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개념과 우리사회 논의의 배경기본소득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즉, 재산이 많고 적음이나 노동의 유무와 관계없이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는 수준의 소득인 일정 생계비를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돈으로,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을 특징으로 한다. 토머스 모어의 소설 ≪ 유토피아 ≫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며, 한 사회의 가치의 총합을 구성원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전에 경제적 무기력증과 저성장을 경험한 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일부 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했던 배경은 복지체계의 한계에 있었다. 일을 하는지, 재산은 얼마인지, 부양가족은 몇인지 등을 따져 사회보장 급여를 지급하는 복지체계가 양극화 해소에 별 보탬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선별적 복지 지원을 하기 위해 대상을 선정하는 데 들어가는 인력과 비용도 적지 않았다.기본소득제도는 실제로 지역 단위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곳은 미국의 알래스카 주이다. 미국 알래스카 주는 석유 수출 수입으로 알래스카 영구 기금을 설립하여 1982년부터 6개월 이상 거주한 모든 지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2008~2009년 아프리카 나미비아 일부 지역과 2011~2012년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에서도 한시적으로 시행된 적이 있다.중앙 정부 차원에서 가장 먼저 기본소득제도를 실행한 것은 필란드로, 핀란드는 2017년 1월부터 기본소득제를 중앙 정부 중에서는 전 세계 최초로 실시하였다. 핀란드 정부는 2017년 1월 1일부터 2년동안 일자리가 없어 복지수당을 받는 국민 중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약 70만 6,000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시작하였으며, 기본소득이 빈곤 감소와 고용 효과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하게 검토한 뒤 성과가 확인되면 적용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었다. 2020년 5월 7일 내놓은 최종 보고서에 의하면 기본소득이 실업자들의 자신감, 집중력, 건강 수치 등이 개선됐고 불안감이나 스트레스 등의 부정적 수치는 훨씬 낮게 나타나는 등 복지에 끼치는 효과는 분명하였으나 고용 촉진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네덜란드는 2017년부터 중부 대도시 위트레흐트시 등에서 개인 기준 월 972유로(약 12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는 시범사업을 시작하였다. 다만 정부가 제시하는 일을 하면 인센티브를 주거나, 기본소득만 받고 일은 못하게 하는 등 수급자를 4개 실험군으로 나눠 실험하기로 하여, 이를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일하기 원하는지, 어느 수준의 복지제도를 원하는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은 투기 소득에 대한 중과세, 소득세 최고 세율 인상, 법인세 인상, 토지세, 다국적 기업 공조 과세 등을 통해 마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소득 불균형, 내수 침체, 일자리 감소 등의 문제를 완화할 수 있지만, 재원 마련 등의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기존 복지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기본 소득제도는 복지에 비판적인 쪽으로부터 극단적인 사례라고 이야기되고 있으며, 포퓰리즘이라는 논란이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기존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제도를 시행하였다. 재난 시에 일시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이라는 점에서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이고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국민 모두에게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의 돈을 나눠주는 것으로 보편성을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자영업자나 취약계층의 타격이 속출하여, 이러한 재난 상황에서 위축된 경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정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였다. 재난기본소득 논의는 민간 정책 연구기관인 LAB2050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할 것을 처음으로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위축된 내수 경기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찬성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막대한 규모의 재정 소요와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또한 재난기본소득 지급 대상 범위도 논란이 되었는데,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시민과 소외 계층에 대해서만 선별 지원하자는 의견과 선별이 현실적으로 힘들고 상황이 긴급한 만큼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주장이 맞섰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책정한 예산이 14조2000억원이었다.코로나19 확산이라는 전 세계적 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다른 국가에서도 재난기본소득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인 한 명에게 1000달러(약 120만 원) 이상을 지급하는 1조 2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으며, 홍콩은 모든 영주권자에게 1만 홍콩달러(한화 약 155만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싱가포르는 21세 이상 모든 시민권자를 대상으로 소득과 재산에 따라 최고 300싱가포르달러(약 26만 원)의 일회성 현금 지원을 실시하기로 했다.최근 기본소득제도 도입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복지 사각지대 해소, 투자와 성장의 기회, 빈부격차 감소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세금 부담 증가 및 근로의욕 상실에 따라 노동 생산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재난기본소득 외에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우리나라의 논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소득격차에 따른 사회 갈등 요인 해결에 필요하다. 상류층이 피라미드처럼 급격하게 성장했고, 이 성장으로 제조 대기업 종사자들에 부가 집중 분배되어 자영업자나 중소 기업 종사자들과 소득불균형과 일자리격차가 일어났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불안이 큰데, 이로 인해 사회 갈등이 생기고 내수가 부진해진다. 불안으로 인해 고소득층이나 하류층이나 소비를 하지 않아 소득증가율이 소비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현재 기본소득제도 시행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전 국민에게 1인당 월 10만원씩만 지급한다고 가정한다면 연간 60조원 이상 재원이 필요하다. 현재 기본소득에 대한 두 가지의 시행 방법이 주장되고 있다. 첫 번째는 현재의 복지체제를 유지하고 추가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복지의 확대가 결과적으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1년에 2번의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기존 예산으로 충분하지만,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동의하면 증세나 탄소세, 로봇세,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등으로 순차적으로 증세하겠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기존의 복지체제를 정리하여 선별적 복지를 줄이고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기본 소득 제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증세 없이도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목적이다. 내수경제를 활성화하고 국민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 기본소득의 목적이며, 포퓰리즘을 위한 기본소득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참고문헌“재난기본소득”,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930505&cid=43667&categoryId=43667”기본소득”,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29651&cid=43667&categoryId=43667”기본소득제”, 네이버 지식백과, 한경 경제용어사전,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37711&cid=42107&categoryId=42107기본소득은 누가, 어떤 의도로 주장하는지 잘 봐야 한다, 네이버 포스트, 티타임즈,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539130&memberNo=17369166&vType=VERTICAL
카이사르와 달력 개혁목차카이사르의 생애율리우스력 이전 로마력이집트력과 율리우스력율리우스력 이후 달력-그레고리력달력 개정의 의의카이사르의 생애카이사르라고 하면 보통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가리키지만, 가이우스가 개인의 이름이고 카이사르는 가문명, 율리우스는 가문이 속한 씨족명이다. 보통 로마의 귀족들은 이렇게 3개의 이름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드러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카이사르는 귀족 출신으로, 유서 깊지만 정치적으로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외가 쪽은 로마 귀족사회에 큰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로마는 귀족과 일부 민중대표(호민관)가 정치를 이끌어가던 공화정이었다.카이사르의 청년 시절에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민중파와 원로원 중심의 귀족세력의 원로원파가 서로 세력을 다투었다. 민중파의 대표자는 카이사르의 장인 킨나와 카이사르의 고모부인 가이우스 마리우스였고, 카이사르 또한 민중파를 지지했다. 원로원파의 수장은 술라였기 때문에 원로원파를 술라파라고도 하였다. 카이사르는 한때 술라파가 득세했을 때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지만, 킨나의 딸인 코르넬리아와의 이혼을 요구를 거부하고 술라를 피해 로마 밖으로 도망 나가 있다가 술라가 죽은 후에 로마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카이사르의 본격적인 정치 생활이 시작되었다.첫 번째 아내가 죽은 후 술라의 손녀인 폼페이아와 결혼하면서 술라파의 지지까지 얻은 카이사르는 로마의 고위관직들을 섭렵해 나갔다. 민중과 친근한 입장에서 정책들을 내놓아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로마 속주에 근무할 때는 주변국과의 전투에서 차근차근 자신의 입지를 쌓아 올렸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로마의 최고위직인 콘술에 오르려고 하자 카이사르의 힘이 너무 세지는 것을 경계한 원로원은 그가 집정관이 되는 것을 방해했고, 이에 카이사르가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고 원로원의 방해를 이기고 콘술에 당선되어 1차 삼두정치가 시작되었다.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여 더 큰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크라수스가 죽고, 폼페이우스와 결혼한 카이사르의 외동딸이 죽자 삼두정치는 흔들리게 되었고 폼페이우스는 원로원과 손을 잡게 된다. 무장해제하고 로마로 오라는 원로원의 명령에 카이사르는 여러 번 협상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자신의 군대를 끌고 로마로 가서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의 군대를 밀어냈다. 귀족권이 약해진 로마는 카이사르 1인 천하가 되었고,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 자리를 차지하고, 이전 시대 귀족들이 각자의 이권에 따라 움직여 정체되곤 했던 개혁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달력을 개정하고 통화를 개혁했으며 시민권을 확대하고 사법개혁, 복지정책 실시, 식민지정책, 건설 사업 등 카이사르는 사회 각 방면에 새로운 정치를 펼쳐 나갔다. 그 중에서도 달력을 개정한 일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준 매우 중요한 개혁이었다.율리우스력 이전 로마력율리우스력 이전 고대 로마력은 초기에는 1년을 10개월의 304일로 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한겨울에는 역일이 없는 기간을 두었는데, 이 달력은 그 다음해에 농사를 언제 짓기 시작할지 정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BC 700년경 달의 위상을 기준으로 하여 1년을 12개월의 355일로 하고, 기존의 첫 번째 달을 세번째 달로 바꾸어 기존 달력의 시작일이 3월 1일이 되는 태음력이 확립되었다. 달력이 1년 전체를 포함하게 되었지만 1년에 오차가 10일이나 발생하기 때문에 윤달을 넣었는데, 윤달을 넣는 것이 체계적이지 않고 제사장이 임의로 정해 계산에 혼란이 발생하였다. BC 300년경부터는 격년마다 2월의 23일과 24일 사이에 22~23일간의 윤달을 엇갈려 삽입하여, 1년을 355일, 377일, 355일, 378일로 되풀이하였다. 1년이 평균 366.25일로 실제 지구 공전일과 조금 가까워졌지만 날짜가 들쭉날쭉하였다. 또한 태음력은 달의 위상변화에만 주목하고 만든 역이기 때문에 춘하추동의 계절변화와 달력의 불일치가 매우 심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역을 사용하는 것은 농사를 짓는 것과 제사 지내는 것 등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대대적인 달력의 개혁이 필요했다. 특히 기원전 47년은 1년이 445일이나 되어 ‘혼란스러운 해(last year of confusion)’라고 불렸다.카이사르는 선진 문명의 중심이었던 알렌산드리아의 소시게네스의 자문을 받아 이집트의 달력을 참고하여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로마의 고대 달력과 합쳐 새로운 달력인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다.이집트력이집트력은 1년을 시리우스별과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만든 달력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주기적으로 나일강이 범람하는 과정을 관찰하여 1년을 범람기인 아케트(Akhet), 성장기인 페레트(Peret), 수확기인 셰무(Shemu)로 나누었고, 이들을 다시 4달로 나누고 1달은 3주, 1주는 10일로 정하였다. 이렇게 고대 이집트에서는 1년이 360일과 신들의 탄생일인 특별한 5일로 구성되어 있었다.율리우스력카이사르는 이집트력을 참고하여 태양력인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다. 카이사르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달력은 태양의 움직임과 일치하며 1년의 길이가 일정하고, 한달의 길이도 최대한 일정해야 했으며 윤년을 정하는 규칙은 쉽고 간단해야 했다. 또한, 기존에 로마에서 날짜를 세던 방식과도 충돌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런 원칙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달력은 2월을 제외한 나머지 11달을 모두 30일 혹은 31일로 고정하였고, 4년마다 2월에 하루를 추가하는 윤년을 두어 평균적으로 1년의 길이가 365.25일으로 고정되게 하였다. 365.25일은 실질적인 지구의 공전 주기인 회귀년(tropical year)보다 0.0078일이 긴데, 이러한 근소한 차이가 누적되면 점점 커져서 128년마다 1일의 오차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16세기에는 3월 21일이 되어야 할 춘분이 3월 11일이 되어 부활절을 결정하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율리우스력 이후 그레고리력율리우스력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그레고리력을 만들었다. 또한 율리우스력의 누적 오차인 10일을 복구하기 위해 1582년 10월 4일의 다음 날을 1582년 10월 15일로 정하여 10일을 없앴다. 그레고리력은 지구의 공전 주기를 달력과 최대한 일치시키기 위해, 4의 배수인 해는 윤년으로 하지만 100의 배수인 해는 평년으로, 400의 배수인 해는 다시 윤년으로 정하였다. 이렇게 하면 400년 동안 총 97회의 윤년이 발생하므로 이때 1년의 평균은 =365.2425 가 되어 공전 주기에 상당히 근접한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의 공전 주기인 365.242196일과는 1년에 약 0.0003일(26초)의 차이가 생겨 약 3300년마다 하루의 차이가 발생하여 이를 보정하기 위해 4000년, 8000년 등을 다시 평년으로 하였다.카이사르의 달력 개정의 의의율리우스력은 기존의 로마력에서 날짜와 계절의 차이를 거의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농사를 짓는 시기를 절기를 보고 결정했기 때문에 계절은 농사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달력을 개정했다는 것은 또한 카이사르의 권력과 영향력을 보여준다. 7월의 이름은 다섯 번째 달을 뜻하는 퀸틸리스였으나, 율리우스의 이름을 따 julius(율리우스)로 바뀌었으며 현재까지 이 이름이 이어진다. 달력 개정이 현재의 그레고리력의 기초였고, 카이사르가 미친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종신 독재관이라는 지위를 얻고,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지도자 지위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참고문헌“로마력”,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88202&cid=40942&categoryId=32286“율리우스력”, 네이버 지식백과, 천문학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53197&cid=62801&categoryId=62801“율리우스 카이사르”, 네이버 지식백과, 인물세계사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8167&cid=59014&categoryId=59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