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비평문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은 518 사건의 진실에 대해 밝히려고 하는 내용의 영화이다. 이 영화의 내용의 대충 아래와 같다.이 영화의 초반에는 지만원이라는 인물을 인터뷰한다. 인터뷰에서 지만원은 518사건을 북한군의 침입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당시 신군분와 충돌하였던 광주 시민들은 북한군에게 동요된 양아치들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말의 근거로 광수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여기서 광수는 518사건 당시에 광주에 내려왔던 북한군들을 지칭하는 언어이다.또한 다큐멘터리에서 지만원은 연설에서 자신이 제1광수라고 지칭한 사람의 사진을 모니터에 띄운 후 이 사람의 행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이 다큐멘더리 영화는 518의 진실을 독재 신군부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풍긴다. 그런데도 이 인터뷰를 영화에 삽입한 것은 자신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에 대해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 후 다큐멘터리는 지만원이 제 1광수라고 지목한 사람을 찾아가는 상황을 중심적으로 보여주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과정 속에서 지만원이 다른 광수들로 지목한 사람들의 증언이나 518 이후에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초반 부분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만난 518 당사자들은 대부분 제1광수라는 인물을 본 적은 있으나 이름을 모른다는 진술이 계속 등장한다. 그 이후 제 1광수와 사진에 같이 나온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찾다가 건너건너 제 1광수라고 불리는 사람을 아는 사람을 제작진이 만난다. 그 사람은 그 당시 계엄군에게 죽었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유골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영화는 518 당사자들이 영화관에서 만나서 518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런 제 1광수를 찾는다는 가장 큰 줄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518에 관련된 사람들도 인상깊다. 518 때 죽은 아들이 있는 어미니가 등장하는데 그 어머니가 계속 아들을 기다렸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518사건에 연루되 징역을 살았던 사람은 자신이 가진 꿈이 전과 때문에 포기했다고 말한다. 계엄군들에게 물고문을 심각하게 당해 타인이 머리를 감아주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나온다. 이 사람들은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518 사건이 과거에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까지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사건임을 보여주기 위해 나오는 장면인 것 같다. 이는 당연히 518의 완전한 진실을 밝히려고 지속적으론 노력하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속성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지만원이라는 사람이 광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것으로 보아 지만원같은 사람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고 도 볼 수 있다.이 영화를 해석과 평가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 관점에서 영화를 볼 때 두 가지 정도가 눈에 띄었다. 첫 번째는 지만원의 해석과 평가에 대한 타당성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518 사건에 대해 평가하고 해석하는 사람 중 가장 특이한 인물은 이견 없이 지만원일 것이다. 지만원은 지속적으로 518 민주항쟁을 광주 폭동 사태라고 주장하고 신군부의 발포는 정당하였다고 주장한다. 놀라운 점은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집회에서 상당히 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지만원의 주장에 동조하고 환호한다. 이러한 지만원의 주장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사용된 것은 크게 2가지이다. 첫째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이다. 이것이 북한군들이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고 한 행위라고 해석하고 있다.또한 지만원의 자료에 등장한 북한군과 518 민주 항쟁 사진에 나온 시민군의 얼굴 윤곽선이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광수라고 칭한다. 이것 또한 518이 북한군의 남침임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이 성립하기에는 반대되는 증언들이 너무 많다. 518 사건은 30년도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사건이다. 이는 518사건의 당사자들이 대부분 생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당시 당사자들 대부분은 계엄군들이 먼저 발포를 하였고 기관총으로 무차별 난사를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한 북한군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518 당사자는 없다. 당시 사람들은 적은 수도 아니고 수감 기록같은 그 사람에 대한 기록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모든 사람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굉장히 무리가 있다. 이에 대해 적절한 반박없이 넘어가는 것은 그러한 주장의 신빙성을 굉장히 떨어뜨린다. 또한 지만원 주장의 논리도 설득력이 크지 않다. 지만원은 당시 518 사건에 시민군으로 참여한 사람들과 북한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 윤곽선을 비교하여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지만원 주장의 가장 주요한 근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윤곽선을 누가 비교하였는지 다큐멘터리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몇 명의 전문의가 이에 동의하였는지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는 지만원의 주장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 되기 힘들게 만든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과 평가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대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는 사료에 기반해야 한다. 다시말해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만원의 해석과 평가는 사료라고 볼 수 있는 518 당시 사람들의 증언을 무시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 그러므로 지만원이 해석과 평가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일만한 해석과 평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두 번째로 내가 해석과 평가관점에서 볼 때 집중한 것 은 같은 자료를 보고 반대의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518 진상 조사단과 지만원이 가지고 있는 근거는 둘 다 제한적일 것이다. 또한 가지고 있는 근거가 매우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518 진상 조사단은 518사건이 신군부가 일반 시민들에게 발표한 사건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지만원은 518 사건이 북한군의 남침을 군인들이 진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똑같은 사실을 정반대로 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가치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자료에 대한 해석이 완벽하게 연구자들의 가치 판단과 독립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518 사건처럼 정부가 통제한 정보에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것들이 사건과 사건 사이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간극은 확신을 줄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연구자가 합리적 추론을 해야한다. 여기서 합리적 추론은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추론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추론자의 주관이 들어갈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같은 역사 자료를 보고 목격자의 증언을 듣더라도 주장하는 역사적 사건의 본질이 다른 것이다. 이는 어떤 한 사람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주장이 한 측면으로 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뜻한다. 필자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이러한 점을 보며 한 관점에서만 바라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주장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다큐멘터리 김군에서 다루고 있는 518 사건은 사실상 합리적 의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보편적 평가와 해석이 존재하는 사건이기는 하다.또한 이 영화는 주체와 구조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주체와 구조는 한 측이 다른 한측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간에 영향을 주는 관계에 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2019년은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어 있는 시대이고 탐탁치 않은 정치적 현상이 있을 경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도 총을 맞을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518 사건이 일어난 1980년대는 그전에는 박정희 군부 독재 체제가 이어지다가 박정희가 죽은 후 신군부가 등장하여 독재가 다시 이어지는 시대이다. 1980년대는 정치적 민주화도 되어있지 않고 고문과 무력 진압이 당연시되는 시대이다. 이것이 518 사건이 일어난 광주에 살았던 시민들이 살던 구조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에서 그 당시 시민군으로 있었던 사람의 인터뷰가 나왔다. 그 분은 자신은 정치적 이유보다 군인들이 광주 시민을 폭력 진압하고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경찰에 저항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시민은 경찰들이 시민을 총을 쏘는 것은 고사하고 진압용 물대포도 조심해야 하는 2019년에 살았다면 518사건 때 그랬던 것처럼 무기고를 탈취하고 경찰들에게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장 전형적인 구조가 개인에게 영향을 준 예이다. 또한 이러한 구조가 그냥 등장한 것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있다. 이러한 1980년대 부당한 구조를 만든 것은 신군부의 군사 쿠테타이다. 또한 불과 30년만에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되어있고 평화적 시위가 자리잡힌 시대가 된 것은 수많은 민주화를 갈망하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체가 구조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너무 한 쪽으로 생각하는 것은 진실을 파악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