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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근·현대사의 서술 방식 속에 국사 패러다임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의 서술 방식 속에 국사 패러다임-동학농민운동의 서술방식 중심으로-역사교육과 ○○○○○○ MarxⅠ. 머리말한국은 국사교육을 통해 일제의 시련을 극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사교육은 국사 패러다임에 빠질 수 있다. 이에 “민족주의라는 단일한 시각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추구하고자 하는 뉴라라이트 시민 단체인 교과서포럼(이하 포럼)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특히 포럼은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이하 금성 교과서)에 서술된 표현방식이 민족사관에 편향된 것은 지적하였다. 그렇기에 금성 교과서에 서술된 동학농민운동의 서술에 내포된 민족사관을 살펴봄으로써, 국사 패러다임의 해체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Ⅱ.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속 동학농민운동의 서술금성 교과서는 내재적 발전론을 기반으로 조선 후기 민중의 동향을 적극적으로 서술했다, 또한 일제하 무장 민족투쟁과 사회주의 운동 등을 서술하여 민족성을 고취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교과서가 서술한 표현방식이 다소 민족주의 관점에 취중 되어있다. 예를 들어 소단원 ‘자주적 근대화와 반외세 민족 운동의 전개’에 동학농민을 서술함으로써, 농민의 중심의 반외세운동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를 비교하듯, 중국의 태평천국운동과 인도 세포이 운동 등의 반외세운동의 사례를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은 대원군의 복귀를 주장하였다. 즉 기존체제에 반한 혁명이라기보다 유교적 근왕주의에 입각한 복고적인 개혁의 성격이 강했다.Ⅲ. 교과서 속 국사 패러다임의 문제점한국의 자국사가 한·중·일 간의 역사분쟁 속에서 불가피하게 강화되고 있다. 특히 동학농민운동을 반외세적 운동으로 강조함으로써 민족성을 고취시켰다. 앞에서 설명하듯 그들의 움직임은 기존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렇기에 자주적 근대화와 반외세적 성격의 교과서 서술은 ‘과거의 현재’와 ‘현재화된 과거’ 사이를 간과하고 있다. 이는 19세기 민족주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낡은 국사 패러다임에 갇혀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내셔널리즘으로 구성된 자국사가 역사를 독점한다면, 역사는 정치적 도구로 절략할 것이다. 이로 인해 역사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온전히 누리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Ⅳ.맺음말금성 교과서 속에 서술된 동학농민운동의 표현방식을 통해, 아직 국사 패러다임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민족주의 관점의 자국사를 역사로 국한시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역사교육은 민주시민의 형성을 저해 시킬 우려가 존재한다. 이는 역사에 국사를 배제시키자는 주장은 아니다. 탈(脫)민족주의 관점에서 차크라바르티가 강조한 접속하게하는 차이보다는 ‘분리하는 차이’를 지향해야할 것이다. 즉 한국사에 국가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탈피하여 여성, 이주민, 소외받은 지역사와 같은 소수자 관점의 역사서술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써 역사를 바라보면 낡은 국사 패러다임의 탈피와, 더 나아가 세계사(지구사)의 연구도움이 제공될 것이다.
    사회과학| 2019.03.04| 1페이지| 1,000원| 조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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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년대 조선 지식인의 선택, 춘원 이광수 또 다른 이름 향산광량
    1920년대 조선 지식인의 선택-춘원(春園) 이광수 또 다른 이름 향산광랑(香山光郞)-Marx Eugene목차1. 머리말- 春園 이광수 후대의 이름.2. 조선의 지식인 춘원, 청년을 홀린 향산광랑(香山光郞) 또 다른 얼굴.2-1. 춘원, 그의 활동.2-2. 조선청년을 유혹한 남자, 그 이름 향산광랑(香山光郞).3. 끝을 맺으며.1. 머리말 - 춘원 이광수 후대의 이름.‘한국의 톨스토이’라고 불리는 춘원 이광수, 그는 1917년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로 기록되는 을 발표해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고, 1919년 2·8 독립선언서 기초(起草)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그는 조선 문학의 선구자이자, 당시 일본 동경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1910에서 1920년대 당시 지식인인 춘원 이광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춘원은 일생에 거쳐서 다양한 문학 작품을 작성했다. 그의 대표적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에서는 신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에서는 과학사상을 주장했으며, 에서는 농민을 계몽하려는 내용을 볼 때, 그는 조선의 봉건적인 사회제도를 타파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춘원은 당시 조선에 남아 있던 구시대적 유교를 비판한 계몽가적 모습이 보인다. 또한, 현재 비판적 견해가 있는 의 내용을 보면 “한민족은 허위 되고 공상과 공론만을 즐겨 나타내고 신의, 충성이 없으며 일에 용기가 없고 빈궁 하는 등의 약점투성이다. 그러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족성의 개조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한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보면 은 즉, 실력양성론과 같이 ‘조선의 힘이 미약하니 독립을 잠시 포기하고 일본의 정부 아래서 실력을 키우고 준비를 하자’는 타협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그리고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등 춘원의 활약을 들은 도산 안창호는 이광수를 발탁하여 그를 임시정부와 흥사단원동임시위원회에서 약 1년 반 동안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였다. 이 당시, 김윤식은 “춘원이 도산을 만난 것은 춘원의 생애에서는 가장 운명적인 사건이자 동시에 가장 자연스 집요한 압력이 계속되어, 이듬해 1920년 6월 24일 제86호를 발간한 이후 결국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기관지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발행한 총 205호 중, 초기의 대략 100여 호까지 주로 춘원의 손에 만들어졌다. 특히, 『독립신문』의 논설과 보도기사 등을 통해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기여가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당시 춘원의 활동이 우리 근현대사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다음으로, 도산이 창설한 흥사단원동임시위원회에서의 춘원을 보도록 하자. 춘원이 그곳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알기 위해선, 우선 그의 위치가 어디였는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춘원은 도산이 입단시킨 첫 번째 단우(團友)였다. 특히, 도산의 일기 중 1920년 1월 29일 자에 의하면 “저녁 늦게 단소에 와서 이광수군의 문답례를 행할 새 극히 만족한 문답이 되다.”라고 적혀 있다. 또, 춘원에 대해 상세히 연구한 김윤식 교수가 “춘원과 도산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임시정부에서는 책임자와 비서의 관계이며, 그 임정을 떠나면 흥사단 단주와 수제자의 관계였다. 다시 말해 철저한 사제관계이기도 하였다.”고 말했다. 즉, 당시 독립운동의 최고지도자인 도산은 춘원을 원동흥사단의 이(二)인자 위치에 앉혔다는 것이다. 이것으로도 당시 춘원의 명성을 볼 수 있다.2-2. 조선 청년을 유혹한 남자, 그 이름 향산광랑(香山光郞).춘원 이광수에게 왜 선량한 조선 청년들을 유혹하여, 남의 나라 전쟁에서 죽게 한 친일매국노 ‘향산광량(香山光郞)’의 또 다른 형상을 두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춘원이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것도 젊은 시절 때의 우발적 활동으로 보는 것이다. 춘원은 일제의 탄압을 받는 독립운동의 위험성과 궁핍한 삶이 맞지 않았다. 즉, 그는 탁월한 문학 능력으로 대중에게 환호를 받는 삶을 원했던 것으로 본다. 그러했기에 춘원은 국내로 귀국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귀국과정에서 춘원의 국내 귀국에 대해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춘원은 그때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했고, 이에 따라 국내 귀국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또한, 이 당시 조선의 상황만 보아도 일제가 꽉 잡는 상황 속에서 조선의 독립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춘원은 일제총독부에 을 제출하고, 그 해, 11월 자치론을 기조로 하는 타협적 민족운동론인 『민족개조론』을 집필하였다. 춘원이 쓴 『민족개조론』은 최근까지 논란이 많은데, 그럼 춘원이 쓴 『민족개조론』을 통해 민족개조 기획의 서사적 골격을 보고자 한다.1. 민족 중에서 어떤 일개인이 개조의 필요를 자각하는 것.2. 그 사람이 그 자각에 의하여 개조의 신 계획을 세우는 것.3. 그 제일인이 제이인의 동지를 득하는 것.4. 제일인과 제이인이 제 삼의 동지를 득(得)하여 이 삼인이 개조의 목적으로 단결하는 것, 이 모양으로 동지를 증가할 것.5. 이 개조 단체의 개조사상이 일반 민중에게 선전되는 것.6. 일반 민중 중에 그 사상이 토의의 제목이 되는 것.7. 마침내 그 사상의 승리하여 그 민중의 여런이 되는 것, 즉 민중의 사상이 하는 것.8. 이에 그 여론을 대표하는 중심인물이 나서 그 사상으로 민중의 생활지도를 하는 것.9. 마침내 그 사상이 절대적 진리를 작(作)하여, 토의권(討議圈)을 초월하여 염력을 생(生)하는 것.10. 마침내 그 사상이 이지의 역을 탈하여 정의적인 습관의 역에 입하는 것.위와 같은 『민족개조론』은 조선 민족이 자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일본의 통치를 인정하자는 타협적 민족운동으로 볼 수 있지만, 춘원이 쓴 『민족개조론』은 당시 3.1운동의 실패로 인해 좌절하던 청년층과 사회주의 계열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특히, 그들은 『민족개조론』은 계몽주의에 입각한 민족운동이라기보다 일제의 기만전술의 꼭두각시로 춘원이 변질하였다고 보았다.이 당시 일본은 1920년대에 들어 문화통치를 내세우며 조선인도 등용하고 일부 문학과 언론의 자유를 준다는 명목으로 독립운동을 분열시켜 그 힘을 약화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느끼지 못한 변절자의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이 조선과 민족을 위하는 애국자라는 논리가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었던 당시 춘원의 내적 기반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즉, 춘원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 부끄럼을 느끼지 못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했기에 일제가 실행한 창씨개명 또한 앞장서서 ‘향산광랑(香山光郞)’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이러한 춘원의 행적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없어 보인다. 이는 창씨개명의 부끄러움과 독립의 갈망에서 갈망하던 지식인들, 그 대표적으로 윤동주의 활동과 대조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윤동주가 일제 치하(治下)에서 끝없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작 을 한번 보고자 한다.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이하 생략)윗 내용을 보았을 때, 윤동주의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볼 수 있었다. 윤동주는 일제 치하의 어두운 시대에 자아의 끊임없이 성찰을 통해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 일제의 저항정신을 일깨워주는 시들을 많이 남겼으며, 앞장서서 창씨개명을 한 춘원과 대조되게 윤동주는 자신이 창씨개명으로 일제에 어느 정도 굴복했다는 부끄러움을 아래와 같이 에서 볼 수 있다.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밤이면 밤마다 나의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위의 작품 「참회록」은 윤동을 개조해야 한다는 타협적 민족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춘원의 개조 운동은 “무실(懋實)하자, 역행(力行)하자, 신의(信義) 있자, 봉공심(奉公心)을 가지자, 학교를 세우자”라는 말을 통해, 교육에 정치적 개입을 제한하여 지(知), 덕(德). 체(體)의 세 가지의 범위로 조선인을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보인다. 또한, 1924년에 연재한 을 보면 ‘정치적 결사, 산업적 결사, 교육적 결사’를 조직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춘원이 일본에서 허용된 범위의 정치 활동을 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보았을 때, 당시 1920년대 춘원의 활동은 타협적 민족주의자의 성격을 볼 수 있다.그리고 춘원의 활동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조선에 대해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면서 일제라는 선진국에 지나친 의존하려는 성향을 볼 수 있다. 특히, 매일신보에 실린 춘원의 「창씨개명의 변」을 보면 그의 일제에 대한 의존성을 볼 수 있었는데, 춘원이 일제의 한 국민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강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또한, 후쿠오카 수용소에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윤동주의 총 125편의 작품들을 보면, 춘원의 , 등의 작품 활동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윤동주와 다른 노선을 걸은 춘원의 모습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춘원이 일제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할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고, 조선의 피해를 최소한 시키기 위해 일제의 징병제도를 도왔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에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보는 관점이 대다수 학자의 견해이자, 우리의 생각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현재 우리에게 탁월한 문필로 당시의 문학을 빛낸 지식인이 아닌, 친일매국행위를 한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춘원 이광수, 그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은 이 글을 쓰면서 계속 던져본 질문이다. 우리는 춘원의 친일행위를 한 ‘민족의 반역자’와 1여 년간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문학적 재능을 기꺼이 나눠 준 ‘독립운동가’, 1920년대 조선 민족을 계몽하기 위해 일제와의 타협한
    인문/어학| 2019.01.14| 8페이지| 1,500원| 조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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