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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대학교 글로벌 음식문화 기말고사 정리본
    * 유네스코 전통음식: 세대 간 보전, 전수되는 전통적인 토착사회나 거주민에게 확실히 연결된 음식 관리자, 후견인 문화적 책임성의 형태로 지식을 보유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전통음식을 말한다.* 프랑스의 미식문화 ?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 등재 2010년- 프랑스의 미식 문화는 단체나 개인의 일생에서 중요한 순간(출생, 결혼, 생일, 기념일 등)을 축하하기 위한 사회적 습관이다.미식은 정해진 코스를 존중한다.- 아페리티프(반주, 본 식사 전의 음료)로 시작하여 리큐어로 끝난다.아페리티프 혹은 아페로로 불리는 프링스의 식전 주는 밥 먹기 전에 간단한 핑거푸드(작은 케이크, 과일, 올리브, 소시송, 비스킷 등)와 함께 식욕을 복돋우고 자리와 함께 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곁들이는 음료주로 술이다.- 리큐어는 혼합주의 하나로 알코올에 설탕, 식물 등을 섞어 만든 술이다. 가장 인기 있는 향은 살구, 초콜릿, 오렌지, 복숭아, 페퍼민트이다. 당분이2.5% 들어 있고 도수는 13~55도까지 있으며 색깔도 다양. 물을 섞지 않고 마시거나 얼음만을 띄우기도 하나 칵테일로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지중해의 미식문화 ? 유네스코 등재연도 2013년- 지중해식 식문화 식사를 뜻하는 영어 ‘다이어트’는 생활방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다아이타’에서 유래했다.- 지중해의 경관에서 부터 식사 테이블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기술, 지식, 의례, 상징, 전통 등을 나타낸다.- 지중해 연안에서 이뤄지는 농사, 수확, 채집, 가고어리, 조리, 나누고 소비하는 것 등을 포괄한다.* 김장, 김치를 담그는 문화 ? 유네스코 등재연도: 2013년- 김장은 한국인의 자연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합한 음식문화로, 지역 생태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김장준비는 매해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봄철이면 각 가정은 새우. 멸치 등의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다.여름에는 2~3년 동안 저장할 천일염을 구입하여 쓴맛이 빠지도록 한다. 늦여름에는 빨간 고추를 말려서 가루로 빻아둔다.늦가을에는 주부들은 날커피의 유통과정- 터키의 커피하우스: 커피가 콘스탄티노플에 소개되고 그 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당시 유대인들만이 유일하게 이슬람사회와 기독교 사회를 왕래하며 무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수입과 공급을 독점했다.- 모카 항구: 유대인들은 커피 독점 공급을 관리하기 위해 한 항구에서만 선적하기로 했는데, 그 곳이 아라비아 반도의 ‘모카 항구’이다.모카항구를 통해서만 유럽으로 수출되어, 자연스럽게 유럽사람들은 커피를 ‘모카 커피’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도의 바바부단: 이슬람 승려 바바부단이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이집트 커피농장에서 종자 몇 개를 숨겨 인도로 돌아왔다.이를 안 동인도회사의 유대인들은 인도에 스파이를 보내 커피 원두와 묘목을 밀반출했고, 네덜란드도 커피 재배에 성공한다.* 아메리카노와 인스턴트 커피의 유래- 아메리카노 ? 보스톤 차 사건*: 식민지 당시 미국인들은 차를 즐겨마셨는데, 영국이 수입 차에 상당한 세금을 부과했고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은 수입 차 불매운동을 하며, 대체 음료인 커피를 선택하게 된다.- 인스턴트 커피의 유래: 1920년 브라질에서는 커피가 풍년이어서,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커피콩 시세가 폭락하여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브라질 정부는 식품회사 ‘네슬레’에 남은 커피콩으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1938년 네스카페 라는 인스턴트 커피였고, 그렇게 해서 인스턴트커피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벨기에의 맥주문화: 유네스코 등재연도 2016년- 벨기에에서 서로 다른 발효 비법으로 생산하는 200여개의 양조종에 1500종 맥주를 생산되고 있다. 장인들이 전문과정을 통해 전승.- 트라피스트 (에일) 맥주: 수도사들이 빚은 맥주이다. 총 13개 수도원들만이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할 수 있다.- 올드브라운 맥주: 서부 플랑드르 지방 전역에서 주조한다.- 램빅 맥주: 브뤼셀, 파요턴란 일대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자연 발효식 맥주- 호가든: 벨기에 밀맥주가 호가든이다. 알코올 4.9%의 에일 방이다.- 이 순간 이들은 분위기를 공유하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가 끊임없이 공유되는 집단적 피드백이 형성된다.- 각 가정에서 이 의식을 지속적으로 행해 전승하고 있다.* 은시마 ? 말라위의 전통요리 (2017년 등록)- 은시마: 은시마는 말라위 사람들의 요리, 전통, 문화를 통칭하는 단어이자, 특정 요리 자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쿠디야 은시마: 공동체 풍습이며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반면 도시에서는 혼자 또는 친구들과 함께 식사한다.- 은사마는 또한 손님을 환대하는 요리 풍습이기도 하다. 손님이 찾아오면 시간에 관계없이 은시마를 대접하며 환영하는 마음을 표시한다.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은 환영 받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쿠스쿠스 - (2020년 등록)- 알제리, 모리타니, 모르코, 튀니지의 음식이다.- 쿠스쿠스를 조리하는 과정은 상징적이고 종교적이며, 사회적 공동체적 차원을 지향하는 비오롭(생태서식공간)과 테루아(토양, 기후) 환경을 반영한다.- 생산, 과정과 소비 환경 내에서 보다 친밀하고 강력한 사회적 유대를 구축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긴 가족에게 이웃들은 번갈아 가며 쿠스쿠스를 전달하며 위로의 뜻을 전한다.- 농촌에서는 나쁜 귀신을 막기 위해 주술ㄹ로써 쿠스쿠스 선물을 마련하기도 한다.* 싱가포르 호크문화- 유네스코는 싱가포르의 호커 센터를 “지역사회의 공동 부엌”이라고 표현하였다.- 성별이나 연령, 민족, 종교 또는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싱가포르 사람들은 수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호커센터에서 식사를 해왔다.* 국수: 곡식들을 가루내어 반죽하고 가늘게 만든 후 국물에 말거나, 비벼서 먹는 음식. 삶은 면을 물로 헹구고 건져올린다 하여국수라고 칭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확실치 않다.* 국수의 문명과 탄생- 고고학적 발견: 최초 밀 경작지는 메소포타미아다. 중국의 신장 지역으로 밀을 가지고 이주한 유목민들에 의해 최초로 국수가 탄생했다.- B..C 4천년 경 최초의 빵이 탄생했다. 있다. -냉면과 골동면에 대해서도 써져있다.- 음식다미방: 국수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메밀가루를 베이스로 하고 밀가루와 녹말을 섞었다.- 평양속지: ‘흙국수’가 등장할 정도로 국수는 귀했다. 대부분의 국수는 메밀과 녹말로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메밀면을 즐겨먹었다.* 국수의 종류- 온면: 국수장국이라고도 한다. 국수를 삶아 건져서 뜨거운 장국에 말아 먹는 것은 건면. 장국에 국수를 넣어 끓이는 것은 제물국수이다.- 냉면: 고명을 얹어 먹는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진주냉면 등이 있다. 1800년대에 이르러 문헌 상에 등장한다.- 골동면: 동국세시기에는 “메밀국수에 잡채, 배, 돼지고기 등을 넣어 섞은 것을 골동면”이라 하였다. 에서는 “황육을 볶고 숙주, 미나리와 국수를 비벼 먹는 것이 비빔국수”라고 하였다.* 불교와 국수의 관계성- 승소: 승당에서 발우 공양은 엄숙하다. 상 공양은 이런 엄숙함을 해방시켜준다. 이때는 평상복과 담소가 허락된다. 이런 상 공양 때는 국수가 차려지는 경우가 많아, 스님들은 국수를 먹을 때를 좋아했다.- 옥담유고: 승려가 쓴 책으로 여기에는 “희게 찧으면 ‘승소’가 되고, 노랗게 찌면 객담이 된다.”라는 말과 “승소란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객담이란 누룩을 뜻한다.”고 나와 있다.- 어우야담: 이색이 중국 과거에 합격한 후 어느 절에 들렸다. 스님이 떡과 함께 승소를 내주며 대구를 청했고, 이색은 이에 응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이런 승소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지역별 국수의 종류- 잔칫날 돼지를 잡아 국수에 말아먹는 제주도 고기국수- 잡은 생선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는 금강유역의 생선국수- 척박한 토양에 메밀을 길러 만들어 먹던 강원도의 메밀국수- 반가의 음식에서 안동의 대표적 향토 음식이 된 건진국수- 뱃사람들이 먹던 음식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포항의 모리국수-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견디기 위해 먹던 전라도의 팥칼국수* 지역별 국수- 함경도의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감자,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농마국수는 신에게바치는 귀한 음식이다. 아시아인에게 국수는 신의 음식이자 축제의 음식으로 가족과 이웃을 연결하는 공동체 음식이다.* 부탄의 촉 ? 공양 음식- 메밀국수 푸타는 축제나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신은 물론 신과 소통하고 의식을 주관하는 람에게 올리는 공양 음식 촉이기도 하다.불교신자에게 촉은 공덕을 쌓고 마음을 정화하여 불성을 가리고 있는 무명, 즉 어리석움을 걷어내기 위한 중요한 행위이다.- 메밀면 푸타는 마음 사람들의 연대감을 강화하고 화합을 증진하는 하나의 특별한 방식이다. 붐탑의 삶 속에서 푸타가 지니는 독특성과 상징성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공양 음식인 촉이다.* 동남아시아 국수- 베트남의 포: 쌀국수이다. 베트남의 대표적 아침 식사이다.- 인도네시아의 미고랭: 인도네시아 전통 요리이다.- 타이의 꿰띠아우* 시칠리아 파스타의 유래- 마르코 폴로가 동방에서 여행하면서 배워왔다는 설- 폴로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설 (처방전에 파스타)- 아랍인 학자가 쓴 지리서에 트라비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만든 이트리야라는 이탈리아 최초의 건조국수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슬람의 정복: 이슬람 군대가 시칠리아를 정복했다. 시찰리아 시장에는 이슬람 음식문화가 남아있다. 이슬람인은 6세기부터파스타와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먹었다고 한다. 이트리야에 대한 기록이 많은데, 이는 이슬람이 시칠리아에 수출한 것이다.- 시칠리아 파스타: 이탈리아 전통 요리* 중국 송 시기 국수의 대중화와 전파- 농업 경제와 기술의 발전, 조리법의 발전, 발효 기술의 발전, 오락문화(카이펑)의 발전* 쌀국수의 명칭의 변화: 중국-마시엔, 베트남-분, 태국-카놈친, 말레이시아-락사- 베트남의 분: 베트남 쌀국수로 소면처럼 가늘고 둥글다, 냄비요리나 볶음 요리 재료로도 사용된다. (분냄,분지우꾸아,분망빗 등)- 태국의 가놈친: 태국어로 중국의 과자 혹은 몬족어로 쌀을 가루 내어 익힌 것이라는 뜻이다.- 말레이시아의 락사: 중국어 매운 모래에서 파생되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음식으로 매운 .
    학교| 2022.12.19| 11페이지| 2,000원| 조회(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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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대학교 글로벌 음식문화 중간고사 정리본
    글로벌 음식문화* 식생활 문화적 의미- 한 사회 또는 집단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양식- (식품의 생산과 조리를 가공하고, 상차람, 음식먹는습관, 도구와 식기)- (자연적), (사회경제적)조건 내재- 문화 속에서 (전승)** 동양적 관점에서의 음식1. 道 ? 아무리 훌륭한 ‘도’가 있어도 배우지않으면 그 훌륭함을 알지못한다.2. 禮 ? 제기모양, 귀신을 섬겨 복을 얻음3. 慾 - 욕망, 음식과 남녀에는 사람의 큰 욕심이 존재4. 本 - 음식은 백성의 근본,최시형 ? 밥은 하나님김지하 ? 사는 것이 먹는 것이고, 먹는 것이 사는 것이다.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 하늘을 몸 속에 모신 것** 봉송 (왕->신하)- 왕이 식사를 통해 위민정치를 구현했는데, 이는 봉송. 봉송은 상물림이라는 독특한 상 풍습- 왕이 식사를 마치면 정1품~정9품 관리들이 물려받은 상에서 식사함. 상물림 4시간 걸림.- 음식 남으면 높은 사람 이외에 사람들은 궁중 음식을 싸가지고 궁궐 밖으로 나갈 수 있음.** 꾸러미 (신하-> 왕 -> 백성)- 양반이 평민에게 내리는 밥상- 세자 책봉, 왕 생일 등 행해진 잔치에서 왕실에 올린 잔치의식이 끝나면 남은 음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줬다.- 당시의 평민, 노비들은 먹거리를 얻기 위해 투쟁했다. 평소에 먹어보지못한 음식 제공** 반가음식 (양반의 음식)- 반가란 양반을 말하며 반가 음식은 한 집안 대대로 내려와 격식과 품격있는 종가의 음식- 왕의 밥상은 [12첩] / 사대부는 [9첩] (밥,국,김치,장 제외하고)- 일반 양반가는 7첩 이상* 노자: 큰 나라를 다스리려면 작은 생선을 바르는 것처럼 해라.* 걸왕 ? 말희-매희(애첩)을 위해 곰 발바닥을 잡아다 줌.* 탕왕 ? 요리사* 진시황 ? 불노초 구함, 근데 일찍 죽음* 무제 ? 사슴 정액 먹음.* 味의 화해는 氣의 화해로 -> 기의 화해는 心의 화해로 -> 심은 政治의 화해로* 사바랭(프랑스 미식가): 당신이 무슨음식을 먹는지 말하라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한 나태도) 이다.(사람들이 신뢰를 높이는 기초과정)으로 같이 밥 먹는 회식문화처럼 밥에는 여전히 (공동체적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는 둥근 식탁에서 밥먹으면서 담판, 협상 등을 한다.* 음식외교의 중요성힐러리 클린턴: (음식은 "관계발전을 위한 가장 오래된 외교 도구)차이쯔 창- (정치는 식탁위에 존재)프랑스와 이란의 일화 ? 프랑스는 와인이 대표적/ 이란은 금주국가, (근데 프랑스가 자기 와인 유명하다고 이란에 술을 줘버림)미중수교 - 중국을 찾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게 중국이 대접한 음식은 (베이징카오야)였다.* 트럼프와 독도새우트럼프가 대통령이 방한을 했을때 청와대가 (독도새우)를 만찬 메뉴로 준비했는데 일본의 주요 언론은 이를독도를 한국령임을 알리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등 만찬메뉴 중인 하나인 독도새우를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함핫도그 - 2차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1등 공신피시엔칩스 - 루스벨트 친근감을 고조하기 위해 핫도그라는 서민음식을 올림(당시 미영동맹 반대의 여론이 높음)피시엔칩스 ? 중국 시진핑이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먼저 직접 영국의 대표음식인 피시엔 칩스를 먹겠다고 요청.* 남북정상회담 메뉴- 문배술 ?평안도 / 두견주: 충남 면천- 통용 문어 냉채 /스위스 식 감자전(김정은 유학시절)- 신안 해삼편수 (김대중 대통령 고향)- 서산 한우 / 옥류관 냉면- DMZ 비빔밥과 쑥국 / 망고 무스-> 음식에는 상징성이 들어있음.** 조선시기 약식동원- 유만공의 작품인 에는 이 담겨져있다. 이는 우리 몸을 보양하기 위한 사상이다.** 섞음의 조화한국 음식문화의 특징 중 하나 - 대표적인 음식: 비빔밥, 탕평채, 잡채, 구절판(식기이름), 신선도* 비빔밥 : 혼돈반 -> 골동반 -> 골동 -> 골동반 -> 골동반과 골동골동지반 -> 부븸밥 -> 부빔밥 -> 비빔밥* 비빔밥의 유래-> ① - 품앗이할 때 각자 재료들고 나와서 비벼먹은 것에서 유래. -> 문헌자료 최승법의 ② -점심때나 종친이 입궐하였을 때 먹던 식사였다.③ - 한해 마지막날 먹다해도에 당면 공장 설립 -> 당면 넣음 -> 섞음의 철학-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이 만난 2차 정상회담에서도 우리 측이 주재하는 만찬에 이 등장.구절판은 궁중음식에 속하는 요리. 원래 명칭은 으로, 신선로는 를 칭함. 구자탕, 탕구자라고도 함.구절판에는 음(동물성 식품) + 양(식물성 식품)의 음식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음. 과 를 통해 조화를 보여줌.** 기다림의 음식 ? 김치, 간장, 된장, 장류, 젓갓, 절임류우리나라에서는 김치를 라고 하였다. 김치담그기를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가 물에 담근 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로 기록한 것이 최초다. 김치의 옜 발음이 딤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료다.중국과 한국의 김치 차이는 중국은 알코올로 절이고(중국 절임채소) 한국은 장과 소금으로 절여 발효시킴.- 간장, 된장** 배려 음식 ? 쑥깍두기, 타락죽, 섬산적- 무를 무르게 삶아 버무리는 / - 쇠고기를 넓게 저며 양념해 구운 - 노인을 위한 죽에 우유 넣음** 색 음식 ? 한식 중에는 아름다운 색감을 중시한 음식이 많다.- 다섯가지 색 = 오방색** 중국인의 식에 대한 관념1) 음식은 예의 상징이다.2) 음식과 조리는 정치의 상징이다. 먹여주는 것에서 권력이 나온다.3) 식은 인간의 본능이고, 인간만사가 음식에 있다.4) 중국인은 무엇이든 먹는다.5) 일을 성사시키려면 함께 식사를 하라6) 함께 일하는 사람은 혈륜이다. - 후오구오7) 식사는 여럿이 함께 해야 한다.* 중국음식원즈이엔징탕 ? 모기 눈알 수프 / 롱호또우 ? 뱀고기* 통합의 문화코드? = 청나라 강희제가 회갑을 맞이하여 만주족과 한족의 최고급 요리를 만들어 잔치를 벌인 것- 관용과 융합을 음식을 통해 통치- 중국의 식탁 - 당-북송시기 정착 , 편의성 / 원만** 중국음식의 특징1. 을 중시 / 재료 3천, 음식 1만2. 남쪽은 물고기, 쌀 / 북쪽은 밀, 옥수수, 육류3. 동쪽은 맵고, 서쪽(황토고원)은 시고,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다.4쑤성 일대 요리 / - (성지엔빠오) ?튀김만두, - 털게 요리, (치판투안)- 찹쌀 요리 과 - 대나무 찜통에 감싼 만두- - 중국식 족발요리 ? 단맛이 남 등이 유명함** 광동요리- 남방계 ? 외국의 문화와 혼합되어있다. - 광동요리는 라고 한다.- - 새색시의 처녀성이 확인되면, 시댁에서 카로오루주라는 통돼지구이를 마련하여 친정에 보냈다.- - 이 요리의 의미는 “절에 승려도 담을 넘는다”이다. 그만큼 맛있다는 것이고, 초호화 음식이다.- - 밀가루 반죽에 돼지고기 넣고 꽃 모양으로 빚어 찐 것.- - 디엔신이라는 이름은 옛날 언어인 공심(공복)에 적은 식사를 한다."에서 나왔다는 설과"마음에 점을 찍어 마음에 접하게 한다."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 광동 지역 영국인들이 좋아했던 요리 (탕추파이구)를 먹기 편하게 만든 것이 ‘구라오러우’이다.- - 한족의 전통 요리, 돼지고기 탕수육- - 둉북지역 음식.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음식.원래는 관청에서만 만들었던 음식이 후에 민간에게도 전해져 오늘날 동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됨** 쓰촨요리 ? 향신료 많이 씀 / 소글절임(옌차이), 정종찬미- 마라탕 ?뱃사람들의 음식, 고된 노동 후 온갖 재료를 가리지 않고 꼬치에 담가 먹은 요리- 마라샹궈 - 재료는 마라탕과 비슷하지만 샹궈는 볶음요리이다.- 후오구오 ? (쇠고기)나 (양고기) 꼬치로 된 고기를 담가 먹는 요리. 당시 팔 수 없는 내장과 부속물을 한 냄비에다 나눠먹었는데, 이때 구분이 없어 다툼이 벌어져 칸막이를 만든 것이 후오구오가 되었다.- 마파두부 / 위썅러우쓰: 물고기 향과 실처럼 가늘게 채썬 돼지고기가 어우러진 요리- 궁바오지딩: 닭고기를 땅콩 등과 함께 볶은 요리 / 칭쟈오러우쓰: 돼지고기와 피방을 볶아 만든 - 위샹체어즈: 가지를 볶아 만든 쓰촨요리로, 위샹 양념으로 맛을 낸다.- 낭중니오로우: 보편적인 음식은 아니다. 장비가 전투식량으로 보존용 소고기를 만들었는데, 이게 장비우육이다.* 일주로 관혼상제 때 쓰인 정식 식단이다. 의식요리 ? 격식있는 향혼 혼례 요리이다.- : 다도의 창시자 센리큐우가 차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나온 요리/아주 간단하고 적은 양이나 만드는 법은 까다로움.화려하지않고 질을 중시, 계절 식품을 사용, 색채 조화.- : 위에 말과 한자가 달라 뜻이 다름!! 주의!! / 연회나 결혼식 등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이용하는 고급 향찬 요리이다회식 연회를 의미. 복잡한 혼전요리를 편리하게 간략화. 혼젠요리에 차가이세키 요리를 가미. 일본식 여관에서 코스식으로 제공- : 사찰을 중심으로 발달되었다. 쇼진요리의 시작은 불교 수행의 일환으로써 인도나 중국에서 전해진 요리이다.식물성 재료 위주로 조리하고, 하고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다. 맛과 색, 계절감에 맞춰 식단을 구성한다.* 한국, 중국음식의 공통점- 한국 사람들의 밥을 주식으로 김치를 부식으로 하는 음식 습관은 - 은 한국 음식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 중국과 한국 모두 ‘오양’과 ‘오음’(색, 맛 등)을 중시했다. (한국- 비빔밥 색의 조화)- 일본 음식 또한 색깔의 조화를 대단히 중요시 한다.** - 음식은 식품이면서 보약이 될 수 있다. 식이요법의 관념.** - 중국은 56개 다민족국가이다. 대표적인 음식: - 조선 영조의 ** - 천일합일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봉건사회 유가사상의 예의는 중국 전통 음식문화의 윤리를 형성. / 한국 유교문화, 공동체 주의**일본 음식의 문화코드- 한국인은 을 / 일본인은 을 좋아한다.- 일본인들은 밥에다 국을 말거나, 음식물을 비비거나, 쌈을 싸서 먹지 않는다.- 카레라이스나 덮밥 조차도 비비지않고, 심지어 팥빙수도 얼음과 팥 등을 함꼐 비비지않는다.** : 일본에서 보기힘든 섞어 먹는 음식이다. / 옛날 한국의 골동반과 비슷/ 조선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 일본의 음식은 한중과 조금 다르게 독창적이다.** 한중일 음식의 공통점과 차이점1. 주식 : 쌀/밀2. 한국과 중국은 합창음식. 일본은 독창음식이다.3. 힌증일 때문에
    학교| 2022.12.19| 7페이지| 2,000원| 조회(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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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대 역사학과 디지털 문화콘텐츠의 만남 기말정리본 평가A+최고예요
    역사학과 디지털 문화콘텐츠의 만남 기말 정리[챕터 1] - 대장금의 기획 의도:의녀 장금의 성공담을 미루어 궁중 내 하층민들의 애환과 갈등을 표현하고, 전통음식과 조선 의학, 의녀제도를 소개하고자 했다.1. 드라마 ‘대장금’의 역사적 리얼리티드라마 ‘대장금’은 조선왕조실록의 나오는 세 가지 기록을 토대로 제작되었는데,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첫 번째는 ‘왕후의 병을 낫게 한 상으로 의녀 신비와 장금에게 각각 쌀, 콩 10석씩을 주었다.’는 기록이고,두 번째는 ‘중종이 병에 걸려, 의원들과 내의녀 대장금과 은비에게 약을 의논하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이름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드라마에서는 이를 ‘호칭의 전환’으로 해석했지만, 실제 역사적으로 궁녀의 이름은 그 사람의 특징으로 불렀기에 역사가들은 다른 인물로 해석하고 있다.세 번째는 ‘중종이 변비에 걸렸을 때, “내 증세는 여의가 안다.”라며 여의 장금의 진료 소견에 대한 기록이 있다.드라마에서는 의녀가 아닌 여의라고 적힌 점을 신분의 상승으로 해석하고 제작되었으나, 실제 역사가들은 의녀와 여의를 동일한 단어로 해석하고 있다.이를 통해 드라마 은 완전히 허구적인 역사가 아닌 ‘가능성으로써’의 역사를 다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2. ‘대장금’의 문화콘텐츠로의 생성_ 공적인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결합시키는 방식드라마에서는 허구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실제 인물과 배경, 음식문화 등 실제 역사와 결합하여 재구성되었다. 배경은 갑자사화와 중종 반정 등 정치적 불안정의 시기에서 출발하였고, 인물은 궁녀와 의녀들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또 음식 문화를 접목시켜 궁중 음식을 재현하였고, 이는 시청자의 오감을 자극하였다.궁녀는 10년에 한번 선출되었고, 궁녀는 출신 계급과 입궁연령이 구분되어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지밀과 침방, 수방은 중인 계급이고 지밀은 4~8세 때, 침방-수방은 6~13세에 입궁한다. 그 외는 대개 상민 계급이며 12~13세에 입궁한다.또 궁녀를 선발할 때 앵무새의 피를 이용해 ‘금사미단일본의 ‘화족’과 구별되었다.* 1920년 4월에 이은 왕세자(영친왕)과 이방자 여왕의 결혼식이 있었다.- 일본 황실에서는 ‘황족의 결혼은 동족 또는 칙명에 따라 특별히 인정된 화족에 한한다.’는 규범이 있다.일본 황족인 마사코는 황족이나 화족이 아닌 조선의 ‘왕족’과는 결혼이 불가했으나, 식민지 지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추진되었다.- 1918년 11월 ‘황족 여자는 왕족 또는 공족에게 시집갈 수 있다.’는 조칙이 생겼다.4)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와 그녀의 소학교 시절, 그리고 유학생활- 1912년 5월 25일, 덕수궁에서 덕혜가 태어났다. 61세 고종의 늦둥이 딸이었다. 어머니는 소주방 나인 출신의 후궁 복녕당 양씨였다. 덕혜의 경우 태어나마자 고종이 직접 산모를 찾았을 정도로 이례적이였으며, ‘덕수궁의 꽃’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을 보면 “복녕당 아기에게 덕혜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있다. (복녕당 아기씨 -> 덕혜)- 유치원 시절 덕혜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먼저 1916년 황실 최초의 유치원 덕수궁 준명당이 세워졌는데, 덕혜옹주 침소와의 거리가 150m밖에 나지 않았다.가마로 통원했으며 유모 변복동이 수행하였다. 동년배 사대부 딸들이 원생이었으며, 옹주는 외삼촌을 ‘양 상관’이라고 하대하였다. 외가를 귀인 양씨의 집이 아닌 적모 명성황후의 친정인 죽동(지금의 종로구)으로 대답하였다.이는 황후의 딸이라는 것을 의식했다는 것과, 그렇게 교육받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8살 때 고종이 승하하여, 거처를 함녕전에서 어머니가 있는 광화당으로 옮겼고, 10세 때 고종의 삼년상 이후 일본식 교육을 받으러 히노데소학교로 입학하였다. 옹주는 이 학교에서 개인 화장실이 딸린 교실을 이용하는 등 많은 특혜를 받았다.- 1925년에 덕혜의 동경 유학이 결정되어 오빠 영친왕의 집에서 거주하다 이후 기숙사에 살게 되었다.이방자의 수기에는 ‘덕혜옹주가 도착한 날 밤 눈물을 글썽거리며 앉아 있었다.’라고 써져있다.- 동경다.한택수 및 친일파는 영화 속에서 더 자극적이며 폭력적으로 표현되었다.8) 영화 속 역사 오류영화 에는 역사 오류가 몇 가지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첫 번째는 개인의 비애를 심화하기 위한 장치로 독립운동을 활용했다는 것이다.어머니의 죽음으로 공허해진 마음이 애국심으로 들어찬다는 설정과 황실이 독립운동의 중심에 나섰다는 점은 허구이다.두 번째는 친일파 한택수가 보내 온 기모노를 몸종이었던 복순에게 입히면서 옹주가 어떻게 기모노를 입냐고 되묻는 장면과 나라 잃은 황족의 옹주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모습은 허구이다. 옹주가 조선에서 다녔던 히노데 소학교는 일본인 기모노 착용이 의무였기에 옹주 또한 기모노를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세 번째는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생활할 때 독립을 위해 애쓰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는 장면과 한글학교를 세웠다는 장면도 허구이다.덕혜는 한글학교를 세우지 않았다.네 번째는 왕친왕과 덕혜가 고종의 시종인 김황진의 계획 하에 상해로의 망명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는 황족들의 상하이 망명을 추진한 김장한의 설득에 영친왕과 덕혜는 도주를 시도했다. 이때 애매한 태도의 영친왕과 적극적으로 탈출을 선택하는 덕혜옹주가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실제 망명을 시도했던 것은 영칭왕이 아닌 의천왕 이강이었다.의친왕의 경우 미국 유학 때 안창호 등과 교분이 있었고,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등 독립 투쟁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는데, 3.1운동을 배후에서 지도한 이후 상해 임시 정부로 망명하기 위해 중국을 잠입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다섯 번째는 영화 속 덕혜가 강제징용된 동포들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고 하며 조선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말라는 듯을 전하는 연설 내용이다. 이 또한 허구이다여섯 번째는 영화 속 김장한에는 고종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서울신문 동경특파원 ‘김을한’의 역할이 함께 묘사되었다.김장한과 덕혜옹주 간에 혼담이 오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고종이 사망한 후 무산되었다. 그리고 덕혜옹주를 찾고 정신병원 투병기사를 써서 한 현재 50여 칸이 잔존해있다.5) 일본이 두려워한 조선의 정신 의병들극 중 유진 초이는 자신을 찾아온 영국 데일리 메일의 종군 기자를 의병들에게 인도하여 인터뷰하게 했다.실제로 멕켄지 기자는 ‘대한제국의 비극’을 발간하였다. 맥켄지가 당시 한 의병에게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라고 묻자 의병은 “일본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자유인으로 죽는 게 좋소.”라고 답했다. 멕켄지는 1920년 ‘한국 친우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후원하였고, 2014년에 그 공을 치하하여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3. 고증의 문제: 상상력의 과잉과 시대 뛰어넘기1) 1870년대 초반 시기를 친일파와 의병의 대립 구도극 중 1875년에 친일파인 이완익을 처단하기 위해 의병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암살을 시도하는 부분은 말도 안된다.조선과 일본이 근대적인 외교 관계로 전환되는 시기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이후이다. 그 이전에는 ‘친일파’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다. 의병 역시 1895년 전후 최초로 봉기되었기 때문에 위 내용은 허구이다.2) 일제 식민지 시기의 역사상을 대한 제국 시기에 투영한성 시내에서 일본군이 민간인에게 총을 쏘는 장면 등 과장된 일본군의 행패를 묘사했는데, 이는 허구이다.대한제국이 마치 일본의 식민지인 것 같은 효과를 냈고, 일본이 대한제국 내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것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한 1905년 이후이다.3) 친러파의 위세와 역할에 대한 묘사 없이 친일파들만 부각드라마는 1902~1903년을 배경으로 친일파들만 부각했는데, 실제로는 1905년 이전 일본과 러시아, 미국 등이 복잡하게 경합했다.4) 애신의 부모의 일본에서의 항일운동극 중 이완익 암살 작전 실패로 고애신의 부모가 사망하고 이후 운요호 사건이 발생한다.일제의 조선 침탈은 운요호 사건에서 시작되는데, 운요호 사건도 터지기 전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5) 식민지 시기 무장투쟁과 같은 의병의 모습극 중에서는 의열단처럼 묘사했다. 이완익을 암살하려 했던 대 36년의 시간이 아니라 그 내부에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중심으로 한 근대화된 일상과 낭만이 존재하던 시기라는 것을 재현한 것이다.* 일본에 동화된 조선총독부 1등서기관 모던보이와 독립운동가의 연애담을 기반으로 한 영화 는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조선인이 사는 종로는 어둡고, 일본인들의 거주 지역인 본정은 환한 모습을 표현하면서 대비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영화 모던보이에서는 조선인이 사는 종로의 어두운 모습과 일본인의 거주 지역인 본정의 환한 모습을 대비시켰다.- 유행의 소비를 통해 외형적 근대만을 추구하는 여성상으로 일관시켰다. 근대적 생활을 권면하는 광고와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표상 사이에서, 이들의 소비 문화는 사치와 허영으로 매도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전차 속에서 팔이 부각된 여성들이 그려진 그림이 있는데, 시계나 반지 등의 장신구를 무리하게 뽐내려하는 이들의 사치와 허영을 풍자한 그림이다. 이렇게 퇴폐의 상징으로 각인되기도 하였다.- 모던걸, 모던보이는 못된껄, 못된뽀이로 불리면서 비판받기도 했다.- 영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공간은 본정이다. 독립투쟁의 장소로 '아네모네 카페'와 '미쓰코시 백화점'가 나오고 있다.아네모네 카페는 조선을 상징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고 기존적인 남성상과 여성상을 깨트리는 지표이다.- 미츠코시 백화점은 1930년 대 소비문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쇼핑을 즐기는 소비문화와 암살명령을 수행이 공존하는 장소이다. 미츠코를 통해 당시 모던 걸의 모습을 확인시킴과 동시에 쌍둥이지만 삶의 지향점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 두 명의 인물을, 한반도 안의 같은 민족이지만 친일이냐 아니냐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삶을 살고있는 조선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3. 독립운동과 저항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대부분 독립운동으로 귀결되는 것은 일본과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망각되어온 익명의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누가 기억하는가에 대해사 과거사 청산이 민았다.
    학교| 2022.12.19| 16페이지| 2,5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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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대학교 '역사학과 디지털 문화콘텐츠의 만남' 중간고사 정리
    [역사콘텐츠 수업 자료 정리]1. 역사드라마 성격 변화의 흐름과 최근 역사콘텐츠의 경향-> 1960년대에는 야사나 고전을 극화한 것들이 주를 이뤘고, 대표적인 작품으로 , 등이 있다.군사정권 시대였던 1970년대에는 국민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주체적 민족사관을 계도’하는 역사드라마를 제작했고, 60년대와 달리 인물 중심의 개연적 역사서술을 중점으로 ‘충,의,효,열’을 행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1980년대에는 컬러 방송이 시작되며 ‘복식, 병풍’등 색에 대해 고증하기 시작했고, 정사나 왕, 주요한 역사 속 인물을 그린 사극이 주를 이뤘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대표적인 예로 와 를 들 수 있다.1990년대에는 젊은 사극을 표방하며, 배경음악과 말투가 현대적으로 변화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 있는데, 이 작품은 남성 취향에 맞게 제작되었다. 극 중에서 정치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재해석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사극이 과거의 재현뿐만 아니라 “현재성”까지 갖춰야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시켰다.2000년대에는 방송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시청자와 제작진 간의 소통이 활발해졌고, 조선시대를 위주로 다루던 기존 사극에서 고려, 백제, 고구려 등으로 시대적 배경이 확대되었다. 또 퓨전사극과 픽션사극, 액션사극이 등장하였으며, 왕조사에서 인간의 생활사, 미시사 영역으로 확대되었다.최근에는 ‘팩션’의 개념이 등장하여, 작가의 상상력이 보다 더 중요해졌고, 이로써 ‘가능성으로써의 역사’를 해석한 작품이 많아졌다. 하지만 ‘팩션’ 작품이 많아짐에 따라 붉어지는 문제가 생기는데, 이는 바로 ‘역사 왜곡 문제’이다. 에서 역사서의 기록과 다르게 왜곡된 인물 설정을 하거나,에서 언니인 선덕여왕과 동생인 천명공주를 쌍둥이로 표현하는 등 대중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팩션 작품에서 말하고자하는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사실’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에 대해 보다 더 여실하게 고민하여 반영할 필요가 있다.1. 문화콘텐츠와 융합할 수 있는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영류왕과 대신들이 연개소문 제거를 모의했으나, 발각되어 역으로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했다.이후 연개소문은 대막리지가 되어 최고정치권력을 얻고,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제거하며 각 성의 성주들을 자신의 편으로 복속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압하지 못한 인물이 있는데, 이가 바로 안시성의 양만춘이다. 당과의 대외정책에서 초기에는 평화를 유지했지만, 연개소문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부터는 정권의 안정화와 집권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강경하게 당을 대했다. 당나라에게는 고구려를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몇 가지 명분을 삼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1.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을 응징하고 백성을 구원하겠다.(하지만 당 태종 또한 자신의 동생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인물로 정통성을 논하기엔 마땅치 않아 보인다.)2. 이전 고구려와 수나라가 전쟁했을 때 전사한 중국 백성들의 원수를 갚겠다.3. 중국 본토 지역은 모두 평정을 했는데, 고구려만 정복을 못했다. 고구려를 정복해야지만 동북아시아가 평정이 된다.이후 당 태종이 김춘추와 대면하고, 고구려와 백제 평정 이후 평양 이남의 백제 토지를 신라에게 주기로 약속했다.이로써 전략적 조건이 충족되어 나당 연합이 결성되었고, 고구려 원정에 대한 당의 명분이 자기 백성들의 ‘복수’에서 ‘신라 구원’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이는 나당연합이 신라를 고구려 원정에 끌어들여 양면으로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당 태종의 유인책이라고 볼 수 있다.2. 영화 과 안시성 전투-> 당 태종은 고구려를 공격해 요동성과 백암성을 함락시키고 안시성을 공격했다. 왜냐하면 안시성 뒤에 오골성이 평양으로 가기 전 마지막 방어선이기 때문에, 백암성에서 바로 평양성으로 가는 것 보다 훨씬 용이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시성이 함락되면 고구려의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연개소문이 15만 구원군을 파견했다. 주필산 전투에서 초반에는 고구려 군이 승기를 잡았으나, 3개로 분산된 당군 속에서 황제, 태종은 퇴각을 결심했다.삼국사기의 ‘성주는 절을 하고 황제는 비단을 줬다.’는 기록을 미루어 봤을 때, 양만춘과 당 태종이 서로 예를 갖추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당나라의 기록과 에서는 퇴각하는 당 태종의 뒤를 쫒아가는 연개소문이 묘사되어있는데,이를 미루어 당 태종이 퇴각할 때를 놓치지 않고 연개소문이 출정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또 영화에서는 당태종의 ‘현화낙백우설’을 묘사하여 서술하였는데, 후대 원나라 때 기록에 남겨져있는 내용이다.이가 전해져 박지원의 에도 기록되었는데, 에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당나라 기록이 섞여져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2. 황산벌 전투와 백제의 멸망-> 신라와 당나라군은 사비성 남쪽에서 7월 10일에 합군하기로 하고 움직였다. 신라군 5만과 당나라군 13만 규모의 대군이었다.이러한 당과 신라의 행동은 백제로 하여금 ‘우리가 아닌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함인가?’하는 혼란을 주었는데, 백제는이를 논의하기 휘해 ‘백제 전략회의’를 소집하여 공격 대상이 고구려가 아닌 우리일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이 전략회의에서는 ‘신라군과 당나라군 중 어디에 군사력을 집중할 것인지’에 대하여 내분이 있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1. 당나라군은 먼 바다를 건너와 피곤할 것이니, 기운을 회복하지 못했을 때 당나라 군사부터 빠르게 공격하자.2. 당나라군은 멀리서 왔기에 속전속결을 노려 날카로울 것이다. 신라는 우리에게 패한 적이 많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니, 빠르게 신라부터 쳐야한다.‘결론이 나지 않아 유배가 있었던 좌평 흥수를 불러 생각을 물어보니, “백강과 탄현”을 요충지로 삼아 방어하라 하여당나라를 막기 위해 백강으로 2만명, 신라를 막기 위해 탄현으로 5천명의 군사가 투입되었다.이때 탄현으로 간 군사들이 계백의 결사대이다. 계백은 “처자식이 적국의 노비가 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며 자신의 손으로 처자식을 죽이고, 전장에서 3개의 영채를 건설하여 4전 4승을 하는 등 선방을 이루어냈다.수적 우세에도 밀리던 차에 임전무퇴 정신으로 반굴과 관창이 전사하자사했으나, 역사적으로는 중풍에 걸려 김춘추의 아들인 문무왕이 전투를 지휘했었다. 또 실제로 신라군은 당과 고구려의 전투를 관망하였는데, 이를 미루어 신라군은 전투부대가 아닌 보급부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4. 영화 속에서는 남생이 고구려를 위해 당나라로 망명했다고 표현했는데, 역사적으로는 권력투쟁에서 진 후 자신의 의지로 망명을 요청했으며 당나라군의 향도군 역할을 자처했다.5. 영화 속에서는 남생의 회유로 동생 남산이 성문을 열었다고 묘사하였는데, 역사적으로는 남산이 남건에 불만을 품고 당나라에 항복했고 승려 ‘신성’이 당군 이적과 내통하여 평양성 문을 열어주었다.6. 영화 속에서는 남건이 평양성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후회하면서 원지로 유배당했다.1. 고려 속요 영화 을 보면 고려왕이 왕권보호를 위해 건룡위를 설치했는데, 이는 역사적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자제위’라는 명칭을 바꿔 쓴 것이다. 그리고 고려왕은 원의 간섭에 맞서고 개혁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도 공민왕은 원나라의 피가 흐르지 않았기 때문에 반원 정책을 펼친 인물이다.영화에서 차용한 고려 속요 은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한 작품인데, 여기서 드러난 교려사회 양상에 대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첫 번째, 고려 속요 에서 나온 ‘희희아비’는 색목인, 즉 눈의 색이 다른 이슬람인을 뜻하는 말이다. 이 색목인은 겁령구로서 고려에 오게 되었는데 이때 겁령구는 사속인, 즉 개인적으로 데려온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원나라 공주가 겁령구를 데리고 고려에 왔는데, 그 중 색목인들은 충렬왕 때 원공주의 권세를 배경으로 고위관리로 출세했다. 이로 인해 마마, 벼슬아치, 장사치, 만두, 설렁탕, 소주 등 몽고풍이 유행하게 되었다. 색목인들 중에는 각종 기술자도 많아 색목인에 대한 호감도가 어느 정도 생겼고, 이는 색목인들이 고려사회에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두 번째, 고려속요와 고려사 형법지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당시 불교계가 굉장히 문란하고 세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세 번째, 고려 의해 살해당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왕과 홍림의 결투를 그리면서 서로 죽게 된다.익비를 연탑실리로 그린 허구적 표현은 노국공주를 연상시키게 되어 공민왕 시기의 역사사실을 훼손시켰다.하지만 역사적 내용을 그대로 고증하게 된다면 많은 역사적 논쟁이 빚어질 것을 예상하여 고려사 속 내용들을 모티브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그려진 것이 영화 이다.영화에서도 묘사된 ‘천산대렵도’ 또한 실제로 공민왕이 그렸던 작품이다. 이로써 영화 은 공민왕대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임을 알 수 있다.1.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 어진과 의미, 왕(정의, 등장, 구장복)어진은 임금님의 참된 모습, 즉 임금의 초상화를 말한다. 어진의 제작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첫 번째는 도사이다. 도사는 왕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세조의 어진이 이에 속한다.두 번째는 추사이다. 추사는 왕이 죽은 후에 왕의 얼굴을 추상하여 그리는 방식이다.세 번째는 모사이다. 이미 그렸던 초상화가 훼손되면, 그 것을 다시 베껴 그리는 방식이다. 현재 남아있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도 이모작, 즉 이 모사를 통해 그려진 어진이고, 영조의 어진 또한 모사이다. 왕의 상징에는 도끼의 모양이 담겨져 있다. 선사시대 이래 중국에서 도끼는 특별한 권위를 상징했다. 즉 이 도끼는 권력자의 “생사여탈권”을 상징한다. 이 王은 三과 ?을 조합하여 천지인을 관통하는 사람을 뜻한다. 유교인들이 왕권의 정당성을 덕에서 찾았기 때문에, 도끼문양으로 왕권의 강제력을 상징하면서도 도끼자루를 없애 강제력에 의한 복종보다는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했다.‘구장복’은 왕이 즉위식이나 종묘 및 사직에서 제사를 지낼 때 착용한 옷이다. 이 구장복 상의에는 5가지 문양이 있다. 여기에는 산, 용, 불, 꿩, 호랑이와 원숭이가 있는 그릇이 그려져 있는데, 산은 국토, 용은 신성함, 호랑이는 용맹, 원숭이는 지혜를 뜻한다. 하의에는 4가지 문양이 있다. 유연함을 상징하는 수풀, 백성들을 배부르게 하는 쌀.
    학교| 2022.12.19| 11페이지| 3,000원| 조회(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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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1역사콘텐츠의 이정표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드라마 을 미루어 알아보는 역사콘텐츠의 방향성목 차Ⅰ. 서론Ⅱ. 본문1) 드라마 과 고증에 대한 제작진의 태도2) 드라마 극 중에서 묘사된 역사적 배경 및 사건3) 드라마 의 고증 오류와 그에 대한 진실Ⅲ. 결론과 제언Ⅳ. 참고문헌1. 서론OTT(Over The Top) 서비스의 등장으로 드라마나 영화 등의 콘텐츠 소비 형태가 기존 수동적 소비에서 능동적 소비로 전환되면서 콘텐츠의 접근이 용이해졌다. 이는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로 외부 문화생활을 꺼려하는 대중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고갈되는 소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여러 장르를 기반으로 많은 작품이 나오고 있고, 그 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은 역사 관련 콘텐츠이다. 역사학은 역사가가 사료들을 바탕으로 비교·분석하여 검증된 소재이면서, 자료의 수집 및 데이터화가 용이하기 때문에 활용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1“역사 드라마가 역사 기록을 얼마나 충실히 담아내는가, 혹은 역사적 개연성이나 허구성에 어느 정도 의존하는가를 묻기 전에 분명한 것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소환한다는 것이다. … 이는 역사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영역이 역사소환과 재현방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소환이 작가에 의해 선택되고 재배열되는 사건과 인물이라면, 재현은 드라마의 시공간 속에서 역사가 표현되는 방식이다. 바로 이 지점이 역사학자와 작가가 갈등하는 영역이다.”무언가가 커지고 성장하게 되면, 그 것의 그림자 또한 함께 커지기 마련이다. 이렇듯 역사 콘텐츠 흥행의 이면에는 ‘역사 왜곡’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병철은 설문조사를 통해 대중들이 사극으로부터 왜곡된 역사관을 습득했음을 제시한 바 있다. 이처럼 역사적 인물 혹은 배경의 과도한 재구성이 대중들의 혼란을 유발하고 잘못된 지식을 주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역사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져야할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얹히되, 기록이 남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작가가 지어낸 ‘가능성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는 더 신중하고 진중한 태도로 역사를 바라봐야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 를 들 수 있다. 광해가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정책과 행보의 극 중 묘사는 별다를 변화가 없었고, ‘가능성의 역사’로 재구성된 것은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있지 않은 15일 동안의 과거이기 때문이다.역사콘텐츠의 이정표를 찾아가는 이 여정에서 필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과 동행할 것이다. 필자는 역사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작진의 태도와 고증에 있어서의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은 제작자가 과거 재현에 있어 심사숙고했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같은 시대 배경인 의 역사 왜곡 논란으로 재조명된 이 드라마는 극 중 인물들이 비록 장엄하거나 영웅적이진 않아도, 그 시절 그 곳에서 자신의 삶을 묵묵하게 걸어가면서 울고 웃었을 평범한 사람들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하 본문에서는 위 작품의 ‘기획의도와 고증에 대한 제작진의 태도는 어땠는지.’, ‘극 중에 묘사된 당시 배경이나 사건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작품에서 놓친 부분은 무엇이며 실제로는 어땠는지.’를 하나하나 살펴볼 예정이다. 이후 이를 미루어 ‘역사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여실히 따져볼 것이다.2. 본문1) 드라마 과 고증에 대한 제작진의 태도드라마 은 소설 를 각색하여 제작하였으며, 1980년 5월 봄을 맞은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제작 되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운명처럼 서로 에게 빠져버린 황희태(이도현)와 김명희(고민시)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멜로드라마이며, 매년 돌아오는 오월이 사무치게 아픈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이 순간 각자의 오월을 겪어내는 이들에게 그 오월의 불씨를 전하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이다.Copyright ⓒ 2021 KBS“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된다고포' '광주 봉쇄' 등 큰 줄기를 표현했다. 왜곡하지 않으려 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 각자 다른 기억을 갖고 있겠지만, 그것을 저희 마음대로 생각해서 창작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제작 입장에서 조심스러웠다.”위 구절은 연출자인 송민엽 PD(이하 송PD)의 인터뷰 기사를 일부 발췌한 것이다. ‘역사왜곡이나 그 시절을 겪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될 수 있었는데, 부담이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송PD는 ‘조심스럽게 접근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시청률에 민감한 드라마 특성상 극 중 몰입도를 높이기 위하여 작가의 상상력을 첨가할 수밖에 없지만, 그 한도의 경계에 대해서 수없이 고민했음을 이 대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2) 드라마 극 중에서의 역사적 배경 및 사건 묘사“멀지 않은 과거였지만, 고증에 대한 부담은 있었다. 예로 극중 빠다빵이 등장했다. 부담되는 소재는 아니 었지만 미술팀과 저도 정확하게 하고 싶어서 찾아보 려고 했다. … 음악 부분은 충실히 재연하려고 했다. 쉽지는 않았다.”에서는 당시 시대적 사건뿐만 아니라 빠다빵이나 대학가요제, 다방 등 사소한 부분도주의 깊게 고증하여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였다.Copyright ⓒ 2021 KBS은 군부에게 희생당한 시민들뿐만 아니라 그에 맞선 운동가들도 조명하고 있다. 전남대 법대생인 이수련(금새록)은 극 중에서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며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위 수련의 설정에는 이 작품을 써낸 이강 작가(이하 이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하는 것 보다 더 대단한 것은 두려워도 하는 것인데, 두렵고 무서워도 신념을 위해 용기를 낸 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작가의 말을 듣고 ‘온고지신’이란 사자성어를 떠올렸다. ‘옛 것을 미루어 새 것을 안다.’는 의미이다. Copyright ⓒ 2021 KBS그림 4 같은 맥락으로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역사는용기와 아픔을 잊지 않고, 상기시켜 다시는 이런 참극이 일어나지 않게 주시하자는 취지에서 한 말일 것이다.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 이후에도, 광주에서는 전남대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시위가 계속되었다. 신군부는 5월 18일 0시를 기점으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학생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및 휴교령이 내려 졌으며, 전국 대도시에 군대를 투입시켰다. 광주로는 전남대·조선대에 7공수여단이 배치되었다. 이 극 중에서도 배우의 대사, 신문 등의 소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건의 발단과 과정을 묘사했다그림 5 . 이후 군인들은 광주 시내까지 진압하면서 강력한 탄압에 돌입했는데, 이에 시민들도 시위에 가세하고 대항하면서 5.18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사건이 절정에 치닫자 군인들은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는데, 극 중 명희의 동생인 명수는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인민군이 쳐들어왔다.”며 소리쳤다. 아이들은 ‘시민들을 공격하는 Copyright ⓒ 2021 KBS 군인들이 국군.’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국군이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상식이니까. 또한 얽히고설켜있는 정치적 이해관계들이 복잡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대사는 그런 상식까지 무너뜨린 ‘권력’, 그 권력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3) 드라마 의 고증 오류와 그에 대한 진실시대적 배경이나 사건을 잘 고증한 작품이더라도, 제작진이 간과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콘텐츠도 사람이 만든다. 대부분의 제작진은 그 시대 사람이 아닐 것이다.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배경이 되는 그 지역에서 살아왔을 확률은 더더욱 희박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기록과 사료들을 기반으로 제작한다 해도, 시대물 특성상 자료수집 과정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연 에도 고증 오류가 몇 가지 존재한다. 역사의 큰 줄기는 비교적 잘 묘사했으나, 지명 표기나 소품이 아쉬운 정도이다. 그렇다고 이를 역사왜곡이라 폄하하고, 쇄신하라 요구할 수는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과거의 완벽한 구현은 불가능에 가깝기? 필자가 그 아쉬움을 채우기 을 파헤쳐보았다.그림 6좌측의 사진은 극중 7 공수여단이 광주로 향하는 장면이다. 앞에 있는 표지판을 보자. ‘GWANGJU’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는 로마자 표기법이 제정되기 이전이었음으로 ‘GWANGJU’가 아닌 ‘KWANGJU’로 표기됐어야 했다. Copyright ⓒ 2021 KBS 이는 당시 5.18을 보도한 외신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그림 7 그림 8Copyright ⓒ 2016 5.18 기념재단그림 10 두 번째는 소주이다. 당시 80년대에는 ‘주정 배정제’시행되고 있었다. 이는 ‘소주 지역할당제’라고도 불린다. 1973년 주류제조 통·폐합 정책과 자도주 의무판매 제도가 시행되자 1도(道) 1주(酒)라는 원칙이 생겨났고, 1996년에 주세법 38조가 위헌으로 판결나기 전까지각 지방의 주류 도매업체는 의무적으로 자기 지역의Copyright ⓒ 2021 KBS 소주를 50퍼센트 이상 구입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서울 중심으로는 진로, 강원도는 경월, 부산은 대선, 경남은 무학, 전남은 보해가 중점적으로 판매되었다. 극 중 술집에서는 모든 테이블이 진로 소주를 시켜먹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고증오류라는 무거운 단어를 붙이기엔 너무 가벼워 보이지만, 위 내용을 리포트에 담은 이유가 있다. 필자는 전라도 분이신 부모님과 함께 위 드라마를 보았는데, 이 장면을 보시며 ‘뭔 광주에서 죄다 진로를 마신데, 보해를 마셔야지.’하시며 눈살을 찌푸리셨다. 우리 가족의 몰입도가 팍 식어버린 시점이었다. 시대극은 당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공감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놓쳤다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의 향수를 조금 더 여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이 장면을 포함시켰다.3. 결론 및 제언코로나 시대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군 역사 콘텐츠는 올 한해 활짝 웃었지만, 그 이면에는 맺힌 눈물이 가득하다. 유행에 편승하고자 철저한 검증과 고증 없이 무분별하게 찍어낸 시
    인문/어학| 2022.07.25| 7페이지| 2,000원| 조회(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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