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공에 소프트웨어(SW)는 협업이다.’나의 전공은 인문학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어국문학 전공이다.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근원적인 문제나 사상·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문학과 소프트웨어의 협업은 인간과 기계의 협업이라 총칭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은 상대적으로 그 행보가 늦은 편이다. 이는 기존 인문학자들이 4차 산업혁명을 잘모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소프트웨어는 미래와 현재가 서로 뒤엉켜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진보의 중심축에 서 있다. 물과 기름처럼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이론이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까. 소프트웨어의 ‘융합적’ 성질에서 인문학과의 협업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컴퓨터를 작동시키거나 이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하드웨어가 발달함에 따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업들과 연결될 때 효력을 배로 발휘한다. 스마트폰과 소프트웨어의 융합이 대표적인 예이다. 시체와 같던스마트폰에 OS(운영체제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는 순간 스마트폰은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문학과 소프트웨어의 융합도 스마트폰과 소프트웨어의 융합과 같은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나는 이번 논문에서 인문학과 소프트웨어의 융합 사례를 살펴보고 어떤 방식으로 융합해 나가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해볼 것이다. ‘드라마티카’는 미국에서 개발한 영화·드라마용 시나리오 저작 소프트웨어로 소프트웨어와인문학이 융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드라마티카’의 본격적인 사용에 앞서 사용자는 처음 생각한 줄거리와 구성 및 등장인물들의 성격 등을 프로그램에 입력해야 한다. 그러면 ‘드라마티카’는 작가의 의도에 맞는 경우의 수를 제시하거나, 애초에 설정된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작가에게 일관성을 가지라고 알려주게 된다. 대부분 사람은 원고를 수정한다. 대화를 손보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부분에 문제가 아카데미 후보작의 80% 이상, 에미상 수상작의 90%가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나는 위 프로그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한 개인에 불과하므로 이야기 속 다양한 인물들을 일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시나리오 작가들의 대다수가 일관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며 글을 쓰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발달한 자기합리화의 능력은 객관성이 결핍되도록 유발한다. 인문학적 지식이라는 자양분은 현실적 경험을 만나야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드라마티카는 자기합리화가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므로 언제 어디서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면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작가 개인이 자기합리화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드라마티카의 알고리즘 분석이 시나리오 저작과정에서 현실적 경험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드라마티카를 통해 퇴고를 거친 글은 작품의 완성도가 확연히 좋아질 수밖에 없다.‘드라마티카’뿐만 아니라 ‘빅데이터 활용’에서도 소프트웨어와 인문학의 융합 사례를 찾을수 있다. 빅데이터란 수치 데이터뿐 아니라 문자 데이터와 영상 데이터를 포함하는 대규모 데이터를 말한다. 인문학적 연구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인문학은 오늘날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인문학은 인문학과 정보기술이 합쳐진 융합학문으로 전통적인 인문학의 연구 과정에 정보기술의 설계, 구축, 분석, 해석, 시각화의 과정이 융합되어 탄생한 방법론이다. 실제로 한림과학원은 디지털 인문학과 개념서 연구를 접목하여 최근 ‘디지털개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 개념서 연구는 역사자료 코퍼스 제작을 통해 인문학연구의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연구목적 분석 도구의 개발을 통해 새로운 연구 방법을 창안한다는 목표를 지향한다. 현재 그들은 근대·전근대·현대 등 폭넓은 시기를 관통하는 주요 역사 문헌 코퍼스를 만들고 있다. 머지않아 『소년』, 『청춘』 등 주요 근대 연구와 차별화되는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인문학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여 인문학의 지평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는 사람들의 행동은 물론 위치정보와 SNS를 통해 생각과 의견까지 분석하고예측할 수 있다.이러한 빅데이터의 장점을 이용해 시장을 분석하면 쏟아지는 선례들을 간단한 지표로 나타낼 수 있다. 드라마·영화 등 영상 콘텐츠 업계에서는 이 ‘빅데이터’ 활용이 이례적인 성공 방정식으로 통한다. 예를 들어, 사전제작 드라마를 제작하기에 앞서 드라마 제작사들은 ‘사전제작 드라마 성공사례’를 빅데이터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두 가지 이상의 장르물이 결합하고 주인공들의 직업이 전문직일수록 사전제작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게 나왔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제작사는 빅데이터 결과를 지표로 잡고 드라마의 제작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영상 콘텐츠 업계뿐만 아니라, 출판 업계에서도 빅데이터 활용은 가능하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소비자가 선호하는 표지 디자인이나 소비자가 선호하는 글씨체 등을 분석하여 출판 관련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즉 인문학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이용한다면 소비자가 선호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영화·드라마 성공사례 분석자료’가 ‘드라마티카’처럼 애플리케이션으로 나와 대중화되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대상으로 하는 영상콘텐츠업계는 업계 특성상 시장 조사를 해야 하는 자료의 양이 많고 그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자신이 창작하고 싶은 영상물의 장르를 위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애플리케이션은 지금껏 성공했던 사례들의 특징을 분석해 주면서 가동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로맨스 코미디’를 선택한다면 시청률이 15%가 넘은 것을 기준으로 주인공의 직업 특성, 드라마 계절 배경 등이 지표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시대물’을 의 선호도가 높은 ’클리셰‘를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빅데이터를 활용한 영화·드라마 성공사례 분석’은 작가의 내부에서 낯선 이야기가 기적적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대신 잘 알려진 이야기들의 서사 구조를 분석해 새로운 작품에 적용하는 원리를 도입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위 애플리케이션이 상용화된다면 영상콘텐츠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간편히 시장 조사를 할 수 있고 신인 작가나 감독들은 등단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 아카데미에서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드라마티카’처럼 위 앱 역시 영상콘텐츠 작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드라마티카’나 ‘빅데이터 분석’처럼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머지않아 글을 직접 창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혁명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소프트웨어가 쓴 소설은 놀랍게도 먼 미래가 아닌 현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호시 신이치 공상과학(SF) 문학상의 공모전에 1차 심사를 통과한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은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은 A4 용지 3페이지 분량의 미니 단편으로 약인공지능에 의해 창작되었다. 즉, 어떤 인공 뇌를 탑재한 휴머노이드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글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기계학습을 통해 통계적으로 나쁜 경우의 수를 걸러내고 자연스러운 결과만 남기는 식으로 연산을 거듭해서 만든 소설이라는 것이다.7)실제로 문장을 읽으면 소설이 진행될수록 단어가 부자연스럽고 문장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있다. 컴퓨터가 스스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 활동에 가까운 기술이 필요할 것이나, 인류는 아직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강인공지능이 머지않아 구현되어 소설을 창작할 것이라는 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나 역시 소프트웨어가 완벽한 소설을 창작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시나리오 집필과 같은 창작의 분야에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다.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힘이자 권력이기 때문이다. 먹이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서 있는 인간만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창작품 즉 예술이라 규정지을 수 있다. 만약 소프트웨어가 인간과 같은 권력을 지니게 된다면, 힘이란 누가 규정짓는가에 따라 달라지므로 창작과 예술의 기준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게 된다. 소프트웨어가 인간과 흡사한 수준의 창작을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능할 수 있게 시도해서도 안 될 일이다. 창작의 분야에서 인간은 소프트웨어보다 항상 우위에 있어야 하며 이는 인문학과 소프트웨어의 융합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알렉산더 울프 교수는 “사회 중간 계층이 담당하던 직업이 소프트웨어와 컴퓨터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상위층은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문학이 바로 그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부류에 속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의 혜택을 받고 행보를 펼쳐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를 통해 현재 인문학을 산업화시키려는 몇몇 제안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향성이 한쪽의 지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문학과 소프트웨어의 융합은 ‘협업’의 상태로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나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보다 소프트웨어가 우위에 서게 돼서는 안 된다. ‘협업’은 여러 사람이 분담하여 일을 완성하는 노동 형태를 말한다.8) 인문학 연구에서 기존의 방법론으로는 미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했었다. ‘드라마티카’의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글쓰기라던가 ‘빅데이터 분석’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구조화하는 일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럴 때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소프트웨어는 인문학 분야의 고충들을 ‘분담’하여 따로 해결하는 근로자인 셈이다. 소프트웨어는 제 일을 ‘분담’하고 있으므로 ‘창작’과 같은 인문학의 최우선적 영역에 ‘침범’하지 못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인문학과 소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