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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이야기와 인성 레포트 토기 , 채색자기
    현재 우리의 생활에서 도자기가 활용되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의 생활은 도자기에 관한 선조의 지혜와 노력이 뒷받침되고 있었다. 영상을 보며 도자기가 인류문명의 발전은 물론, 우리의 미래의 삶에도 뒷받침되는 산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먼저 인류최초의 그릇, 토기의 시작은 진흙을 이용하여 그릇모양으로 빚고 물이 세지 않도록 사탕수수 즙을 발라 노천소송을 이용하여 구운 그릇이었다. 하지만 노천소송으로는 600~800도 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으므로 단단해지기는 하지만 물에 넣으면 풀어져버렸다. 이것이 토기의 한계였다. 그래서 물을 흡수하지 않고 구하기 쉬우며 가볍고 단단한 그릇을 찾기 시작한 것이 자기의 출발점이었다. 토기의 한계를 보안하고자 불의 온도를 더 높이기 위해 시도했고 이후 통가마는 1000도까지 올릴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토기가 도기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중동지역에서는 높은 온도에서 견딜 수 있는 흙과 풍부한 땔감을 가지고 있지 않아 유리의 성질을 이용하여 물의 흡수를 막으려고 하였다. 사람들은 유리질을 이용하여 그릇에 유리가루를 입히고, 소다나 소금을 이용해 유약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그릇에 유약을 입혀 굽는 방법의 출발점을 만들어주었다. 후에 중국에서는 고령토를 사용하여 가마에서 구울 때 나뭇재가 날리며 중동의 소다나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써 흙속의 유리질을 녹이는 자연유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나뭇재유약을 이용하여 완벽한 방수와 접착성을 가지는 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청자였다. 또 중국북부에서는 접착성이 강하고 얇게 구워지는 고령토로 백자가마를 이용하여 높은 온도에서 백자를 구워낼 수 있었다.문화적 소양이 탁월했던 황제와 사대부의 지원 아래 청자는 우과청천 (하늘빛같은 청자)을 띄게 되었다. 나뭇재로 유약을 만들어 유리질을 두껍게 하여 유리질안의 기포가 빛의 산란을 극대화하여 깊고 부드러운 푸른빛을 띄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의 자기기술이 최초로 전파된 곳은 한반도였고 그 당시 자기제작이 가능했던 곳은 중국과 조선 뿐이었다.중국의 자기기술이 1000년전부터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많은 나라들의 유물에서 알 수 있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카스트제도에 의해 값싼 토기 찻잔을 사용하였지만 중국의 청자가 전해지자 관습과 제도를 거스르면서까지 청자를 따라하려 했던 모습이 남아있었으며 이슬람에서도 청자의 기법을 따라하려 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이후 백자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청화백자가 유행하였는데 1300도 이상에서 견딜 수 있는 안료는 철, 코발트, 동이 있었고, 흰색을 귀하게 여기는 몽고의 전통에 따라 이슬람은 백자에 코발트의 안정성을 이용해 코발트안료를 가져와 백자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를 열어 자기산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이슬람은 자기의 흙인 고령토가 없어 청화백자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중국의 청화백자발전에 기여한 역할이 되어버린 셈이었다.중국이 주도하던 자기기술이 유럽으로 전해지게 된 계기는 포르투갈에서 온 바스코 다 가마가 후추를 찾아 인도에 왔었을 때 청화백자를 발견하고 회항하는 함선에 청화백자를 싣고 돌아갔다. 200년 전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그 존재를 알렸던 자기가 유럽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청화백자가 기술적, 미적으로 절정에 이른 것은 명대 초기로, 중국전통 문양이 본격적으로 반영되었고 코발트 안료는 소성과정에서 번짐 없이 착색이 이루어졌다. 자기 바닥에 새긴 "대명선덕연제", "대명성화연제"와 같은 연호는 곧, 최고 명품 청화백자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다.이후에는 많은 나라들의 청화백자를 따라하려는 모습이 보여졌다. 메디치가문은 유럽최초로 자기생산을 시도했지만 고령토를 알지 못했던 그들은 유리를 섞은 흙을 사용했고 가마 또한 1250도까지 온도를 올릴 수도 없었으므로 결국 자기를 생산하지 못했다. 네덜란드에서의 델프트 도자기 또한 중국의 청화백자를 모방한 것이었다. 유럽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한계에 부딪혀 중국을 뛰어넘는 청화백자를 만들 수는 없었다.유럽에서 커피의 유행이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중국으로부터의 자기의 수입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중국의 국가적 내홍으로 자기생산이 중단되었을 때 자기의 수요를 충당한 것은 일본의 특유의 문양과 여백을 담은 채색자기였고 점점 일본의 도자기 문화가 발전하였다. 이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중국을 따라하려했던 나라들처럼 중국은 유행을 따라서 일본의 자기들을 흉내내어 제작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자기에 대한 이기적인 욕망은 결국 전쟁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도자사에서의 일본과 조선의 역사는 뒤바뀌게 되었다.유럽 최초로 자기를 발명했던 것은 독일이었고 천 년간 기술을 독점했던 중국과는 달리 유럽 전역에서 불과 300년 만에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산업자기의 대량생산을 위해 손으로 직접 그리는 대신 전사기법을 사용하였고 도자기의 원료를 본차이나로 바꿈으로써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게 되었다.동영상을 보기 전 이론으로 수업했던 도자기에 대한 내용들이 동영상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원래 토기를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온도가 조금만 낮거나 다르면 형태가 완전치 못하거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토기와 도기, 자기의 차이점은 토기는 점토로 그릇을 빚은 후 유약을 입히지 않고 600-800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으로 낮은 온도에서 구워냈기 때문에 구조가 치밀하지 않고 다공성이며 강도가 약하며, 도기는 900-1000도에서 구워지며 토기에 비해서는 치밀하지만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남아있고 강도도 자기보다는 약하다. 자기는 고령토로 형태를 빚은 후 유약을 입혀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방식으로 구워낸 방식의 그릇으로 강도도 강할 뿐 아니라 화학적 내식성과 내열성이 뛰어난 그릇을 말한다. 먼저 도자기는 급속한 발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그 시대에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서 도자기가 점점발전해나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토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물이 새고 물을 흡수하는 성질을 보완하기위한 높은 온도에서 견딜 수 있는 흙과 땔감을 구하기 힘들자 대신 유리를 가루로 만들고, 소다나 소금을 유약으로 사용하여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그 시대 사람들의 창의력과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유약만으로는 단단하고 방수성을 가진 도기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보게 된 현상으로 그것을 도자기에 접합하여 생각해서 도자기의 발전으로 이끌어갔고 단점을 확인하여 수정하고 보완하여 더 훌륭한 자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수업을 들으면서 또는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나라가 도자기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거기다 당시 자기생산을 할 수 있었던 나라가 중국과 조선 뿐이었다는 것에 우리나라가 너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다만 일본만 아니었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도자기의 생산국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사실 난 한반도와 중국을 정복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발발한 일본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으로 중고등학교 시간에 배웠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일본의 도자기를 향한 욕심도 한몫 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원정군에게 조선의 도공, 장인들을 잡아와 일본에서 자기를 만들게 하기 위한 출병을 지시했고 그 당시 조선은 상감장식기법, 분청사기, 백자가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에 의해 조선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며 무너지게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재정은 피폐해졌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이후 약 50여 년간은 전후 복구로 인해 도자기생산은 엄두도 내지를 못했다. 반면 결국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이 만든 다완은 일본에서 보물로 지정되었고 일본은 그를 바탕으로 활발한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이 내용을 보는 동안 일본의 이기적인 욕심때문에 우리나라가 세계의 도자기생산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기회를 강탈당한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웠고 화가 났다. 결국 도자사에서의 임진왜란은 일본이 조선의 자기기술을 빼앗으려 했고 일본과 조선의 도자기역사를 송두리째 바꿔 놓은 전쟁이었다.영상을 보는 내내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중국과는 달리 자연의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며 중국을 따라가려는 노력들이 가장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그 시대 많은 지역에서 제작된 자기들은 중국의 자기를 따라하려는 노력들의 결과물이었다. 특히 중동지방에서 물의 흡수를 막기 위해 유리를 갈아 분말을 도기표면에 입혀 굽기 시작했고 흙과 소다를 물에 풀어 만든 유약은 중국의 유약보다 1000년 이상 앞섰지만 역시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 자기로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보며 자연의 차이가 없고 공평하게 주어졌더라면 중국보다 훨씬 먼저 자기를 제작하고 도자기의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중국이 가장 먼저 자기를 만들었고 대륙과 바다를 건너 다른 문명에 전해졌다. 청화백자는 중국과 유럽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유럽에서의 자기발전은 특히 더 빠르고 넓게 우리 현재의 삶에 큰 변화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도 전통 자기기술은 현대기술에도 적용되는 하이테크이다. 또한 미래에도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은 기술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오늘날 도자기는 세라믹으로서 다양한 첨단산업에 이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최첨단 우주산업과도 이어진다고 한다. 그 원리는 우주선이 대기권에 진입할 때의 마찰열은 1800도이고 이 온도를 가장 효율적으로 견딜 수 있는 재료는 자기이므로 우주왕복선의 캡슐의 겉표면이 자기(세라믹)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도자기로서 뿐 아닌 최첨단 산업에도 자기기술을 이용함으로써 나타나는 도자기의 발전은 수 천년전부터 미래의 산업까지도 함께 할, 진정 인류와 함께 성장해온 위대한 발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자연과학| 2020.11.30| 4페이지| 1,5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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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레포트
    국립중앙박물관을다녀와서가장 먼저 들어갈 때 공항처럼 검색대에 가방을 올려놓고 문화재를 손상시킬만한 물건이 있는가에 대해 소지품검사를 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가 문화재를 보존하려는 노력과 보존을 위한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우리에게는 물론이고 외국인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중학교 때 박물관 견학을 왔을 때는 이 넓은 곳을 자세히 보려고 하지는 않아서 몰랐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을 구석구석 자세히 보려니 정말 커서 겨우 한 층을 둘러보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생각보다 도자기에 관해서 볼 내용들이 정말 많아서 생각보다 흥미를 가지며 둘러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그림으로만 보았던 도자기들의 아름다운 빛깔을 직접 느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지난시간에 봤던 영상들은 도자기의 발전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박물관 견학에서는 우리나라에서의 도자기의 변화를 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실제 우리나라 고려, 조선 시대의 자기들을 보면서 이렇게 기술이 발달되어 있는 시대에 보아도 아름다운 빛깔과 아름다운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멋졌고 우리나라 선조들의 지혜와 장인의 창의적인 발상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도자기가 전시되어있는 관들은 백자관, 청자관, 분청사기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박물관에서 가장 기억나는 내용은 분청사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 흑색의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조선 초기의 도자기이고 종류로는 그릇을 흰 흙으로 어떻게 꾸미는가에 따라 상감, 인화, 조화, 박지, 철화, 귀얄, 분장의 7가지로 나누어지며, 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다. 분청사기는 고려말에 상감청자에서 변화, 발전한 것으로 귀족적인 고려청자와는 달리 활발함과 생동감이 돋보여 조선의 대표하는 도자기 중 하나이다.또한 분청사기에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새겨진 글자의 종류에는 납품할 관청의 이름, 만든 사람과 지방, 그리고 제작연도, 등급표시 등이 있었다. 글자를 새긴 이유도 각각 달랐는데 각 지방가마에서 중앙관청에았더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냥 한바퀴 돌면서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분청사기에 ‘덕녕부’, ‘장흥고’ 라고 써져 있는 글씨들이 분청사기대접들이 납품할 관청의 종류를 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관청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더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도자기들을 둘러보았던 것 같다.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는 분청사기와 백자인데 분청사기가 유행했을 때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어 국가가 주로 백자를 생산하면서, 그 영향으로 지방가마들도 점차 분청사기 대신 백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도자기들 보다 백자가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실제로 본건 처음이었는데 백자를 보았을 때 “우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도자기의 부드러운 곡선과 맑으면서도 청색을 약간 머금은 백자의 유약은 정말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각, 양각, 투각 등으로 장식한 순백자는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사진으로는 다 같아 보이던 백색의 유약이 시대와 환경 또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고 그 종류에는 우윳빛이 감도는 유백색, 눈같이 흰 설백색, 회색이 감도는 백색, 푸른색을 띈 청백색등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순백자는 장식하는 방법에 따라 그 백자가 지니게 되는 특징이 달라진다. 소문백자는 그릇 표면에 전혀 장식 무늬가 없고 백색의 단일색으로 된 것으로, 대체로 포용력이 있고 청초해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양각백자는 순백자 위에 양각수법으로 무늬를 나타낸 것을 말하며 무늬는 매(梅)·난(蘭)·국(菊)·죽(竹)의 사군자가 가장 많고, 그밖에도 약간의 무늬를 첨가하거나, 그림에 곁들여 문자를 양각하는 수 등이 있었다. 음각백자는 순백자 위에 음각으로 무늬를 장식한 그릇이다.투각백자는 여러 무늬를 투각 수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무늬를 한결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청화를 칠하는 경우도 있다. 박물관에서 백자 투각백자들은 주로 필통이나 연적, 의자, 향로로 많이 보여졌었는데 하나같이 정말 화려한 분위자에서 보다 청화백자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이유는 청화를 이용하면 어떤 부분적인 형태를 더욱 효과 있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백자의 종류 중에는 상형백자가 가장 적어서 많이 볼 수 없었는데 거북이, 소, 코끼리 모양의 상형백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기들의 이름에 모두 어떤 방법으로 장식되어 있는지가 다 포함되어 있었는데 장식기법들을 이해한 후 자기들을 보니 이름을 보지 않아도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신기한 기회였다.조선백자의 종류에는 순백자를 제외하고도 대표적으로 상감백자, 청화백자, 철화백자, 동화백자 등이 있었다. 상감백자는 연질과 경질의 두 종류가 있는데 그릇 표면에 가는 금이 그물처럼 번져있고 부드러운 우윳빛을 띠는 연질 상감백자는 고려 백자의 맥을 이은 것으로 경상도를중심으로 한 가마에서 많이 만들어졌으며 그릇의 모양이나 무늬가 상당히 세련되었다. 반면 경질의 상감 백자는 조선시대 관요가 있던 경기도 광주 일대 15세기 가마터에서 주로 발견되며 상감 백자의 무늬는 명나라 청화 백자의 영향을 받은 짜임새 있는 넝쿨무늬 계열과, 분청사기의소탈한 넝쿨무늬 계열의 두 종류가 있다. 상감백자의 제작 시기는 15세기로 집중되어 있으며 16세기에는 소멸된다. 청화백자는 코발트가 주성분인 안료를 사용하여 푸른색 무늬를 그린 백자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늦어도 15세기 중반부터 청화백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청화백자는 다른 백자들보다 수업시간과 영상을 보면서 많이 언급되었고 사진도 많이 봐서 친근하게 느껴졌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청화백자의 발전과 쇠퇴를 자세하게 알게 된 건 처음이라 더 흥미가 생겼다. 그러나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가 경제가 전반적으로 황폐화 되면서 그 여파가 곧바로 청화 백자의 제작에 영향을 미쳤고 값비싼 수입 안료인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백자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따라 청화 안료를 대신할 저렴한 대체품으로 철화 안료를 찾게 되었다. 이처럼 17세기에는 자연스럽게 밑으로 그은 듯한 표현과 넓은 여백은 절제된 느낌을 받았고 이러한 절제된 표현과 구성은 단순하지만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동화 백자는 붉은색으로 발색되는 구리 성분 안료로 그림을 그리거나 그릇 표면에 칠을 한 백자를 가리키며 이를 진사백자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도자기에는 붉은색으로 장식된 예가 매우 드물다. 고려청자 중에서도 동화청자는 그 수를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고 한다.장식에 쓰이는 안료로 코발트가 쓰이는 것은 많이 봤지만 구리가 쓰이는 것은 처음 봤는데 붉은 색의 안료로 그려진 무늬들이 특이하면서도 세련되어 보였던 기억이 있다. 철회백자는 대개 광주 관요와 지방 민요에서 생산된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하는데 이 각기 다른 무늬들로 생산된 위치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 독특했다.광주 관요의 것은 잘 수비된 백토와 양질의 백자유에 사실적인 무늬가 주로 시문되어 포도덩굴, 대나무, 운룡, 매화 등이 세련된 무늬로 나타나고, 지방 민요의 것은 바탕흙과 유약이 각기 특색을 지니고, 반추상화된 초, 죽, 용 무늬 등이 자유분방하게 묘사되어 있어 구분이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경기도 광주에서 백자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바탕흙인 광주토와 땔감이 풍부했고 수도인 한양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한강을 이용하여 백자를 왕실로 편리하게 운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박물관의 한편에는 아주 크게 조선백자의 역사가 시대별로 표에 나타내어져 있어서 시대마다 백자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분원 관요의 설치와 운영에 따라 크게 초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되었는데 초기에는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지 않은 시기로 전국의 가마터에서 제작된 최고급 백자를 왕실과 중앙관청에서 사용하였고 전기 때 분원관요가 설치되면서 임진왜란 직전 까지 순백자, 청화, 철화백자 등을 관요에서 생산하였다. 중기 때는 임진왜란으로 백자의 질이 떨어져 회백색의 백자가 만들어지고 청화백자의 안료의 부족으로 철화백자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후기에는 분원 관요가 민영화되면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의 2층을 둘러보다가 기증관이라는 곳이 있어서 둘러보니까 그곳에도 백자와 청자들이 많이 모여져 있었다. 처음에는 기증이라고 되어있어서 많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감사한분들이 많아서 너무 감사하게 느껴지면서 나라면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것이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증관을 둘러보았을 때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들 중에서는 확실히 화장용기, 주전자, 밥그릇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된 물건들이 많이 보여졌다. 지금보아도 전혀 이질감이 없이 아름다웠고 지금과 큰 차이점이 없었고 눈으로 본 것 뿐인데 잠시나마 선조들의 고급스러운 삶을 체험해 본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또 1층을 둘러보는 도중에 바다에서 발견된 해저선에 실린 방대한 규모의 중국도자기들을 발견했는데 인양된 도자기의 종류로는 청자, 백자, 흑유자, 백탁유자, 백지흑화자, 갈유자와 도기, 연유도기, 토기등 으로 종류도 다양할 뿐 아니라 각각 중국 각지의 대표적인 가마에서 만들어진 자기라는 것을 듣고 역시 중국은 도자기의 기술을 선도할 뿐 아니라 땅도 넓은 만큼 다양한 가마에서 다양한 종류로 만들어 질 수 있었구나 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도자기를 보고 레포트를 쓰기 위해서 방문한 박물관이었지만 확실히 집에서 검색을 하고 영상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얻는 것도 많고 심적으로 힐링을 얻고 온 기분이었다. 박물관 내부 뿐 아니라 외부에도 다양한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연못를 바라보며 걷는 내내 기분이 정말 좋았다.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박물관을 많이 데리고 가주셨을 때는 역사를 잘 아시던 아버지가 우리에게 항상 설명해주시면서 오빠와 나를 데리고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박물관에 갔을 때는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청화백자와 상감청자의 제조기법 등을 알려드리고 임진왜란이 왜 ‘도자기 전쟁’ 이라고었다.
    사회과학| 2020.10.28| 6페이지| 2,500원| 조회(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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