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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현대 조각가들과 동양화가들의 활동에 대해 기술하시오
    문제1970년대와 1980년대의 현대 조각가들과 동양화가들의 활동에 대해 기술하시오.[사례로 조각가와 동양화가를 각각 3 인 이상 언급해야 함]70년대에는 조각을 하는 조각가들의 숫자가 소수였다. 우리나라는 청동 조각나 석 조각이 발달하였다. 해방 이후에 서양화가들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였으나 조각은 조금씩 늘어났다 하더라도 60년대 말까지 조각이 별로 인기가 없어 조각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별로 없었다. 대중적으로 조각에 대한 인식이 낮았으며 자연스럽게 조각을 지망하는 학생들도 적었다. 또한 조각의 경우는 감상 품목이 되지 못해 공급자인 조각가들의 제작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료비가 아주 비쌌고 제작 과정이 매우 복잡하였기 때문에 조각은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조각은 현대 작가 초대전을 통해서 현대 조각가들이 등장하였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혁신이 일어났는데 작품의 주제나 테마를 인체가 아닌 생명체를 다루는 생명 주의 조각이 등장하였다. 재료 면에서는 철이 등장하였는데 철조는 무한정 커질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철조와 용접의 방법을 통해 조각이 다양해지고 제작방식도 다양해졌으며 작가의 생각도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조각의 크기가 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철조 조각의 등장, 용접 방법의 등장은 현대 조각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다. 60년대 말에 가서는 조각 공모전이라든가 전시회에 가면 철조 조각이 지배적인 재료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조각가는 박종배이다. 1965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용접을 이용한 철조 조각이었다. 또한, 조각에서 추상 조각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박종배 ‘역사의 원’이라는 조각도 추상 조각이다. 60년대 후반에 철조 추상 조각들의 경향이 앵포르멜이었다. 앵포르멜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실존적이고 어둡고 격정적인 요소가 철조 조각에서 나타났다. 이는 추상표현주의 현상이 한 시대에 조각과 회화의 분야를 뛰어넘은 표현법이었기 때문이다.원형회는 조각 단체로 63년에 창립되었다. 비록 단기간 존재했으나 원형회는 우리나라 한국 현대 최초의 이념적인 조각 단체였다. 김영중, 김찬식, 최기원, 박종배, 이승택 등이 소속되었다. 보다 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게 되었고 오브제 조각도 하게 되었다. 또한 점점 조각가들이 세련되고 테크니컬한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얼마든지 큰 작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야외조각이 발전하게 되었다.권진규는 테라코타를 많이 한 작가로 당시 동시대의 미의식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각을 하였다. 권진규의 초기 조각들을 보면 브루델의 인체 조각상을 연상시킨다. 테라코타와 건칠 목조를 재료로 하였고 리얼리즘 조각을 보여주었다. 기성의 리얼리즘이 아닌 철학적인 내면의 깊이를 보여주는 심미성이 높은 리얼리즘 조각을 하였다. 인체나 동물, 추상 조각까지 내용이 다양하였다.문신은 회화를 하면서도 부조 조각에 관심이 많았으며 순수형태, 볼륨과 메스에 대한 실험을 늘 했었다. 그런 실험이 바탕이 되서 1961년 파리에서 조각가로 전향해 순수한 추상조각, 순수한 조형성을 내세우는 추상 조각으로 방향을 잡았다. 특히 문신은 여러 차례 국제전에 참가했으며 동양 추상 조각에서 명망 높은 조각가였다. ‘무제’, ‘생’, ‘화합’ 등의 작품이 있으며 그는 생명을 추상화 시켜서 작품을 하였다.한국은 1960, 70년대 기점으로 동양화 부분에서 현대화가 달성되었다. 1957년을 기점으로 현대적인 미술 단체가 설립되고 앵포르맬 미술 운동이 시작되면서 현대화되었다. 대표적인 단체는 백양회 창로 동양화의 전통을 극복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60년에는 묵림회라는 동양화 단체 결성되었고 백양회보다 폭넓고 과격하며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전통에 대한 도전을 하였다. 묵림회는 현대적인 동양화의 위상을 새롭게 세웠으며 주축 작가들은 서세옥 민경가 안동수 등이 있다.서세옥은 필선과 먹물의 번짐 효과를 굉장히 현대적으로 탐구해서 표현하였다. 전통적인 동양화가들이 사용했던 먹물의 효과가 아닌 서양화에서 수채화나 파스텔에서 볼 수 있는 은은한 번짐과 미묘한 톤을 구사하였다.
    예체능| 2020.12.23| 3페이지| 1,0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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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더니즘 배경과 형식, 미술 이론가
    1. 모더니즘 형식모더니즘은 한국말로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로 번역할 수 있다. 모더니티 사회, 역사와 상관된 문화예술적 입장과 태도이다.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종래의 전통이나 습관, 사상, 제도, 권위 등을 회의하고 부정하는 건강한 회의주의이다. 대신 동시대의 사회, 과학, 기술, 사상, 문화의 진보를 신뢰하는 진보주의이다. 새로운 혁신적 형태의 문화예술을 선호하여 파생시키는 "새로움의 전통"을 주장하며 모더니스트들은 개인주의의 입장으로 작가의 자의식 강화한다. 또한 개별 작가 이름을 중시한다. 모더니스트들은 형식주의의 태도인데 작품의 내용보다 매체의 형식을 중시한다. 매체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강조하여 회화에서 매체의 순수성은 플랫한 것이며 조각은 볼륨이다.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이론은 형식주의이며 대표적으로는 로저 프라이, 클라이브 벨, 클리먼트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이론이 있다.2. 모더니즘 미술의 이론가2-1. 로저 프라이로저 프라이는 한때 화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 비평가로 더 큰 활약을 했다. 그는 형식주의 이론을 만들어냈다. 이 이론을 일상화 시킨 것은 omega공방이었다. 1926년에 출간한 시각과 디자인이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형식주의 미학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였는데 ‘시각예술에서 비본질적인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제거하여야 하며 그로써 순수한 미적경험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주제를, 다음에는 심적 상태를 마지막으로는 재현을 차례로 배제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그는 .순수한 미적인 감동, 정서를 매우 중시한하는데 작품에서 내용이 사라진 후 형식에서 순수한 미적 감동을 얻어야 한다고 하였다. 후에 그의 ‘미학 에세이’가 출간이 되었는데 그는 만일 모방이 미술의 유일한 목적이 된다면 그저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라고 하였으며 미술은 인간 감각에 투영된 대상들의 형태이며 그것의 복잡한 조직을 통해 뇌의 정신활동에 연결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상상력을 가장 중요시 하였는데 상상력과 함께 감정이 수반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예술은 상상세계의 표현으로써 어떤 도덕적, 윤리적 책임이 따르지 않는 순수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2-2. 클라이브 벨클라이브 벨은 파리에서 인상파 미술에 크게 감명을 받고 영국에 온 후 미술평론가 역할을 하면서 활동을 하였다. ‘예술’을 1914년에 출간했고 1922년에는 세잔이후 라는 글을 발표했다다. 그는 ‘미술’에서 미술 작품이 하나의 미적인 존재로 검증이 되려면 그 작품의 본질이 의미 있는 형식을 갖춰야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가짜라고 생각하였다. 어떤 작품이든지 개인의 감성을 불러 일으켜야 하는데 순수한 개인의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그것은 설명식 그림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였다. 점, 선, 면, 명암, 색 등 형식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관계를 이루는가를 중시하며 관계의 결합에 의해 관객은 감동하고 정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순수한 미적 경험을 가져오는 것이 유의미한 형식이라고 하였다. 세잔은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순수한 형식을 창조해낸 화가였기 때문에 벨은 세잔에게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는 ‘미학적 가설’에서 미학이론의 수립을 원하는 사람은 사고능력과 감수성을 같이 소유해야 한다고 하였다. 감수성 없는 미적 경험은 성립되지 않는다며 섬세한 감수성과 명석한 사고능력에 대해 말하였다. 결국 미학이론이라는 책에는 구체적 감정을 수반하는 것은 개별적 경험이라고 말하며 감정을 유발시키는 것은 작품이라고 하였다. 의미 있는 형식은 바로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 감정은 현실의 목적성 있는 감정이 아닌 현실과는 무관심한 도덕 윤리와도 무관한 미적 감정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유의미의 형식이며 선과선, 색과색 같은 형식적 요소들의 관계가 우리의 미적관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이러한 형식을 의미 있는 형식이라고 하며 모든 예술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하였다. 벨은 결코 색을 무시하지 않았으며 형태와 색채를 별도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색 없는 선이나 공간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하였다.2-3. 클리먼트 그린버그그린버그는 영향력 있는 미국 미술 비평가였으며 모더니즘 미술가 밀접하게 관련된 평론을 했다.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프로모션 했으며 잭슨폴록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칭찬했던 최초의 평론가였다. 키치 1930년대 후반에 문학평론을 시작했다가 39년에 아방가르드와 키치를 쓰면서 미술평론가로 변신을 했다. 그린버그는 아방가르드인 모더니스트 아트는 자본주의 선동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저급화에 저항하는 수단이라고 하였다. 1950년 12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문화예술의 차원에서도 전 세계를 주도하려 하였다. 그로인해 그는 50년에 가게 되어 국수적인 미술가로 선회를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린버그는 사회적으로 계속해서 발전되고 있던 키치문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각색해가면서 모더니즘도 변화해 가고 있다고 하였다. 20세기 모더니즘의 가장 뛰어난 미술가들은 미국에 있다며 국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선두주자가 잭슨폴록이라고 말하였다. 잭슨폴록은 점면 균질의 행위예술로 캔버스를 만들어갔다고 하였으며 후에 이것을 아메리칸 페인팅이라고 하였다. 그린버그는 매체의 특수성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매체에 내재되어있는 미디움은 내재된 특질을 지향해야하며 회화의 경우에는 편평함, 즉 2차원이다 라고 하였다. 모더니즘 이전의 회화들은 3차원의 환영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며 고급예술에 대한 강조를 하였다. 60년대 그린버그는 포스트모던이론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고 이것이 올바른 예술이 아니라고 평가하였다. 포스트모던아트가 점점 세력을 구축하면서 그의 미술평론가로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예체능| 2020.07.16| 3페이지| 1,000원| 조회(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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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의 개념과 환상 예술
    1. 실재와 환상‘환상적’이라는 단어는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다. 때로는 뛰어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허무맹랑한 상태를 지칭하기도 하며, 단순히 사실을 벗어난 것을 사실로 믿게 하는 착각을 지칭하기도 한다.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에서부터 이어져 온 서구의 문화권에서 환상은 실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로제 카이유아(Roger Caillois)는 환상을 “현실 세계에서 초월한 기묘하고 돌발적인 상황, 분열, 요소”라고 정의하였다.환상은 여러 비평가에 의해 ‘현실 도피적’, ‘현실에서의 책임 회피’ 등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와 달리 현실의 모순적인 상황과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안식과 자유를 부여하고 인간 내면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환상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실증주의가 태동하면서 점점 더 사실적인 세계, 일상과 근접한 세계에 근거를 두게 되었다.1-1. 환상의 정의환상을 의미하는 ‘Fantasy’의 그리스어는 φαντασ?α, phantasia로, ‘정신적 이미지를 가시화하다’를 뜻한다. 이와 혼용되는 환상적(Fantastic/Fantastique)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Phantasein’에서 파생된 단어로 ‘가시화하다’, ‘나타나 보이게 하다’, ‘착각을 주다’, ‘드러나다’라는 의미를 뜻한다.환상적이라는 단어는 ‘시각적 환영’, ‘착시’, ‘현상’과 관련이 있으며, 본질적인 모호성을 지시한다. 코울리지(Samuel Coleridge)는 실재적인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 환상을 상상력이나 공상과 구분 할 수 있는 차이점이라고 명시하였다.1-2. 환상과 예술환상에 관한 연구는 예술에서, 그 중 특히 문학에서 깊이 다루어졌다. 넓은 의미에서 환상 문학은 비실재적이며 초자연적인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뜻한다. 환상 문학은 초자연적으로 가공된 세계에 일어난 사건이나 현실에서 나타날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한 것으로, 18, 19세기 주류를 이루었던 리얼리즘 문학이 힘을 잃으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환상 문학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20세기 초에도 환상 문학에 대한 평론은 대부분 비판적인 시각이 주를 이루었다. 70년대에 들어서서 환상성에 대한 논쟁이 증가하면서 조형예술에도 환상예술이 형성되었고, 다양한 환상 문학 작품들이 새롭게 출판되었다.사실성과 인간 이성의 힘을 중시하는 서구 문화의 전통에 의해 비현실과 비합리에 근거한 환상은 오랫동안 비주류로 소외되었다. 조형예술에서의 환상은 문학에서의 환상보다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졌으나 예술의 목적이 ‘진실성’에 있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환상은 그 가치를 의심받곤 하였다. 그러나 18세기 낭만주의가 태동하면서 환상에 대한 시각이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은 환상에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처럼 무책임하고 현실 도피적인 개념으로 폄하되었던 환상은 근대적 이성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근대의 조건 관계를 해체하는 대안적 현실로서의 환상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환상은 비합리적인 허구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만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환상은 비합리적인 것을 넘어 현실적인 합리성과 맞닿게 되었다.1-3. 환상의 서사나병철은 환상 서사에서의 환상을 ‘의미의 세계’, ‘놀이의 세계’, ‘가치의 세계’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의미의 세계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인식하고 탐구하는 서사로서 일상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의 균열지점이나 교차하는 영역에서 삶의 문제와 의미를 탐구하는 것으로,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서사이다. 놀이의 세계는 일상현실의 문제와는 연관이 없이 현실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어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 모험적인 서사로, 환상 동화와 판타지 소설, 영화의 환상 세계를 포함한다. 가치의 세계는 서정적, 동양 사상적 환상 서사의 세계인데, 세속적 현실의 모순과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의 세계(자연과의 교감, 화해)를 이미지화함으로써 일상적 현실의 상처를 감싸준다. 이 환상 서사는 자연과의 합일·화해, 사랑 등을 통해 우리의 삶을 치유하고 일상의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을 대개 환상적인 이미지로 제시한다.
    예체능| 2020.07.16| 3페이지| 1,000원| 조회(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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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현대미술의 본격적 출발을 알린 1957년의 미술단체들의 설립과 한국식 앵포르멜의 등장에 대해 설명하시오.(A+시험)
    한국 현대미술의 본격적 출발을 알린 1957년의 미술단체들의 설립과 한국식 앵포르멜의 등장에 대해 설명하시오. [사례로 앵포르멜 작가들을 최소 3인 이상 언급해야 함]한국의 본격적인 전위 미술 운동은 미술단체들을 통해서였다. 1955년 국전을 중심으로 한 미술 형태가 두 개로 나뉘어 졌다. 대한미술협회와 이에 대항하는 한국미술협회였다. 1956년에 대한미술협회가 국전을 보이콧 하였고 권력싸움을 하였다. 그로인해 젊은 미술가들은 미술계 현실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으며 국전 밖에서 젊은 작가들은 그룹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들의 그룹 활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현대미술 운동이 시작되었다.1957년에 출현한 그룹들을 순수한 미술활동의 서막을 여는 그룹이었는데 순수한 조형이념을 앞세운 그룹 활동이었고 반듯한 예술이념을 표방한 예술 그룹이었다. 1947~53년까지 지속된 신사실파는 한국 최초의 추상 미술가 그룹이었다. 모던아트협회는 재야작가들 모임이었으며 국전에 가담하지 않은 재야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기존 미술질서에 도전하는 전위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협회였고 처음부터 국전의 아카데미즘과는 담을 쌓고 있었던 작가들이었다. 이 그룹에는 유영국, 이규상, 한묵 등이 참여하였다. 그것에 비해 창작미술협회는 국전 안에서 결성된 그룹으로 전체적으로 서정적인 추상과 구상을 한 사람들이다. 창작미술협회는 감성적 조형을 하는 작가들이 모임이었기 때문에 이지적 측면 보다는 감성적 측면이 훨씬 강했다. 대부분이 국전 추천작가이거나 특선 이상의 작가들이었으며 이들은 국전에 가담하면서도 다른 작가들과 선을 긋고 차별화되고 싶어 하였다. 또한 신조형파는 날카로운 전위의식을 갖고 있던 그룹이었다. 1957년에 창립전을 열었는데 대부분 기하학적 추상이었다. 그래서 당시 대중들은 그들의 그림을 난해하다고 느꼈다. 이 그룹은 순수화가 뿐만 아니라 건축가, 시각디자이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처럼 미술세계에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룹 활동을 한 것은 신조형파가 최초였다. 그러나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였기 때문에 상호 긴밀성이 없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신 조형파는 독일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하였는데 이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으나 높은 가치가 있다. 백양회는 동양화가들이 모임으로 국전의 고루한 전통형식과 소재주의에 환멸을 느낀 작가들이 모였다. 김기창, 천경자 등이 있었다. 서양화에 비해 뒤떨어진 동양화를 새롭게 가다듬었으며 현대적인 조형성으로 동양화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였다. 백양회는 서울 뿐 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전시를 많이 하였다. 또한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일으켰는데 외국에서 이 백양회 전시회의 동양화를 한국화라고 명령하기 시작하였다. 현대미협의 그룹활동은 1957년~61년까지 5년 동안 6차례의 그룹전을 열면서 지속되었다. 1961년에 마지막 전시를 갖고 해산 하였는데 그 이후에 60년 미술협회가 생겨났다. 현대미협과 60년미술회가 더해져 1962년 악뚜엘이라는 새로운 그룹이 형성되었다. 악뚜엘은 몇 년 활동하다가 해체하고 69년에 가서 아방가르드협회가 생겨났다. 현대미술협회활동을 통해 국내 미술운동에 활기가 넘쳐흐르게 되었고 5년 동안 6차례의 그룹전을 열면서 지속되었다. 또한 현대미협의 창립멤버들은 신진작가들의 모임이었다. 그만큼 미술계의 현실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의식의 집단이었다. 현실에 깊게 연루되지 않아 자유로운 작품 활동이 가능하였고 과격한 행동 양식, 전투적인 행동 양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그룹이었다. 넓게는 사회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 좁게는 국전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현실을 변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으며 기성 미학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누드, 소녀들을 그리는 소극적인 심미주의를 싫어했으며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인간존재의 실존적 상황이라고 하였다. 이들의 미학은 실존주의 미학이었다.현대 예술가들이 내세웠던 특수한 미학이 실존주의 미학인데 실존주의 미학의 스타일을 표방했던 것이 앵포르멜이었다. 앵포르멜은 비정형이라는 것인데 정확한 형태가 없는 것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을 접한 작가들이 어떤 이성과 합리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에서 비정형으로 표현하였다. 비정형을 통해 인간존재의 불확실함과 이성이나 합리성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의미를 나타냈다. 한국의 앵포르멜은 한국적인 정서가 들어가 있는데 이로 인해 한국적인 단색화가 나오게 되었다. 전쟁 전에는 기하학적인 추상이었으나 전쟁을 거치면서 떠 이상 차가운 추상이 아닌 뜨거운, 격정적인 표현의 추상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선명한 색채, 두터운 물감, 거친 붓질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격한 에너지의 표현주의 추상이 등장하였다. 젊은 세대의 과격한 행동양식은 또 다른 젊은 후진들에게 뜨거운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미술운동은 현대미협회원들과 함께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체능| 2020.07.16| 3페이지| 1,000원| 조회(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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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의 성립과 국전 참여 작가들의 작품 성향에 대해 설명하고, 국전의 문제점도 지적하시오(A+시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의 성립과 국전 참여 작가들의 작품 성향에 대해 설명하고, 국전의 문제점도 지적하시오.해방기시기에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해방과 더불어 일본 미술의 잔재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 펼쳐졌다.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 모두 민족미술의 창안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1941~45까지 한반도의 미술상황은 경직되고 심한 굴절을 겪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팽창할수록 조선반도 내에서 문화예술정책이 아주 심각하게 전쟁위주의 미술로 바뀌었으며 조선미술공모전 같은 경우도 40년대 전반기에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한 미술로 변하였다.해방이 되고 정부에서 조선미술건설본부라는 단체를 세웠다. 조선미술건설본부는 조선미술협회로 개칭이 되었고 후에 50년대 중반에 대한미술협회로 바뀌었다. 전국단위의 협회였고 미술계 대표 단체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이데올로기에 편향된 미술협회가 많이 생겨났으며 미술가들은 순수한 창작에 매진한 것이 아니라 이념분쟁에 휘말렸다. 한국전쟁이 발발되기 전에 정부의 실체를 미군이 갖고 있었고 북한정부와 미군정부가 삼팔선을 긋고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점차 남, 북 간의 교류가 차단되기 시작하였고 삼팔선이 그어지면서 월북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월북작가들의 수를 줄이고 지하로 점점 잠적해 들어가는 공산주의 예술가들을 표면에 끌어올려 좌파작가들을 우파작가들로 편향시키기 위해 국전이 생겨났다. 대한민국이라는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미군정 하에서 그나마 용납되었던 공산당 활동이 법적으로 용납되지 않았고 정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또한 식민지하에 종속되던 조선미술전람회는 이데올로기 갈등에 휘말리던 미술계를 정리 정돈할 목적으로 새 정부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국전을 만들게 되었다.국전은 한국 미술의 아카데미즘의 본거지로 불린다. 처음 5회까지는 고전주의적인 리얼리즘이 잘 선보여졌으나 50년대 중후반에 가게 되어 새로운 여러 가지 미술이 등장하였다. 다양한 추상들이 들어오면서 국전의 아카데미즘이 크게 공격을 받게 되었다. 고전주의적 리얼리즘, 인상파적 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루던 국전이 어느 정도 진취적이었지만 점점 진부한 아카데미즘으로 변하였다. 국전은 미술가 모두에게 문을 연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편파적이며 학연, 지연을 따지던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국가가 하는 전시이므로 대한민국 미술가들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지만 친일파 미술, 공산주의 미술, 실험적인 작가들을 제외시키면서 편파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추천작가들이 권력을 잡고 심사위원이 되거나 무심사로 초대작가가 되어 마구 전시하게 되었다. 이렇게 출발부터 적잖은 잡음으로 시작된 국전은 1955년 대한미술협회 회장선거에서 장발이라는 화가가 당선이 되었다. 이를 반대하는 회원들과 홍대교수들이 장발의 회장선거를 무효화시켰고 이에 반발한 장발은 자신을 추종하는 작가들을 모아 대한미협을 탈퇴하고 한국미술협회를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홍익대파, 서울대파로 갈라지면서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협이 서로 경쟁하게 되었다. 1956년에는 국전을 통해서 심사위원이 문제가 되었는데 정부와 문교부와 손이 닿았던 장발과 한국미협 작가들로 심사위원이 구성되면서 국전이 보이콧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대한미협이 훨씬 원로, 신진작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문교부에서 나서서 심사위원을 시정하였다. 국지는 이러한 고루함, 폐쇄성, 기존 작가들의 권위 싸움으로 인해 국전에 분쟁이 일어나면서 국전이 문을 닫게 되었다. 후에 국전이라는 이름이 지속되긴 하지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라는 이름으로 신인들을 등용하였다.국전 참여 작가들에는 대표적으로 장우성, 김기창, 박래현, 김인승, 도상봉, 장리석 등이 있다.장우성은 동양화가로 조선미술전랍회를 통해 등단하였으나 해방 후 민족주의 정신이 강한 동양화로 급선회를 하였다.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을 주로 소재로 하였으며 ‘화실’, ‘청년도’, 는 큰화면에 인물을 가득 채우는 구도로 배경은 생략하거나 극도로 최소화 하였다. 인물의 묘사는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부드러운 색감을 사용하였다.
    예체능| 2020.07.16| 3페이지| 1,0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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