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의 설화에 대해서 조사해보았습니다. 우선 개설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주 지역 설화를 살펴보면 신화는 거의 없고 전설과 민담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도 백제사 및 계룡산과 관련이 깊습니다. 또한 공주가 한양과 가까운 관계로 정치사와 관련된 설화가 적지 않은데, 예를 들면 이괄의 난으로 인한 인조의 공주 파천 등이 그것입니다. 1992년에 구중회가 『공주민속』에서 설화를 정리하였는데, 이에 의하면 전설이 46편이고, 민담이 40편이나 된다. 한 자료로 공주 지역의 설화를 설명하는 이유는 이 자료가 그간 발간된 문헌 설화를 총 정리했기 때문입니다.그럼 공주에 전승되고 있는 전설과 민담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전설의 경우는 『삼국유사』에 실린 1종, 1965년에 충청남도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충청남도지』에서 7종, 1973년에 임헌도가 지은 『한국전설대관(韓國傳說大觀)』에 실린 59종 등이 그 대상입니다. 이후에 많은 공주의 전설을 소개하고 있으나 거의 이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뒤 1981년에 최문휘가 집필한 『공주의 산하』에서 30여 종을 보강했으나 현장성이 떨어져 평가하기가 어려우며 이후 몇 사람이 더 참여했으나 별로 채록하지 못했습니다.그 자료로는 1) 수원사(水源寺)의 미륵선화 미시랑(未尸郞), 2) 웅천(熊川), 3) 계룡산, 4) 용지(龍池), 5) 장군바위, 6) 동혈사(銅穴寺)의 쌀 나오는 구멍, 7) 우성면 내산리 노루목, 8) 남매탑(오뉘탑), 9) 연미산 지네, 10) 이도(李棹) 묘지의 유래, 11) 정안면 보물리 정자나무, 12) 신라 효자 상덕(向德), 13) 이복(李福), 14) 장자못(우성면 옥성리), 15) 쇠뿔둠벙(신평리 대룡리), 16) 인불구(人不救)의 내력, 17) 말티고개, 18) 기녀 능화(綾花)의 충성, 19) 영규(靈圭) 대사, 20) 조왕동(助王洞)의 유래, 21) 고마니 고개, 22) 우금(牛禁)고개, 23) 유구(維鳩)의 명칭, 24) 엄대암(嚴大巖), 25) 박문수의) 쥐좇도 모른다, 5) 시집살이 이야기, 6) 가장 짧은 얘기, 7) 가장 긴 이야기, 8) 제석님네 맏딸 얘기, 9) 호적적(籍)자 연서, 10) 용한 점쟁이, 11) 아우 흉내 내려다 망신당한 형, 12) 하늘이 내려준 홍시, 13) 두 사돈의 허풍담, 14) 집만 바꿔 앉은 이사, 15) 신단지 둘러 엎은 며느리, 16) 사냥꾼 형제, 17) 소담(笑談) 두 마디, 18) 백로가 고친 병, 19) 도라지꽃, 20) 모기가 된 형수, 21) 이상한 남비, 22) 제일 훌륭한 사위, 23) 지성이면 감천, 24) 아버지 유물, 25) 나뭇잎, 26) 나무꾼과 소년, 27) 추잎 꽃나물, 28) 팔난시(八難詩), 29) 샛서방질하는 구렁이, 30) 매미, 31) 뻐국대가리, 32) 새끼 새발, 33) 꼬마 신랑 구해 주고 부자된 이야기, 34) 진짜 친구 이야기, 35) 수수경단, 36) 도깨비가 사라진 이유, 37) 심술부린 호랑이 얘기, 38) 도깨비 이야기, 39) 귀신이 예언한 윤병사의 이야기, 40) 기회가 왔을 때 잡아라 등이 있습니다.그럼 이제 조사를 통해 알게된 충청남도 공주의 여러 설화 중 개인적으로 흥미있었던 몇가지 설화를 꼽아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첫 번째로, 충청남도 공주의 설화인 ‘고마나루(곰나루)’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주’의 지명에 대한 어원은 ‘고마나루’에서 온 말인, 즉 ‘고마나루’는 ‘고마’+‘나루’의 결합으로 ‘고마’는 ‘곰’, ‘나루’는 ‘진(津)’ 즉 웅진(熊津)으로 풀이한 것입니다. 그래서 ‘곰나루’라는 지명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으나 최근 연구에서는 ‘고마’를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고마나루는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곰나루(공주시 웅진동에서 맞은편 우성면 도천리를 연결하던 나루)의 지명전설이자 인간과 동물의 결연담 성격의 설화입니다.다음으로는 고마나루의 줄거리 및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득한 옛날 지금의 곰나루 근처 연미산(燕尾山)에 큰 굴이 있었습니다. 이 굴에는 커다란 암곰이 한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고아시아족과 그 문화의 연장선에서 한민족의 기층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나아가 중국의 홍산문화(紅山文化)와 관련된 곰 관련 신화와 문화요소들의 문제를 푸는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 또한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곰제의와 관련한 곰신화가 많이 채록되고 있으며 이 전설은 그 변이형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특히 인수교혼 모티프가 확대 해석되어 단군신화와의 관련성이 논의되었습니다. 전설의 신화적 속성은 수천 년에 걸친 고아시아족과 문화의 이동을 전제하고 있어 그 과정을 밝히는 연구로서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홍산문화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의 심화가 남아 있으며 아울러 아직도 일본에 이와 유사한 지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고대 한일 관계에서 우리 문화, 특히 백제 문화가 끼친 영향을 증명해 줍니다.두 번째로는, 충청남도 공주의 또다른 설화인 계룡산신 설화를 보도록 하겠습니다.계룡산의 산신은 ‘여신’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선이 창건되기 이전에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이라는 ‘천기(天機)’를 누설하였다는 이유로 살해된 주모(酒母) 모녀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죽어서 계룡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하고 있으며 이 설화는 조선건국과 신원사와 관련된 계룡산 설화입니다. 이제 이 설화를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전국 명산대천에 기도하러 다닐 때다. 마침 계룡산에 당도하여 머물렀는데 어느 날 지게에 나무 세 개를 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현재의 계룡시 두마면 팥죽거리에 꿈 풀이를 잘 하는 주모(酒母)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모를 만나러 갔으나 출타 중이었습니다. 결국 딸에게 먼저 꿈을 이야기했고 나중에 돌아온 주모에게도 그대로 전했습니다. 주모가 절을 하면서 왕이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지게에 나무 세 개를 진 것은 ‘王’이라고 풀이한 것이었습니다. 꿈의 해몽을 듣고 이성계는 천기를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이들 모녀를 죽이고 주모는 죽어서 계룡산신이 되었다는 줄거리입니다 그 후 여러 해에 또 생각하되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반드시 풍월도를 먼저 일으켜야 된다 하여 다시 영(令)을 내리어 양가(良家)의 남자 중에 덕행있는 자를 뽑아 화랑이라 고쳐불렀습니다. 처음으로 설원랑을 받들어 국선(國仙)을 삼으니 이것이 화랑국선의 시초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념비를 명주(溟州)에 세우고 이로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고쳐 선에 옮기게 하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순(順)히하니 오상·육례와 삼사·육정이 널리 왕의 시대(時代)에 행해졌습니다. (국사에 진지왕 대건(大建) 8년 경신에 처음으로 을 받들었다함은 아마 사전의 오기일 것입니다). 진지왕 때에 와서 흥륜사에 중 진자【혹은 정자라 함】란 이가 있어 항상 당주 미륵상 앞에 나아가 발원서언하되 우리 대성(大聖)이여 화랑으로 화신하여 이 세상에 나타나, 내가 항상 얼굴을 가까이하고 시종하게 하소서. 그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이 날로 더욱 두터워지니, 어느날 밤 꿈에 중 하나가 말하길. "네가 웅천(熊川) 수원사(水源寺)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진자는 꿈에서 깨자 놀라며 기뻐하여 그 절을 찾아 열흘길을 가는데 발자국마다 절을 하며 그 절에 이르렀습니다. 문밖에 탐스럽고 섬세하게 생긴 한 소년이 있다가, 예쁜 눈매와 입맵시로 맞이하여 작은 문으로 데리고 들어 가 객실로 안내하니, 진자는 올라가면서도 읍(揖)하면서 가로되 "그대가 일찍이 나를 모르거던 어찌 나를 접대함이 이렇게 은근(殷勤)하냐. "하였습니다. 소년이 대답하되 "나 역시 서울사람이라 대사가 멀리서 옴을 보고 위로했을 뿐입니다. " 하고, 조금 있다가 문밖으로 나갔는데 그 간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진자는 그저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매우 이상하게는 여기지 않고 다만 절의 중에게 전날의 꿈과 온 뜻을 말하고, "잠시 저 아랫자리에서 미륵선화를 기다리고자 하는데 어떻겠소? "하였습니다. 절의 중이 그 정경이 허무함에 속으면서도 그 은근함을 보고 말하되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천산이 있는며 미시랑의 자비스러운 혜택을 많이 입었고 맑은 덕화를 이어 스스로 뉘우치고 정성을 다하여 도를 닦으니, 만년에는 그 역시 어디 가서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해설하는 자가 말하기를 "미(未)는 그 음(音)이 미(彌)와 서로 가깝고, 시(尸)는 그 자형(字形)이 역자(力字)와 비슷하므로 가탁(假託)하여 수수께기를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진자의 정성에 유독 감동된 것만이 아니라 이 땅에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자주 나타났던 것이다. " 고 했습니다.네 번째로는, 쌀 나오는 구멍 설화입니다.정의부터 살펴보면 이 이야기는 절 근처의 바위나 동굴에 있던 쌀 나오는 구멍이 욕심 많은 중 때문에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설화입니다.이는 지명 유래담의 하나로 ‘쌀바위설화’·‘미혈설화(米穴說話)’라고도 하며 문헌설화는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해지고 있어, 구전으로는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대표적인 설화의 하나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줄거리 및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옛날 어떤 산속에 절이 있었다. 절 근처에 있는 바위의 구멍에서는 끼니때마다 쌀이 흘러나왔는데, 그 양은 언제나 그 절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 수만큼만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은 양식 걱정 없이 수도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때 그 절에 있던 한 스님이 그 구멍 속에는 많은 양의 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욕심을 내어 구멍을 쑤셔 대었더니 그 뒤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이 쌀 나오는 구멍이 위치한 장소는 각 편에 따라 동굴 속이거나 절의 부엌 한쪽으로 이야기되며, 구멍을 망치게 된 이유로는 스님의 부재시 상좌승이 밥을 배불리 먹고 싶었거나 떡을 해 먹고 싶어서였다고도 이야기됩니다. 쌀이 나오는 양이 한 사람 분이므로 수도하는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이면 범이 와서 물어간다는 각 편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멍이 망쳐지면 물이 나오다가 피가 나오기도 하고, 까투리가 나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쌀이 구멍에서 저절로 나온다는 것은 수도승에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