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폭력과 현 사회에 대한 고찰 (한국 사회를 중심으로)[폭력이란 무엇인가]‘폭력’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현상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체적 폭력이나 범죄 행위, 또는 테러나 폭동과 같은 현상들을 떠올린다. 공리를 위해서라도 사회가 정해 놓은 약속을 어기는 ‘이탈자’ 들을 즉각 처벌하고 배척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현 사회는 과거 그 어떤 사회보다 폭력을 예방하고 감소시키기 용이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성이 보장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은 발전하나, 인간의 의식수준은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진짜 ‘폭력’ 은 무엇일까?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 를 통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진짜 폭력은 현대인이 흔히 생각하는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폭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폭력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첫 째는 ‘주관적 폭력’ 으로, 앞서 말한 범죄행위와 같은 가장 가시적이고 주체가 뚜렷한 폭력을 칭한다. 나머지 하나는 ‘구조적 폭력’ 이다. 구조적 폭력은 우리의 경제 체계와 정치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파국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핵심은 눈에 드러나는 주관적 폭력보다 비가시적이고 실체가 불분명한 구조적 폭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구조적 폭력은 그 실체만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일상 깊숙이 침투하여 현 사회를 침식하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각 시대마다 당대에 작용하던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반영하는 ‘프레임’ 이 존재하는데, 똑같은 사회문제도 프레임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 이 결정된다. 한국 사회의 경우, 학벌 프레임과 외모지상주의 프레임, 그리고 자본주의 프레임이 사회 전체의 흐름을 주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프레임들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다들 이미 이 프레임 속에 갇혀버린 지 오래다. 돈이 많고, 학벌이 좋으며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우상화 되는 것이 현실이다.지젝은 특히 자본주의가 야기한 구조적 폭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순수하게 객관적이고, 체계적이며, 익명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구조적 폭력은 주관적 폭력에 비해 훨씬 냉혹하고 비가시적이며 명확한 주체가 없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병적 프레임에 갇혀 허덕이는 상황이 저자가 지적한 상황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저 범죄의 책임 소재만 가려내는 데에 급급하고 구조적 폭력의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둔감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신체적 폭력 만으로는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세계화의 결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에 대한 책임이 대부분 부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또한 지젝은 텍스트에서 ‘자유주의적 공산주의 마을’ 이야기를 제시한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안전’ 을 중시하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마을이 등장하는데 이 마을 권력의 핵심 집단인 원로들이 젊은이들이 퇴폐적인 도시로 가는 위험을 막기 위해 마을 주변에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내용이다. 괴물이라는 ‘타자’ 를 기존 체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이 타자는 쉽게 두려움을 조성한다. 결과적으로 공동체가 맞서 싸우는 외부적 위협, 즉 괴물은 바로 공동체 속에 내재된 본질인 것이다. 한국 사회 역시 이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괴물’ 이라고 칭하지만 않을 뿐, 사회 안정이라는 명분 하에 기존 체제에 반(反)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딱지를 붙인다. 정치적으로 보수적 가치관에 반기를 들면 ‘빨갱이’ 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사회악 적인 존재로 치부해 버린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 살면서, 자유로운 정치적 발언 조차도 남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가 한국 사회이다.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보자면, 사람들은 정보화 시대에 돌입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디지털 민주주의’ 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중앙집권적인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 직접 소통하고 조직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 도래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었다.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타자성을 부정하고 더욱 더 통제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의 경우, 이미 정부에 의해 교묘하게 통제된 각종 뉴스나 인기 키워드, 게시물이 대중심리를 조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누구나 아는 한 메신저 어플이 정부가 국민을 감시하는 데에 사용한다는 루머가 돌면서 많은 사용자들이 이를 지우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 사실이 참이든 거짓이든 간에 문제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이를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이고 안일하게 넘어간다면, 이는 구조적 폭력이 더욱 활개를 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또한 시장경제를 추구함에 있어서도 이를 반추해 볼 필요성이 있다. 경제적 발전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곧 자유로운 시장 경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엄연히 다른 제도이다. 민주주의란 기본적 인권을 기본 원리로 하여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것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를 말하며, 자본주의란 자본을 이용하여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해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경제 체제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혼동한 결과, 한국 사회는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열 개도 안 되는 재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 경제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이 역시 구조적 폭력으로 덮인 한국 사회의 안타까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지젝은 이러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악이 자본주의 동학 같은 것이 아니라, 이윤추구에 대한 끈은 놓지 않으면서도 우리들을 자본주의 동학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시도라고 한다면 어떤가?” 라고 말이다. 이는 곧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그가 말한 바와 같이, 안타깝게도 당장 구조적 폭력을 근절 시키겠다는 다짐은 무모해 보인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폭력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발생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구조적 폭력 속에 갇혀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폭력을 멈추자는 필사적인 인도주의적 외침에서 벗어나 주관적, 구조적 방식의 폭력이 복잡하게 벌이는 상호 작용에 대한 분석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