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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이 생각하는 현대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쓰고 평가A+최고예요
    본인이 생각하는 현대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쓰고역사적으로 어떠한 평가가 있는지와 함께 본인의 평가는 어떤 것인지 쓰시오.12 . 12 군사 쿠데타1979년 12월 12일 군부의 실세였던 전두환·노태우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군사반란 사건. 이들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의 재가도 없이 휘하 부대 병력을 동원하여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로 연행하는 과정에서일어난 군사반란 사건이다. 유혈충돌이 수반된 하극상 사건이었다.12·12군사반란·12·12하극상·12·12쿠데타·12·12쿠데타적사건 등이라고도 한다.신군부 세력은 이 사건으로 군 내부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1980년의 5·17사건을 일으켜 새로운 권력을 획득하였다.1.역사적 배경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뒤 최규하 과도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대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정승화는 군 장악을 위해 윤성민(참모차장),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특전사령관)등을 중용하여 지휘계통을 개편하였으며,10·26사태에 직접 연루되었던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경호실을 축소 개편하였다.이로써 정승화는 군에 대한 지휘체계를 확보하고 자신이 정치 일정을 이끌어 가는 데 핵심역할을 담당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군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4년제 육군사관학교 최초의 기수인 11기의 지도 아래 하나의 배타적인 파벌집단을 형성 하면서 군부내 세력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2.내용당시 보안사령관의 자격으로 10·26사태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전두환 소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군부세력(신군부)이 기존의 육군지도부였던 정승화 세력과 갈등하게 되었던 것이다. 갈등을 일으키게 한 대립의 쟁점은 사건수사와 군의 인사문제였다.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의 내란에 방조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고, 10·26사태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였다.10·26사태 당시 정승화는 궁정동 안가의 대통령 시해현장 부근에 대기하였으며 사건 이후 김재규를 구속할 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그 수사를 지연시킨다는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정승화가 10·26사태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후일 명백히 밝혀졌다.정승화의 연행을 실행하기 위해 11월 중순 국방부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뒤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 여단장 장기오등과 사전 접촉하였다.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 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전두환 합수부장의 지시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제33헌병대 병력 65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뒤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로 연행하였다.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지휘하의 육군 수뇌부는 이 사실을 확인하여 전군에 비상을 발동하고 합동수사본부측에 정승화의 원상회복을 명령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이미 1공수여단과 5공수여단 병력이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였으며 9사단 병력 등은 중앙청으로 진입하였던 것이다. 이에 진압군 병력 출동을 추진하였던육군수뇌부의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윤석민 참모차장등은 모두 서빙고 분실로 불법 연행되었다.이와 같은 반란군의 정승화 연행과 병력이동은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전두환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가 김재규와 연루된 새로운 사실(돈을 받는 등)을 발견하였으니 정승화를 연행 조사토록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였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정승화는 후일 김재규에게 받은 돈 300만 원은 단순한 추석 촌지로서 당시 전두환도 500만 원 수령 사실을 인정했었다고 주장하였다.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데 실패한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도록 설득하였다.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할 수밖에 없었다.13일 오전 9시 9사단장 노태우와 50사단장 정호용은 각각 수경사령관과 특전사령관에 취임함으로써 당시의 군부가 반란의 주도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결국 신군부세력은 1980년 5·17쿠데타까지 주도해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미국은 12·12사태를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권 하에 있는 부대들을 적절한 통고없이 사용한 데 대하여 한국 군부에 항의하였다.3. 결론12·12사건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건은 집권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으나,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이후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자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었으므로 김영삼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다.1993년 7월 19일 정승화 등 22명은 전두환·노태우 전임 대통령을 비롯한 38명을 12·12 군사반란 혐의로 고소하였으며,1994년 5월 13일 정동년등 5·18광주민주화 운동의 관련자들은 전두환·노태우 등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소하였다. 이에 같은 해 10월 29일 검찰은 12·12 사건에 대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으나 1995년 1월 19일에 헌법재판소에서는 12·12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결정을 내려 논쟁이 계속되었다. 같은 해 7월 18일 검찰은 5·18 관련자들에 공소권이 없으므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다고 말하였다.그러나 5·18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요구가 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11월 16일 비자금관련사건으로 구속되면서 11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자유당에 5·18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전격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은 국민들의 요구에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로 부응하였던 것이다.11월 30일 검찰은 12·12사건과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재수사에 착수하였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도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12월 3일 구속, 수감되었다. 12월 19일 5·18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1996년 1년 내내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에 대한 12·12사건 및 5·18사건, 비자금 사건 관련 공판이 진행되었다.재판의 과정에서 전두환은 제5공화국 정부는 합헌정부이며, 내란정부로 단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으며, 노태우는 이 사건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이에 재판부가 1997년 4월 17일 12·12사건은 명백한 군사반란이며 5·17사건과 5·18사건은 내란·내란목적살인 행위였다고 단정함으로써 폭력으로 군권이나 정권을 장악하는 쿠데타는 성공하더라도 사법심판의 대상이며 형사책임은 배척할 수 없다는 판례를 남겼다.1996년 12월 16일 항소심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 벌금 2205억 원 추징을, 노태우는 징역 15년, 벌금 2626억 원 추징이 선고되었고, 1997년 4월 17일의 상고심에서 위 형량이 확정되었으나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즈음해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5.16 군사 쿠데타의 경우 식민지를 경험한 많은 나라에서와 같이 정치적 불안을 이용하여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과도기적으로 독재 정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무력을 이용하여 정권을 탈취했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유혈 충돌도 없었으며, 군 조직의 특수성을 이용하여 빠른 기간에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고 최빈국 상태에 있던 한국을 고도 성장 국가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아직도 박정희 사후 40여년 지났지만 정권의 공과를 평가하는데 있어 논란이 있다.
    인문/어학| 2020.06.22| 5페이지| 1,000원| 조회(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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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의식주문화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서 기술한 후 자신이 바라보는 한국의
    한국의 의식주문화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서 기술한 후 자신이 바라보는 한국의의식주 문화에 대해서 서술하시오한국의 음식문화는 복잡한 궁중 요리에서부터 다양한 지방의 특색이 있는 요리와 현대의 퓨전 요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재료와 조리법이 있다. 일반적인 한국의 정식은 밥, 국, 김치를 기본으로 함께 나오는 많은 반찬들로 구성되어 있다.한국 음식은 일반적으로 재료에 간장, 고추장, 된장과 같은 발효를 시킨 장과 참기름, 소금, 마늘, 생강 등을 첨가하여 맛을 낸다. 계절에 따라 식단이 다양한데, 겨울 기간에는 전통적으로 장독에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만들어 저장한 김치와 소금에 절인 채소들을 반찬으로 곁들어 식사를 했다.온대성 기후와 풍토는 농사에 적합했고 신석기 시대부터 잡곡 농사로 농업이 시작되어 이후, 주식으로 쓰이는 벼농사가 전파되었다. 이후 곡물은 한국 음식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삼국시대 후기부터는 밥과 반찬으로 주식, 부식을 분리한 한국 고유의 일상 식 형태로 구성되었다. 곡물 음식을 익혀 먹는 밥, 죽 뿐만 아니라 가루로 만들어 다시 반죽을 하여 떡, 국수, 만두, 수제비등을 만들어 먹었고 또한 술로도 만드는 등 곡물 음식이 발달하였다.콩으로 메주를 쑤어 발효시켜 조리에 기본이 되는 여러 장을 담그는 방법도 발달하였다. 다양한 채소를 산과 들에서 채취하거나 재배하여 계절에 따라 변화된 식탁이 차려졌다. 주식은 쌀 뿐만 아니라 여러 잡곡이 들어간 잡곡밥을 기본으로 하고, 부식은 김치와 장류, 국이나 찌개를 기본으로 하여 생활수준이나 지역에 따라 채소류, 육류, 어패류, 해조류 등을 조리해서 반찬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밥과 반찬을 같이 먹는 식사 형태로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같다는 관념 속에서 약으로 쓰이는 재료가 음식의 조리에도 이용되어 여러 식품을 골고루 섭취함으로써 영양의 균형을 상호 보완시켜주는 합리적인 식사 형태를 갖추고 있다.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의복은 그 실물이 전해지지 않아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유물 중에 뼈바늘과 가락바퀴 등이 많이 나오고, 동물의 어금니, 구슬, 조개껍질로 만든 장신구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의복 만들어 입었고 장신구도 달고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에는 상투를 튼 성인남성과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천과 바늘로 옷을 지어 있었으며 철기 시대에 이르러 닥나무 실로 짠 면포를 사용했고, 명주실을 이용한 비단이 의복에 사용되었다.삼국시대에 이르러 한복이라 불리는 한민족 고유의 옷이 시작 되었는데. 대체로 유, 고, 상, 포 즉, 저고리, 바지, 치마,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관모라 불리는 모자, 대로 불리는 허리띠, 화라 칭하는 신발이 더해지게 된다. 저고리가 허리 밑으로 길게 내려 왔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으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입는 남녀 공용이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한국 고유의 포는 서민들이 주로 입었으며, 귀족들은 평상복으로만 입었다. 여성들의 새로운 옷으로는 반비가 있었는데, 주로 귀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복식 구조가 크게 변했다. 특히 귀족층이나 지배층에서는 중국 옷을 그대로 받아들여 입고, 특히 은과 동사를 넣어 짠 화려한 직금이나 페르시아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보이는 위금은 당시 귀족들의 호사스런 의복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다.서민층에서는 당시의 기록에 처음에는 신라의 의복을 그대로 입었다고 함으로 미루어, 다른 것보다도 평상복의 경우에는 고유의 의복인 저고리, 바지, 치마 그리고 두루마기 등을 종전과 다름없이 입었다고 여겨지는데 이처럼 복식의 이중 구조가 나타났다. 특히 고려 말에 목면이 재배되기 시작하여 무명이 중요한 의복의 재료로 등장하고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크게 보급됨으로써 의복에 있어 커다란 발전이 있게 된다. 종전에는 모시, 명주 등이 있었지만 이것은 귀족들이 사용하는 고급이었고, 일반의 의복 재료로는 삼베가 주가 되어 왔다. 이런 가운데 따뜻하고 부드러운 면포의 등장이야말로 의복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가 될 정도로 굉장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한복의 전통양식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우리 고유의 복식이 서민복으로 뿌리 깊게 이어졌다. 중기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한층 단순해지고 띠 대신 고름을 매기 시작하였으며, 두루마기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말기에는 양반과 서민의 옷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 특히 여자 저고리는 후기로 가면서 길이가 짧아져 오늘날과 거의 같은 모양이 되었다. 마고자를 입기 시작하였고 서양 문물의 영향으로 조끼를 입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여자들의 저고리가 짧아져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한복을 명절이나 특수한 날에만 입게 되었으며, 사람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생활 한복이 보급되기도 하였다.한옥은 전통 한국 건축 양식을 사용한 예전부터 내려오는 방식의 집을 말한다.한옥의 짓는 재료 모두 자연에서 오는 것을 이용했다. 벽은 흙을 이용해 토벽을 만들고 나무를 이용해 기둥을 새웠으며, 지붕을 올리고 문에는 한지를 발랐다.자연의 재료들을 이용함으로써 억지스럽지 않고 소박한 집을 지었다. 한옥의 특징은 1인 가옥이 아닌 공동체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마루는 열린 공간으로, 마당은 큰 대소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마당 같은 경우 사랑마당과 안마당으로 구분이 되는데 사랑마당은 집밖의 담에 둘러싸여 개방된 공간이지만 안마당의 경우 밖에서 볼 수 없게 되어 폐쇄적이다. 하지만 안마당은 집밖과 단절되었을 뿐 집안에서는 대가족이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온돌과 마루는 한옥에서 빠질 수 없는 큰 특징인데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 마루의 구들장을 데우는 방식이고, 마루는 땅바닥과 거리를 두어 설치한다. 온돌은 서양과 달리 실내에서 직접 불을 피우지 않아 안전하고 유해한 물질이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서양과 비교해 보면 집들을 크게 짓지 않았는데 이는 산이 많고 가용할 수 있는 땅이 적은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방 전체를 데우는 온돌의 전파가 더 쉬웠다.한옥에서 온돌덕분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것처럼 더운 여름에는 마루덕분에 시원하게 날 수 있다. 또 마루에서는 식사도 하고 가족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 튼튼하고 좋은 부자재를 이용해 만든다. 한반도는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기후가 동시에 공존하고, 또 지역마다 기후도 틀려 날씨나 위치에 따라 한옥의 건축방식이 다르다. 추위가 잦은 북부지방의 경우 외풍을 막아내고 보온을 유지하기 위해 방을 두 줄로 배열하는 겹집구조로 짓고 지붕은 낮게 만들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마루가 없고 방들이 서로 붙어있는 것도 특징인데, 반대로 더운 남부지방의 경우는 자연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방을 한 줄로 배열하고 지붕을 높게 올린다. 대청마루는 넓게 두고 창문과 방문을 많이 만들어서 더운 여름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 개방적으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 같은 섬 지역은 바람이 거세고 눈, 비가 잦아 지붕은 낮고 집 벽은 돌로 감싸서 짓는다. 또 지붕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동아줄을 이용해 그물모양으로 엮어 덮는다. 기후는 따뜻한 편이라 온돌 시설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시기별로 한옥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에 당나라로부터 풍수지리 사상을 들여와 배산임수와 같은 법칙을 따르기 시작했고, 이 시기부터 온돌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는 유교문화의 전파로 검소한 주택형태가 발달되었고 또 지역에 따라 한양 같은 수도권은 활용도가 높은 한옥구조가 유행했고, 지방 같은 경우 마루나 마당 같은 공간을 넓게 사용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 동안 한옥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새마을운동과 같은 운동으로 한국인의 주거형태에 대한 변화가 시작되어 대부분 신식 가옥들로 바뀌었다.나라마다 다양한 의식주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환경과 인간이 만든 인문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자연과 친숙하기를 좋아하고 자연을 애호한다. 자연을 벗으로 삼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산다. "길 아니거든 가지를 말라"고 했다. 사람이 갈 길은 자연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물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물은 장애물을 피하면서 바다에 이른다"는 말은 물처럼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산 모양은 보는 곳에 따라 다르다", "산은 멀리 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것은 자연의 불변성을 가르치고 자연의 모습을 감상하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가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자연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생을 영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은 자연주의의 극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자연을 믿고 기적을 바라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을 맛보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은 우리의 의식주에 그대로 묻어난다.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음식 재료들, 이상적인 주거 조건은 인간이 살기 위한 1차적인 주거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자연속의 선경에 어울려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는 농본문화적인 특성을 가진 선조들이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개울물이 흐르며 건너 안산의 기운이 마을 앞 고목사이로 은은히 비치는 곳에 집을 지었다. 그러한 곳이라면 공기 맑고 계절 따라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소리들이 인간의 정서를 돋울 뿐 아니라 자연경관을 음미하였다. 자연은 인간의 대상물이 아니라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우주질서이고, 생명의 모태이자 죽음의 회기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의복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우리를 일컬어 백의민족이란 이유가 여기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아주 깨끗하다'는 의미의 순백이라는 용어나, 백색을 상징하는 학이 동시에 고귀함이나 선함을 상징한다는 사실에서도 백색에 대한 우리 민족의 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소박성은 곧 자신을 드러내거나 남의 눈에 띄고자 하는 욕망이 배제된, 순수하고 겸허함을 나타낸다.
    사회과학| 2020.05.07| 4페이지| 1,000원| 조회(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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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어의 형태소에 대하여 유형별로 정리하시오. 평가A+최고예요
    한국어의 형태소에 대하여 유형별로 정리하시오.1. 형태소의 정의와 하위분류소리 단위와 달리 문법 단위는 그 자체로 일정한 의미를 가진다.문법 단위에는 형태소, 단어, 어절, 구, 절, 문장 등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작은 단위는 형태소이다. 즉,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단위가 형태소이다.형태소는 몇 가지 기준에 따라 하위분류되기도 한다. 먼저 문장에서 단독으로 쓰일 수 있는지에 따라 자립 형태소와 의존 형태소로 나누어진다. 또한 형태소가 가진 의미가 실질적인 개념인지에 따라 실질 형태소와 형식 형태소로 나누기도 한다.실질 형태소를 어휘 형태소, 형식 형태소를 문법 형태소라 부르기도 한다.예시)문장: 산에는 밤꽃이 가득 피었다형태소: 산, 에, 는, 밤, 꽃, 이, 가득, 피-, 었-,-다자립형태소: 산, 밤, 꽃, 가득의존형태소: 에, 는, 이, 피-, 었-,-다실질(어휘)형태소: 산, 밤, 꽃, 가득, 피-형식(문법)형태소: 에, 는, 이, 었-,-다명사, 대명사, 수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등이 단일 형태소인 경우 자립형태소가 된다. 홀로 띄어 쓸 수 있어 의존 형태소와 쉽게 구분된다.조사, 동사와 형용사의 어간, 어미, 파생 접사 등이 단일 형태소인 경우 의존 형태소가 된다. 실질 형태소에는 명사, 대명사, 수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동사와 형용사의 어간이 포함되며, 형식 형태소에는 조사, 어미 등이 포함된다.하지만 실질 형태소와 형식 형태소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한국어의 파생 접사, 특히 파생 접두사의 경우는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문법적인 기능에 초점을 두어 흔히 형식 형태소에 포함하지만 어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실질 형태소로 보려는 의견도 있다.또한 `먹어 보다`, 먹어 버리다`등의 `보-`나 `버리-`와 같은 보조 용언 어간을 본용언과 구별되는 요소로 보아 따로 다룰 때, 이러한 보조 용언 역시 문법적인 기능을 하면서 얼마간 실질적인 의미도 있어 실질 형태소와 형식 형태소 중에 넣기 어려운 점이 있다.2. 형태소와 관련된 개념언어 기호가 음성과 의미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형태소도 음성의 측면과 의미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측면을 구분하여 부를 때, 추상적인 의미의 측면을 `형태소`라고 하고 구체적인 음성의 측면을 `형태`라고 한다.이와 같은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의 형태소가 여러 개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의미가 같은 한 형태소인데 환경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 있다.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이형태라고 한다. 예를 들어 주격 조사는 `곰이/사자가`에서처럼 앞말의 끝소리가 자음이냐 모음이냐에 따라서 `이`가 되기도 한고 `가`가 되기도 한다. 곧 앞말에 어떤 음운이 오느냐에 따라서 뒷말의 형태다 달라지는 것을 음운론적 이형태라고 한다. 그런데 `오다`와 `하다`의 경우, 형태소 `오-/하-`뒤에서 `오너라/하여라`로 형태가 달라진다. 앞말의 형태소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너라/-여라`를 형태론적 이형태라고 한다.대체로 형태소들은 형태소와 형태소가 결합해서 만들어 진다.그런데 오로지 한 형태소하고만 결합하는 특이한 형태소 들이 있다. 이를 특이 형태소라고 하는데 `오솔길, 착하다, 아름답다, 느닷없이 `에서 `오솔-, 착-, 아름-,느닷-`은 특이 형태소라고 한다.예시)한국어에는 과거시제 선어말 어미가 있으며, 구체적으로 `-었`이나`-았-`,`-였-`으로 나타난다. 이를 집합으로서의 형태소 개념에 맞추어 보면형태소: 과거시제 선어말어미가 집합의 이름임형태: -었-, -았, -였-을 형태로 부를 때는 이들이 서로 연관이 있음을 구별하지않고 개별적인 것으로 파악함이형태: -었-, -았, -였-을 이형태로 부를 때는 이들 세 가지가 하나의 집합을구성하는 원소들임을 강조함- 먹었다: 먹았다(X) 먹였다(-었-은 음성모음 뒤에 옴)- 막았다: 막었다(X), 막였다(X) (-았-은 양성모음 뒤에 옴)- 하였다: 하었다(X), 하았다(X) (-였-은 하-뒤에만 옴)참고문헌나찬연(2007) 학교 문법의 이해. 제이앤씨남기심(2014) 표준 국어 문법론. 박이정윤평현(2008) 국어 의미론. 역락정재윤(2017) 말과 글을 살리는 문법의 힘. 시대의 창한국어의 품사 분류는 효율적인가?한국어의 품사는 체언인 명사, 대명사, 수사, 수식언인 관형사, 부사, 독립언인 감탄사, 관계언인 조사, 용언인 동사, 형용사로 총 9품사로 분류한다.문법은 간단 명료해야 하는데 몇 가지 품사는 나누기 예매한 것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 예가 부사를 분류하는 `그리고, 그런데` 등의 단어는 앞, 뒤의 문장이 이어지는 역할을 하기에 부사적 성격이 약해 보인다.아마도 오랜 시간 영어 학습, 특히 문법 중심으로 공부한 세대에게는 오히려 영어처럼 한국어 품사 분류에 없는 접속사로 이해하는 것이 더 명료하게 느껴진다. 또 관계언인 서술격 조사인 `-이다`란 설명을 보면 체언을 용언화 함이라고 나와 있다. 즉, 활용한다는 것인데 활용하는 것은 용언인데 서술격 조사는 앞에서 언급한 데로 관계언이다. 한명, 두명, 세명도 이런 경우도 숫자를 나타내기에 수사로 생각하기 쉬우나 체언을 수식하기 때문에 관형사로 분류 한다. 하지만 학교 문법에서 제시하는 품사 분류 기준은 기능, 의미, 형태(형식) 세 가지로 분류한다. 한 가지 단어로 분류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 기준으로 문장을 살펴보면 한국어의 품사 분류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20.05.07| 3페이지| 1,000원| 조회(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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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접발달영역의 정의와 근접발달영역에서 해야 하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평가A+최고예요
    한국의 현대문학언어학 개론문법 교육론어휘 교육론외국어 습득론문법론토론200장이상댓글 30자이상 5회이상한국 문화의 장단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세요한국 문화의 장단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세요한국 문화의 장점은 오랜 시간 이웃나라의 침입에도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아울러 외부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에 맞게 재구성하여 악기뿐만 아니라 종교, 도자기, 성리학 등 외국에서 전래되어 왔지만 한국만의 차별화된 문화를 만들고 금속활자, 한글 같은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 시켜 왔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중심 문화로 적은 자원과 국토가 대부분 산인 여러 좋지 않은 자연 조건에서도 자녀를 위한 부모의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헌신적인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높은 교육열을 통해 21세기를 선도하는 중심 국가로서 자리 매김 하고 있다. 하지만 고도의 성장을 이끌었던 한국인 특유의 빠른 목표 성장은 충분한 사고와 계획, 그리고 결과를 예측하는 과정을 생략한 체 성과만 올리면 된다는 성취 지향적 사고는 부실공사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켰다. 또한 지리적 특성으로 지역 이기주의가 심하고 거기서 더해 우리 보다 경제적으로 떨어지는 나라를 무시하는 심지어 얼마 전에는 귀화한 농구 선수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차별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나와 가족 등 내 주변만 챙길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 성장과 어울리는 선진 의식 수준으로 높여야 할 것이다우리는 우리말인 한국어를 왜 가꾸고 잘 지켜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세요한국어뿐만 아니라 언어는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 등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살아 있는 인류의 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 역시 반만년 한민족 역사 보다 더 오래 생겨나서 현재 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장차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우리 민족의 특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문화이다. 하지만 영어를 우선시 하는 교육과 짧은 시간에 소통을 하는 현대 문명으로 인해 앞 글자만 축약된 외계어가 범람하고 외국인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외래어가 버젓이 아파트의 대표 브랜드가 되어 있다.물론 언어란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닌 시대를 반영하여 새로운 단어가 생기고, 단어의 뜻이 본래의 뜻과 달라지고, 사라지는 단어가 있는 것이 필연이라 하더라도 본래의 뜻조차 알 수 없게 되는 언어 파괴 현상은 피해야 한다.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의 대중문화가 여러 나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 못한 것처럼 언젠가 한글로 쓰인 한국의 문학작품이 번역이 아닌 원어 그대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생각해 보라! 해외에서 그 나라 대학생들이 예전에 우리가 친구들 앞에 잘난 체 하러 영어로 시를 읊은 것처럼 조만간 한국어로 시를 읊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문법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한국어가 모국어인 경우 문법을 자세히 익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습득 되는 부분이 있고 그리고 영어의 문법이 오히려 더 중요한 시대이다 보니 더 이상 학교에서 국어교육을 받지 않는 나이가 되면 우리 문법이 어떤 품사로 이루어 졌는지, 품사의 개수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 이다.영어의 전치사는 알아도 우리말이 후치사로 되어 있는 건 인지하여도 후치사란 단어조차도 대다수가 생소할 것이다.하지만 한국어에서 문법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요즘처럼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 뜻조차 알 수 없는 말 줄임, 문법에 어긋난 비문 등이 남발되면,짧게는 몇 년 뒤, 길게는 몇 세대가 지나면 제대로 된 문법조차 알 수 없게 되어 기본적이고 올바른 한국어가 사라질 것이다.논리적이고 효과적으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바로 문법 지식이다. 한국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닌 후대에 전수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이다.한국어 어휘의 일반적인 특징을 서술하고, 이 특징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서술하세요한국어 어휘의 특징은 형태소의 결합에 의해 어휘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즉, 조사의 결합에 의한 문법 관계의 표시라든지, 선어말 어미의 결합에 의한 시제, 회상, 추측 등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어말 어미가 발달되어 있다. 접사에 의한 파생어, 어휘결합에 의한 합성어가 형성되며, 연어가 굳어져 관용어를 형성하기도 한다. 한국어 어휘의 특성을 제시한 연구 자료를 보면 유의어, 동음이의어가 많고 대우를 나타내는 어휘가 발달하고, 개념어로 한자어가 많이 쓰인다. 또한 체언이 격에 따라 형식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음성 상징어가 발달하고 이철자 동음이의어가 많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그동안은 어휘 교육이 다른 교육에 비해 소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고 하나 어휘 교육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새로운 단어가 생겨나고 또한 같은 한국어지만 북쪽에서 사용하는 한국어는 같은 단어가 다른 뜻을 내포한 경우도 많고 어말 어미 변화다 다르다.따라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중에는 탈북자도 증가 추세이니 그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근접발달영역의 정의와 근접발달영역에서 해야 하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세요근접발달영역이란 혼자의 힘으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지만 유능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달성할 수 있는 영역을 뜻하는 것으로 실제적 발달수준과 잠재적 발달수준의 차이 내에 존재하는 수준의 영역을 의미 한다. 예를 들어 마라톤에서 나보다 뛰어난 선수가 옆에서 아니면 조금 앞에서 같이 뛰어 주면 내 기록이 전보다는 향상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교실 안은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있으므로 수준이 다른 학습자로 구성된 그룹을 만들어서 협동과제를 제시하면, 각 그룹 내에 있는 능력 있는 학습자는 또 다른 교사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는 이를 통해 학습자 중심의 수업을 이끌고 경쟁이 아닌 협동을 유도한다. 수준이 높은 학습자는 자신의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다시 재확인하고, 이해의 정도를 확고히 하며, 도움을 받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또래 친구가 교사보다 더 가까운 존재로서 학습 태도를 조금 더 개방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다. 교사는 수준이 차이 나는 학습자로 구성하기 보다는 서로의 지식을 상호 보완 할 수 있는 그룹을 만드는 것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수행 하고 있을 것이다. 쓰기를 잘 하는 학생이지만 듣기가 서툰 학생과 듣기는 잘 하지만 쓰기가 서툰 학생으로 그룹을 만들어 듣고 쓰는 수업을 진행 한다면 학습자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하면서 더욱 깊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직접 들으며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한국어의 품사 분류는 효율적인가?한국어의 품사는 체언인 명사, 대명사, 수사, 수식언인 관형사, 부사, 독립언인 감탄사, 관계언인 조사, 용언인 동사, 형용사로 총 9품사로 분류한다.문법은 간단 명료해야 하는데 몇 가지 품사는 나누기 예매한 것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 예가 부사를 분류하는 `그리고, 그런데` 등의 단어는 앞, 뒤의 문장이 이어지는 역할을 하기에 부사적 성격이 약해 보인다.아마도 오랜 시간 영어 학습, 특히 문법 중심으로 공부한 세대에게는 오히려 영어처럼 한국어 품사 분류에 없는 접속사로 이해하는 것이 더 명료하게 느껴진다. 또 관계언인 서술격 조사인 `-이다`란 설명을 보면 체언을 용언화 함이라고 나와 있다. 즉, 활용한다는 것인데 활용하는 것은 용언인데 서술격 조사는 앞에서 언급한 데로 관계언이다. 한명, 두명, 세명도 이런 경우도 숫자를 나타내기에 수사로 생각하기 쉬우나 체언을 수식하기 때문에 관형사로 분류 한다. 하지만 학교 문법에서 제시하는 품사 분류 기준은 기능, 의미, 형태(형식) 세 가지로 분류한다. 한 가지 단어로 분류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 기준으로 문장을 살펴보면 한국어의 품사 분류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 문화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서 토론해 보세요한국 문화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서 토론해 보세요보통 문화의 속성을 구분할 때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적인 행동 양식 및 사고방식인 공유성, 후천적인 학습으로 문화가 이어지는 학습성, 기존의 문화에 새로운 지식과 생활양식이 쌓이는 축척성,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동성, 문화의 구성 요소들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전체를 이루는 전체성으로 나눠지는데 한국 문화는 그중에서 공유성과 학습성, 변동성이 다른 문화에 비해 더 두드러지는 속성을 보인다. 바로 옆 나라인 중국과 일본을 보더라도 외모는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3국의 문화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한국 문화의 특징은 국가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빠른 학습성과 변동성으로 우리 전통도 빠르게 사라져 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높여 있다. 그 어느 곳보다 빠른 문화의 변동으로 세대 간의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적으며 집단 간의 강한 공유성으로 세대 갈등과 집단 간의 갈등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아진 현실이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을 먼저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한국어에서 소리의 장단이 뜻을 분화하는 기능을 얼마나 하는지 실제로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 관찰하여 그 결과를 말하시오.한국어는 이웃인 중국어, 일본어와 달리 소리의 길고 짧은 것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단어를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주로 교재에서나 예시를 드는 눈, 배, 밤, 김 등이 나올 뿐, 그것도 실생활 언어에서는 실제 소리의 장단이 틀리게 내어도 뜻이 잘못 전달되는 경우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어느 연구자가 쓴 글을 보면 한국어 5만 여개 고유어 명사 중에 장단에 의해 구분되는 단어의 쌍이 34쌍에 불과 하다는 연구를 보아도 장단이 단어의 의미 변별에 중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요즘 주변 사람들은 위의 예시한 단어를 장단에 따라 뜻이 다른 건 알아도 올바른 장단에 맞는 단어를 알지 못하거나 구별하여 쓰지도, 들어서 구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요즘은 랩이나 문자를 통한 통신수단으로 띄어쓰기조차 파괴되어 가는 모양새이다.
    인문/어학| 2020.05.07| 3페이지| 1,000원| 조회(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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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성상징어를 교육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평가A+최고예요
    음성상징어를 교육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시오.세상에는 여러 가지 소리가 있다. 이 소리들 가운데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말소리 또는 음성이라고 한다. 사람이 내는 소리 가운데는 웃음소리, 울음소리, 기침 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소리들은 음성이라고 하지 않는다.말을 할 때 입과 목 같은 발음 기관을 사용해서 내는 소리만을 음성이라고 한다.음성상징어는 의미에 해당하는 감각을 음 또는 음운으로 상징하는 어휘로서의성어와 의태어가 음성상징어에 속하는데 어떤 소리를 흉내 내는 말을 의성어, 모양이나 행동을 표현하는 것을 의태어라고 한다.그럼 예전의 한 리얼 사운드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를 나타내는 `쨍그랑`이 아닌 `파스챙통땅때랭` 이라며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가 사물의 소리를 제대로 흉내 내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그 사물의 소리를 성대모사하고, 모사한 것을 다시 흉내 내서 적어 놓은 글로 웃기는 개그가 있었다.여기서 `파스챙통땅때랭`이 의성어인가?음성과 음성이 아닌 소리를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는 분절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접시가 깨지는 소리는 실제로 말이나 글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가장 큰 이유는, 사물이 내는 소리는 끊어져서 나지 않고 연속적으로 나기 때문이다.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할 수 없고 한 글자 한 글자 끊을 수도 없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그 소리를 흉내 내 말할 때 `쨍그랑`이라고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세음절로 끊어서 발음한다. 사람의 말소리는 다른 소리와 달리 분절성이 있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의성어는 각 언어 사이에서 이해가능성이 적다.즉, 음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각 언어의 음운체계나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발달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 학습자들이 의성어와 의태어를 학습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항목이기도 하다.한국어는 소리나 모양을 나타내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잘 발달해 있다.또한 한국어 어휘 부류로서는 드물게 한자어의 침투를 거의 받지 않았다.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나타낸 `졸졸`과 `줄줄` 보면 양성 모음으로 구성된 단어는 작고, 밝고, 가벼운 느낌을 나태내고, 음성 모음으로 구성된 단어는 크고,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나타낸다.의태어는 의성어보다도 더 발달되어 있다.의성어가 소리의 모방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낱말인 데 반하여, 의태어는 모방과는 관계없이 모양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만들어진 낱말이다.의태어는 형태변화를 하지 않고 문장의 주된 기능이 용언을 수식하는 부사어라는 점에서 부사에 소속되는 것이지만, 일반 부사와 다른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다. 우선, 의태어는 모음조화나 자음교체에 따라 대립을 이루며 어감을 분화시켜 나간다는 특성을 가진다.가령, ‘아, 오’ 등의 양성모음계열로 조화된 의태어는 ‘모락모락, 동실동실, 방긋방긋’ 등에서 보듯이 밝고 경쾌하고 가벼운 어감을 가지는 데 반하여 ‘어, 우’ 등의 음성모음계열로 조화된 의태어는 ‘무럭무럭, 둥실둥실, 벙긋벙긋’ 등에서 보듯이 어둡고 묵직한 어감을 가진다.이 뿐만 아니라, 자음의 예사소리와 된소리, 거센소리도 각기 짝을 이루면서 어감의 분화를 보여준다. ‘데굴데굴, 떼굴떼굴’, ‘나불나불, 나풀나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이와 같이 의태어는 모음과 자음의 규칙적인 교체에 의하여 어감을 분화시켜 나간다. 그리하여 의태어는 사물의 크기나 강도의 차이, 색의 명도나 채도의 차이, 행동의 크기와 속도의 차이 등을 미묘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게 한다.의태어는 또한 어근이 두 번 반복된 합성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나타낸다. 여기에는 ‘한들한들, 방긋방긋’ 등과 같이 동일어근이 두 번 반복 합성된 경우도 있으며, ‘아롱다롱, 울긋불긋’ 등과 같이 형태적 모습을 약간 달리하면서 반복 합성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솔솔솔, 출렁출렁출렁’ 등과 같이 세 어근 또는 그 이상의 어근결합도 가능하다.그 뿐만 아니라, 이 의태어 어근은 국어의 단어형성에 있어서 고유어근을 제공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예를 들어 ‘-거리다, -하다’ 등의 접미사와 결합하여 ‘출렁거리다, 흔들흔들거리다’와 같은 수많은 동사어간을 만들 수도 있으며,이 밖에 ‘딸꾹질, 오뚝이’와 같은 파생명사, ‘흔들의자, 산들바람’과 같은 전성명사, 그리고 ‘갸웃이’와 같은 파생부사 등을 만들 수도 있다.이처럼 음성 상징어는 한국어의 대표적인 특성 중의 하나이다.그러나 음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각 언어의 음운체계나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발달한 대다수 의성어는 간 언어 사이에서 이해 가능성이 적다. 즉, 음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각 언어의 음운체계나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발달해 왔기 때문이다. 의태어는 모양을 흉내 낸 말이기 때문에 각 언어 간의 유사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처럼 의태어가 발달한 언어 역시 찾아보기가 힘들다.따라서 의성어 교육과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의태어 교육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그 첫 번째는 문맥을 통한 교육방법이다.대부분의 경우 의태어는 문맥 속에서 사용되며, 의태어를 제외시키더라도 문맥을 이해하는데 는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두 번째 방법으로는 의태어의 어원이 대부분 실사에서 발달하였다는 이론에 기대는 것이다. 즉 의태어를 어원이 되는 명사와 연결시켜 기억하게 하는 일종의 핵심어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의미의 유사성이 있는 어휘와 함께 교육한다면 암기에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참고문헌박동근(2007) 한국어 흉내말의 연구, 역락채 완 (2003) 한국어의 의성어와 의태어, 서울대학교 출판부
    인문/어학| 2020.05.07| 3페이지| 1,000원| 조회(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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