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ller's Prologue and Tale과 Areopagitica를 통해 보는 문학과 사회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상황은 문학을 태어나게 하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문학 또한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지만, 문학과 사회가 직접적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필자는 그 관계에 있어서 문학이 사회 전체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선택된 사회 양상을 다시 형상화한 것으로 보고 이를 통해 문학이 사회와 이루는 관계와 그 역할을 이해하려 한다. 이를 위해 본문에서는 Geoffrey Chaucer의 'The Miller's Prologue and Tale'과 John Milton의 'Areopagitica' 두 작품 속에서 문학 작품과 이 작품을 생산했던 그 사회적 맥락의 관계를 논하고 두 작품 중 어떤 작품이 문학과 사회의 밀접한 관계를 더 효과적으로 형상화 했는지에 대해 논하려고 한다.먼저 'The Miller's Prologue Tale'을 살펴보자. 일단은 'The Miller's Prologue and Tale'에서 Nicholas가 Alison과 합심하여 John과 Absolon을 골탕먹이는 모습은 단순히 재밌는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당시 중세시대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과도기적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로 Nicholas라는 인물을 보면 학식이 있다고 자랑하는 전형적인 지배계층으로 그려진다. 다른 예로 작품 속에서 바람을 피는 여성인 Alison은 중세에 사는 여성임에도 본인의 욕망에 충실, 즉 중세를 공식적으로 지배하는 기독교적인 신념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비판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세를 공식적으로 묶고 있던 기독교적 체계 아래에 다른 조류가 흐르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당대 사회의 복합적인 이미지를 볼 수 있고 이는 문학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의미한다. 다만 여기서의 거울은 작품 속의 인물들이 사회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에서 한정적이다. 한편 단순히 지배계층으로서의 Nicholas를 그리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학식이 있다고 자랑하는 계층과 욕망을 추구하는 사제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대한 비판이 함께 드러난다. 결국 이러한 과도기적 시기의 사회상, 즉 사회적 맥락이Geoffrey Chaucer로 하여금 문학을 생산하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문학이 단순히 그 사회를 형상화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이끌기 위해 비판도 함께 이루어 짐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결국 문학과 사회가 밀접한 관계를 이룰 수 있게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다음으로 'Areopagitica'를 통해서도 문학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적절하게 이룰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용한 부분을 보자.Good and evil we know in the field of this world grow up together almost inseparably; and the knowledge of good is so involved and interwoven with the knowledge of evil, and in so many cunning resemblances bardly to be discerned, that those confused seeds which were imposed on Psyche as an incessant labor to cull out and sort asunder were not more intermixed. It was from out the rind of one apple tasted, that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as two twins cleaving together, leaped forth into the world. And perhaps this is that doom which Adam fell into of knowing good and evil, that is to say of knowing good by evil.17세기의 로마 카톨릭의 영향으로 그 교리에 맞지 않는 책은 출판되기도 전에 검열당하는 사회가 나타난다. 따라서 John Milton은 인용문처럼 선과 악은 복잡하게 엮여 있기에 미리 검열할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고 비판한다. 'The Miller's Prologue and Tale'과 마찬가지로 검열제도라는 사회적 맥락이 John Milton으로 하여금 이러한 문학을 생산하게 했고 이 문학을 통해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함으로써 문학과 사회가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그런데 여기서 문학과 사회의 관계가 밀접함을 나타내 주는 말로 문학을 '사회의 표현'으로 흔히 이야기한다. 이때 일반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표현이란 내부로부터 외부로 밀어내는 것을 뜻하는데 결국 사회를 표현한다는 말은 사회의 양상이 일단 작가의 내부 의식 또는 정신 속으로 들어가 그 실상이 파악되었다가 작품을 매개로 하여 밖으로 나온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개념으로 문학과 사회의 관계성을 이해했을 때, 문학과 사회의 밀접한 관계의 형상화의 효과에 있어서 'The Miller's Prologue and Tale'과 'Areopagitica'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 작가가 중세시대의 복합적인 사회 모습을 본인의 의식 속으로 받아들여 Nicholas, John, Alison, Absolon의 이야기로 재창조하여 새로운 사회계층의 등장, 이에 대한 비판, 종교적 기류의 변화 등 다양한 사회변화를 (이것이 비록 사회 전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다각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문학과 사회의 관계의 밀접함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본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작품을 통해 책에 대한 검열제도라는 사회의 한 단면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기에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물론 형상화하지만 전자만큼의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보여진다.
과제 모음과제1 - 영화 ‘인생’에서 푸궤이(福贵)라는 이름을 가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도박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푸궤이(福贵)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부귀’로 해석되는 점에서 부유계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영화 속에서는 도박으로 ‘부귀’를 상징하는 그의 집이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만, 오히려 그 집 때문에 공산당에게 몰려 명목으로 사유재산을 빼앗기고 처형당하는 모습에서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내전, 즉 사상의 차이로 인한 당의 전쟁의 피해를 연관 없는 일반 사람들이 죽었기에 부조리한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문화 대혁명 시기에 병원에 대부분의 의사들이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반동으로 몰려 잡혀가 남아있는 의사들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나이 든 의사들은 잡혀가고 어린 학생들이 남아있는 대조적인 모습 속에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의 선전문구인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자’라는 사상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되지 않고 급진적으로 진행되었을 때의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림자 극을 더 하지 못하게 막는 장면에서 역시 이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영화 속 주인공인 푸궤이(福贵)가 전쟁도 겪고 배고픔, 가난을 겪으면서도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중요시하고 딸의 결혼식에서도 마오쩌둥의 책을 지닌 사진을 찍는 모습은 마오쩌둥 아래 진행되었던 사상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의문과 윤리적 문제 등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알면서도 본인만 아니면 된다는 태도를 취하거나 홍위병에 휩쓸려 정말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시기를 보낸 중국인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마오쩌둥 아래 중국의 암울했던 역사를 시대별로 한 가족의 일생을 통해 잘 그려낸 것 같다.과제 2 – 한자의 정의는 ‘중국에서 만들어 오늘날에도 쓰고 있는 문자’를 말하는데 일종의 표기 도구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한문의 정의는 '중국 고전의 문장' 혹은 '한자만으로 쓰인 문장이나 문학'이다. 따라서 한자는 국가마다 다를 수 있으며 한문은 낱말이 아닌 문장을 뜻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예를 들면 月下獨酌 시의 제1수를 보면 ‘花間一壺酒’가 있다. 이 문장은 단순 낱말이 아닌 ‘꽃 사이에 술 한 병을 놓는다’는 의미를 가지는 문장이기에 한문으로 볼 수 있다. ‘아닐 비’ 한자처럼 아니다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점이 흥미로웠다. 사실 중국어는 한 글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는 것이 표의 문자에 비해 다소 효율성이 떨어지고 외울 게 많아 굳이 이렇게 만들어야 했나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보배 보’ 한자를 보면 당시 화폐로도 쓰인 귀한 의미를 가진 ‘조개 패’와 ‘구슬 옥’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을 보면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문자를 현대까지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척벽비보, 촌음시경이라는 한문이 ‘일 척이 되는 구슬을 보배로 여길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도 소중히 여겨야한다’라는 교훈을 전달함에 있어서 구구절절 문장으로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4글자에 의미를 함축하여 표현하는 점에서 더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고 효과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사자성어, 한자를 많이 배웠고 이름도 한자로 쓰는 등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문자이기에 그러한 한자로 쓰인 문학이 영어로 쓴 문학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과제 3 – 차문화와 다도 정신 발표한 부분에서 다도 정신을 노자의 도교 사상과 연관 지어 읽어낼 수 있다. 다도(茶道)는 차를 마시는 일과 관련된 여러 다사(茶事)를 통해서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다실의 분위기, 다구의 아름다움, 차의 성품, 차를 끓이는 여러 가지 일 등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이를 다도정신이라고 한다. 발표에서 초의는 “차의 맑고 깨끗한 정기를 들여 마실 때 대도(大道)를 이룰 날이 어찌 멀다고만 하랴!”고 언급한 부분이 있다. 여기의 대도는 곧 깨달음을 뜻한다. 이러한 다도 정신을 가지고 수행을 할 때 깨달음을 얻고 인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초의의 생각이다. 이는 노자의 도교 사상에서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초월을 구하고 있는 점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차를 마시면서 맑은 정신을 가지면서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 울적한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이 유사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또한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간을 맞추어 마시는 평범한 취미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찻잔을 씻고 물을 길어 나르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수양하는 일을 통하여 진리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닦아 가고자 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노자의 대표적인 사상인 ‘무위자연’이 단순히 자연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조용한 공간인 자연에 있을 때 비로소 도를 이룰 수 있다는 사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서 보았더니 더욱 쉽게 다도와 노자의 사상이 맞닿았다고 느껴졌다.
Harold Pinter의 ‘The Birthday Party’를 통해 보는 인간의 성장과정부제 : 외부적 폭력과 공포의 존재의 관점에서이극의 main character인 Stanley는 Meg라는 60대 여성의 하숙집에서 1년 넘게 살고 있는 원래 피아니스트였던 예술가이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와중 Goldberg와 Mccann이라는 사람들이 Meg의 집으로 오게 되고 그들은 Stanley를 심문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통해 Stanley의 고통을 야기시킨다. 이러한 어이없는 일들이 생기면서 그들이 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Stanley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겪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자기인식의 부재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작가 스스로가 겪었던 예고 없는 폭력과 공포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먼저 극의 초반을 보면 Meg는 아침부터 Stanley가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밥도 차려주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주며 생일 선물로 작은 북을 선물하는 등 어린 소년 취급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에 Stanley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밥이 맛이 없다고 칭얼대고 면도도 하지 않는 등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STANLEY : [abruptly] How would you like to go away with me?LULU : Where.STANLEY : Nowhere. Still, we could go.LULU : But where could we go?STANLEY : Nowhere. There’s nowhere to go. So we could just go. It wouldn’t matter.LULU : We might as well stay here.STANLEY : No, it’s no good here.LULU : Well, where else is there?STANLEY : Nowhere.에서 보면 나이든 Meg과는 달리 LULU라는 젊은 여성과의 대화에서는 적극적으로 어디든 가자고 제안을 한다. 그러나 어디든 가고는 싶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Stanley는 엄마에게 의존하는 모습도 있지만 성적 욕구가 생기는 것과 동시에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과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 이러한 Stanley의 생활은 Goldberg와 Maccan에 의해 철저히 변화된다. 그들은 Stanley에게 아내를 죽인 살인자라고 하면서도 왜 결혼을 하지 않았냐는 등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심문을 하면서 그를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고 그는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만다. 이는 Stanley가 어른이 되면서 인지하게 되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이를 처음 겪었을 때의 고통스러운 일종의 통과의례로 이해된다. 이 후에 숨박꼭질할 때 이어지는 그의 변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MCCANN finds the torch on the floor, shines it on the table and STANLEY. LULU is lying spread-eagled on the table, STANLEY bent over her. STANLEY, as soon as the torchlight hits him, begins to giggle. GOLDBERG and MCCANN move towards him. He backs against the hatch, giggling. The torch draws closer. His giggle rises and grows as he flattens himself against the wall. Their figures converge upon him.’.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는 LULU를 강간하려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면서 지속적으로 킥킥 웃는다. 극 초반의 Stanley의 의존적이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모습은 Goldberg와 Maccan의 심문과 Meg으로부터 선물받은 북을 발로 찢은 이후로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띄고 LULU에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은 성숙하면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회의 본질을 깨닫고 그 사회에 편승하면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어른이 된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또 다른 관점에서 이 극은 전쟁의 아픔을 Harold Pinter 작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Goldberg와 Maccan이 그를 심문하는 장면 속에 이와 같은 대사가 있다.GOLDBERG : Do you recognise an external force?STANLEY : What?GOLDBERG : Do you recognise an external force?MCCANN : That’s the question!GOLDBERG : Do you recognise an external force, responsible for you, suffering for you?물론 이 대사는 이 장면에서 뜬금없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러나 Goldberg가 Stanley에게 외부적 힘을 인지하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실제로 그는 예고없이 찾아온 낯선 그들에 의해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다. 어떠한 논리성이나 이유 없이. 이는 그가 제 2차 세계 대전 때 겪었던 지울 수 없는 아픔과 관련이 있다. 그는 군 복무의 명령을 거부해 감옥에 갈 뻔 하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런던에서 폭격소리와 함께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폭력도 경험했다.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순 없지만 그가 겪었던 폭력과 공포는 외부에서, 그 어떤 합당한 이유도 없이 찾아왔고 이는 그의 작품 속에서 그의 관점이 되었다. 또한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상처로 좌절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 Petey가 Stanley에게 “Don’t let them tell you what to do”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이전까지 말을 아끼고 있던 Petey가 Stanley에게 자기 인식의 중요성이라는 본질을 꿰뚫는 조언을 해준다. 이러한 Petey의 행동은 Stanley에게 가해지는 것과 같은 세상의 부당한 폭력과 부조리함에 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항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조언을 할 수도 있는 존재가 있음을 보이면서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작가의 시각이 드러난다.결론적으로 이 극을 통해서 작가는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겪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작가 자신이 겪었던 전쟁의 아픔을 갑작스럽게 외부적 폭력을 경험하는 Stanley에게 투영해 표현하였다. 또한 이러한 개연성 없는 폭력과 공포 속에서도 결국에는 희망을 암시하면서 인간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그의 생각을 극을 통해 표현하였다.
David Henry Hwang의 ‘M.Butterfly’를 통해 보는 오리엔탈리즘과 젠더부제 - 남성성과 여성성의 관점에서David Henry Hwang의 ‘M. Butterfly’는 유명한 Giacomo Puccini의 ‘Madama Butterfly’를 보고 쓴 연극으로 일본을 배경으로 한 Puccini의 작품과는 달리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극의 시작은 감옥에 갇혀 있는 René Gallimard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는 Helga라는 여성과 이미 정략결혼을 한 상태였지만 베이징의 오페라에서 Puccini의 ‘Madama Butterfly’의 극을 연기하고 있는 Song Liling을 보고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후에 그는 Helga와 이혼할 정도로 Song을 사랑했는데 알고 보니 Song은 남자였고 이에 그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결한다. 작품을 통해 David Hwang은 서양이 갖고 있는 동양에 대한 선입견, 즉 오리엔탈리즘이 유럽 제국주의에서부터 비롯된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한 방식임을 비판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우리의 의식에 깊숙이 박혀 있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낸다.먼저 극의 전반부에서 Gallimard는 학창시절 친구인 Marc가 여자애들과 놀러가자고 해도 주저하는 모습을 통해 여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쑥맥으로 묘사된다. 그런 그가 프랑스 외교관이 되고, 이른바 권력을 갖은 후에는 남성성을 추구하는 모습이 드러난다.SONG: It’s one of your favorite fantasies, isn’t it? The submissive Oriental woman and the cruel white man.GALLIMARD: Well, I didn’t quite mean...SONG: Consider it this way : what would you say if a blonde homecoming queen fell in love with a short Japanese businessman. He treats her cruelly, then goes home for three years, during which time she prays to his picture and she learns he was remarried, she kills herself. Now, I believe you would consider this girl to be a deranged idiot, correct? But because it’s an Oriental who kills herself for a Westerner-ah!-you find it beautiful.위 장면에서 보이듯이 그는 평소에 오페라 ‘Madama Butterfly’의 줄거리를 좋아했었는데 이는 헌신적이고 수동적인 동양 여성에 대한 그의 환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Madama Butterfly’에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서양 남자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알지 못하고 미련하게 기다린 일본인 부인의 순수한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Gallimard는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왕자에게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공주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은 가부장적 사회구조 아래에 주로 생산되는 전형적인 줄거리이다. 여기서 Song의 대사처럼 왜 동양인 남자를 기다리는 헌신적인 금발 미녀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속에는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지배심리가 들어있음과 동시에 또한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우월하다는 심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재판을 받는 Song이 Gallimard를 속일 수 있었던 이유로 ‘I am an Oriental. And being on Oriental, I could never be completely a man.’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남성성을 가진 동양은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남성성으로 묘사되는 서양 남자와 여성성으로 표현되는 동양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페라와 그것을 좋아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동양에 대한 우월의식이 존재하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이러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동양의 자세는 극이 진행되면서 나타난다.Gallimard가 Song에게 속아 의도치 않게 첩보일을 하게 되어 사실상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이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된다. Song이 그렇게 그를 속일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남자였기 때문이다. 아래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SONG: Okay, Rule One is: Men always believe whtat they want to hear. So a girl can tell the most obnoxious lies and the guys will believe them every time-”This is my first time”-”That’s the biggest I’ve ever seen”-or both, which if you really think about it, is not possible in a single lifetime. You’ve maybe heard these phrases a few times in your own life, yes, Your Honor?Song은 남자가 여성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고 있으며 어떻게 행동했을 때 그것을 믿는지 Rule이라고 명칭할 정도로 명확하게 알고 있다. 이는 동양도 서양의 그러한 선입견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도 동양이 단순히 여성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임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식민지배와 같이 피지배 역사가 많고 아직까지도 미국과 같은 서방 국가들의 힘이 강한 것은 사실이기때문에 동방 국가들의 대응은 현실 속에서 강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작품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이를 무너뜨리는 모습보다는 Song과 같이 그들 스스로 그렇게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행동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서방 세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한편으로는 Asian American으로서 작가 본인의 정체성을 하나의 속성으로 단정 지을 수 없듯이 서양, 동양 혹은 남성성, 여성성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이와 같은 작가의 생각은 극의 마지막에 Song이 옷을 벗는 장면에서 구체화된다.SONG: So come get your little one. If you like, I may even let you strip me. GALLIMARD: I mean, you were! Before..but not like this!SONG: I was? Then perhaps I still am. If you look hard enough.[He starts to remove his clothes.]GALLIMARD: What-what are you doing? SONG: Helping you to see through my act. GALLIMARD: Stop that! I don’t want to! I don’t- SONG: Oh, but you asked me to strip, remember?이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에 Gallimard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어하며 완전히 여성, 즉 여성성으로 규정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그녀를 완전한 남성성으로 인식하며 그녀가 양복을 벗는 것을 소스라치게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치마를 입고 부끄러워하는 Song과 양복을 입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Song은 둘 다 그녀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서 두 속성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이고, Song의 여성성의 판단 기준은 의복과 행동이었으며 이는 결국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이 우리 스스로 규정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따라서 남성성 혹은 여성성에 비추어 남자와 여자의 성격이나 행동의 당위성을 판단하는 것이 만연한 사회가 과연 올바른 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결론적으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서방 세계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함과 동시에 오리엔탈리즘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개념도 실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어찌 보면 사소한, 특정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하며 지역이나 인종, 젠더로 차별 받지 않는 통합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방향으로 고정관념 변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과 같이 다문화 사회 혹은 국가가 많아지고 남녀의 동등한 권리가 요구되는 시대에 이러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더욱 의미를 가진다.
유가 사상은 발원지인 중국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최근 중국의 전통을 중시하는 국학(国学)이 강조되고 있고, 그 국학 안에 포함된 것이 공자의 유교 사상이기에 중국은 다시 예전의 공자 사상을 재조명하고 있다.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 시대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고 인식이 변화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경우에는 유교 사상을 부활시키려는 행보가 정치적, 문화적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비추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을 현대 중국사회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는 유가 사상을 통해 연구해보려 한다.원시 유교는 춘추전국시대 혼란기 제자 백가 중 하나였던 공자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이후 다른 사상가들과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되어왔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유교는 공자만이 아니라 제자 백가에 해당하는 다양한 사상가들의 영향과 당대 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유교 사상은 춘추전국 시기 공자에 의해 태동한 이래로 현대까지 꾸준히 중국의 정치사상으로 작용하며 중국인의 삶의 규범과 문화,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구조의 밑바탕을 이루어 왔다.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전통과 역사를 담고 있는, 민족의 정체성이 될 수도 있는 유가 사상이라는 문화 유산을 당시 권력층이 추구하는 이상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탄압을 하였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모욕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 이념의 강요에 의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였고, 홍위병(红卫兵) 관련해서도 자식이 부모의 사상이 불온하다고 고발하는 일도 빈번하여 가족 간에도 서로 고발하는, 불신의 시대가 10년동안 지속되었다. 이에 중국 정부도 인정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져 우선 가장 기본적인 부모 효도를 교육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무너진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유가 사상을 다시 불러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시기 유학을 대표했던 펑유란(馮友蘭)이 체육관의 수많은 군중 앞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자를 봉건을 옹호한 반동이라고 비판해야 했던 사건을 생각해보면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중국 공산당의 이미지를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또한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있어 중국의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와 천안문 사태, 티베트·신장위구르의 분리 운동에 대한 무력진압 등의 모습이 중국이 전파하는 인간중심의 윤리성을 갖춘 유교 사상과 괴리를 보여주었기에 중국의 과거 행보가 중국이 발전하기 위한 과정으로 정당화되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이는 사실 현대 중국이 유교 사상의 핵심 내용을 정치·문화에 이용할 때, 중국 공산당의 이념에 맞는 부분을 선별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이것이 중국 사회의 정치적 문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 정치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유교 사상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첫번째로 개인보다는 집단(또는 공동체)을 강조하는 것이다. 유교 사상에서는 지속적인 수양과 노력을 통해 개인의 욕심보다 공공선을 실천하는데 큰 가치를 두었으며 지도층에게 더욱 높은 수준의 도덕적 수양을 요구하였다. 또 다른 예로, 맹자는 정신노동을 하는 대인(大人)과 육체노동을 하는 소인(小人)을 구분하여, 대인은 소인의 생산 활동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며 소인은 그들을 지도하는 대인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 하에서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었다. 이와 같은 사상은 중국 공산당의 도덕성과 능력에 일방적인 믿음을 형성하는 데 사용되고, 중국의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권위와 정당성으로 연결된다. 둘째로, 유교사상은 사회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자의 유교 사상은 ‘정명(定名)’을 주장하였는데 ‘정명’의 ‘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답다)’는 원래 쌍방향의 관계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사회의 갈등과 무질서가 사라지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직책에 따른 질서를 중시하였기에 이를 중국 공산당이 권위주의 체제에 서는 일방적인 관계로 만드는 데 이용한 측면도 보인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시스템 이론을 도입한 진관타오의 이론으로 초안정구조론이 있다. 이 이론은 중국 사회가 인간의 의지를 통해서는 바뀌지 않는 초안정구조 및 이를 지탱하고 있는 일체화된 관료제와 봉건 의식을 지니고 있어서, 200~300년을 주기로 대란이 발생하여 왕조가 교체되는 변화가 있어도 자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시스템의 구조로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주장하는데, 중국 공산당이 앞선 유교 사상의 핵심 내용을 초안정구조를 유지하는데 있어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방적인 권위주의 체제로 공산당에 권력이 집중되면 부정 부패에 대한 감독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기에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실제로 21세기 들어서 중국 공무원 부패 수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인의 삶과 문화,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구조의 밑바탕 역할을 해온 유교 사상이지만 현대에 들어 장점은 살리지 못하고 초안정구조처럼 권력층의 실용성에 입각 해서만 사용하는 점이 중국 사회의 부패와 부정적 이미지를 생산해내고 있다.중국 정부가 전통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현대화에 봉사할 수 있도록 유학 부흥 운동에 매진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가 실질적으로 유가 사상의 부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가 사상을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뿌리로 여겨지는 서양 사상(예를 들면 기독교 사상)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에 대응될 수 있는 하나의 국가 브랜드로 생각하여 활용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로 세계 각 나라의 대학과 교류를 위해 국비로 지원하는 교육기관인 ‘공자학원(孔子學院)’은 중국의 문화와 중국어를 선전할 뿐 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중국 정부는 천안문 서쪽에 9.5m 높이의 ‘공자 동상’을 설치하지만 2011년 4월 중국 공산당의 반대로 철거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보았을 때 중국 공산당이 유교를 통해서 인권이 존중되는 도덕적 국가의 건설이나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성보다, 중국 공산당의 중앙 집권적인 정치 체제의 안정과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중국만의 소프트 파워를 갖추기 위한 용도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결론적으로 중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동아시아 전체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가 사상을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적인 정부의 행보를 정당화시키는 데에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만 경제적 논리에서는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키우기 위해 사상이든 무엇이든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이를 비판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현재 세계 성장을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나라 중 하나이며, 소위 중국이 주장하는 중국만의 중국특색사회주의(中国特色社会主义)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음이 현재 미국과 견주는 경제 대국으로 매번 부딪히는 모습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이 유가 사상을 경제적 실용성, 혹은 정치적 권력의 강화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고 유가 사상이 본래 목표로 삼았던 애민 정신, 덕치주의, 교육 평등과 같이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같이 이끌고 나갈 때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대국(大國)으로 존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FERENCES진관타오, 류칭펑 공저(2010), 관념사란 무엇인가 1, 푸른역사박명아, 김현민(2017), 중국의 유교 사상에 대한 고찰 : 소프트파워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p 179-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