魯迅과 藤野先生- 魯迅과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차 례 >1. 서론: 魯迅과 藤野先生2. 본론: 魯迅의 사상과 藤野先生의 영향2-1 魯迅의 계몽적 사상2-2 魯迅에게 있어서 藤野先生의 의미3. 결론1. 서론: 魯迅과 藤野先生처음부터 그가 문예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일본 유학길로 들어선 그가‘의학’이라는 분야를 선택한 것은 오로지 아버지, 중국의 발전되지 못한 의학기술로 억울하게 죽은 그의 아버지의 잔상 떄문일 것이다. 의학적 책임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잘못된 의학지식은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일종의 속임수와도 같은 일이었고, 그의 경험은 그들에 대한 엄청난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일본에서 발달된 의학을 공부해 중국으로 돌아가 그릇된 치료법을 바로 잡고 자신의 아버지가 겪은 고통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은인이 바로 후지노선생인 것이다. 비록 후에 그는 다른 길을 택했지만, 후지노선생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그의 꿈을 꿈이 아닌 현실로써 이끌어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후지노선생이 어떤 이유에서 낯선 중국 유학생에게 큰 관심과 정성을 쏟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선생과 제자 사이를 넘어선 서로의 학문적 교감의 상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수업 후 노신을 따로 불러 강의를 이해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는지 묻는가 하면 그의 필기를 꼼꼼하게 살펴보며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었다는 그의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2학년 말 노신이 후지노선생에게 작별을 고했던 날, 선생은 자신의 사진 한 장을 주며 루쉰의 것 역시 부탁하였다. 아마 그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던 이유에서였을 것이다.선생은 왜 그렇게 노신의 기억 속에 남고 싶어 했던 것인가. 단순한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호기심이었을까? 또는 장차 노신이 중국 역사 속에 크게 남을 인물임을 진작 알아본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와 감정이 섞여 있을 것이라 감히 추측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의 마음을 이해한 선생이 그를 통해 중국의 의학과 사상의 발전 역시 머지않아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노신은 후에도 후지노선생의 사진을 방 한 편에 걸어두고 자신이 나태해질 때마다 올려다보며 다시금 자신을 채찍질 했다. 후지노선생과 노신, 둘 사이의 지금의 우리는 못다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공감이 인연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한다.2. 본론: 魯迅의 사상과 藤野先生의 영향2-1 魯迅의 계몽적 사상노신이 후지노선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노신에게도, 후지노선생에게도 인생의 한 편에 서로가 없었더라면 둘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노신이 결정적으로 의학을 그만 두고 계몽적 사상의 전파를 생각했던 사건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학교에서는 남는 시간에 학생들에게 간단한 필름을 보여주곤 했는데, 하루는 많은 중국인들이 총살을 당하는 모습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몇몇 학생들이 이를 보고 환호하며 박수를 치며 웃었다. 충격적이게도 그들은, 중국인이었다.동포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 웃는 그들을 보며 노신은 지금은 인간의 신체를 해부할 게 아닌 정신을 해부할 때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인 아Q정전이 의미하듯, 각 개체들의 사상을 뜯어고치지 않고 모두를 아Q인 채로 내버려두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결국 전통과 과거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중국인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보며 비웃었던 중국인, 즉 구경꾼들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보았다. 다수의 무리의 의견에 따르며 사상의 발전과 발달을 부정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중국의 성장을 막는 것이다. 전통이라는 그늘에 숨어 자신들 개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고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을 계몽시키지 않으면 중국에게 미래는 영원히 그저 희망사항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을 계몽시키고 정신을 뜯어고칠 수 있는 방법으로 노신은‘글’을 선택한 것이다. 고리타분한 사상을 갖고 한계를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이 바로‘글’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루쉰은 글의 힘을 등에 업고 비로소 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할 수 있다.모택동은 노신을 현대 중국의 성인이라고 평하였다. 이는 그가 특정 학설을 내세우거나 단순히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는 데 힘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노신이 계몽적이고 독립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노예적 근성을 갖고 그저 다가오는 현실에 타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중국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유일한 빛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사실 누구나 사상을 계몽시키는 일에 대한 생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이었고, 노신은 이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이는 논어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공자의 말씀이자 그의 사상을 나타내는 데 충분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자의 말씀은 영화 속 표현된 그의 생애를 통해 나에게 더욱 가까이 와 닿을 수 있었다.영화와 논어 속 공자의 생애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흥미를 끌어올리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으로 결코 비판 받을 부분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오히려 이런 분명한 차이가 공자라는 사람을 그저 딱딱하고 지루한 철학자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도움을 주고 그의 사상의 비현실성에 대한 지적을 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먼저 공자와 남자의 만남, 자견남자의 일화를 차이점의 하나로 들 수 있다. 남자는 춘추시대 위 영공의 아내로, 노후한 남편을 대신해 정치를 펼쳤던 매우 영향력 높은 여인이다. 둘의 만남에 대해 특히 자로가 매우 반발하는데, 이는 그녀가 얼마나 악명 높은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영화에서 둘의 만남을 야릇하게 연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논어 옹야 편에서 공자는 남자와의 만남 후에 결코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단정 짓는다. 따라서 영화 속 표현된 둘의 만남 속 미묘한 감정 변화는 마치 공자가 여색에 약한 인물이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영화의 재미를 위한 결정이었을 것이므로 무조건 비판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사랑의 감정을 어렴풋이 드러내기는 했지만 결코 지나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둘째로, 공자의 여러 제자들 중 안연과 자로의 죽음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과 덕행을 후세에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안연뿐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안연을 매우 사랑했다. 논어에 따르면 그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몸이 몹시 병약해졌다. 하지만 치료 받을 만한 형편이 못 돼 요절하고 만다. 이와 달리 영화 속에서의 안연은 추운 겨울 빙판길을 걷다가 얼음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갈라지게 되어 물에 빠진 책을 건져내려다 그만 정신을 잃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한 장면은 각각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공자의 마음만은 온전히 스크린 속에도 남아있었다. 실제로 공자는 안연이 죽었을 때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고 소리치며 그 누구보다도 슬퍼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공자가 안연의 차갑게 얼어붙은 시체를 품속에 안고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우는 장면은 그런 그의 심정을 충분히 전달해 주었다고 생각한다.자로는 협객 출신으로,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용맹하고 다소 거친 성격을 가진 인물로 나타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가 아닌가에서 차이점이 드러나지만 나라의 부름을 받아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위나라를 구하려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공자의 깊은 가르침을 통해 깨달은 바, 그는 군자는 죽을 때도 의관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적군의 칼에 잘린 갓끈을 다시 고쳐 매는 의지를 보였다. 후에 자로의 시체가 소금에 절인 젓으로 만들어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공자는 그 날 이후 식탁에 젓갈이나 소금이 들어간 음식을 일절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제자들처럼 항시 의젓하고 성품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공자의 눈 밖에 난 적이 많은 자로였지만 그런 과정에서 또한 공자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1. 장자중국 고대 도가의 사상가. 이름은 주. 송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그 기본적 사상의 중심은 당시 지배자의 지위에서 몰락하고 있던 사상가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삶에 얽힌 근심과 고난으로부터 관념론적으로 도피하려고 한 인생론에 있다.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은 근심의 근원인 자기의 육체ㆍ정신을 버리고 '허정', '염담'의 심경에 도달하여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어떠한 것에도 침해받지 않는 자유ㆍ독립을 얻어 세계의 밖에서 초연하게 노니는 것이다. 이것을 실현한 사람이 '진인'이다. 이 인생론의 근저에는 세계는 불가지의 실재인 '도'의 표상이라는 세계관과, 개념적 인식과 가치판단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고 철저한 무지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하는 지식론이 깔려 있다.이 지식론은 명가의 궤변이나 전변의 제물설의 비판적 섭취에서 성립, 얼마 후에는 세계관과 혼합하여 세계의 존재와 운동은 '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존재론, 우주 생성의 전설을 받아들여 태초의 '혼돈'='도'로부터 세계가 유출하였다고 하는 우주생성론 및 음양 오행설을 채용하여 물의 생사를 기의 집산으로 설명한 자연론 등이 전개되었다. 의 새로운 부분에는 위와 같은 생각에 기초하여 무위자연으로 인민을 통치한다고 주장한 정치 사상도 있다.2. 장자의 사상-호접몽을 중심으로1) 호접몽이란나비에 관한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 중국의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깨서는, 자기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호랑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에 나온다.★ 원문내용어느날 장자는 제자를 불러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내가 어젯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철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불현듯 꿈에서 깨었다.깨고보니 나는 나비가 아니라 내가 아닌가?그래 생각하기를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때는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그런데 꿈에서 깨고보니 분명 나였다.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알쏭달쏭한 스스의 이야기를 들은 제자가 이렇게 말했다."스승님, 스승님의 이야기는 실로 그럴듯하지만 너무나 크고 황당하여 현실세계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그러자 장자가 말하기를,"너는 쓸모있음과 없음을 구분하는 구나. 그러면 네가 서있는 땅을 한번 내려다보아라. 너에게 쓸모 있는 땅은 지금 네 발이 딛고 서 있는 발바닥 크기만큼의 땅이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너에게 쓸모가 없다. 그러나 만약 네가 딛고 선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땅을 없애버린다면 과연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작은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겠느냐?"제자가 아무말도 못하고 발끝만 내려다보고 있자 장자는 힘주어 말했다."너에게 정말 필요한 땅은 네가 디디고 있는 그 땅이 아니라 너를 떠받쳐주고있는, 바로 네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나머지 부분이다."- 장자의 꿈이야기와 장자의 사상을 같이 살펴보면,장자는 꿈도 현실도, 삶도 죽음도 구별이 없는 세계를 강조했다.우리가 보고 생각하는 것도 한낱 만물의 변화상에 불과한 것이라 하였다.즉, 외물과 자아의 구별이 없는 세계를 강조함을 뜻한다.오늘날에는 이 꿈을 인생의 덧없음에 비유하여 쓰기도 한다.2) 호접몽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장자의 사상과 가치관-나비가 된 꿈이라는 말로, 물아일체의 경지를 가리킨다.장자는 전국시대 전쟁이 끊이지 않던 불안한 시대를 살았다.특히 그가 태어난 송나라는 당시 약소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형적으로 사방으로 적을 맞아 싸워야만 했다.장자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인간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사고하게 되었고, 그 자유를 추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그 결과 우리들이 흔히 시비, 선악, 미추, 화복 등을 구분짓는 일이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만물은 결국 '하나'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본 것이다.'호접몽'이라는 고사 또한 이러한 사고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피상적인 분별, 차이는 있어도 절대적인 변화는 없다.장주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장주라는 경지, 그것이 여기서 강조되는 세계이다.상대가 없는 세계, 차별이 없는 세계, 이것이 바로 장자가 그린 아상향이다.-동·서양의 숱한 사랑 이야기에 나비는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중국에 전해오는 양산백과 축영태의 슬픈 사랑 이야기의 결말은아리따운 축영태가 죽어 나비가 되는 것이다.그리스말로 나비는 프시케(Psyche).아프로디테(Aphrodite)의 아들인 사랑의 신 에로스(Eros, 로마에선 큐피드)가 도리어 사랑에 빠졌던 인간 여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프시케는 인간을 넘어 신이 되었다.나비처럼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시케는 숨결 정신 마음 영혼이란 뜻이기도 하다.생명이 어떤 것이며 무엇이 되려는지 알려주는 말이다.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영화로 유명해진 '빠삐용'(Papillon)이란 말은 나비를 뜻하는 불어.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을 가진 죄수의 탈옥 이야기다. 장자가 꿈에서 깨어 중얼거린 이유도나비였을 때의 자유가 아쉬웠기 때문일 것이다.나비는 인생의 덧없음, 남녀의 사랑, 자유를 상징한다.제각각인 상징들이 나비로 모이는 이유는 나비의 변태 때문이다.호접몽은 굼뜨고 보잘 것 없던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꿈이다.경계를 넘어서려는 '흰 그늘'의 꿈이다.3. 도가-누구나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다★ 장자가 제시하는 수양방법-좌망과 심재-심재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좌망은 '고요 속에 머무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좌망이 도움이 된다. 좌망은 '자신의 손발이나 육체를 잊고, 눈과 귀의 작용을 멈추며, 형체와 지각을 벗어나서, 위대한 도와 하나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잊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가 원할 때 고요한 상태에 머무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