레포트셰익스피어 Sonnet 18: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에서는 상징과, 심상이 많이 사용된다. 심상은 촉각적 심상, 시각적 심상, 상징적 심상이 쓰였다.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여름은 성장, 비옥함, 꽃, 젊음, 사랑 등을 상징한다.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winds는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뜻한다.@ buds of May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주로 꽃이 장미나 백합으로 쓰인다. 여기에서는 장미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장미를 의인화한 것이다. 의인화된 것은 앞부분에 thee를 의미한다.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eye of heaven은 태양을 의미한다. 태양을 눈에 비유하는 것은 (The Rape of Lucrece) 365행의 “해가 뜨다” (The eye of heaven os out), (Richard 2)에 등장하는 곤트의 대사 “태양이 비추는 모든 곳이 현명한 사람에게는 항구이고 행복한 땅이다” (All places that the eye of heaven visits Are to a wise man ports and happy havens) 등에서도 볼 수 있다. 태양을 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hot the eye of heaven shines는 촉각적 심상이다.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gold complexion은 시각적 심상이다.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thy는 애인 또는 문학작품을 상징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는 거의 이런 뜻으로 쓰인다. 이러한 것은 상징적 심상이다.@ eternal summer는 영원한 여름 또는 영원한 시행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후손으로 이어지는 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rest in his shade,@ shade는 저승과 이승 사이 죽음의 계곡. 즉, 망자의 영혼을 상징한다.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앞에서 간략하게 말했던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면, ‘thee’는 애인이다. 그러나 남자로 표현되는데 이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동성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남자를 대상으로 소네트를 쓴 이유는 셰익스피어가 극작가였고, 르네상스 시대 특성상 남성만 극단을 섰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있는 것이다. 또한 소네트는 초기에 연애시의 형식이 강했는데, 셰익스피어가 남성 귀족 후원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 썼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thee는 동시에 문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thee는 모두 이런 두 가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징적 심상이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에서 이중적의미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러한 것이 셰익스피어가 인기가 많은 것 중 하나의 이유이다.
    인문/어학| 2020.12.01| 2페이지| 1,500원| 조회(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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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미디어와 문화 영화분석 - 나의 소녀시대
    영상미디어와 문화 영화분석- 나의 소녀시대‘나의 소녀시대’에 등장하는 영화기법에서 우선 소리는 내레이션, 상황묘사 배경음악, 주제음악이 사용되었다. 다음으로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른 효과는 panning, dolly out이 사용되었다. 그 다음으로 cut은 jump cut, match cut이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close up, 미장센이 사용되었다. 설명한 차례대로 분석할 것이다.첫째 내레이션은 영화의 처음부터 등장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정보, 여자주인공의 속마음, 앞으로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가 여자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설명된다. 내레이션은 처음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중간과 끝에도 사용된다.둘째 상황묘사 배경음악은 자주 사용된다. 여자주인공이 행운의 편지를 받았을 때는 심리가 복잡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에게 행운의 편지를 준 것을 들켰을 때는 긴장감이 넘치는 배경음악이 나온다. 또한 남자주인공이 롤러를 타면서 다른 양아치들과 싸울 때도 긴장감이 넘치는 배경음악이 나온다. 이 외에도 영화의 중간 중간 상황묘사 배경음악이 자주 등장한다.셋째 주제음악은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여자주인공이 영화의 첫 부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들었던 노래가 마지막에 나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주제음악과 달리 처음과 끝에 두 번 나옴으로써 영화에서 중요한 효과를 가진다. 또한 여자주인공의 심리가 표현된 주제음악이 여러 번 등장하기도 한다.넷째 panning은 여자주인공의 방을 보여줄 때 사용되었다.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카메라가 이동하여서 여자주인공의 방안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이 수영장에 있을 때도 카메라가 좌우로 움직여서 장소가 수영장임을 보여준다.다섯째 dolly out은 교무실에 걸려있는 교훈이 담겨있는 액자에서부터 멀어져서 혼나고 있는 학생들은 보여주고 또 멀어짐으로써 선생님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사용되었다.여섯째 jump cut은 이 영화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cut이다. 주인공들이 수영장에 있다가 갑자기 농구장에 있기도 하고, 교무실에 있다가 서점에 있기도 하며 학교에 있다가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이 장면들 말고도 영화에서는 전체적으로 jump cut이 쓰였고 continuity cut은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한 장면에서도 cut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일곱째 match cut은 영화가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어오는 구성인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것은 현재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과거에도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는 라디오가 등장하는 것을 match cut으로 표현했고,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는 것은 과거의 여자주인공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카메라가 하늘을 비추다가 내려와서 성인이 된 여자주인공을 비추면서 표현되었다.
    인문/어학| 2020.12.01| 2페이지| 1,500원| 조회(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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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낙원과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 비교
    실낙원과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 비교실낙원과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은 둘 다 사탄이 등장한다는 점,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 그리고 경고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분명 차이점도 존재한다. 유사성 중에서의 차이점도 있긴 하나, 구도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실낙원에서는 천사와 신이 등장해서 사탄과 대립적인 구도를 이루나 데블스 에드버킷에서는 그러한 선, 악의 구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실낙원에서는 전통적인 서사시의 특징인 플롯, 즉 전쟁 장면이 나오지만 데블스 에드버킷에서는 그러한 장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실낙원은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하지 말라고 정한 단 하나가 있고, 아담과 이브는 단 한 가지를 어겨 타락한 것이다. 그리고 신의 은총이 나온다. 반면 데블스 에드버킷은 하나만을 어기지 말라고 규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신의 은총이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이 실낙원과 데블스 에드버킷의 차이점이다.우선 사탄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탄의 유혹이며, 두 번째는 사탄의 목적이다. 세 번째는 사탄의 회개이다. 먼저 실낙원에서는 사탄의 유혹이 계속되지 않는다. 사탄은 뱀으로 변신해서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신처럼 될 수 있다’고 거짓말로 유혹하면서 이브의 교만을 부추긴다. 결국 이브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게 된다. 아담 또한 이브의 권유로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게 되고, 사탄은 유혹을 통해 간접복수를 성공하게 된다. 사탄은 만족하면서 동료들에게 자랑하고자 하지만 신의 벌로 인하여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사탄은 직접적으로 아담과 이브에게 다가가 유혹할 수 없게 된다.반면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사탄의 유혹은 계속된다. 케빈은 영화의 초반에서 자신이 변호를 맡은 교사가 재판 중에 이상한 행동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고 유죄를 의심한다. 그러나 유죄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인 기자가 ‘한번은 질 때도 됐잖아’라고 말하는 도발에 발끈한 것과 더불어 자신의 연승을 위해 미성년 성추행 교사를 변호하며 승소를 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부분에서 다시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온 케빈은 자신의 양심을 지키면서 연승을 포기하고 미성년 성추행 교사를 변호하지 않는다. 기자인 친구가 양심을 지킨 변호인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케빈은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기자가 스타가 될 것이라고 계속 유혹하자 케빈은 결국 승낙한다. 케빈이 법정을 나서자 기자의 얼굴은 사탄인 존 밀턴으로 변한다. 이것은 사탄의 유혹이 처음부터 끝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낙원에서 사탄은 신에게 벌을 받고, 유혹을 못하게 되지만, 데블스 에드버킷에서의 사탄은 벌을 받지 않고, 유혹을 계속해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다음으로 실낙원에서 사탄의 목적은 신에 대한 간접복수이다. 사탄은 처음에 신에 대한 질투로 인해 동료들을 설득해서 군대를 만들어 신에게 저항하지만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것이 계속해서 실패로 끝나고, 지옥으로 떨어지자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 방법은 신이 새로 창조한 아끼는 피조물인 인간을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해 타락하게 만들어 간접적으로 복수하는 것이었다.반면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사탄의 목적은 자신의 왕국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탄은 악마의 씨를 세상에 퍼트리고자 케빈이 자신의 이복동생인 크리스타 벨라와 성교를 해서 아기를 낳아 가족을 만들어서 20세기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자했다. 아마 실낙원에서의 사탄도 신에 더 이상 대항하지 않고 지옥에서만 자신의 왕국을 세워 다른 이들을 다스리는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면 더 큰 벌을 받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실낙원의 사탄이 간접적으로 복수하고자 한 것에 비해 데블스 에드버킷의 사탄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자 한 것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다음은 실낙원에서 사탄의 회개에 대한 비교이다. 실낙원에서 사탄은 자신이 회개할 수도 있을 것임을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기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하며, 자신의 회개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한다. 또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면서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스스로 고민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회개를 통해 지위가 다시 올라간다면 또 다시 타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면적으로 갈등한다. 실낙원의 사탄은 오직 악만을 생각하는 단순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내면을 가진 입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면 데블스 에드버킷에서의 사탄은 회개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갈등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면적으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인물은 사탄이 아니라 케빈이다. 따라서 실낙원의 사탄은 회개에 대한 생각을 하지만 데블스 에드버킷의 사탄은 회개에 대한 생각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한편 실낙원에서 이브와 아담은 자유의지로 타락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것은 의미가 없고, 본인의 의지로 자유롭게 따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브와 아담은 자유의지로 하나님이 아닌 사탄을 따랐다. 물론 사탄이 이브와 아담의 허영심을 발산하도록 유혹을 하기는 했었지만 아무리 유혹을 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결정은 인간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브와 아담이 벌을 받는 것이다. 또한 아담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브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본인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악과를 먹고 타락했다. 그리고 이브와 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기만 했지 사탄에게 직접적으로 대항하지 않았다.반면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케빈은 영화의 초반에는 자유의지로 타락하지만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존 밀턴이 사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탄에 대항해 자유의지를 보이면서 자살을 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케빈이 미성년 성추행 교사, 사이비,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컬른을 변호하면서 무죄를 주장하면서 타락한 것은 케빈의 자유의지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케빈이 타락한 것은 자신의 명예, 재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실낙원의 아담과 이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케빈은 마지막에 존 밀턴이 사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사탄에 대항하며 자살을 함으로써 자유의지를 실현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개티스 법정의 순간으로 돌아가 변호를 포기한 뒤에 ‘스타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기자, 즉 존 밀턴인 사탄의 유혹에 다시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이브와는 다르게 사탄에 대항해 자유의지를 실현했다는 것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한편 실낙원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전에 신이 예측을 하고 천사 라파엘을 통해 경고를 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측한대로 타락을 하고 말았다. 반면 데블스 에드버킷에서는 케빈에게 사탄인 존 밀턴이 경고를 한다. 케빈의 아내인 매리 앤이 아픈 상황인데도 케빈이 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자 존 밀턴은 일을 쉬고 아내에게 집중하라고 경고를 한다. 사탄이 케빈에게 경고를 하기는 하지만 사탄은 실낙원에서의 신과는 다르게 예측을 하지는 못한다. 이렇듯 실낙원의 신은 예측과 경고 모두 할 수 있지만, 데블스 에드버킷의 사탄은 경고만 하는 존재이다.또한 앞서 말했듯이 실낙원에서는 신과 천사가 등장하며 사탄과 대립적인 구도를 이룬다. 신은 사탄이 인간을 유혹해서 타락하게 만들 것을 예측하고 천사를 보내 경고를 한다. 또한 천사가 한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마다 각자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 사탄이 천사들을 선동할 때 천사 압디엘은 그러한 사탄에 반박하며 막는 역할을 한다. 천사 미카엘은 사탄과의 첫 번째 전투에서 승리한다. 또한 천사 라파엘은 아담과 이브에게 경고를 하는 역할이며, 천사 가브리엘은 아담과 이브가 살고 있는 에덴동산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실낙원에서는 선과 악의 대립구조가 뚜렷하며, 신과 천사들이 직접적으로 아담과 이브의 타락을 막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사탄을 방해하며 타락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예방한다.
    인문/어학| 2020.12.01| 3페이지| 1,500원| 조회(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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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의 위안 보고서
    철학의 위안 기말 보고서1. 철학의 여신이 입은 옷의 상단과 하단에 새겨진 상징은 무엇인가?철학의 여신은 손수 짠 옷을 입고 있는데, 하단에는 Ⅱ(pr?xis)자가, 상단에는 Θ(theOria)자가 새겨 넣어져 있다. Ⅱ(p)는 희랍어의 실천적 약자이고, Θ(th)는 관념적의 약자이다. 이 두 글자 사이에는 서로를 연결하는 사다리꼴로 된 층계가 표시되어 있다.이 의미는 철학이 본래 이론과 실천의 상호교호 속에서 수행됨을 암시한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나오는 철학에 대한 정의와 맥을 같이 한다. “철학이 진리에 대한 학문이라고 불리는 것은 옳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론적인 학문의 목적은 진리이고, 실천적인 학문의 목적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보에티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철학은 실천과 이론의 상호 교호를 통해서 그 목적에 도달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여기서 프락시스가 가리키는 것이 곧 바로 오늘 날 의미하는 철학실천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강단 철학 안에서의 이론 철학에 상응하는 실천 철학에 더 가깝다. 결론적으로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여신의 의복에 새겨진 Θ(Theta), Ⅱ(Pi)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이론철학(theoretical philosophy)과 실천철학(practical philosophy)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2. 철학의 여신의 옷이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철학의 여신의 옷이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소크라테스 이후 여러 철학 학파들이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철학의 여신의 옷을 찢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말하면, 보에티우스는 고위 관직에 있으면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사상을 정치면에 구현하여 선정을 베풀고자 노력하였고, 항상 정의에 입각하여 불의에 대한 준엄한 태도를 취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태도가 화근이 되어 반대파의 무고로 말미암아 반역죄로 몰렸다. 이런 일은 보에티우스만 당한 것이 아니다. 플라톤의 시대 이전에도 위해를 당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탈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여신은 당당하고 굳건하게 존재한다. 다음은 철학의 여신의 태도를 알 수 있다.“만일 그들이 세력을 지금보다 더욱 정비하여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온다면 우리의 장군도 자가의 군대를 성채에 집결시킬 것이다. 즉, 그들이 가치 없고 사소한 물건들을 약탈하기에 여념이 없을 때 우리는 견고한 성벽으로 방비하고 있을 것이니 아무리 미친 듯 날뛰는 저들의 온갖 공격이 있을지라도 안전할 것이며, 허접스러운 것들을 끌어 모으는 그들을 성 위에서 내려다보며 조소를 퍼 부을 것이다. 분수없이 날뛰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이 성벽이 차지될 수는 없느니라.”이를 통해 찢어진 옷 조각들을 약탈당하더라도 철학의 여신은 불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철학의 부분을 얻더라도 철학의 전체를 얻을 수 없다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상징한 것이다.3. 뮤즈의 여신, 운명의 여신, 철학의 여신의 위안의 기제를 상호 비교하고 평가하시오. (철학의 여신의 위안의 기제는 약한 약, 강한 약으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설명하시오.)뮤즈의 여신과 운명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에게 진정한 위안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선 뮤즈의 여신은 시, 음악, 기타 학예를 주관하고, 카메나라고 불린다. 시1을 보면 뮤즈의 여신이 보에티우스에게 위안을 주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시1에는 ‘슬픔에 잠긴 그들이지만 나의 푸르르고 행복스러웠던 영광의 지난날을 회상시키며 지쳐서 늙은 내 운명을 위로해주네!’라고 적혀있다. 이를 통해 슬픔에 잠긴 뮤즈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보에티우스가 재상자리에 있었던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시키며, 슬픔과 고통에 시달렸던 운명을 위로하면서 위안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고통을 덜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본질적인 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결국 이것은 보이티우스가 절망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위안은 보에티우스를 철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이 하는 짓이란 감정이라는, 열매도 없는 가시로써 풍성한 결실을 맺는 이성의 수확을 말살하며 인간의 정신을 병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병에 만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흔히 그렇듯이 너희의 교태로 속물들을 유인해간다면 우리도 우리 노고에 아무 손해도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너희의 소위를 참아넘길 수도 있겠으나 하필 엘레아학파와 아카데미학파의 연구로 탁마한 이 사람을 유혹하려 드는 것은 만부당하지 않으냐? 세이레네스여! 유혹하려 드는 너희나 차라리 멸망의 구렁으로 가라. 이 사람은 우리의 간호를 받아 치유되도록 우리에게 맡겨두라.”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가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우선 그를 유도한 후, 차츰 그가 당면한 문제의 핵심인 본질로 접근해 들어간다. 자세히 말하자면, 철학의 여신은 격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보에티우스를 위해 그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예비 단계로서 가장 먼저 감정을 다스리는 약을 처방한다. 즉 이성의 “강력한 약”(validiora remedia, acrius medicamen)이 아닌 감성의 “약한 약”(leniora remedia)을 처방한다. 철학의 여신은 약한 약을 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많은 감정의 물결이 너를 엄습하고 고통과 분노의 슬픔이 너를 여러 갈래로 산산이 찢어 놓으니 그와 같은 상태에서 더 강한 약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당분간 좀 약한 약을 너에게 쓰기로 한다. 이는 너에게 엄습한 불안과 동요로 비뚤게 굳어진 너의 마음이 더 강한 약을 받을 수 있도록 부드러워지게 하기 위해서다.” 철학의 여신은 앞에서 말한 것뿐만 아니라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적당히 순한 약으로 너의 그 어둠을 밝게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네가 거짓 감정의 암흑을 벗어나서 참된 광명의 빛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는 약한 약이 감정 조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철학의 여신은 순한 약의 처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직 병에 대한 완전한 치료약이으로 수행하고, 운명과 운명의 여신의 진정한 정체가 베일에 가려진 것을 의미한다.운명의 여신은 운명이 자신의 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놀이를 끊임 없이 한다고 말하면서 바퀴를 계속 돌린다. 즉, 운명의 수레바퀴를 계속해서 돌리는 것이다. 운명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의 욕심을 탓하면서 운명에 대한 무지를 치료하고자 한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 또한 보에티우스에게 진정한 위안을 주지 않는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운명 앞에서 보에티우스는 혼란을 느꼈다. 이때 철학의 여신은 운명에 대해 다시 보에티우스와 대화를 한다. 약한 약을 다 사용한 뒤 철학의 여신은 강한 약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제는 내 이치의 약 기운이 네 속에서 효력을 나타내니 나는 좀 더 강한 약을 써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철학의 여신이 사용하는 강한 약은 더 강한 논증을 구사하여 일반적으로 재물, 즉 금전, 보석, 전답, 옷, 종들과 그 외 이런 등속의 것들이 설사 항구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 정신에는 유익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되며, 사람이 자꾸 탐하여 누릴수록 더욱더 행복은 감소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철학의 여신이 보에티우스에게 강한 약을 사용했다는 것은 철학의 여신의 또 다른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약들은 입에는 쓰지만 먹으면 몸에는 좋을 것이다.” 철학의 여신은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운명은 그것이 유쾌한 것이거나 가혹한 것이거나 선인들에게 있어서는 상이 되거나 아니면 더 굳세게 하기 위한 시련이요, 악인들에게 있어서는 벌이 되거나 아니면 교정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이란 공정한 것이거나 유익한 것이니 결국 모든 운명이란 좋은 것이다.” 철학의 여신은 운명은 인간이 주재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보에티우스가 인식하게 도와준다. 결론적으로 보에티우스에게 진정한 위안을 준 여신은 뮤즈의 여신과 운명의 여신을 제외한 오직 철학의 여신뿐이다.4. 철학의 여신의 위안의 기제는 고대적, 혹은 중세적인한 일은 고대사회와 중세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현대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철학의 여신의 위안의 기제가 고대적, 혹은 중세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철학의 여신의 위안을 받기 전인 보에티우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일 것이다. 철학의 여신은 인간의 모든 염원은 가지각색의 노력으로 추구되고 있고, 비록 그것이 여러 가지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다만 한 가지 행복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모두 같은 노력이라고 말한다. 참된 행복이란 모든 좋은 것들의 총화로써 이루어진 하나의 완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그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노력한다. 오류에 빠진 사람 중 어떤 이는, 최고선이란 궁핍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 믿어 풍부한 재물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또 다른 이는 최고선이란 가장 높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 여기고 명예로운 지위를 얻어 존경받고자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철학의 여신은 이러한 오류들이 헛된 것이라고 증명해나간다.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오류에 빠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 행복을 느낀다. 또한 취업을 했을 때도 있고, 본인 명의의 집을 가졌을 때도 그러한 행복을 느끼고 만약에 앞에서 말한 것들을 얻지 못했을 때는 본인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행복이란 그러한 세속적인 것들인 것일까? 철학의 여신의 위안의 기제는 고대, 중세, 현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적용해야하며, 그들에게 진정한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한편 현대사회 사람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를 얘기하면서 타고난 운명에 대해 얘기한다. 아니면 갑작스럽게 사업실패를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본인의 타고난 운명에 대해 우울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의 여신의 위안대로 운명은 인간이 주재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행운은 잠시 왔다 가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고 그것에 얽매이다.
    인문/어학| 2020.12.01| 5페이지| 2,000원| 조회(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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