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와 미학제 2차 과제주제 : 한국사진사에 대한 조명한국사진은 시작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주요 내용 및 사진행사들을 조사하여 서술하시오학교학번이름제출일자목차1. 한국 사진의 시작 ; 1870년대2. 한국 사진의 도입 ; 1880년대3. 한국 사진의 보급 ; 1890년대~1900년4. 을사늑약;1905년 고종의 초상5. 일제강점기 ; 1910년대 YMCA사진6. 예술사진 ; 1920~1940년대7. 광복 ; 1945년 마포 형무소8. 리얼리즘 사진 ; 1950년대9. 사진의 정착 ; 1960년대~1980년대10. 사진의 해방 ; 1990년대11. 오늘날의 사진 ; ~2000년대12. 한국의 사진학도 양성13. 2021년 여성사진사14. 출처 및 참고문헌1. 한국 사진의 시작 ; ~1870년대사진을 처음 찍은 한국인은 1860년쯤에 동지사은사(冬至謝恩使)로 중국에 갔던 이의익(李宜翼)과 그 수행원들이다. 이들은 베이징(北京) 소재 러시아인 사진관을 찾아 초상 사진을 찍은 뒤 이를 갖고 돌아와 친지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우리나라에 언제 사진기술이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한성순보 1884년 2월14일자 잡보란에 실린 기사를 근거로 도입 시기를 유추하고 있을 뿐이다.다만 한국의 사진이 최초로 찍힌 것은 1871년 7월 미국의 아시아 함대가 5년 전에 발생한 제너럴 셔먼 사건에 대한 응징과 통상을 목적으로 쳐들어 와 시작된 한미전쟁인 신미양요(辛未洋擾)때이다. 우리가 대패한 이 전투에 대한 우리의 기록은 별 것이 없는데 미군 쪽에는 해군장관에게 보내는 함대사령관의 공식 보고서, 상륙작전계획서, 작전에 참가했던 해병대 장교의 원정보고서, 편지 등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다.그리고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사진 기록이 상당량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쟁 기록사진은 물론 사진 자체가 흔치 않던 시절에 우리의 방어진지인 진(鎭)과 돈대, 이를 지키던 군인들의 모습 그리고 침략군인 미 함대와 미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종의 초상고종황제가 1905년 을사늑약이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된 덕수궁 중명전에서 그해 찍은 초상사진이 2015년에 세상에 나왔다. 이 사진은 국내 사진계 선각자이며 근대서화가로도 유명한 해강 김규진(1868~1933)이 찍었다는 기록이 함께 붙어있어 한국인이 찍은 가장 오래된 고종황제의 초상사진이다.고종은 병풍 앞에서 황제의 복식인 황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쓴 채 앉아 비스듬한 시선으로 앞을 보고있다. 흑백사진이지만, 황룡포와 익선관을 각각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채색했다. 사진을 붙인 배경지 오른쪽 상단에 붓글씨로 ‘대한황제진광무구년재경운궁(大韓皇帝眞光武九年在慶運宮)’이란 붓글씨 제목이 있고 하단에는 ‘김규진조상(金圭鎭照相)’이란 글씨가 장식무늬와 함께 인쇄돼 광무 9년인 1905년에 경운궁(덕수궁)에서 김규진이 찍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또 사진 아랫부분에 8각형 기하무늬가 연속된 서양식 타일 바닥이 보이는데, 이 타일 무늬가 현재 덕수궁 중명전 1층 복도의 타일과 똑같아서 촬영 장소가 을사늑약을 체결한 중명전이란 것도 드러나 있다.한국 사진가가 찍은 대한제국 황실 사진 가운데 가장 시기가 이른 것으로 판명된 사진이다.사진이 부착된 앨범과 앨범을 보관한 나무상자까지 남아있을 뿐 아니라 입수경위가 명확한 원본 사진이어서 한국 근대사 및 사진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이다.5. 일제강점기 ; 1910년대와 YMCA사진한일 병합 조약 또는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이루어진 합병조약이다. 한일 합방 조약(한국 한자: 韓日合邦?約)이라고도 불린다.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루어져 이날 일본 제국 천황이 한국의 국호를 고쳐 조선이라 칭하는 건과 한국 병합에 관한 조서를 공포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국권피탈, 경술국치 등으로 호칭하기도 한다.의 ‘특수인화법’편에서 카본인화, 오일인화, 브롬오일인화, 고무인화법 등을 사진가들 스스로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스스로 이 방법을 사용해 다수의 사진을 제작해내기도 했다.이 시기에 퍼져나간 예술사진은 서양 사진의 역사에서 189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픽토리얼리즘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부드러운 연초점 효과로 상징되는 회화적인 분위기가 이러한 유형의 사진을 지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사진의 예술성에 대한 고집스런 옹호가 깔려있다. 픽토리얼리즘이 양질의 인화와 뛰어난 항구성을 추구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픽토리얼리즘 사진가들은 은염보다 안정성이 뛰어난 백금인화를 선호했고 양질의 인화를 얻기 위해 특수인화법을 사용했다.신낙균이 속해있던 경성사진협회는 한국인으로만 구성되어있었으며 정해창은 우리나라 최초로 제1회 예술사진전람회를 광화문에서 개최했다. 서순남은 조선일보 후원으로 정해창에 이어 두 번째로 평양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사진을 교육하고 있던 기관들은 아래와 같다.? 동광사진학원: 남영동- 1929년 3월 홍인택이 설립- 교육과정: 보통과(6개월), 속성과(3개월) 각 50명씩 100명 모집? 남성사진전습학원: 조선 남부 지역에서 유일한 사진교육기관- 1920년대 후반 대전 현 은행동에서 진두성이 설립- 1933년 충청, 전라, 경상의6도를 망라한 남조선 사진협회 설립- 무직청년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 년 2회 실습생 양성 본과, 속성, 연구과로 분류? 근화여학교 사진부: 여성교육기관의 등장- 여성사진교육사에 획을 그은 사건- 1926년 학교 설립자이며 여성운동가인 김미리사에 의해 설치- 교육과정 : 4개월 과정의 본과와 2개월 과정의 연구과- 정규과정인 6년제 보통과, 4년제의 고등과 그리고 특별과(사진, 음악, 어학, 기예) 1927년 2월 이전에 사진과는 폐과가 되었음- 초대 사진교사 : 이홍경 - 경성의 일류사진기술자, 남편 채상묵과 함께 경성사진과 운영, 1921년 조선 최초 부인사진관 정 선수의 사진이다.일장기 말소를 직접 사진기자 서영호에게 지시한 신낙균을 비롯해 편집과정에서 공모한 장용서, 사회부장 현진건, 체육부 기자 이길용, 화백 이상범 등 사건 관계자들은 일경에서 한달 여간 고초를 당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와 동아일보는 무기정간을 당하고 사건 관련 기자들을 비롯해 신낙균 또한 파직과 더불어 언론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경성사진사협회가 구성되어 예술사진이 시작되고, 신락균에 의해 회화의 영향을 받은 예술사진이 주창되었다. 회화적 분위기의 영상을 창출해 낸 예술사진은 사진의 가치를 회화와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초기 한국의 사진은 회화주의 사진으로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는 자연의 풍경을 주제로 사진을 아름답고 곱게 연초점 묘사기법에 의한 회화와 가까운 표현 양식으로 회화주의적인 예술사진 사진이 주류를 이루었다. 사진이 뿌리를 내린 1930년대 초창기까지는 영업사진가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경성사진학강습원(1934-1937)- 1934년 YMCA 사진과(1933년 폐과)의 후신으로 무교동에 설립, YMCA 건물의 교실을임대해서 사용, 신락균이 원장- 경성사진사협회, 경성인상사진연구회, 그리고 경성사구회 등 세 단체가 연합하여 YMCA사진과를 인계 경영하기로 함- 운영주체가 한 종교단체에서 민간단체로 바뀐 교육기관의 탄생- 원장 신락균이 일장기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1937년 2월 폐교- 신락균(申樂均)에 의해 회화의 영향을 받은 예술사진이 주창되었으며 사진의 가치를회화와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3개월 후 5월28일 ‘경성사진학강습소’라는 명칭으로 복활해서 일제 말기까지 존속- 1910년 개설된 YMCA 사진과를 전신으로 한 ‘경성사진학강숩원’ 또는 ‘경성사진학강습소‘는 중간 중간 폐교의 위기를 딛고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나라 근대사진교육을 담당해온 대표적인 사진교육기관이다.- 1930년대 동광사진학원, 남성사진전습학원과 함께 조선 이남지역 사진교육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사진교육기관? 국제사진학원(1930- 사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1950년대를 기점으로 전 근대와 근대로 분류된다. 50년대에는 한국사진이 해외사진전에 출품되면서 한국사진의 국제화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까지는 한국사진의 초창기로서 살롱사진(Salon Picture)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50년대에 일어난 한국전쟁 등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비판 묘사하는 경향으로서 리얼리즘 사진이 나타나게 되었다.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생활의 모습을 담은 생활사진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동아일보(1920. 4. 1), 조선일보(1920. 3. 5) 등이 복간되면서 보도사진이 시작되었고, 8·15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예술사진에서 벗어나 사실주의 사진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1940년 8월 10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일제의 강요로 폐간되었다.임응식, 이명동 등이 주동이 되어 거리의 빈민 생활과 걸인 등의 추한 사진을 등장시켜 리얼리즘 사진이 대두되게 되었다. 이경모의 여수·순천반란사건 도큐먼트는 다큐멘터리사진의 시초가 되었다.1950년 2월 서울사진재료상조합이 정한 사진 협정 가격(현상료:35MM 200환, 명함판 인화료:100환) 1953.10.24 현대천연현상소를 설립, 종합 컬러 현상 인화를 시작하여 미8군에 납품하였다. 1956년 천연색 필름의 현상을 미보양행 ANSCO 대리점에서 실시하였다.1952년 대구의 “한국사진예술학원”에 이어 부산과 대구를 중심으로 1976년 3월 28일 부산상공회의소 소회의실에서 영남지역 각 대학 사진과목 담당교직자들이 모여 “영남사진학회”(현 현대사진영상학회)를 창립한다. 초대회장 김태한, 부회장 강상규 이준무, 창립회원 김태한 강샹규 이준무 장진필 김일창 정윤길 고석희 이영조 김광석 김기순 안승표 정광삼 이완우 등이 영남사진학회에 포함되었다. 이 학회는 학술강연회 개최와 학술지 발간을 주요 사업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학국사진예술학원- 1952년 대구에서 최계복(1909 - 2002)에 의해 설립- 최계복은 1926년 일본 교토 영남사진기점에서 7다.
1차 과제사진과 회화의 차이점과 공통점사진과 영화의 차이점과 공통점학교 :학과 :학번 :이름 :목차1. 서론1.1 사진, 회화, 영화의 역사와 관계1.2 사진, 회화, 영화의 정의2. 본론2.1 사진과 회화의 공통점2.2 사진과 회화의 차이점2.3 사진과 영화의 공통점2.4 사진과 영화의 차이점3. 결론3.1 사진, 회화, 영화가 주고받는 영향4. 출처 및 참고문헌1. 서론1.1 사진, 회화, 영화의 역사와 관계▲ 최초의 영화를 찍은 시네마토그래프 사진, 회화, 영화의 관계를 살펴보려면 먼저 이 세 분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최초로 탄생한 것은 회화로, 선사시대의 벽화에서 시작되었다. 회화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모사하는 것보다는 사물에 담긴 속성이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하지만 1820년대 이후 유럽에서 ‘사실주의’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는 사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사진은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보조적인 광학 장치에서 시작하였다. 그리고 1826년 공학자였던 조세프 니에프스가 아크릴 건판에 옵스큐라를 통해 이미지를 고정시키는 ’헬리오그래피‘를 찍어내며 최초의 사진이 탄생했다.마지막으로 탄생한 것은 영화로 1890년대에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상업적 상영은 1895년에 이루어졌으며 이라는 짧은 내용의 작품이었다.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우리는 각 회화, 사진, 영화가 각각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세 분야는 서로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1.2 사진, 회화, 영화의 정의[사진]: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 형상.[회화]: 여러 가지 선이나 색채로 평면상에 형상을 그려 내는 조형 미술.[영화]: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2. 본론2.1 사진과 회화의 공통점(a) 사진과 회화는 3차원 세계를 2차원화 하는 평면적인 예술이다.현실에서 물체는 형상을 가진 입체적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진과 회화는 평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이다.(b) 멈추어 있는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시각적 예술이다.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작가의 생각을 추측하며 예술을 감상하는 것처럼 우리는 퓰리처상을 받은 ‘베트남-전쟁의 테러’를 보고 사진사가 어떤 생각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었는지 추측할 수 있다. 두 분야 모두 멈추어 있는 이미지를 통해 예술가의 생각을 전달한다.(c) 사진과 회화는 물체화 할 수 있다.이것은 영상과는 차이를 갖는 사진과 회화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사진과 회화는 전기적 장치 없이 인화하거나 그려내어 물체로 만들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d)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는 예술이다.두 분야가 영화와 다른 점으로 멈춰있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한순간에 일어나는 장면을 포착하여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다.2.2 사진과 회화의 차이점(a) 사진은 과학적 발견에서 탄생한 예술이다.공학자였던 조세프 니에프스가 아크릴 건판에 옵스큐라의 상을 옮긴 것이 사진의 최초였던 만큼, 처음에 사진은 예술의 한 분야보다는 기록의 특성이 강했다. 이러한 사진이 예술을 생산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회화주의 사진이다.회화의 경우에는 과거와 비슷하게 재료를 통해 현실을 모사한다. 이는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b) 사진은 사물을 그대로 옮기는 인식의 예술이지만 회화는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간 창조적인 예술이다.(c) 사진은 덧셈으로 시작해서 뺄셈으로 끝난다.덧셈이란 사진을 찍을 때 가급적 많은 요소를 넣고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달리 뺄셈은 화면을 단순화시켜 추상성을 강조하는 것이다.회화의 경우도 유사하게 처음에는 현실을 자세히 묘사하다가 추상적이고 단순한 형태를 통해 화자가 원하는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한다.사진과 회화가 다른 점은 사진의 경우 뺄셈을 통해 압축되고 정제된 어느 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게 함으로써 감상하는 사암이 전체를 짐작하게 한다는 점이다.(d) 사진은 재현하고 회화는 투영한다.사진은 예술적인 표현 외에도 기록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인 증빙을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며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초상을 찍기도 한다. 사진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사진은 이미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회화의 경우 작가의 생각을 투영하며 기록보다는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사람을 묘사한 캐리커처 등에서 이런 점을 엿볼 수 있다. 똑같이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도 사진은 표정이나 행동을 잘 전달하는 반면 회화의 경우에는 개인의 성격이나 외모적 특징들을 더 잘 투영한다.(e) 사진은 시간을 포착하지만 회화는 공간을 표현한다.사진에서 색채를 표현하는 방식은 시간이다. 같은 공간,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라도 새벽에 찍은 사진과 저녁에 찍은 사진은 다르다. 반면에 회화는 원하는 공간을 비교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표현한다. 회화에서는 시간보다는 사용하는 색이나 형태, 재료의 질감 등이 더 확실한 표현요소이기 때문이다.2.3 사진과 영화의 공통점(a) 시간성을 생명으로 한다.사진과 영화가 회화와 공통적으로 다른 점은 시간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진은 그 사진을 언제 어디에서 찍느냐가 중요하며 영화에서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몇 분, 혹은 몇 시간을 찍은 것인지도 중요해진다. 영화에서 각 영상의 재생 시간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b)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사진과 영화는 필름을 사용하여 찍는다는 물리적인 특성도 공통적으로 가지면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재현성을 가진다. 두 매체 모두 현실의 거울로서 동시대 사회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c) 사진과 영화는 모두 복제가 가능하다.사진과 영화 모두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복제가 가능한 예술로 이 두 매체는 회화가 유지했던 예술의 ‘유일무이함’ 또는 ‘일회성’을 잃게 만들었다.(d) 영화와 사진은 기록하면서 동시에 허구를 만들 수 있다.찰리 채플린의 에서 사람이 시계에 매달려 있는 장면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태롭다는 감상을 준다. 하지만 이 장면은 실제가 아닌 허구로 사람들은 착시를 이용한 허구의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와 사진이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연출로 사람들에게 의도된 장치를 이용하여 설정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연출을 미장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기록영화나 다큐멘터리와 같이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기록사진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찍어내면서도 찍는 사람이 소품 등으로 연출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사진과 영화의 공통점이다.2.4 사진과 영화의 차이점(a) 평면예술과 영상예술.사진은 움직이는 현실의 한 특정 순간만을 포착한 정지된 예술인 반면 영화 이미지는 현실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동영상이다.(b) 영화에서는 짧은 영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몽타주를 활용한다.몽타주는 따로 촬영된 화면을 떼어 붙이면서 새로운 장면이나 내용을 만드는 기법이다. 영화에서는 일련의 짧은 샷들을 제약된 공간, 시간, 정보에 연속하게 편집하는 테크닉을 뜻한다.사진에서는 정지된 한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표현하기 힘든 방식이다. 반대로 사진에서는 회화와 유사하게 콜라주를 통해 유사한 기법을 보여줄 수 있다.몽타주와 같은 연출 방식은 영상매체인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큰 개별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c) 영화는 소설처럼 허구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다.사진 또한 하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만 단편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만큼 영화의 긴 호흡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다.(d) 영화는 현실적인 시간을 왜곡하거나 축약 시켜 영화만의 ‘고유한 시간성’을 생산해 낸다. 사진은 특정 시간의 순간을 보여주지만, 영화는 정해진 타임라인 없이 어제와 오늘을 넘나드는 연출을 보여줄 수 있다.(e) 영화는 공감감적인 요소를 가진 현장성이 높은 매체이다.영화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과거이기는 하지만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사진보다 현장감이 있다.그리고 영화의 경우 사진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최근 발달한 3D, 4D 영화가 그렇다. 영화는 단순히 사진이 움직이는 것을 넘어서 관객에게 더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현장감을 위해 소리, 냄새, 바람 등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한다. 이는 사진이 가질 수 없는 영화만의 고유한 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