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맥스웰-던킨-맥도날드의 커피전쟁: 스타벅스가 문화를 판다고? 아니, 기본인 맛에 충실하라!미국에서 커피는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다. 성인 10명 중 6명이 즐길 정도다. 미국의 카페와 레스토랑을 비롯한 식음료점에서 판매되는 있는 커피 매출은 2013년 기준 300억달러(31조원)에 이른다. 2012년에는 미국 성인의 약 83%가 하루에 반드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하루에 1억2000잔 정도의 커피가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다.이런 커피 천국 미국에서 스타벅스는 최대 강자다. 많은 경제경영서적에서는 ‘스타벅스는 좋은 커피가 아닌 다른 커피를 판다’라고 강조한다. 커피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스타벅스의 시작은 ‘좋은 커피’였다. 즉 맛있는 커피였던 것이다.2배로 비싼 커피를 팔았던 던킨도너츠던킨 도너츠는 1946년 빌 로젠버그가 미국 매사추세츠 주 퀸시에서 조그만 트럭을 세워 놓고 출근길 회사원들에게 도넛과 커피를 팔면서 출발했다.당시 보통 커피 값은 5센트였다. 반면 로젠버그가 만든 커피는 10센트였다. 그는 고객들이 5센트를 더 주어도 신선하고 질 좋은 던킨 커피를 선호한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서비스 목표를 확실히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제품의 품질만이 사업 성공의 보증수표라는 점이다.던킨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 로맨틱 코미디의 전설이 된 영화 을 보면 던킨(Dunk-in)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 주인공 엘리(클로데트 콜베르)가 커피에 도넛을 푹 담그자, 도넛을 커피에 깊게 담그면 눅눅해져 맛이 없다며 피터(클라크 게이블)는 도넛 끝부분만 커피를 살짝 묻혀 먹는다. 피터는 이 방법이 도넛을 제대로 먹는 방법이라며 자랑스럽게 ‘던킨(Dunk-in)’이라고 말한다.달콤한 도넛과 진한 커피에 사람들은 곧 열광했고, 4년 뒤에는 200개나 되는 가판대를 만들었다.이렇게 빠르게 성장했지만 던킨은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커피는 음식과 함께 먹거나 음식을 먹은 뒤 마시는 음료로 여겨졌다. 커피만 인위적으로 줄이고 있다며 강력히 비난하기도 했다.이런 상황에서 커피 제조사들은 새로운 해법을 찾았다. 커피 회사로선 갑작스럽게 오른 커피값을 대처하기 위한 즉각적인 방법이었으나, 장기적으로 그 방법은 ‘마약’과도 같았다. 결국 미국의 커피 제조사들은 새롭게 등장한 스타벅스에 시장을 빼앗기고 만다.그들이 쓴 방법은 싸구려 커피를 넣는 것이었다.커피에 들어가는 원두는 크게 에디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카(Arabica)’와 콩고가 원산지인 ‘로부스타(Robusta)', 라이베리아가 원산지인 ‘리베리카(Liberica)’ 3개로 구분된다.아라비카는 11세기부터 재배된 품종으로 다른 원두에 견줘 맛이 부드럽고 향기가 뛰어났다. 좀 더 고가로 취급되며 전 세계 원두 생산량의 70%를 차지했다.이런 아라비카에게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병충해에 약한데다 대량재배가 힘들었다. 올해 풍작을 거두더라도 그 이듬해엔 완전히 망칠 수 있는 품종이었다. 원료공급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건 기업에게는 치명적이었다.1953년 이후 몇 번의 서리를 경험하면서, 커피 제조사들은 아라비카가 장기적으로 커피의 주원료로 쓰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대안을 찾아야 했다. 아라비카와 반대되는 품종이여만 했다. 그건 로부스타였다. 기후변화에 강했고 생산량도 풍부했다. 무엇보다 값이 쌌다. 하지만 맛이 형편없었다. 그 맛 때문에 커피 제조사들은 그동안 로부스타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수요가 늘어난 상황에서 공급이 줄어들고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1위의 커피제조회사인 맥스웰하우스의 경영진은 로부스타를 쓰기로 결정했다.물론 커피 품종을 완전히 로부스타로 바꾸는 건, 아니었다. 기존 아라비카에 로부스타를 조금 첨가하면 커피 맛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커피 값을 올리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커피 맛을 떨어뜨리지만 원가도 떨어뜨릴 수 있는 방안이었다.경영진은 그 결정을 최종적으로 확정짓기 전에 고객을 대상으로 시음회를 열었다. 아라비카만으로 만든 커피와 아라비카에 로부스타를 때문이었다.그들이 몰랐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젊은 고객의 등장이었다. 어릴 적에 커피를 마시지 않던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서 커피를 마시게 되는데, 이들이 처음 마셔 본 커피는 너무 맛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매년 조금씩 늘려온 로부스타를 늘여왔기에 당시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커피제품에는 로부스타가 첨가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그런 커피를 마셔온 사람들은 로부스타가 많이 첨가된 커피도 거부감 없이 마셨다. 하지만 처음 커피를 마시는 젊은이들엔 로부스타가 많이 들어간 커피는 쓰기만 할뿐 영 맛이 없었던 것이다.젊은이들은 왜 부모세대가 이렇게 형편없는 커피를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은 로부스타 커피 매출은 계속 떨어졌다. 그 시장을 코카콜라와 펩시 같은 청량음료들이 치고 들어왔다.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고객을 대체할 새로운 세대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커피 제조회사들은 그걸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커피 산업은 저성장 저수익 구조로 변하고 말았다.이런 상황에서 커피 제조사들은 잘못된 대응을 하게 된다.커피 제조사 경영진들은 청량음료가 커피시장을 잠식해 들어 온 것이 청량음료 광고나 이벤트의 영향으로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 여겼다. 해서 커피회사들은 청량음료처럼 감각적인 광고를 선보이고 튀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당시 커피회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커피의 맛이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뛰어난 맛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점도 캐치하지 못했다.커피 제조사들은 수십 년 동안 기존 제품에 로부스타를 첨가함으로써 생산원가를 절감하는 데만 신경 쓰고 있었다. 시음회에서 나온 잘못된 정보를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다.아라비카의 풍미를 새롭게 연 스타벅스이런 상황에서 게임 규칙을 바꾼 한 회사로 커피 시장은 전면적으로 개편된다. 바로 스타벅스였다.당시 커피 제조사들이 로부스타를 섞은 낮은 품질의 변질됐을 때, 스타벅스 창업자들은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아라비카 원두를 취급한 것이다.스타벅스 가게 문을 연 뒤 세 사람은 원두 공급업체인 피츠 커피&티(Peet’s Coffee&Tea)에서 아라비카 원두를 공급받아 로스팅한 뒤 팩에 담아 원두를 팔았다.스타벅스의 로스팅은 달랐다. 로스팅이란 커피나무에서 나온 생두(green bean)에 열을 가해 볶는 과정으로,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생두는 맛이 없는 딱딱한 씨앗에 그치지만, 로스팅 단계를 거치면 커피 맛을 내게 된다. 생두를 로스팅한 것을 원두라고 한다. 로스팅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두 색깔은 진해지고 크기는 팽창해진다. 향은 캐러멜 향에서 신향을 거쳐 탄 향으로 짙어진다.스타벅스는 설립할 때부터 로스팅 공장을 운영하면서 로스팅에 신경을 써왔다.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과 달리, 미국 사람들은 커피에 우유나 시럽 등 갖가지를 넣어 먹는다. 이런 미국사람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진하게 볶는 ‘다크 로스팅(dark roasting)’ 원두를 사용했다.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가 유독 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사람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통해 예전에 맛보았던 아라비카 커피의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많은 경제경영서적에서는 ‘스타벅스는 좋은 커피가 아닌 다른 커피를 판다’라고 강조한다. 커피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스타벅스의 시작은 ‘좋은 커피’였다. 즉 맛있는 커피였던 것이다.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내놓으니 판매량은 예상을 앞질렀다. 지역 일간지인 에 기사가 실리면서 판매량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가게 문을 연 지 9개월 뒤엔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 커피 재배업자에게 직접 아라비카 원두를 사들이기 시작했다.유럽풍 커피숍으로 바꾸자1982년 스타벅스는 하워드 슐츠가 마케팅 담당자로 합류하면서 도약의 기회를 맞는다. 슐츠는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Xerox)’에서 판매 대리인으로 일한 뒤 스웨덴의 커피 메이커 제조회사인 ‘해마플라스트(Hammarplast)’의 미국설립했다. 이태리어로 ‘매일’이라는 뜻으로 이태리의 유명 일간지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그는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스타벅스의 동업자들에게 30만 달러를 포함해 4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슐츠는 우리가 아는 스타벅스로 방향을 돌려놓은 것이다. 슐츠는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바에 매혹되어 회사와 자기 집 사이의 제3의 장소라고 부를 만한 편안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 캠퍼스 안에서만 존재하던 커피숍 문화를 스타벅스 혼자의 힘으로 미국에 만들어내고 전파하려 했던 것이다.슐츠는 시카고에 첫 번째 ‘일 지오날레’ 매장을 열었다. 그는 스타벅스 커피에서 공급받은 원두로 카푸치노(Cappuccino), 카페라테(Caffe Latte)와 같은 커피음료를 판매했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의 모습과 분위기를 그대로 매장에 적용했다.슐츠는 일 지오날레의 메뉴판을 이태리어로 만들었고, 매장 내부엔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직원들은 나비넥타이를 매도록 했다. 또 이름에서처럼 그날의 일간지를 매장에 비치했다. 시애틀의 커피 전문가인 ‘데이브 올슨’을 영입해 직원들에게 커피에 대한 교육을 맡겼다.일 지오날레는 오픈 하자마자 아라비카 원두를 사용한 커피의 풍부한 맛과 매장 분위기로 금세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개장 6개월 만에 하루 1000명 이상의 고객을 끌어들였다. 곧바로 시애틀에 2번째 매장이 개설됐고, 캐나다 밴쿠버에 세 번째 매장도 오픈됐다.그러나 고객들이 이탈리아어로 된 메뉴판과 직원들의 정장 등을 부담스러워 하자, 슐츠는 편안한 매장 분위기를 유지한 채 메뉴판을 영어로 바꾸고 직원들의 복장 규정도 완화시켰다. 그는 이때 매장이 늘어감에 따라 균일한 커피 맛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직영점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게 되었다.1987년 슐츠는 스타벅스 동업자들이 3년 전에 사들인 피츠 커피 앤 티 경영에 집중하려고 스타벅스를 판매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슐츠는 스타벅스를 일 지오날레 커피 컴퍼니로 합병시키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