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건축 선언문에대한 에세이훈데르트 바서/미스반 데어 로에의 동기와 분석방향에 대한 소개근대건축에대하여 훈데르트 바서 와 미스 반데어 로에 분석의 방향을 제시하려고한다. 미스 반데어로에는 결과적으로 건축을 발전시켰고 이것은 건축만이 아니라, 건축의 산업화 형태들을 위한 전제 조건들로도 기울었다.그가 추구하던 것은 재료의 성격이 시공방법을 정하고 새로운 건축재료에 대한 요구는 비로소 산업화와 그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건축양식으로 성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이러한 그의 노력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이런 커다란 변화 속 근대건축을 적극적이고 깊이있게 이해하기위한 비판적인 견해로 나는 훈데르트 바서: 건축의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곰판이 선언서와 비교한다. 빈의 화가 훈데르트 바서(1928~2000)의 말 “1920 년에는 보도와 주택의 벽을 평활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1957년에 이것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1943년의 공습은 형태에 관한 완벽하게 자동적인 가르침이었다. 직선들과 그것들의 공허한 구조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고, 그렇게 되었다. 이후에* 트랜스 오토마티즘(transautomatism)이 정상적으로 일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입방체,입방체를 짓고 있다! 도데체 우리의 양심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에서 무엇이 전해지는가?“ 훈데르트바서는 산업화에 따른 새롭게 탄생한 단순하고 기능적인 건축에대해 자유를 억압하고 있음을 묘사한다. 비스반 데어 로에와 훈데르트 바서 이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의 회로에서 ‘건축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결론 으로 이어지는데, 산업혁명이가져온 기능적 합리적건축의 장점과 단점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과정으로써 둘의 저서와 작업 활동을통해 구체적으로 입장을 이해하고 비판적입장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갖는 의미와 한계를 따져본다.미스반데어로에 산업건축 그의 기술과건축미스반 데어 로에의 건축을 알기에앞서 그가 왜 산업화를 추구하였을까 그는 산업화가 우리 시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문제들과 예술적 문제까지도 순조롭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산업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냐가 다시 의문이다. 여기서 그는 근본적으로 같은 성질을 지닌 건축재료를 사용하는한, 건축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음을 언급한다. 건축의 재료는 시대를 반영하고 새로운 건축 재료에대한 요구는 산업화로 가기위한 첫 번째 발디딤 이라는 것이다. 건축의 새로운재료는 더 가볍고 생산성이 있으며 건축현장에서는 단지 조립만 하면 되기에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공사가 진행되어 비용 또한 크게 절감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유리와 철을 이용한 새로운 건축양식들을 실험적으로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신속하고 합리적이게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이것은 예술적 차원에서 건축을 개롭게 정의 하려는 노력도 고유의 영역을 찾을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발견과 의지를 반영하고 앞으로의 미래로 나아가게한다. 그는 건축이 공학의 일부로서 기술이 진정으로 실현되는 경우 언제나,그것은 건축으로 초월하고 기술과 건축이 밀접한 관계를 맞고있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그가 말하는 산업화의 건축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변화냐는것에 대한 의문이다.미스반 데어 로에의 대표적인 작품대표적인 작품으로 판스워스 주택(Farnsworth House)를설명할 수 있다. 미국에 지어진 파스워스 주택은 1인 거주자를 위한주택으로,8개의 기둥이 주택 외부에서 지붕을 받치고있고 직선의 벽면과 지붕으로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비스반 데어로에는 유리와 철골로 아주 단순하면서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훈데르트 바서의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곰팡이 선언서이 부분에 관해서 훈데르트 바서는 아마 예술가로서 형태에 관해서 더 깊이있게 관찰한 듯 싶다.훈데르트 바서는 건축에 자유를 부여하기를 원한다. 그예로 회화와 조각에는 자유가있지만 건축은 전제조건이 간주되어야하고 자유가없다고말하는데 이를 가축의 예로 암탁과 토끼에 비유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우리인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말하며 거주자과를 배려하지않는 건축물들을 비판한다.궁극적인 그의 견해는 건축가 와 벽돌공 과 거주자 모두에게 이질적인 건축물이 정말로 우리에게필요한 실용적인 구조물이라고 말한다.즉, 현재의 상황에서는 건축가는 건축물에 살지 않기 때문에 건축물과의 관련이 없고, 벽돌공은 기계적인 시공과 건축물에 살지않기 때문에 무관하며, 저주자는 건축을 하지않고 단지 살러 들어갔기 때문에 무관하다.훈데르트바서의 대표적인 작품훈데르트 바서는 건축가와 벽돌공과 거주자가 일치할 때에만, 즉 동일인이 될 때에만 건ㅊ푹에 대해서 말할 수있다고하며 나머지 모두는 건축이 아니라 범죄 행위의 물리적인 구체화다.이런 점이 잘느껴지는 작품으로 훈데르트 바서 하우슨느 빈의 제3구역에 세워진 사회주택 건물로,벽을 작은 단위로자르고 색을칠하고 정원 과 다양한 나무를 놓고 기준에정하지않은 평평하 바닥과 일직선으 복도를 만들지 않으려고노력했다. 그는 모든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한 공간에대한 최대한 많은 부분을 챙입지면서 필요한 구조적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집을 짓는데 동참해야한다고 한다.따라서 미스반 데어 로에 의 산업건축을 비판하게 된다. 미스반 데어 로에의 구축정이고 기능적인 건축이 훈데르트 바서에게는 괸장히 무책힘하고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건축물로 다가왔던 것이다.바서가 말하는 트랜스 오토 마티스 즉 회화에서 기존의 절대적 타시스트(tachist)오토마티즘은 절대적 거주부적합성이며 앞으로의 총체적인 타시스트 오토마티즘을 넘어서, 우리가 트랜스 오토마티즘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을 해햐하는 데 이것은기존의 타시스트 오토마티즘을 극복한 후에야 가능하다고본다.하지만 여기서 더 나의 생각은 훈데르트 바서가 말하는 건축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반 데어 로에의 기능적인건축을 비판하고있지만 이것은 획일화된 건축구조와 세상에대한 비판일 수도있다는 생각이든다.선언문의 내용이 현재의 시점에서 갖는 의미와 한계나의 견해로서 과연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이 근대건축의 대표로서 유지되고있다고 가정하고 그원리로 세상이 작용하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맞는것일까, 각자인간에게 부여되는 자유로 건축도 회화와 같이 아무나 지어지고부서진다면 또한 자신의 일이라는 명목으로 형태를 무자비하게 변형이시킨다면 주위에 주는 영향은 없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