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계해부학의 역사◇ 해부란?넓은 의미로 생물체의 구조를 관찰하여 그 작용을 알아보는 방법의 하나로, ‘해부(解剖)’라는 말은 중국 최고(最古)의 의서(醫書)로 일컬어지는《황제내겸》에서 보이며, 서양에서 해부 혹은 해부학을 뜻하는 ‘anatomy’의 어원은 그리스어인 anatemn?에서 왔다. 'anatemn?'은 원래 '분리한다'는 'ana'와 '자른다'는 'temnein'의 2개 용어를 합친 것으로, 여기에서 영어의 '잘게자른다'는 뜻의 'anatomy'란 용어가 유래했다. 해부의 방법에는 육안으로 관찰하는 육안 해부와 확대경이나 각종 현미경을 써서 관찰하는 현미해부가 있다. 의학에서 다루는 해부는 일반적으로 정상해부, 병리해부, 법의해부로 구분한다.◇ 해부학이란?해부학(解剖學, Anatomy)은 넓게는 주로 사람, 동식물의 체제를 기재하는 형태학의 한 분야로, 전에는 주로 인체 및 동물 성체를 해체하여 외부 형태와 내부 구조를 관찰, 기술하는 학문을 의미하였다. 주로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구조물(세포, 장기, 조직, 계통)의 생김새, 크기, 위치, 상대적 위치 관계 등에 대해 연구한다. 해부 대상에 따라서는 인체해부학, 동물해부학, 식물해부학 등으로 분류할 수 있고, 해부 대상을 취급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계통해부학, 국소해부학이나 비교해부학 등으로 구분한다. 현미경이나 전자현미경 등을 사용해서 연구하는 세포학이나 조직학도 해부학에 포함된다.◇ 기원전 7세기 이전해부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자료는 이집트 파피루스라고 알려져있다. 기원전 1600년경에 작성된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The Edwin Smith Papyrus)』에서는 심장과 혈관 등의 장기들에 대해 묘사된 내용들을 볼 수 있다. 파피루스에는 수준 높은 해부학 지식이 필요한 외과시술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사람 몸 구조가 묘사된 그림들도 남아있다. 고대 이집트에는 미라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과정 중 시체의 장기를 꺼내는 과정 등을 통해 해부학적 지식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해부와 관련된 자료는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서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초기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에서 당시의 해부학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외과시술 장면이 남아있다. 또한 점성술에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의 간 점토모형'은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표면에 간의 엽과 간문맥틈새(열), 쓸개주머니(담낭), 쓸개주머니관(담관), 간관들이 정교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로 미루어 보아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람 몸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지식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고대 인도에서는 의사들이 기원전에 이미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의사들은 그들이 임상활동과 연구를 통해 터득한 지식들을 『상히타』에 기록하였고 그 내용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로 집필된 『상히타』에는 해부학을 비롯한 다양한 치료법들이 수록되어 있고, 이후 두 번째로 저술된 것은 당시의 해부학과 외과술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대 인도 해부학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시체를 해부하여 얻은 해부학적 지식이 수수루타의 활동시기에 출현하였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존재하고 있다. 수수루타는 당시에 시체를 화장할 경우를 제외하고 시체를 만지는 것을 금지한 종교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해부하였고 또한 뛰어난 해부학적 업적을 남겼다.◇ 기원전 6세기고대 문명 중에서 고대 그리스 의학이 현대 의학과 가장 가까운 성격을 가진 의학이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어로 된 의학용어는 현대 의학에 끼친 그리스 의학의 영향을 잘 말해준다. 고대 그리스 초기 문명의 최초의 해부학적 관찰은 알크메온의 문헌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크로톤의 철학자이자 의사였으며, 동물을 해부하여 의학의 기초적 발판을 마련했다. 알크메온은 시각신경과 후대에 ‘유스타키오관(eustachian tube)‘으로 명명된 귀속에 있는 관(귀관, 귀인두관)을 처음으로 관찰하였고, 태아의 형태로부터 추리하여, 머리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먼저 발달한다고 기술하였다. 그래서 '뇌가 감각의 중추이며, 영혼과 지능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최초로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심장이 모든 신체 활동의 주도적인 중추'라고 생각했다.◇ 기원전 5세기기원전 5세기에는 아버지이자 해부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코스의 히포크라테스가 등장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전성기였던 살라미스 해전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사이의 인물이다. 그의 업적을 집대성한 『히포크라테스 전집』은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편집된 50~70권에 달하는 의학 전집으로 기원전 480년에서 380년 사이에 여러 사람이 집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있는 『해부학에 관하여』에서는 기원전 4세기 초기의 해부학 지식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단순한 스케치만 남아있고, 다른 내용은 남아있지 않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학 윤리를 담은 가장 대표적인 문서 중 하나로 기원전 5~4세기에 기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이론에 따르면 '건강은 4체액이 조화를 이룬 상태'이다. 질병은 이들의 균형이 깨졌을 때 나타나며, 잘못된 체액의 균형은 자연스럽게 회복하거나 지나치게 많아진 체액이 정해진 시간에 배설되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은 엠페도클레스와 피타고라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4세기해부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물비교해부학의 창시자이며 자신이 직접 사람을 해부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사람 해부학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해부학 업적은 4권의 『동물의 부분들』과 3권의 『동물지』에 남아있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에 후일 아테네의 4대 학교 중 하나가 되는 리케이온을 세우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처음으로 '대동맥' 용어를 사용했고, 대동맥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많은 전문 해부학 용어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명명한 것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그는 대정맥의 지류와 팔의 표면 혈관, 두족류의 생식계통과 소화기관의 혈관 분포, 많은 다른 동물들의 다양한 부분의 혈관에 대한 훌륭한 그림도 많이 남겼다.◇ 기원전 3세기기원전 3세기에는 최초로 사람 공개해부가 행해진다. 공개해부를 한 인물은 '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칼케돈의 헤로필로스이고, 그는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였던 "심장이 지능을 담당하는 장소"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뇌가 지능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였고, 신경의 본질이 특수감각기관과는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헤로필로스는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치료법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의 추론적인 생물학에서 탈피하여 독창적인 생리학 체계를 발전시켰다. 그는 '간과 소화기 영양분, 심장의 온기, 뇌의 정신, 신경의 감각 등 4가지 힘을 생명의 근본'으로 생각하였다.이 시기의 고대 중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중국의 의학서인 〈황제내경〉 편찬된다.◇ 1~2세기히포크라테스 이래 최고의 의학자로 꼽히며 고대 의학의 완성자로 널리 알려져있는 갈렌은 생체해부를 실시하였고, 특히 신경계에 관해서는 실험적인 연구를 많이 하였다. 그는 로마에서 5년 동안 진료와 청중들을 위한 공개적인 해부학 강연과 해부시연(동물해부)에 매진하면서 유명해졌으며, 의사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중세를 거쳐 16세기까지 널리 이용되었으며, 특히 『해부방법에 관하여』에서는 그의 해부학 지식수준을 알 수 있다. 2세기경 갈렌은 유인원과 개 등의 동물을 해부하여 얻은 해부학을 토대로 고대 해부학을 집대성한 논문을 저술하였으며 이는 그 이후 천 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해부학 교과서가 되었다.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최초의 외과 의사로 불렸던 화타가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인도에서 생산된 대마와 술을 섞어 만든 특수한 약초배합인 마비산으로 환자를 마취시켰고, 가슴우리절개술(흉곽성형술)과 개복술, 창자절제술(장절제술), 머리뼈천공술(두개골천공술), 방광결석제거술 등을 실시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3~12세기갈렌이 사망한 이후 그리스에서 해부학은 암흑기에 접어들게 되지만, 이슬람권에서는 테헤란의 알라지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 의학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는 『천연두와 홍역』 『만수르서』 등 100여 편의 의학서를 남긴다.이후 12세기는 중세 유럽에서 해부학의 발전을 주도한 볼로냐 대학이 설립된 시기이고, 아랍 의학서들이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이때 이슬람에서는 의사 아벤조아르가 사람해부를 시도했다.◇ 13세기중세 유럽에서 사람 해부가 실시된 시기로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이 해부학의 발전을 이끌어 나갔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레드릭 2세는 사람해부를 법령으로 인정했고, 피렌체의 테디우스는 볼로냐 대학에서 의학교육과정에 시체해부 과정을 도입했다.◇ 14세기해부학의 재건자라 불리는 루치의 몬디노가 활약한 시기로, 그는 해부학을 계통학적으로 연구하였으며 공식적으로 사람 몸을 해부하였다. 몬디노가 1316년 저술한 『해부학』은 갈레노스와 아랍사람들의 의학서적과 직접 해부한 시체의 관찰 소견을 바탕으로 저술되어 있으며 이 책은 사람해부학에 대한 최초의 근대적인 책으로 알려져 있다. 몬디노는 대부분 부패되지 않은 신선한 시체를 해부하였고, 햇볕으로 건조 시킨 시체도 사용했다.◇ 15세기르네상스 시대에는 사람 해부나 사후부검을 위한 시체공급이 용이해졌고, 쿠텐베르그의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의 실용화와 종이의 사용으로 해부학 서적을 비롯한 의학서적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기 시작했다. 해부학자이자 예술계의 자연주의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활약한 시기도 이때이다.◇ 16세기근대해부학의 개척자 베살리우스가 활동한 시기로 『사람 몸구조에 관하여』가 출판된 시기이다. 베살리우스는 해부도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몸처럼 묘사하고 사람 몸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 생각했다.이 시기 프랑스에선 해부학자인 앙리 에스티엔느는 의학용어 사전 발간했고, 영국의 의사이자 생리학자 하비인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를 저술하며 혈액순환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