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이해 독후감경영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독후감 책 리스트에 왜 이 책을 넣어놓으셨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가늠을 할수 없었다. 신입사원이 가지면 좋은 자세를 적어 놓은 신입사원의 지침서라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느낀 것은 직장 내 사원의 회사생활 또는 조직생활에도 경영의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처음으로 나온 경영학적 개념은 BCG매트릭스였다. BCG매트릭스란 두 가지 기준을 이용하여 사업의 유망성을 판단하는 좌표인데, 네 가지 항목에는 별, 물음표, 소, 개 가있다. BCG매트릭스는 시장점유율과 성장률 두 가지 지표로 구분하고 있는데, 별이란 시장점유율과 성장률 둘 다 높은 모든 기업이 희망하는 상태이다. 회사 내 사원에게서 별이란 업무처리량과 잠재능력이 둘 다 높은 회사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사원이 되는 것 이다. 물음표란 성장률은 높지만 시장점유율이 낮아 경영자의 판단이 필요한 상태이다. 회사원의 입장에서 보면 능력은 좋은 듯 하지만 업무는 적게 하여 인사관리자로 하여금 업무를 더 시키던지 아니면 뺀질거리니 회사를 나가게 하던지 판단을 해야 하는 상태이다. 소라는 것은 시장점유율은 높으나 성장률은 낮은 상태이다. 회사원의 입장에서 보면 일은 많이 하나 능력이 부족하여 곧 인사관리팀의 정리대상이 될 수 있다. 개 라는 것은 시장점유율도 낮고 성장률도 낮은 말 그대로 기업입장에서는 문을 닫아야하는 분야이다. 회사원의 입장에서 보면 능력도 없고 하는 일도 적은 있을 필요가 없는 직원이 되는 것이다. 결국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별에 해당하는 직원들이고 별에 해당하는 직원들은 장기근속과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직책이 될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서로 Win-Win인 것이다.두 번째로 나온 경영학적 개념은 PLC(Product Life Cycle) 즉 제품수명주기이다. 경영학적으로 제품의 수명주기를 설명할 때 네 가지 단계로 나누는데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가 있다. 도입기에는 신제품이 출시되어 판매량도 적고 매출증가율도 낮다. 그래서 구매자 대부분은 구매에 따른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는 혁신층이 주를 이룬다. 성장기에는 수요와 매출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전체적인 시강크기도 점차 커지는 시기이다. 성숙기에는 도입기나 성장기보다 오래 지속되며 성장률은 낮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저가전략, 차별화전략, 집중화전략등 본원적 전략들이 이용된다. 쇠퇴기에는 수요와 가격도 떨어져 점차 정리하여 발을 빼야하는 BCG매트릭스애서 소나 개의 상태가 여기에 해당한다. 회사원의 직장생활 수명주기에서 도입기는 신입사원과, 사원의 위치에 해당하고 성장기는 대리나 주임, 성숙기는 과장과 차장, 쇠퇴기는 일반적으로 부장에 해당한다. 하지만 제품이나 직장생활이나 쇠퇴기가 끝은 아니다. 제품혁신을 하면 또 다시 반등의 기회가 있다. 평균 70년을 사는 솔개도 40년쯤 되면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죽을 각오를 하고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켜 30년을 더 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끊임없이 발전시킨다면 부장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임원진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가 들어나는 곳까지 승진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고 발전을 꾀한다면 회사의 별이 되어 회사가 돌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큰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반 회사원의 직장생활에도 경영의 개념이 이용되는 것을 보고 점점 더 경영학이 중요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생겨난 지는 얼마 안 된 신생학문이지만 참으로 이용가치가 높다는 생각을 하였다.
과학기술과 윤리 과제-공리주의란 무엇인가-학과: 금속신소재공학부학번: 2014039083이름: 최영승공리주의(utilitarianism)1.공리주의란?공리주의(utilitarianism)란 글자 그대로 공리성(utility)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하는 사상이다. 곧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 하는 유용성과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넓은 의미에서 공리주의는 효용·행복 등의 쾌락에 최대의 가치를 두는 철학·사상적 경향을 통칭한다.2.고전적 공리주의오늘날의 현대 공리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벤담, 밀 등 초창기 영국의 공리주의를 고전적 공리주의라고 지칭한다. 고전적 공리주의는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와 밀의 질적 공리주의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는 목적(결과)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서 특히 경제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에 의하면 행위를 함에 있어 애매한 윤리적 선택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계산을 하여 쾌락이 크면 클수록 올바른 행위라고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양적 공리주의는 쾌락주의 원리라고도 불리며 결과가 좋으면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식이다. 각각의 개인은 윤리적 선택의 상황에서 쾌락을 양을 계산하여 선택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벤담은 쾌락 계산법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한다. 즉 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다산성, 순수성, 파급범위를 종합하여 쾌락의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이러한 양적 공리주의는 아주 저급한 형태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비판과 쾌락의 점수를 매긴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 가변적이고 인간의 삶을 단순화시켜 바라본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더욱이 벤담에 의하면 예컨대 영화 매트릭스의 상황도 정당화될 수 있다. 굳이 인간이 실존하는 무엇으로서 모든 것을 감내하고 살아가기 보다는 그냥 기계에 의해 사육된 채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세계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실제세계보다 더 쾌락이 크다면 당연히 정당화 될테니 말이다. 결국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단 배부른 돼지가 훨씬 낫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 양적 공리주의이다. 이러한 양적 공리주의는 행위 공리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이러한 벤담의 난점을 제거하기 위해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밀에게 있어 행복이란 최소한의 고통을 의미하며, 쾌락은 낮은 수준의 저급 쾌락에서 높은 수준의 고급 쾌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밀에 의하면 저급한 형태의 쾌락 예컨대 식욕이나 성욕 등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면 행복보다는 되려 더 큰 고통을 얻게 된다. 식욕의 지나친 추구는 비만이라는 고통을 가져올 테고 성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정신을 공허하게 만들뿐이다. 이에 밀은 쾌락은 저급 쾌락보다는 고급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문화나 예술, 지식, 자유 따위에 대한 쾌락이 성욕, 식욕, 수면욕 따위의 쾌락보다는 상위에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것에 대한 추구를 통해 양적 공리주의가 가지는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공리주의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객관성 즉 깔끔하게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질적 공리주의에서는 이것이 굉장히 모호해진다. 영화를 보는 쾌락과 그림을 그리는 쾌락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 쾌락일까?3.현대적 공리주의공리주의는 적용 방법에 따라서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로 나뉘게 된다. 즉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위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행위 공리주의란 개별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경우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행위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행위 공리주의는 일반성을 가진 규칙이라기보다 각각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더 큰 이익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각기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명제를 보자. 이는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는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오기에 타당한 명제이다. 다들 거짓말만 한다면 이익보단 손해가 더 클 테니 말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이득이 되는 상황도 존재한다. 테러리스트가 나에게 협박을 하며 어떤 정보를 얻어내려고 할 때 그 정보를 준다면 수백만 명이 죽는 상황이라면 거짓말이 더 큰 이익을 가져오기에 정당화된다. 결국 행위 공리주의란 개별적인 상황 속에서 더 큰 이익을 주는 행위를 선택하라는 기준만 제시해줄 뿐이며 무엇이 더 큰 이익을 주는 행위인지는 행위자가 직접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은 모든 상황 속에서 행해져야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에 다름이 없다. 더욱이 굉장히 복잡한 삶 속에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계산을 하다보면 잘못된 정보에 의해 계산이 잘못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을 두고 반생산성 비판이라 칭한다. 즉 계산을 즉각적으로 항상 해야 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행위 공리주의는 더 큰 난점을 가져오기도 한다. 예컨대 부모님이 큰 병에 걸렸다고 해보자. 우리는 보통 부모님의 치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행위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부모님의 치료가 큰 이익이 되지 않고 되려 부모님의 죽음이 이익이 된다면 과감하게 부모님을 죽이라고 명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을 반직관적 비판이라 칭하게 되며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행위 공리주의가 가지는 한계점이다.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규칙 공리주의이다. 규칙 공리주의란 사회적으로 더 큰 공리를 산출하는 규칙을 정해놓고 어떤 상황 속에서 그 규칙에 속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옳다는 식이다. 사실 공리가 크다고 사회적인 합의가 있는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따라 행위를 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며 이렇게 규칙을 정해놓게 되면 행위 공리주의처럼 각 개인이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 항상 계산을 해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합리적인 인간이 모인 사회집단은 최대한의 공리를 위한 규칙들을 다양하게 상정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본 거짓말 예시를 보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규칙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여기에 따른다. 하지만 테러리스트의 협박에 의해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할 규칙과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해야할 규칙들이 서로 충돌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중대한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더 큰 공리를 따른다는 규칙을 둘 수 있을 테고 우리는 중대한 가치인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해 테러리스트에게 즉각적으로 거짓말을 행할 수 있다. 이러한 규칙은 의무론의 태도를 일부 가져와 최상위의 규칙 즉 최종 규칙을 설정하고 하위의 규칙은 최종 규칙에 따라서 판단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4.공리주의와 자본주의공리주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윤리화한 것이다. 그것은 가지각색의 대상이 인간에게 주는 기쁨을 동일한 기준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하는 전제에 입각하고 있다. 예컨대 시와 빵은 본래적으로 이질적인 기쁨을 준다. 어느 쪽이 공리가 큰가는 기준이 다르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그것을 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모든 인간이 같은 기준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 경제를 그대로 윤리화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나 빵도 일정한 가격으로 팔린다. 사람들은 그 가격에 의해서 그것이 인간에 대하여 갖는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아서 공리주의란 실은 가격을 쾌락과 고통이라고 하는 인간적인 기준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쾌락과 고통이 문제로 되는 한에 있어서는 공리를 감득(感得)하는 주체는 더욱 명확해진다. 사회주의 이론가인 카를 마르크스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인간관 관점을 지지했지만, 공리주의가 내포한 자본주의 원칙에 대해선 비판했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 사회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거래에서 '쾌락'을 찾는 것은 어리석다고 판단했다. 거래의 속성을 전제로 하고 거래에 대해서 연역적으로 추론해볼 때, 거래에 참가한 사람은 서로 상대적인 쾌락을 느꼈지만, 그것은 한정된 쾌락이고, 절대적이고 무한한 쾌락은 결국 노동으로 인해 파급된 상품의 양,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주어진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선 다수의 노동자가 자신이 노동한 만큼 상품의 양(또는 재화)을 분배받지 못하며, 잉여가치를 뽑아내는 용도로 착취당한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되면 쾌락은 하나의 개인에게 쏠리게 되어있다. 사회 전체로 볼 때, 이러한 잉여가치 착취 행위가 생산물의 양을 더 많이 뽑아낼 수 있는 '무기'와 같다고 추론한다면, 소극적 공리주의자들은 근대자본주의가 정의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배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저절로 조절되므로, 문제가 없다."란 것을 전제로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산물들을 단순히 더 많이 파급시키는 자본주의가 공리주의적 인간관 실현에 맞는 체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산품의 총량' 그 자체는 인류의 쾌락 증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것이 분배되어서 사용을 할 때라야 비로소 쾌락이 증진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잉여가치 독식에 대해 이해를 하지 않고 오직 자본주의적 경제 구조를 '쾌락 증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체제'라고 믿는 소극적 공리주의자들은 이러한 점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카를 마르크스는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행복을 주장하면서, 자본주의 법칙을 절대화 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신자유주의의 명암[자본주의의 등장]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시대에 살며 우리의 일의 능력과 일의 가치를 돈으로서 평가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자본주의 이전에는 신분제도가 있었고, 신분제도 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라 경제활동의 형태가 정해져 신분제를 통해 생산과 소비를 했다. 노비는 주로 생산의 역할을 하였고 귀족들은 주로 소비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무너지게 된다. 자본주의의 경제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 해외가 있는데 이중 가계는 기업의 생산물을 사고 생산요소를 제공하는 소비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기업은 생산물을 제공하고 생산요소의 대가를 가계에 제공하는 생산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자유주의와 사회주의]경제학자중 최초로 자본주의의 경제에 대해 분석한 사람은 Adam smith이다. Adam smith는 국부론이라는 책을 총해 시장의 개념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든 경제를 시장에 맡겨두면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Adam smith의 사상을 자유주의(Liberalism)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Karl Max이다. Karl Max는 자본론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로 생산수단의 자유재산화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자본가의 착취가 일어나고 두 번째로는 시장 그자체가 불안정하여 수요와 공급의 일치가 항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착취와 불안정을 줄이기 위해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국가가 경제를 계획하는 등 국가의 영향력을 중요시 하였다. 이러한 Karl Max의 사상을 현실화시킨 사람이 Lenin이다. 하지만 Lenin의 사회주의는 곧 붕괴되었고 서구의 열강들은 자본주의를 채택하여 호경기 불경기를 겪으며 경제발전을 해갔다[Keynes의 수정자본주의]1930년대에 들어서 세계대공황이 오자 Keynes는 평소에는 시장에 맡기되 위기가 올 때는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수정자본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대공황의 온 이유는 대량생산체제의 등장으로 볼 수 있는데, 대량생산체제의 등장으로 생산능력이 소비능력을 초월하고 그로인해 재고가 남고 생산이 줄고 따라서 고용이 줄고 소득이 줄어 결과적으로 소비가 줄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큰 충격을 줘야하는데 이렇게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은 국가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Keynes는 국가가 경제정책을 이용해 간섭해야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생각을 적용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으로 악순환에서 벗어나 대공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신자유주의의 등장]Keynes의 국가개입주의로 경제를 운용하여 경제가 많이 성장하게 되고 대중교육이 등장하는 등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많이 바뀌게 되고 사고방식도 많이 바뀌어 각종 사회운동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등장한 세대가 히피족이다. 히피족의 등장으로 대량생산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게 되고 또 다시 경제가 잘 안 돌아가는 상황속에서 당선된 레이건 대통령의 시장을 더 강조하는 경제운용방식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라 한다. 지금의 대부분의 나라는 신자유주의에 따라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이 신자유주의의 내용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사회복지 지출 억제, 민영화의 찬성, 노동, 환경, 상품, 안전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에 따른 개방을 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는 주로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이익을 재변하는 논리들을 가지고 있다.[신자유주의의 그늘]오늘날 경제를 운용하는 방식인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문제점을 말하기에 앞서 좋은 점도 물론 있다. 경제 성장을 강조하기 때문에 효율이 좋고 수요와 공급의 과정에 있어서 효용과 이윤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 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시장에 의해서 자본가의 착취가 일어나게 되고 양극화가 일어나게 된다. 시장에 의해 선택되는 것은 살아남고 도태되는 것은 사라져버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른바 서민들은 점점 시장에서 밀려나고 빈익빈 부익부현상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이미 자수성가라는 말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고 예전과 달리 흙수저, 금수저 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이런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제점과 연관이 있다. 예전에는 내가 열심히 하면 성공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 세대는 흙수저 금수저로 신분 아닌 신분이 이미 정해져 있고,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고 없는 사람은 그마저도 더 없게 되어 성공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우리 머릿속에 팽배해진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우리의 사고방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장화 되어간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의 가치를 매길 때 돈의 가치로서 비교한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연봉으로, 학생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학교와 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이미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되었다. 또한 효용과 이윤을 극대화하는 시장가치에 길들여져 우리 모두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 하고 나의 이윤만 챙기는 이기심이 가득한 사회로 가고 있는 것도 아주 큰 문제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사고방식과 경제는 앞으로 더 심한 양극화를 만들 것이고 돈에 의한 신분이 생기는 그런 사회가 되어 간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무서움을 알고 고쳐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지식기반경제의 명암[제 3의 물결]인류에게는 인류의 생활방식을 바꾼 세 개의 물결이 찾아오게 된다. 씨앗을 저장해두었다가 도구를 가지고 농사를 짓게 되는 첫 번째 물결을 지나 영국을 시작으로 기계를 이용하여 공장에서 생산을 하는 산업혁명이라는 두 번째 물결을 맞이하게 된다. 앨빈 토플러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세 번째 물결인 정보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농업시대에는 도구를 가지고 생산하는 방식이었고 산업혁명시대에는 기계를 가지고 생산하는 방식이었다면 정보시대에는 전자기술을 가지고 생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장이었다면 지금은 지식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이미 선진국에선 공장을 찾아보기 힘들고 앞으로도 더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정보화사회의 변화속도]지금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여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상상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우리는 어렵게라도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경사회에는 어떠했을까? 농경사회의 세상의 변화속도는 아주 느렸기 때문에 그 당시의 할아버지의 삶과 아버지의 삶과 아들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때 노인을 찾아가 물었고 노인들을 공경 받아 마땅하다고 모두 생각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1년에 2배의 전자기술의 발전이 일어나고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들이 나온다. 그로인해 예전에는 30년이면 세대차이가 난다고 말 했었는데 요즘은 세대는 3년만 차이나도 공감하는 부분이 다르고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가 계속 맞이하게 될 사회는 어른들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요즘 세대에선 일부의 사람들이 꼰대라는 말로 어른들을 공경하기보단 무시를 하는 현상도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정보사회와 일자리]또한 정보혁명 사회에서 인간의 일자리는 더욱 없어질 것이다. 단적으로 스마트폰의 발달로 불과 20년이 안 되는 시간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전문가 말고는 더 이상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사지 않는다. 또한 네비게이션도 스마트폰이 대체하고 있으며 음악을 들으려고 mp3를 사지도 않고 이제는 은행업무도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하게 되면서 사람이 필요했던 많은 자리가 산업이 사라지거나 무인화 되어가고 있다. 음식점, 주유소에서도 무인결제시스템이 많이 점유하고 있고 대부분의 공장은 사람이 많이 필요 없이 자동화되어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정보혁명 속에서 인간은 점점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앓고 있고 취업난은 해가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 할 수 있다.
한문장 소개지원동기고등학교 2,3학년 시절 저의 영어 선생님은 저에게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주셨습니다.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뒤처지지 않게 하자` 라는 배움의 공동체 학습법으로 저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참여하고 토론하면서 직접 답을 찾아 나가는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이런 수업과정을 통해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지 않았던 영어라는 과목에 점점 흥미를 느꼈고,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에게 주는 상인 ‘큰 걸음상’을 받기도 했습니다.저는 이 드림클래스를 통해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 제가 느꼈던 이 깨닳음을 제 학생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수동적인 배움이 아닌 모두가 직접 참여하여 배워나가는 교실을 만들고 싶습니다.성장과정제 성장 과정은 항상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항상 노력하고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와 성실함을 몸소 보여주시는 아버지로 인해 저 또한 성실하게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저에게 부족한 것이 있을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노력하다 보니 부족한 점은 점점 발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저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는 무엇이든 잘하는 다재다능한 아이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저는 선천적인 재능보다 후천적인 노력을 믿습니다. 그래서 또 저에게 어떤 부족한 점이 있어도 잘 극복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드림클래스를 통해 제가 가르칠 학생들에게도 공부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하게 될 때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습니다.성격의 장단점저는 항상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신감은 무작정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해낼 때 꼼꼼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집중력이 좋아 몰두를 잘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잘 안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제 강점들은 저에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고 이런 제 모습을 통해 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싶습니다.그러나 가끔 제 일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주변에 관심을 두지 못해 주변사람들이 서운함을 말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이러한 성격이 누군가에게는 서운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신경을 쓰고 이야기를 더 귀담아들으며 노력하여 많이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리더십경험군대를 전역하고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카페는 저에게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너무 바쁘셔서 카페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고 매출은 점점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같이 일하는 친구들을 모아 우리끼리라도 해보자라고 설득하였고 직접 시장조사를 다니고 계절메뉴개발부터 겨울시즌 전략까지 만들어 정리하여 사장님과 디자인회사 대표님 앞에서 저희의 의견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리더를 자처했지만 친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혼자서는 부족했을 일들이 서로 협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것과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자질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1.한국경제의 발전과정한국의 해방, 그러나 아직 출발하지 못한 경제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해방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의 해방은 직접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주어진 측면이 크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문제는 한국 민족 스스로에게 자주적인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로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두 강대국에 의해 분할점령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미군정 3년간 우리나라의 경제 또한 아직 혼자 힘으로 첫발을 내딛을 수 없었고 정확히 3년째가 되는 1948년 8월 15일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였다.우리나라 경제의 출발식민통치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제는 해방 후 더 좋아지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말의 제일은행의 고액권발행으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고 공장을 가동하던 일본의 기술자들이 해방이 됨과 동시에 일본으로 귀국하였기 때문에 공장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져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안고 정부는 자립경제의 확립을 위한 경제정책을 실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토지정책 이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때부터 이어온 반봉건적 토지소유 관계를 개혁하기 위해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하였고 많은 수의 농민이 소작농에서 벗어나 농지를 소유하고 직접 농사를 지어 경제활동을 할수 있게 되었다.한편 식민지 경제구조를 청산하고 새로운 경제구조를 세우는데 농지개혁과 더불어 중요했던 것이 귀속재산처리였다. 일제가 남기고간 귀속재산은 당시 남한 총 자산의 80퍼센트가 되는 양이었고, 이를 헐값에 매각하여 정부는 자산을 그나마 모을 수 있었다. 이 산업시설들을 사들인 사람들은 후에 많은 재벌이 되었고 이 귀속재산처리법으로 지금의 재벌들은 많은 혜택을 받으며 시작할 수 있었다.귀속재산을 처리하고 난 후에는 한국은행법을 제정하여 한국의 중앙은행을 만들어 발권과 국고의 역할을 하게 하였으며 은행법을 제정하여 통화금융기관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6.25전쟁과 그 후...이렇듯 우리나라 경제는 어렵게 첫발을 내딛었으나 다음 발을 내딛어 앞으로 나아갈 틈도 없이 1950년 6월 25일 우리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국군 사망 및 실종자 28만명과 36만명의 민간인 사망, 그리고 절반에 가까운 산업시설 및 민간 시설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전쟁 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고 또 우리의 힘으로 자급자족을 할 수 없어 원조를 받아야만 하는 원조경제 국가였다. 이당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산업은 삼백산업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원조물자였던 밀가루, 설탕, 면화를 가공하는 것이 전부였다. 동시에 깡패들이 만연하는 이른바 ‘깡패사회’였기 때문에 사회가 아주 혼란 하였고 부정부패와 비리가 가득하였다. 정치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나중에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와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경제발전의 빛과 그늘4.19의 민주화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인 박정희 소장은 3500여명의 무장병력을 이끌고 정부청사와 언론기관 등 주요시설을 점령하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리고 박정희는 대통령에 올라 국가자립경제를 재건하고 민생고를 해결하겠다는 공략을 내새운다. 이에 박정희가 처음으로 한일은 확정 발표되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는 것, 그 이전에 사업화를 하기 위한 최소의 자본을 조달하고 축적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부는 화폐개혁을 하여 각 가정에 모아져 있던 돈을 회수 하려하였고,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일제의 착취와 수탈과 학살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3억 달러라는 헐값에 넘겨주었다. 또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보내 많은 청년들의 목숨 값을 받았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 외화를 획득하였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산업화는 그 당시 젊은이들의 피와 땀 일제강점기시절 조상들의 피와 희생으로 시작 될 수 있었던 것이다.이렇게 시작된 경제계발정책은 1차부터 7차까지 이루어지게 되는데 1차 경제개발 5개년정책의 주된 목표는 생활필수품의 자급자족이었다. 이어서 2차계발 정책의 목표는 경공업 제품의 수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제개발 정책 속에서 우리나라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의류, 섬유, 가발 등의 경공업 산업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노동자들의 희생이 요구되는 산업이었고 1960년대 고도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여성과 아동들 비롯한 이름 모를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뤄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1970년대 들어서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목표로 한 3차 경제개발 정책과 기술의 진보를 목표로 한 4차 경제개발 정책이 실시되었고 70년대 후반 중동건설 붐에 많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참여하여 많은 외화를 축적하였다. 이러한 경제성장으로 1978년에는 처음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게 되었고 드디어 쌀을 자급자족 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1978년 민주항쟁과 경제변화전두환 대통령 출범 후 1980년대 중반기는 3저 호황의 시기였다. 낮은 국제 유가, 낮은 국제 금리, 낮은 달러와 엔화의 가치는 석유 의존도가 높고 수출을 강조하고 순 채무가 많은 우리나라에게 모두 유리한 조건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더불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승리는 우리의 경제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으킨다. 민주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으며 법정 노동시간이 줄었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점점 올라가게 되었다. 이에 적응을 하기 위해 기업들은 품질개선을 하여 고급품목을 개발하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자본집약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즉 1987년이후 우리나라의 경제는 후진국형 경제에서 선진국형 경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외환위기 원인과 결과1987년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에서 많이 변화하였고 1990년대 들어서는 우리나라의 반도체사업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며 90년대 중반은 ‘단군 이래 최대호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한국경제의 낙관적 전망도 잠시, 1997년 우리나라는 최대의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호황의 이면에 잠복해있던 위험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온 것은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과 부정부패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불법대출사건이 이어진 끝에 대형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금융기업들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었다. 금융기업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자 외국금융기관들은 채무상환기간 연장을 거부했고 이로서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는 바닥이 나버리게 되고 1997년 11월 21일 IMF에게 구제금융을 받게 되어 IMF의 경제 신탁통치가 시작되었다. 정부가 직접 투자재원을 기업에 나누어 주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방식이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도리어 우리경제에 철퇴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2001년 구제금융 전액을 상환했지만 아직 우리경제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을 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해 이와 같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35년간의 식민통치, 그리고 비극적인 3년간의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는 1인당 GDP가 60$밖에 안되는 가난한 나라였다. GDP가 물질적 생활수준을 정확하게 나타내진 못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가에 속한다는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의 원조물자들을 받으며 그것들을 가공한 삼백산업으로 경제를 겨우 이끌어갔고 사회는 혼란하여 깡패들이 만연하는 깡패사회였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는 모습은 과거에 이러했다는 사실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우리나라가 변화하였고 발전하였다고 말해준다. 전 세계에 유일무이 할 정도의, 어떤 이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단기간의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무엇일까?노동자들의 희생1960년대 박정희의 쿠데타로 독재가 시작된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는 비행기로 치면 이륙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단계였다. 박정희 정부의 정책이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은 맞지만 이것만으로 우리가 경제발전을 했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좋은 경제정책은 누구든지 낼 수 있지만 이것을 따라주는 것은 국민에게 달렸다.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제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경공업 제품들을 자급자족하고 수출하는 경공업 중심 경제였다. 이러한 경제구조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 환경 등 노동자들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당시의 노동환경은 전태일 분신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태일이 일하였던 서울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장에서는 젊은 여성과 아동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전태일은 형광등이나 환풍기추가 등 소박한 요구를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한자로 적힌 노동법을 대학생에게 물어가면서 노동법을 공부하게 된다. 현실과 노동법에는 차이가 큰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을 알리기 위해 노동청과 신문기자에게 찾아갔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데는 실패하게 된다. 신문에 날 수 있는 사건을 만들기 위해 전태일은 분신자살을 결심하고 자살을 하여 노동운동의 출발점이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도의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여성과 아동을 비롯한 이름 모를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