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25 전쟁 (인천상륙작전 전까지의 과정)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북한 공산군이 남북 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으로 남침을 하면서 일어난 이 전쟁은 세계에서는 한국 전쟁이라고 알려져 있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6.25 전쟁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한반도에는 38선을 경계로 두 국가가 세워지면서 우리 민족은 서로 다른 이념 아래 살아가게 되었다. 38선 이남과 이북에 각각의 단독정부가 수립이 되고,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같은 민족이라기보다는 적으로 생각했다
사람은 경제적 행위를 하면서 선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원의 희소성으로 인해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의 대가는 기회비용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 입니다. 어떤 상품을 얼마나 생산해야 하느냐를 결정해야 할 때 가장 바람직한 선택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III. 민족개량주의(민족해방?)1. 1920년대의 활동- 3.1 운동 실패 후 문화정치 하에서 절대독립론·독립전쟁론이 계속되기는 곤란, 타협주의와 친일적 노선 걷는 계열 등장- 문화정치·문화운동과 논리를 같이하는 민족성 개조, 실력 양성, 자치 지향- 대표자 : 김성수, 이광수, 최남선, 최린 등 - 이광수의 <민족개조론>(1922년), <민족적 經綸>(1924년)이 민족개량주의의 이론적 강령- 언론·출판을 통한 문화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제 사회단체를 통한 계몽운동 전개 → 이광수의 <민족적 경륜>이 실리는 시점을 계기로 민족언론운동 한계2. 1930년대-1940년대 친일파의 활동1) 1930년대 초반 친일파의 활동- 브나로드 운동, 천도교 신파의 농촌계몽운동, 일제의 농촌진흥운동2)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친일파의 활동- 민족말살정책의 강화 : 1937년 10월 황국신민서사 제정, 신사참배 강요, 1939년 창씨개명제도 실시, 1938년 지원병제도, 1943년 학도지원병 제도, 1944년 4월 징병제도 실시- 친일단체 결성, 친일파의 반민족행위, 창씨개명 : 이광수, ⾹⼭光郞(가야마 미쓰오)IV. 사회주의 운동과 조선공산당1.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사회주의 세력의 등장- 1917년 러시아 혁명 성공- 한국인으로서 사회주의 사상 최초 수용 : 러시아 지역의 민족주의자 - 1918년 6월 한인사회당 조직 : 이동휘 -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조직, 이동휘가 국무총리로 임명되자 상하이로 이동, 활동 개시 1920년 5월 한인공산당 조직 : 상해파- 소련에 귀화한 한인이 중심이 되어 이르쿠츠크 현 위원회 산하에 1920년 1월 고려부 조직 : 이르쿠츠크파- 1921년 5월 상해와 이르쿠츠크에서 각각 고려공산당 창립대회 가짐, 2개의 공산당
- 인구의 증가 - 1910년 1,740만 명 → 1945년 2,530만 명 - 원인 : 의학의 발달, 우두 접종, 위생의 개선에 따른 사망률 감소- 초혼 연령 - 1925년-1940년 : 16.6-17.8세 - 점차 조혼의 경향 감소 : 경성지역 15-19세 조선인 여성 미혼율 52%(1925년) → 72.2%(1935년) 농촌 26.0% → 35.3%- 여성은 혼인 뒤 6명의 아이 출산, 출산 아동의 1/4이 돌 전에 사망- 해외 유출 인구 - 327만 명의 인구가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일본, 만주, 중국 본토, 러시아 등으로 이주 - 전시동원체제로 접어든 1930년대 후반부터는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노동자․군속․군인․군위안부가 해외 유출 인구의 대다수 차지 : 최소 200만 명 이상 유출 → 1944년 처음으로 전년 대비 인구 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