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식 한글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타오르는 울분의 불꽃, 홍염》-최서해의 『홍염』-OOOO과 OOO0. 가난과 비극『홍염』의 주요 등장인물은 두 명, 조선인 소작인인 ‘문서방’과 중국인 지주인 ‘인가’이다. 소작인인 문서방은 서간도 ‘빠이허’에서 갚지 못한 빚 때문에 지주 인가에게 소중한 딸, 용례를 빼앗긴다. 가난과 궁핍으로 인해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용례를 잃은 가족은 최소한의 행복마저 잃게 되고, 문서방의 아내는 곧 사경을 헤매게 된다. 문서방은 그런 아내를 위해 빼앗긴 용례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애를 쓰지만, 비인간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상인 인가는 그것을 허락지 않는다.작중 모든 갈등은 그것에서 비롯한다. 소작인 문서방의 가난과 지주 인가의 잔혹함. 실제로 간도에서 지낸 적이 있다는 작가는 이러한 비참한 실상을 리얼하게 꾸며낸다. 두려운 눈보라, 거리의 중국인들이 뱉는 모욕적인 말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뾰족한 비참함을. 『홍염』은 그만큼 당대 서간도의 서늘하고 막막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Ⅰ. 악인 인가와 신경학파적 특성인가는 문서방의 가족을 파탄 낸 주범으로 작품 내내 활약한다. 그는 문서방의 17살 된 딸 용례를 빚을 핑계로 취하고, 딸과 죽어가는 아내를 만나게 해달라는 눈물의 호소마저 철저히 무시한다. 작가는 인가의 행동을 ‘중국인들은 의심이 많아서 그런다고 들었다(교재 p.399)’라며 그들 민족의 특성으로 꾸미지만, 실상 인가의 잔혹성은 그것만으로 변호되기엔 지나친 감이 있다.이렇듯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은 인가에게 문서방이 어떤 억하심정이나 한(恨)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응어리진 감정은 방화와 살인을 통한 갈등 해결로 귀결된다. 이는 지나치게 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해결이지만 그간 보인 문서방의 비참한 실상은 그것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즉, 독자가 살인과 방화가 소설이기에 가능한,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라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로써 느끼도록 한다.이 모든 설정은 작품이 가진 신경학파적 특성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첫째로 궁핍을 소재로 삼고, 둘째로는 지주와 소작인의 대결구도 등을 그리며, 셋째로 결말이 살인과 방화로 끝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경우 지주이자 피학자의 역할을 맡은 인가의 지독한 성격은 위의 세 가지 특성을 선명히 드러내기 위한 설정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Ⅱ. 그럼에도 타오르는 불길모든 것을 인가로 인해 잃게 된 문서방은 인가의 집에 방화를 저지른다. 또한 그는 불을 피해 도망치는 인가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문서방은 그로 인해 용례를 구하고, 여태 자신의 가정에 고통을 준 인가를 벌주고, 쌓아온 울분을 해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서방은 방화와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죄책감보다는 오히려 기쁜 마음을 가진다.문서방은 딸을 품에 안으니 이때까지 악만 찼던 가슴이 스르르 풀리면서 독살이 올랐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슬픈 중에도 그의 마음은 기쁘고 시원하였다. 하늘과 땅을 주어도 그 기쁨을 바꿀 것 같지 않았다.그 기쁨! 그 기쁨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적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p.410).실상 방화와 살인은 이유를 불문하고 용납받기 어려운 범죄이다. 그러나 그 행위에서 기쁨만을 느끼는 문서방의 모습에서 위선성과 폭력성마저 엿보인다.또한 인상적인 것은 ‘불길’에 대한 서술이 마지막 문장이라는 점이다.불길은, 그 붉은 불길은 의연히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처럼 하늘하늘 올랐다(p.411).인간사와 관계없이 붉게 번지는 불꽃은 모든 사건의 방관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심한 심판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붉은 불길’이 주는 어떤 악마적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불길은 문서방의 어떤 사정과는 별개로 문서방의 방화와 살인이 정당하지 못함 또한 느끼게 한다. 독자가 공감해온 문서방의 감정을 차단하고, 독자에게 객관적인 시선을 돌려주는 것이다.
공공서식 한글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좌절로 점철된 개인의 역사》-최인훈의 『광장』 레포트-OOOO과 OOO0. 들어가며『광장』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보았을 장편 소설이다. ‘1960년은 『광장』의 해이다‘, 란 말이 있을 정도로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시대적·정치적으로 읽을 경우 남북한의 각개 이데올로기에 대한 철학도 청년의 냉철한 비판과 현실에의 실망으로 읽힐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사회 구조에 대한 고찰은 접어두고 주인공 ’이명준‘이라는 청년에 집중하면 이 작품에서 한 개인이 연속된 좌절을 겪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손톱만한 희망이 생길만 하면 다시 파괴되는, 개인의 처절한 역사다. 본 레포트에서는 이런 ’이명준‘ 개인에게 집중하려 한다. 이명준이 어떤 식으로 사회 속에서 좌절을 겪었고 그를 어떤 식으로 내면화했는지, 어떤 의식의 과정을 거쳐 결국 삶을 자살로 끝맺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Ⅰ. 밀실의 침범이명준은 평범한, 당대 어딘가 있을 법한 철학과 3학년 학생이었다. 그저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일상처럼 사색하고, 시를 지어 투고하고, 여자도 소개 받으며 지낸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8.15때 월북을 하셨지만, 아버지의 친구인 영미 부친의 밑에서 부족함 없이 삶을 영위한다. ‘돈의 길이 삶의 길인데,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거니 돈을 잊고 살아온다.’ 스스로 언급한 ‘젊고 가난한 철부지 책벌레’라는 말이 그를 표현하는 전부의 말이다. 젊고, 돈 버는 일도 쌓아온 돈도 없이 가난하지만, 턱 끝까지 치닫는 삶의 절박함 한 번 느껴본 일 없이 사색에 하루를 쏟는, 철없는 학생이다. 이런 이명준의 평탄한 삶은 어느 순간부터 계속되는 역경을 맞이하는데, 그 시작이 바로 경찰서 취조 사건이다.월북한 부친이 대남 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로 이명준은 빨갱이 취급을 받고, 해명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폭력에 노출된다. 이명준은 취조실에서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무력감과 굴욕감, 말 못할 분노를 느낀다. 신세지던 집의 딸인 영미의 소개로 윤애를 만나고 있었다. 취조실 사건이 있던 즈음 이명준이 제법 의지했고, ‘어쨌든’ 사랑한 여자다. 사색에 빠지고 정치를 비판할 줄만 아는 철학 샌님인 이명준은 연애에도 서툴다. 제 기분의 변덕으로 여자를 다르게 평가하고, 윤애의 말을 ‘텅 빈 말’로, 윤애를 ‘깡통’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는 이명준이 드러내는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면으로도 보인다. 윤애도 따지고 본다면 대학엘 다니는 지성인이다. 그러나 이명준은 윤애의 지성을 무시하고 그들의 육체적 관계에 집중한다. 그렇다고 이명준이 집중하는 ‘육체적 관계’가 어떤 욕망이나 성욕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명준에게 육체의 접촉은 그들의 정신적 합일에 이르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애가 육체적 접촉, 즉 성관계를 거부했을 때 이명준은 그녀에게서 커다란 벽을, 터부를 느끼고 절망한 것이다. 미숙한 청년 이명준에게 사랑은 성관계가 전부였고 그를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그들 사이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소설이 오로지 이명준의 편에 서서 서술되므로 윤애의 입장까지 독자는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명준의 입장에서, 윤애는 광장에 함께 서고자 한 이명준의 입장과 달리 자신의 밀실을 일부 지키려 한 여자이다.한번 명준의 밝은 말의 햇빛 밑에서 빛나는 웃음을 지었는가 하면 벌써 손댈 수 없는 그녀의 밀실로 도망치고 마는 것이었다.(p. 126)그렇기 때문에 이명준은 윤애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명준에게 윤애는 때때로 전혀 모르는 타인 같았고,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짐숭’이었다. 이명준은 마지막 기회라도 주듯 윤애에게 부탁한다.“…. 버려, 버리고 알몸으로 날 믿어줘. 윤애가 날 믿으면 나는 변신할 수 있어. 무슨 일이든 하겠어. 날 구해줘.” (p.126)그러나 윤애는 “제가 뭔데요?”라는 물음으로 이명준의 온 마음을 담은 고백을 축약한다. 그 대답에 이명준은 ‘그녀와 나란히 서 있다고 생각한 광장’에 홀로 서있음을 것뿐.(p.128)처녀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묻기도 하지만 타박하려는 말이 아닌 듯, “그래도 이렇게 왔으면 되잖아요?”란 말을 부드럽게 받아준다.아마도 이것은 이명준이 바란 북한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름답게 꾸며진 광장, 함께 모여 웃고 있는 사람들, 아름답고 양순한 애인. 처녀에게 이름이 없는 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서인지, 이명준에게 여자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어떤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명준이 북녘에서 만난 것은 잿빛 공화국이었다.(p.128)’ 밝은 햇살과 맑은 분수, 꽃밭과 웃음은 없었다. 남한의 이기주의 대신 북한에는 무기력함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이명준은 그것이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라고 느낀다.북한으로 넘어갔던 부친은 새장가를 들었다. 코뮤니스트였던 아버지는 집안에선 전형적인 조선 여자와 재혼하여 부르주아 행세를 한다. 이명준은 부친 집안의 평화로움과 너그러움에 진절머리 친다. 이명준이 기대한 모든 것이 망가진 셈이다. 북한의 인민, 북한의 체제, 북한에서의 삶, 북한의 아버지까지 모든 게 이명준이 생각한 것과 달랐다. 그래서 이명준은 다시 절망하게 된다.“…. 인민이란 그들에겐 양떼들입니다. 그들은 인민의 그러한 부분만을 써먹습니다. 인민을 타락시킨 것은 그들입니다. 그리고 북조선의 공산당원들은, 치사하고 비굴하고 게으른 개들입니다. 양들과 개들을 데리고 위대한 김일성 동무는 인민공화국의 수상이라? 하하하…….” (p.135)부친에게 좌절의 감정을 폭발시켜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부친은 아무 말이 없었고, 그가 잠든 사이 이불깃을 여며주는 것이 표현의 전부였다. 아무 것도 쥔 것 없이 자신의 사상 하나만 가지고 이명준은 북한에 갔다. 남한에서의 도피처로 선택한 북한인데, 그조차 이명준을 만족하게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준은 좌절을 넘어 허탈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그를 구제하는 것은 다시 사랑이었다.Ⅳ. 이명준만의 광장, 은혜이명준은 허탈감에 빠진지 얼마 되지 않아 국립극장 소하리라. 명준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이 잔잔한 느낌만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이 다리를 위해서라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모든 소비에트를 팔기라도 하리라. 팔 수만 있다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진리의 벽을 더듬은 듯이 느꼈다. (p.149)이명준은 윤애와 달리 ‘순순히 저를 비우고 명준을 끌어들여 고스란히 탈 줄(p.151)’ 아는 은혜를 온몸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이명준에게 은혜는 취조실에서 잃은 밀실이 되고, 은애가 무너뜨린 광장이 되고, 북에서 완전히 좌절된 사상이 되었다. 이명준은 그런 윤혜를 오로지 홀로, 바로 손닿는 거리에서 소유하고픈 욕구를 느낀다. 그렇기에 은혜가 국립극장의 무용수로서 모스크바로 몇 달 가게 될 것 같단 얘기를 했을 때 이유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이명준은 윤애에게 제발 ‘버리고 알몸으로 날 믿어줘’, 애원했듯 은혜에게도 애원한다.“은혜, 아무 말도 묻지 말고 내 말대루 해줘. 사랑을 위해서, 중요한 일을 농담 삼아 깔아버리는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도 좋아. 나를 사랑한다는 걸 보여줘.” (p.155)그리고 은혜는 이명준의 억지에 응답한다.“네, 가지 않을 테예요.” (p.155)이명준은 은혜의 수긍에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받아줄 사람이, 그녀 말고는 누가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더 그 사랑이 애틋해진다. 이명준이 모스크바로 떠날 예정이라는 은혜를 붙잡은 것엔 사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명준의 삶에 이제 오로지 은혜만이 남아서, 곁에 은혜가 있어야 살 수 있어서 따위의 로맨틱한 유추는 접어두고, 또 다른 이유.그녀가 사상을 아랑곳않는 데에 명준은 가다가 놀랄 때가 많았다. 명준에게는 그것이 좋았다. 무지한 여자한테서 쉴 데를 얻자는 저 좋을 마련만은 아니었다. 될 수만 있다면 그녀와 바꾸고 싶었다. 자기 영혼과 아무 탯줄이 닿지 않는, 시대의 꿈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그녀에게서 명준은 은총을 보았다. 신은 그가 사랑하는 자에게 생각의 버릇을 주지 않는 듯싶었다. (는 거리가 먼 여자이다. 사상을 아랑곳 않는, ‘생각의 버릇’을 갖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명준은 그것을 ‘은총’이라고 명명하고, 될 수 있다면 그녀와 바꾸고 싶다고 내적으로 고백한다.이런 이명준의 내면을 엿보았을 때, 이명준이 은혜에게 ‘모스크바에 가지 말라’고 부탁한 억지는 은혜를 향한 열등의식의 발현은 아니었을까. 이명준은 은혜가 ‘예술일꾼’이며 ‘여성 투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내 거’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확인은 역시 신체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 과정에서 내적으로 은혜가 자신의 것임을, 그렇게 대단하고 유능한 북의 여성 일꾼이지만 그래도 결국 자신의 여자임을 되새기는 모습은 오히려 관계의 불안감으로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가 당장 얼굴 볼 수 없고 신체접촉을 할 수 없는 ‘모스크바로 가면 다시는 그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은 아닐까. 하여 여전히 ‘젊고 가난한 철부지 책벌레’인 이명준은 윤애에게 했듯 은혜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윤애에게 ‘벽을 허물고 알몸으로 날 믿어줄 것’을 부탁했듯, 은혜에겐 ‘모스크바를 버리고 자신이 곁에 남아줄 것’을. 그리고 윤애가 증명하지 못한 사랑을 은혜는 증명한다, 모스크바행이 아닌 이명준의 곁을 선택함으로써. 하지만 모스크바로 가지 않겠다던 은혜는 결국 “이따 저녁에 가겠어요.”란 공허한 말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았다. 이명준의 애정사 중엔 두 번째 좌절이었다.은혜가 떠나고 이명준은 서울에서 공산궁 정치보위부에서 일종의 고문관으로 일한다. 이명준은 비인간적인 행위를 통해 악마로서 새로 탄생하고자 한다. 이명준 내면의 망가짐과 절망을 타인을 향한 가학적 행위로 배출하고, 자신이 고수해온 도덕적 가치를 부숨으로써 더 이상 같은 좌절을 겪지 않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이유로 이명준은 잡혀온 태식에게서 무자비하게 피를 보았지만, 남편인 태식을 만나기 위해 온 윤애를 만났을 때 그런 다짐은 무너져 내린다.이 가슴이 그의 것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 힘으로 이 가슴을 빼앗을)
공공서식 한글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전화’를 둘러싼 갈등과 계산》-염상섭의 『전화』-OOOO과 OOO0. 신문물 ‘전화’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화’는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이자 작중 모든 갈등의 매개이다. 또한 ‘전화’를 사이에 두고 이해타산적인 관계가 발생한다. 현재의 우리에게 ‘전화’는 일상의 것이고, 휴대폰이 대중화된 지금 집에 메여있는 ‘전화’란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 당대(1920년대)의 ‘전화’는 처음 보는 신문물이고 낯설지만 재밌는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현대와의 시선 차이가 작품의 재미를 더욱 가미시킨다.Ⅰ. 희극적 분위기작품은 여느 가정에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인 이주사(주인)의 아내(주인아씨)가 그 전화를 받는데, 그것은 이 주사가 최근 수작중인 기생 ‘채홍이’에게서 걸려온 것이었다. 이 채홍의 전화로 인해 이주사와 아내의 갈등이 발생한다. 그로인해 전화라는 신문물은 제대로 누리지도, 아주 없애버리지도 못하는 계륵이 된다.어찌 보면 심각하게 흐를 수 있는 ‘외도’를 큰 소재로 한 갈등이지만 작품 내내 그것은 우스꽝스럽고 가볍게 표현된다. 대체로 아내가 비꼬거나 퉁명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이주사에게 불만스러운 맘을 내보이면 이주사는 그를 능청스럽게 받아쳐 물 흐르듯 넘어가는 식이다. 실제로도 채홍이와의 관계를 아내에게 들킨 것이나, 아내가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이러한 작품의 유쾌함은 독자가 부담 없이 작품을 읽도록 하고, 동시에 그 안에서 현실적인 요소를 보여줌으로써 풍자적인 효과도 부여한다.Ⅱ. 전화에 대한 변덕또한 작중 인물들은 ‘전화’에 대한 태도를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달리 하는 데, 이는 이주사의 아내에게서 잘 드러난다. 이주사의 아내는 처음에는 받게 될 첫 전화를 몹시 기대한다. 그러나 그 첫 전화의 주인이 채홍이 되자 아내는 전화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기게 된다.“그 빌어먹을 전화, 내 이따가 떼어버려야지! 기생년하구 새벽부터 시시덕거리며 이야기하자구 옷을 잡혀가며 맸드람? 참 기가 막혀서!…… 그럴테면 마루에 매지 말구 아주 저 방속에다가 맬 일이지…….”(p.218)결국 이주사가 김주사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팔자, ‘그놈의 전화’라며 전화를 원수 보듯이 하던 아내는 오히려 서운함을 느낀다.“아침에 전화를 떼갔죠!”하고 앓던 이나 빠진 듯이, 그러나 일대 사변이나 일어난 듯이 남편을 보는 맡에 보고를 하면서 그래도 매우 서운한 기색으로 선웃음을 친다.(p.236)“여보, 우리 어떻게 또 전화 하나 맬 수 없소?”하고 옷도 채 못 벗고, 턱밑에 다가앉아서 조르듯이 의논을 한다.남편은 하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하며 아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p.238)작품은 이렇듯 아내가 “또 전화 하나 맬 수 없소?”라며 묻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전체 작품의 희극성을 더해주고, 모든 일이 하나의 헤프닝이라는 느낌을 준다. 또한 전화를 다시 찾는 아내의 모습은 신문물에 대한 과시욕이나 소유욕 따위를 느끼게 한다.Ⅲ. 희극적 모습 안의 현실『전화』의 묘미는 그것에 있다. 작품이 발표된 1925년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가졌을 것임에도 작품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식민지 조선에서의 삶은 유쾌하고 얼핏 즐거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전화』에는 지나치게 익살스럽거나 과장된 묘사가 없다. 시대적 분위기와 별개로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우스운 행동을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실제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희극적인 요소 외에도 작품에는 인간의 욕망과 이해 타산적 관계가 녹아있다. 이렇듯 우울했던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유쾌하고 희극적으로, 동시에 리얼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 『전화』의 큰 가치이다.
공공서식 한글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시인 오장환과 윤곤강에 대한 레포트》Ⅰ. 시인 ‘오장환(吳章煥)’1916년 충청북도 회인에서 출생하여 1951년 북한에서 병사했다고 알려졌다, 1933년 『조선문학』 4호에 산문시 「목욕간」을 발표, 문단활동을 시작하여 1930년대 후반 주목받았다. 1936년 결성된 ‘시인부락’ 동인이었으며 8.15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시부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모더니즘, 리얼리즘, 생명파 시인 등으로 분류되지만 오장환 시인을 깊이 본다면 단순하게 편을 갈라 분류하기는 어렵다. 1946년 초 월북한 해금시인(解禁詩人)이다.Ⅱ. 오장환의 문학적 경향오장환의 초기 시는 ‘모더니즘’으로 표현되는 반봉건·반자본주의에서 나온 냉소와 야유가 나타난다. 초기 오장환 시의 이러한 냉소는 본인과 그 시적 자아가 현실 밖에 위치해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후에 오장환은 현실을 비난하는 본인 내부에도 자신이 비난한 현실의 부정성이 존재함을 깨닫고 극심한 내적 갈등과 절망을 겪는다. 이 절망감 때문에 오장환의 시는 후에 극단적 퇴폐주의와 허무주의적 경향을 보이는데, 현실을 비난하던 이전의 시와 달리 이 시기의 시에서는 타락한 현실 안에서 시적 자아도 함께 타락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시의 의도 훼손이나 방향성의 변화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현실의 부정성, 부도덕성과 타락을 보여준다. 오장환의 극단적인 자기부정은 후에 ‘죽음’이미지 수용으로 확장되기도 한다.이러한 오장환의 퇴폐주의는 ‘고향’의 등장과 함께 다시 변화하게 되는데, 퇴폐주의에서 ‘항구’가 모든 관념적 위악의 온상이자 타락한 시적 자아의 행위 공간이었다면 ‘고향’은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이자 시적 자아가 생활하는 구체적인 현실공간이다. 오장환은 ‘고향’을 발견하고 그에 안주하며 급진적이고 관념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회복하게 된다.Ⅲ. 오장환의 대표작● 「고향 앞에서」 -민영·최원식·최두석, 『한국대표시선1』, 창비, 1990, 164p고향을 상실한 사람의 따뜻한 향수를 노래한 시이다. 첫 연에서 화자는 봄이 오기 직전 고향의 따듯한 정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 ‘녹지 않은 얼음장’ 등의 친숙하고도 정겨운 모습으로 고향은 포현된다. 그러나 2연에서 고향에 들어가지 못하고 나룻가에 서성거리는 화자의 모습과 3연에서 나타나는 상실과 ‘눈물’의 분위기, 4연과 5연의 적막한 분위기와 장꾼들에게 자신의 고향을 ‘혹여나 보셨’는지 묻는 모습은 고향의 상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느끼게 한다.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누룩 소리와 내음새로 고향의 이미지를 환기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병든 서울」 -민영·최원식·최두석, 『한국대표시선1』, 창비, 1990, 165p이 시는 8.15 해방 직후의 모습을 그린 시이다. 이 시에서 주목할 점은 해방이 주는 보통의 이미지, 희망이나 밝은 미래, 환희와 감동 따위보다도 ‘병든 서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처음엔 남들처럼 희망을 꿈꾸며 거리로 나갔지만 그곳엔 희망이 아닌 더러운 심사와 간사한 장사치들로 가득했을 뿐이다. 화자는 그런 ‘병든 서울’의 모습에서, 식민지 치하의 어려운 현실에서도 광복을 꿈꾸며 어깨동무하고 함께 반항할 수 있었던 ‘다정한 서울’, ‘아름다운 서울’을 회상한다. 이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해방의 현실을 맞이한 화자에게 현실의 서울이 해방 전의 서울보다 병들고 암울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화자는 그러나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끓는 서울에서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로 표현되는 희망을 본다. 1연에서 화자는 남들이 광복의 기쁨으로 눈물 흘릴 때 제 몸의 병듦이 부끄럽고 원통해 울었지만, 화자는 이러한 현실 직시 후 7연에서 ‘큰 물 지나간 서울의 하늘’, ‘맑게 개인 하늘에 /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이 보고 싶다며 운다. 화자 개인의 고통에서 민족의 미래로 화자의 시선이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이어 슬픔과 비굴, 절망에 찌든 ‘내 눈’과 ‘내 씰개’를 길거리에 팽개치리라, 다짐하며 여태의 삶을 반성한다. 이러한 반성으로써 시인은 앞으로의 새 미래와 꿈꿔온 ‘새 나라’가 올 수 있다는 희망 또한 보여준다.Ⅳ. 시인 ‘윤곤강(尹崑崗)’본명은 붕원(朋遠)으로, 1911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탄생하여 1950년 사망했다. 1933년 일본 센슈대학을 졸업하였고, 귀국과 동시에 1934년 카프에 가담했다. 1934년 경 문단에 등단하여 카프 해산기에 왕성한 활동을 보인 시인이자 비평가이다. 1939년에는 《시학(詩學)》 동인으로 활동했다.1Ⅴ. 윤곤강의 문학적 경향윤곤강의 시적 경향은 세 시기에 따라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시기는 문단 데뷔 후의 초기 이다. 이 때 윤곤강은 카프에 가담하여 식민지의 애환과 계급의식을 표출하는 데 주력했다. 식민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판했고 동시에 ‘객관적 현실을 시의 소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보아 리얼리즘에 심취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시에서는 선전, 선동하는 구호적인 톤이나 진취적인 방식의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을 표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두 번째 시기는 1930년대 후반의 시기로 생의 절실성과 풍자를 강조한 시기이다. 그 배경에는 일제 군국주의의 본질이 노골화되어 리얼리즘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적 상황이 있다. 윤곤강은 이 시기 1939년에 『동물시집』을 간행했는데, 『동물시집』에서는 ‘동물’을 소재로 생의 소중함을 표명하는 동시에, 그 동물을 시인 자신과 동일시하며 현실을 풍자하는 시를 담았다. 동시에 첫 번째 시기에서 나타난 시인의 양가감정으로 분열된 주체의 균열이 극에 치달은 모습을 보여준다.세 번째 시기는 1945년 해방 이후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윤곤강은 민족의 전통과 주체성을 부각하려는 시도와 주권 회복과 민족 주체성의 동질성을 찾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를 위한 방법으로 모국어 회복을 주장했다. 그러나 윤곤강의 전통의식은 고려속요나 시조의 모방에 그치고 만다는 한계점을 보인다.Ⅵ. 윤곤강의 대표작●「나비」 -민영·최원식·최두석, 『한국대표시선1』, 창비, 1990, 170p이 시에서는 늙은 나비를 통해 삶의 애상감을 표현하며, 동시에 나비를 화자 ‘나’와 동일시하고 시적 상황을 현실 상황과 동일시하며 일제 식민지 치하의 비참한 민족 현실을 그리고 있다. 시 속에서 ‘호랑나비’는 본래 날 수 있는 존재로, 시인 본인과 동일시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 ‘호랑나비’는 늙고 날개도 찢어져있는 모습으로, 식민지 상황의 비참하고 망가진 민족의 상황을 상징한다. 나비는 ‘그리운 꽃밭’으로 표현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도 찾아갈 수 없고, 삶의 생계 수단이자 의미이던 ‘화려한 춤재주’도 잃었기 때문에 한숨짓는다. 이것은 참담한 민족적 현실을 그린 것이다.이 시는 위에서 언급한 시기 중 두 번째 시기에 창작된 것으로, ‘나비’의 모습을 통해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암시적으로 풍자하였으며, 나비를 통한 감정이입의 기법과 시조의 느낌을 내는 표현법이 특징적이다.●「피리」보름이라 밤 하늘에달은 높이 켠 등불 같아라임아 홀로 가신 임아이 몸은 어찌하라 홀로 두고임만 혼자 훌훌히 가셨는고아으 피 맺힌 내 마음피리나 불어 이 밤 새우리숨어서 밤에 우는 두견새처럼나는야 밤이 좋아 달밤이 좋아이런 밤이사 꿈처럼 오는 이들달을 품고 울던 '벨테이느'어둠을 안고 간 '에세이닌'찬 구들 베고 눈 감은 고월(古月) 상화(尙火)…낮일랑 게인 양 엎디어 살고밤일랑 일어나 피리나 불고지고어두운 밤의 장막 뒤에 달 벗삼아임이 끼쳐주신 보밸랑 고이 간직하고피리나 불어 설운 이 밤 새우리다섯 손가락 사뿐 감아 쥐고살포시 혀를 대어 한 가락 불면은쟁반에 구슬 굴리는 소리슬피 울어 예는 여울물 소리왕대숲에 금바람 이는 소리…아으 비로소 나는 깨달았노라서투른 나의 피리소리이언정그 소리 가락가락 온 누리에 퍼지어메마른 임의 가슴속에도붉은 핏방울 방울 돌면찢기고 흩어진 마음 다시 엉기리이 시는 떠나간 임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피맺힌 슬픔을 '피리'라는 외적 사물을 통해 노래한 연가풍의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시기 중 마지막 시기에 창작된 작품으로, 민족적 정서의 탐구와 회복을 추구하며 한국시가의 전통적 소재인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서정시이다. 이 시에서는 특히나 고려가요의 표현을 계승하려는 시 정신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데, 특히나 1연의 ‘달은 높이 켠 등불 같아라(달은 높이 현 등불 다호라)’라는 표현과 2연 첫 부분의 ‘아으’라는 감탄사, 그리고 ‘두견새’의 이미지는 고려가요 《동동》의 시어와 유사하거나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 후의 연에서는 피리소리와 ‘여울물 소리’, ‘금바람 이는 소리’로 임이 없는 고독한 상황을 표현한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떠나간 임을 받아들이면서도 기다리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러한 체념과 기다림의 정서 또한 한국적인 정서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서식 한글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톱밥 한 줌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임철우의 「사평역」-OOOO과 OOO0. 들어가며소설 「사평역」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모티브로 하여 서사적으로 변용한 작품으로,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늙은 역장을 제외하고 9명에 달하는 인물들마다 구체적인 사연을 부여했기 때문에 등장인물은 생명력과 시대성을 가진다. 시에서 화자가 가졌던 따듯한 시선과 내적 연민은 소설에서 표면화되어 등장인물들의 인정(人情)과 조화로 나타난다.Ⅰ. 다양한 인물군상의 사람들작품에선 다양한 인물군상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크게 네 가지의 유형으로 나뉜다. ‘서울 여자’는 가진 자 유형에 속하고, ‘사평댁’과 ‘농부 부자’는 못 가진 자 유형에, ‘춘심’과 ‘행상 아낙네’ 둘은 고단한 삶을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티는 유형에, ‘청년’과 ‘중년사내’는 사회적 억압의 희생자 유형에 속한다.서로의 인물 유형도 다르고 설사 같은 유형이라 하더라도 인간상이 다른 이들은 각자 흩어진 모래알처럼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군상들의 모습이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시에서처럼 ‘톱밥 난로’의 온기를 매개로 ‘사평역’에 모인다. 사람들은 처음엔 서로의 다른 점 때문에 적개심을 가지고 경계한다.뚱뚱이 여자가 말했을 때 아낙네들은 문득 멀뚱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본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그 말을 선뜻 받지 못한다. 눈부시게 흰 밍크 목도리와 값비싼 코트를 걸친 여자의 반질반질한 서울말씨가 그녀들을 주저하게 했을 것이다.(중략)틀림없이. 그렇고 그런 계집애로군.아무리 눈가림을 해도 내 눈은 속일 수가 없지, 하고 뚱뚱이 서울 여자는 바바리 아가씨에 대한 까닭 없는 악의를 준비하며 확신하듯 중얼거린다. 바바리코트 처녀는 고개를 갸웃 숙인다. 처녀는 맞은편 중년 여자의 시선이 제게 따갑게 부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부러 모른 척한다.흥, 지까짓 게 쳐다보면 어때. (P.85)그러나 곧 이들은 행상 아낙네가 북어를 나눠준 것을 계기로 융합되기 시작한다.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여자들은 문득 입안이 허전한가 보다. 아낙네 하나가 보따리에 손을 집어넣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이윽고 아낙의 손 끝에 북어 두 마리가 ㄸㆍ라나온다. 그녀는 그걸 대뜸 난로 위에 얹어 굽더니 북북 찢어 내어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벤벤찮으요만 잡숴들 보실라요. 입이 궁금할 때는 이것도 맛이 괜찮합디다.”(중략)농부와 대학생과 춘심이도 한 오라기씩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다. 뚱뚱이 서울 여자는 마지못한 시늉으로 그걸 받더니, 행여 더러운 것이라도 묻지 않았나 싶은 듯 손가락 끝에서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입에 넣었다. 그녀는 여전히 마지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게 생긴 것보다는 맛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저녁을 거른 채로였다. (p.94)북어로 인해 대화가 시작되고, 그를 통해 유일하게 부유한 유형인 뚱뚱한 여자의 사연이 소개된다. 돈을 들고 도망친 사평댁에게 인정을 베풀어 오히려 돈을 쥐어주고 돌아온 이야기는 모두를 깔보는 것 같던 여자 안에 있던 따듯함을 비춘다. 또한 작품 말미에 늙은 역장이 대합실에 남은 ‘미친 여자’를 위해 난로의 온기를 유지하는 것에서도 독자는 타인을 배려하는 인정을 느낄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작품 초반에 개인이 고립되어 있는 차가운 분위기는 후반부에 사라지고 따듯한 온기와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퍼지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작가는 추위를 견디게 하는 난로의 불기처럼, 인간의 따스한 인정과 온기만이 고통스러운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드는 힘임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Ⅱ. 초점자 ‘청년’이 작품은 모두에게 초점을 공평하게 분배했으나, ‘청년’은 그 중에서도 조금 특별하다. 그는 시 「사평역에서」의 시적 화자로 보이기도 하지만 작품 안에서 관찰자로서 행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청년은 보름 전 사회운동을 이유로 대학에서 제적당하여 냉소적인 울분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문학부 건물을 나설 즈음, 백마고지 전투에서 훈장까지 받은 역전의 상이용사인 수위 아저씨가 절뚝거리며 뒤쫓아 나오더니 그의 가슴에 가방을 내던져 주고 가버렸다. 그는 깜박 잊고 가방을 두고 온 거였다. 그러자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토록 우스웠는지 모른다. 그는 혼자 미친 듯 웃어제꼈다. 한참이나 벤치에 엎디어 킬킬대다가 그는 뱃속에 든 오물을 모조리 토해 내고 말았다. 토하면서도 자꾸만 웃고 또 웃었다. 그러다가 끝내 울음이 터져나와 버렸던 거였다.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