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관은 “순수하게 객관적인 역사지식이란 궁극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다. 다시 말해 역사를 ‘당시 있었던 일 그대로’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보고 기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역사관이다.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여러 역사의 기록들은 어떠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선택해서 기록된 전체의 부분일 수밖에 없다. 모든 문서와 역사적 흔적들이 이렇듯 부분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체를 알 수 없으며 흔히 말하는 '객관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옛날에 역사를 기록하던 사관부터 현재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까지 아무리 객관적이고 순수하게 기술하고 연구하려 할지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환경, 이해관계와 편견과 같은 것들을..<중 략>
최근 방영되고 있는 한 예능 프로그램 중에 ‘인간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각각의 체험 주제에 맞추어 출연자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재밌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언젠가 한 번 “쓰레기 없이 살기”라는 체험 주제를 다룬 적이 있었다. 그 방송을 보고 환경오염과 쓰레기 줄이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OO없이 살기’. 우리는 과연 넘쳐나는 일회용품과 전자기기들 없이 살 수 있을까? 그저 말로만 “안 좋다, 안 좋다”하는 이러한 우리의 현재 습관이 만들어낸 결과들이 얼마나 환경에 안 좋은 지 이번 기회에 한 번 알아보자.
쇄국에서 개항으로1. 서구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과 ‘중화질서’의 동요18세기 산업혁명으로 유럽 자본주의가 성장, 제국주의 진출 - 산업혁명 전부터 중국과 영국은 교류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영국으로 차, 비단, 자기가, 영국에서 중국으로는 금, 은이 오갔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 돈이 부족해졌고 그래서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팔기 시작하였다. 아편에 대해 중국이 망가져가니 중국이 영국 상선을 태웠고 영국이 배를 끌고 오면서 1840년 1차 중영전쟁(아편전쟁)이 일어났고 생각보다 약했던 중국은 영국에게 패배, 이후 여러 서양국가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이 땅을 떼어주기 시작하였다.중체서용 : 중국의 체를 지키면서 서양의 것을 받아들인다. 이를 통해 중국은 점진적 변화를 이룸 Ex) 이영걸 시리즈일본의 경우 1853년 7월 미 해군 페리 제독이 도쿄만에서 개항을 요구, 1854년 3월 미일화친조약이 체결(엄청 빨리 문호를 개방), 1866년 막부패배, 1867년 왕정복고, 메이지 유신 (1867~1877)- 문명개화론, 서구 문명 적극 수용 대외 개방정책, 대내 부국강병, 전부분 서양 문물과 제도 수용(모든 걸 뼛속까지 바꾸겠다), 막부시대 때 일본천황은 힘이 없었다가 메이지 유신때 왕에게 실권을 주어 체제를 정비하려 했다. 일본은 기존의 체제가 무너졌고 그래서 빨리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문명개화, 명치유신 : 서구의 기독교와 자본주의 이 둘이 없으면 망한다는 생각이 문명개화론, 문명을 전파해야 한다. 이것은 진화론부터 비롯된 것으로 우리가 빨리 적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임. 당하기 전에 먼저 뺏어야지! 그 결과 일본에서는 의복이 바뀌면서 영국 왕실의 의복 같아짐. 사진에서의 칼은 군권을 상징2.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고종의 개항1863년 고종이 12세에 즉위하고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권력을 장악, 세도정치가 판을 치던 세대, 공부하던 서원 나중에 권력기관이 되어 세금도 안내고 자기들 배만 불리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