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그림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 수단 중 하나다. 원시시대부터 생존을 위한 기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도 우리의 삶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포트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던 중 문득 방 한켠에 그렸던 어린 시절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 그림을 그리고 가족들에게 보여줬을 때 우리 가족 모두가 다른 말로 나를 칭찬해주었다. 가정이라는 강력한 울타리에 둘러싸인 가족들조차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나와 다른 시공간에 둘러싸여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그림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어린 시절 그림에서 출발한 가벼운 질문에서 시작해 ‘그림’을 문화 분석 틀을 통해 살펴보았다.‘그림’은 사전적 의미는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이다. 또한 다르게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를 때도 ‘그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림은 사진처럼 대상을 그대로 옮겨놓는 모사의 개념을 넘어서 그리는 사람의 표현이 강하게 개입된다. 그렇기에 그림은 어떤 대상을 더 많이 존재하게 해준다. 이번 분석에서 그림은 그 자체로서의 그림과 그리는 행위로서의 그림을 모두 포함한다. 또한 캔버스에 그려진, 단지 ‘회화’의 의미가 아닌 확장 시킨 차원에서 그림을 폭넓게 분석해보았다.2. 본론가. 개별체 · 고립요소 · 양식으로 분석한 그림문화는 언어의 방식과 같이 개별체, 고립요소, 양식으로 구분해 분석할 수 있다. 개별체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지각하는 것, 고립요소는 개별체를 구성하는 추상적인 요소, 양식은 개별체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개별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설명된다.조르주 피에르 쇠[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6)위 그림은 점묘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조르주 피에르 쇠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이다. 점묘화는 선 대신 점의 집합과 짧은 터치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완성한 그림이다. 점묘화는 선과 면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점만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그림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밀도 높은다. 한편 모든 개별체는 두 개 이상의 고립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고립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지 분석하는 것은 어떤 문화에 속해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나의 경우 양산을 쓰고 있는 부인, 그늘에 누워있는 사내, 호수 위에 떠 있는 요트 정도의 고립 요소를 찾아냈다. 하지만 회화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림을 빼곡히 매운 점, 점과 점 사이의 공간, 빛의 정도 등의 질서와 체계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문화는 어떤 양식 위에 떠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며 그 실재성도 달라진다. 그림도 마찬가지로 양식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같은 대상을 그린다해도 화가가 어떤 문화에서 살아왔으며 어떤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는가에 따라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속한 양식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타난다.나. PMS(Primary Message System)로 분석한 그림1) 상호작용(interaction)그림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상호작용으로서 그림의 시작은 벽에 그림을 그리던 후기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시대의 벽화는 주술적, 생계적 의미를 지닌다. 벽에 새겨진 암각화는 큰 동물로부터 습격받았던 일을 벽에 새겨 위험을 알리는 등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기능한다. 오늘날 낯선 언어의 나라에서 급하게 화장실을 찾을 때 몸짓 발짓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림을 그려서 나의 급한 심정을 전달할지도 모른다. 화가는 자기가 경험한 세상의 시간과 공간을 그림에 녹여내고, 그림을 관람하는 우리는 화가의 경험과 의도를 전달받는다. 즉 그림은 그림을 그린 사람(화가)와 그림을 보는 사람(관람자)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이다.2) 연합(association)복잡한 생물체도 실은 세포의 집합체들이며 대부분은 고도로 특수화된 기능을 지닌다. 그림은 때로는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해 구성원들 사이에 공통된 관심사를 공유하게 하며 그들을 하나로 연합한다. 국기도 그림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면 한나라의 국기는 국민을 강하게 녹색 단색 국기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리비아의 국기를 처음 접한다면 어떨까? 리비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초록색 아니야?’라고 말하며 국기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국기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기호나 색의 조합이 아닌 단지 ‘녹색’이기 때문에 낯선 것 비이성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리비아의 녹색 단색 국기는 카다피 정권에 의한 것으로 이슬람교의 상징적 색이자 유목민으로서 사막이라는 자연적 환경에서 물과 휴식을 제공하는 풍성한 자연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리비아 사람 혹은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3) 생계(subsistence)모든 문화의 출발은 먹고 사는 것에서 비롯한 생계의 문제이다. 문화는 주어진 자연 상태에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이를 구할지를 찾는 과정에서 시작한다.아기를 업고 있는 고래 작살에 찔린 고래원시시대 문자와 종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우리의 먼 조상들은 먹고사는 것, 즉 생존을 위한 기록을 본능적으로 해왔다. 위 사진은 반구대 암각화 박물관에서 내가 직접 촬영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를 복원한 모형이다. 암각화를 자세히 보면 고래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반구대 암각화에는 포경의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암각화가 새겨진 곳은 상대적으로 해발고도가 높아 원래 고래가 헤엄칠 들어올 수 없지만, 최종 빙기 이후 울산 지역에 내만 환경이 조성되었을 땐 포경이 가능했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포경을 했으며 그것을 기록하여 후대에게 포경을 했다는 사실과 고래의 위험성을 전달했다.한편 오늘날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생계인 사람을 흔히 찾을 수 있다. 화가, 만화가, 원화가, 일러스트레이터는 생계의 한 방식으로서 그림을 택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에겐 놀이와 휴식이 될 수 있는 그림이 그들에게는 노동인 셈이다.4) 양성성(bisexuality)모든 문화는 남의 것’으로 자리해왔다.요한 조파니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 (1771)20세기 이전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 화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었다. 이는 요한 조파니의 그림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들 중에서 여성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두 명의 여성 회원이 벽에 걸린 초상화로 등장할 뿐이다.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고 오브제로 환원된 모습에서 당시의 여성 화가들의 상황이 어땠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세 유럽 사회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미술이라는 분야에서 탈락되기 십상이었다. 즉 여성은 그림을 그릴 수도, 작품에 대해 논의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이는 당시 남녀를 차별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남성에게 편중된 교육의 기회, 그에 따른 불평등에 기인한다. 더불어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도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과 여성 미술과를 여성으로도, 미술가로도 인정하지 않던 사회적 풍조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5) 영토권(Territoriality)영토권은 생물체가 행하는 영토의 소유, 사용, 방어를 설명하는 동물행동학의 전문용어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으로부터 공간을 탈취하고 타인의 공격을 보호하려는 습성을 지닌다. 영토를 소유한다는 것은 삶의 근본적인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를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 규모에서 크게는 국가적 규모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스스로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것이 바로 ‘지도’이다. 우리는 자신, 자신이 속한 문화에 유리하게 그림을 그리듯 지도 제작자는 자신이 속한 국가, 대륙에 유리한 지도를 그린다. 아시아국가의 사람들은 태평양이 가운데 위치한 지도에 익숙하지만, 신대륙의 사람들은 대서양이 가운데 위치한 지도에 더 익숙할 것이다.6) 시간성(temporarlity)우리는 시간이 부재한 삶을 살 수 없다. 시간의 리듬과 주기는 우리 삶 곳곳에 침투하여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림은 특정한 시간, 더 넓게는 시대를 반영한다. 그것은 그림이 그려진 시간이 될 수도, 그냈다. 그림이라는 개별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요소를 파악함으로써 모네가 건초더미를 관찰한 시간을 파악할 수도 있다. 각각의 구성요소는 시간에 대한 힌트를 주며 그것 사이의 관계를 파악한다면 좀 더 풍부하게 문화를 이해를 할 수 있다.모네 [건초더미, 해질녘] (1891)7) 학습(learning)과 습득(acquisition)학습은 객관화돼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것을, 습득은 살아가다 보면 저절로 체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학습은 오로지 인간만이 ‘언어(미디어)’를 통해 할 수 있으며 시간과 공간으로 연장된다.인간만이 자신이 학습하고 습득한 문화를 그려낼 수 있다. 문화의 개념은 사람들에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양식에 속박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우리나라에 대해 그려보라(서술해보라)할 때 그것이 틀릴지라도 비교적 막힘없이 그림을 그려나간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린 아이에게 한국의 명절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잠시 머뭇거릴진 몰라도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훌륭하게 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다. 이때 이 아이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아이의 세계의 전부이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 일본의 마쯔리(祭り)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마쯔리에 대해 들어보지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그릴 때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 마쯔리는 일본의 전통 축제라고 설명해준다면, 일본에서 살아온 아이처럼 명확하게 마쯔리의 풍경을 재현해내진 못할지라도 아이의 경험에 바탕을 둔 ‘축제’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학습과 습득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학습된 ‘축제’라는 개념을 그려낼 수는 있지만 습득된 그것보다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8) 놀이(Play)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인간은 이유 없이 유의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에서 하나의 ‘놀이’로서 자리 잡아 왔다. 흔히 그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