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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U 클릭즐겨찾기 분화문화예술 - 과제 -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간략하게 논하라 (A+)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간략하게 논하라201511816 박지훈개요김정은은 1984년 1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원산시 김정일 별장 602호 초대소에서 국방위원장 겸 수반 김정일과 무용수 출신 네 번째 부인인 고용희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세우는 등 차츰 영향력이 커지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09년부터 국가안전보위부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2011년 김정일의 사망 이후 3대 세습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조선로동당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이다. 보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는 조선로동당과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 영도자라 부른다. 본관은 전주.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스위스 유학 중 사용된 가명은 '박운'이다. 김정일 사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영도자"로 칭해지고 있다. 2012년 4월 11일에 아버지 김정일을 이어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되었으며, 4월 12일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되었다. 2012년 7월 18일 원수로 진급했다. 2016년 5월 9일 자신의 조선로동당 제1비서 직책을 폐지하고 노동당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권력을 얻게 되었다. 이후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으며,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신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형제로는 친형 김정철이 있었고, 여동생으로 김여정이 있다. 그밖에 이복 누나 김혜경, 이복 형 김정남, 이복 누이 김설송, 김춘송, 친구 권우석 등이 있다.유년시절 ~ 현재김정은의 어린 시절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를 거쳐 16살에 어린 나이로 스위스로 유학하여 김나지움이라는 인문계 중고등 교육 과정을 마쳤다. 스위스 베른의 공립 중학교에 유학을 하였다. 유학 당시에는 교무실로 와서 ‘내일 귀국한다’고 말한 뒤,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9년 북조선의 최고인민회의와 로동신문 보도를 통해 김정운이 아닌 김정은으로 확인하였다. 귀국 뒤, 2000년대 중반부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버지 김정일 및, 조선노동당과 주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아버지인 김정일의 권유로 조선 인민군에서 하전사로 입대하였으며 하전사로서 1년 6개월 동안 군복무를 한 이후 하전사에서 곧바로 중장으로 진급했다. 한편 김정일은 2009년 3~4월경 김정은을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임명해 자신을 대신해서 엘리트들을 감시하게 하고, 김정일 사후에도 김정은이 엘리트들을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군사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우동측 부부장이 김정은의 보위부를 통한 엘리트 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가족으로는 아내 리설주가 있고 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동생 김여정은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서 김정은에 버금가는 위세를 갖고 비서실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복 형 김정남 이외에도 동복 형 김정철이 있지만 최고 권력자가 되기에는 성격이 너무 부드러워 동생들과는 달리 권력과 거리를 두며 유유자적하게 산다고 한다. 참고로 어머니 고용희는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의 딸이었고 1960년대 대규모 북송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한다.정치2000년대 중후반부터 당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이로써 실질적인 무력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2010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연평도가 포격을 당했다. 이 포격은 북조선의 철저한 계획 아래 실시되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12월 1일 북측 내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의 이름으로 지난달 초 ‘적의 도발 행위에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라’는 지령이 북한군 간부들에게 하달 됐다”고 보도하였다. 이것이 김정은 후계 구도를 더욱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아 연평도 포격 도발은 유엔헌장 제2조 4항, 로마규약 제8조에 저촉되는 전쟁 범죄"라고 강조하며, 북한의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 김정은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북한측은 도발에 대한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2010년 12월 28일 김정은은 연평도 포격당시 전사한 조선인민군 5명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시점은 2009년으로, 대북 소식지가 이를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인을 거부했으며,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와 같은 국내 대북 전문가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김정은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등을 들며 후계자 지명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명한 것을 중국에 알리는 등 후계자 지명이 구체화됨에 따라 후계자 지명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 후 2010년 9월 27일 조선인민군 대장 임명, 28일 3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 임명 절차를 거치며 김정은은 북조선의 국가통수권 후계자로 공식 확정되었다. 그동안 유년기, 청소년기의 사진으로만 알려져왔던 김정은의 얼굴은 후계자로 확정된 9월 28일 노동당대표회의 기념사진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다. 10월 6일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을 경축하는 행사를 벌인다. 김정은의 3대 세습체제 구축은 북조선 내외에 불만을 가중 시켰다. 북한 내부에선 3대 세습에 대한 반발 조짐이 일면서 김씨 부자를 비방하는 전단이 돌거나 폭약이 밀반입 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일본의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내부 조직원들도 세습에 대해 반발을 보인다. 2013년 2월 12일에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리히터 규모 4.9 (미국 지질조사국은 리히터 규모 5.1)의 핵실험을 강행하여 많은 나라의 규탄을 받았다. 3월에는 남북불가침합의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겁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국방부 또한 조선인민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태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 그 후 4월 26일 대한민국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내의 잔류인원에 대한 철수를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27일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126명이 철수했고, 29일에 나머지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남은 잔류인원 50명 중 43명만 귀환 허가를 받았다(물론 나머지 7명도 훗날 귀환하였다).2013년 12월 3일 대한민국의 국정원은 장성택이 실각했다고 밝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은 12월 9일 오후 3시경 장성택이 전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체포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12월 9일자 로동신문 역시 1면 기사로 장성택의 실각을 소개했다. 로동신문은 장성택이 숙청된 이유에 대해 "최근 당안에 배겨있던 우연분자, 이색분자들이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중대한 력사적 시기에 당의 유일적 령도를 거세하려 들면서 분파책동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감히 당에 도전해 나서는 위험천만한 반당반혁명적 종파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밝혔다.특징김정은의 성격은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술회에 따르면 김정은을 처음 만났을 때 김정은은 초등학생 정도 되는 나이였는데 후지모토를 대단히 적개심 어린 눈으로 봤다고 한다. 후지모토가 손을 내밀었는데 바로 잡아주지도 않았고 아버지 김정일이 '정은아, 후지모토 씨야. 악수해야지?' 라고 한 뒤에야 마지못해 손을 잡아주었다고. 후지모토는 개인적으로 "김정은도 분명 반일 교육을 받고 자랐을 테니 자신을 처음 봤을 때 '이놈이 그 말로만 듣던 일본 제국 놈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김정철과 김정은은 서로 팀을 꾸려 농구 시합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난 뒤의 모습을 보면 두 형제의 성격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한다를 피우면서 넌지시 "우리는 이렇게 재밌게 사는데 우리나라 인민들은 어떻게 살까?"라면서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 관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후지모토는 이때 김정은이 고작 지금의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일반 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제법 인상 깊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참배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애육원에서 고아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실제로 성격이 약한 편이라는 말도 있고, 연기라는 말도 있다.김정은의 건강은 2013년 김정은의 신체는 키가 172cm, 몸무게는 90kg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문서 맨 위에서는 168cm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는 기쁨조의 선발 기준 중 하나가 "키 168cm 이상"인 것과, 김정은이 7cm 키높이 구두를 신는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증거가 나와 추정치가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고모부를 숙청한 이후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폭음과 폭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00kg으로 추정되던 체중이 120kg으로 불었다고 한다. 2013년 기준으로 BMI 지수는 26.12에서 30.42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정은의 2013년 당시 상태를 과체중으로 보았다. 보통 한국에서는 BMI 지수 25부터 비만으로 보는데, 원래 표준은 BMI 30부터다. BMI 35부터가 고도비만. 즉 2013년 당시의 김정은은 비만으로 볼 소지는 있어도, 고도비만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셈이었다. 하지만 2014년에 나온 위의 기사들을 보면, 2014년 현재 김정은은 국제 기준으로도, 대한민국 기준으로도 고도비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의 키를 170cm라고 두고, 저 위의 기사들이 추정한 체중이 맞는다고 하면, 2014년 5월에 측정한 김정은의 bmi 지수는 41.52. 110kg 정도로 추정해도 38.06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현대인의 건강을 좀먹는 삼신기인 비만, 흡연, 음주를 모두 지니고 있다. 비만의 경우는 젊은 나이에 벌써 고지혈증에 걸려있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어린없다.
    인문/어학| 2020.03.16| 4페이지| 1,000원| 조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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