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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상학 및 도상해석학 연구
    본고는 도상학(iconography)과 도상해석학(iconology)의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이 두 가지 원리를 도판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 에우로페의 납치 일화를 모티브로 하는 도판과 유디트와 살로메에 관련된 도판이 이해를 돕기 위해 활용되었다.도상학이란 무엇인가? 도상학(iconography)이라는 용어는 두 개의 그리스 단어, 이미지를 뜻하는 ‘에이콘(eikón)’과 기록하기를 뜻하는 ‘그라페(graphein)’에서 유래했다. 에이콘은 영어의 이미지(image)에 해당하며 이미지 또는 상(像) 등의 도상(圖像), 즉 아이콘(icon)을 뜻한다. 이미지를 뜻하는 1차적인 의미에서 파생된 2차적인 의미로서, 아이콘은 비잔틴 미술과 동방 정교회의 전통 작품으로 대표되는 성화상(聖畵像)을 뜻하기도 한다. 이 2차적인 의미 문맥에서의 도상학은 비잔틴 미술과 동방 정교회 전통 작품, 더 나아가 기독교 미술과 불교 미술 등의 종교적 내용을 밝히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이 페이퍼에서는 1차적인 의미에 충실한 도상학을 다룬다.도상학은 한 미술가가 이미지를 기록하는 방법이며 또한 이미지 자체가 기록하는 것, 즉 이미지가 전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도상학은 이처럼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작품을 도상학적으로 분석할 때에는 대체로 형식적 특징보다는 내용이나 주제의 의미가 더 중요시된다.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도상학적 연구방법의 창시자로, 그의 이론에 따르면 미술 작품을 서술하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인지와 형식적 고찰 방식을 넘어 문화적 맥락을 읽어내는 종합적 직관이 필요한 작업이다.도상학과 관련된 연구는 도상해석학, 즉 이미지의 과학이라고 명명되는 보다 넓은 지평에 대한 연구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도상해석학(iconology)이라는 용어는 1593년에 출간된 리파(Cesare Ripa)의 도상 어휘 사전인 《이코놀로지아(Ikonologia)》에서 기인하는데, 후에 파노프스키가 이 용어를 다시 채택한이성을 뜻한 ‘logos'에서 파생된 것으로 무언가를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파노프스키는 시각예술에 있어서 단순히 주제를 확인하는 학문인 도상학에 대응하여 시각예술의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는 폭넓은 접근방식을 뜻하기 위해 도상해석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도상학이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에 그친다면 도상해석학은 더 나아가 자료의 기원과 의미까지 연구한다는 점에서 도상학의 해석적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두 방법론의 차이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에 의해 명료화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도상해석학은 전체적인 문화의 지평을 재구축하는 것으로 단일한 텍스트보다 많은 것을 포괄하여 예술적인 배경뿐 아니라 문화적인 배경을 모두 포괄하는 맥락(context)에서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도상해석학은 도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내용과 형식간의 관계 체계를 연구함으로써 종합적인 미술작품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며, 이는 회화적 모티브의 전통과 의미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파노프스키의 도상학적 단계는 전도상학적 기술 단계, 도상학적 분석 단계, 도상해석학적 해석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인 전도상학적 기술은 일차적이거나 자연적인 주제를 사실적, 표현적 모티브를 통해 읽어내는 것이다. 이는 사물과 사건이 형태로 표현되는 방식을 순수하게 읽어내는 방식으로, 양식사적 이해가 요구된다. 두 번째 단계인 도상학적 분석 단계는 이차적인 또는 관습적인 주제 분석을 목표로 하며, 이미지, 일화, 알레고리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 단계에서는 문헌 자료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며, 특정한 주제 개념이 사물과 사건으로 표현되는 방식을 읽어내는 유형사적 해석을 위주로 한다. 이 단계에서는 많은 문헌 연구를 필요로 하는데, 파노프스키가 그림에 관한 전례 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단계인 도상해석학적 해석은 본래 의미 또는 함의 내용으로 상징적 가치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이 표현해내고자 한 당시의 사회가 어떤 경향성을 띠는지 직관하는 단계로, 표현 의미적 분석 단계에서는 주제 개념을 읽어냈다면, 도상해석학적 해석 단계에서는 인간 정신의 본질적 경향을 읽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파노프스키는 그의 도상학적 단계 분류가 고립된 의미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이 세 단계가 하나의 미술작품의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적 측면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세 가지의 연구 작업이 상호 무관한 접근 방식으로 보일지라도 실제 연구의 과정에서는 유기체적 연결되고 융합된다는 것을 유념할 것을 당부한다.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시가》라는 연작 중 한 작품인 (도판 1)에 적용해보면 더욱 쉽게 파노프스키의 방법론을 이해할 수 있다. 하얀 소의 등을 탄 소녀가 물을 건너고 있고, 활을 든 어린 천사들이 캔버스 왼쪽에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읽어내는 것이 제 1단계 전도상학적 기술이다. 같은 이미지를 관습과 전례의 차원인 제 2단계, 즉 도상학적 분석 단계에서 보면 이 소의 등을 탄 소녀는 에우로페(혹은 유로파)를 의미한다. 우리는 ‘에우로페 납치 일화’를 알고 있기에 소 등을 탄 이 아가씨가 티루스의 왕, 아게노르의 딸인 에우로페이며, 제우스가 소로 변신해 그녀를 크레타 섬으로 납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 3단계인 도상해석학적 해석은 종합적인 해석 단계로서 여러 가지 원천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를 종합하는 단계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전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당대의 저서뿐 아니라 고대의 원전을 새롭게 번역한 작품들도 나왔다. 1546년에 로도비코 돌체는 그리스의 아킬레스 타티우스가 CE 2세기에 쓴 것을 번역했고, 이 작품을 티치아노가 읽었다. 티치아노는 그가 돌고래와 큐피드, 먼 산, 해변에 있는 에우로페의 친구들, 그리고 에우로페의 자세를 타티우스의 글에서 따왔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이처럼 도상해석학적 해석은 문화적 테마, 참조할 수 있는 당대의 문헌들, 과거의 문화로부터 전해 내려온 텍스트들, 예술적 선례 등을 포함한다.도상학적 분석 방식은 굉장히 설득력 있는 미술사방법론이지만,기 베네치아 화가인 마페이의 (도판 2)라는 작품은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왼손에 검을 쥐고, 오른손에는 잘린 남성의 머리가 놓인 ‘쟁반’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목에 이미 이 작품의 주인공이 유디트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이 작품을 제목 없이 감상했다고 가정했을 때는 언뜻 세례 요한의 목을 담은 쟁반을 들고 있는 살로메의 그림처럼 보일 수 있다. 관습적 전통으로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도판 3)처럼,쟁반 모티브는 곧 살로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따르면 살로메는 직접 세례 요한의 목을 베지 않고, 쟁반에 담긴 머리를 받았는데 왜 여기서 검이 나오는가? 이 의문은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젊고 아름다운 여인, 유디트를 연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손수 베어 ‘자루’에 담았다. 이와 같은 기록에 따르면, 그녀가 검을 들고 있는 도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감상자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 작품을 살로메로 해석한다면, 문헌은 쟁반을 설명하지만 검을 설명하지 못하고, 유디트로 해석한다면 문헌은 검을 해명하지만 쟁반을 해명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문헌적 지식의 조합이 아닌, 다양한 조건 아래서 특정 주제나 개념이 사물과 사건으로 표현되는 방식, 즉 유형사의 도움을 받아 이 작품의 주인공을 가려내야 한다.주인공을 찾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유디트가 그녀의 하녀와 함께 등장하기 때문에 신원이 확실한 유디트의 초상 중에 쟁반과 함께 그려진 예가 있는지를 찾아본다. 그리고 살로메가 그녀의 부모와 함께 등장하기 때문에 신원이 확실한 살로메의 초상 중에 검과 함께 그려진 예가 있는지 찾아본다. 결과적으로 파노프스키는 검을 들고 있는 살로메의 예는 찾지 못했지만, 16세기 독일과 북이탈리아의 그림들 중 쟁반을 든 유디트를 묘사한 여러 점의 그림들의 발견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며 유디트를 마페이의 그림 속 주인공으로 꼽는다. 쟁반을 든 유디트의 유형 적용한 반면에 유디트의 검 모티브는 살로메에게 적용하지 않았는가? 이런 의문점은 두 가지의 근거로 답할 수 있다. 첫 번째 근거는 검이 유디트와 다른 많은 순교자들의 정의나 용기와 같은 덕목의 상징으로서 정착된 명예로운 모티브이기 때문에, 검 모티브를 살로메와 같이 음탕한 여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 근거로는 14-15세기에 세례 요한의 목이 놓인 쟁반을 그린 그림은 이미 독립적인 경배화로서 알프스 북부의 독일과 네덜란드 혹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특별한 인기가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같은 독립적 장르로서의 경배화는 잘린 남성의 머리와 쟁반의 모티브의 결합이 고착됐다는 것을 보여주며, 결론적으로 살로메 그림에 검 모티브가 들어가는 것보다는 유디트 그림에 자루 대신 쟁반 모티브를 그려 넣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도상해석학적 해석은 문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특정한 주제나 개념에 대해 단순히 잘 익히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모티브를 선택하고 묘사하거나 이미지, 일화, 알레고리를 생산하고 해석할 때, 도상학적으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개별 자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마페이의 그림에서 보았듯 작품 해석은 그렇게 간단하게 원리를 적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품을 해석하는 이는 여러 가지 원리들을 두루 고려하여 적절한 해석을 내놓는 방식, 즉 종합 직관(synthethic intution)적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론을 적용할 자료들이 항상 객관적이지는 않기에 해석의 철저한 수정과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우리가 실제 경험과 문헌 자료에 대한 지식을 맹목적이고 무분별하게 미술 작품에 적용하여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된다면, 순수하고 단순한 우리의 직관을 신뢰하는 것은 잘못된 작품 해석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파노프스키가 당부하였듯 이 세 단계를 유기체적으로 생각하되 적절한 종합 직관을 발휘한다면, 감상자인 우리는 더욱 흥미롭고 유익하게 530
    예체능| 2019.11.23| 6페이지| 1,000원| 조회(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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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사연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삼한 선사시대 고조선 BCE 2333-BCE 108 고구려 BC 37-AD 668 신석기시대 BCE 8000-BCE 1000 청동기시대 BCE 1000-BCE 300 구석기시대 BCE 70 만년 ~1 만년 상 ( 은 ) BCE 1600-BCE 1046 주 BCE 1046-BCE 771 조몬시대 BCE 1 만년 야요이문화 BCE 200-CE 300 부여 / 동예 / 옥저 낙랑 BCE 108-CE 313 바리 , 서울 암사동 , 신석기 , 1971-1975 발굴 구연과 몸통 , 하단부에 각각 다른 문양이 배치된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이다 . 노지에서 낮은 온도로 구웠기 때문에 단단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 농경문청동기 , 전 대전 괴정동 , BCE 4C, 길이 7.3cm 농경문청동기는 앞면에 솟대를 , 뒷면에는 농경 의례를 표현한 청동 의기로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한국식 동검 , 충남 대전 괴정동 , 고조선 , 1969 년 입수 세형 동검 ( 한국식 동검 ) 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 비파형 동검 ( 요령식 동검 ) 과 달리 발생지가 한반도이기 때문에 한국식 동검이라고 불린다 . 춘추전국시대 BCE 8C-BCE 3C 진 BCE 221-BCE 206삼국시대 BCE 1C-CE 7C 남북국시대 CE 7C-10C 위진남북조 CE 221-589 수 CE 589-618 당 CE 618-907 아스카시대 CE 538-710 나라시대 CE 710-794 하쿠호시대 CE 7C 후반 -8C 헤이안시대 CE 794-1185 백제 BCE 18-CE 660 신라 BCE 57-CE 676 통일신라 CE 676-935 발해 CE 698-926 고구려 BCE 37-CE 668 가야 CE 42-CE 562 중대성첩 사본 , 일본 궁내청 서릉부 , 841 이 문서는 발해의 중대성 ( 中臺省 ) 이 일본의 태정관 ( 太政官 ) 에 보낸 외교 문서의 사본으로 , 발해와 일본 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외교문서이다 . 이를 통하여 양국의 외교관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 그 외에도 발해의 관제와 지방 행정 제도도 파악할 수 있어 그 가치가 크다 . 덴표문화 CE 8C~ 견고려사 목간 , 일본 나라현 헤이조 궁 , CE 758, 1966 년 발굴 이 목간은 고대 일본의 궁성이었던 헤이조 궁터에서 출토되었다 . 여기서 고려는 발해를 가리키며 , 일본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 용머리상 ,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상경성 , 발해 , CE 8C-9C, 1933-34 발굴 금귀걸이 , 창원시 의창구 동면 다호리 , 동합금제 ( 銅合金製 ), 가야 , 길이 9.7cm 가는고리에 세 가닥의 줄을 늘어뜨리고 장식을 매단 귀걸이이다 . 단순한 원형 고리에 표주박형 · 심엽형 장식을 매달고 , 다양한 길이의 줄을 매달아 변화를 꾀했다 . 이 용머리는 발해 도성의 궁전 건축에 조각품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 건물의 기단 부분을 한 층 더 높게 쌓아 , 그 곳에 끼워 장식하였다 . 귀 밑까지 찢어진 입 , 날카로운 이빨 , 툭 튀어나온 두 눈 등이 어떤 악귀도 얼씬하지 못하게 할 용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강서대묘 사신도 중 현무 고구려 BC 37-AD 668 맞새김무늬 꾸미개 , 평양 진파리 무덤 , 고구려 , 금동 , CE 5-6C 서쪽 천장고임 ( 강서대묘 ) 강서대묘는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외방무덤으로 , 화강암으로 무덤칸의 벽과 천장고임을 축조하였다 . 무덤 안의 돌 벽면에 직접 벽화를 그렸는데 , 기운생동하는 사신도와 유려하고 다채롭게 표현된 천장 그림들은 고구려 무덤 벽화의 절정기 수준을 보여준다 . 강서대묘 ,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 고구려 , CE 6C 말 백제 BCE 18-CE 660 천장고임에는 연꽃 , 비천 ( 飛天 ),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 天人 ), 기린 , 봉황 등의 상서로운 존재들과 산악 등을 그려 넣어 신선 사상과 불교적 내세를 표현하였다 . 태양 안에서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 삼족오가 묘사되어 있다 . 왕의 관 꾸미개 , 충남 공주 무령왕릉 , 백제 , CE 6C, 1971 년 발굴 왕의 관꾸미개는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가 좌우 비대칭으로 표현되었고 , 둥근 달개 장식이 달려있다 . 비단으로 만든 관모에 꽂아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독널 , 전남 영암 내동리 , 백제 , CE 4C-5C 독널은 세계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었다 . 특히 영산강 유역에서는 4-5 세기 무렵 흙을 높게 쌓고 그 안에 커다란 독널을 매장한 거대한 고분이 유행하였다 . 그릇 받침 , 충남 부여 신리 , 백제 , CE 7C 그릇 받침은 주로 의례 행위에 사용되었으며 , 무덤을 만들거나 특별한 행사를 위한 야외 제사의 필수품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말 탄 사람이 그려진 벽화 편 , 남포시 쌍영총 , 고구려 , CE 5C 쌍영총을 조사할 때 수습된 벽화 조각으로 널길벽 인물 행렬도의 일부이다 .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모습에서 당시 고구려인의 옷치장과 말갖춤 , 활쏘기에 능했던 고구려인의 생활을 맛볼 수 있다 . 전통 악기인 장고의 모습을 닮아 ' 장고형 그릇 받침 ' 이라고도 한다 . ' 대부 ' 가 새겨진 항아리 , 서울 풍납토성 , 백제 , CE 4C-5C 풍납토성에서는 ' 대부大夫 ' 가 새겨진 항아리와 ' 정井 ' 이 새겨진 항아리가 출퇴되었다 . ' 대부 ' 는 중국에서 관리를 일컫는 말이며 ' 정 ' 은 벽사僻邪의 의미가 있는데 기우제와 같은 제의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 BC 37-AD 668 통일신라 CE 676-935 발해 CE 698-926 팔찌 , 보물 623 호 , 금과 옥 , 경주 황남대총 , 신라 , CE 5C 표면에 파란색의 터키석과 회색 , 흑색의 보석을 박아넣고 금 알갱이를 붙여 꾸민 팔찌이다 . 형태나 장식기법으로 보아 서아시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금관 , 국보 191 호 , 경주 황남대총 , 신라 , CE 5C, 높이 27.3cm 머리띠에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장식이 세워진 형태이다 . 금관의 나뭇가지 도안에서는 한 국가의 통치자이면서 국가적 제의를 주관하는 최고 지배자 마립간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 유리병 , 경주 황남대총 , 신라 , CE 5C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수입된 제품으로 보인다 . 손잡이에는 금실로 수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 당대에도 매우 귀한 물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관꾸미개 , 금 , 경주 황남대총 , 보물 630 호 , 신라 , CE 5C 관모에 끼워 장식하는 것으로 , 새의 날개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다 . 양쪽 날개에는 수많은 달개가 달려 있어 날아갈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 말 탄 사람 토기 , 경주 금령총 , 신라 , CE 6C 방울을 흔드는 것은 주인의 영혼을 인도하는 하인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 인물과 말을 투박하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옷차림과 말갖춤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 철조불좌상 , 서산시 운산면 , 통일신라 , CE 8C-9C 크고 넓적한 육계 , 큰 백호 구멍이 특징적이다 .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식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 주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 이 불상은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전통을 잘 계승한 철불로 , 이후 고려시대에 많이 제작된 철불의 모본이 되었다 . 황복사 삼층석탑 사리상자 , 경주시 구황동 , 통일신라 , CE 706 황복사 삼층석탑의 2 층 옥개석에서 발견되었다 . 안쪽에 새겨진 명문에서는 당대의 불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으며 , 석탑 조영을 맡은 조직인 탑전塔典에 승려와 관인이 함께 포함되었다는 사실 또한 알려준다 . 연꽃무늬 수막새 , 토제 ( 土製 ), 발해 , 지름 16.9cm 발해의 막새기와는 제작 방식 , 구조 , 무늬에서 고구려 양식과 연관성이 있다 . 이 기와는 폭이 좁고 돌출된 주연부를 가지며 연꽃의 꽃씨와 둥근선으로 장식되어 있다 . 이러한 문양 요소들은 전형적 발해기와의 특징이다 . 말에 탄 사람의 오른손에는 방울이 들려 있는데 ,{nameOfApplication=Show}
    예체능| 2019.11.23| 4페이지| 1,000원| 조회(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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