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원목 차 생애 업적실학자 유형원의 생애 2 세 아버지 유흠이 누명을 쓰고 자결함 5 세 글을 배우기 시작 국토 곳곳을 여행하며 백성들의 참담한 실상을 피부로 느끼는, 실생활에 대한 공부에 관심 21 세 백경사잠 , 이기사칠 , 인심도심 등의 설을 논술 29 세 과거 시험 낙방 그는 북 인 계 인사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출사에 제한을 당했고, 실망한 그는 이후 관직을 단념 33세 진사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됨 35 세 여지지라는 지리책 저술 그는 권세를 지키기에 급급한 벼슬아치들이나 고통받는 농민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야기 하는 유식자들을 비판 함 이후 그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선비의 길을 택하게 됨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고, 당대의 권세가들이 권유하는 벼슬도 마다 함 ‘ 반계서당 ’을 짓고 성리학과 실학 사상 연구와 농업,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 등에 전념 49 세 반계수록 저술 사후 그의 사상은 후에 서인 이사명과 이이명 , 소론의 윤증과 박세채 , 노론의 홍계희 등 소수의 지식인들이 관심을 갖고 높이 샀고, 영조 때에 이르러 재조명되기 시작 함 . 양득중 , 이익, 안정복, 신후담 , 정약용 등을 통해 계승 됨 .업적 반계수록 저술 – 실학의 아버지 유형원 토지 제도 , 조세 제도 , 교육 제도 , 과거 제도 , 관리 임용 제도 , 군사 제도 등 다방면에 걸친 개혁안이 담겨 있었고 특히 농민들에게 땅을 고루 나누어 주자는 균전제는 이후 실학자들의 토지 제도 개혁안의 출발점이 되었다 . 내용은 현실 법제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안정된 국민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학자가 일생을 바쳐 연구하는 경향은 후세학자에게 영향을 주어 실학이란 학풍을 일으키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 당시의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당시까지의 동양인이 생각했던 합리적인 제도를 폭넓게 수렴해 이상적이면서도 행정에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체계적인 것이었다 . 이익 · 안정복 · 정약용 등의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끝{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