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남북국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내가 생각하는 남북국시대의 의미우리는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 사이에 어떤 시대가 존재했는지 질문을 한다면, 사람들은 ‘통일신라시대’ 또는 ‘남북국시대’라고 답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할 때 통일신라시대는 많이 들어봤어도 남북국시대라는 단어는 생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에서 남북국시대의 의미는 무엇일까?남북국시대는 한반도 남쪽에는 통일신라가, 북쪽에는 발해가 서로 부모 또는 그와 같은 항렬 이상에 속하는 혈족이었던 시기를 뜻한다. 삼국통일 7세기 후반부터 발해의 멸망한 10세기 전반까지 시기이다. 과거 우리 역사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순으로 체계를 이해해왔다. 그러나 발해도 우리 민족의 역사로, 통일신라시대와 동등한 고대국가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며,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순으로 역사 체계가 정립되었다. 그렇다면, 남북국시대라는 용어가 새롭게 나오게 된 배경은 어떠했을까?남북국시대라는 용어가 대두되었을 즈음에 우리나라는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벌이고 있었다. 정부가 북방정책을 실시하면서 냉전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과서에도 이러한 시대적 추세를 따라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발해와 신라는 200여 년간 대립적이었다고 배워왔지만, 오히려 두 나라 사이에는 교류의 증거들이 많았다. 대립보다는 교류를 지향하는 역사 서술과도 맞아떨어지면서 발해가 우리 역사라면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쓰기로 결정 한다.그전에 발해는 한국사인지 확인되어야만 남북국시대라는 용어가 타당성을 갖게 된다. 중국은 동북공정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의 역사로 만들고 있었다. 고구려 유적에 이어서 2008년에는 중국이 발해 유적들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리려 했다. 이렇게 중국의 손안에 들어 있는 발해가 우리의 역사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근거를 통해 증명해내야 했다.발해는 건국자와 주민 구성에서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국가였다. 고구려인의 국가 또는 말갈인의 국가라는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에 대어와 장수를 역임한 인물인 대조영은 말갈족 출신이었다. 발해 사회도 고구려인과 말갈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니 중국과 러시아에서 말갈의국가로 보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은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발해는 건국된 후에 고구려 계승을 표방했음을 알아야 한다. 발해 무왕이 727년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대 무예는 욕되게 여러 나라를 주관하고 외람되게 여러 번 국을 아우르게 되어,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고, 강왕이 798년 역시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천황의 풍모를 향한 정성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고, 부지런히 교화를 사모하는 태도는 고구려의 발자취를 따르겠습니다.”라고 했다.그런가 하면, 발해가 멸망한 뒤에 세워진 유민국가인 정안국이 981년 송 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정안국왕 신 오현명이 아됩니다. (중략) 신은 본래 고구려 옛 땅에서 살던 발해 유민으로서”라고 했다.이를 보면 발해 사람들은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말갈을 계승하겠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도 없다. 이처럼 발해가 고구려 계승국가임이 분명하므로 한국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발해를 처음으로 한국사의 일부로 다룬 문헌은 고려 시대 편찬된 일연의 와 이승휴의 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발해를 통일 신라와 대등한 민족사로 다루지는 않았다. 이후 조선 후기에 실학자인 유득공이 편찬한 에서 비로소, 통일 신라를 남국으로 북방의 발해를 북국으로 표기할 것을 주장한다.하지만,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를 연상시키게 한다. 이는 남방의 한족 국가와 북방의 이민족 국가가 나란히 하던 시대였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민족이 세운 국가들마저 자기네 역사로 포용했다. 남조와 북조가 똑같은 1 대 1의 비율로 역사적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므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당연히 우리가 포용해야 할 나라이다. 그렇다면, 두 나라가 존재했던 시기이게 되므로 통일신라에서 '통일' 이란 말을 쓸 수 없어진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민족 최초의 통일을 후삼국통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의 통일 또한 후삼국의 통합에 불과하여 발해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다. 발해는 삼국통일이 다 된 뒤에 북방에서 새롭게 일어난 왕조이다. 따라서 삼국통일이 대동강 이남까지의 부분적인 통일에 그친 것을 보완해준다. 따라서 신라를 통일신라로 부르는 데에 문제는 없다.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해본다면, 왜, ‘남북국시대'라고 쓴 것인가? 과거에는 남북조시대로 부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남북국이란 말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우선 최치원의 에 보이는 '북국'과 '북조'라는 명칭이 그것이다. 이 사료를 통해 신라에서는 발해를 가리켜 '북국' 또는 '북조'라고 불렀기 때문에 발해에서도 역시 신라를 '남국' 혹은 '남조'라 불렀다고 추정되며, 이로써 당시 신라와 발해 사이에는 서로 '남북국' 혹은 '남북조'라는 개념의 존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후 김정호 역시 에서 우리나 역사를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의 체계로 설명한다. 그러나 남북국시대 체계에 관한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다가 일제강점기에 민족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제시되면서 남북국이라는 개념이 다시 설정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다루면서도 남북국시대 용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다행히 북한 학자를 중심으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측면의 연구에 많은 성과를 내었다. 그렇게 1970년대, 식민사관의 극복과 민족 자주 의식 고취에 대해 관심이 커지면서 남북국시대 체계를 활발히 논의되면서 1980년대에 와서야 국사 교과서에 남북국시대의 용어를 자리 잡는다. 이 의식이 근대에도 계승되어 일부 한국사 책에 남북국시대, 남북조시대란 용어가 선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