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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기말과제물 2021년 2학기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2021학년도 [2]학기 기말 과제물교과목명 : 전통사회와 생활문화학 과 :학 번 :성 명 :연 락 처 :O 과제명 :1. 민장속의 다양한 모습을 읽고 민장 작성하기2. 자신을 조선시대 살았던 인물로 상정하고 공부나 과거를 보는 과정, 관료와 양반으로서의 활동 등을 가상하여 정리하기Ⅰ. 서론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표출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고 쉬워졌다. 인터넷에 자신의 억울함을 올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기자들이 뉴스로 내보내 알려주기도 하고, 최근에는 심지어 청와대 게시판에 올려 해결하려 들기도 한다. 물론 최근에도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현대 문명에서 인터넷이 있었다면 과거 조선시대에는 ‘민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주민이 관부에 올리는 소장으로 자신의 억울함이나 뜻하는 바를 적어 해결을 요청하는 서한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민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 하였다. 물론 어느 시대나 부정 부패나 부조리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민장도 좋은 취지로 시작은 하였으나 관리하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시대 배경에 따라서 제대로 전달이 되거나 해결이 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그 당시 힘 없는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자 했다는 것에 상징적인 의미를 두고 싶다. 한편, 이런 민초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 사회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골간이 되는 교육과 과거제에 대해 알아보고 과거를 통해 등용된 관료와 양반의 삶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민장 - 나는 가진 것 없는 민초이옵니다수령 나으리 저는 충청도 옥천군 갈마실에 살고 있는 이민초라고 하옵니다. 저는 늙으신 부모님과 처자식을 부양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저희 집을 포함하여 전체 다섯 집이 모여 사는 작은 고을이며, 땅은 그리 넓지 않아 농사를 지어 입에 풀칠할 정도입니다. 보릿고개에는 산으로 들로 풀뿌리와 나무 껍질을 구하러 다녀 겨우 연명을 할 수 있을 정도 이옵니다. 저희 고을에 사는 사람들도 저와 별반 다름없이 늙은 부모님과 가족들을 건사하기도 벅찬 사람들입니다. 고을에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것은 저밖에 없어서 이렇게 고을 사람들을 대표하여 수령님께 억울함을 말씀 드리 오니 부디 깊이 헤아려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저희는 집집마다 모두 장정이 1명씩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역을 면제받기 위해 군포로 조 8말씩 바쳤습니다. 저희는 모두 집을 부양해야 되기에 군에 갈 수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군포를 납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군역이 늘어났다며 중첩해서 부과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가 여유가 있다면 나라를 위해서는 2중든 3이든 군포를 납부할 수 있겠으나, 작은 땅덩어리에서 나오는 곡식으로는 중첩해서 떨어지는 군포는 커녕 부모님과 처자식도 먹여 살릴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억울한 저희들의 입장을 널리 이해해 주셔서 올해부터 저희들에게 중복 부과되는 군포를 빼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중첩 제외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민초, 김길동, 박흥수, 최차수, 차돌이 입니다. 저희 5명에게 중복해서 부과되는 군포를 내년부터 제외시켜 주시고, 착오로 올해 중복 납부된 군포를 돌려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꼭 억울함을 풀어 주길 부탁드립니다.관가의 대응 및 조치이민초가 올린 민장을 세심하게 살펴 보았다. 그대의 고을 옥천군 갈마실은 산골마을로 토지가 좁고 산이 많은 지역으로 쌀을 수확하기에는 어려운 고을임을 조사로 알게 되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의 가족 구성과 함께 민장을 올린 사람들의 됨됨이를 알아본 결과, 결코 거짓을 말하거나, 허풍을 떠는 사람들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를 포함한 고을 사람들에게 군포가 중복 부과되고 있음도 확인했노라. 이에 나 수령은 그대 고을에 중복부과 되던 군포를 내년부터 해제시켜 장정 1인당 조8말씩만 바치도록 명하노라, 또한 올해 추가로 부과되었던 군포는 돌아오는 동짓달에 되돌려 주도록 조치할 터이니 그리 알고 있으시게.비록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마을 주민의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민장을 작성해 보았다. 상상해서 민장을 작성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뜻을 조리 있게 적어보기도 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제도가 조선에 있었다는 점을 체득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2. 교육과 과거 및 관료와 양반의 삶-공부나 과거를 보는 과정 ?내 나이 서른 다섯에 문과에 급제하고 보니 그동안 마음 고생하신 부모님과 뒷바라지 해준 아내와 돌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구나. 과거에 급제한 지금 이 나이가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다른 급제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늦은 것 만도 아니다. 올해 가장 어린 급제자는 스물 두 살에 사대부 집안 장손이고, 가장 늦은 급제자는 마흔 둘의 경상도 김진사댁 아들이다. 내가 비록 공부는 잘한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적어서 사람들과 나눠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렇게 적어본다내 비록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밭뙈기에 노비를 건사하고 살 정도는 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께서는 글공부를 즐겨하셔서 어려서부터 늘 책을 옆에 끼고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집안 대소사를 챙기시느라 자식들 공부는 숙부에게 맡기셨다. 숙부께서는 비록 급제하지는 못하셨으나, 1차는 늘 통과하셨는데, 그래서 어려서부터 과거와 관련된 과목들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여섯 살때부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천자문은 글이 어려워서 처음에는 입으로만 외웠는데, 그렇게 수십 수백번을 반복하다 보니 저절로 암기하게 되었다. 천자문을 떼자마자 여덟 살때부터는 소학을 시작했다. 소학은 일상생활의 예의범절과 수양을 위한 격언들을 묶어 놓았는데, 처음에는 문장이 익히기 어려워서 잘 외워지지도 않았지만, 뜻도 모른 채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머리속에 들어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소학을 떼자 마자 효경을 시작하고 문장을 짓는 법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열 다섯살이 되어서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스승을 찾아 집을 나서게 되었다. 부유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부모님께서는 고민도 많이 하셨으나, 집안의 장남인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친한 친구가 있다며 영천 거접으로 갈 것을 추천하셨다. 나는 거기서 본격적으로 과거공부를 시작했다. 글재주가 좋았던 나는 3년마다 치러지는 식년시 문과에 응시하도록 준비하였다. 스물 두살에는 부모님께서 소개해주신 옆 마을 규수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공부하러 거접에 다니고 열중하느라 아내를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그렇게 공부에 집중하여 스물세살부터 과거에 응시하여 3번이나 치렀으니 서른 두살까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동안 과거에 응시하러 한양에 다녀가는데 들어간 돈만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부모님 낯을 뵐 수가 없었다. 낙방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문과 식년시 시험 과목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 두자니 체면이 이만저만 구겨지는 게 아니었다. 부모님께는 마지막 시험이라 말씀드리고 죄송하지만 좋은 스승을 찾아 족집게 과외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실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나는 35살이 되던해 문과에 합격을 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서 뒷간에서 나올 수 없었다. 나는 홍패를 받아들고 유가를 진행했는데, 그리 뿌듯하고 신기할 수 없었다. 고향에 돌아와서 축하연을 베풀고 친구들의 장난을 다 받고 있자니 여간 행복한 게 아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벌써 훌쩍 자라서 효경을 배우고 있었다
    문화교양학과| 2022.02.16| 5페이지| 4,500원| 조회(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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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A+ 기말과제물 2021년 2학기 '레크레이션활동지도'
    A+ 기말과제물 2021년 2학기 '레크레이션활동지도'
    2021학년도 [2]학기 기말 과제물교과목명 : 레크리에이션활동지도학 과 :학 번 :성 명 :연 락 처 :O 과제명 :어린시절 추억의 놀이(온라인 게임 제외 5종이상)Ⅰ. 서론바야흐로 ‘오징어 게임’이 대세인 요즘이다. 온라인에 접목된 드라마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투자하여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는 ‘오징어 게임’을 정작 나는 보지 않았다.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드라마의 잔인한 장면들로 인해 나의 어릴적 추억들이 깨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드라마 덕분에(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근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소리가 적잖이 들려온다. 내가 어렸을 때 했던 놀이를 지금 아이들도 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추억의 놀이를 생각하면 이 노래 또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술래잡기, 고물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물론 개그콘서트에서 듣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도 잘 모를 수 있는 노래지만. 이 노래 속에 나오는 게임들 대부분을 알고 있고, 직접 해 보기도 했던 터라 매우 친숙하다. 그러면 지금은 잊혀졌지만 나에게는 추억이었던 어린시절의 놀이들을 공유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놀이의 사전적 의미는 ①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놂. ②인간이 재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 ③우리나라 전통적인 연희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위 세가지의 정의를 종합하여 오늘 말하고자 하는 추억의 놀이를 정리하자면 ‘여러 사람이 모여 재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 행했던 우리나라 전통적인 연희’라고 정의하고 싶다.1. ‘내가 제일 잘 나갔던’ 오징어 게임‘오징어’는 맨땅에 오징어 모양의 금을 그어 놀았던 게임으로 우선 동그라미, 세모, 네모로 이뤄진 오징어 모양의 경기장에서 이뤄진다. 인원은 둘 이상만 있으면 공격과 수비진영으로 나눠 게임이 가능하다. 이긴 팀은 오징어 머리쪽의 동그란 원에서 시작해서 깨금발로 밖을 다니다가 다리를 건너면 두발 사용이 가능하며, 그때부터 오징어 네모 두발 공격이 가능하다. 수비팀은 오징어 모양 안쪽에서 지키고 있다가 다리를 못 건너게 하거나, 몸통을 통해 공격해 들어오는 적들을 막아내야 한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지만 서로 몸싸움이 있는 경우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 친구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힘 센 친구는 둘이 맞붙었을 때 이기기가 쉽지 않거니와 혼자 공격해 들어와도 두세명이 막다보면 자연스럽게 허점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허점을 노리고 공격하는 친구가 꼭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힘센 친구가 있는 팀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듯이 힘센 친구와 더불어 날쌘 친구들이 한 몫 하는 것이 이 오징어게임이다. 깨금발이든 두 발이든 일단 둘이 맞붙어야 싸움이 되는데, 날쌘 친구들은 도무지 틈을 주지 않고 도망가 버리기 때문에 꽤나 골치 아픈 족속(?)들이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덩치는 좀 작은 편에 속했지만 친구들보다 빠른 발을 갖고 있어서 다리를 건널 때나 공격해 들어갈 때 매우 유리했다. 힘센 친구가 두세명의 시선을 따돌리고 있으면 뒤에서 딴전 피다가 기습적으로 공격해 들어가서 오징어 머리 쪽을 잽싸게 밟으면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한 여름이나 비오는 날에는 너무 덥거나 땅이 젖어서 오징어 게임을 할 수 없었다. 겨울철에 땅이 얼어도 오징어 게임은 할 수 있었는데, 게임이 치열해지고 승부욕이 강해질수록 부작용도 속출했다. 이를테면 적들과의 전투(?)중에 넘어뜨리려고 서로 옷을 잡아 당기다가 옷이 찢어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런 날은 집에 들어갈 때 제법 눈치를 봐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령, 심부름을 잘 한다든지 혹은 이실직고 한다든지 제 살 방법을 강구하기전에는 집에 들어가면 안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형제가 많은 집의 막내로 태어나서 형들이 길을 잘 닦아 놓아서 그런 부분에 대해 크게 혼나거나 쫓겨나지는 않았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 때문에 옷이 찢어졌던 친구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 오는 날 밖에서 놀지 못 할 때는 실내경기로 돌딱지치기이다.2. 딱지치기(일명 ‘배치기’)‘딱지치기’는 지역마다 조금씩은 다른 듯 하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의 딱지는 타지역에서 말하는 종이로 만든 딱지가 아닌 문구점에서 동그란 모양의 캐릭터나 만화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얇은 원형의 종이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우리동네에서는 종이를 네모 반듯하게 접어서 만든 딱지는 ‘배치기’라고 불렀다. 아마도 배를 내리쳐서 상대를 뒤집어야 이기는 경기라서 ‘배치기’라고 불렀던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배치기는 다 쓴 공책이나 달력, 또는 박스 등 재료 2장을 활용해서 네모 반듯하게 접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는 박스로 만든 배치기였다. 박스는 기본적으로 구하기도 힘들었지만 일단 구했다하면 두툼한 재질과 무게로 인해 다른 재질로 만든 배치기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다 쓴 공책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앞뒤 한 장씩 밖에 없는 표지로 만든 딱지는 일반 종이로 만든 딱지보다 훨씬 딱딱하고 강해서 나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었다. 일반 종이로도 강한 딱지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때는 여러 장의 종이를 겹쳐서 만들어야 하는 다소 사치(?)를 부려야 되는 것이었다. 딱지치기는 서로 하나씩 딱지를 내어놓되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결정해서 지는 사람이 먼저 수비가 되어야 하고, 이긴 사람은 먼저 공격을 가져올 수 있다. 공격을 해서 상대가 뒤집어지면 내가 갖는 것이고 뒤집어지지 않으면 서로 공수를 교대한다. 그러나, 뒤집어져서 내가 이겼을 때는 계속 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 어느 경기나 마찬가지듯 꼴찌라고 1등을 이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좀 얇고 볼품없는 딱지로도 두껍고 통통한 녀석들을 잡을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요령이 필요하다. 상대의 딱지가 바닥에 놓였을 때 동서남북 4방을 관찰해서 땅과 딱지 사이의 빈공간이 가장 큰 곳을 겨냥해서 힘껏 내리치면서 그 빈틈을 파고들면 제 아무리 딱딱한 놈이라도 뒤집어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되어있다. 또한 상대가 뒤집어져 있을 경우 공격방법은 땅과의 빈틈을 노리거나서 상대를 뒤집을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얇은 딱지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드니 잘 판단해서 공격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요즘 아들이 딱지치기 한다고 문구점에서 사온 딱지는 일명 만화캐릭터를 본 딴 ‘포켓몬스터’ 딱지인데,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어 있어서 스스로 만드는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넘기기도 힘들어서 재미가 반감된 것 같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는 어쩌면 나의 잘못이기도 한 것 같다. 여태껏 아들에게 딱지 접는 법이나 놀이 규칙 등을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딱지치기가 지겨워 질 때 즈음 우리는 말타기 놀이는 하고 놀았다.3. 말타기남자아이들의 놀이 중에 말타기 만큼 박진감 넘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오징어 게임과 마찬가지로 서로 편을 나눠서 하게 되는데, 이 게임 역시 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날쌘 사람이 유리하다. 서로 팀을 나눈 다음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내어서 진 팀은 허리를 굽혀 머리를 앞사람 허벅지 사이에 끼워서 차례 차례 늘어서 쭈욱 말의 등 모양을 만들어서 준비하고 이긴 팀은 순서대로 말 등에 올라타서 대장끼리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결정지어 공수를 결정하는 놀이이다. 진 팀은 최대한 촘촘하게 붙어서 연결해야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약한 연결고리가 끊어져서 게임에서 이길 수가 없다. 이긴 팀의 공격은 늘 날쌔거나 무겁거나 안정적으로 게임을 이끌 수 있는 사람부터 시작된다. 말 위에 올라타는 공격은 기술이 필요하다. 가볍고 날쌘 아이들의 공격은 높이 올라 최대한 힘을 실어 엉덩이로 찍어 누른다. 이때 가장 힘이 약한 친구나 머리와 허벅지 사이가 빈 틈이 있는 곳을 노리게 된다. 그리고 최대한 흔들면서 앞으로 전진하게 된다. 무거운 친구들은 빠르거나 높이 뛰지는 못하지만 육중한 체구만으로도 상대편에게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자랄 당시에 그렇게 뚱뚱한 친구들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먹을 게 요즘처럼 풍요롭지 못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노느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매일 학원에만 매달려 있는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 어쨌든 이렇게 한 팀은 치열하게 공격하고 한 팀은 빈틈없이 방어하면서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내어 공수를 바꾸든지 혹은 계속 공격하는 게임이 지금까지 설명한 말타기 게임이다.4. 칼싸움이보다 더 단순한 게임이 있을까 싶다. 정말 남자 아이들의 놀이는 단순하면서 몸으로 노는 게 인기가 있다. 물론 두 편으로 나누는 건 기본이고 사람이 많을 경우 세 편으로 나눠 겨루기도 한다. 게임의 시작은 편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무기인 칼을 만드는 것이다. 복잡할 것은 없다. 손으로 꺾을 수 있을 정도 굵기의 반듯한 나뭇가지를 골라서 모두 같은 길이가 되도록 잘라야 된다. 이때 사람이 커도 작아도 모두 같은 길이로 잘라야 된다는 평등함이 적용된다. 작다고 긴 칼을 주거나 크다고 짧은 칼을 주지는 않는다. 흡사 펜싱과 같은 느낌이지만 보호장구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과학적인 점수 매기는 기계도 없다. 같은 수의 사람으로 시작하기에 먼저 상대방을 제압하는 팀이 이기는 단순한 경기다. 칼싸움은 보통 동네 공터에서 이뤄지거나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하게 되는데, 우리는 동네 있는 작은 동산 무덤에서 주로 놀았다. 이때는 누구든 먼저 무덤위를 차지하고 싶어했는데, 높다고 다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다리를 공격하면 죽기 쉬웠는데, 그래도 다들 높은 곳을 선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높은 곳에 있어야 왕이고, 모두를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칼싸움을 하다 보면 자주 손을 다치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위나 아래를 공격하다 보면 빈틈이 생겨서 그 빈틈을 최대한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칼을 늘 견제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칼끼리 충돌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칼을 잡은 손이 쉽사리 위험에 노출되고는 했던 것이다. 단순하지만 남자아이들의 승부욕을 불러일으키고, 전쟁을 연상케하는 치열한 싸움과 작전들. 누가 뭐래도 칼싸움은 그 시대 아이들에게는 최고의있다.
    도시콘텐츠∙관광학과| 2022.02.16| 7페이지| 4,5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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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기말과제물 2021년 2학기 '근대화와 동서양'
    2021학년도 [2]학기 기말 과제물교과목명 : 근대화와 동서양학 과 :학 번 :성 명 :연 락 처 :O 과제명 :‘마지막 황제’를 감상한 뒤,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의 감상문을 서술하여 제출하시오I.서론인생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이번 과제가 주어지고 영화 제목들을 봤을 때 다른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지막 황제’는 이전부터 정말 보고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비록 오래된 영화이긴 했지만 중국 청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의 삶에 대해서 잘 그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삶들이 이어지는 것이 역사 아니겠는가? 게다가 우리 조선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명나라와 청나라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병자호란을 그린 ‘남한산성 영화와 책을 모두 보고 읽었던 나로서는 우리에게 그런 굴욕을 주었던 청나라의 마지막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나라의 역관(통역)의 권세가 조선 조정의 대신보다 셌던 시기가 있었으나, 조선도 청나라도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럼 이제부터 청나라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벗어나오지 못했던 불운의 황제 ‘푸이’글 그린 ‘마지막 황제’의 감상평을 시작하도록 하겠다.II.본론1.어린 푸이소련으로부터 중국으로 들어오는 기차가 도착하자 전범들이 줄을 지어 내리는데, 이 가운데 중절모를 쓰고 나름 깔끔한 복장의 안경 낀 신사가 내린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며 황제라 칭하며 절을 하고, 신사는 잠시 자리를 피해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 신사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다. 청나라 말기 천하를 호령했던 ‘서태후’는 ‘광서제’가 죽자 ‘푸이’를 후계로 지목하게 되고, 어린 ‘푸이’는 영문도 모른 책 유모의 품에 안겨 베이징으로 옮겨오게 된다. ‘서태후’의 사망일이나 즉위식 장면에서도 보여주듯이 앞으로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궁궐을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특히 즉위식날 임금이 다니는 길을 따라 자금성을 걷던 장면에서 자금성의 규모와 궁궐 신하의 수에서 그 당시 청나라의 세가 얼마나 컸는지 피부로 느끼며 압도당하게 된다. 이렇듯 황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푸이’는 함께 입궁한 아버지와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황제로서의 모습을 제법 갖추어 간다. 어린 푸이가 외로워하자 동생을 데려와 자금성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동생으로부터 더 이상 청나라의 ‘황제’가 아닌 궁에서만 ‘황제’임을 듣고 부정하나, 현실은 이미 그가 껍데기만 황제인 것을 말해준다. 어린 푸이는 유모의 품에 안겨 유모의 ‘젖가슴’에서 안식을 찾곤 하는데, 주변 신하들은 황제는 홀로 서야 한다는 핑계로 유일한 안식처라고 할 수 있는 유모를 강제로 퇴궁시켜 푸이와 떨어지게 만든다.2.성인 푸이황제라고 해도 본인이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이었다. 푸이는 결혼상대들의 사진을 보며,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이 이상한 제도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황비로 간택된 여성 역시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결혼제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신세대 사람이다. 이 점이 푸이와 비슷해서 둘은 나름 잘 어울리는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후궁도 간택되어 이들 셋은 나름 평화롭게 지내는데, 푸이는 궁에서의 생활을 개혁하기 위해 나름 애도 쓰지만 기존 부패한 신하들은 쉽사리 바뀌려 하지 않는다. 개혁을 진행했다가 오히려 환관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방화를 하고 도망가기도 하는 등 자금성에서의 생활은 점점 황폐해지다가 결국 자리에서 쫓겨나 톈진으로 이동하게 된다.3. 만주국 황제로의 귀환푸이는 중국 공산당에 잡혀왔을 때 일본군에 의해 납치되어 만주로 강제로 이송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본인이 다스릴수 있는 만주국을 재건하고 싶어해서 자발적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일본의 비호아래 꾸린 위만황궁에서 푸이는 다시한번 황제가 되어 만주국을 다스린다. 그러나 그것은 푸이의 생각일 뿐, 실제로는 일본의 꼭두각시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과 만주국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자리에서 일본의 대신들과 만주국의 인사들이 자리를 뜨는 장면은 그 당시 푸이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의 지휘를 받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황후는 회의감을 느끼고, 심지어 푸이와의 관계도 나빠지자 점점 아편에 빠져들게 되고, 심지어 운전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죽임을 당하고 황후와 푸이도 강제로 이별하게 된다. 이름 뿐인 황제. 스스로 결정하고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결국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끝이 난 전쟁은 푸이의 앞길에도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소련군에게 사로잡힌 푸이는 결국 다시 중국 공산당에게 넘겨지게 된다4. 일반인으로의 전환옷 입는 것부터 신발 신는 것까지 모든 것을 신하들이 대신 해주던 푸이는 공산당에게 잡혀온 이후 철저하게 일반인으로 살아가도록 세탁을 하게 되는데, 변한척이든 실제 변했든 푸이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일반인의 모습을 갖춰 나가게 된다. 공산당은 푸이의 존재를 최대한 활용하여 모든 인간은 다 똑 같은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푸이를 살려 두고 사상교육을 통한 교화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제 그는 황제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태어나 정원사로서 살아가게 된다. 어느 날 자신이 살던 자금성에 들어와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올라가 앉아서 자신이 황제였음을 보여주고자 하나, 그는 이미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정원사에 불과했다.
    문화교양학과| 2022.02.16| 4페이지| 4,500원| 조회(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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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기말과제물 2021년 2학기 '공연예술의 이해와 감상'
    2021학년도 [2]학기 기말 과제물교과목명 : 공연예술의 이해와 감상학 과 :학 번 :성 명 :연 락 처 :O 과제명 :이번 학기 수강 내용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를 고르신 후 다음의 내용을 서술하시오1. 주제와 관련된 교재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시오2. 주제에 특별히 주목하게 되었던 배경을 서술하시오3.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시오I.서론이번 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문화에 대해 예술에 관해 무지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수업을 통해 연극, 무용, 오페라 등 공연예술을 이론적으로 알아가면서 내가 문화적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교양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수업 내용들 중에서 주제를 고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래전 한 번 간적 있는 재즈바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몇 년 전 정말 재미있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봤던 영화 라라랜드에서 남자주인공이 그렇게 추구했던 음악 그것이 바로 재즈였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풀어야할 숙제를 재즈로 결정해 버렸다. 흑인들이 미국에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는 재즈. 재즈는 어떻게 그 시대 사람들을 사로잡고, 또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재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II.본론1.재즈란?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국가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대부분의 문화를 유럽에서 받아들였고, 그렇게 자생적으로 성장한 문화는 미국 독립 초기만 해도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클래식이 주류이던 서양 음악사에서 미국의 음악은 이렇다할 특징없이 그야말로 변방이었다. 그러던 미국의 음악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시기를 맞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신대륙의 흑인 노예들의 음악이었다. 흑인들이 자리를 잡기시작한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해서 미시시피 강을 따라 캔사스, 시카고, 뉴욕 등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흑인들의 애환과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재즈. 재즈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었기에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을까? 우선 재즈의 특징부터 살펴보도록 하자재즈의 매력은 바로 즉흥연주에 있다. 연주자가 기본 악보를 바탕으로 그 순간의 느낌에 맞춰서 변경을 시켜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즉흥연주이다. 재즈의 음악은 같은 곡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그 순간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고, 그날의 그 음악은 세상 어디에 가도 없는 단 하나의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고 멋진 일인가! 내가 하는 연주가 할 때마다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니!두번째는 당김음의 사용이다. 당김음은 강박에 강세를 넣는 방식으로 기존의 틀을 뒤집어서 약박에 강세를 넣는다. 이 느낌은 어깨를 저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스윙감을 만들어내는데, 그루브라는 단어로도 사용이 된다. 재즈를 들을 때 흥에겨워 콧노래를 부른다든지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당김음에 빠져들었다는 표시다.세번째는 블루노트이다. 기존의 음계들보다 약간 낮게 연주하는 방법인데, 서구에서 사용되던 음계를 흑인들이 받아들이면서 변형된 방식이다. 연주자들은 정해진 높이로 연주하지 않고 느낌에 따라 다소 끌어내려 연주하는 기법을 말한다.대중이 이런 재즈만의 특징에 사로잡혀 미국에서 대유행을 하게 되는데, 유행의 역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재즈의 출발은 미국 루이지애나 남부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이다. 흑인 노예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유입될 때 들어오는 관문이자,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이민자 출신의 백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20세기 초에 탄생한 재즈를 ‘뉴올리언스 재즈’라고 한다. 흑인이 주도하였으나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백인의 군악대 등이 결합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성장한 뮤지션들이 시카고, 뉴욕, 캔사스 같은 도시로 이주하면서 재즈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1930~40년 2차 세계대전과 암울한 대공황 시대에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재즈는 스윙재즈이다. 10인 이상이 모여 연주했기 때문에 빅밴드 재즈라고도 불리는데, 연주자들의 합을 맞추기 위해서는 즉흥연주는 지양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즉흥연주가 줄어드는 대신 흥겨운 그루브로 인해 사람들이 댄스클럽에서 즐길 정도로 가장 대중적인 재즈였다그러나, 연주자들은 빅밴드의 일사분란함과 대중성이 강조될수록 점점 자신만의 새로운 재즈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뮤지션들은 영업 시간이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연주하며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는데, 연주자의 연주실력과 창의력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자유롭고 새로운 음악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재즈를 ‘비밥’이라고 부르는데, 비밥은 재즈정신을 되살린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으나, 뮤지션들이 자신들만 좋아하는 음악에 빠져들면서 대중성을 잃으면서 일반 사람들로부터는 점점 거리가 생겼다는 단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이런 대중과의 괴리에 대한 반성으로 1950년대 탄생한 경쾌하고 편안한 느낌의 재즈인 ‘쿨 재즈’가 발달한다.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 절제된 음향 등이 특징으로 한다. 특히, 기존의 재즈가 동부에서 기원-발달한데 반해, 쿨재즈는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발전했으며 백인 연주자들도 많이 참여하여 재즈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한다아방가르드 재즈라고도 불리는 ‘프리 재즈’는 기존 재즈의 규칙과 정체성에 회의를 품고, 틀을 벗어나 더 복잡한 리듬, 모호한 박자를 통해 자신들의 예술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예술성을 추구할수록 대중과는 멀어진다는 것은 진리! 사람들의 사랑은 그리 많이 받지 못했다1970년대 들어 새로운 시도를 통해 탄생한 것이 ‘퓨전 재즈’이다. 퓨전은 말 그대로 융합, 섞임을 뜻하는데, 미국에서 로큰롤이 대유행하면서 재즈는 완전히 외면당했고, 이에 대한 고민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록 음악을 받아들여 퓨전재즈를 만들어냈는데, 사운드가 단순하면서도 독특했다. 이 영향으로 재즈는 유럽과 일본,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이렇듯 재즈는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가도 예술성을 추구할 때는 외면을 받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재즈는 다양하게 발전하여, 비밥 연주자, 퓨전 재즈 음악가 등이 모두 재즈를 연주하고 만들고 있는데, 호텔이나 스튜디오에서 연주되고, 대학에서 교육되는 등 재즈는 음악의 한 분야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2. 주목하게 된 배경근 20년전 직장 동료들을 따라서 압구정동에 있는 ‘원스인어블루문’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었다. 재즈라는 음악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어떤 형태의 음악을 재즈라 하는지 재즈는 어떤 느낌인지 전혀 알지 못하던 나는 그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재즈를 처음 들어보는데도 나도 모르게 어깨가 좌로우로 흥겹게 왔다갔다 했다. 그 후에 재즈라는 음악도 찾아서 잠시 들어보기도 했다. 다시 한번 꼭 재즈를 들으러 가야지 했었던 나는 사실 그 이후 재즈바를 직접 가볼 기회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년전 영화 ‘라라랜드’를 접하게 되었다. 영화에 삽입된 노래들에 매료되었고, 주인공들의 로맨스, 그리고 남주인공의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직업 또한 매우 매력적이었다. 특히 정통 재즈를 추구하는 남자 주인공이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좇아 결국 재즈바를 여는 것을 보고 도대체 재즈라는 음악은 어떤 매력이 있기에 저렇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던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재작년 동네에 새로 생긴 빵집에서 한 달에 한 번 재즈 가수와 연주자들을 초빙해서 재즈공연을 열었다. 난 정말 너무 반가워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가서 보았다. 잘은 모르지만 친숙한 곡을 재즈로 부르면 정말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주인이 바뀌면서 더 이상 재즈공연은 볼 수 없었지만, 재즈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문화교양학과| 2022.02.16| 5페이지| 4,500원| 조회(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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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A+ 중간과제물 2021년 2학기 '취미와 예술'
    A+ 중간과제물 2021년 2학기 '취미와 예술'
    2021학년도 [2]학기 중간 과제물교과목명 : 취미와 생활학 과 :학 번 :성 명 :연 락 처 :O 과제명 :코로나가19가 확산된지 1년반이 지나면서 자신이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취미 생활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분석해 보고, 앞으로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지 않을 경우 어떤 변화가 추가로 이루어질지 전망해 보시오.I. 서론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감기와 유사하지만 원인 모를 질병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뉴스가 간간히 떴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부정만 할 뿐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뒤늦게 원인모를 질병이 발생했다고 인정했으나 그때는 이미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단계로 늦은 상태였다. 우리나라도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 여성이 첫 확진자로 판정되었다. 그렇게 어둡고 기나긴 터널은 시작되고 있었다II. 본론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는 모든 것이 멈춰야만 했다. 학교도, 가족간 왕래도, 국내여행도, 해외 여행도 모든 것이 멈춰서야만 했다. 이런 인류의 멈춤은 우리 개인들에게 그리고 사회에 나아가 국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국가간 사람의 이동은 물론 물류의 이동도 막히고 사람들은 모두 가면처럼 마스크를 쓰고 최대한 거리를 두고 만나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는 우리의 취미생활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는데, 코로나 시대의 취미생활의 변화에 대해 하나씩 분석해 보도록 하자첫째, 취미의 범위가 동적인 영역에서 정적인 영역으로현대사회의 취미활동은 실내든 실외든 대체로 동적인 활동이 많았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 모으는데만 급급한게 아니라 국내 및 해외 여행을 다니며 사는 곳에서 볼 수 없는 풍광을 즐기고 음식을 맛보며 인생을 노래하며 살았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각 국가들은 자국민 안전을 이유로 코로나 백신 접종증명서를 요구하고 있고 그나마 백신을 접종하고 해외에 나가도 그 나라 국민들이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위축되게 마련이며 굳이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기조로 사람들은 굳이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위험을 증가시키는 행동을 삼간다. 집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는다든지 티비를 보는 등 대체적으로 동적인 취미는 지양하고 정적인 취미를 추구하게 되었다둘째, 다중에서 개인으로취미는 아니지만(지인들과의 만남도 취미라면 취미) 삼삼오오 모이는 회식이라든지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 연극, 공연, 콘서트 등 대중이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하나 둘 금지 또는 제한되면서 사람들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또한, 모여서 해야만 하는 대부분의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테면, 야구, 농구,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등등 사람들이 모이고 어울려야만 할 수 있던 것들이 이젠 서로 꺼리거나 금지되어 할 수 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TV나 독서, 뜨개질 등 다른 사람 없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들을 찾아서 즐기게 되었으며, 나 역시도 과거에 비해 책을 많이 찾아서 읽게 되었다셋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위에서도 살펴봤듯이 기존에는 사람과 직접 만나야만 가능했던 취미들이 주류를 이뤘었다. 직접 동호회를 통해 만나거나, 경기에 참여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오프라인에서 가능했던 것들은 축소되고 온라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회식도 랜선으로 한다고 했을까? 빨라진 인터넷 덕분에 게임이나 유튜브, 넷플릭스 등은 사람들의 엄청난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코로나 기간 일반 제조업이나 항공업계가 죽을 쑨 반면 넷플릭스나 게임업체의 주식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랐다. 사람들도 직접 만나는 것을 지양하고 페이스북이나 카톡 등 온라인 메신저로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것을 더욱 지향하게 되었다넷째, 가정으로의 회귀코로나로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어 우울해졌지만 그래도 한가지 사람들이 저녁이면 집으로 향해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가족간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도 늘어나고 함께 TV를 보며 의견을 나누거나 아이들과는 게임을 같이 즐기며 가까워지게 되었다. 나의 예로 들자면 아이들과 보드게임 및 저녁 산책, 그리고 주말에는 가족 등산을 하는 등 가족과 함께 하는 취미가 많이 늘었다.III.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우리들의 취미는첫째, 여행 및 스포츠 등 활동적 취미의 축소 또는 소멸민족간, 국가간, 지역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타국으로의 여행이나 타지역으로의 여행 등이 어려워질 것이다. 타 민족은 외부로부터 질병을 가지고 들어오는 존재로 인식이 고착화되면서 배타적 성향을 보일 것이며, 동일 국가내에서도 코로나가 더 심한 지역에서 여행오는 사람들에 대한 배척은 강해질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는다면 취미로서의 여행은 향후 수십년 내에 많은 부분 축소될 것이다. 물론 비즈니스맨들은 어쩔수없이 먹고 사는 문제로 세계를 누비겠지만 말이다. 많은 스포츠 종목들 또한 이 분위기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접촉을 지속적으로 꺼리게 되면 그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함께 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현재 인기없는 종목들의 경우 향후 수십년후에는 결국 소멸될 것이다. 극단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공통교양과목| 2022.02.16| 4페이지| 4,500원| 조회(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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