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반 10번 안소윤Ⅰ. 서론19 세기 말에서 20 세기 초, 근대에 들어선 이후, 한국과 중국은 오랜 시간 동안 일제의 침략에 맞서야 했다. 양국의 항일투쟁은 두 국가에 있어 근대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할 수 있고, 한국과 중국의 근대문학사에 있어 두 국가의 항일시와 저항시는 이 어두운 시기를 나타내는 중요한 문학적 업적이다.윤동주와 대망서가 본격적으로 시인으로서 활동하던 1930~40년대는 한국과 중국 모두 일제의 침략을 받아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다. 한국과 중국은 일제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고 조국을 수복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 끝에 항일구국투쟁을 완성해냈다.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이 시기에는 시인들의 항일의식을 담은 저항시가 다른 시기에 비해 더욱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그 당시의 많은 저항시인들 중에서도, 한국과 중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윤동주와 대망서에 대해서 책 ‘시인 동주’와 ‘대망서시선’을 중심으로 참고하며 살펴보도록 하자.Ⅱ. 두 시인의 항일서정시의 창작배경1930~4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한 민족 탄압정책을 더욱 강화하였는데, 당시 문단은 일본의 강압적인 탄압에 의해 문학에서 현실이나 사회적 문제를 다룰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일제에 저항하면서 현실의 모습을 제시하면서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은유적 표현을 통해 항일의식을 드러낸 시들이 창작되었는데, 그 방법 중 일부가 바로 윤동주의 시에 주로 드러나는 부끄러움과 자아성찰이었다.책 ‘시인 동주’에서도 읽어낼 수 있듯이, 윤동주는 1919년 중국 길림성 화용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렸을 적에는 중국으로 망명한 항일지사들이 후대들에게 항일정신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사립학교들이 많았다. 그가 다녔던 명동초등학교는 위와 같이 항일 민족 지사들을 양성해내는 곳이었다. 또한, 그의 조부, 외조부와 부친은 항일지사였다. 이러한 가정배경과 교육환경 때문에 윤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강렬한 항일의식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한국과 비슷한 시기, 1931년 일제는 중국 동북성에서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동북 3성을 병합하여 ‘위만주국‘을 수립하고, 이어 두 차례의 사변을 더 일으켰다. 일제의 이러한 군사적 침략은 중국을 크게 위협하였으며 중화민족을 멸망의 위기에 이르게 하였다. 이때 중국 각계의 인사들은 적극적으로 항일투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항일전쟁의 시작은 많은 문화종사자들의 애국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중국 곳곳에서 문화적 구국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그들은 항일구국의 현실과 일본군의 만행을 반영한 작품을 써내어 민족정신을 북돋고 중국인들을 격려하였다.대망서의 시는 대표작 ‘비 내리는 골목(雨巷)‘처럼 주로 상징주의 기법을 이용하여 인생의 쓸쓸함과 내면의 적막함을 표현해낸 시였다. 그러나 항일의 불씨가 중국 대륙을 휩쓸었을 때, ‘나’보다는 ‘우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의 시 세계와 풍격에 변화가 일어났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이후, 그는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투옥됐는데, 그곳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견고한 신념을 내보이는 시를 써냈다.Ⅲ. 두 시인의 항일서정시의 공통점‘간(肝)‘은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서도 가장 강한 어조를 띠는 시이다. 시인은 독수리가 자신의 간을 쪼아 먹도록 내어주며 자신을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다. 이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겠다는 시인의 의지로도 해석된다.대망서의 ‘원단축복(元日祝福)’은 시인의 시풍이 변화하기 시작했을 때의 시로, 국가의 미래를 축복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시이다. 이 두 시를 통해 두 시인이 모두 강한 애국정서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또,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대망서의 ‘내 못 쓰게 된 손바닥으로(我用殘損的手掌)’, ‘옥중 벽에 쓴 글(獄中題壁)’에서는 모두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시어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두 시인은 시 속에서 이와 같은 어두운 느낌의 시어를 많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Ⅳ. 두 시인의 항일서정시의 차이점ⅰ. 시에 드러난 두 시인의 의식윤동주의 시는 자기반성과 부끄러움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시인 ‘서시(序詩)‘에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저항시를 씀으로써 일제에 대항하며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고자 하는 의지를 시에 표현했다.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에서는 일제강점기 상황 속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 공부를 하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스스로 반성하고 있으며, 시를 쉽게 써내려 가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외에도 ’자화상‘이나 ’참회록‘과 같이 이러한 윤동주의 시의식을 드러낸 시들이 많다.그에 반해, 대망서의 시는 주로 사실성과 전투성 및 짙은 정치성을 띤다. ‘내 못 쓰게 된 손바닥으로(我用殘損的手掌)’에서는 자신이 죽고 중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상황을 가정하여 벗에게 진심어린 고백을 전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의 내면의 소리를 직설적이면서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옥중 벽에 쓴 글(獄中題壁)’에서는 진지하고 비장한 어투로 전쟁으로 인해 느끼는 뼈저린 아픔과 해방,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ⅱ. 두 시인이 시 속에서 사용한 표현방식윤동주의 ‘무서운 시간’에서 한 번도 손을 들어 보지 못했다고 한 것은 조국의 광복과 같이 자신의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음을 의미하고,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다고 한 것은 그러한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돌아와 보는 밤’에서는 일제강점기 현실을 ‘세상’이라는 시어로 표현하고 있고, 비가 내리고 어두운 상황을 통해 그 현실세계의 부정적인 면을 더욱 강조한다.대망서의 ‘원단축복(元日祝福)’에서는 구절마다 같은 외침이 반복됨으로써 시를 읽을 때 힘차고 피가 들끓는 느낌이 들게 하며 사람들이 항전투쟁에 참가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격려해준다.‘내 못 쓰게 된 손바닥으로(我用殘損的手掌)’에서는 ‘피’, ‘초췌한’, ‘어둠’과 같은 시어의 사용을 통해 항일전쟁으로 인해 겪은 아픔과 상처를 감정적으로 더 잘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 시에서 제시하는 이상향 ‘그곳’이 결국은 중국임을 시의 마지막 연에서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