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윤리 ? 1주차윤리의 의미서양에서 윤리란?- 그리스어 에티케(Ethike)에서 유래됨- 윤리는 도덕적 원리의 체계임- 윤리는 개인과 사회에서 선(Good)에 관심 있음-> 이익에 대한 관심은 경제-> 표에 대한 관심은 정치- 관습, 습관, 인성 또는 성향의 의미-> 단어 Ethos에서 파생됨- 선과 악, 옳고 그름, 덕과 악, 정의와 범죄, 인간의 도덕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서양에서 도덕이란?- 라틴어 모레스(Mores)에서 유래됨- 좋고 나쁜 행동과 성격에 대한 일련의 개인적 또는 사회의 기준- 도덕은 올바름을 아우르는 원칙을 가리킴- 도덕과 윤리는 어원이 다름- 라틴어 MOS = 매너, 습관, 관습을 뜻함- 사회나 사회단체가 수용할 수 있는 관습, 규범, 행동-> 그룹이나 사회 그 자체의 도덕-> 문서화된 법률에 근거한 것이 아님“풍습 혹은 관습이라는 같은 의미를 지닌 다른 문화권의 언어”윤리와 도덕은 서양 측면에서 보면 어원이 다름윤리와 도덕의 어원- 옳고 그른 행동에 대해 사용됨- 도덕(Moral)- 윤리(Ethics)-> 학문적 사용 : 직업윤리, 의료윤리, 변호사윤리 등-> 전문 영역의 행동 강령 또는 규칙에 의한 뒷받침이 되는 원칙- “도덕에 관한 학문을 윤리학이라고 함”4. 동양에서 윤리란?- 예기에서 처음 사용됨- 악이라는 윤리를 통하는 것이다. (통윤리자야)- 인간의 조리- 사람의 이치동양에서 도덕이란?- 유가나 도가에서 많이 나오는 개념- 인간이 머리로 알 수 있는 길대로 감을 통해서 마음에 얻게 되는 것으로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 길대로 가다보면 마음에 얻는 것이 있음 -> 덕- 눈으로 모습을 보지만 여러 가지를 통합해서 판단윤리와 도덕의 구분- 바르다는 윤리적 덕목 중에서 대표적인 것- 윤리는 사회적 규범, 도덕을 개인적 규범으로 구분-> 윤리는 개인이 자율적으로 받아들여야 자신의 것이됨-> 정직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자율적인 문제로 자기해석이 다른 것임윤리, 도덕과 반대(대립)되는 용어- 부도덕, 비윤리적- 옳고 그른 도로 타자화된 나- 페르소나로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면 현실공간으로 돌아왔을 때 본래 자아와 괴리되기도 함사이버공간이 주는 이익- 변신욕구 충족- 후면 영역의 휴식처로서의 기능- 익명성으로 인한 자신감, 자아감- 현실공간과 사이버 공간을 구분해서 적절하게 활용해야 하며 너무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함인터넷 윤리 ? 4주차경제적 인간경제적 인간이란?- 어떤 선택을 할 때 ‘이익’과 ‘손해’의 여부를 선택하는 인간- 윤리적 인간 : 옳으냐, 그르냐로 따짐- 경제적 인간 : 이익을 중심으로 따짐- 정치적 인간 : 표의 증가 여부로 따짐경제적 인간- 상황에 따라 각각의 잣대가 우선시 될 수 있음-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인터넷을 함경제적 존재 = 합리적 존재- 이익인지 손해인지 따질 수 있는 존재- 합리적 존재가 이치에 부합된다. = 이성적 존재- 작은 이익보다 큰 이익을 선호하는 존재합리성에 초점을 맞춘 관점- 인간과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을 분석해야 함- 방법론적 개인주의 : 사회현상들은 개인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개인과 동기와 행동을 검토해야 사회현상을 이해할 수 있음.합리적 선택이론-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택하고 있음-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 행동에 초점을 맞춰서 분석함사익 극대화 존재- 자연인 = 합리적 존재- 나의 이익 > 남의 이익- 공동선 추구장 자크 루소의 사슴사냥 이야기- 사슴을 잡기 위해 공동으로 포위망을 형성함- 중간에 토끼가 나타나면 토끼를 잡으러 감- 토끼는 내 것이지만 사슴은 공동의 것임- 공동의 이익이 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익을 추구함- 사슴을 따라가는 것 : 공익 추구, 일반의지- 토끼를 따라가는 것 : 사익 추구, 개별의지, 특수의지사이버공간의 익명성기게스 반지(Ring Of Gyges)- 플라톤 저서 에 나오는 마법 반지- 기게스는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도 있고 드러낼 수 있는 반지를 갖게 됨- 기게스는 반지를 얻고 왕실에 침입하여 왕비를 겁탈함- 왕을 죽인 후 자신이 왕이 됨- 익명성을 추구할 경우 입인- 사이버 공간에서 이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음- 그러나 현실 공간에 견주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무이행 행위자임정언명법 행위자의 사례- 식당에서 예쁜 후추통을 보았을 경우- 처음부터 후추통을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음- 화단의 예쁜 꽃을 보았을 때- 화단의 꽃을 그대로 둠정언명법 행위자의 한계- 캠퍼스에 산삼이 있다면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될 수 있음- 무임승차적 사고, 고립자적 사고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공공재를 산출할 수 있게 됨덕을 갖춘 존재와 법 의무를 이행하는 존재- 도덕적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 덕을 갖춘 존재라고 볼 수 있음- 도덕적 의무를 이행한다는 법 의무를 이행한다는 것과 다름- 길거리에 굶주린 사람을 보았을 때- 구조하는 것이 나의 법적인 의무는 아님- 그 사람을 도와준다면 법 의무를 뛰어넘는 도덕적인 의무 이행을 행하는 것덕을 갖춘 존재- 덕은 실천해야 생김- 우정도 친구에게 실천해야 싹틀 수 있음- 의무 이상의 행위로 볼 수 있음- 무임승차적 생각을 하지 않음- 고립자 문제가 해결 됨- 나 스스로가 입법자, 덕을 갖춘 존재로서 행동함사이버 공간에서 무임승차를 하는 행위- 족보 사이트를 신고하지 않음- 먼저 시험을 치른 학생이 족보를 팜- 족보 매매 저지를 하기 위한 행동에서 정의로움이라는 덕이 생김덕을 갖춘 사례- 리트윗을 함- 좋은 것을 나만 알기 아깝다고 생각해 리트윗을 함- 결식 아동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것- 실천을 할 때 덕을 향유할 수 있음정인명법 행위자- 사이버 공간에서도 의무이행 이상의 덕을 갖춘 행위자로서 행동할 수 있음표현의 자유- 헌법 상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율르 침해 받지 아니한다.(형법 제 17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 받지 아니한다.(형법 제 18조)-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형법 제21조)- 비언어적 매체, 행동 등에 의해서 표현될 수 있음헌법에서 의미하는 자유- 제약하거나 침해하지 않음- 방해 받지 법 제 16조)- 통신비밀의 불가침 조항 (헌법 제 18조)로드니 스몰라(미 법학자)의 프라이버시권-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개인이 사생활적인 행위나 관계를 즐길 수 있는 자율권(Autonomy)- 개인적인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은둔(Seclusion)권리- 정보적 프라이버시(Informational Privacy) : 정보의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프라이버시 침해유형- 도용 : 타인의 성명이나 초상 등을 본인의 동의 없이 영리 상 이용하는 것, 성명권, 초상권- 침입 : 파파라치, 스토킹, 괴롭힘, 무단침입, 슬픔에 대한 침해 등- 공중의 오인- 개인적인 일의 공표 : 비극을 상품화하는 행위프라이버시 보호 제도화의 필요성- 다른 사람을 인격체로서 국가가 나서 보호해줘야 함- 개인이 서로 보호해주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함정보 프라이버시권 : 정보화시대에 자신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의미, 개인정보의 보호와 함께 개인 정보의 이용에 초점개인정보의 다양화 : 정보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음.정보 프라이버시의 종류- 기록정보 : 이름, 성별, 주소지, 이메일, 전화번호, 각종 식별번호 등등의 개인정보- 생체정보 : 신체로부터 추출, 복사된 정보- 통신정보 : 각종 통신수단을 통한 정보- 위치정보개인정보 수집과 유출- 주민등록증 제도가 없는 영국에서는 자신을 증빙하는 것이 어려움, 은행 계좌가 없으면 집을 구할 수 없으며 거주지가 없으면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없음-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 제도는 개인의 신원을 증명하는 편리한 제도임- 위치정보 서비스의 문제점- 파놉티콘으로 모든 범죄자를 감시할 수 있음개인 정보 유출 사례- 명예퇴직자의 개인 신상정보 유출- 의료정보서비스(보험회사에 제공 등)- 전산용지로 만든 붕어빵 포장지 : 주민번호, 이름, 직업 업종 누출- 몰래카메라인터넷 프라이버시의 침해 위험 요소- 검색엔진, 운영체제, sns, 해킹, 정부기관의 검열- 물리적인 방법 : 핸드폰을 빌려주거나 잃어버렸을 경우- 언론 : 인권침해, 신원노출- 인공지, 배포권, 대여권, 2차적 저작물 작상권 등등저작 인접권-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 등 공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자본을 투자한 자에게 부여되는 권리저작재산권의 제한- 지적재산권은 저작자에게 있으며 기본적으로 보호됨- 공익을 위해 제한될 수 있음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 생존기간 및 사후 70년 간 보호됨저작권 침해 구제- 민사구제저작권 침해 여부 결정 기준- 독창성- 접근 가능성- 유사성공정한 사용의 원칙-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함-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 출판되지 않는 것이 출판된 것보다 더 강력한 보호를 받음- 저작물의 사용 분량과 질-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경우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음- 패러디는 저작권 침해가 아님- 저작권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 로빈후드 효과 vs 역 로빈후드 효과영합 게임과 비영합 게임- 영합게임 : 한쪽이 얻으면 다른 한쪽은 잃게 되는 것- 비영합 게임 : 이익이 되는 게임 또는 손해가 되는 게임, 윈윈 또는 루즈루즈, 죄수의 딜레마, 비겁자 게임학습 윤리- 배울 학 + 익힐 습- 배우고 익히는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학습윤리를 지킨다는 말은 학문적 품위를 지킨다는 말과 같음연구 윤리- 학습윤리보다 더 넓은 의미에 해당함- 연구자로서, 학자로서의 의미를 가짐출석에서의 부정- 대리출석- 전자출석을 위한 부정과제물 작성 및 제출 시 부정- 대학에서 과제물은 보충학습, 자기탐구, 심화학습, 출석대체, 시험대체 등 다양한 목적에서 부과됨- 위조, 변조, 표절, 부당한 저자표시, 중복제출, 무임승차- 위조 :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또는 연구 결과를 허위로 만들어 내는 행위(경험자료에서의 위조 -> 실험 및 설문조사, 통계 조작, 문헌자료에서의 위조 -> 원문에 없는 내용을 있는 것처럼 꾸며냄)- 변조 : 연구, 재료장비, 과정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함, 데이터를 인위로 변형 혹은 삭제하여 결과를 왜곡함.- 표절 :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 연구내용, 결과를 도용하는 행위, 타인복제표절, 자기중복표절,
사진사와 미학제 2차 과제한국사진사에 대하여 조명하시오.(한국사진은 시작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주요 내용 및 사진행사들을 조사하여 서술하시오.)1. 1870년대: 한국사진의 도입-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해병대 종군사진반이 전투현장을 기록한 사진이 최초의 사진이며, 오경석은 1872년 청나라에서 프랑스 외교관 매휘립이 찍은 자신의 초상사진을 가지고 귀국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초상사진을 남김. 또한 역관, 해외시찰 등을 통해서 사진에 대한 개념이 도입되었다.2. 1880년대: 초상사진의 대두- 실질적인 한국사진사는 문헌상에 의하면 1884년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워 서울 마동에서 사진관을 차린 이후부터이다. 1884년 지운영은 고종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이로써 초상사진 시대가 열림3. 1900년대: 영업사진의 시작- 사진의 본격적인 도입과 기술적인 보급은 1900년대이며 청일전쟁(1894)이후 일본의 한국진출에 힘입어 일본인들이 사진관을 만들고 영친왕의 서예 스승이 던 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1907년 8월 17일 석정동에 사진관, ‘천연당 사진관’을 개관, 약 10년 동안 운영하면서 이때부터 사진관, 사장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사진의 대중화에 공헌-교육서화관(敎育書畵館): 한국 최초 사설 미술강습소 (예술학교)로 1907년 7월 13일 원동 (현 원서동) 서우학회 내에서 김규진 관장을 비롯한 양기훈, 권병수, 조석진, 얀중식, 이 도영, 엄태영, 김유탁, 박서양, 박주진 등 서화가와 사진가 등이 발기. 사자(寫字), 도화, 사 진, 음악을 가르침.- 김규진은 서화가로서 사진에 대한 관심이 크던 중 왕실의 편의를 제공받아 일본의 노노미 아 사진관에 가서 1년 동안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그림과 글씨를 쓰는 한편 사진관을 차리게 되었다.- 1895년 단발령으로 초상사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여 1900년대 초 천연당 사진관의 고객 은 수백 명에 이르렀다. 초상사진 수요증가에 따라 영업사진관과 사진사가 나타나게 되었다.- 영국의 비숍여사가 진의 황금기로 르네상스를 이룸- 한국인만으로 경성사진사협회 결성- 정해창은 우리나라 최초로 제1회 예술사진전람회를 광화문에서 개최- 서순남은 조선일보 후원으로 정해창에 이어 두 번째로 평양에서 개인전1) 동광사진학원: 남영동- 1929년 3월 홍인택이 설립- 교육과정: 보통과(6개월), 속성과(3개월) 각 50명씩 100명 모집2) 남성사진전습학원: 조선 남부 지역에서 유일한 사진교육기관- 1920년대 후반 대전 현 은행동에서 진두성이 설립- 1933년 충청, 전라, 경상의6도를 망라한 남조선 사진협회 설립- 무직청년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 년 2회 실습생 양성 본과, 속성, 연구과로 분류3) 근화여학교 사진부: 여성교육기관의 등장- 여성사진교육사에 획을 그은 사건- 1926년 학교 설립자이며 여성운동가인 김미리사에 의해 설치- 교육과정: 4개월 과정의 본과와 2개월 과정의 연구과정- 정규과정인 6년제 보통과, 4년제의 고등과 그리고 특별과(사진, 음악, 어학, 기예) 1927년 2월 이전에 사진과는 폐과가 되었음- 초대 사진교사: 이홍경 - 경성의 일류사진기술자, 남편 채상묵과 함께 경성사진과 운영, 1921년 조선 최초 부인사진관 개설, 초대여성사진교육자로 성사진교육사에 선구적인 인물* 일본의 사진교육기관과 조선 유학생들: 직업기술습득, 예술적 실험, 학문적 연구- 1920년대 사진학원이 전국적으로 세워지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남- 1920-30년대 근대적인 사진교육을 받기 위해 서순삼, 신락균, 현일형, 진두성, 박송우 등 조선유학생들의 사진유학은 한국 근대사진교육사에 중요한 역할1) 동경사진전문학교(1923년 설립)의 조선 유학생- 동경고등공예학교, 오리엔탈사진학교와 더불어 정식교육기관- 서순삼: 1922년 평양출신 사진가로 일본 코니시로사진전문학교에 입학, 1926년 동경사진전 문학교로 개칭 17명의 첫 졸업생 배출했으나 서순삼은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도중 좌절 귀국- 신락균: 1922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정칙학교와 동양대학에서 가 형성되던 시기- 서울에서는 경성아마추어 사진구락부, 백양사우회, 각 지방 사우회 조직- 1935년 전조선사진살롱 전국공모전(경성일보)을 개최, 연례적인 납량사진공모전(조선일보)을 개최가 사진에 많은 영향을 끼침- 1936년 독일 베르린 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수상했던 사실을 동아일보 사진 부장이었던 신락균이 일장기를 말살하고 게재함으로써 강제 폐간되었으며 이것이 최초의 사진화 사건이었다.- 경성사진사협회가 구성되어 예술사진이 시작되고, 신락균에 의해 회화의 영향을 받은 예술사진이 주창되었다. 회화적 분위기의 영상을 창출해 낸 예술사진은 사진의 가치를 회화와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초기 한국의 사진은 회화주의 사진으로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는 자연의 풍경을 주제로 사진을 아름답고 곱게 연초점 묘사기법에 의한 회화와 가까운 표현 양식으로 회화주의적인 예술사진 즉 살롱 사진이 주류를 이루었다.- 사진이 뿌리를 내린 1930년대 초창기까지는 영업사진가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1) 경성사진학강습원(1934-1937)- 1934년 YMCA 사진과(1933년 폐과)의 후신으로 무교동에 설립, YMCA 건물의 교실을 임대해서 사용, 신락균이 원장- 경성사진사협회, 경성인상사진연구회, 그리고 경성사구회 등 세 단체가 연합하여 YMCA 사진과를 인계 경영하기로 함- 운영주체가 한 종교단체에서 민간단체로 바뀐 교육기관의 탄생- 원장 신락균이 일장기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1937년 2월 폐교- 신락균(申樂均)에 의해 회화의 영향을 받은 예술사진이 주창되었으며 사진의 가치를 회화와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3개월 후 5월28일 ‘경성사진학강습소’라는 명칭으로 복활해서 일제 말기까지 존속- 1910년 개설된 YMCA 사진과를 전신으로 한 ‘경성사진학강숩원’ 또는 ‘경성사진학강습소’는 중간 중간 폐교의 위기를 딛고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나라 근대사진교육을 담당해온 대표적인 사진교육기관- 1930년대 동광사진학원, 남성사진전습학원과 함께 조선 이남지역 사진교육을여 1940년대 중반은 사진의 재료 결핍과 사진의 기록성 때문에 사진 촬영이 극도로 제한된 암흑기였다.- 1945년 전국 조직으로 확대된 조선사진예술연구회가 결성되었다.- 1948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 주최 제1회 전국공모전을 서울 '동화 화랑'에서 개최하였다.이때부터 사회 각층 민중들의 모습을 대상으로 한 리얼리즘 사진이 시작되었다.8. 1950년대: 리얼리즘사진(사실주의사진)* 현대사진의 대두: Robert Frank의 “The Americans" 1958사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성을 표현. 표현, 사상, 의미에 있어서 형식미를 벗어나 자율성을 추구, 개인의 자유로운 철학과 사상의 발현, 개성 주체성 자유로움 등 예술중심의 사진이 표현중심의 사진으로 바뀜, 영상으로부터 해방 즉 영상의 독자성을 갖게 됨, 초점에서 벗어난 사진, 흔들린 사진, 전경 중경 원경이 무시된 사진 거친 입자의 사진을 만듦- 1950년대를 기점으로 전 근대와 근대로 분류된다.- 50년대에는 한국사진이 해외사진전에 출품되면서 한국사진의 국제화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까지는 한국사진의 초창기로서 살롱사진(Salon Picture)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50년대에 일어난 한국전쟁 등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비판 묘사하는 경향으로서 리얼리즘 사진이 나타나게 되었다. 즉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생활의 모습을 담은 생활사진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동아일보 1920. 4. 1, 》 《조선일보 1920. 3. 5》 등이 복간되면서 보도사진이 시작되었고, 8·15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예술사진에서 벗어나 사실주의 사진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1940년 8월 10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일제의 강요로 폐간되었음- 임응식, 이명동 등이 주동이 되어 거리의 빈민 생활과 걸인 등의 추한 사진을 등장시켜 리얼리즘 사진이 대두되게 되었다.- 이경모의 여수·순천반란사건 도큐먼트는 다큐멘터리사진의 시초가 되었다.- 1950년 2월 서울사진재료상조합이 정한 사진 협정 가격(현상료진을 통해 프로사진작가들이 출현하였다. 한편 대학에 사진학과가 설치되고, 영상·사진예술 등 사진 전문잡지도 발행되어 사진발달을 촉진시켰다.- 60년 4·19 보도사진은 시대의 기록자요 목격자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1961년 5.16 군사혁명 이후 전국예술단체 총연합회 산하에 ‘한국사진협회’에(1961.12.17.창립총회, 1963.1.30 사단법인 등기) 하나로 통합, 사진작가가 되는 등용문이 되었으며 사회적 공식기구가 됨- 1960년대에는 사진이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미술의 한 부문으로 출품되었으며, 동아일보사가 ‘동아사진콘테스트(1963)’과 ‘동아국제사진살롱(1966)’을 매년 개최함으로써 공모전이 사진발전에 기여를 했다.- 1960년대 사진은 사진공모전에 주력한 시대로 작가로서의 인정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권위 있는 공모전에 출품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공모전에 오래 머물게 되면 창작행위를 공모전의 어떤 목적이나 일정한 틀에 맞추려는 것이 됨으로 개성 있는 독창성의 창의력을 잃게 된다.- 대학에 사진이 정식과목으로 채택되는 사진학과가 설립되고 사진 전문 잡지가 발행됨- 상업사진과 보도사진이 고유한 장르로서 발판을 굳히게 됨으로 새로운 프로사진가들이 출현하는 시대를 맞음. 공모전 위주의 사진을 벗어나 자기작업을 시도하고 단편적인 촬영이 아닌 일련의 연속적이고 종합적인 대상추구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아마추어사진가들도 단순한 취미나 도락에서 벗어나 프로와 구별되는 아마추어만의 특유한 자기영역을 모색하는 조짐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사진 부문이 국전의 1개 분야로 창설되었다. 동아사진컨테스트(1963년), 동아국제사진살롱(1966년)이 개최되었다.- 1964년 3월 서라벌 예술대학에서 사진학과 설치, 1966년 8월 사진 전문지 '월간사진'이 창간된다. 광고사진이 등장하였으며 달력에 의한 기업 홍보가 유행하였다.- 1967년 월산사진예술학원 창립, 원장 안월산, 강사 정인성,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진술이 특정인들
사진사와 미학제 1차 과제사진과 회화의 차이점과 공통점, 사진과 영화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체계적으로기술하시오.1. 사진과 회화의 차이점과 공통점-사진과 회화의 정의사진은 화합물이 빛의 작용으로 변화하는 반응을 응용해서 건판이나 필름 인화지 등에 방사 에너지를 작용시켜 대상물체의 영상을 만드는 기술이고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발전시킨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법과, 감광물질 위에 직접 물체를 놓고 노광시키는 방법(포토그램)이 있다.회화는 서구에서는 ‘색을 칠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동양에서는 색을 칠하지 않은 것들도 포함된다. 모두 평면 위의 선과 색에 의하여 어떤 시각형상을 그려내는 점에서는 거의 공통이다.-사진과 회화의 차이점사진은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사물을 그대로 옮기는 인식예술인데 반해, 회화는 공간예술이다.일반적으로 사진은 시공간의 어느 한 부분이 고정된 모습을 보여주나, 회화는 작가의 종합적인 판단이 담긴 예술로 정의되고 있다.또 사진은 매우 치밀하게 공간을 분할하고, 현실에 어떤 상황을 재해석해서 매치할지 등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담아낸다.하지만 회화는 사람이 그리기 때문에 현실의 사물에서 동기를 얻는다고 해도 그 사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이미지를 해석하고 변형할 수 있다.-사진과 회화의 공통점두 가지 매체 모두 외부로 드러난 대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대개 사실주의 방식을 재현한다.현실은 3차원인 반면에 사진과 회화의 이미지화 작업은 최종적으로 2차원 세계에서 완성된다.즉 사진과 회화는 3차원의 세계를 2차원 평면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진과회화를 평면 예술의 범주에 묶어서 처리하면 안 된다.사진과 회화는 사물형태에 바탕을 둔 외형적 이미지로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시각 예술이다.사진과 회하는 전달하고자 하는 무엇을 다른 이에게 알리는 수단, 즉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으로 사용된다.2. 사진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영화의 정의사진의 원리를 이용, 피사체를 연속 촬영함으로써 영사했을 때 피사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 매체, 필름(film), 시네마(cinema), 모션 픽처(motion picture), 무빙 픽처(moving picture)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사진과 영화의 공통점서로 시간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사진과 영화 둘 다 기억을 가진 시대의 산물로서 현실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사진과 영화는 단순히 필름을 사용한다는 물리적 특성 외에도 두 매체가 공히 현실의 거울로서 동시대 사회문화에 대한 적극적 반영물이라는 것이다.카메라를 도구로 사용하고 빛을 이용한다는 점 또 시간과 공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아있다.동시대 시각예술의 최전선에 사진과 영화가 존재하고 또 매체예술이므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존재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사진과 영화의 차이점
9주차1.다큐멘터리 사진의 시작-다큐멘터리라 하는 것은 영화로부터 시작되었다.영화라는 ‘허구’에 반대되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기록인 ‘사실’로써의 다큐멘터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사진에서는 20세기 초 프랑스의 사진가 앗제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 문에 ‘예술가를 위한 다큐멘트’라고 써 붙이고 자신의 사진을 화가들에게 팔면서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 포토캠페인(Photo Campaign)-사화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현실을 기록-포토캠페인은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사진을 사회 재구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3) 포토캠페인의 역할-사회적 해석을 위한 다큐멘터리 사진-캠페인을 위한 “Social Documentation”-사회개선을 위한 다큐멘터리 사진4) 개인적 포토 캠페인1900년대-개인적 포토캠페인-루이스 하인(Lewis Wickes Hine)아동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사회문제를 사진으로 제시-제이콥 리스(Jacob A. Riis)사회개혁을 위해서 사진을 이용한 최초의 사진가루이스 하인-미국 다큐멘터리 사진가-미국 사회기록사진의 선구자로 평가-아동노동의 참상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촬영-시카고 대학에서 사회학을 수학-사진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뉴욕의 당시 세관 에리스 섬에 도착하는 유럽에서 온 이민, 빈민, 남캐롤라이나주의 아이들 노동의 실태, 면공장에서 아이들의 노동조건 등 일련의 사진을 발표해서 처음으로 ’아동노동복지법‘을 제정하는 데 기여제이콥 리스-덴마크 태생-제이콥 리스(Jacob Riis)는 루이스 하인과 함께 포토저널리즘을 전파한 선구자적인 사진작가-사회개혁을 위해서 사진을 이용한 최초의 사진가-플래시파우더를 이용한 사진가-1890년 “How the other half lives”라는 사회고발적 책 출간-1890년대에 미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서 사회적인 변혁을 유도하였던 개혁가이자 사진을 이용한 최초의 사진가-뉴욕 맨하튼 아래 지역의 실상에 대하여 여러 번 글로서 발표도 해보고 여러 사람들에게 관심을 잡지 같은 저널을 통해 적극적이며 구체적인 목적으로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알리는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다큐멘터리 사진은 보도사진의 역할을 포함한, 한 사진가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예술적 표현 매체를 가리키는 보다 넒은 영역까지 다루고 있다.2) 다큐멘터리 사진의 시작-초기 다큐멘터리 사진은산업과 도시의 설정에 초점을 맞추었고종종 사진가들은 사진을 사회 재구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예를 들면 루이스 하인의 사진은미국에서 아동노동법을 통과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미국 뉴욕 월가의 주식 폭락에서 비롯한 1930년대 대공황 시대 당시 미국정부가 복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난과 기근에 신음하는 농민, 소작인들의 생활 실태를 사진으로 찍으라고 주문했다.-미국 사진가 워커 에반스(1903~1975)는 이러한 ‘사진 정치’ 덕분에 사진사에 우뚝한 거장이 되었다. 워커 에반스는 도르시어 랭, 벤 샨 등 동료 사진가들과 함께 1930년대 후반 미국 농촌과 산골 등을 돌며 27만장 넘게 사진을 촬영이것은 정부 발주 프로젝트가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의 등장을 알리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3) 은유적 다큐멘터리 사진가-은유적 다큐멘터리사진이란?워커에반스의 토착문화에 대한 상징은 로버트 프랭크의 현대 물질문명에 의한 인간소외에 대한 상징으로 이어졌고, 다큐멘터리사진에서 은유와 상징적 요소는 현대사진을 개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4) 서정적 다큐멘터리 사진가-서정적 다큐멘터리사진이란?사회적, 또는 정치적 목표나 사회문제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진가들로서그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다큐멘터리사진 속에서 개인의 감정적 느낌을 서정적으로 또는조형적으로 표현했다.5) 다큐멘터리사진의 4가지 요건-한 테마를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어야 되며-주관적인 작가의식(Opinion)이 중요하다. (담론을 형성)-소재,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 사건 상황 사람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이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자기 사진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테마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과 스토리를 자아내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은 잘 구성하기만 하면 그 소리를 들려 줄 수가 있다.-역대 포토 저널리스트 중 가장 영화 같은 구성미 가진 사진을 찍는 사진가.보도 사진의 대가, 라이프지의 전속사진가, 모든 사진을 “엮음사진(photo story)”형태로 제작1948년 “시골의사” 1949년 “슈바이처 박사” 1951년 “스페인 마을”등을 발표 1955년 매그넘에 참가했으나, 3년 후에 탈퇴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중시하였으며 이것을 사진으로 표현함으로서 인간의 행복과 발전에 기여하려고 노력유진 스미스가 지를 통해서 보여준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포토 스토리(Photo-story)형식포토스토리는 기존의 단 사진으로는 복잡 다양한 인간 생활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느껴 몇 장의 사진을 나열하고 엮어서 하나의 주제나 스토리로 표현하는 형식-1955년에 매그넘에 가담하여 작가 의지대로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활동을 벌이다 한곳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1959년에 매그넘도 탈퇴하게 됨그 후 일본에서 3년 동안 미나마타 병에 대해 촬영 연작을 발표알프레드 아이젠 슈테트(Alfred Eisenstaedt)-엮음 사진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최초의 작가 중 한 사람인 동시에 생활 기록가의 전형27세에 캔디드 포토의 원조인 에리히 잘로몬의 작품을 접하고 강한 현실성과 실재성에 충격을 받고 나서 스냅촬영 위주로 활동약 60여회 라이프지 표지장식을 촬영데이비드 시무어(David Seymour)-데이비드 시무어(1911 11 20~ 1956 11 10)는 폴란드의 사진가이자 사진 저널리스트였다.1911년 유태인 부모 밑에서 폴란드 와르소에서 태어났다.파리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사진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1933년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스페인 내전, 체코슬로바키아와 다른 유럽의 사건의 취재가 그의 명성을 알렸다.그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 대한 감동적인 사진을 촬영한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었다.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 했을 때 스페인 피난민들의리성을 중시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 하는 것을 뜻한다.-예술상에서는 1920년대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포멀리즘)등의 추상적, 초현실적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한다.3)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1950~1960년대)-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예술과 삶의 재통합을 바라면서 고급예술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아방가르드가 60년대의 미국적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에게 에너지와 영감의 원천으로 적용하였다.-팝아트, 대항문화, 특이주의로 특징지어지는데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다와 초현실주의 같은 연속적 아방가르드 운동의 상상적 추상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자율적 예술로 현대 대중문화를 비판하고 과거 미국전통을 포기 함으로서 힘을 얻었다.3)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1970년대)-1960년대 초기부터 시작된 여성해방운동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여성인권, 낙태, 고용의 권리 등을 쟁취하는 시기였다.-남성우월주의가 은폐되어 있는 엘리트모더니즘을 비판하며 성적 편견을 폭로 하였다.-팝아트의 영향아래 하이퍼 리얼리즘과 전통적 주제로 돌아가려는 경향과 양식과 내용에 있어 모더니즘취향을 함께 가진 포스트 모더니즘과의 혼합물을 생산해 내는 흐름이 있었다.3)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1980년대)-80년대는 장식적 패턴 페인팅, 문자 그대로 패턴의 장식적 요소를 반복하고 병렬한 화면 조작으로 20세기 모더니즘의 거장인 마티스의 장식적 특징을 표방한 미술이 재등장하였다.-특히 80년대에는, 자신들의 국가가 지녔던 과거와의 화해를 꾀하려는 유럽의 새로운 독일 및 이탈리아 화가들의 발견으로 ‘회화의 재탄생’이 시작되었다.4)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의 특성-단순히 촬영하여 현실을 재현하는 양식에서 벗어나 사진가의 의도,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것을 중요시 여김.-독창성, 시대성, 유희성, 정보전달매체 등 다양한 가치 기준 공존-표현양식: 구성사진, 연출사진-내용: 일상, 현실, 페미니즘, 젠더, 섹언을 제공해준다.”-디지털이미지란?: 과거에도 존재 하던 이미지를 디지털화한 것으로 분류되며, 2진 코드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들을 총칭.2)디지털이미지의 역사-디지털이미지의 기원은 컴퓨터와 함께 시작된다. 처음으로 디지털이미지가 등장한 것은 달이다. 1964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은 우주선 레인저 7호가 보내준 달의 표면 이미지에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데 디지털이미지 처리기술을 이용3)디지털이미지의 활용: 촬영 후에 컴퓨터를 사용해서 그 자연물을 인위적인 패턴으로 처리된 배경과 대비-맨델과 술탄은 먼저 아이들의 사진을 촬영하고, 그것을 컴퓨터로 6개의 톤으로 변환 후 타일(픽셀)로 만들어 빌딩벽면에 합성4) 디지털이미지와 사회윤리-사진의 변형(합성, 삭제)아직도 사진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사진의 변형은 크게 위조와 변조로 구분할 수 있음위조의 사전적 의미는 ‘물건이나 문서의 가짜를 만듦’ 변조는 ‘손질하여 고쳐 만듦’ 또는 ‘문서 따위의 형태나 내용을 다르게 고침’이다.-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위조이며, 이미 만들어진 것을 고치는 것이 변조인 것이다.5) 디지털 이미지 작가: 페드로 마이어(Pedro Meyer)-이 시대 최고의 디지털 다큐멘터리 사진가-그는 자신이 새롭게 창조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픽션 다큐멘터리 사진(Fiction Doucumentary Photography)’이라고 지칭. (1) 과거에 찍었던 사진에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하는 방법 (2) 이미지를 새로 추가하지는 않지만 색을 변조시키는 방법 (3) 아예 전혀 조작을 하지 않는 방법-(과장하기 / 낯설게 하기)병치 리얼리티의 효과-그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기술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가 적어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페드로 마이어의 사진은 ‘꿈’과 ‘기억’을 표현하는 것-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 혹은 욕망, 감정 따위를 찍을 수 없으며, 지나간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기록할 수도 없다.다.
1주차 영상발달과 특성1) 넒은 의미의 영상-영상, 도상, 형상, 화상 등 여러 가지 용어로 사용되지만 일반적으로 상(像)을 지닌 모든 것.2) 좁은 의미의 영상- 사진, 영상, TV를 의미.- 상을 생성하기 위해 빛을 필요로 하는 이미지들.3) 영상의 연구방법론-기호학적(도상, 지표, 상징) -사회학적(사용 목적) -기술적(제작방식과 외적 형태)4) 기호학적 분류도상(Icon): 실제 사물과 비슷하게 생긴 형태 ex) 닮음, 회화, 심볼, 상형문자지표(Index): 필연적 인과 관계 ex) 연기와 불, 자동차 바퀴 자국상징(symbol): 기호와 의미가 가장 자의적 ex) 수, 사회적인 자의성, 관습이 배제된 상징, 교통신호도상 기호(icon)란,-대상체와 유사한 기호를 의미하며 그 대상의 특징을 포착하여 만든 기호를 말한다.쉽게 말하면 실제 사물과 비슷하게 생긴 형태이다.-예를 들면, 성인이라면 누구나 주머니 속에 있는 주민등록증에 있는 증명사진은 그 사람에 대한 도상이다. 앤디워홀의 팝아트 작품인 ‘마릴린먼로’는 뻘겋고 머리색이 샛노랗더라도 배우‘마릴런먼로’의 도상이다.도상 기호(icon)란,-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 표지 안에 있는 픽토그램은 사람과 자동차에 대한 도상이다.-화장실 입구에 남, 여를 구별해 주는 픽토그램도 사람의 특징을 포착한 도상이다.일기예보에서 구름 많음, 맑음, 비라는 글 대신 나타내는 아이콘(해, 구름, 비, 눈모양)이 그 날씨에 대한 도상이다.비상구 표지판에 있는 아이콘은 문밖으로 뛰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도상이다.지표(index)기호 란,-기호와 개념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다.사물을 간접적으로 참조하는 것을 말하며 도상과 달리 유사성을 찾기보다는 그 다음에 일어날 사건의 계속성을 기초로 한다.A라는 사상이 발생하면 반드시 B라는 사상이 따를 때 ‘B는 A의 지표’라고 한다.-예를 들면, 날씨가 더우면 온도계의 수은주가 올라가는 현상에서 수은주의 높이는 그날의 기온을 가리키는 지표이다.상징(symbo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음-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하려는 열망은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닌 카메라 스스로가 속에 맺힌 상을 그리도록 해야 한다는 이상을 만듬-이 시기까지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맺히는 상을 정착시키는 방법을 찾지 못함(사진의 발명 시발점)사진의 종류: 사진술 원리는 니엡스가 발견, 다게르가 발명, 공표하여 사진으로 세상에 나타남18390819 ?니엡스의 사진발명 -헬리오그라피 ?다게레오타입 ?칼로타입(탈보타입) -콜론디온 습판법 ?틴 타입-헬리오그라피 사진술 발명니엡스에 의해 만들어진 비공식적 최초의 사진니앱스는 카메라 옵스큐라가 맺는 상을 최초로 고정시키려고 시도, 1826년 ‘Heliography’ (태양이 그린 그림)를 발표감광재료의 감도가 낮아 노출을 8시간이나 주어서 완성16.5x21센티미터의 크기인 이 세계 최초의 사진은 아스팔트 유제품을 바른 주석판 위에서 탄생했다. 8시간 노출을 준 이 사진은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가 1952년 영국에서 다시 발견되었다.니엡스는 유리 위에 유태아스팔트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세계 최초의 포지티브 사진을 촬영하는데 그것이 왼쪽에 있는 ‘SET TABLE’이다.이로써 니엡스는 오늘날 우리가 사진이라 줄여서 흔히 부르는 눈에 보이는 명암과 인화물의 명암이 같은, 포지티브 방식의 사진을 발명해 낸 것이다.-다게레오타입: 1839년 8월 19일 다게르의 사진술(다게레오타입)이 프랑스 정부에 의해 공식적 사진으로 공표다게르는 감광기술에 매진했고, 이후 수은 증기가 현상을 돕는 다는 것과, 식염의 포화용액이 사진이 변한다는 것을 발견해냄으로ㅆ 현상과 정착이라는 현대사진의 중요한 두 가지 기술을 발견특징: 감광판이 금속판이라 질감묘사가 좋고 선명성이 뛰어남 상을 고정시킬수 있어 보존성이 좋음* 1839.08.19. 사진발명 (다게르)-칼로타입 (탈보타입): 1839년 1월 25일 탈보트가 영국의 왕실 학회에 발표특징: 칼로타입은 종이에 상과 명암이 반대(negative)로 나타나는, 즉 현재기도문의 도판으로 쓰일 열장의 다게레오 타입을 제작했다.-1848: 이어서 존 에드윈 메이올은 토머스 켐벨의 시 ‘병사의 꿈’을 소재로 여섯점의 원판을 제작했다.-1851: 런던 수정궁의 대 전시회에서는 다수의 미국 다게레오타입 사진가들이 우의적 사진들을 출품했다.-1853: 런던 사진협회 창립 첫 회합에서 궁정의 미니어처 화가, 윌리엄 뉴턴 경은 회원들에게 ‘예술적 관점에서의 사진술’에 관한 소신을 폈다.윌리엄 경의 발언은 두 번째 회합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킨 불씨였다.-1856: “조합 인화”처음으로 런던에 등장. 여러 장의 음화를 중첩시켜 인화해 내는 방법은 오스카 래일랜더가 극도로 밀어 붙였다.-오스카 래일랜더는 선한 삶과 방탕한 삶을 대조시켜 교화적으로 표현한 1857.을 제작-라파엘로의 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황금만능주의 심화시킴2) 대표작가-헨리 피치 로빈슨(1830~1901):21세에 왕립미술원에 작품이 걸림, 1852년부터 사진 작업을 시작함, 최종구성을 먼저 스케치 후 사진을 따로 촬영하여 한꺼번에 조합함, 조합인화 방법을 즐겨 사용-로베르 드마시(1859~1936):‘사진의 기계적 재현 능력은 예술성이 아니다’라고 주장, 톤과 음영을 조절, 파스텔화 효과를 냄-에드워드 스타이켄(1879~1973):인물, 풍경, 광고 등 사진 주제가 다양, 1,2,차 세계대전에서 사진가로 활약함,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주의로 전향1) 회화주의(Pictorialism): 회화적=예술적(시대적 인식), 연출된 사진, 회화풍으로 찍으려했던 사진주의초기의 사진은 그저 과학과 예술에 봉사하는 ‘기술적 도구’로 취급, 이런 사진을“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회화주의 사진, 회화적(pictorial)= 예술적(artistic)이라는 인식2) 살롱사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독특한 사진경향회화적 감성을 사진 영역에 끌어들인 회화주의적 예술사진-초기의 살롱사진: 살롱에서 예술이 아닌 기계로 천대받고 있었음, 독자적으로 살롱사진을경험에 의해 의미의 가치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작업 자연이 아닌 인공물일 것, 개성적 독창적 주관적일 것, 상상의 산물일 것, 형상화 작업, 이미지의 외형화, 모든 사진가가 예술가일 필요가 없듯, 모든 사진이 예술사진일 필요는 없음-사진은 예술이다! : 모든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없음, 독립된 예술 형태로써 자체의 영역 성격 가능성에 의한 분류 정리가 필요, 사진과 다른 예술과의 관계 이해2) 사진과 회화의 관계: 사진은 회화에서 시작된 예술 형식, 사진이 회화와 같은 장르로 분류될 수 없음, 모든 예술의 목적은 아름다움3) 사진과 회화의 공통점: 사물의 형태에 바탕을 둔 외형적인 이미지로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시각 예술, 사진과 회화는 평면으로 나타남, 즉 3차원 세계의 2차원화사진과 회화는 물적 이미지, 즉 이미지의 물체화4) 사진과 회화의 차이점: 사진은 과학을 바탕으로 탄생, 회화는 과학과 직접적 관계를 갖지 않음, 사진은 인식의 예술 회화는 창조의 예술, 사진은 분석적 매체, 회화는 종합적 매체, 사진은 시간을 바탕으로 한 공간예술, 회화는 단순한 공간예술 * 사진= 시간+ 공간(시공간 예술화상 제작 방식의 차이 : 사진은 ‘뺄셈’ 회화는 ‘덧셈’공통점은 외형적인 것 차이점은 본질적인 것 , 사진적 자각 이후 회화와 결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사진분리파)6주차1) 사진 분리파 운동(1902):무엇이 사진을 구성하고 있는가 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서 분리를 선언하는 것, 스스로를 분리주의자로 부르는 모더니즘 예술에 사진이 한 분야로써 개척되어짐을 보여줌 Photo-secession사진 분리파의 뜻: 기존의 모든 낡은 것들과 결별한다 다다이즘창립 배경: 회화주의 사진에 한계를 느낌 순수 사진 (straight photo)을 위해 창립목적: 사진술을 회화적 표현으로 적용하는 것을 반대, 예술인 모집, 다양한 장소에서 꾸준한 박람회 개최영향: 근대사진의 모더니티를 인식시킴사진의 독자적 예술영역 확립, 1903년 카메라 워크 창간, 1905년 291 물질의 분리가 19세기 후반 이후의 예술 및 건축에 반영하고 있음을 지적했다.1923년에 전람회와 출판물에 의하여 발표되었는데, 그것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바우하우스의 업적은 건축보다 오히려 공업 제품에 끼친 영향이 컸으며, 그래서 바우하우스는 독일공작연맹의 핵심이 되었다.1919년 그로피우스가 바이마르에 창립한 종합 조형학교, 그로피우스는 일찍부터 정신적인 문화와 물질적인 문명의 대립, 정신과 물질의 분리가 19세기 후반 이후의 예술 및 건축에 반영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1923년에 전람회와 출판물에 의하여 발표되었는데, 그것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 바우하우스의 업적은 건축보다 오히려 공업 제품에 끼친 영향이 컸으며, 그래서 바우하우스는 독일공작연맹의 핵심이 되었다.바이마르 시민과 튜링겐 정부는 바우하우스를 압박하여 1924년 해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33년 나치스의 정권 획득에 의하여 해산을 명령 받았다. 얼마 안 있어 터진 제 2차 세계대전은 바우하우스 정신을 뿌리 뽑아 문질러 버린 것처럼 보였으나 그 후 미국에 새로이 싹이 터, 전후에는 독일에 재건되었다. 미국은 모흘리 나기의 손에 의해서, 독일은 막스빌의 손에 의해서, 뉴 바우하우스 , 뉴우져어만 바우하우스가 각각 생겨났다.7) 바우하우스의 영향: 바우하우스는 여러 방면에 폭넒은 영향을 끼쳐서 바우하우스의 개념과 모형에 많은 영향을 받은 바우하우스 공장 제품들이 널리 모방되었으며, 일상생활에 쓸 여러 가지 물품들을 편리하고 수수하게 설계하는 것이 널리 보급되었다.바우하우스의 교수법과 교육이념은 전 세계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보급되어서 오늘날 대부분의 예술 교육과정에는 바우하우스처럼 학생들이 기초적인 디자인 요소를 습득하게 하는 교육과정이 들어 있다.8) 바우하우스의 중심인물-윌터 그로피우스: 1883년 베를린에서 출생하여 1969년 메사추세스주 보스턴에서 작고.1915년 삭스-바이마르의 대공으로부터 바이마르 소재의 ‘작센 대공 공예학교’와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