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의 확산 이후 우리 사회에 새롭게 나타난 대표적인 사회현상 중 하나를 골라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갈지 분석해 보시오.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컨택에서 언택의 시대로1) 외식 문화의 변화2) e-커머스 시장의 성장3) 온라인 학습의 증가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중국으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주변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유럽, 미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세계대유행)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현재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코로나19의 확대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으며, 방역체계를 구축하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의 방역체계를 시행한 결과 전 세계가 극찬하는 방역국가가 됐다. 하지만 일부 단체의 무분별한 집회로 인해 또 다시 2차 유행이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일상생활의 활동을 멈추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산업현장에 셧다운(Shut Down) 조치를 취했으며, 제조 공장뿐만 아니라 일반 상업시설까지 그 영역을 확대 실시하여 전 세계 경제가 고통의 늪에 빠졌다.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에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세계의 여러 국가들이 국민들에게 재난소득을 지급했으며, 국민들은 외부활동을 대신할 만한 일들을 찾아 집에서 시도해보기도 했다. 이외에도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우리의 일상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중 코로나19로 인한 소비형태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아보고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분석해보고자 한다.Ⅱ. 본론1. 컨택에서 언택의 시대로1) 외식 문화의 변화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맞벌이 가구의 보편화, 1인가구 증가 등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외식 문화가 변화하였다. 과거 집에서 가족이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밖에서 외식을 하는 소비가 지금까지 증가하는 추세였다.통계청의 「도시가계조사」에 따르면 전체 식료품비의 지출은 2000년 357,329원에서 2013년 309,134원으로 줄어들었지만 외식비는 2000년 294,785원에서 2008년 310,975원까지 증가하다 2013년에는 298,123원으로 다소 감소했지만 여전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통계청, 2013 ; 변승연 재인용, ; 2014).2020년 2/4분기 통계청에서 발표한 「가계동향조사」 결과 보도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1만 2천원으로 전년 동분기대비 2.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중 식료품과 비주류음료는 20.1%, 가정용품 및 가사서비스는 21.4%, 교통은 24.6% 증가한 반면, 의류 및 신발은 ?5.8%, 오락 및 문화는 ?21.0%, 교육은 ?29.4%, 음식 및 숙박은 ?5.0%로 증가세를 나타냈다(통계청, 2020). 특히 음식 및 숙박 지출은 38만 8천원으로 전년동분기대비 5.0% 감소하였는데 이중 외식 및 주점 등 식사비 지출이 4.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참조).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과의 대면을 꺼려하는 현상과 정부 차원에서 외출 자제를 호소하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외식을 하는 가구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곧 배달음식의 성장세를 가져왔고,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해 식료품을 구입하여 집에서 식사를 하는 형태 외식 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2) e-커머스 시장의 성장인터넷의 발달은 통신기술의 진화, 정보수집, 교통, 물류의 편리성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방법까지도 바꾸어놓았다.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은 인간의 소비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비문화의 변화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직거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구매자는 언제 어디서나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바일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상품의 질, 기능, 디자인, 가격, 상품평 등을 비교 분석하며 자신의 특성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이혜란, 2020).코로나19로 인한 또 하나의 변화는 e-커머스 시장의 성장이다. e커머스[e-commerce]란 인터넷 웹사이트상에 구축된 가상의 상점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네이버 백과사전). 스마트폰의 보급과 확산에 따라 쇼핑의 형태가 모바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손안에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리하게 쇼핑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2015년~2020년에 걸쳐 연평균 2%대의 저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었으며, 특히 대형마트, 백화점, 수퍼마켓, 편의점 등 오프라인 유통산업의 저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저성장 기조에도 불구하고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시장은 매년 20% 전후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통계청, 2019).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e-커머스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e-커머스 시장의 성장세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형가전에서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판매 제품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싱싱함이 생명인 채소류뿐만 아니라 데우기만 하면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반찬, 국종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을 망라한다. 오후에 물건을 주문하면 새벽에 집앞에 신선한 채소가 배달되어 우리 삶을 더욱 편리하게 하고 있다. 서로 얼굴을 대하는 것이 꺼려지는 시대에 집앞에 놓고 가도 분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문화도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3) 온라인 학습의 증가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학교나 여러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국회 등에서 대면으로 이루어지던 활동이 비대면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기존에 원격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이버대학이나 한국방송통신대학이 아닌 일반 대학에서도 전례 없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외부 활동이 사실상 정지된 상태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온라인 학습에 대한 문제점도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한 매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 되면서 미디어에 의존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수업이 집에서 진행되다 보니 행동의 제약이 느슨해지고 혼자서 공부해야 한다는 한계에 봉착해 집중력도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접속 오류나 끊김 현상 등의 문제가 해소되면서 온라인 수업 시스템이 안정화되어 가지만 교육 내용의 질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거나 학생의 반응을 파악하지 않는 일방향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면수업에 익숙한 교수자들이 기기를 이용한 온라인 수업에 적응을 하지 못해 강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경우는 아주 오래된 자료를 준비해 학생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이러한 문제는 급기야 등록금 반환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어 대학과 학생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대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부실한 교육과 실험·실습의 부재, 도서관 등 학교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것 등을 내세워 납부한 등록금을 일부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대학에서는 1학기 등록금을 일부 반환하거나 2학기 등록금을 감액하는 등의 조치를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아 대학과 학생간의 불신과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또한, 아동의 돌봄 정책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19의 2차 유행으로 전국의 유치원 및 초·중교의 등교 인원을 전체 학생의 1/3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 수준으로 높일 경우 등교수업을 전면 금지하고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경우 돌봄이 필요한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가정의 보육료 부담이 커지게 되고, 가족돌봄휴가를 모두 써버린 가정에서는 더 긴 기간 동안 휴직을 할 수도 있는데다 최악의 경우에는 부부 중 한 명(대부분 여성)이 퇴사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온라인 학습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는 것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적절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책무다.
성,사랑,사회o 과 제 명 :일반적인 역사서술에서 잘 다뤄지지 않거나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사회 집단을 골라 그들의 삶 속에서 성차별과 다른 사회적 격차가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 서술하시오.◆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역사 속의 성차별1) 가정 내 차별2) 사회적 차별3)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2. 한국 사회의 다양한 차별1) 직장 내 성차별2) 여러 가지 사회적 차별3) 성차별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최근 국가직 공무원이나 법조계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7급 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에서 여성 합격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2014년 45기 여성 사법연수생 비율도 40.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직은 적은 수이지만 여성 장관의 숫자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고,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도 유엔이 정한 여성의원 비율 30%에는 미치지 못한 16.3%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은 발전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9월 26일자 서울신문 기사에 따르면 “9월 현재 전체 검사는 1982명이며 이 가운데 여성은 26.8%인 532명에 이른다. 검사 4명 중 1명이 여성인 셈이다. 2004년 103명에서 10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과거 1970~80년대의 여성들은 20대 초반 정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의 양육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이었으며 남성은 바깥일을 하고 남성 혼자의 벌이로 모든 가족이 생계를 이어나갔고 여성들은 집에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남편의 벌이로 가계를 꾸려 나가는 구조였다.고도의 산업화를 거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여성들의 대학진학률도 함께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대졸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결혼 이후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맞벌이를 하는 주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이렇듯 사회 곳곳에서 여성의 힘(womanpower)이 빛을 발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었다.이러한 유교적 덕목은 남성들의 올바른 인성교육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일방적인 강요로서의 덕목에 가까운 이념이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시간에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은 한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여성들은 남성들과 결코 겸상을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며느리는 부엌에서 집안일 하는 몸종들과 식사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글을 배움에 있어서도 서당이나 서원은 온통 남성들만을 위한 교육 공간이었고 여성이 글공부를 한다는 것은 남성에 대한 도전이자 때로는 금기시이기도 한 상태에서 배움에 뜻이 있는 몇몇 사대부의 여성들은 어깨너머로 겨우 글을 익힌다거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독학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940년대를 거쳐 왔던 참고도서에 등장하는 김복례의 삶도 이러한 부분을 증언해 주고 있다.“친정어머니가 넣어줘서 오후반 학교(정식 교육 과정이 아닌, 문맹자를 위한 공민학교인 듯)를 두 달인가 다녔었어. 근데 친척 어른들이 여식을 왜 학교에 보내냐며, 여식 글 가르쳐봤자 시집가서 친정에 편지질이나 해쌌다가 뚝 하면 친정으로 쫓아온담서, 나 학교 보내는 걸 마땅치 않아들 했제. 그려서 결국 아버지가 학교를 못가게 했어. 오빠는 공부를 많이 해서 일제부터 인공 지나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순경도 하고 그랬어.”(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P.129)요컨대, 깊이 있는 학문은 모두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차별은 20세기까지도 여전히 진행되기도 했다. 1971년생인 필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남5녀 중 오빠만이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필자를 포함한 다른 자매들은 고등학교 교육을 끝으로 배움을 접어야 했다. 혼인을 함에 있어서도 혼인의 당사자인 여성의 의견은 조금도 참작되지 못하고 오로지 부모가 정해 놓은 배우자를 혼례식 날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였고 남편이 사망하면 부인은 수절을 강요당하며 재혼은 꿈도 꿀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으며 심지어는 사대부의 여성이 수절을 하면 그 여성에게 닐지라도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적 비슷한 시대가 바로 고려시대였다. 고려시대의 여성의 삶을 몇 가지 들여다보면 이렇다. 남자가 결혼을 하면 처가(妻家)에서 사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남성들의 결혼을 ‘장가(丈家) 든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은 장인(丈人)어른의 집(家)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결혼을 하면 아내의 집에서 처가살이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재산상속에 있어서도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즉 자녀 균등상속(均等相續)이 이루어졌으며 호적에도 태어난 순서대로 등재했다. 또한 아들과 딸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는 윤회봉사(輪廻奉祀)의 모습을 보였다. 특이할만한 것은 결혼생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혼을 하기도 했으며 이혼한 여성이 다시 결혼하는 재혼도 허용된 사회였다.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 전기까지 이어져오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여성 차별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양란(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인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은 남성들이 급격하게 증가했고, 전쟁으로 인한 국가 시설물의 파괴와 백성들의 피폐한 생활은 왕조국가 존폐(存廢)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줄어든 인구를 늘려야하고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명분이 있어야만했는데 그런 와중에 축첩제(蓄妾制)가 자연스럽게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으며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니 여필종부(女必從夫)니 삼종지도(三從之道)같은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는 형태의 사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30년대를 산 참고도서 속의 안완철의 아버지에게서도 축첩제(蓄妾制)의 모습을 내다볼 수 있다.“아버지의 여자는 넷이었다. 첫째 부인은 자녀를 낳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정실로 들어온 분이 안완철의 생모이자 6남매를 낳은 경주 김씨 석굴댁이다. (중략) 아버지의 세 번째 여자는 춘섭 오빠의 생모로, 서당골(전북 진안군 진안읍 반월리 서당골)댁이라고도 불렸다. (중략) 아버지의 넷째 여자 이름은 ‘영매’였다. 아버지가 군산에서 어업 조합장을 할 때 남원에서 군 거짓말을 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증인이 여기서 증언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위안부’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 P.166)“정신대 안 끌려갈라고 동네 색시들을 서둘러 짝을 지어 시집보낸다는 소리는 들었지.”(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P.272)이처럼 일본은 국제법 상에서도 위법인 여성 인권을 유린하였으며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여성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성착취였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위안부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생존해 있는 몇몇 위안부 여성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촉구 정기 집회를 열고 있다.여성이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성착취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린 반인류, 반인권의 치욕스러운 역사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만이 위안부 여성들의 한(恨)을 녹여줄 수 있을 것이다.2. 한국 사회의 다양한 차별1) 직장 내 성차별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세계연감 최신판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분석 대상 224개국 중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19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도 출산율이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임신은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저출산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직장 내 실생활에서는 이와는 반대의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는 여성을 아직까지도 비관용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임신을 하면 업무수행능력이 당연히 뒤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확산돼 있어서 임신한 직장 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심지어 부산에 거주하는 모 학습지 교사는 직장 상사로부터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계속 일하라는 강요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임신에 의한 부당한 대우뿐만 아니라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이 적용되지 못하는 것은 대표적인 직장 내 여성 차별의 전형이다 개탄스러울 일이지만 함께 학문을 연구할 조력자를 성적 대상자로 봤다는 것 또한 우리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2) 여러 가지 사회적 차별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피부색과 태어난 국가에 따른 인종차별, 성(性)에 따른 남녀차별, 직업의 귀천(貴賤)을 따지는 직업차별, 미의 기준을 정해 놓고 생김새로 차별하는 외모차별, 노동시장에서의 고용차별,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차별 등 수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아시아권의 인종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서구 유럽사회에서 생활할 때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백인우월주의’로 대표되는 인종차별이다. 백인우월주의를 전제로 백인 이외의 모든 유색인종은 열등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편견이 인종차별을 낳고 있다. 백인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음식점이라든가 백인 이외의 유색인종은 출입을 제한하는 문화시설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종차별은 비단 미국이나 유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 없이 이러한 인종차별 즉 제노포비아(Xenophobia)가 행해지고 있다. 동남아시아권에서 온 근로자들이 대부분 3D 업종에 근무하면서 열악한 근무조건과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고, 결혼시장의 변화로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 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태어난 2세들도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나 사회에서 차별 받고 있는 실정이다.성에 따른 남녀차별에는 앞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가정 내 성역할이라든지 직장 내 고용과 임금에 따른 남성과의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맞벌이를 하는 가운데서도 육아와 살림은 여성이 더 많이 하고 있고 직장 내에서도 결혼한 여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출산과 육아를 일정기간 하고 사회로 복귀하려면 경력단절로 인한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우리나라의 신분제는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법적으로 폐지가 됐지만 심리적 신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