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ess Records 와 Chicago Blues>블루스는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이자 유럽 이주민들의 민속음악, 영가들이 혼합되어 만들어 진 것이다. 영화에서도 밭에서 수확을 하며 흑인 노예들이 부르는 노래를 볼 수 있는데 이 것이 블루스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블루스는 미시시피 델타 지역에서 시작되었고 기타와 하모니카가 함께 연주되는 거친 보컬곡이다. 컨트리 블루스로고 불렸던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Delta Blues)는 192,30년대 선 하우스, 로버트 존슨 등의 뮤지션들에 의해 음악 스타일이 완성됐다. 델타 블루스는 북부지역으로 옮겨가 시카고 블루스, 디트로이트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등으로 발전했고, 1950년대 로큰롤의 탄생에 기여했다.체스레코드의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하울링 울프(Howlin’ Wolf)도 미시시피 출신의 블루스 뮤지션들이다. 영화에서 이 과정을 머디 워터스가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시카고로 온 후에 레너드 체스를 만나 음반을 내게 되는 과정으로 보여지며 지미 로저스의 하모니카와 결합해 1946년 마콤바 라운지가 결성되고 이후 시카고 최고의 녹음실을 갖춘 체스 레코드 사에서 나온 머디 워터스의 음반이 히트치며 머디 워터스의 전성기가 왔다고 볼 수 있다.머디 워터스는 현대 시카고 블루스의 아버지로 언급되는 미국의 블루스 음악가이다. 그는 시카고로 이주하여 밴드를 조직하였는데 이 때가 영화에서 ‘올스타 트리오’이자 ‘맞장’으로 언급되는 부분이다. 그는 자1943년부터 시카고에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고 1944년부터 전기기타를 연주하였다. 그는 컨트리풍의 블루스 스타일을 탈피하여 피아노와 드럼 등으로 중량감 있는 댄스 리듬을 연주하였으며 신음하는 듯 혹은 외치는 듯한 보컬 스타일과 솔직한 감성을 표현하는 가사로 독특한 시카고 블루스 스타일을 만들어나갔다. 그의 대표곡은 1세대 블루스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앨범 [The Real Folk Bluse]에 수록된 “Gypsy Woman”, “Rol이 있다.머디 워터스가 기타 천재로 불릴 때 그의 옆에는 하모니카 천재 리틀 월터가 함께했다. 리틀 월터는 시카고에서 활동한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자로, 1940년대 중반 시카고로 이주했으며 기타 앰프에 연결한 하모니카에 대고 거리에서 연주를 하다 1948년 머디 워터스의 밴드에 가입했다. 그는 후에 팀에서 탈퇴하긴 했지만 그 역시 싱글차트 1위를 여러 기록하며 굉장히 음악적으로 히트친 뮤지션이며 하모니카라는 악기가 블루스 음악에서 어떤 역할을 보여주는지 정확히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가지고 최초이자 유일하게 락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Sad Hours”, “You’re So Fine” 등이 있다.모던 블루스의 시작은 인구 대이동을 거쳐서 나타나는데 1차 세계대전 전후로 남부 시골지역의 흑인들이 공업이 발달한 북부의 도시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원래 미시시피 델타 지역에서 파생된 블루스의 특징은 포크와 가스펠 적인 요소가 특징이었다. 특히 거친 블루스 창법과 차번한 어쿠스틱 사운드로 나타내어지는데 인구 대이동으로 인해 블루스 뮤지션들도 도시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도시의 큰 술집이나 클럽에서 듣기에 델타 블루스의 기타사운드소리가 주목받지 못하면서 이 때 새로 개발된 일렉트릭 기타와 앰프는 블루스가 도시적인 사운드를 가질 수 있게 했다.결과적으로 당시의 음반 시장은 인종 차별로 인해 흑인 음악이 백인들에게 유행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델타 블루스가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에 모여든 뮤지션들을 통해 발전하게 된 것이며 비트가 더욱 강조된 특유의 강하고 드라이브감 있는 리듬과 오버드라이브와 디스토션이 걸린 지그러진 느낌의 강력한 사운드를 특징으로 한 시카고 블루스가 탄생하게 된다. 일렉트릭 기타와 앰프는 이 당시 활동한 뮤지션들의 연주스타일과 음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화에서 앰프를 연결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리틀 월터의 하모니카를 그의 생명(삶)과 같다고 제시한 바와 같다.이러한 음반을 제작할 수 있게스이다. 그 당시는 인종차별이 극심해서 흑인 남자가 백인 여인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사형당할 정도였는데 레너드 체스가 흑인 뮤지션의 음반을 성공시키면서 블루스를 통해 음악에 있어 흑인들의 활동을 성황 시킨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는 음반이 히트치면 뮤지션들에게 캐딜락 자동차를 선물해주었는데 영화제목 ‘캐딜락 레코드’역시 체스 레코드 가수들의 부의 상징과 신분상승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후에 윌리 딕슨이라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를 영입하여 뮤지션들의 음악 성향을 좀 더 대중적으로 바꾸고자 했다.윌리 딕슨은 미국의 블루스 뮤지션이자 작곡가로 체스 레코드에서 일하며 뮤지션들과 레코드 홰사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맡았다. 그는 대부분의 곡을 함께 작곡하였고 작곡자, 프로듀서, 베이스 연주자로서 대부분의 히트송을 작곡하였다. 또한 시카고 블루스 시절에 가장 많은 명곡을 작곡한 뮤지션 중 한명이다. 결과적으로 1950년대 블루스사운드를 유행시키는데 기여했는데 그 안에는 그가 작곡한 “아임 유어 후치 쿠치 맨”이 있다. 이 곡은 블루스의 고전으로 꼽히며 이후 전기음악으로 연주하는 블루스와 로큰롤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그 대중성을 지향한 첫번째 가수가 하울링 울프였는데 울프 역시 밴드를 이끌던 뮤지션으로 그의 밴드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1950년대 일렉트릭 블루스 음악의 발전에 기여했다. 1950, 60년대 내내 울프의 보컬과 섬린의 기타, 그리고 딕슨이 주조한 곡조와의 연계는 마치 공식처럼 돼버렸다. 그는 흔치않은 육중한 목소리로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목소리의 Muddy Waters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하울링 울프라는 이름 역시 늑대 울음소리를 닮은 거칠게 노래하는 목소리로 인해 붙여진 것이다. 그의 대표곡은 “Smokestack Lightning”, “Spoonful”, “Back Door Man” 등이 있다.블루스 형식은 재즈, 리듬앤블루스, 로큰롤 안에서도 볼 수 있으며 블루스에서부터 시작된 다양한 장르들이 그 당시 다르 뮤지션들을 통해 나타난다 있다. 척 베리는 로큰롤의 개척자이자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데 블루스와 컨트리를 교묘하게 섞어 만든 음악으로 리듬앤 블루스를 정제하고 개발하였다. 특히 그는 청소년의 삶과 소비에 중점을 둔 작사와 쇼맨십과 음악 스타일로 록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많은 백인 여성들을 자신의 팬으로 만들었다. 영화에서도 그는 인종차별이 굉장히 심한 지역에서 관객을 통로를 사이에 두고 흑인과 백인으로 나누어진 공간에서 연주하는데 심취한 관객들이 인종과 무관하게 무대에 뛰어들고 함께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역시 척베리의 음악이 블루스를 넘어 백인들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음악 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 때 척 베리의 등장이 미국의 로큰롤 시장의 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Mayvellene”, “Roll Over Beethoven”, “Rock and Roll Music”, “Johnny B. Goode” 등이 있다.하지만 1959년 매춘 목적으로 미성년자와 함께 주 경계선을 넘은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척 베리를 통해 수익을 얻던 체스 레코드사 역시 굉장히 큰 타격을 입는다. 물론 척 베리는 석방된 뒤로 “No Particular Place to Go”,와 “You Never Can Tell”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지만 1950년대의 인기와 성공에 비할 수 없었다. 척 베리의 수감으로 큰 타격을 입은 체스 레코드사의 설립자 레너드 체스는 새로운 뮤지션을 찾아 다닌다. 당시 그가 찾은 뮤지션은 체스 레코드를 대표하는 여자 가수인 에타 제임스이다.에타 제임스는 블루스, 알앤비, 소울, 락앤롤, 재즈, 가스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남자만큼 성량이 좋은 여자 가수로 주목되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크리올레츠'라는 걸 그룹을 결성했다가 그룹은 모던 레코즈와 계약을 맺고 팀 이름을 에타 제임스의 별명을 딴 '피치스'로 바꾸었다. 이때부터 에타 제임스는 원래 이름인 '저메스타(Jamesetta)'를 뒤집어 '에타 제임스60년대에 레너드 체스를 만나 체스 레코드 소속이 되었고 그 해 솔로로 발표한 곡인 “ All I Could Do Was Cry”와 “My Dearest Dariling”을 히트시켰다. 그녀는 이후 록의 비중을 늘린 음악을 시도했는데 한편으로 마약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고 영화에서도 마약 치료를 위해 레너스 체스가 그녀를 돌본다면서 음악 활동을 재기 시키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에타 제임스는 미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장 간과된 블루스 뮤지션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몇 차례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하면서 업적이 재조명되었다. 그녀도 역시 로클롤 명예의 전당,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미국 대중음악 이 선정한 ‘연대 최고의 가수 100위’ 중 22위에 올랐다. 그녀의 대표곡으로는 “The Wallflower”, “At Last”, “Tell Mama”, “Something’s Got a Hold On Me”, “I’d Tather Go Blind” 등이 있다.몇몇 밴드들은 블루스 아티스트들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특히 시카고 일렉트릭 블루스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은 리듬 앤 블루스에 더 폭 넓은 관심을 가졌다. 머디 워터스와 하울링 울프 같은 아티스트들을 포함하여 로큰롤의 선구자인 척 베리가 등장하는데 이 후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롤링 스톤스라는 영국의 밴드이다. 그들은 리듬앤 블루스의 표준으로 구성된 첫 앨범을 1964년에 발매했다.1950년대 중반에 흑인의 리듬앤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 음악 요소가 더해져 강한 비트의 열광적인 음악을 낳은 로큰롤이 세계적으로 유행했하면서 머디 워터의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름을 지은 영국의 밴드 롤링 스톤스가 영국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다. 그들은 현재 세걔에서 대표적인 록큰롤 밴드이다. 스톤스는 1집 를 내고 초창기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65년 이 영국과 미국에서 크게 히트한 후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였다. 롤링스톤스는 빌보드 핫 100차트에서 2번째로 성공한 그룹으로 기록되었는데 밴드.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까?우리 사회는 기술적, 문화적 발전과는 별개로 그 안에서 소외되는 수많은 약자들이 존재한다. 거기다 빈익빈 부익부와 같이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고 갈수록 개인주의가 만연해지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현실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살기 편해지는 것은 맞지만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우리가 약자를 바라보는 입장을 고려해보면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식하지만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듯하다.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보호하기 위해 내가 생각한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에는 어디든 약자가 있을 수 있고 내 자신도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 역시 사회의 구성원이자 우리의 이웃이라는 ‘연대’를 갖는 것이다.우리는 분명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제도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례로 들 수 있는데 처음 제도가 마련되었을 때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런 좌석이 있는지 모르고 앉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보아 임산부 배려석은 확연히 차이나는 색으로 바꾸고 안내 방송도 빈번히 나오게끔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가 앉아있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임산부 배려석에 덜컥 앉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아마 어딘가에 배려해야 될 대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두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아내가 임신을 했다면 혹은 나의 가족이나 친구가 임신을 했다면 그 자리에 대한 배려는 저절로 지켜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우리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는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부터 출발한다고 본다.또한 누군가를 위해 배려하거나 봉사할 때 우리는 그들을 단지 ‘약자는 돕는 것이 윤리적이기 때문에’, ‘약자를 도와야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등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유대감을 교류하며 돕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어디든 사회적 약자만이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있다. 그러니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만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친구이고 이웃이라서 진심을 다해 연대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연대’로 인해 의무가 아닌 진심으로부터 나온 손길이 사회적 약자를 돕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또한 이런 연대감이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