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굴암 석굴(慶州 石窟庵 石窟)종목국보 제24호분류유적건조물 / 종교 신앙 / 불교 / 불전지정일1962.12.20소재지경북 경주시 불국로 873-243, 석굴암 (진현동)시대통일신라소유자석굴암관리자석굴암2017@@@@ ###1.소개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대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한편, 현재 석굴암은 내부 전면 공개 관람 시 항온항습 등의 문제가 우려되어 1976년부터 유리벽을 통한 외부관람을 실시하고 있다.2. 보존 환경- 제1차 공사(1913년~1915년)보수 전 석굴암은 천정의 석재가 약 1/3정도 떨어져 있었고, 나머지 천정도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또한 중앙불상을 파손할 염려가 있었으며, 토사가 내부에 흘러내려 석굴암이 크게 망가져 있었다. 이 공사에서는 석굴암이 다시는 허물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보수하는데 너무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석굴암 전체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한 덩어리로 만들어 놓았다.- 제2차 공사(1917년)제1차 공사 이후부터 석굴 내에 빗물에 의한 누수현상으로 불상이 오염되어 석굴 외부의 흙을 걷어내고 석탄 모르타르와 점토층 등으로 방수처리한 후 다시 성토(盛土)하다.- 제3차 공사(1920년~1923년)제2차 공사 이후에도 누수현상은 계속 발생되어 방수층을 신설하고, 배수시설을 개선하는 누수방지공사를 재실시하다.- 일제 시대 후기의 관리 및 보수공사 현황1923년 공사 이후에도 결로 및 누수 현상이 계속되어 석굴 내 청태(靑苔)가 발생되어 1934년과 1941년에 수증기를 이용하여 제거(steam cleaning)하다는 기록이 있다.- 해방 이후의 관리 및 보수공사 현황1945년 이후 사회적 혼란과 전란이 뒤따라 석굴암에 대한 보존대책이 거의 없이 그로 방치되었고, 석굴 내 오염이 심하여 1947년, 1953년, 1957년에 수증기를 이용한 세척작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석굴암을 보존해야 된다는 관심과 우려가 점차 높아지면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보수공사 조사심의회를 설치 보수를 위한 각종 조사를 실시하여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전실을 확장하여 목조 건물을 설치, 석굴의 벽을 이중 돔으로 하여 방수처리, 온수(溫水)를 이용한 석재표면 세척 등의 제4차 공사가 적으로 실시되었다.그러나 제4차 공사 이후에도 결로현상이 발생되어 전실출입문을 설치하고 공기조화기기를 설치하였다. 1976년에서 1977년까지는 유리벽 설치, 내부 조명 개선, 전면 기단 확장 등의 부분보수와 관람객 통제가 있었으며, 1998년에는 목조전실 기와 교체, 상부 수목제거, 공기조화기기 수리 및 교체 등이 실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