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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llace Stevens [The Snow Man]
    Wallace Stevens “The Snow Man”The Snow ManOne must have a mind of winterTo regard the frost and the boughsOf the pine-trees crusted with snow;And have been cold a long timeTo behold the junipers shagged with ice,The spruces rough in the distant glitterOf the January sun;and not to thinkOf any misery in the sound of the wind,In the sound of a few leaves,Which is the sound of the landFull of the same windThat is blowing in the same bare placeFor the listener, who listens in the snow,And, nothing himself, beholdsNothing that is not there and the nothing that is월라스 스티븐스의 「눈사람」은 평소 시인이 관심이 많았던 상상과 현실이라는 주제에 대한 시인의 견해가 드러나있는 시이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인간이 믿고 있었던 궁극적이고 추상적인 존재인 신을 상실한 황폐화된 인간들이 실제를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시인은 신과 종교가 인간들의 내적작용으로 만들어진 공상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신과 종교가 사라져야만 인간이 실제에 다가설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러한 상태에서 시가 인간의 내적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과 상상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배제하고 그의 시를 봤을 때, 시인은 인간의 감정적인 연상작용, 즉 자연물에 인간의 감정을 대입시켜 전달하거나 인간을 주체로 하고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객체로 해서 인간 중심의 선입견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지양하고 주제와 대상 사이에 어떤 구별도 없이 일치되어,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스티븐스가 이 시를 썼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봤을 때 많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시인이 인간들이 감각적 영역으로는 알 수 없는 비인간적인 영역인 실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눈사람'이 되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의의를 가진다.「눈사람」에서 스티븐스는 작품의 가장 첫 부분에서 겨울의 마음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겨울의 마음을 가져야만 "눈 덮인 소나무 가지, 얼음으로 거칠어진 노간주나무, 멀리서 반짝이는 가문비나무"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의 이러한 묘사는 흔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겨울이라는 자체를 겨울의 본질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오는 것, 얼음이 어는 것과 같이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현상을 통해 받아들이게 된다. 이와 반대로, 스티븐스는 현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겨울의 마음을 가지는 것, 즉 겨울이라는 실제를 먼저 아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동시에 감각적인 인식이 실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라는 거도 강조했다. 시 속에서는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들이 사용되었다. 인간의 감각은 인간의 이성적, 정신적 작용보다는 세상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가장 원초적이고 본원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시인은 실제를 인식하는 것이 그저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것임을 시를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두 번째 연에서 "오랫동안 추위에 떨어야 한다"라는 구절 역시, 겨울의 마음을 가지는 것과 같다. 누구에 따르면 이 구절은 자신의 내부를 송두리째 박탈 당하고 외부의 황폐함과 일치시키는 행위인 동시에 실재를 인식하는 본원적인 단계이다. 여기에서 겨울이라는 시의 계절적 배경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생명이 새롭게 소생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은 인간의 황폐하고 공허한 내면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겨울은 정서적으로 고립감, 외로움, 슬픔 등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시의 전반부에서 겨울의 계절적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묘사를 하고, 뒤 따르는 부분에서는 겨울의 바람소리에서 어떤 슬픔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결국 인간의 감정을 투사하는 사고를 지양해야만 실제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시인의 견해를 한층 더 강화시키고 있다. 바람소리에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결국, 인간이 겨울이라는 힘들고 외로운 계절적 배경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자연에 투영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티븐스는 바람은 똑같은 바람이라고 시 속에서 말했고, 이는 결국 인간 중심의 인식에 대한 스티븐스의 의견을 보여준다.인간의 가치관과 생각, 감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스티븐스의 부정적인 견해는 마지막 연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기에서 "눈에서 듣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눈사람을 의미한다. 눈사람은 겨울을 받아들이기 위해, 겨울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 아무 말도 없이 눈 속에서 마냥 듣고 있는 수동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자신이 무"라는 것은 결국 스티븐스가 강조했던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나 선입견을 버리는 자기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실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자신이 무"라는 것에 대하여 눈사람이 황폐화된 현실 속에서 모든 판단능력을 상실하고 새로운 실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만, 이 시 속에서 눈사람은 겨울의 마음을 알고 있는, 실제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보다는 더 나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존재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시의 제목인 「눈사람」은 시 속에서는 한 번도 직접적으로 쓰이지 않지만, 시의 구절들을 통해서 드러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시 속의 눈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으로 만들어진 눈사람과는 다르다. 눈사람은 눈으로 만들어졌지만 눈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에 대한 인간의 선입견을 눈이라는 대상에 투영하여 만들어낸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에서 눈사람이란 눈이라는 자체에 동화된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스티븐스는 눈사람을 제목으로 선택하고, 시 속에서 그 모습을 표현함을 통해서 인간이 실제를 인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방법에 대한 스티븐스의 생각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무와 존재하는 무를 바라본다."라는 구절에서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무를 바라본다는 것은 연상작용 없이 그대로 인식하는 실제를 인식하는 방법의 깨달음을 의미하고, 거기에 있는 무를 본다는 것은 텅 빈 실제 그 자체를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궁극적으로 스티븐스는 이 시를 통하여 인간이 실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실제 그 자체와 동화되어 실제와 현상을 더불어 아는 겨울의 마음을 가진 눈사람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스티븐스가 말하고 있는 눈사람은 눈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나 선입견대로 빚어진 존재인 눈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라, 눈과 동화된 눈이 되어버린 사람을 의미한다. 실제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는 비인간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인식자체도 힘들고, 겨울밤에 만들어졌다가 다음날이면 녹아버리는 눈사람의 짧은 모습처럼 순식간에 스쳐지나간다. 인간의 생각이 너무 많이 개입되게 되어 현실이 비틀리고 왜곡되는 것은 스티븐스가 살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진 지금에도 커다란 문제로 남아있다. 스티븐스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본질을 제대로 알기위하여, 감각을 통하여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기 위하여, 인간중심의 가치관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자기정화를 통하여 연상작용을 지양하기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제에 도달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눈사람이라는 이 모든 노력을 하고 있는 대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실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Hyperlink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ilovable&logNo=220760823897&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topReferer=https%3A%2F%2Fsearch.naver.com%2Fsearch.naver%3Fdisplay%3D15%26f%3D%26filetype%3D0%26page%3D2%26query%3Dmilovable%26research_url%3D%26sm%3Dtab_pge%26start%3D1%26where%3Dweb&directAccess=false"
    영어영문학| 2022.05.31| 3페이지| 3,000원| 조회(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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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형의 집 A doll's house 에세이
    ‘인형의 집’은 해피엔딩인가?노라는 떠났다. 믿었던 사랑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결혼을 한 지 8년 후에야 자신을 찾기 위하여 떠났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인간이라는 개인적, 개성적 존재가 아닌 인형과도 같은 수동적이고, 유희적인 소유물로 생각했다. 노라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남편이 모든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자신은 그를 위해 울어줄 것이라는 동화적인 상상을 보면 노라는 어느정도 남편의 사랑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 역시도 남편의 사랑에 대하여 믿었다. 그는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남편처럼, 권위적이였지만 늘 노라를 부를 때 귀여운 애칭으로 불렀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기에 노라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후 불명예를 뒤집어써주긴 커녕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남편을 보면 더 큰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노라의 “Tovald, in that moment I realized that for eight years I had been living here with a complete stranger and had borne him three children"이라는 대사에서 그 동안의 결혼생활에 대한 후회를 깨닫는 노라가 안타깝고 가엽다. 비록 인형과도 같은 아내의 역할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고 싶었던 노라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노라는 결국 떠났다. 그것은 단순히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노라는 자기 자신, 인간으로서의 그녀를 찾으러 떠난 길이였기 때문이다. 아마 노라는 자신의 선택으로 집을 떠났기에 결코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인형의 집’에서 소설 속의 노라라는 주인공과 그 엔딩을 보면서 떠올랐던 인물은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나혜석이였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해방론에 가까운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고 기존의 전통적인 여성관에 대하여 도전적이였다. 또한 그녀의 작품인 ‘인형의 가’는 그녀가 젊은 시절, 또 다른 ‘노라’가 되기를 열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인형의 가’에는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 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자”라는 구절도 있다. 이것은 마치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여성들이 적극적인 여권 신장을 위해 “나는 노라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녀의 삶에 있어서 그녀는 노라였다. 그러나, 그녀의 현실은 너무나 시대를 앞서갔기에, 시대와 동떨어져 소외되고 말았던 이혼녀였고, 결국 행려병자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인문/어학| 2021.03.12| 1페이지| 2,000원| 조회(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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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lliam Wordsworth & Alfred Tennyson 작품 비교
    19세기 영미시상실의 안에는 성숙이 있다Willam Wordsworth의 “Ode : Intimations to Immortality”와 Alfred, Lord Tennyson의 “Break, Break, Break”에는 모두 ‘상실’이 나타나고 있다. 두 시 속에서는 상실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점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두 시 속의 정서는 상실로 인한 슬픔이 주를 이룬다. 시 속의 화자는 모두 상실로 인하여 비탄에 잠겨있으며, 슬픔에 잠겨있는 화자들의 눈에는 그들을 제외한 모든 풍경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Wordsworth의 시에서는 아름다운 숲 속의 풍경이고, Tennyson의 시에서는 바다의 풍경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 속의 화자들은 자신들의 소외감과 고독감을 말한다.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 결코 포함될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들처럼 보여진다.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상실로 인한 슬픔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러나, 두 시 속에 나타나는 상실의 대상은 분명히 다르다. Wordsworth의 시 속에서의 상실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의 상실이라면, Tennyson의 시 속의 상실은 자신의 곁에 존재했었던 구체적인 대상의 상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실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상실에 대처하는 화자들의 태도도 시 속에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William Wordsworth의 시 속에서는 먼저 참담한 화자의 절망감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보였던 것들이 화자에게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화자는 자연과 합일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은 아름다운 풍경, 즐거운 모습들과 대비되면서 더욱 가중된다. 새도 양도,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뛰노는데 화자는 비탄에 잠겨있다. 그러나 시인은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해 감정을 표출하고 이를 통하여 잠깐 동안의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외부의 풍경을 묘사하며, 화자 역시 자연과 합일 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화자의 눈은 자꾸만 자신의 내면을 향하게 되며 잃어버린 빛에 대한 자신의 상황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시 속에서 화자가 상실한 것은 ‘빛’이며, 신과 유리되어 자라남에 따라 빛은 사라져갔던 것이다. 이는 결국 사람의 근본적인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속에서는 상실을 통한 슬픔과 극복하지 못할 상실의 한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라는 구절을 통하여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힘의 원천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화자에게는 분명히 여지껏 있어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많은 남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결국 시를 통하여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들의 불멸성을 찬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실의 극복을 통한 성숙의 과정에서 화자는 자연과의 합일에서 느꼈던 기쁨과 다른 새로운 기쁨 역시 찾을 수 있게 된다. “Another race hath been, and other palms are won”이라는 구절처럼 상실이 끝인 것은 아님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아닌 그에 대한 극복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상실을 깨닫고 성숙해진 화자의 모습이 의미를 전하고 있다.Alfred, Lord Tennyson의 “Break, Break, Break”에서 역시 화자의 상실이 보여진다. 이 시에서 파도가 치고 있는 바다는 격렬한 슬픔에 빠진 화자의 감정 상태를 대변한다.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감정에 휩싸여있다. 이러한 화자의 소통의 불가능은 잠깐의 표출을 통해서나마 안도감을 얻었던 첫 번째 시의 화자와는 대비된다. 슬픈 화자의 눈에 어부의 아이와, 노래를 부르는 뱃사공이 너무나 행복해보인다. 어부의 아이와 뱃사공의 행위를 나타내는 ‘shout’나 ‘sing’은 소통이 가능함을 의미하며 소통이 불가능한 화자와 대조적이다. 그 다음 화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의 쉴 곳으로 돌아가는 큰 선박들이다. 그러나 화자는 사라져버린 손의 감촉과 멎어버린 목소리를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쉴 곳을 상실한 것을 말해준다. 화자는 물리적인 쉴 곳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쉴 곳을 상실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가 친구였던 Arthur Hallam의 상실을 슬퍼하며 쓴 비가라는 것을 안다면, 시인의 감정상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화자의 상실에 대한 슬픔이 더욱 커진다. “But the tender grace of a day that is dead / Will never come back to me.”라는 구절에서 화자는 소중한 은총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 결국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Tennyson의 시 속에서의 상실은 결국 상실로 인한 슬픔의 회복에 다다르지 못하고, 상실과 그로인한 비탄에서 멈춰버리고 만다.이처럼 두 시는 모두 상실을 다루고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상실을 결론짓게 된다. 상실로 인한 슬픔에서 멈추느냐, 그 슬픔에서 더 나아가 성숙하느냐의 차이이다. Wordsworth의 시 속에서 상실한 ‘빛’은 찬란했던 순간에서 암흑으로 가듯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점차 희미해진 것이다. 따라서 시 속의 화자는 상실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고, 그 상실 속에서 자신의 상황을 조금씩 인식해 나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Tennyson의 시 속에서의 상실의 대상은 ‘hand’나 ‘voice’라는 단어를 통하여 구체화되는 물리적 대상이다. 따라서 화자는 상실의 물리적 빈자리를 느끼며 더 극심한 상실의 슬픔에서 허덕일 수 밖에 없다. 비록, 시 속에서의 화자는 상실을 통한 성숙으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이 이후에는 성숙의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몰아치는 격랑과도 같은 감정의 파도가 가라앉고 나면, Wordsworth의 시 속 화자처럼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Wordsworth의 시 속 화자가 모든 기억을 망각하지 않고, 작은 불씨로 남은 빛을 계속 기억해서 힘을 얻는 것처럼, Tennyson의 시 속 화자는 상실의 대상과 함께한 추억의 회상 등을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21.03.12| 2페이지| 2,000원| 조회(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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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익스피어 작품 연구_Much ado about nothing,The merchant of Venice
    셰익스피어의 ‘Much Ado about Nothing’ & ‘The Merchant of Venice’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겸 극작가로, 르네상스시기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극작품의 세계를 열어, 다양한 관객층의 사회적인 요구를 수용하고,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그의 작품은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장르의 순수성, 하나의 사건이 하루에 한 장소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3 unity, 왕은 왕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혹은 남자는 남자답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신분에 맞게 행동해야한다는 decorum이라는 신고전주의적인 작품의 경향에서 벗어나 중세시대 작품의 특징과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의 특징을 적절히 섞어서 많은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으며, 수업시간에 다룬 'Much ado about nothing'도 그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희극인 ‘Much ado about nothing’과 ‘베니스의 상인’은 비슷한 시기에 쓰인 작품이기 때문에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을 보다 잘 알기위하여 두 작품의 플롯, 캐릭터, 주제의 면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보고자 한다.먼저, 플롯에서는 단일한 플롯이 아니라 여러 가지 플롯이 교차된다. 작품에서는 hero와 claudio의 플롯, benedick과 beatrice의 플롯, don john의 음모플롯 총 3개의 플롯이 구성을 이루고 있다. 다른 희곡인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역시 포셔와 아버지간의 사위 선택 계약, 샤일록과 안토니오 간의 삼천 다카트에 관한 인육계약, 포셔와 바사니오의 반지계약 등 총 3개의 계약 플롯이 함께 진행된다. 또한 제시카와 로렌초의 이야기같은 서브플롯이 중심 플롯을 보조하며 진행된다. 다양한 플롯들의 교차로 인하여 하나의 플롯에만 집중하지 않고, 개별의 플롯이 가진 비극성과 희극성을 조화시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희곡이 희곡이어야 하고, 비극은 비극이어야 하는 이전의 ‘장르의 순수성’이라는 신고전주의의 보편적인 법칙에서 벗어나서 복합적인 경향을 띄고 있다. 어쩌면 ‘희극’이라는 말보다 ‘희비극’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도 당연한 이유이다. 'Much ado about nothing'에서는 돈 존의 음모로 인하여 클라우디오가 히어로의 부정을 결혼식에서 발표하고 히어로는 기절하는 것이 비극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희,비극의 적절한 조화를 통하여 극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결국은 해피엔딩의 결말을 맞이한다. 해피엔딩의 결말은 희극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전형적인 해피엔딩에 어울리지는 않는다. 노스롭프라이의 ‘비평의 해부’에서 “희극적 결말이란 극의 마지막에 형성되는 사회에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고, 방해인물들은 단순히 배척되기보다는 조화되고 전향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Much ado about nothing'에서 음모를 사주했던 Don John과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의 생명을 앗아가기 위한 고의적, 악의적인 계약을 맺었던 샤일록은 모든 사람들의 해피엔딩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비극적 결말의 잔존을 암시한다.인물면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특징이 있다. 두 작품에서는 또한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Much ado about nothing'의 여자 주인공인 히어로와 베아트리스, ‘베니스의 상인’의 여자 주인공인 포셔이다. 'Much ado about nothing'과 ‘베니스의 상인’에서 여자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곳은 각각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과, 벨몬테라는 비교적 봉건적인 위계질서가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세 명의 여자주인공은 비슷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히어로는 세 명의 여주인공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그 시기의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에 걸맞고 특징이 없는 편이다. 클라우디오가 자신의 부정에 대하여 오해하고 그녀를 불신할 때, 그녀는 별다른 행위를 취하지 못한다. 베아트리스의 경우에는 여자라는 성별과, 자신의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베네딕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싸움을 한다. 또한 얼떨결에 자신들의 사랑 아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까지 하게된다. 이는 결국엔 관심없는척을 하다가 가장 먼저 결혼이라는 사랑의 합일점에 골인한 베아트리스의 모순성, 혹은 재미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지는 여자주인공은 포셔이다. 포셔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자신의 사랑에 대한 절제능력, 그리고 자신의 본분을 잘 알고 실천하는 조화능력을 통하여 극의 전반을 모두 통제하며, 궁극적인 주제를 향하여 나아가는 역할을 한다. 당시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여성들의 그리고 인물들의 특징을 통하여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신으로 인한, 혹은 신을 위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을, 인간 그 자체라는 새로운 주제로 변화시켜서 휴먼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었다.
    인문/어학| 2021.03.12| 2페이지| 2,000원| 조회(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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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과 m.butterfly
    「M.Butterfly」욕망의 끝, 죽음을 맞이하다.환상이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환상은 우리에게 있어서 일종의 자극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가진 환상에 매료되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그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너무도 허황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또 다른 환상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새로운 환상을 찾기 위하여 노력한다. 결국 우리 삶의 한 귀퉁이에서는 끊임없이 환상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이러한 환상은 우리들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그 중에서도 자끄 라캉의 욕망 이론은 욕망과 인간의 무의식 관계를 상상계(the imaginary), 상징계(the symbolic), 실재계(the real)라는 주체 형성 과정 모델 안에서 설명하였다. 욕망의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실재라고 믿는 단계는 상상계이고, 그 대상을 얻는 순간은 상징께, 그리고 또 다른 욕망의 대상을 찾아나서는, 그래서 상상계와 상징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단계가 실재계이다. 상상계에서 너무나도 원하던 이상적인 타자의 모습과 자신이 결국 일치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고 이러한 깨달음은 다시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상상과 깨달음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우리가 모체에서 분리되어 낯선 세계에 떨어지는 순간 생겨나게 되는 것이므로, 인간에게는 근원적인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환상을 가지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환상에 얼마나 깊게 매료되느냐의 문제이며, 「M.Butterfly」는 환상이라는 괴물을 위해, 상상계와 상징계의 지루한 반복을 끊어내고 죽음을 택한 남자의 이야기이다.극 속에서 르네 갈리마르는 다양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보기엔 모든 것이 우월한 위치에 있는 영락없는 백인 남자이지만, 마르끄가 백인 남자를 칭하는 ‘foreign devil'이 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여기에서 갈리마르의 첫 번째 욕망은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것이다. 마르끄와 갈리마르가 나오는 장면에서 갈리마르는 소심하고, 망설이고, 또 두려워한다.Gallimard : You go ahead... I may come later.Marc : Hey, Rene - it doesn't matter that you'rt clumsy and got zits - they're not looking!Gallimard : Thank you very much.Marc : Wimp.마르끄는 갈리마르와 다르게 겁이 없고, 호탕한 남성다운 모습을 가진다. 그렇지만 갈리마르는 마르끄와 같은 남성다움을 가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least likely to be invited to party'에 선정된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애초에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것은 갈리마르에게 무리였음을 깨닫는다. 오리엔탈리즘적인 관점에서 남성성이 거세된 동양남자들과는 다르게, 정복적이고 당당한 남성성을 지닌 서양남자 중의 하나인 갈리마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데 실패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두 번째 갈리마르의 욕망은 사회적인 지위 획득이다. 소녀 르네가 말했듯이 사회적인 권력과 지위는 남성성 결핍을 채우는 유일한 방안이다.Renee : So, if I'm a guy with a small one, I'm going to build a really big building or take over a really big piece of land or write a really long book so the other men don't know, right?그렇지만 그는 영사가 말했듯이 감원대상 일 순위가 될 만큼 그다지 사회적인 지위나 역할에 있어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헬가와의 결혼 역시 사회적 권력에 대한 갈리마르의 욕망을 보여주며,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다. 그렇지만 헬가와의 결혼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갈리마르에게 주어진 것은 사회적인 권력, 힘 그 자체라고 보긴 어려웠다.Gallimard : where l took a vow renouncing love. No fantasy woman would ever want me, so, yes, I would settle for a quick leap up the career ladder. Passion, I banish, and in its place - practicality!그래도 어느정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자리를 차지한 갈리마르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욕망의 결핍이 남아있다. 사랑을 포기하는 맹세를 하고, 열정 대신 실용성을 택한 갈리마르의 선택은 결국 그의 환상 속 여자들이 그를 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결국 갈리마르의 모든 욕망은 송에게로 귀결된다. 송이야말로 이전에 갈리마르가 가졌던 모든 욕망을, 모든 상상계를 실현시켜주는 실재하는 존재이다. 송과의 만남을 통하여 갈리마르는 새로운 욕망을 찾아 떠돌지 않아도 되었다. 송은 이자벨과 달리 갈리마르에게 순종적이고, 갈리마르에게 수동적인, 그의 반쪽짜리 남성성 앞에 굴복하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초여성성을 가진 여자다. 물론 송과의 만남을 통하여 갈리마르는 기묘한 힘을 느끼며 뚤롱에게도 인정받는다.Toulon : A year ago, you would've been out. But the past few months, I don't know how it happened, you've become this new aggressive confident ... thing송을 통한 욕망의 실현을 통하여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새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욕망의 결정체였던 송이, 갈리마르의 완벽한 환상속에서 걸어나와 그가 상상해왔던 나비와 전혀 다른 타입의 ‘남자’가 되어버렸을 때, 갈리마르는 결국 자신의 환상속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갈리마르는 죽음을 택했다. 상상계와 상징계의 반복과 실재계에서의 삶을 벗어나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죽음이다. 갈리마르의 마지막 욕망은 결국 환상의 지속이였다. 새로운 욕망을 찾아 나서기엔 갈리마르는 자신의 환상에 너무 깊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갈리마르의 완벽한 환상대로라면 송은 숭고하고 순결한 사랑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야 했지만, 현실에서는 결국 갈리마르가 송에게 이용당하고 끝내 죽음을 택하게 된다. 재판장면에서 송은 정보제공에 대한 질문을 한번도 받은적이 없다고 답했지만, 갈리마르는 자신이 송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환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송이 필요했기 때문에, 갈리마르는 자신의 실재를 망각하고 송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까지 환상을 지속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송에 대한 갈리마르의 감정은 사랑이였을까?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는 사랑에 대하여 이런 내용이 있다.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내 욕망이며, 사랑의 대상은 단지 그 도구에 불과하다. 나는 상상계를 위해 이미지를 희생한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그 사람을 정말로 단념해야 하는 날이 오면, 그 때 나를 사로잡는 격렬한 장례는 바로 상상계의 장례이다. 나는 그이/그녀를 잃어버려서 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결국 상상계의 충족을 위해 송을 이용했고, 송에 의해 이용당했던 갈리마르의 감정 역시 일종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갈리마르는 자신의 상상계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사용했던 이상적인 여인인 송이 결국은 남자였다는 상상계의 극단적인 장례를 믿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것이다.결국 「M.Butterfly」는 개인의 인식의 편협함과 한계를 꾸짖고 있다. 갈리마르가 송의 ‘여성다움’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줍음과 순종적인 면모에 매료되었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 역시 언젠가는 우리를 배신할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기 다른 인종과 성을 소유한 개인들이 맺어놓은 상호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아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갈리마르를 통하여 주체와 타자의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또한 극 속에서 갈리마르의 욕망이 지속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인식의 한계를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오리엔탈리즘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문제로 확장시킬 수 있는 여지를 제공받게 된다. 「M.Butterfly」에서는 남성 대 여성의 소유, 정복의 관계가 에로티시즘적 요소를 통하여 서양 대 동양의 제국주의, 식민관계 구도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송이 재판장면에서 언급했던, ‘국제적 강간심리’가 바로 이 확장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Song : The West thinks of itself as masculine-big guns, big industry, big money - so the East is feminine-weak, delicate, poor ... but good at art, and full of inscrutable wisdom - the feminine mystique.송의 대사 속에 나타나는 동양과 서양의 모습은 갈리마르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환상, 그리고 그 환상속에서 송과 갈리마르 자신의 모습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갈리마르는 송에 대하여 성적인 판타지를 느끼고, 그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렇지만 송은 단순히 그의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존재라기 보다는 그에게 남자라는 남성우월의식과,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관계,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통하여 제국주의적인 시각을 일깨우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송을 만나기 전에는 모든 일에 소극적이고 망설이던 그가 송을 만나면서부터 자신감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갈리마르는 정복자가 가져야 할 남성우월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각을 각성하게 된 것이다. 이면적인 갈리마르의 모습은 한 편으로는 동양을 경멸의 대상과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면서도, 그것의 전통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신비화를 시키는 서양의 이중적인 잣대를 잘 보여준다.
    인문/어학| 2021.03.12| 5페이지| 2,500원| 조회(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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