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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미술사, 후기 인상주의 반 고흐 기고문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홍길동(1) 미술계의 반항아, 인상주의인상주의는 빛의 마술사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담기 위해 노력했지만 섞을수록 투명해지는 빛과 달리 물감을 섞을수록 탁해진다는 커다란 난점이 존재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신인상 주의는 물감을 섞는 대신 미세한 점들을 찍어 화면을 채워갔다. 팔레트나 캔버스에서 섞지 않고 눈 위에 색이 혼합 되도록 연구한 것이다. 신인상주의는 색채론과 빛 현상에 대한 이론을 통해 인상주의 회화를 과학적으로 체계화 하였다. 허나 입체감과 정신성의 결여에 한계를 느낀 인상주의 이후의 세대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를 후기 인상주의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의 표현은 기존의 미술이 가진 장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 하게 된 이들은 사물의 내면적 정신성과 본질을 근원적으로 파악하려 했다.(2) 빈센트 반 고흐후기 인상주의 화가들 중 예술가의 감정과 강렬한 정열에 표현을 중시한 화가가 있다. 바로 해바라기를 닮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흐가 화가로서 활동하기 전 고향 네덜란드에서 여러 차례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 있던 당시 프랑스 파리의 구필 화랑에서 근무하던 동생 테오의 적극적인 권유로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혼자만의 습작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고흐는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고, 유명 화가이자 사촌 매부기도 한 ‘모베’에게서 그림을 배우는 등 화가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고집하던 고흐는 인간관계에도 서툴러 주변 사람들과의 마찰이 잦았고 가족들과의 관계 역시 최악이었다. 이윽고 집을 나와 근처 성당의 관리인의 집에 화실을 두고 지내게 되지만 성당 신부님이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으로 성당에서 나오게 된다. 미술학교에 등록하였지만 수업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치레를 하다 188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오게 된다.당시 동생 테오는 파리에서 구필 화랑 소속의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어 고흐는 격변하는 파리의 미술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 19세기 파리는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미술계의 반항아 ‘인상주의’가 등장하였다. 고흐는 파리에서 낡은 미술에 저항하고 늘 새로움을 갈구하는 화가들 무리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다. 물론 사교적이지 못한 성품으로 인해 마찰도 적지 않았으나 베르나르, 로트레크 같은 화가와 친분을 쌓았고 고갱, 시냐크 등과 교류하게 되었다.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의 영향으로 그의 그림 역시 밝고 화사해졌다. 작은 전시회를 개최하며 의욕적인 날들을 보냈지만 파리는 미술의 새로운 방식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지나치게 경쟁적인 피로가 가득한 곳이었다.그림 1 노란 집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4772&cid=46720&categoryId=46846(3) 프랑스 남부, 아를당시 고흐는 일본의 민화 ‘우키요에’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선명하고 밝은 느낌의 표현들을 담은 ‘우키요에’의 작품에 매료된 고흐는 밝은 색을 보려면 따뜻한 지방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 16시간을 달려 어두운 파리에서 벗어나 프랑스 남부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 ‘아를’에 도착한다. 1888년 2월에 도착한 아를은 흰 눈이 쌓여있었지만 봄의 태동을 함께 알리고 있었다. 눈과 돋아나는 새싹 사이 반짝이는 빛. 고흐는 아를의 매력에 감동하게 되며 아를에서의 정착을 결심한다. 한 집을 얻어 노란색으로 칠한 뒤 ‘노란 집’이라 이름을 붙여 아를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노란 집으로 이사한 고흐는 집에 대한 설명과 스케치를 동생 테오에게 보낸다. ‘굉장한 집이야. 일과에 빛나는 노란 집과 파란 하늘의 신선함의 조화가 놀라워.’ 고흐가 그린 노란 집은 짙고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노란 집의 거리는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집과 주변 거리를 표현하였지만 그림 속 시간을 알 수 없다. 집을 얻었다는 들뜬 마음에 집과 거리를 그림으로 남기며 화가 공동체를 꿈꾸었다. 여러 화가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작품 토론과 작품 활동을 하며 컬렉터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적 알고 지내던 화가들을 초청하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고흐의 노란 집은 붕괴되었다. 고흐가 사랑했던 노란 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으로 남아 현재까지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그림 2 랑글루아 다리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4729&cid=46720&categoryId=46846(4)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그림 3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출처:http://www.dapsa.kr/blog/?p=1099아를의 도개교 ‘랑글루아 다리’와 운하는 고흐에게 고향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했다. ‘투명한 공기와 찬란한 색채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이 곳은 마치 일본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그가 상상하던 일본과 같았던 1888년 3월. 운하 주변을 자주 산책하며 고향을 더듬 듯 그 풍경을 추억과 향수의 붓으로 그려냈다. 이 시기 고흐는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었고 ‘랑글루아 다리’ 연작뜰 역시 일본 판화 방식으로 그려졌다. 야외에 직접 나가 눈부시게 밝은 색조로 그림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인상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고흐의 작품속 화풍은 짧은 선을 겹치는 거친 붓질이 잦아들었고 짙은 윤관선 안에 색이 평평하게 고루 발려 있어 화사한 분위기의 일본 판화 ‘우키요에’를 보는 듯 하다. 화면 가득한 노랑과 파랑의 보색의 대비를 초록을 통해 두 색의 긴장을 덜어준다. 빨래하는 여인들이 만든 소용돌이가 강물에 긴 파장을 만들며 ‘에메랄드 빛과 파랑의 얼룩’을 만든다. 이는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중 찾아볼 수 있다. 짙은 파랑으로 물살이 가로선을 긋는 동안 고동색과 초록색의 잡초들은 세로선으로 튀어올라 화면을 다채롭게 한다. 고흐가 그린 랑글루아 다리 그림은 총 8점으로 그 중 4점이 유화작품이다. 랑글루아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철거 되었다가 현재 복원 후 보존 중이다.
    예체능| 2021.09.15| 3페이지| 2,500원| 조회(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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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미술사, 야수파 앙리 마티스 기고문
    파블로 피카소의 영원한 라이벌, 앙리 마티스홍길동그림 1 모자를 쓴 여인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56764&cid=46696&categoryId=46696(1) 모자를 쓴 여인블라맹크를 통해 아프리카 조각상을 접한 앙리 마티스는 창작 인생에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1905년 마티스, 드랭, 블라맹크는 파리의 가을 살롱전에서 합동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들의 작품에 논재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다. 이들은 색채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았고 인상주의의 섬세한 색채 구사법을 거부하며 색채의 표현을 추구하였다. 평론가 루이 보셀은 그들의 거침없는 색채 구사를 두고 ‘야수’라 비평한 것이 오늘 날 야수주의로 전해지게 된다. 그 중 논란의 중심은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으로 언뜻 보아도 독특한 여인의 얼굴과 원색적인 표현은 실로 야수다운 작품이었다. 피카소 역시 파리의 가을 살롱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려 하였지만 모자를 쓴 여인을 보고 ‘나의 혁명이 더 약한 것 같다’라고 느끼며 돌아간다. 문제의 작품 ‘모자를 쓴 여인’은 마이클 스타인에게 팔리며 마티스는 파산 상태를 벗어나고 그림 가격이 치솟게 되며 ‘아방가르드 선도자’로 등극하게 된다.그림 2 아비뇽의 여인들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75876&cid=42645&categoryId=42645(2) 아비뇽의 여인들앙리 마티스는 기세를 몰아 또 한번의 파격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푸른 누드 : 비스크라의 추억’은 특이한 구도를 갖고 있는데 정면에서 바라본 상체와 평면에서 바라본 하체를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된다. 얼굴 또한 아프리카 조각상처럼 원시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당시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상에 관심이 많던 시기였다. 피카소는 원시 미술을 원용한 푸른 누드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상을 피카소에게 소개시켜주는데 피카소는 말 없이 조각상을 지켜보다 마티스의 연구 과제를 파악하게 된다. 푸른 누드에서 보여주었던 다시점과 아프리카의 원시성이 마티스의 연구과제였다. 스타인 남매 하우스에서 다시 만난 피카소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내보이는데 입체주의의 탄생이라 평가받는 역작이다. 푸른 누드 역시 다시점과 원시성을 표현한 작품이었으나 피카소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피카소는 르네상스 이후의 모든 서양 미술에 대항하 듯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신화를 깨뜨렸으며 다시점 역시 극단적으로 표현하였다. 아방가르드 선도자 타이틀이 마티스에서 피카소로 넘어가며 이 둘의 라이벌 구도가 견고하게 형성되었다.그림 3 붉은 화실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4791&cid=46720&categoryId=46872(3) 아틀리에 4부작그림 4 분홍 화실출처:https://blog.naver.com/wlgh2689/221168861402그림 5 화가의 가족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56815&cid=46696&categoryId=46696그림 6 가지가 있는 실내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56814&cid=46696&categoryId=46696야수파를 연구하던 앙드레 드랭, 조르주 브라크 등이 입체파로 넘어가고 마티스의 작품을 구매하던 화상들 역시 피카소의 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마티스와의 교류가 점점 단절되었다. 당시 마티스는 슬럼프와 우울증,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며 창조성이 고갈되어 그림을 못 그릴 지경이었다. 각박한 프랑스를 떠나 여행으로 간 스페인은 강렬한 색채와 화려한 패턴을 통해 마티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게 된다. 피카소가 형태에 집중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였다면 마티스는 색채에 집중하여 새로운 집중 전략을 펼쳤다. 이 때 탄생한 아틀리에 4부작은 분홍화실, 화가의 가족, 가지가 있는 실내, 붉은 화실로 이루어졌다. 이 작품들 모두 색채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화려한 패턴들로 그림이 매우 장식적이다. 마티스는 자신의 그림이 편안한 느낌을 주길 바라며 색채를 통해 새로운 감정을 느끼길 원했다. 형태의 가능성을 발견한 피카소와 색채의 가능성을 발견한 마티스는 미술계의 양대산맥으로 20세기 미술 거장으로 인정받는다.그림 7 오렌지 바구니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56828&cid=46696&categoryId=46696(4) 오렌지 바구니마티스는 젊은 날을 회상해 보며 치열했던 피카소와의 시절이 떠올라 추억에 젖게 된다. 힘들었던 그 시절 그린 그림을 보고 싶어 수소문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림은 의외의 인물이 갖고 있었다. 그는 바로 파블로 피카소로 마티스의 ‘오렌지 바구니’를 소장하고 있었다. 마티스는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놀라게 되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피카소의 아틀리에 명당에 전시를 하는 가 하면 개인전을 열었을 대도 자신의 작품과 같이 전시하였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티스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며 평생을 라이벌로 지낼 것 같던 둘은 노년에는 둘도 없는 절친으로 지낸다. 이후 서로의 작품을 진지하게 비평하고 서로의 예술을 키워주는 등의 행보를 보인다. 1954년 앙리 마티스는 죽음을 앞두고 ‘내 그림을 피카소 그림과 함께 전시하지 말게. 불꽃같이 강렬한 그의 그림들 옆에서 내 그림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라며 피카소를 향한 찬사를 보낸다. 피카소 역시 마티스의 죽음 이후 ‘나를 괴롭히던 마티스가 사라졌다. 나의 그림이 뼈대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마티스다. 나의 영원한 멘토이자 라이벌이었다.’라며 큰 슬픔과 자책에 빠진 피카소는 차마 장례식장에 찾지 못한 채 ‘캘리포니아 화실’이라는 작품으로 애도를 표했다.
    예체능| 2021.09.15| 3페이지| 2,000원| 조회(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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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미술사, 르네상스 기고문
    우연의 연속? 신의 실수? 르네상스의 천재 3인방홍길동(1)문화의 황금시대, 르네상스르네상스는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유럽 전역을 풍미하며 정점에 이르렀던 미술 경향이다. 본래 프랑스어로 ‘재탄생’을 의미하는 르네상스라는 용어는 문학 및 예술운동에서 특정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 이외에도 중세기의 마감과 근대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전환기를 포괄하고 있다.2007년 11월 네이처 지가 선정한 인류역사를 바꾼 10명의 천재 중에 가장 창의적인 인물 1위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위를 미켈란젤로가 차지하였다. 네이처는 과학 전문지이기 때문에 당연히 과학자를 1위에 뽑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창의적인 인물이 많이 쏟아져 나왔는지 알 수 있다.우연의 연속인지 신의 실수인지 15세기 피렌체에 1000년에 한번 나올까 하는 천재들이 연속하여 등장한다. 그들의 등장으로 르네상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그림 1 최후의 만찬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D%9B%84%EC%9D%98_%EB%A7%8C%EC%B0%AC(2)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그림 2 모나리자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93377&cid=40942&categoryId=33054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오늘날의 직업군으로 바꾸면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도시계획가, 음악가로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78년부터 1519년까지 연구한 기록을 남긴 3만 장 가량의 방대한 기록물을 ‘코덱스’라고 한다. 그가 구상하고 연구해 그린 무기를 비롯해 식물류, 해부학, 기하학 자료, 수학, 과학, 발명품 구상 등 다양한 소재의 스케치 및 연구가 담겨있데 인류가 더 빨리 발견하였다면 과학기술은 250년 앞서갔을 것이다.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평생을 탐구하였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여 융합하고 창조하는 사람이었다. 회반죽 벽이 마르기 전 그림을 완성시켜야하며 수정이 힘든 ‘프레스코 기법’과 달걀 노른자와 색채 가루인 안료를 섞어 물감을 만들어 사용하는 ‘템페라 기법’이 있다. 그의 작품 ‘최후의 만찬’ 역시 템페라 기법을 사용하였다. 유화가 도입된 지 70년이 지났는데 템페라 기법을 선택한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작품 완성 50년도 안 되어 색이 바라기 시작하더니 이내 곰팡이가 핀 것처럼 얼룩덜룩해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연 관찰과 해부학에 바탕을 두고 원근법과 명암법을 이용해 작품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중 ‘모나리자’는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는 사람에게 신비성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 때문이었을까? 1911년 대낮의 루브르미술관에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 범인이 피렌체의 미술상 A.골리에게 팔러 나갔을 때, 골리의 기지로 다시 햇빛을 보게 된다.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으로 그림에 신비성을 더하게 된다.그림 3 피에타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110&cid=59014&categoryId=59014(3) 미켈란젤로(1452~1519)그림 4 아담의 창조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4722&cid=46720&categoryId=46799그림 5 아테나 학당출처:https://namu.wiki/w/%EC%95%84%ED%85%8C%EB%84%A4%20%ED%95%99%EB%8B%B9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건축가, 화가 그리고 시인이었다. 대표작으로 아담의 창조, 피에타가 있다. 르네상스 지식인들 사이 고대 유물을 수집하는 취미가 유행하고 있었다. 라파엘레 리아리오 추기경은 고미술상으로부터 ‘잠자는 에로스’ 조각상을 구입하게 된다. 심미안을 가진 추기경은 조각상이 가짜임을 알아차렸지만, 조각상의 뛰어남에 매료되어 제작자를 로마로 부르게 된다. 이렇게 로마로 불려온 청년이 바로 미켈란젤로이다. 로마에 머물던 미켈란젤로에게 프랑스 교황청에서 파견 나온 추기경이 한 점의 작품을 의뢰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미술사 최고의 걸작 ‘피에타’이다.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매장하기 전, 마지막으로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안아보는 모습을 담은 도상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근육과 핏줄, 손금처럼 정교한 묘사는 유럽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피에타’로 인해 미켈란젤로는 거장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넷이었다. 조각가로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을 무렵 교황 율리아 1세가 미켈란젤로에게 천장화를 의뢰하게 되었는데 자신을 조각가라 생각했던 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가로 41m, 세로 13m의 천장을 채우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고, 작품 완성에만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중앙 천장화에서 네 번째 부분에 있는 ‘아담의 창조’는 실제로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장면 중 하나이다. 미켈란젤로가 구현한 신의 권능을 최고로 잘 드러낸 것으로 평가 받는다. 정적이고 생기 없는 아담과 역동적이고 육중한 신. 생명을 부여하는 신이 아담에게 생명을 주고 있고, 아담은 그것을 받으려 하는 순간의 찰나를 나타내는 작품이다. 일본에서 ‘천장화’를 ‘천지창조’로 번역한 것이 국내에서 유명해져 잘못 알려지게 되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3)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라파엘로 산치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예술 양식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한 화가이다. 라파엘로의 대표작 ‘아테네 학당’은 특히 유명하다. 피렌체에서 4년 동안 머물며, 두 거장의 작품을 연구하고 익혔다. 이때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서 피미드 구도와 빛의 그림자의 효과를 살려 인물의 조형성을 잘 드러내는 기법을 미켈란젤로에게서는 우람하고 역동적인 인체 표현과 균형의 동작을 배워 훨씬 깊이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갔다. 거장들의 장점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라파엘로 산치오는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으로 교황의 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 시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라파엘로의 걸작들이 만들어진다. ‘아테나학당’ 역시 이 중 하나로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감 있고, 섬세하며 원근법을 이용한 건물 표현으로 공간감이 살아나서 등장 인물들은 큰 학당 안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58명의 인물을 실제 비율로 그려낸 작품은 지금도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예체능| 2021.09.15| 3페이지| 2,500원| 조회(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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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미술사 로코코 기고문
    화려한 조개 속 열등감이라는 진주홍길동(1) 향락의 시대, 로코코로코코 양식은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귀족층을 중심으로 생겨난 예술형식으로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바로크의 어원과 마찬가지로 로코코 역시 조롱의 의미로 고안되었는데 그 뜻은 작은 조약돌과 조개껍데기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로코코 양식이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화려하고 우아한, 때로는 경박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장식성은 이러한 명칭의 유래와도 관련된다.태양왕이라 불리며 절대왕정을 수립한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은 그의 사망으로부터 바로크의 화려함을 부러워하던 귀족층 중심으로 로코코 양식이 유행하게 되었다. 태양왕의 시대는 가고 귀족들이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다. 문화 예술의 중심이 종교개혁, 반종교개혁으로 서서히 프랑스로 집중하게 되며 루벤스의 화풍과 현실적인 주제가 더해져 귀족들의 화려하고 우아한 삶을 그려내기 시작하였다.그림 1 결혼 직후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75576&cid=42645&categoryId=42645(2) 로코코의 열등감로코코 시대는 더 이상 신을 찬양하지 않으며 그리지 않는다. ‘페트 갈랑트’라는 청춘 남녀의 사랑이 로코코 회화의 주요 주제가 되었으며 사치와 향락을 추구한다. 신항로 개척으로 막강한 부를 축척하였지만 명예가 필요한 부르주아 집안과 돈이 필요한 몰락 귀족 집안의 정략결혼이 유행하게 된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또한 신분의 차별을 받아 귀족들의 예법을 따라하던 부르주아들과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을 부러워하던 귀족층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당시 문화를 볼 수 있다.그림 2 그네출처:https://blog.naver.com/quseum/221671032051로코코 시대의 대표작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는 로코코 특유의 아기자기한 모습들과 섬세한 곡선을 통한 역동성, 생동감이 잘 드러날 뿐만 아니라 18세기 귀족층의 향락적이고 문란했던 그들의 경박한 사생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그네 위에 앉아있는 한 여인, 그녀의 정부 그리고 그네를 밀어주는 그녀의 남편으로 오늘날의 막장 로맨스의 대명사, 아침드라마의 한 장면과 같다. 여인은 왼다리를 살짝 올리고 치마 속이 보일 듯 말 듯 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는 정부와의 모습은 가히 외설적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 지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위해 그네를 열심히 밀고 있다. 정부의 머리 위에 위치한 사랑의 요정 큐피드 조각상은 조용히 하라는 듯 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이 둘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의미한다. 한껏 뻗은 발과 발에서 빠져나온 구두는 차후에 벌어질 남녀사이의 육체적 관계에 대한 암시로도 볼 수 있다.이처럼 로코코는 겉보기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그 내용을 따지고 보면 향락과 사치의 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3) 로코코의 몰락귀족들이 문란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수록 서민들은 세금으로 괴로운 삶을 살았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고 로코코는 몰락하게 된다. 이후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운 로코코는 비난의 대상으로 비평받게 된다. 이러한 평가는 현대로 와서 재평가 받게 되는데 욕망에 대한 솔직한 그림과 럭셔리한 감성에 반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럭셔리의 어원이 라틴어 ‘Luxuria’에서 오는데 육체적 욕망이라는 뜻으로 로코코의 향락적인 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체능| 2021.09.15| 2페이지| 2,0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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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재생, 도시공간디자인
    도시 재생목차Ⅰ. 도시재생의 개념 ················································· 31. 도시재생의 개념 ························································································ 32. 도시재생의 배경 ························································································ 3Ⅱ. 도시쇠퇴 ···························································· 51. 도시쇠퇴 ··································································································· 52. 도시쇠퇴의 원인 ························································································ 53. 도시쇠퇴의 특성 ······················································································· 5Ⅲ. 도시재생의 중요성 ·············································· 81. 도시재생의 중요성 ····················································································· 52. 도시재생의 한계 ························································································ 5Ⅲ. 도시재생의 사례 ················································· 81. 도시재생의 국내 사례 ···었다. 쇠퇴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96개 도시 중 67곳, 쇠퇴가 진행 중인 55개 도시 가운데 44곳은 재정자립도까지 낮아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들 쇠퇴도시는 농어촌지역의 생활여건과 비교할 경우에도 1인당 주거면적, 노후주택비율, 문화체육시설 등에서 농어촌지역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쇠퇴현상을 방치할 경우 도시민의 삶의 질 저하, 투자감소 등 악순환이 진행되면서 전반적으로 도시경쟁력이 약화되는 경과를 초래할 우려가 된다.그림 2 쇠퇴도시 분석 결과 (재정자립도를 고려한 경우)그림 3 쇠퇴도시와 농어촌지역의 생활여건 비교Ⅱ. 도시쇠퇴1. 도시쇠퇴도시쇠퇴의 원인은 거시적인 원인과 미시적인 원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거시적인 원인은 도시전체차원에서의 쇠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국가적, 지구적 요인들이고, 미시적 원인은 도시 내 특정 지구의 쇠퇴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내부적 요소들이다. 여기서는 도시차원에서 한국 도시의 쇠퇴를 가져온 거시적 원인에 대해 해석해 본다. 도시쇠퇴의 문제는 영국에서 이미 20세기 시작 무렵부터 인식되었다. 자연적 노후화에 따른 건물 및 기반시설의 쇠퇴, 셩제구조의 변화에 따른 경기침체와 실업, 교외화에 따른 도시중심지역의 쇠퇴, 공공의 계획 및 규제에 따른 도시중심부의 쇠퇴, 교용기반 및 소비주체의 지역적 이동에 따른 쇠퇴, 부재지주가 많은 경우 부동산관리의 소홀에 따른 쇠퇴 등이 주요한 이론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인종 간 또는 계층 간의 갈등과 양극화가 도시쇠퇴를 가져온다고 보거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착취와 불균형 개발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 입장도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도시의 쇠퇴원인을 규명해 보려는 다수의 연구가 수행되었다. 부실한 기반시설, 교외화, 공공정책 및 개발규제, 경제적 요인, 신·구시가지간의 격차, 연구적·문화적 요인 등이 도시중심부의 쇠퇴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특정도시를 대상으로 하거나 대도시 도심공동화에 초점성 상실도시의 경제가 의존하고 있던 부존자원이 고갈되거나 시장에서 경제성을 상실함으로써 도시가 쇠퇴되는 것도 한국의 일부 도시의 쇠퇴원인으로 나타난다. 자원고갈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지만 자원유입의 단절로 지역산업이 타격을 받는 유형도 나타난다.(4) 교외화서구에서 교외화 현상은 기존 기성시가지 쇠퇴의 중요한 원인으로 이해되어 왔다. 교외화는 중산층과 기업의 도심이탈의 과정이고, 결과적으로 도심지역에는 빈곤층과 소수민족이 집중되어 슬럼화가 발생하는 현상은 서구의 도시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국내 역시 교외화 현상은 한국 도시에 있어서도 주요한 쇠퇴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구와 경제활동의 도시외곽으로의 이동인 자동차 소유의 보편화와 함께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한국도시들이 경험하고 있는 추세이며, 이에 따라 대부분의 도시가 도시중심부의 쇠퇴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에 있어서 특징적인 점은 교외화에 따른 구도심의 쇠퇴문제가 도시의 규모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에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려는 외곽 신시가지의 조성이 인구규모에 관계없이 한국의 모든 도시에서 전반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교외화에 따른 구도심의 쇠퇴문제는 대도시 뿐 아니라 소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5) 공공정책 및 규제한국의 도시쇠퇴에 있어서도 공공정책 및 규제는 도시 기성시가지의 쇠퇴를 불러온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그러나 서구와 다른 한국의 특성은 공공의 역할이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했다는 점이다. 서구의 교외화에 있어서 공공정책의 역할은 한국에 비해 간접적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부문의 역할은 고속도로의 건설과 교외 주택소유를 지원하는 융자제도의 제공 같은 간접적인 것이었으며, 교외개발을 주도한 것은 민간 개발자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공공정책에 의한 택지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접적으로 외곽 신시가지 개발을 주도하였다. 더욱이 서구와 달리 시청, 법원, 경찰 등 공공기관을 외곽 신시가지로 이전함으로써 새로운 중심대두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대도시와 지방 중소도시의 교육, 의료, 문화, 복지 측면의 환경수준 격차 또는 그에 대한 시민의 인식은 한국 도시쇠퇴의 특징적 원인이라고 상정할 수 있다.(8) 교통망 발달새로운 육상교통망의 형성, 항만체계의 혁신, 철도운송 체계 및 통신발달 등에 따라 이전 시대의 기술에 의해 형성되었던 중심지들이 쇠퇴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구에 있어 운하, 도크, 철도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지역들이 새로운 도로교통과 항만시설, 항공교통의 등장으로 쇠퇴하는 많은 사례가 있다. 한국의 도시에 있어서도 새로운 교통망의 형성은 국토의 경제 지리를 바꾸면서 도시의 쇠퇴와 번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동차 보유의 증가와 도로망의 확충에 따라 전통적 농산물의 집산기능이 약화된 도시를 잇는 육상교통망의 개설에 따라 해상수송로의 중심기능을 상실, 육상수송의 발달로 철도중심지의 역할 상실 등은 교통망의 발달로 인한 도시의 쇠퇴를 보여준다. 역으로 고속도로, 전철, 고속철도의 개설에 따라 산업유치의 효과를 내고 있는 경우는 교통망의 발달로 인한 입지적 경쟁력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도로교토앙의 발달은 상업, 의료, 교육서비스를 인근의 보다 큰 도시에서 구하려는 경향을 불러왔고, 대도시 주변의 지방 소도시의 쇠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3. 도시쇠퇴의 특성전국 도시를 대상으로 한 쇠퇴실태 조사결과는 쇠퇴의 원인에 있어서 뿐 아니라 도시쇠퇴의 실태에 있어서도 한국의 도시가 서구도시에 비해 공통점을 가짐과 동시에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성은 도시전체차원, 도시내부차원, 쇠퇴현장의 쇠퇴양상에서 발견된다. 한국 도시의 쇠퇴는 소도시 쇠퇴의 상대적 심화, 대도시 기성시가지의 쇠퇴, 기성시가지의 물리적 노후, 신시가지의 접근성, 부동산 방치와 반달리즘, 물리적 쇠퇴지역의 사회경제적 특성 등의 특성을 보인다.Ⅲ. 도시재생의 중요성1. 도시재생의 중요성초기의 우리나라 도시계획은 1962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면움을 직면하게 된다.우리나라의 도시는 그 동안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하여 양적성장에 치중해 왔으나 도시화의 진정, 소득수준의 향상, 삶의 질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커지면서 쇠퇴지역에 대하여 질적성장을 위한 도시재생의 중요성이 계속 부각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측면만이 아닌 쇠퇴한 도시를 환경, 생화, 경제적 측면에서 재활성화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시민소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서울의 인구는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있거나, 가구분화로 인해 1,2인 가구는 증가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저출산 및 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가 더욱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서울의 산업, 경제적 성장은 둔화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나, 도시의 생애주기로 볼 때 도시 전반의 쇠퇴단계로 보기는 어렵다.앞으로 서울은 과거 도시정비방식에 따른 문제의 치유와 이미 진행된 국지적인 쇠퇴지역 등 대규모 정비사업 추진이 어려운 지역에 대한 관리방안 마련이 필요하며, 젊은 세대의 유출 억제 및 유입 확대와 함께 주거복지 등 증가하는 고령세대를 배ㅕ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저이용 토지에 대한 신기능 확충을 통해 양적성장의 한계를 보완하고 기존 산업지역의 기능을 고도화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한편 도시재생특별법에서 정하는 법정쇠퇴기준을 토대로 살펴보면 서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역이 쇠퇴지역일 정도로 도시재생이 시급한 실정이다. 13년 기준으로 423개 행정동 중 322개(76%) 행정동이 법정쇠퇴기준을 충족하고 있어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 가능한 것으로 조사되어 향후 구도심과 노후주거지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보전, 관리와 지역특성에 맞는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의 발굴, 주민참여를 통한 지속가능성확보 등의 침체된 도시를 재생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과 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그림 4 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2. 도시재생의 한계지금까지 도시재생 사업에서는있다.
    공학/기술| 2021.09.15| 14페이지| 2,500원| 조회(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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