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하우스 (Cubic Houses) _ 피트 블롬 건축가 피트 블롬은 로테르담의 광장을 가로지르는 보행자용 다리 위에 주택을 세웠다. 38개의 입방체 형태 약 40채의 주택과 상점을 이러한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설계했다. 집의 형태는 54도 기울어졌고, 바닥부터 위를 향해 육각기둥이 세워졌다. 노란색의 추상적인 숲을 의미하는 이 건물은 기울어진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3단 구조로 이루어져 침실, 가사 공간 등 다채롭게 꾸며져 있기도 한다. 즉 내부 공간은 전통적인 유럽 주택의 구성을 따름으로써 거주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건축물에는 점과 선의 요소가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정사각형의 정갈하다는 느낌을 기울여버림으로써 위태로운 느낌을 주는 동시에 재미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똑같은 형태의 덩어리들이 나열되어 있어 위치에 혼란을 줄 것만 같다. 그리고 사선으로 되어 있어 넓지 않은 공간도 더 넓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바닥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창도 평범하지 않은 기분이 든다.
ㅡ빛으로 가득찬 수직 건물ㅡ12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랑스 기독교계는 교회건축이 나아갈 방향을 놓고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200년 이상 계속되면서 여기에 싫증을 느끼거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세력이 등장했다. 중세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영향 아래 스콜라철학과 자연신학 등에서 ‘빛’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가 건축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당시 프랑스 왕실을 이끌던 카페 왕조가 로마 교황청과 연대하면서 거대권력이 탄생했고 이에 합당한 새로운 건축이 필요해졌다. 앙천을 명분으로 한 수직성이 구체적인 방향이었다.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근대 건축 여행과목명:담 당 교 수 :제출일:제출자:Ⅰ. 서론Ⅱ. 군산에 남아있는 일제의 건축물1. 일본인 주거시설2. 근대 상업시설Ⅲ. 목포에 남아있는 일제의 건축물1. 근대적 항구 형성2. 동양척식주식회사 건축물Ⅳ. 일제 건축물의 관광지화에 대한 의견Ⅴ. 결론Ⅰ. 서론군산은 인근의 비옥한 김제, 만경평야의 곡창지대와 연결되어 있고 서해안과 붙어있는 항구도시로 물자가 모이는 집산지이자 교역의 중심지였다. 일본은 토지 수탈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군산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경제 착취를 하였다. 토지수탈을 위해 호남지역과 충청지역의 농토를 빼앗아 일본인 농민들이 살게 하였고 그 결과 군산을 중심으로 한 전북지역에 일본인 농장들이 모였고 일본 식민정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목포는 1897년에 개항하여 일본 제국 본토로의 곡물 수탈항이였고, 토지 수탈을 위해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세워서 농민들의 농토를 빼앗아갔다. 목포 역시 수탈의 기점 역할을 했던 도시로 개항 이후에 남아있는 유적들이 많다.근대적인 항만시설과 철도, 도로 등의 건설로 군산은 급격히 성장하여 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공서, 상가, 주거시설 등의 근대건축물이 건설되어 군산은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그러나 개항 직후와 일제시기에 군산에 건설된 근대 건축물들 중 이미 많은 숫자가 심하게 훼손되거나 멸실되어 그 원형을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 와중에서 남은 건축물들은 지켜 앞으로의 세대들이 지켜야한다.우리 문화재에는 일제강점의 흔적이 담긴 역사 유산들이 적지 있다. 아픈 역사의 흔적, 바로 “네거티브 문화재”다. 우리나라 20세기 전반의 근대 문화재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일제의 유산 즉 “네거티브 문화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Ⅱ. 군산에 남아있는 일제의 건축물1. 일본인 주거시설‘히로쓰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일본식 가옥의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때 주택으로, 지난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이 주택은 일제강점기 군산부 협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포목점을 운영했던 ‘히로쓰 게이사브로’라는 일본인의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히로쓰는 대지주가 많았던 군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업으로 부를 쌓은 사람이다. 히로쓰가옥은 목조로 지어진 2층 주택으로, 근세 일본 무가(武家)의 고급주택 양식을 따르고 있다. 구조는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다다미방 2칸이 있다. 지붕은 박공지붕, 합각지붕 형식에 기와를 얹었고, 외벽은 심벽에 목재 비늘판벽과 회벽으로 마감했다. 히로쓰가옥의 구조를 살펴보면 2층짜리 본채 옆에 단층 객실이 ‘ㄱ’자 모양으로 비스듬하게 붙어있는 형태다. 히로쓰가옥은 지붕과 외벽,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신흥동 일대 로쓰가옥을 포함하여 미즈커피 건물, 장미갤러리 건물 모두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거주지였고 일본 주택의 원형을 잘 간직한 곳이다. 히로쓰가옥이 문화재로서 보존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히로쓰가옥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군산의 일본인은 이 같은 고급주택을 지어 편안한 삶을 살았으나, 우리 한국인들은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시달리며 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아픈 역사를 방증하는 근거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3. 근대 상업시설군산세관은 건축적인 가치와 일본 제국주의 수탈의 아픈 역사를 증언해주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일제 수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군산세관은 국내에 남아있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이며 현재는 호남 관세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군산세관 건물은 대한제국(순종 2년 6월)에 지어졌다. 건물의 지붕은 고딕 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일본 건축 특성을 보여준다. 이 건물은은 지붕의 다양한 처리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천연슬레이트와 동판으로 마감된 지붕은 우진각 형태와 박공지붕이 혼합된 모습이다. 전면 현관 상부는 완만한 곡선의 아치를 만들고 뒤쪽에 다시 박공벽을 구성하여 높은 지붕면과 박공면이 조화를 이루며 입구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후면은 전면과 같이 좌우측 끝에 낮은 박공지붕을 만들었으나 그 옆에 돌출된 포치를 구성하였으며, 지붕 중앙부에는 벽난로 굴뚝이 올라와 있다. 전체적으로 대칭적 모습이고 내부는 많은 부분이 개조되었으나, 변화있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현재 호남 세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군산세관의 내부는 역사의 장, 체험의 장, 공존의 장, 기록의 장, 활동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역대 세관장들의 사진, 압수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눈에 띌 만한 것은 일제강점기 쌀 수입허가서 등 쌀과 관련된 세금 관련 서류이다. 일제강점기 때 세관은 쌀 수탈을 위한 기관이었다. 쌀을 조선인 농부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다음 목표치에 맞지 않으면 더 많은 쌀을 거두어들이거나 토지를 수탈해가 일본인에게 값싸게 팔고 강제로 수탈해 간 쌀을 일본으로 보냈다. 군산세관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 차별과 부당거래, 강제적인 수탈을 했던 일본의 만행을 보여준다.조선 근대 미술관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들어오면서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규모가 작은 건물로 본관 1동에 2층 창고와 사무실 구조로 되어있다. 지금은 근대미술관으로 사진이 전시 되어있다. 강제징용 광복군사진 군산항 수탈 사진 등 수탈의 아픔을 볼 수 있다. 2층은 재현관으로 안중근 의사가 수감생활을 한 중국 뤼순감옥을 재현해 놓았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엽서와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 안중근 의사의 용기를 높이 산 해외기사까지 전시 되어있다. 군산이 안중근 의사의 고향, 의거장소, 순국장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전시해둔 이유는 근대역사도시 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함이다.일본은행 18지점 또한 일제 수탈의 아픔을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군산세관이 일제강점기에 쌀 수탈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면 일본은행 18지점은 사진으로 일본의 전반적인 수탈과정과 일본인이 저지른 만행을 보여주고 있고 우리 민족이 항쟁한 증거 투쟁 정신을 보여준다.Ⅲ. 목포에 남아있는 일제의 건축물3. 근대적 항구 형성목포는 예로부터 일본을 배로 오가던 개성상인들의 중간기착지로 이용되었으며 1897년 고종 31년에 개항되었다. 특히, 목포는 나가사키와 상하이를 두고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항구이기에 열강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국권침탈 직전에는 일본산 면화가 목포항을 통해 수입되었다. 그리고 일제시대부터 대량의 직물과 곡류의 공출 거점 기지로 전락하였으며 항구 주변에는 일본인 집단 체류지가 있었다. 목포는 1987년도에 개항을 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목포항과 호남선의 목포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번성 하였다. 목포 개항 이후 완도를 통해 이어지던 뱃길에 항상 목포가 끼게 되었고 목포-제주 사이를 정기적으로 항해하는 기선이 생겨났다. 1921년 설립된 순항선조합의 선박을 비롯해 인천, 부산, 여수를 오가던 배들은 목포를 중간 기착지로 삼아 항해를 이어나갔다. 목포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얼마나 많은 자원을 수탈해 갔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4. 동양척식주식회사 건축물동양척식 주식회사란 1908년 일제가 조선 및 대만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고 경제권 이득 착취를 위해 설립된 국책회사(1)이다. 일제 시절에 농민들의 농토를 강제로 빼앗아서 토지를 소작인에게 빌려주어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했고 영세 소작농에게 빌려준 곡물에 대해서는 20%이상의 고리를 거둬 들였다.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1908년 서울을 본점으로 시작해 전국에 많은 지점을 두었다. 당시에 있던 많은 지점 중에 목포에 있던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소작료를 가장 많이 거둔 곳이다. 목포에 있는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2006년 역사교육을 위해 개보수를 통해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동양척식 주식회사에서 근대 역사관으로 바뀐 이 곳을 보면서 일제시대 농민들의 불행한 삶과 일제의 불합리 적인 토지 수탈에 대해 알 수 있다.Ⅳ. 일제 건축물의 관광지화에 대한 의견군산을 근대역사로 지정하여 일제강점기와 근대에 지어진 건물과 시설은 보존하여 관광지로 변화시켰다. 목포도 반일감정과 적산가옥이라는 이유로 철거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근대역사관으로 만들어져 보존중이다. 그 결과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하는중이다.군산과 목포 등 전라도에 남아있는 일제 건축물을 관광지화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관광지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면 ‘치욕스러운 일제의 흔적들을 없애는 것이 과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물들을 유지시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 왜냐하면 히로쓰 가옥이 완전히 일본식 건물이 아닌 한국의 전통적인 온돌과 일본식 가옥의 특성이 혼합된 특징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행 18지점, 군산세관은 역사의 아픈 부분을 그대로 들어내 근대박물관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후손들에게 역사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고 본보기가 될 수 있다.Ⅴ. 결론전라도를(군산과 목포)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알고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았다. 군산에서 역사적 여행으로 히로쓰 사옥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의 삶의 질 차이를 보여주었고 군산세관과 이제는 근대 미술관으로 바뀐 일본은행은 일본이 우리나라의 쌀과 돈을 얼마나 수탈 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이다.목포는 1897년 개항을 시작으로 일본인들의 수탈이 심해졌던 곳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목포 근대 역사관으로 바뀐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군산세관과 일본은행 과같이 일제의 수탈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준다. 한 때 토지수탈을 했던 곳과 빈부격차를 보여주던 장소가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서 쉽게 여행을 다니며 볼 수 있게 되었다. 문서와 책으로 읽어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과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관광지로서 보존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