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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루터 감상 및 비평 평가A+최고예요
    역사 영화 비평문“영상 역사를 통한 역사 보기와 영화 읽기”-L U T H E R-목차Ⅰ. 서론1. 영화 선정 이유2. 영화 소개 및 줄거리Ⅱ. 본론1.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묘사- 사실과 허구의 차이 중심으로2.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현재의 평가Ⅲ. 결론- 영화 「루터」에 관한 나의 생각Ⅳ. 참고문헌Ⅰ. 서론1. 영화 선정 이유역사 영화는 우리가 역사를 친근하게 바라보도록 충분히 도와주는 한 가지의 매개체이다. 하지만 역사 영화 속의 고증과 왜곡을 적절히 따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루터」는 ‘루터’라는 종교 개혁의 핵심적 인물을 중심으로 비교적 역사적 고증이 잘 되어있고, 한 측면의 역사만 그려내는 영화가 아니기에 역사 영화로써의 그 의미가 살아있다고 보아 선정했다. 또한 나는 이전부터 개혁과 혁명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서양 역사의 근간이자 토대를 이루는 이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주목하고 싶었다. 따라서 당시 부정과 부패로 얽혀 있던 기독교를 비판하고 새로운 개혁의 가치를 일깨워준 ‘루터’라는 인물을 통해 종교 개혁을 잘 그려낸 영화인 「루터」를 보고서의 주제 영화로 선정했다.2. 영화 소개 및 줄거리영화 「루터」는 유럽사의 거대한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개혁과 그 중심적 인물인 루터의 생애 전반을 다룬 영화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는 기존 가톨릭에 대해 비판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유럽에 일깨워준 루터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루터가 어떻게 가톨릭에 들어서고, 들어선 후 가톨릭의 어떤 모습을 비판하고 주목했는지 그리고 루터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잘 그려내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영화의 처음은 바로 독일의 한 청년인 루터가 에르프루트로 가는 길에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벼락을 보게 되고 이로 인해 하늘의 힘을 느끼고 그 이후 루터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루터는 수도자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법학을 공부해 성공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던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다.신을 전하기 위해 로마로 떠났고, 그곳에서 가톨릭의 참상을 발견하게 된다. 신부가 한 여성과 불건전한 관계를 맺는 것, ‘목감기엔 성 세실리아, 등이 쑤시고 발이 아플 때는 성 바울, 튼 손엔 성 요셉’ 이라면서 외치는 상인 등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정적으로 죽은 자가 천국에 가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에게 교회가 면벌부를 판매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그것을 사게 된다. 그러면서 루터는 터무니없는 현실과 교회의 부정부패를 마주하고 이에 분노를 느낀다.“로마는 문란했습니다. 시궁창이었어요. 여자든, 구원이든 전부 돈으로 살 수 있더군요.”루터가 말한 영화의 위 대사를 통해서 얼마나 당시 가톨릭이 병들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루터는 이후 작센 지역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 교수이자 수도사제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평소 루터는 동료 수도자들과 교수들에게 가톨릭의 부정부패와 면벌부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당시 교회는 부패를 일삼는다. 당시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을 완공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던 요한 테첼은 ‘성모 마리아를 강간해도 깨끗이 용서받을 수 있다’라는 발언을 일삼으며 면벌부 판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참지 못한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다. 당시 인쇄술을 발명으로 이 반박문은 빠르게 퍼지게 된다. 결국 루터는 회개를 강요받다가, 불복해 종교재판에까지 회부 될 상황에 놓이지만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보호로 아우부르크 회의에서 카예탄 추기경의 심문을 받는 정도의 상황에 놓인다. 또한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도움으로 카를 5세 황제에게서 신변 보장을 받으며 보름스 제국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된다. 이때 그를 그동안 믿고 지지해주었던 슈타우피츠 교수까지 루터에게 굴복할 것을 요구했지만, 루터는 자신의 주장과 가톨릭의 대한 비판을 굽히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쓴 책들을 철회하지 않을 것을 당당히 이야기한다.“교황의 칙령과 인간의 교리로 인해 신자들의 양심은 비참하게 상처받고 뜯겼습니다.…제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 것도 철회할 수 없으며, 또 철회하지 않을 것입니다.”이후 교황지지자들 공격을 피해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루터가 피신하게끔 도와준다. 피신 생활 중 루터는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 이어나간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농민반란이 일어난다. 농민들의 반란은 다소 폭력적이었고, 이를 본 루터는 농민들을 강력히 비판한다. 루터는 평화로운 투쟁을 원했지만, 농민 반란이 폭력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좋지 않게 본 것이다. 또한 농민 반란 진압을 제후들에게 요청하기도 한다. 농민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한 것이 자신 탓인 듯 고뇌하는 모습도 보인다.“나는 농민 반란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이후 수도원을 빠져 나온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을 하게 되고, 당시 왕이었던 카를 5세가 신앙고백서를 허락해주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Ⅱ. 본론1.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묘사- 사실과 허구의 차이 중심으로역사 영화의 극적 묘사를 위해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역사 영화뿐 아니라 모든 실화 바탕의 영화에 해당되는 사항일 것이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사실과 허구 사이에 적절한 조절을 하지 않으면 자칫 역사 왜곡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하고, 감상자로서 영화의 내용이 모두 사실인 냥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가려내면서 영화를 즐겨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영화 「루터」를 보고서 사실과 허구의 차이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 지 주목해보았다.영화 초반에 루터는 면벌부를 판매하는 교회의 부패상을 목격하고, 이에 분노를 느낀다. 그런 루터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교회를 상대로 ‘95개조 반박문’을 제시하는데, 바로 교회 문에 자신의 반박문을 붙인다. 루터의 종교개혁 의지에 대해서 잘 보여주면서도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는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교회 문에 반박문을 공개적으로 게시한 것은 허구적인 장면일 가능성터의 반박문 게시가 허구라는 주장을 처음 한 인물은 1961년 가톨릭 교회사학자 에르빈 이절로(Erwin Iserloh)였다. 그는 논제 게시의 유일한 근거였던 멜란히톤의 글이 루터가 여러 서신과 글에 남긴 진술들과 모순된다며 ‘논제 게시가 없었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학계에 충격을 준 그 주장으로 인해 그 후 논제 게시를 둘러싼 학술적 토론이 뜨겁게 전개되고, 독일의 종교개혁 500주년 공식사이트에서조차 루터가 논제를 게시했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루터는 마인츠 대주교와 브란덴부르크 주교에게 사적으로 서신을 보내 면벌부에 대한 지침의 철회를 요청했으며, 답변을 기다렸으나 아무 기별이 없자 토론을 통해 그들의 가르침에 의문을 갖게 하려고 원하는 학자들을 토론에 초대했다고 밝혔고, 서신 발송 후 한동안 답변을 기다렸으나 아무 응답이 없자 비로소 대안으로써 논제를 공개하고 일부 학자들을 토론으로 초대했다는 진술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진술 이외에도 루터가 공개적으로 논제를 게시하지 않았다는 요소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또한 영화 속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가상의 인물을 통해 영화는 왜곡으로 빠질 수도 있지만, 영화의 결정적 메시지를 전하고 이해를 도우는 아주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루터」에서는 그러한 순기능을 하는 허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한나와 그레테는 영화 초반부터 후반까지 계속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나름 비중있게 등장하는 인물들이지만, 실존 인물들이 아니다. 영화에서 보다시피 둘은 모녀지간이고, 행색이 좋지 않다. 즉, 가난하고 궁핍했던 당시 민중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두 인물일 것이다. 영화에서 한나의 딸인 그레테는 다리가 불편하며, 하루하루 힘들게 모녀는 살아간다. 이때 요한 테첼이 교회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로 현혹시키며 헌금의 중요성을 알린다. 그런 테첼이 한나에게도 헌금을 하겠냐고 묻고, 한나는 그레테가 건강해지길 기도하며 선뜻 교회에 헌금한다.주고, 그걸 받은 한나는 기뻐하며 루터에게 달려가 그레테를 위해서 샀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터는 그런 한나를 보고는 좋지 않은 표정을 하며 이건 종이쪽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한 영화 후반부로 가면 농민 봉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 죽은 한나와 그레테를 발견하고 담요를 덮어주는 루터의 모습이 나온다.이 두 장면을 통해 당시 가난에 허덕이며 힘들게 지냈던 농민의 모습, 교회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 가 동요되는 농민의 모습, 결국 이후 일어난 농민 봉기로 엄청나게 희생된 농민들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비록 실존 인물이 아닌 허구지만 한나와 그레테는 영화의 내용을 잘 전달해주고, 영화의 극적 묘사와 농민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2.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루터는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인물로, 유럽사 그리고 기독교 전체 역사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그런 업적은 아주 중대하다고 할 수 있다. 독일 국민 대부분은 지금도 루터를 독일 민족의 영웅이자 선각자로 여기고 있다. 2003년 ZDF(독일 제2국영TV방송)의 ‘독일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라는 조사에서 루터는 50만 명 이상이 선택한 인물로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루터는 자신의 업적과 그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하지만 모든 인물에겐 다양한 측면이 존재하듯이, 루터도 그러하다. 루터도 명암이 공존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루터는 기존의 사제와 평신도 간의 수직적 관계를 혁파하고 평등 관계를 강조했다.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의 3대 모토 중 하나가 ‘오직 성경’이듯이,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일부 성직자에게 성경의 해석을 맡겨서만은 잘못됐다고 했다. 영화에서도 루터가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역시 모든 이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한다는 루터의 생각이 잘 표현된 장면이다. 이처럼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은 수평적 관계에서 평등해야하고 교회는 보편적인 존재가
    인문/어학| 2020.03.13| 7페이지| 1,500원| 조회(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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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쟁점을 읽고
    20세기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돌아보며- 「20세기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쟁점」을 읽고 -目次Ⅰ. 머리말Ⅱ. 주요 논지Ⅲ. 긍정과 비판 그리고 보완Ⅳ. 맺음말Ⅰ. 머리말20세기는 인류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류역사상 가장 문명화되어 살았던 시기이다. 또한 수많은 전쟁과 혁명, 이념의 질곡 속에서 인간이 어느 시대보다도 가장 비인간화되어 살았던 때였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태동하였으며 제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이로 인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두 진영으로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의 20세기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부는 한국의 20세기를 쓰디쓴 굴욕의 세기라 말하고 일부는 급진적인 발전의 세기라 말한다. 그만큼 이 시기는 놀라운 변화와 격동의 시기라 일컬어진다. 1876년 개항 이후 1910년대에 들어 한국은 약 40여 년간 가혹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해방 후에는 6.25 전쟁이라는 동족의 비극을 겪고 미·소의 냉전 시대의 도래로 남북은 분단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이러한 격변의 시기와 더불어 한국의 역사학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는 유물 사관, 실증 사관, 민족주의 사관 등이 혼재해 있는 가운데 식민 지배라는 당면 현실 극복을 최우선의 과제로 두었다. 해방 후에는 식민 사관의 극복과 더불어 통일과 민주화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국 역사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우리의 역사학자들은 식민 지배의 가혹한 세월 속에서도 분단과 독재의 뼈아픈 세월 속에서도 투철한 시대 인식을 갖고 올바른 역사 체계의 확립을 위해 노력해왔다.이와 같은 노력 덕택에 한국의 근현대사는 격변의 시기 속에서도 제자리를 찾아갔으며 다양한 분야의 연구 또한 이루어졌다. 하지만 모든 연구가 그러하듯 20세기 한국 근현대사의 연구 역시 미진한 점이 존재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연구는 우리 역사의 주체성과 독자성을 확립하게 하고 현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있으며 다양한 논쟁의 해결 시대적으로 기술하고 기존의 분석만을 정리하거나 아예 본인의 주관만이 담긴 지나치거나 극단적인 분석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박 교수는 근현대사의 시대적 배경,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제시하였다.또한, 자신의 중도적인 입장에서 날카롭게 평가하고 역사의 사건을 현실의 문제들과 관련지어 연구한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다 객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실상과 논쟁을 보다 냉철하고 가감 없이 평가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 것 역시 기존 연구와는 차별되는 점이다. 또한 그간 외면되었던 러시아 지역의 한인 민족운동과 한국학에 대한 논문과 자료를 정리하였는데 이는 극동 지역의 한인 민족 운동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미비했던 연구를 보충하여 아쉬움을 달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본 논문을 선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 한국 근현대사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나 큰 관심과 달리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여 이번 기회를 통해 수학하고 싶었던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기존의 연구와 논문을 주제별로 나열하여 전체적인 개관을 살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한국 사학사’라는 과목의 의도와 상당 부분 일맥상통하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사학사 수업 첫날, 교수님께서 현대 역사학계의 흐름과 학풍 등을 개괄적으로 설명해주신 것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한국 근현대사는 1980년대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고 본 책은 근현대사의 연구 동향과 학계 흐름이 정리되었으므로 현대 역사학계를 더욱 자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제시된 저자의 비판을 토대로 역사학도로서의 주관을 확립하고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했다.다음 본고에서는 이 논문의 내용과 이를 분석하면서 느낀 점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논지를 다각적으로 평가하고 보완점을 제시한 후 앞으로의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방향성을 논의해보고자 한다.Ⅱ. 주요 민중운동과 의병운동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특히 위정척사운동과 사상에 대해 침략을 반대하며 주체적이지 못한 서양에 대한 개방을 저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와 보수반동 운동으로 규정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에 대한 두 논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가 한 역사 사건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게 하고 다시금 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또한 식민지 시기의 연구가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음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더 깊고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우리 역사를 이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러면서 식민지 시기의 지배정책에 대한 학자들의 분야별 연구 현황과 사례를 소개하며 일제강점기 최대 민족 운동인 3·1운동에 대한 연구 성과에 대해 논하고 기존에 주목받지 못한 측면과 이 외에도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 활성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 활발했던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 및 농민 운동도 언급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만주 및 러시아 지역의 민족 운동에 대해서도 짚고 있다.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시대적·정치적 특성과 자료 제약으로 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함을 지적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롯한 다양한 사건들과 현대사 방향에 큰 영향을 줬던 책들의 발간으로 인해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역사학계의 입장과 연구 동향이 크게 달라졌음을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현대사에 관한 연구 흐름은 부족한 점이 많기에 앞으로 더욱더 객관적이며 적극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학계의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국과 제3국의 대외관계사에 주목하며 해방 직후 정치 세력들과 민중운동, 통일국가 수립 운동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이러한 연구 동향의 흐름 소개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11가지의 문제점을 제시했고, 이를 토만의 특징을 바로잡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근대가 무엇이며 무엇을 또한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다른 연구들보다 우선되어 행해져야 할 것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기존의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것만이 근대라고 보는 단편적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근대를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가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현 역사학계의 관점인 ‘내재적 발전론’을 부정하며 우리나라 근대화의 출발과 의미를 일제강점기에서 찾고 있다. 기존의 수탈과 종속의 한국 자본주의를 반대하며 경제성장의 결정적인 단서를 식민지 시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즉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할 때 비로소 우리나라가 근대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논란의 여지를 주는 주장이다.하지만 이러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주장도 거센 편이다. 일제강점기의 경제성장은 민족을 배제한 성장으로 의미가 없는 것이며 식민지 시기의 개발과 현대의 경제 개발을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는 정치적 근대화가 짓밟히고 사회경제적 수탈은 더욱 심화되는 등 매우 가혹했는데 조선이 일제강점기를 겪었다고 해서 사정이 더 나아지고 나라가 부강해진 것이 절대 아니라는 입장이 식민지 근대화론과 팽배하게 맞서고 있다. 즉 이 의견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맞서며 일본은 우리나라가 자력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었던 약간의 가능성까지 없애버리며 이로 인한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논리이다.이러한 두 주장 사이에서 저자는 조선의 근대화가 식민지배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시대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도 일본의 이익 추구를 위해 모든 것이 이루이진 시기이므로 결코 우리나라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견해를 펼치고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 식민지 시기의 핵심 사강조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민족운동사 연구에서 꼭 강조되었으면 하는 10가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민족운동사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우리 역사의 궁극적인 기반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특히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방법론에 더욱 주목하며 투쟁사에 단정하지 말고 다양한 측면에서 민족운동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운동사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필수 요소들은 앞서 말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연구에 대한 방향 제시를 위한 요소들과도 연결되어 있다.4장에서는 저자의 주 연구 주제인 러시아 지역의 한인 민족운동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러시아에서 전개되었던 20세기 초반의 독립운동은 항일민족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연구가 활발하지 않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고 저자는 이 시기를 기준으로 연구 동향을 살피고 있다. 저자는 각 학자들의 논문 저서와 연구 내용을 검토하며 러시아 지역 연구의 필요성과 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하고 있다. 더불어 앞으로의 연구 동향에 대한 방향성 역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측면에서의 이주 사례에 대한 연구와 함께 더욱 구체적인 의병조직, 각종 단체, 인물, 유적지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끝으로 5장에서는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독립운동을 되돌아보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민족의 정기를 올바르게 확립해야 함을 강조하며 장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사 특히 굴곡진 근현대사를 다루기 위해서는 민족의 근본과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비판하며 우리 민족의 부강과 독립을 위해 힘썼던 분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대우가 부족한 점을 특히 비판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들의 애국심과 노력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을 내비치고 있다. 또한, 과거 친일과 부정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청산과 척결이 아직 풀리지 않은 숙다.
    인문/어학| 2020.03.13| 12페이지| 2,500원| 조회(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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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차 딜레마(전차 문제)에 대한 생각
    나는 브레이크가 풀린 전차를 운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한 레일에는 5명의 인부가 반대 레일에는 1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방향을 바꾸는 것뿐인데, 과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방향을 틀어 한 명만 희생시킬 것인가? 나는 기꺼이 1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는 레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일단 이 상황에서 5명의 인부들이나 1명의 인부 둘 중 한 쪽이 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은 바꿀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쪽의 목숨이 더 중요한지도 따질 수 없다. 그리고 기관사인 내가 방향을 결정할 때 찰나의 상황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일일이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때 자신의 직관과 경험을 바탕으로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때 5명보다 1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어찌 되었든 사고 피해를 그나마 최소화하고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1명의 인부가 일하는 레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또한 법적으로 보게 된다면 나는 그 전차의 기관사로서 선로에 있는 사람을 치여 죽이는 과실 치사 행위를 하게 된다. 이때 1명보다 5명을 쳤을 때 그 행위에 대한 결과와 책임이 더 클 것이다. 따라서 나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5명의 인부를 치는 것보다 1명의 인부를 희생시키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다른 경우로 나는 고장 난 전차가 5명의 인부를 향해 달리고 있는 모습을 육교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 5명의 인부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을 떨어뜨려 전차의 진행을 막는 방법뿐인데, 마침 뚱뚱한 사람이 내 앞에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과연 나는 뚱뚱한 사람을 밀어 전차를 멈추게 해야 할까? 나는 뚱뚱한 사람을 밀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앞선 상황에서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희생될 수밖에 없다. 둘 중 하나를 희생시켜야 하는 불가피한 선택을 나는 내려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뚱뚱한 사람을 밀치는 것은 이 상황과 관계없는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여 희생시키려 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을 죽음에까지 내모는 것은 앞선 상황과는 달리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뚱뚱한 사람을 내가 밀친다고 해도 이 전차가 멈출 지도 확실 지 않다. 확실 지 않은 상황을 위해 뚱뚱한 사람을 밀치는 것 역시도 잔인하다고 본다. 또한 뚱뚱한 사람을 밀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밀친다면, 그리고 내가 이 뚱뚱한 사람을 육교에서 떨어뜨리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목격하거나 증거가 남으면 나는 살인죄로 법적 책임을 물 수 있다. 나의 입장에서 단순한 전차 사고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인데, 이 사고를 막고자 뚱뚱한 사람을 밀치는 것은 나로서 너무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결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무고하다고 할 수 있는 뚱뚱한 사람을 이 사건에 휘말리게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또 나의 책임도 최소화 되는 쪽인 뚱뚱한 사람을 밀치지 않는 선택을 할 것이다.
    법학| 2020.03.11| 1페이지| 1,500원| 조회(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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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 국가
    플라톤 「국가」Ⅰ. 머리말Ⅱ. 본론1. 플라톤의 이상 국가 건설 논의2. 제1파도3. 제2파도4. 제3파도Ⅲ. 맺음말Ⅳ. 참고문헌Ⅰ. 머리말플라톤의 『국가』는 고등학교 윤리 수업을 통해 익히 듣고 배운 경험이 있다. 또 개인적으로 플라톤 국가를 읽은 경험이 있어서 수업과 보고서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렇지만 대학에 진학한 후 강의를 통해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 다시 공부하게 되니,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보다 플라톤의 국가는 더 깊이 있고 탐구해나갈 것이 많은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플라톤의 사상은 서양 철학의 근간이자 뿌리이다. 그리고 그런 플라톤 사상의 결정체가 바로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철학을 탐구하고자 한다면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책이 바로 국가일 것이다. 국가 속 플라톤의 주장은 여러 가지다. 그리고 그 중 핵심은 5권의 이상 국가 건설 논의 부분일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시대 상황과 빗대어 플라톤의 이상 국가 실현의 의지와 그 생각을 엿볼 수 있고, 또한 그 내용 속에서 우리는 현실 상황의 해결점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국가의 5권을 중심으로 플라톤의 이상 국가 건설 논의와 세 차례의 파도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가 과연 설득력이 있는 지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나의 생각을 풀어나가도록 보고서를 진행할 것이다.Ⅱ. 본론1. 플라톤의 이상 국가 건설 논의플라톤은 『국가』중 제 5권에서 이상 국가 건설의 어려움을 세 차례의 파도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세 차례의 파도란 무엇일까? 세 차례의 파도는 바로 이상 국가 건설의 어려움이 있을 때 해결을 위한 논의를 비유한 말이다. 제1파도는 여성 역시 수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제2파도는 처자의 공유의 문제와 공동 양육 및 교육의 문제, 제3파도는 철인왕의 지배는 과연 가능한가? 이다.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에 고대 플라톤의 생각이 잘 이해가지 않거나 생소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한 세 파도를 통해플라톤은 남녀평등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추어보자면 이는 굉장히 진보적인 생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플라톤의 생각은 스파르타의 체제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스파르타의 경우 남성들은 모두 군에 소속되어 전쟁에 나가고 나라를 비우는 일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노예들을 비롯한 하층민을 관리하고 다스리려면 남성의 빈자리를 여성이 대신해서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운동하고 전투 훈련을 했다. 더 나아가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굉장히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갔다. 당시 아테네의 여성들은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살았지만,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자유롭게 외출하고 운동하며 개방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여성들은 소박함을 배우고 고상한 정신을 가지고 건강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남성에 의존하고 속박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객체로서 살아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점은 한 개인으로서 여성의 삶이 존중받았다는 것도 있지만 이러한 여성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고 그러면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도 있다.나는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이 설득력을 가진다고 본다. 왜냐하면 당시 고대의 상황 속에서 남녀평등이라는 생각을 해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양성평등의 역사는 길지 않다. 아니, 현재도 양성평등은 전 세계, 전 사회에서 잘 이뤄진다고 말할 수 없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 받는 일이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남성 역시 역차별을 당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이처럼 아직도 양성평등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고대의 약 2000년 전의 시대에서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교육 혜택과 지위를 생각해냈다는 것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객체로 보았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생각은 설득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더 나아가를 앞서가는 생각이었고, 이 논의는 이상 국가 건설에 훌륭한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즉 플라톤의 이 제1파도, 여성 역시 남성과 같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수호자가 될 수 있고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이 논의는 설득력을 가진다고 거듭 생각된다.3. 제2파도제2파도는 처자 공유와 공동 양육 및 교육의 문제이다. 일명 ‘처자공유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는 공유 대상에 속하고 서로 개인적인 동거나 무분별한 성적 관계 모두 금지된다. 그리고 결혼 역시 통치자에 의한 정교한 추첨제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아이들도 공유대상에 속하며 부모와 아이들도 서로서로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공동으로 양육되며 수호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교육된 아이들 중 선발된 자는 수호자, 그리고 낙오된 아이들은 생산자 계급이 된다. 이외에도 플라톤은 사유 재산 역시 공유 대상에 속한다는 ‘재산공유론’도 주장했다. 즉 처자공유와 공동 양육 및 교육은 나라를 지키는 수호자 계급에서는 사적인 의미의 가족 개념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이는 지금으로서 굉장히 파격적이라고 생각 할 수 있고, 단순히 받아들이자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론이다. 단어의 그 의미로만 보자면 정말이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그 표면적 의미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지키는 수호자 계급이 자신의 혈족만 챙긴다면 나라는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혈족 정치로 무너진 사례는 역사에 아주 많다. 동양에서 그 예시를 살펴볼 수 있다. 이는 플라톤이 지양하고자 했던 그런 사회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지만 혈족 정치의 실패를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바로 주나라의 ‘봉건제’이다. 주나라의 봉건제는 처음에는 왕과 그 측근들의 세력 결집에 도움을 준 제도이다. 이 제도는 초기 주나라의 기본 정치 체제였고, 왕은 봉토를 지급하고 제후는 왕에게 충성하며 공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혼을 추첨제로 하면서 배우자를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는 점, 아이와 부모가 서로 인식을 하지 못한다는 점 등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짓누를 수 있다고 본다. 자유와 평등이 인간의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 여겨지는 현대인인 나로서는 플라톤의 처자공유론, 공동 양육 및 교육에 관한 주장은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가 어떤 생각과 배경을 가지고 이러한 주장을 했는지는 이해가 가지만 그 방법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되어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를 할 사람이라면 평범하고 어쭙잖은 사람보다는 저렇게 태어나고 자랄 때부터 확실하게 훈련과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고자 하는 플라톤의 의지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난 그런 플라톤의 의지와 근본적인 주장에는 동의한다. 정치를 단순히 하고 싶어서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를 맡겨서 정말 이 나라를 위해 봉사할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한 순간에 생기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심사하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그렇기에 난 제2파도에 관한 논의는 플라톤의 기본적인 주장에는 동의하나 그 방법이 너무 가혹하고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4. 제3파도제3파도는 철인왕의 지배는 과연 가능한가? 이다. 그렇다면 우선 철인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철인왕이란 최고 통치자로서의 철학자를 일컫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는 세 계층이 존재한다. 그 세 계층은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로 각각 지배, 국방, 생산의 역할을 맡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질에 따라서 각 계층에 속하게 되고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는다. 앞서서는 수호자 계급에 대해서 주로 다뤘지만 이번 제3파도는 바로 통치자에 대해 다루는 논의다. 국가가 잘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른 계층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바로 통치자의 역할이 단연 핵심일 것이다. 나라를 이끌어가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자신의 몫을 다 하지 못하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갈했다. 그리스는 당시 토론을 통하여 정치적 명예, 연극무대 속 ‘아곤’을 통하여 예술적 명예를 획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 사회는 과도한 명예 추구 활동으로 인하여 소크라테스 이전의 학자들의 가치를 상실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태 속에는 소피스트들이 있었는데, 소피스트들은 진리에 대한 추구보다는 세속적인 가치를 쫓아갔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이 수사학을 제시하고 계몽주의 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도덕성은 고려하지 않고 성공을 향한 기술만을 가르쳤던 태도는 당연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속물적 명예 개념을 비판하고 ‘버려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또한 ‘획득되어야 할 것’이라는 품위적 명예 개념을 제시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를 비롯해서 플라톤은 정의를 추구하지 않고 단순히 수단으로서 명예 추구를 피해야하고 멀리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명예는 내가 얻고자 해서 그냥 얻어지는 그런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또한 플라톤의 명예에 관한 생각은 다른 곳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덟째 편지」에서 플라톤은 “영혼의 탁월함은 가장 존귀한 것으로” 강조하는 “법”에 근거할 때에만 인간은 명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명예는 “이성”에 의해서만 필연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최선의 수호자”가 될 사람은 반드시 이성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또한 철학자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오로지 나라의 바른 것과 이것에 의해 생기는 명예만을 존귀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즉 플라톤이 생각하는 옳은 명예 추구란 눈앞의 성공만을 쫓는 근시안적 명예 추구가 아닌 이성을 추구하고 정의를 생각하며 나오는 자연스러운 명예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품위적 명예를 추구하며 엄청난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통치자라는 것이다. 사실 수호자들 중에서 오랜 훈련과 엄격한 시험을 거쳐 가장 마이다.
    인문/어학| 2020.03.11| 6페이지| 1,500원| 조회(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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