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유재산제도-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의 한계-의미有이에게 재산 주고픔→재산상속→부계혈통→자유로운성적활동 규제*이론적 관점: ① 구조기능론적 가족이론(현재체제유지)- 사회유기체론ex)우리몸 항상성-자본주의-재산상속-핵가족- 핵가족 ①가족의구성: 부모자녀, ②성별분업:남밖여집*가족임금제도-막스주의이론 노동가치론- Free labor(자유의지): 자본주의 기본적 계약관계는 자율적but일을 안하면 굶기에 완전히 평등X, 폭력X but 자유X ⇛ 노동조합, 최저생계비- ‘타인의 노동을 고용‘①유급: 생활비(서비스값 제공필요)②무급: 생활비x(자체해결)- 착취; 모성애, 헌신→성별분업- 사회유지위해 ‘산업전사’만들어야 한다- 출산(사회적 노동력의 재생산)- 이성애(동성애는 죄악)- 고용주가 주는 월급은 just개인 위한 것이 아님(가족임금)⇛ 성별분업에 따른 사회적 보상체계의 차이: 경제력→결정권→평등-사회주의 국가는 남녀 평등: 女의 경제력 필요- 지원*여성주의적 가족이론1. 지나치게 모성성, 가족의 신성성 강조(女의 불평등 심화)- 결국 女는 just가정내 주부→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가정 내, 남편에게 의존해야 함(경제, 평등x)2. 가족의 정서적 기능(진정한 휴식처? 쉼터? 감옥?)- 우리 집안 잘되면 나도 잘된 것?- 가족이해≠구성원이해→희생 바람직x- 가정: 사랑 헌신x, 익숙치 않은 착취(당연시)3. 가족: 합의에 의한 공동체- 이혼시 재산분할x→ 女경제력 없으면 이혼x- 가정폭력 피해자 무기력화⇛가장 이상적인 것: 女의 사회활동+男의 자녀양육참여4. 포스트모더니즘 관점(근대성, 획일성에 대한 도전)- 가족: 정해진 프레임x, 다양성 중요- 기존 가족얘기에서 제기되지 않았던 제도 발발 ex)부부강간제, 가정폭력-대리모, 낙태⇛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복지, 모든 가족 동일x
*여성인권상승: 男의 가부장적 의무,책임↓, 女도전ex)순결이데올로기(성적자기결정권): 섹스로 인한 책임-결혼 도피 : 성매매(성-배설 not사랑)*女의 가사노동: 무급→사회적 보상X, 당연한 것으로 치부1. 방법론의 차이1.1. 평등(기계적평등:모든 것 다 똑같이) → 실질적평등X, 불평등강화1.2. 보호(조건적평등:같은 것 같게 다른 것 다르게)- 女신체적조건 고려 ex) 공중화장실개수(생식기차이)/고용할당제/초등男교사↑2. 개인적 불평등2.1. 개인적(권리):과거비해 신장 but 아직 평등한 것은x2.2. 구조적(불평등):사회과학적으로 개선→제도 ex)세금누진제-자본주의의 아이러니: 불평등의 고착화(성별, 계급)*모든 사회의 문제는 이를 인식하며 시작된다①참정권 ②교육권 ③직업(경제권-의존x)<1> 페미니즘의 종류1. 자유주의 페미니즘(서구자유주의, 계몽주의에 영향 받음)- 개인의 자율성과 자아실현이라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에 근원을 둔 여성해방운동- 기성의 정치적·사회적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혁파하기보다는 기존의 틀 안에 여성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구조를 개량- 자유,계몽→남녀의 법적권리를 보장x때문- 기본적으로 온건→개별적 권리신장(전반적 체제구조변화는x) - 기존 성역할 받아들여 기회를 주자 - 사회적 발전o but, 불평등 개선x, just 불평등 탈피시작*한계: 계급적(구조전변화x, 男기득권 유지)2. (구조)마르크스주의 이론 (자본과 노동의 계급관계)→계급모순>성모순 “계급”- 개인의 가능성을 저지하는 원인을 사회체제에서 찾고 그러한 조건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는 것이 핵심 목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男女의 불평등에 주목하며, 사회 체제 속에서 반복된 노동의 차이에 여성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남성 중심적 규범에 부합되는 여성의 젠더가 형성되고 견고해졌다고 주장
교과목명담당교수학 과학 번이 름제 출 일조선시대 사화-목 차-1. 사화의 발생 배경2. 사화의 발생가. 무오사화나. 갑자사화다. 기묘사화라. 을사사화3. 느낀 점4. 참고 문헌1. 사화의 발생 배경조선은 1392년 건국되어 15세기를 초기, 16세기를 조선 중기로 나눌 수 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정치적 실권을 잡은 이성계는 신진 사대부와 함께 본격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개혁의 방향을 두고 신진 사대부 세력이 온건 개혁파와 급진 개혁파로 나뉘었다. 15세기를 이끈 세력은 조선을 건국한 세력이며 16세기에는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던 세력의 후손들이 조선을 장악하게 된다. 15세기, 16세기를 이끌었던 세력들은 모두 권문세족들과 부딪히며 성장한 신진 사대부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신진사대부가 조선 건국에 참여했던 세력과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던 세력들로 분화한다. 이 때 조선 건국에 참여한 세력들은 급진파, 혁명파라 하며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던 세력들은 온건파라 한다. 급진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정도전이 있으며, 온건파에는 정몽주가 있다. 급진파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추구했기에 25세기 문화는 융통성이 있으며 유연하다. 그러나 온건파는 명분에 집착하여 유교경전을 중시하여 16세기는 유학이 발달하기도 하였다.구분온건 개혁파급진 개혁파중심인물정몽주, 이색 등정도전, 조준 등개혁 방향점진적 개혁급진적 개혁고려 문제고려 왕조 유지→조선 건국 후 낙향하여 향촌 자치 추구새 왕조 개창 주장→신흥 무인 세력과 함께 조선 개창조선의 건국 과정을 살펴보면 최영이 요동 정벌을 명하지만 이성계는 4불가론을 외치며 위화도에서 회군한다. 그 후 권문세족의 권력을 빼앗고 신진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과전법을 마련한다. 과전법은 고려시대의 전시과와 유사하며 과에 따라 토지를 나누어 주는 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선을 건국하게 되고 온건파는 낙향하여 향촌으로 내려가고 향촌자취를 추구하고, 급진파들은 중앙에서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중앙 집권을 추구한다. 이후 세조 때 훈구파가 자리를 잡게 된다. 훈구파는 공로 훈(勳), 옛 구(舊) 오랫동안 공을 세운 신하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보통 조선 전기 지배 세력을 말한다. 조선 건국에 참여한 급진 개혁파 신진 사대부와 왕자의 난, 계유정난 등에 참여한 인물들이 공신이 되어 조선 전기의 주요 지배 세력이 되었다. 이렇게 15세기에는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웠던 훈구 세력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부정과 비리가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온건파들은 유향소로 여론을 장악하고, 서원에서 인재를 양성하며 향약을 통해 농민들을 통제하며 향촌에서 세력을 키운다. 그리고 선비들의 무리 즉, 사림들은 사림파를 형성하였고 이에 성종은 사림을 등용하여 훈구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사림은 주로 3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언관직에 등용되었고, 훈구와 사림은 한동안 세력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림이 훈구 세력의 부정과 비리를 비판하면서 점차 두 세력의 대립이 심해졌다.2. 사화의 발생사화는 사림이 화를 입었다는 뜻으로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 간의 정치권력 다툼 속에서 사림이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 갑자사화, 중종 때 기묘사화, 명종 때 을사사화가 일어났다.무오사화- 연산군- 훈구 세력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문제 삼아 사림 공격- 김일손 등 사림의 처형·유배, 김종직 부관참시. 영남 사림 몰락갑자사화- 연산군- 생모 윤씨의 폐비 사건 폭로- 폐비 사건에 연루된 한명회 등 부관참시, 성종 때 양성된 사림 대부분 몰락기묘사화- 중종- 조광조의 개혁 정치 : 현량과 실시, 위훈 삭제, 소격서 폐지 등- 위훈 삭제로 공신들 반발- 조광조 사사 → 조광조 일파 몰락을사사화- 명조- 왕의 외척인 윤원형, 윤임과 연결된 사림 세력 간의 대립- 윤임과 연결된 영남·호남 출신의 신진 사림 피해가. 무오사화무오사화는 연산군 때 일어난 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원인으로 일어났다. 조의제문은 항우에 의해 죽음을 당한 중군 황제 의제를 기린다는 글로 세조가 단종을 죽여 권력을 확보하고 왕위에 오른 모습을 비판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제자였던 김일손이 조의제문을 사초에 담으려 했고 이에 훈구세력은 선대왕을 모함하는 것이라 주장하여 사림들을 대거 축출하였던 사건을 무오사화라 한다.나. 갑자사화갑자사화 또한 연산군 때 일어났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윤씨의 죽음이 원인이 된다. 연산군은 윤씨의 원한을 푸는 동시에 공신들을 탄압할 결심을 하게 되고, 훈구대신과 나머지 사림들을 몰아낸 사건을 갑자사화라 한다.다. 기묘사화기묘사화는 중종 때 일어났다. 기묘사화에는 중종반정으로 등용된 조광조의 개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조광조는 조선의 3대 개혁가 중 한명으로 위훈 삭제, 현량과 설치, 소격서 폐지를 주장한다. 위훈 삭제란 거짓 공로를 삭제한다는 뜻으로 중종반정 때 부당하게 공신이 된 훈구세력들의 공훈을 삭제하여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현량과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고 어진 사람을 추천하여 관리로 선발하는 제도로 이를 통해 향촌에 있는 유능한 선비를 등용하기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소격서는 도교의 제사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유학자의 입장에서 옳지 않다 말하며 폐지를 주장한다. 이러한 정책들로 사림의 사회·정치적 위치를 높여주었으나 훈구세력들의 반감을 사며 조광조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한다.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 이라는 글자를 새긴다. ‘조씨가 왕이 된다’는 말로 이로 인해 중종이 조광조를 탄압하게 된다.
고려무신정권시기과 목제출 일자담당 교수학 과학 번이 름-목 차-1. 고려의 흐름2. 고려 무신 정권 이전 배경3. 고려 무신 정권 시대4. 느낀 점1. 고려의 흐름고려는 선종과 풍수지리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지닌 호족(태조왕건)과 6두품에 의해 고구려계승의식을 바탕으로 918년 건설되었다. 이들 중 중앙으로 진출한 세력은 문벌귀족, 지방에서 힘을 길러온 세력을 향리라고 한다. 그 후 문벌귀족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모순이 발생하였고 무신들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그 후 고려 후기 몽골의 침입과 간섭 속에서 원의 세력을 힘입어 권문세족이 성장하게 된다. 이 때 향리 출신 중 부패한 권문세족의 흐름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신진사대부로 나타나며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신흥무신세력과 1392년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2. 고려 무신 정권 이전 배경호족이 이끌고 있었던 시기를 고려 초기, 무신정권이 이끌고 있었던 시기를 중기, 무신정변 이후를 고려 후기로 표현한다.고려를 초기에 이끌고 있던 세력인 호족은 선종과 고구려 계승 의식을 기본 사상으로 지니고 있었다. 선종은 ‘누구나 참선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 즉, ‘누구나 다 왕이 될 수 있다.’ 라는 사상으로 귀결되는 신라 하대의 폐쇄적인 골품제를 깨는 이론이었고 이는 소외받던 호족의 진보의식을 뒷받침해주는 사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족이 문벌귀족이 되고 기득권 세력이 된 이후로는 선종에서 교종으로 관심이 쏠린다. 교종은 특정한 불교경전에서의 가르침을 불교의 진수로 간주하여 이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문벌귀족은 교종을 통해 평민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귀족들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우월 의식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고구려 계승의식으로는 필연적으로 중국과 대립하여야 했고, 이러한 싸움은 기득세력의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중국과 상대적으로 적대의식을 지니지 않는 신라 계승을 표방하게 되었다.이러한 문벌귀족이 지니고 있던 특권으로는 음서제도, 공음전, 폐쇄통혼 등이 있다. 음서제도는 정치적 특권으로 5품 이상 관리의 자제들은 과거를 보지 않고 조상의 음덕을 통해 관직에 나설 수 있는 제도이다. 두 번째, 공음전은 경제적 특권으로 5품 이상 고위 관리에게 지급한 토지로서 자손에게 상속이 가능한 영업전이다. 세 번째로 권력을 집중하고 유지하기 위한 폐쇄적 통혼권이 있었으며 더 나아가 근친혼도 왕실에서 이루어졌다. 광종이 왕권강화정책의 일환으로 과거제를 시행했으나 음서제도가 더 확고했으며, 관직에 나가 일한 대가로 등급에 따라 토지와 뗄감을 얻을 수 있는 전시과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 이후 정치적 혼란으로 토지제도 역시 무질서해지면서 권세가들에 의한 대토지소유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능력에 따라 그에 알맞은 대가를 제공하는 관료제적인 모습도 있었으나 문벌귀족의 특권으로 인해 공정한 제도가 약화되고 분열하는 사회적 모순을 이해 할 수 있다.이렇게 사회적 모순이 증가한 상황 속에서 이자겸의 난(1126),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28)이 일어난다.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의 장인이며 인종의 외할아버지로 근친혼을 통해 권력을 집중해 온 인물이다. 이자겸은 스스로 왕이 되려 난을 일으켰으나 부하였던 척준경의 배신으로 살해당한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불교, 풍수지리, 고구려를 계승하는 자주적인 세력으로 금을 정벌하자고 주장하는 서경파와 유학, 신라를 계승하는 사대적인 세력으로 금을 사대하자는 개경파 사이의 대립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서경파가 패하고 개경파가 승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부식의 아들인 문관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불태우고, 무관 이소응이 문신 한뢰에게 뺨을 맞는 보현원 사건을 통해 문벌귀족에게 차별받으며 지낼 수 없다는 무신들의 무신정변이 1170년에 일어난다.3. 고려 무신 정권 시대정치군사사회 동요이의방↓정중부중방-김보당(개경), 조위총(서경)-귀족-망이·망소이의 난(공주 명학소)경대승↓이의민도방↓X김사미·효심의 난최충헌교정도감DD도방KK만적의 난(개경):신분 해방-천민최우-정방(인사권)-서방(문신↑)야별초↓삼별초무신정변 이후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으로 최고 권력자가 바뀌는 혼란기가 이어진다. 그 뒤 최충헌이 집권한 후에 최씨 무신 정권이 4대 60여 년간 계속 된다.이러한 무신들은 정치적으로는 중방이라는 회의기구를 지녔고 이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 이 후 최충헌 시기부터 직접 정치를 장악할 수 있는 최고 권력기구인 교정도감을 만든다. 도감은 임시 회의기구를 뜻하며 정치를 교정하고 바로잡을 권력기구이다. 이 후 최우는 인사권까지 장악하기 위한 정방, 문신들을 등용하는 서방을 세운다.군사적으로는 도방을 경대승 때 만든다. 도방이란 무신 집권기 최고 권력자의 경호를 위해 설치한 사병 집단으로 이의민 때 사용되지 않다 최충헌 때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최우는 야별초라는 기구를 만들어 활동하였는데 야별초 또한 사병 집단으로 처음에는 도둑을 단속하는 일을 했으나 뒤에 기능과 인원이 늘어나면서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었고, 이후 신의군을 합하여 삼별초를 이루었다.사회 동요로는 무신이 문벌귀족들의 권력을 앗아감으로 인해 김보당, 조위총 등의 귀족이 저항하게 된다. 김보당의 난(1173)은 개경에서 김보당이 무신 정권의 집권자인 정중부와 이의방을 토벌하고 전 왕인 의종을 다시 세우려고 일으킨 난이다. 난이 진압된 이후 많은 문신이 죽임을 당했고 의종 역시 살해당했다. 조위총의 난(1174)은 김보당의 난 이후 서경 유수 조위총이 정중부와 이의방을 타도하기 위해 서경에서 일으킨 난으로 2년여 동안 항거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망이·망소이의 난(1176)이 일어난다. 망이·망소이 형제가 과도한 수취에 반발하여 국가에서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공업 생산 지역인 공주 명학소에서 일으킨 난으로 이들의 기세가 커지자 고려 정부는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키고 현령과 현위를 파견하는 등 회유책을 썼으나 봉기가 계속되자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였다. 그 후 신라 부흥을 내걸고 봉기한 김사미·효심의 난(1193)이 경대승-이의민 시기에 일어나고, 최충헌 시기에 신분해방운동인 만적의 난(1198)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하층민의 봉기로 사노비 만적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를 주장한다.
프로젝트 1:‘A2 SOLAR’의 아름다운 태양광 발전[사진1]프로젝트1 ‘A2 SOLAR’의 사진입니다.1)프로젝트 내용: 환경문제와 자원고갈로 신재생에너지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중 사람들이 태양광발전을 도입하지 않는 이유 중 가격, 효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외관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아름다운 태양광을 도입한다.2)프로젝트 목적: 기존에는 태양광발전을 위해서는 지붕 혹은 베란다에 구조물과 함께 태양광 패널을 위에 그냥 얹어놓는 식으로 설치했다. 그렇기에 건물과 따로 노는 느낌을 주고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고정형을 많이 쓰기 때문에 각도 조절을 할 수 없어 낮에도 한정적인 효율을 낼 수 밖에 없고, 하나의 패널을 설치해도 수십키로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기에 중력과 패널의 안정성, 태양을 잘 받을 수 있는 위치 등을 생각한다면 이는 어쩔 수 없어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를 A2솔라는 태양패널을 건축물의 외장재로 사용해 건물 전체에서 발전이 가능하게 하였고, 디자인 가치도 높여 태양광발전의 보편화를 목적으로 한다.3)적용 사례:①독일 프라이부르크 시청건물②포르쉐 건물③아우디 승용차, 셔틀버스 등 차의 지붕④요트의 지붕4)기대 효과: 건물의 적용을 볼 때 미관에 좋으며, 면적대비 많은 패널을 이용해 최대한의 전기를 생산하고, 동시에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 그리고 차의 지붕 사용이 보편화 된다면 전기자동차의 충전소 공급문제는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태양만 떠 있다면, 자동차가 있는 곳이 충전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전기차의 문제점, 완전 충전 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문제도 넘어선다. 자동차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면 달리면서도 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동거리가 더 길어져, 충전소 확충 등 전기자동차 상용화의 걸림돌이 완화되는 것이다.5)본인의 생각: 태양광발전이라 하면 미관부터 부정적으로 보았는데 건물 전체가 패널 발전으로 건설하였음에도 기존의 투박함이 느껴지지 않아 놀라웠다. ‘효율성’과 ‘심미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올바른 그린 IT기술의 예라 생각되었다.프로젝트 2:‘원미터‘ 의 스마트미터 프로젝트[사진2]프로젝트2 ‘스마트미터’의 사진입니다.1) 프로젝트 내용: 저탄소 녹색 성장의 효과적 실행 방안 중 하나는 효율적인 에너지의 이용이다. 스마트미터는 양방향 통신과 시간대 별 계량 기능이 탑재된 전자식 전력량계를 말한다.2) 프로젝트 목적: 소비자의 전력 수요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무작정 많이 생산하지 않아도 된다면 에너지 효율도 높아지고, 화석연료로 인한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공급자 위주의 기존 전력망이 아닌, 수요자와 공급자가 상호작용을 하는 새로운 전력망이 필요하다. 스마트미터는 양방향 통신과 시간대 별 계량 기능이 탑재된 전자식 전력량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스마트미터는 전력 품질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양방향 계량, 원격 부하 제어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는 실시간으로 사용량을 확인하고 이용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