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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드라마의 이해 과제 [빈센조 분석] 평가A+최고예요
    드라마 빈센조는 조직의 배신으로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가 베테랑 독종 변호사와 함께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이야기이다.빈센조(송중기)역은 이탈리아 마피아 [까사노 패밀리]의 콘실리에리. 냉혈한 전략가이며 완벽한 포커페이스의 소유자이다. 보스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며 패밀리가 곧 법이다라는 원칙으로 살아간다. 허를 찌르는 방법으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최고 변호사로 그 누구도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당한 것은 몇 배로 되갚아주는 '복수주의자'로 한 번 복수를 결심하면 절대 번복하지 않고 초토화 시키는 것이 특징이다.홍차영(전여빈)역은 '악마의 혀'와 '마녀의 집요함'을 가졌다고 불리는 탑급의 변호사이다. 독설과 승부욕으로 중무장하고 있고 지적인 미모에 냉정함과 강인함이 함께 느껴진다. 교양 있고 차분한 보이스에는 강한 흡입력이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우상]의 에이스 변호사인 그녀에게 절대적 기준은, 선악이 아닌 유불리이다. 이를 위해 변호사인 아버지까지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디리 밟을'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이다.장준우(옥택연)역은 한서의 이복형이자 [바벨그룹]의 진짜 회장. [정 - 재계 - 언론 - 검찰] 거대한 카르텔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거대[악] 루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인물로 괴팍하고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어려서부터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려는 야망을 품었었지만, 이제는 잔혹성까지 더해져서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빌런]으로 그려지는 캐릭터이다.최명희(김여진)역은 완벽, 냉철, 두뇌, 예측, 능구렁이, 위기관리 능력, 사람을 다루는데는 도가 튼 캐릭터이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법무법인 [우상]의 최고 시니어 변호사이다. 남동부지검 특수부 에이스 검사였지만 [우상] 한승혁 대표의 삼고초려로 스카우트됐다. 소박한 말투, 수더분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에 줌바댄스를 즐기는 천생 중년 아줌마로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지독한 독사인 캐릭터이다. 장한서(곽동연)은 [바벨그룹]의 회장. 어린 나이에 총수가 되어 똘끼로 가득하다. 선천적으로 매운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마음에 안 드는 중역들을 모아놓고, 스코빌지수 최대의 음식들로 엿 먹이는 게 취미다. 죄의식 같은 건 전혀 없는 타고난 악당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폭력도 서슴지 않는 주제에 속에 겁은 많은 캐릭터이다. 부와 권력을 바탕으로 거짓말은 물론 온갖 갑질과 횡포를 일삼으면서도 구치소나 포토라인에 서는 것은 병적으로 두려워한다.그리고 홍유찬(유재명)은 서울 변두리, 다 쓰러져가는 [금가프라자]에 자리 잡은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대표이자 변호사로 이타적이고 물욕 없는, 세상 사람 좋은 서민 변호사로 고집불통에 대쪽 같고 불의와 타협 따위는 없는 어떻게 보면 이드라마에서 가장 이상적인 선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인권 변호사 시절, 모 사건으로 아내를 잃었고 이로 인해 딸 차영은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다. 딸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악당 변호사'가 된 차영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고 매번 언쟁을 벌인다.첫 번째로 TV 드라마의 주제 측면에서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빈센조의 줄거리 소개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닌 악과 악의 싸움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등장인물들은 선악대비가 뚜렷하며 인물의 성격과 스타일이 정형화됐고, 이에 따라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보통의 주인공은 용맹한 기사로 상정된다. 물론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면서 등장하지만 그가 지닌 영웅적, 구원자적 풍모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주인공에 대항하는 반동자를 통해 선인과 악인전형적인 드라마의 특징들과 인물들이 존재하지만 하나씩 비틀려있고 이 드라마는 선함을 위한 악과 그 자체로 악한 악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선인이 승리하면서 권선징악적 주제가 부각된다. 보통은 로맨스 안에 있어서 이러한 이야기들이 전개되며 가장 중요한 점은 언제나 남녀 간의 애정 문제가 주요하게 개입된다는 점이라고 한다.3화에서 홍유찬은 빈센조와의 대화 중 “악마가 악마를 몰아낸다.”는 이탈리아 속담을 유일하게 외운다고 말하며 은근히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 한다. 이 말의 숨겨진 뜻은 빈센조가 바벨을 몰아내길 바란다는 말이다. 결국 홍유찬의 바램은 괴물이 괴물을 상대하고 자신은 상대하지 못하니 법이든, 무엇이든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 빈센조가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방해되고 눈에 거슬리는 모든 것을 제거하려는 바벨그룹에 의해서 유찬은 죽는다. 선하고 정의로웠던 유찬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차영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고 빈센조와 함께 거대 악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빈센조는 보통의 선한역들이 악한자들을 이기는 방법과는 다르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협박과 죽임을 망설이지 않는다.4화에서는 빈센조와 홍차영은 바벨그룹의 원료창고를 불태운다. 빈센조는 “아니 어떻게 그런 약을 만들 수가 있어? 내가 감방 가도 좋으니까 정말 싹 다 불태워버리고 싶네! 하나도 남김없이 그냥 싹 다!”라고 말 했던 홍유찬의 말을 기억하고 그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정말 창고를 다 태운다. 이러한 점에서도 빈센조의 원칙이 드러난다. 자신을 건드린 자는 그 대가를 똑같이 치르게 된다는 냉혹한 마피아의 원칙 말이다. 창고가 불태워지고 있을 때 바벨그룹의 실소유주 장준우, 바벨 그룹 진짜 회장이며 숨겨진 거대 악이 등장한다.5화에서는 바벨화학에서의 피해자가 등장하고 빈센조는 법정으로 들어가는 길에 기자들에게 이탈리아어로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라고 한다. 악을 상대할 때에 선하고 정의만 가져서는 무법자인 그들을 이길 수 없고 악은 더 큰 악으로 잡는다는 것을 한번 더 보여주는 것이다.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보통의 드라마들과는 달리 다양한 방법으로 우스꽝스럽게 재판을 연기한다.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바벨과 우상은 상식적인 인간의 선을 넘는다. 우상은 남동부지검을 회유해 바벨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장준우는 바벨의 꼭대기에 올라서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현재의 자리에 올랐던 장면이 나온다. 점점 더 악마가 되어가는 듯한 바벨과 우상을 잡기위해 빈센조와 홍차영은 악마를 잡기위해 스스로 그 보다 더한 악마를 자처한다. 또한 빈센조는 궁지에 막혀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는다. 이를 위해 잠깐 적과 거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바로 최명희와 1:1로 거래하는 것이다. 홍차영을 풀려나게 하기 위해서 빈센조는 최명희와 직접 거래를 하게 된다.
    예체능| 2021.10.05| 3페이지| 1,500원| 조회(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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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사와 미학 중간 과제 / 사진 기원, 시대적 상황
    사진사와 미학중간고사 대체 레포트사진(술)의 기원과 사진 발명 전,후의 시대적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사진 발명이 그 당시의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서술하시오.1. 사진(술)의 기원사진이라는 것은 카메라 옵스큐라와 감광성의 특징의 조합에 근거한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렌즈에 의한 피사체의 상을 만드는 것이며, 감광성은 빛의 작용에 의하여 영구적으로 변할 수 있는 민감한 재료를 의미한다.우선, 사진은 옵스큐라(어두운 방)을 이용하여 실질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옵스큐라는 안쪽을 어둡게 만든 상자나 방 한편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바깥에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상을 맺히게 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옵스큐라 단독으로는 아무 발전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빛을 이용하여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이 때 사용한 빛의 특징으로는 직진성, 반사성, 굴정성, 회절성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빛의 특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렌즈 및 거울 세공의 지식과 더불어 카메라 옵스큐라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카메라 옵스큐라는 미술에서의 선 원근법 및 소실점의 원리와 매우 비슷하며, 일각에서는 “인공적인 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보다 조금 더 발달된 형태는 현대적인 반사경식 카메라가 기존의 상자 맞은편에 상이 맺혀지는 것이 아니라 상자 윗부분에 유리가 씌워지고 그 바로 밑에 45도 각도로 거울을 위치시켜 상을 맺히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BC 4세기경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두운 방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한줄기 빛이 도달하면, 반대편 벽에 축소된 바깥의 실제의 상이 거꾸로 뒤집어진 채 보여진다’고 말했다. 또한 ‘어두운 방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반대편 벽에 비춰 밖의 사물을 보여준다’라고 노트에 남긴 기록이 남아있다.14세기 초 다빈치가 바늘구멍을 이용한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했다. 네모난 상자의 한쪽 면에 바늘구멍을 뚫어 놓고, 그 반대 면에는 종이를 붙여, 바늘구멍이 향하고 있는 쪽 영상이 상자 속으로 들어와 종이에 비치도록 만들어 밑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사용했다. 사진이란 매체가 발명되기 전부터, 사진의 원리는 화가들에 의해 밑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사용되었다.1807년 과학자 윌리엄 하이트 울러스턴이 카메라 옵스큐라 보다 더욱 세련된 예술적 솜씨를 보이게 될 기술적 장치를 고안해서‘카메라 루시다’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했다.2. 사진 발명의 사회적 배경그림으로 자기 모습을 남기는 것은 부유한 층의 특권이었으며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중산층의 부가 증가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이 형성이 되었다. 부르주아 계급들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인간들의 열망에 의해서 사진이란 것이 등장했다고 생각한다.산업혁명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하여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이다.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유럽 제국, 미국·러시아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되었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앞세워 유럽 경제를 주도하던 때, 시민혁명을 통해 왕정은 타파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의 분배가 특정 계급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시기가 있었고 이때 사진이 나타나게 되었다.카메라 옵스큐라의 영상이 실용적인 기술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18세기 후반 급성장한 중산계층의 그림에 대한 예기치 못했던 수요가 비등해짐에 따라 자극을 받게 되었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해방과 함께 물질적 부의 신장을 이루어낸 중산계급의 사회 지위 상승은 중산계급 내에 초상화 소유에 대한 욕구로 이어지게 되었다.3. 사진 발명 후 시대적 상황사진이 발명된 후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분야는 인물 사진이었다고 한다. 사진은 이전까지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초상화를 대중들에게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왕실과 영주들에게 억압과 착취만 당하였었던 소시민들에게 카메라를 통하여 자신의 형상을 남길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전과 비교하였을 때 상대적 박탈감 또한 줄여주게 되었다. 앞서 말한 것과 더불어 특권층의 문화적 향유물이었던 그림을 대신하여 사진을 제공하게 되었고 프랑스 국민들에게 문화적, 예술적으로 평등을 실질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초상화에 대한 대중들의 강렬한 욕망은 사진을 하나의 산업으로 변하게 하였다. 그 산업 발전의 일환으로 프랑스 전역에 사진 스튜디오가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카메라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스튜디오 앞에 길게 줄을 선 대중들은 그 긴 시간 동안 기다림에도 불평하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했다고 한다. 또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이처럼 사진은 발명되자마자 곧바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큰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곧 기존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는 물론 예술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를 초래한 원인이기도 했다. 기존에 세상을 나타내는 방식은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그림들은 화가 개인의 감정과 사전 지식들을 통하여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주의적인 카메라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그림과 사진의 차이를 통하여 세상을 보는 방식과 예술의 생산 방식에 변화를 만들어내게 되었다.가장 두드러진 사회적, 문화적 가치체계의 붕괴는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방식”과 “예술의 생산 방식”이었다고 한다. 당시 “다게 레오 타입”이라는 사진 기술을 사용했다. 이러한 다게 레오 타입은 감광판이 금속판이라 질감 묘사가 좋고 선명성이 뛰어나다는 것과 상을 고정시킬 수 있어 보존성이 좋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다게 레오 타입이라고 불렸던 초기 사진 제작 방식은 동시대 사람들의 사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 지금까지 육안에 의존하여 사물을 보던 방식에서 카메라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일깨우게 되었고, 기억을 가진 거울로서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고정불변의 이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예술도 하나의 생산품이 될 수 있음을 알리게 되었다.
    예체능| 2021.01.14| 5페이지| 1,500원| 조회(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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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리포트] 한국 사진사 / 사진사와 미학 2차 과제 평가A+최고예요
    사진사와 미학2차 레포트 과제목차1. 한국사진의 기원2. 사진의 수용3. 정착과 발달4. 일제강점기5. 광복 이후6. 6·25 전쟁 사진7. 60, 70, 80년대의 사진8. 오늘날의 사진9. 참고문헌1. 한국사진의 기원한국에 사진이 처음 들어온 것이 문헌상으로 밝혀진 것은 1884년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워 마동에 사진관을 차린 때부터라고 한다. 지운영은 개항기 한국인 최초로 고종의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 또는 서화가·문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통리외무아문의 주사로서 일본을 드나들면서 남보다 먼저 새로운 문물에 접했던 것이다. 그는 천부적인 예술적인 소질뿐만 아니라 건장한 체구와 기민성, 그리고 큰 담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구파와 개화파의 싸움에 잘못 휘말려 비운의 일생을 마침으로써 사진의 맥은 중도에서 끊기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이후 사진의 본격적인 도입과 기술적인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이다. 이때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한국진출에 힘입어 일본인들의 사진관이 여러 곳에 생기고, 당시 고종의 시종이며 영친왕의 서예 스승이었던 서화가 김규진이 석정동에 본격적인 사진관을 차리게 된다. 그 당시 사회적인 위치와 서화가로서 예술계에서 차지했던 큰 비중으로 그가 차린 천연당 사진관은 사진도입기에 있어서 중요한 시초가 된다고 할 수 있다.어느 나라에서든 사진의 도입과 정착과정에서는 사진관의 영업사진사들이 초창기의 초석을 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도 사진술을 받아들여 뿌리를 내린 1930년대까지의 초창기는 영업사진가들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2. 사진의 수용한국사진의 수용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외국과의 통상과정에서 사진이 전래되거나 서양 제국주의의 강제 통상조약에 의해 사진이 들어오지 않고 예견치 않은 사건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사진수용은 중국의 사진수용에 비해 20년이나 늦은 1860년대에 가능하게 된다. 그 원인들 중 가장 큰 이유로는 중국 아편전쟁 이후 더욱 강경했던 천주교 박해와 외국 문물에 대한 쇄국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일들 때문에 중국에서 아편전쟁이 일어난 1842년 이후 30년간 조선이 지향한 쇄국정책, 특히 서양 문물에 대한 배타적 정책 가장 컸다고 말한다. 서양 문물을 대표하는 것들 중 하나인 사진은 그 당시 개인이 소지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처벌 대상이었다.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현존하는 초기 사진들은 대부분 1860년대 외국인에 의해 촬영된 것들로 역사적 사건과 종교적 기록에 관계되어 있다.일반적으로 한국 최초의 사진은 1997년에 발견된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선 갑판에서 촬영된 세 장의 조선인 사진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08년 새로운 사진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1863년 조선 연행사 일행이 북경에 갔을 때 당시 러시아 공사관 사진관에서 촬영된 여섯 장의 사진이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1863년 연행사 일행의 사진들이 오늘날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사진이 되는 것이다.3. 정착과 발달영업사진이 한국 사진의 초창기의 길을 맨 먼저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생겨났으며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각축전이 일본의 승리로 돌아가자 일본문화가 물밀 듯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인 영업사진사들이 각지에 사진관을 차리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들로부터 사진을 배운 한국인들이 독립해서 사진관을 내게 됨으로써 전국적으로 사진관의 수가 차츰 늘어갔다고 할 수 있다.4. 일제강점기1920년대에는 일제의 식민정책하에서 일본인들이 상권을 독차지한 영업사진계에서도 한국 나름의 발판이 형성되게 되었다. 1926년에는 한국인들만으로 뭉쳐진 경성사진사협회가 결성되게 되어 회원들 사이의 친목과 아울러 사진예술의 창작의욕을 북돋는 한편, 질적인 향상을 꾀하게 되었다.초창기 사진의 기반이 이 정도로 다져지는 데 한 부분을 담당한 것은 1910년 설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학교 사진과의 사진교육이었다. 미국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온 최창근이 강의를 맡았고, 1927년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한 신낙균이 후에 뒤를 이은 이 교육기관은 1935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25년 동안 800명 정도의 사진사를 배출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지금까지 일반인들에게 과학적인 신기함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정도의 사진이 그런 대로 영업사진관의 운영을 가능하게 하였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창간으로 뉴스 사진의 싹이 터서 사회적인 진출을 보게 되었다.이러한 단계에 이르러 개인사진전을 가진 사진가가 나왔는데, 1929년 정해창이 서울 광화문 빌딩에서, 서순삼이 평양 《조선일보》 지국에서 각각 개인전을 가졌다. 정해창은 서예가인 동시에 수필가로서 어느 정도 그 이름이 예술계에 알려진 아마추어 사진가였고, 서순삼은 평양에서 삼정사진관을 차렸던 영업사진가인 동시에 지방주재의 보도사진가로 일했다.5. 광복이후1945년 8·15광복 이후에는, 그전까지 지방과 지역 단위로 모였던 사진단체가 전국적인 조직체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이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이며, 6·25전쟁 후에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조직되었다. 이로써 1950년대가 끝날 때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사단은 2개의 사진단체가 주도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으로부터의 해방과 독립의 시기로 한국사진계가 급속도로 성장한 시기였다. 해외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사진기와 사진재료의 범람으로 아마추어 사진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는 반면, 지금까지 사진의 주류를 이루어오던 영업사진계가 퇴조를 보이기 시작했다.이 시기에 나타난 뚜렷한 현상은 전국적인 사진계의 테두리가 잡힘과 동시에 세계 속 한국사단으로의 확대였다. 그리하여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해외로 사진을 출품하는 열풍이 크게 일어났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사진이 다른 모든 예술과 함께 예술로서 한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6. 6·25 전쟁 사진한국종군기자들의 사진 그리고 증언을 보면 한국전쟁 중 한반도는 국내기자(약 25명)보다는 외국 기자(총 238명)들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자유진영의 미국의 사진가들은 비교적 촬영과 역할에 관한 뚜렷한 인식을 바탕으로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섭외과정부터 촬영단계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것은 아니었다.한국전쟁의 기록은 국방부관이 정훈국 사진대에 의해 영업사진가 출신 현역군인 임인식 중위가 실무책임자가 되고 수명의 하사관이 보좌했다고 한다. 기자들은 국방부 정훈국에 허가를 신청하여 종군기자증을 발급받아 희망부대를 따라 개별적으로 취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특히 임응식, 이경모의 사진은 기록과 기념으로서의 사진과 변별되는 새로운 사진사의 맥락을 제시해주게 되었다. 종군작가란 제한 속에서 ‘기록, 보도사진’과 과거 전통사진예술가로서의 ‘살롱사진’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규정할 수 없는 작가들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다양한 형식실험들을 통해 사진표현의 폭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갔다.한국전쟁기 한국작가들의 사진은 전장에서 간략히 기술했던 ‘생활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틀을 기반으로 잔혹한 전후 피해 사례, 무고한 피난민, 걸인과 같은 약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 사진들에는 중국, 미국과는 가장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양적인 측면에서 한국인 자체를 중심 피사체로 설정하고 있는데 한국전쟁의 중심 화두자체를 한국인 중심 시각에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진들에는 한국전쟁에 대한 민족의 피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북한의 불법기습남침을 시각화하거나 무고한 양민에 대한 인민재판과 죽어있는 양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혹은 피난민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7. 60, 70, 80년대의 사진1960년대부터는 정식으로 사진계가 사진인들만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사회 속에 자리 잡은 시기가 되었다. 그 두드러진 예로는 지금까지 사진인들만 모여 있었던 전국적인 단체가 5 ·16군사혁명과 함께 전국 예술단체 총연합회 산하의 한국사진협회에 하나로 통합되었다. 또한 1960년대에는 사진이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미술의 한 부문으로서 출품되었으며 동아일보사가 ‘동아 사진콘테스트’와 ‘동아국제사진살롱’을 매년 개최하였다.사진이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새로운 동기로서는 대학에 정식으로 사진과가 독립해서 설립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으며, 그 동안 산발적으로 발간되던 사진전문지가 정상적으로 발행될 수 있는 기반을 잡게 되었다.
    예체능| 2021.01.11| 8페이지| 1,500원| 조회(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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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리포트]프로이트 이론, 방어기제로 햄릿 분석 평가D별로예요
    프로이트 이론과 방어기제를 활용하여 분석하기글제목: 정신분석적으로 햄릿 분석하기햄릿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은 오래전부터 많은 정신 분석가와 비평가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그중 가장 처음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적용하여 논의한 사람은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 학설의 기본 개념은 성적 욕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유아성욕과 관련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인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왔는데 여기서 프로이트가 빌려온 개념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성별과 관계없이 본능적 욕구, 목표, 대상관계, 공포, 동일시 등으로 구성된 심리적 집합체를 말하는 심리적 용어이다. 이와 같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다. 남근기(유아기의 후반인 3-6세) 동안 아동은 반대 성을 지닌 부모와 성적으로 결합하려고 애쓰며, 동성의 부모가 죽거나 사라기를 바란다.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남자 아동이라면 성의 의미, 즉 남성으로서의 의미를 깨닫는다. 남자아이들은 아버지에 의해 거세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에 자신의 성적 욕구를 억압한다.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언젠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소유한 것처럼 자신도 한 여인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동은 무의식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햄릿을 보면 주인공인 햄릿의 오이디푸스적 욕망이 잘 나타나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다는 유아기 시절의 억압된 소망을 무의식중에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햄릿의 이와 같은 모습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재혼한 숙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햄릿은 숙부에 대한 복수를 주저하고 지연시키고 있다. 햄릿은 숙부와 자기를 동일시하려는 심리를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햄릿에게 숙부는 곧 자기 자신의 욕망이다. 숙부는 자신이 하지 못한 욕망을 실현시켰고, 숙부에 의해 깨어난 억압된 욕망이 햄릿에게 강렬한 질투심과 분노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숙부에게 복수하는 것은 자기를 비난하는 것과 같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즉 숙부에 대한 처벌은 자신에 대한 처벌과 같다.햄릿이 오필리아를 애인으로 선택한 이유도 추측해 볼 수 있다. 햄릿은 어머니의 재혼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오필리아를 택한 이유 자체가 숙부에게 가버린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오필리아의 조심스럽고 순결한 모습은 어머니의 성격과 완전히 대조적이다. 또한 궁중 연극을 상연하는 장면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오필리아에게 이미 한차례 폭언을 퍼부은 뒤, 연인 관계가 깨져버린 상태에서도 햄릿은 옆에 앉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거절하고 오필리아에게 친근한 척하며 음란한 농담을 건넨다. 햄릿에게는 어머니의 흠을 치환시키는 존재가 오필리아라고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21.01.11| 2페이지| 2,000원| 조회(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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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리포트]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을 이용하여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분석
    우리 조가 분석했던 영화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이다. 광해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붕당정치로 혼란이 극에 달한 광해군 8년. 점점 난폭해져가던 왕 ‘광해’가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을 것을 지시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에 허균은 만담꾼 ‘하선’을 데려와 왕을 대신하게 하면서 사건들이 일어난다.먼저 주요 인물들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주요 인물 4인이 있다. 광해(왕)는 냉정하고 엄격한 성격으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져 간다. 이러한 일들로 불안해하고, 남을 믿지 못한다. 하선(대역)은 인간미가 있고 따뜻하고 솔직한 성격이다. 기방에서 만담으로 인기를 끌었고 유머러스하다. 왕과 똑같은 외모, 가지고 있는 재주와 말솜씨로 왕의 흉내를 낸다. 중전은 지금의 왕이 가짜라는 소문을 듣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또한 동침을 핑계로 화살 자국을 확인하지만, 없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는 한편 위험한 상황에서 대역인 하선을 감싸준다. 허균은 유능한 신하로 상황 판단, 일처리가 빠르며 냉정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초반에는 하선을 믿지 않았으나 왕의 일을 진지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고 점점 그를 믿게 된다. 그 외 주변 인물들로는 왕의 호위무사 도부장, 내시부의 관원인 조내관, 기미나인 수라간 상궁 사월이가 있다.영화 초반부 폭군의 모습을 보이는 광해가 나온다. 은수저의 색이 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광해는 늘 시해 위협에 놓여 있으며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 때문에 분노와 두려움으로 난폭한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모습은 전치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하들과 궁녀들에게 다그치고 분노하는 난폭한 모습은 보다 덜 위협적인 다른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이다.광해는 자신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숨으려고 하고 자신만의 공간으로 대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광해가 허균에게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자를 찾아오라고 명한다. 이는 프로이트 방어기제 이론 중 회피에 해당하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나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자신은 위험한 상황을 피하고 다른 사람을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만든다.하선은 기생집 술자리에서 왕을 농락하며 재주 부렸다는 죄로 벌을 받는다. 또한 부패한 관리의 요청에 의해 풀려나는 대가로 아기 기생을 상납한다. 하선은 이와 같은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하선은 3일에 한 번씩만 대역을 하기로 하였으나 광해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계속하게 된다. 허균은 독에 중독된 왕을 궁 밖으로 옮겨 치료하게 하고 하선에게 은자를 주며 왕의 대역을 계속하게 한다.하선은 자신의 경박스럽고 가벼운 말투에서 낮고 위엄 있는 진짜 왕 광해처럼 말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선이 광해처럼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일화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광해의 태도와 행동을 따라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닮는 것이다.하선은 왕의 역할을 하면서 한 기미나인이 올린 팥죽을 먹는다. 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기미나인의 이름과 나이를 묻는다. 야식을 갖고 오는 ‘사월’에게 관심을 가지며 간식을 나눠주고 담소를 나누며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선은 왕 광해와 다르게 정이 많고 따뜻한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도부장은 점점 하선이 광해가 아님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도부장은 하선의 걸음걸이를 보고 광해가 아님을 확신하여 목에 칼을 겨눈다. 하선은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하였고, 자결하려는 도부장에게 임금을 위해서만 칼을 뽑으라 명한다. 도부장의 모습을 통해 자기에게로의 전향을 알 수 있다.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인한 공격성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이다.사월은 하선 대신 팥죽에 든 독약을 먹고 죽는다. 자기 대신 독을 먹고 죽은 사월에 하선은 대신들에게 가짜 왕인 것을 들키려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사월이를 죽음으로 몰게 한 자를 벌하기 전에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다고 한다. 이는 임금 대신 죽은 사월이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으로 상황에 해당한다.허균은 하선이 백성을 위하는 모습과 강직함에 마음을 열었고 진짜 왕이 될 것을 권유한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루어 드리리다.”라고 말하는 허균에 하선은 “내 꿈은 내가 꾸겠소이다.”라며 답한다. 이 장면은 칼 융의 해석으로 볼 때 자아에 의지와 목적을 부여하여 자기실현을 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며 허균이 말하는 남을 죽여야만 될 수 있는 진짜 왕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문/어학| 2021.01.11| 3페이지| 2,000원| 조회(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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