骨肉相爭골육상쟁/ 형제처럼 같은 혈족끼리 다투고 싸우는 것月下氷人월하빙인/남녀의 인연을 맺어 주는 사람. 靑天白日청천백일/세상에 아무런 부끄럼과 죄가 없이 결백함追遠報本추원보본/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지내고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것博覽强記박람강기/널리 읽고 잘 기억한다는 뜻으로 견문이 넓고 독서를 많이 하여 지식이 풍부함
20세기 전통한옥의 근대적 가치관의 수용20세기 초의 선구적 건축 형식을 가지는 근대도시한옥, 백인제가옥목 차Ⅰ. 백인제 가옥의 개요1) 백인제 가옥의 역사12) 가옥의 대표적 특징13) 소유주에 따른 변화1~2Ⅱ. 공간의 특성1) 사랑채3 ~ 62) 안채7 ~ 83) 문간채9 ~ 104) 별당 및 별당채10 ~ 115) 마당 및 담장11 ~ 12Ⅲ. 평가 및 의의121. 백인제 가옥의 개요1-1. 백인제 가옥의 역사20세기 상류층의 주택을 살펴보면 한옥을 근간으로 하여 외국 요소를 첨가하는 방식과 전통한옥을 지으면서 실용적 재구성을 한는 방식, 완전한 서구식으로 건축하는 방식이있다. 이러한 외래적 수용, 기존의 유교질서에서 벗어나 외래적 요소를 수용한 것, 실용적인 한옥을 만들기 위한것에서 기인한다. 현재 북촌에는 다양한 개량한옥들이 있는데 이러한 집단한옥 외에 20세기 초 개화기의 선구적 건축 형식을 가지는 근대도시한옥이 있다. 이 중에서도 우리는 한옥을 근간으로 하여 외국요소를 첨가한 화양절충식 한옥인 가회동의 백인제 가옥을 답사하고 가옥의 구성방식과 각 채의 용도, 구조, 재료 등을 조사해보았다.이 백인제 가옥은 10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러 소유주들을 거치면서 변화를 겪었는데 그 중에서 문화재로 지정되던 당시의 소유주의 이름을 따 백인제 가옥이라 부른다. 가옥의 원형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최초의 건립자이자 소유승한다. 그 구역에는 사랑채와 안채가 놓여져 있다. 사랑채의 뒷 정원으로 산기슭을 올라가듯 언덕을 올라가면 이 가옥의 가장 높은 곳에 북촌이 한눈에 보이는 별당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살짝내려오면 장인을 모시던 별채가 놓여있다. 이 곳은 안채와 사랑채보다 높고 꼭대기에 위치한 별당보다는 낮다.한옥에서는 각 채의 윗계가 다르기에 여러 높이를 사용하는데 백인제 가옥의 경우 5개의 레벨로 이루어져 있다.1-3. 소유주에 따른 가옥의 배치 변화ㆍ최선익 → 배치도 변화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가옥의 구성으로 변화시킨 것은 한상룡이 한성은행으로 양도한 이후 이 집의 새주인이 된 당시 31세의 젊은 문화사업었다.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아 개성의 청년갑부로 이름난 그는 20세 때부터 언론계에 몸담았는데 조선일보를 거쳐 조선중앙일보를 운영하던 중 경영난과 새 출자자의 등장에 의한 입지 상의 이유로 신문사를 떠나게 된다. 이후 최선익은 본 가옥에서 은거생활을 지속하게 되는데 본 가옥을 매입한 시점은 신문사를 떠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최선익은 가옥의 규모나 건축양식이 자신의 생활과 취향에 맞지 않았는지 크게 3가지의 변화를 주었다.1. 매입 후 4개월 만에 현재 도로변의 출입마당 부분인 95번지를 추가로 매입하고 불과 3일 후에 현재의 솟을대문채 상량을 하였다.2. 다시 4개월 뒤에는 대지의 오른쪽에 위치했던 기존 출입광장과 대문채 및 손님채가 있던 출입 및 손님영역을 93번지로 분할시켜 매각하였다. 이것은 93번지 영역의 용다가 은거 목적인 자신에게는 필요없고 면적까지 넓어 처리할 목적으로 미리 도로로 출입할 95번지를 준비한 뒤 분할시켰던 흐름으로 파악된다.3. 사랑채 오른편 정원 위에 추가로 지었던 화양절충식 주택도 이 시기에 철거. 이 행위는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의 발기인이기도 했고 일제에 협력하지도 않았던 그의 행적 및 ‘조선 사람의 생활에는 조선식 건물 양식이 이상적 가옥제도’ 라고 한옥에 대한 생각을 밝혔던 거의 면모를 볼 때 집안에 일본식 주택을 둘 수는 없었던 결절 한성은행의 총무로써 이완용을 배후에 두고 친일행위를 하던 인물이었다. 이런 그의 정황 상 일본세력과 모임을 가직 연회를 여는 활동이 잦았다. 사랑채와 사랑마당이 그의 사회적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집안의 공간이 되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혹은 친숙하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한 사랑채를 만들었다.2-1-2. 사랑채의 구조? 사랑채 외부 모습 ? 사랑채 내부 복원 후 사진집안의 중심에 사랑채가 자리 잡으며 사랑채를 축으로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이 나뉘게 된다. 높이 상으로는 이 가옥에서 3번째로 높은 위치에 있지만 위계상으로는 가장 높은 공간이다.사랑채는 안채와 연결된 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 사랑채는 손님방의 영역으로 사용되며 가옥의 전체적인 ‘ㅁ’자 구조에서 돌출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채의 본채는 주인의 방과 사교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북측 건넌방은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백인제 가옥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복도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가옥내의 복도형식을 따라 내부복도가 안채와 사랑채를 이어주도록 하였다. 이를 통하여 마당에 나가지 않고도 서로 다른 두 채를 오갈 수 있었다.2-1-3. 사랑채의 재료?사랑채에 쓰인 흑송의 모습만주 흑송 ? 흑송은 일본에서 구로마쓰로 불리며 쇼군의 정원수로 쓰일 정도로 일본인이 좋아하는 남성상징의 소나무다. 한상룡은 본인의 저택 건립에 이런 흑송을 사용하고 일본화된 본인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물론 일본 정재계인사들에게 친숙한 환경을 제공하는 건립의도를 실행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옥의 기둥높이는 3.1m로서 운현궁에 맞먹는 높은 주고를 자랑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높은 권세 자랑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2-1-4. 사랑채의 건축구조2고주5량가 - 공포부분을 간략하게 처리하였으며 보의 깊이에 굴도리와 장여가 짜인 민도리형식에, 보아지는 없고 장여 밑에는 소로를 두어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굴도리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주요부분에만 적용되어있다. 사랑채는 사랑요소-유리창유리창호의 설치는 기존의 한옥에서 열린공간이었던 대청이나 툇마루와 같은 집안 내의 공적 공간에 적용되어 있다. 근대기의 새로운 재료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한옥구조와 함께 병존하는 근대적 요소의 적용이다.- 벽돌구조의 중문과 협문조적조의 사랑중문과 협문, 사랑손님채의 안마당 쪽 조적벽 그리고 조적굴뚝이 있다. 전통한옥은 목가구조로 우리는 대부분 나무를 사용하는 건축을 많이 하였지만 근대기에 들어와 서양에서 자주 사용하는 벽돌의 이로움을 알리며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의 좋지 않은 토질로 인하여 벽돌을 기피했던 과거를 뛰어넘어 좋은 가마로 좋은 벽돌을 만들어 사용하는 한국 근대기의 시대상을 보여 줄 수 있다. 이 가옥에서는 벽돌로 차용된 부분에서 근대기를 받아들임을 보여주면서도 과시성의 요소로 사용되었다.? 사랑채 내부의 목문의 모습 ? 사랑중문의 모습사랑채에 적용된 일본적 요소-장마루, 2층 다다미방, 실내복도장마루는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까는 마루이며 일본 고위인사들에게 개방할 사랑채 영역 전체에 적용하였는데 사랑대청은 물론이고 다다미방 및 내부복도에까지 사용 하고 있다. 다다미방은 별도로 2층에 마련하였고 일본의 바닥 재료인 다다미를 깐 것은 물론 특이하게도 장마루를 깐 방식이 마치 다다미를 깐 것처럼 구성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냥 다다미만 깔아 일본풍을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바닥부터 일본적인 요소를 적용한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히는 부분이다.가옥의 평면구성은 5개의 영역으로 나눠져 있고 각 영역은 문으로 구획되어져 있는데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 고 연결시켜 주고 있는 요소가 실내복도이다. 이 실내복 도는 집안의 긴 동선을 연결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일본식 속복도의 차용으로도 볼 수는 있다. 한편으로는 한옥의 요소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실내복도는 퇴칸을 따라 조성되어있고 덧붙여진 유리창호를 제거해보면 원래의 한옥구조에서 보이는 툇마루의 연속에 의한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또 운현궁에서 보이는 복도각을 장 ? 출입문에 머름이 있는 모습2-1-6. 접객 공간 (출입마당부터 사랑채까지)사업목적의 연회 및 접객공간을 중심으로 한 사랑채자시키를 한옥의 접객공간인 사랑채로 극대화시키고 차노마는 가족의 생활공간인 안채로 그리고 엔가와 또는 속복도는 이들을 연결하는 복도로 치환하였다고 볼 수 있는 평면구성방식의 일치점초입에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광장과 솟을대문 및 그 뒤에 숲에 가린 손님채를 두어 넓고 큰 첫인상을 주고, 본채로 가기위한 계단을 타고 오르게 하여 경성 시내가 보이는 전망마당에서 시선을 트이게 했으며 사랑채와 안채로 가기위한 행랑마당에 해당하는 이곳에 근대식 붉은 벽돌로 구획한 담장과 사랑중문을 설치 해 자신의 근대성과 안목을 뽐냈다. 여러 단차이가 있는 대지 전체를 통해 단계적으로 진입시키면서 방문객이 최종 목적지인 사랑채에 닿기 까지 점진적으로 여러 인상을 받게 하기 까지는 공적 공간의 성격을 띠게 하였고 더 높은 뒤쪽 후원으로는 본인만의 사적공간으로 구분한 것도 이 집의 단면적 공간 활용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2-2. 안채2-2-1. 안채의 구조백인제가옥의 왼쪽에 위치한 안채는 전체적으로 ㄱ자 형태의 겹집구조이다. 근대시기의 생활방식이 늘어난 살림살이를 수용할 추가적 공간 확보의 필요성 의해 이와 같은 구조를 띄고 있다.? 영역을 구분하는 목문2-2-2. 안채의 형태와 구성안채는 안방영역과 건너방영역 및 아랫방영역으로 누눌 수 있다. 백인제 가옥의 평면적 특징은 기존 한옥을 구성했던 각 방을 독자적인 각 영역으로 변환시켰다는 것이다. 이 영역화는 기존 방방마다 대청이나 누마루 등을 부가시켜 각 방마다 딸린 대청을 가지게 하면서도 각 영역의 경계를 목문으로 구획시킴으로서 가능했다. 건넌방은 며느리가, 아랫방은 할머니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었다.온돌문화로 부엌은 취사기능과 난방기능을 겸한다. 그리고 온돌 구조 특성 상 부엌 옆에 안방영역이 면하고 그 옆으로 안방대청, 건넌방 영역 순으로 배치된다. 여기서도 온돌과 마루가 한 지붕 아래에 있음을 확인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