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 제 명 :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를 염두에 두고 교재 3장의 내용을 참조하면서한일관계 악화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자신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 영향을 미친 자신의 사회적 존재조건에 대해 분석해 보시오.<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2. 한일관계 해법에 대한 나의 생각3. 나에게 영항을 미친 사회적 존재조건Ⅲ.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우리나라와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다. 하지만 아직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에 우리나라에게 몇 차례 큰 아픔을 주었고 그 상처는 우리국민들에게 치유하기 힘든 만성적인 상처로 남아 피해의식까지 가지게 했다. 우리는 과거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지만, 현재 일본은 한국과 신뢰관계가 훼손되었다는 것을 명분으로 해서 수출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신뢰 훼손 근거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정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 배경에는 일제 강점기 잔재해결이 여전히 외교적문제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잔재 청산을 어떻게 해야 원만한 결론이 지어질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깊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궁극적으로 역사의 중요성을 알고 역사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넘어설 수 있는 과정을 거쳐 가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감정적 대응보다는 상황 악화를 막는 데 힘을 모으고 여, 야 그리고 국민들이 함께 의견을 모아 초당적으로 협력하여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멋진 대한민국을 기원하면서 레포트를 작성해본다.Ⅱ. 본론1.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표면적인 원인은 10월30일 대한민국 대법원이 일본전범 기업에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이다. 이에 일본은 이 판결을 두고 국제법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한마디로 인정 못한다는 것이다. 한일청구권 협정이란 해방 이후 단절된 한국과 일본의 교류를 정상화한 1965년 협정이다. 한일 간의 청구권 논의는 연합국과 일본 간의 전후처리 협상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거하여 진행되었다. 일본은 이를 방패삼아 한국에 법적 근거에 입각한 청구권 문제의 제기를 요구하고 경제협력 방식의 채택을 유도했다. 미국 주도의 전후 국제질서 속에서 경제개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던 한국 정부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로 내려진 일본 법원의 판결은 우리 헌법에 반하므로 인정할 수 없고,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했다. 이에 일본은 8개월 만에 반도체 공정의 첨단소재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거기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 시켰다. 그리고 이어 우리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하면서 양국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지소미아(GSOMIA)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일컫는 말로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1월 23일 체결됐다. 이 협정은 유효 기간 1년의 협정으로, 기한 만료 90일 전인 8월 24일까지 협정 종료 의사를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1년이 연장된다. 그러나 정부가 2019년 8월 22일 지소미아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함에따라 2019년 8월 25일부터 자동파기 되게 됐다. 한국을 신뢰 할 수 없어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시키겠다하면서 지소미아는 유지하려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말이 성립될 수 없다. 최재성 민주당 일본경제침략 특별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지소미아의 전제는 양국 간의 신뢰다. 신뢰가 깨졌는데, 어떻게 안보와 관련한 협정을 유지할 수 있나”며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상황에서 지소미아 연장에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아베정부의 행보를 보면 의도적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될 정도이다. 일본은 자국의 안보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성조치로 밖에 풀이 되지 않는다.2. 한일관계 해법에 대한 나의 생각화이트리스트(White list)는 `안전 보장 우호국`이라고 하며, 자국의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부품 등을 수출할 때, 수출 허가 절차에서 우대를 해주는 국가를 말한다. 2019년 8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우리나라도 이러한 조치와 수출규제안에 맞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즉, 일본이 수출하는 상대국에게 군사정보에 관해 믿을 수 있는 나라에게 수입절차를 간소하게 해주는 제도다. 애초에 일본이 북한 때문에 우리 측 군사정보가 필요해서 체결된 거지, 우리한테 특별히 일본 군사정보가 필요한 건 아니다. 대일의존도도 줄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경제관계도 중요하지만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는 판단이 들었다. 첨단 소재 대일 의존도를 벗어나 기술 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본에게 많은 치욕을 당하고서도 일본과의 무역적자는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단 한해도 우리는 대일무역흑자를 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드리고 관심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주권국가로서의 국민들도 국가나 정부만을 탓할게 아니라 냉정하게 객관화해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 일본의 만행에 대해 우리 모두 알고 있고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상식적이며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다. 협상의지도 없어 보이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등을 지고만 있을 수도 없는 가까운 이웃나라임에도 틀림없다. 일본이 자해적인 선택했지만 우리정부는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했어야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 우리정부는 피해자 치유와 한일 관계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큰 숙제를 안고 풀어가야 한다. 객관적으로 역사와 경제를 구분하고 정당성을 따져 판단해야 할 것이다.3. 나에게 영항을 미친 사회적 존재조건어릴 적 마루타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마루타는 2차 대전 당시 일제 세균부대중 하나였던 '731부대'에서 희생된 인체실험 대상자를 일컫는 말로, '마루타'는 일본말로 통나무라는 뜻이다. 산 사람을대상으로 한 인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731부대에서는 1940년 이후 매년 600명의 마루타들이 생체실험 대상이 돼 최소한 3천여명의 중국, 러시아, 한국, 몽골인이 희생된 것으로 소련의 일제전범재판 결과 드러났다. 이 재판에서 731부대 관계자들은 마루타감옥이 만들어진 뒤 살아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아주 어릴 때 봤었는데 지금도 잔상이 남아있다. 고등학교시절 읽은 마루타라는 소설책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주인공이 731부대 배치 받은 한국계 일본 장교였는데 묘사된 내용이 너무 끔찍하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며칠 밤잠을 못 잤었던, 내게 트라우마를 남긴 책이다. 한국인을 상대로 인체실험을 하며 낄낄대던 일본인을 묘사한 부분은 치를 떨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반일감정이 뿌리내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이, 성, 이념 등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친구, 동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학습된 조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무의식중에 반일주의자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과제를 준비하고 인간과 사회를 공부하게 되면서 나의 이념, 정치적 입장, 가치관등을 객관화하여 살펴보고 나의 객관성을 의심해 보았다. 한국인이라고 다 똑같은 한국인이 아니듯 일본인을 모두 싸잡아 혐오하고 배척하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 일본인 여행객에 대한 불합리한 행동 같은 사례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런 식의 방법은 옳지 않다. 과거를 사죄하며 독립투사 추모비 앞에 무릎을 끊었던 일본 하토야마 전 총리 같은 사람도 존재했으며,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일본사람들의 노력도 뉴스에서 접할 수 있다. 일본전체를 혐오하고 민간 교류까지 위축시키는 것은 분명한 문제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찰적 인식과정인 ‘객관화의 객관화’ 과정을 거쳐야 더 발전하고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개관적으로 보고 국제적인 정당성을 통해서 타협하고 명분과 실리를 균형적으로 판단해 일본도 아시아의 구성원인 만큼 함께 호혜하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이열리길 바란다.
과 제 명 : 『심리학에게 묻다』강의 교재 9장 내 마음의 생김새에 등장하는 성격유형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에게 해당하는 성격유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한 유형을 선택하여 다음과 같이 작성하시오.1. 자신의 성격유형과 해당 유형에 대한 설명 요약2. 자신이 왜 그 유형이라고 생각하는지, 일상생활 속 자신이 경험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해당 유형을 선택한 이유 작성3.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했던 것(싸움, 다툼, 상처받음, 속상했던 경험 등)을 예로 들어 자신과 상대방의 성격이 어떤 점에서 서로 달랐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는지 작성1. 자신의 성격유형과 해당 유형에 대한 설명 요약세상 어떤 사람도 주도형, 사교형, 우호형과 분석형 중에 하나만의 유형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유형에 좀 더 가까울 따름이고 두 유형 혹은 세 유형을 상대방의 관계에 따라 혹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꿀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도형적 분석형 인간, 사교적 우호적인간인 것처럼 말입니다.어쩌면 갈수록 복잡다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이렇게 성격의 유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현명하고 결국은 이점이 그 사람을 성공으로 더 빨리 이끌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한 가지 유형일지라도 그 한 가지 유형 속에서도 세분화 시키면 여러 가지 유형의 성격들이 또 파생되기도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우호적 성격 일 것이나 어떤 환경의 변화의 정도에 따라 혹은 상대방의 성격의 정도에 따라 우호적 성격이 변화를 일으키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 변화를 일으키는 정도는 사람마다 물론 다 다를 것이고 이 점이 또 하나의 분류의 성격으로 파생되는 것입니다. 항상 저는 제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호적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가능한 한 모든 주위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여 왔으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부단히도 힘써온 것 같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 자신의 맞아 우호형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2. 선택한 우호형의 일상생활 사례를 들어 해당 유형을 선택한 이유제 인생에서 제 성격을 희미하게나마 인식했던 제일 빠른 순간은 유치원을 다닐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우호형의 사람이었던 제가 동경했던 성격은 주도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성격상 주도형의 사람들은 다른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그렇게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과 주변사람들을 이끌고 조정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리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물 속 에서 자신의 발을 부단히도 헤엄치는 그런 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사교형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성격의 우형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우호형의 사람이었던 저도 제가 속한 단체에서 몇 안 되는 주도형의 친구들을 유심히 봤었고 나와는 완전히 다른 그런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마음까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도형의 사람들은 성격상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얻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만의 아집에 빠지기 쉽고 이를 테면 자아가 미성숙 할수록 나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그 주도형의 친구는 저와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렇게 제가 생각하는 나쁜 시나리오의 주도형의 성향의 사람이 되었고 다른 분석형의 친구를 단체로 따돌리고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심시간마다 학교 뒷마당으로 불러내어 친구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척을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였었습니다. 분석형의 그 친구는 자신만의 언어로 항변하다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을 이내 알고는 입을 다물었고 현실에 순응하며 그렇게 피해자가 되어 있었습니다.우호형의 저는 그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그 친구의 옆에 있으면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과 저의 집이 가까워서 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친구를 도왔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초등학생다남고 싶다는 제 성격상의 특징 말입니다. 예전의 나는 항상 웃는 사람 이였고, 잘 웃는 것이 좋은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교재에도 나와 있듯 우호형의 약점은 주어진 일이나 시키는 일은 열심히 하지만 자발적으로 보이지 않고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고, 변화에 주저하며 안정을 유지하려는 속성으로 인해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러저러한 상황을 고려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하다거나 추진력이 부족하고 소심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또, 남을 도와주다가 정작 자기 몫을 덜 챙기거나 너무 쉽게 양보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기는 하지만 손해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¹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조화를 중요시하고 관계 중심적이니 우호형의 특징이이자 장점 이라고 여겼던 면이 약점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친구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겪는 그 순간에도 그 주도형의 친구에게 마음 깊숙이 무의식중에 어떤 동경심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동경심보다 저의 정의감이 더 컸던 것 뿐 일 것 입니다. 제가 절대로 하지 못하는 행동의 정반대쪽의 끝에 있는 사람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한테 있어서만큼은 주도형의 인간은 노력애서 되는 성격상의 우형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우호형의 초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중학교를 들어가서도 제 성격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성격을 바꿀만한 획기적인 사건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대제로 우호적이었고 아니 어떻게 보면 우호적인 평판을 얻기 위해 지극히 노력했었기에 만 잘 듣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한테 우호적인 성향의 사람은 원래 우호적인 성향이었다가 보다는 저절로 그것이 물 흐르듯 되 었 다기 보다 우호적인 평판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을 찾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한 친려가고 갚지 않는 나쁜 단 한사람의 친구보다 나름 합리적인 생각으로 다른 여러 친구와의 정의가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확실히 손해를 끼친 사람이었기 때문에 두 번 생각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우호적인 인간이라도 전혀 양립할 수 없는 두 편에게 다 우호적인 평판을 받으려는 기대는 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이 생기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뒤 수학여행을 떠난 날 밤에 우리는 숙소의 한방에 그 친구를 몰아넣고 단체로 그 친구를 몰아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실현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여러 친구들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우호형의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름 옮은 일을 하고 죄를 단죄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성인이 된 후에 그 친구와 찍은 사진을 봤을 때 한편으로는 나이도 어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그 친구가 이 사건을 기억하겠지 내지는 그 친구가 나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우호적인 사람의 특징일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우호적인 성격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다른 우호형의 사람들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제 기준에서 혹은 사회정의에서 정도를 벗어나는 판단이 서면 냉소적이고 조금은 공격적인 성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 점은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런 우호형의 성향은 저를 여러 가지 갈등 속에 놓이게 하였습니다. 주로 다른 사람들 특히 내가 현재 속한 소속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싶었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과정 속에 제가 손해를 보더라도 참고 기대를 충족 시켜왔습니다.하지만 이런 과정은 저를 가식적이고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였습니다. 사회생활에서는 모든 사람이 나를 다 좋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대에 부응하기 위해 손해를 보지만 수락을 합니다.하지만 수락을 하고 제가 손해를 보는 과정에 저의 마음속에는 갈등과 자괴감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자연히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은 우호형을 흔들만한 큰 변수가 없다면 그렇게 마무리는 지어지고 반복이 됩니다.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잘하는 사람은 주도형이든 사교형이든 분명 우호형은 아닐 것입니다. 저 같은 우호형은 웬 만하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부탁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에 대해 보상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3. 그동안 살아오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자신과 상대방의 성격이 어떤 점에서 서로 달랐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는지 작성저에게 주도형의 사람은 저에게 그리 좋은 기억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 사회생활의 결과물로서의 하나의 생각은 주도형의 사람과 친해져야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제 우호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랑 가장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주도형의 사람과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피로감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의 터득 물로써,제가 겪는 수많은 사건들의 기억의 회로의 결과물로써 기계적으로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제 기억속의 주도형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리 배려하지 않았고 좋게 말하면 자신만의 소신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신경 쓰는 저는 이 주도형의 사람에게 말로써 또는 행동으로써 상처를 종종 받지만 그렇다고 그 관계를 깨뜨리거나 변화를 원하지는 않습니다.하지만 아무리 우호적이던 저도 제 성향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일 때가 나타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환경적인 인간적인 사회적인 변수들이 파장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주도형 혹은 분석형의 사람을 바라보고 그를 존경하고 동경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주도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 과제명 : 역대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규제와 완화차원I. 서 론Ⅱ. 본 론1. 역대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규제와 완화차원2.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화정책1)수요측면2)공급측면3)직접적 규제측면3.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의견III. 결 론Ⅳ. 참고문헌Ⅰ. 서론지금까지 부동산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 대책으로 지금 정부는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부동산 집값 잡는데 당장 해답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다주택보유자들 규제도 많이 걸려있는데 이게 또 집값을 올리는 것이다. 왜냐면 양도 소득세를 많이 내야하니깐 집을 아예 안 내놓는 것이다. 그러니 또 집이 모라라서 집값이 오르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규제가 자주 바뀐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도 시도해보고 아니면 바꾸기도 하고 그러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도나 규제들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도 아닐 것이며 하루아침에 되면 부작용도 당연히 많을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또 지역이 균형적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희망하며 레포트를 작성했다.Ⅱ. 본론 :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1. 11~12대 대통령 전두환 정부전두환 대통령은 재임기간 완화와 규제 다시 완화가 반복되는 정책을 추진했다.초반에는 완화를 중점에 두었는데 그 배경은 제2차 원유파동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냉각 되자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통하여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당시 경기침체의 여파로 인한 미분양 주택이 증가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있었다.한시적으로 민간아파트에 대해 분양가를 자율화하는 것과 양도소득세의 세율을 인하는 내용과 양도소득세 탄력세율적용 기한을 연장하고 주택 금융구조를 재선하고 주택자금을 지원한다. 또한, 주거지 형질변경의 제한사항을 완화 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취. 등록세 감면 조치를 취한다. 이러한 조치직후 실시한 부양 정책의 영향으로 부동산시장 과열되자 규제를 했는데, 강하게 규제하자 부동산 시장은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침체되기 시작하고 다시 부양정책으로 전환했다. 이렇듯 전두환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은 완화와 규제가 반복되었으며 과열과 침체가 반복되었다.2. 13대 대통령 노태우 정부노태우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을 추친 했다.그 배경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부양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급등하기 시작하자 취임이후 강력한 규제 수요증가, 인플레이션 ,부동산 시장은 초 과열 상태였고 부익부 빈익빈 즉, 집 없는 서민들만 힘든 시기였다. 부동산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극과 극의 차이를 나타내는 현상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러한 부동산 시장을 투기시장으로 판단하고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조세규제, 공급확대, 토지공개념 도입 등 부동산 규제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더 과열 되었고 그밖에도 긴급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 등 강력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책이 시장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부동산 가격은 고공 행진이었다. 계속되는 강력한규제로 퇴임 전 안정적인 상태로 전환했다.3. 14대 대통령 김영삼 정부노태우대통령의 부동산규제정책의 효과로 주택시장은 안정적인 상태로 출발해 재임기간동안 부동산 시장은 ‘안정화’가 유지되었다. 그 배경으로 인해 노태우대통령에 비해 부동산관련 정책이 많지 않았다. 안정적이던 흐름은 집권말기 주택의 수급 불균형과, 양호한 경제상황으로 주택시장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동산실명제 실시에 따라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경계하는 후속조치를 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에 이어 부동산실명제를 전격실시하며 우리나라 부동산환경 투명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4. 15대 대통령 김대중 정부김대중 정부는 IMF국제 금융와환 위기를 조기에 탈출하기 위해 규제 완화 차원의 시장 활성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이전 정부들의 규제위주 정책대신 경제회복차원 거래활성화를 위한 각종 대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양도소득세 폐지, 분양가 자율화, 청약자격 제한 폐지 등 초기부터 부동산 규제 제도의 폐지, 완화, 지원 정책을 내 놓았다. 그러다 집권말기에 먼저 반응한건 전세가격이었다. 이어 주택매매가격이 오르며 큰 폭으로 과열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집권 마지막 해엔 양도세 감면 축소, 고가주택개념 도입, 재건축 아파트 자금출처 조사, 재건축기준 강화 등 부동산 시장 안정화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듯 초기에는 완화정책을 펼쳤지만 집권말기에 과열화로 인래 강력한 규제정책을 펼쳤다.5. 16대 대통령 노무현 정부김대중 정부 집권 말 급등한 부동산 시세로 노무현 정부는 출범 후 바로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해 규제정책을 내놓았다. 2003년 5월23일 분양권 전매 제한 제도와 1순위 자격제한 및 재당첨 자격제한 제도를 부활시키고 재건축 후 분양 제를 실시하고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지정했다. 또 DTI, LTV 대출규제,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 제, 양도세 강화,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 제, 종합부동산세 등 강력한 대책을 내놓았다. 이렇듯 강력한 수요억제 정책에 충돌과 비난을 받았다.6. 17대 대통령 이명박 정부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대부분 규제완화에 방점을 뒀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정책은 강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강화정책은 무리였고 침체기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높았던 미분양 아파트규제완화정책으로 퇴임 시에는 상당량이 감소하게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규제정책의 효과와 집권초기 서브프라임 사태는 오히려 과열된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가져오게 된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경제회복을 위한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을 펼쳐야 했다. 집권 초기 높았던 미분양 아파트도 규제완화정책으로 퇴임 시에는 상당량이 감소하게 되었다.7. 18대 대통령 박근혜 정부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규제 완화에 치우쳐져 있다. 부동산 완화 정책에는 청약1순위 완화,9억원 이하 신규 또는 미분양 주택 구입 시 5년간 양도세를 전액 면제, 생애 최초 구입 시 취득세 면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는 방안 등이 쏟아져 나왔다. 재건축 연한 완화 및 청약1순위 완화 대책은 부동산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기존주택은 물론 분양주택의 거래를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주택시장이 과열되자 16년 11월에 부동산정책을 규제로 방향전환했지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데 실패했고 정책 실패는 다음 정권까지 영향을 미치며, 부동산 시장을 과열을 가져오고 있었다.Ⅱ.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화정책을 1)수요측면, 2)공급측면, 3) 가격에 대한 직접적 규제측면에서 정리.1)수요측면6.19 부동산 대책은 신규 아파트 수요를 조절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선 수요억제 후 공급확대라는 전략으로 집값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를 하는 이유는 투기세력이나 갭 투자자들로부터 실수요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정책은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이란 수요를 막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수요를 영원히 막아둘 수는 없으며 타이밍에 잘 맞춰 공급이 받쳐줘야 가격 폭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수요를 이끄는 것은 재건축과 신규 아파트 분양이다.재건축도 새 아파트를 분양하기 위한 절차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신규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부동산 수요를 이끄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6.19 부동산 대책'은 모두 이런 신규 아파트 수요를 조절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투기 수요를 근절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2) 공급측면서울 집값이 다시 요동치면서 공급 부족 탓이라는 의견에 공급확대방침을 내 놓았는데 여기서 중요한건 공급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주택 공급이 많긴 하지만 수요자가 진짜 원하는 공급은 몹시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6.19 부동산 대책이 나왔을 때도 공급에 대한 정책이 빠져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수급 안정 유도"로 방향을 전환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수급 안정 유도의 핵심은 부동산 과열 원인을 투기적 매매가 아닌 공급 부족에서 찾고, 이를 위해 적정 수준의 주택 공급을 유도하는 수요분산을 위해서라도 도심지역과 가까운 곳이 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지나치게 외곽으로 떨어져 있으면 도심근처로 출근이 힘들고 공급 확대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어디에 어떻게 확대할 것이냐를 잘 파악해 정부의 계획대로 양질의 주택 공급이 이뤄져서 부동산 시장이 안정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