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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여말선초 성리학의 전개
    여말선초 성리학의 전개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과 조선 초기 성리학의 전개우리는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를 표현할 때 유교사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여기서 유교라는 말은 훈고학, 성리학, 양명학 등 다양한 학문을 뜻하지만 우리의 말 속 유교는 대부분 이 성리학에 국한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이 성리학이라는 학문의 기원은 북송시대의 주희가 송나라 시기 주돈이, 장재, 소옹, 정호, 정이 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신유학자들의 학문을 구체화하고 집대성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국내에도 고려 말 수용이 되어 조선시대에는 가장 강력한 통치이념으로 작용될 만큼 중요한 학문으로 통했다. 지금부터는 우리나라에서 이 성리학이 수용된 과정과 수용 후 조선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나갔는지에 대해 기술해보도록 하겠다.우선 누군가가 ‘고려는 유교, 불교, 도교 이 세 종교 중 어느 종교의 색체가 강한 나라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교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불교사상을 근간에 두고 나라를 통치해 나갔으며, 고려만의 특색 있는 불교로 불교를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 의천과 지눌 등과 같은 훌륭한 승려도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계는 타락하게 된다. 당시 불교는 속세와 타협하여 권력을 가지고, 그것을 빌어 폐단을 야기해 고려의 정치와 경제의 부패에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이 시기 고려는 원 간섭기를 거치는 중이었는데, 고려 내 새로운 사상의 도입이 불가피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소할 도구로 당시 송나라에서 완성되었던 성리학이 원나라로부터 학문으로서 도입되게 된다. 당시 원나라에선 성리학이 공인 학문 체계로 연경에서 크게 성행하고 있었다. 고려의 왕족이나 학자가 빈번하게 연경을 왕래하고, 만권당에서 원 학자들과 토론하는 등의 왕성한 학술 활동이 이어졌었고, 또 많은 고려의 학자들 또한 원을 왕래하며 원의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는 등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원의 관학으로 융성하던 성리학을 깊이 체득하게 되었다.고려 말 성리학의 도입에 왕래하며 신유학인 성리학에 대해 연구하여 고려에 도입하였고 성균관에서 교관을 지내며 성리학을 보급하고 또 다른 학자를 양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안향은 고려에 성리학을 최초로 들여와서 보급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원 왕래 당시 주자서를 필사하고 이를 비롯하여 여러 화상들을 고려에 들여 돌아와 성균관에 봉안하였다. 그는 주자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즉, 안향은 고려에 성리학을 도입하고 진작시킨 선구자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안향은 나이는 비슷하지만 제자로 백이정을 양성한다. 백이정 또한 원에 유학하며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그는 원에서 10년이나 머물며, 고려로 다시 귀국할 당시 주자의 서적을 비롯한 성리학 서적들을 대거 보급한다. 이후 권부와 우탁 등의 지속적인 연구와 보급을 향한 노력이 이어져 안향과 백이정의 학통은 이제현에게 전승되었고, 이제현의 학문은 이색으로, 이색의 학문은 권근 등으로 이어지며 성리학이 수용되게 된다.고려 말 이러한 성리학의 수용은 여러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우선, 성리학의 수용은 무인집권기 이후 침체기에 빠져 있던 고려 유학이 새롭게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송 시기 신유학의 교류를 통해 상당한 수준을 보였던 고려의 유학은 무인집권기를 거치면서 탄압받고, 그 결과 학문의 기반이 크게 쇠퇴하게 된다. 그러나 성리학이 원 간섭기에 수용되며 다시 유학 중심으로 고려의 교육 및 학문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고려 유학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게 된다. 14세기 후반 공민왕 시기 성균관이 중영되며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게 된다. 정도전, 권근과 학자들의 성리학 연구를 통한 저술이 그것의 예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고려 말 정치ㆍ사회의 개혁과 추진에 국한되지 않고 나아가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의 건국의 토대로까지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조선의 학자들 역시 선대 학자들의 이러한 성리학 이해를 수용해 그 기반 속에서 조선을 성리학 국가로 만들기 위한 정비를 해나갔다.또 고려에 수용되었던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계통의 성리학들은 중앙의 관학 특히 공민왕 시기 중영된 성균관을 중심으로 하나로 합해졌다. 이제현은 10년 간의 원 생활을 마치고 고려에 돌아와 관학에서 자신의 학문을 전개하며 이곡, 이색과 같은 제자를 배출하며 고려의 관학을 주도했다. 이들은 성균관에서 성리학 연구와 교육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또, 정몽주는 성균관의 교관으로 활동하였고, 권근을 교육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과 연구에 있어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관학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원의 성리학, 강남의 성리학을 나누는 것은 중요치 않고, 관학이라는 장소를 토대로 고려에서 수용된 성리학이 수렴되어 존재하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앞서 말했듯이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은 이후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의 창업 및 개혁 작업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정도전, 권근과 같은 고려 말 혁명파에 해당하는 학자들이 그의 예이다. 특히 정도전은 비록 역성혁명을 일으켜 흔히 보수적 성리학의 이념과는 괴리되는 정치현실을 만들어냈지만, 성리학에 대한 이상과 믿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성리학을 토대로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이상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면서 불교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당시 불교 사찰의 난립과 횡포로 국고의 탕진이 일어났고 민생의 끝없는 나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정도전은 폐단이 극대화된 불교를 불씨잡변 저술을 통해 비판하였다. 그의 이상은 철저한 성리학 국가 건설이었으며, 그의 후배인 권근은 정도전을 동방의 맹자라고 평가하며 극찬하기도 했다. 다만, 흥선 대원군 섭정 시기 복권되기 전까진 정도전은 역적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초상화도 한 점 없었다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다. 최근 들어, 역사적 재평가가 일어나며 여전히 간사한 반역자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위대한 혁명가로 표현되는 흐름이 나타나는 학자라 볼 수 있다. 어찌 됐든 조선이라는 나라의 건설을 성리학이대신하여 유교, 특히 성리학이 지배적인 위치에 자리 잡게 된다. 주자가 설파한 귀신론의 핵심 중에는 도교나 불교의 존립기반으로 꼽는 영혼, 환생, 내세와 같이 증명할 수 없는 문제들을 단호히 부정한다. 불교를 비판하는 움직임은 고려시대 불교 폐단의 영향으로 고려 말기부터 일어났지만, 조선 건국에 이르러서야 앞서 설명했던 정도전의 불씨잡변과 같은 저서를 통해 불교가 허학이고, 성리학이 실학이라는 관점이 제시되게 된다. 이 시기 불교는 철학체계가 무너지진 않았지만 이전까지 지내왔던 사회ㆍ경제적 폐단이 너무 비대하여 불교도들은 이러한 흐름에 대항할 힘을 잃게 되고, 그동안 정치 일선에서 있던 수많은 승려들이 순수한 종교의 형태 즉, 절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었다. 즉, 불교의 폐단을 깨고 정치를 유학자들 중심으로 맡는 문화혁명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권근은 정도전의 제자로서 이후 성리학을 더욱 발전시킨다. 입학도설과 같은 저서를 저술하며 조선 초기 성리학의 근간을 더욱 단단히 다졌다. 북송시대 주자 성리학을 토대로 지속적인 연구와 학습을 하며 조선의 성리학은 더욱 확고한 이론적 기반을 다지게 된다. 또한 세종대왕 전후 시기 김말, 김반, 김구 등 이른바 경학삼김으로 불리는 저명한 성리학자들이 등장해 성균관 중심의 국가 성리학을 꽃피게 하였다. 또 세종대왕은 즉위한 해, 경녕군이 중국 유학 과정에서 황제를 통해 하사받은 성리대전, 사서대전과 같은 성리학 저서들은 인쇄되어 전국에 배포되었고, 이후 과거시험의 교재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각급 교육기관에서도 성리학을 기초하여 학문을 가르치고, 과거시험 내에서도 성리학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여 성리학은 조선 초기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된다.조선 초기 성리학의 기본경전은 사서와 오경이었다. 여기서 사서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이 4가지 저서이며 주희가 성리학 체계 성립 속 사서 체계를 확립하게 되었다. 또 오경은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이 5가지 저서이며 성리학에서의 오경은 이전보다 맹자를 더욱 중요하게는 형이하로 나누어 포괄적으로 나눠 설명하는 사상인 성리학은 형이하인 기의 세계의 다양성과 모든 사물들의 주체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적 협조관계를 강조하는 실학의 형태로 조선 초기 작용하게 된다. 또 성리학은 극단적인 관념론과 유물론을 배격하고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객관적 관념론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조선 초기 성리학은 국가 학문으로 발전하였지만, 앞서 열거한 여러 측면이 골고루 피어나지는 않았다. 성리학의 여러 측면이 골고루 피어나기보다, 주로 정치 질서의 변혁과 관련되는 경세적인 측면이 특징적으로 강조되었다. 즉, 백성을 존중하는 민본사상과 같은 사상의 발전이 그것의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조선 왕조의 발전 과정에서 흔히 도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용납될 수 없는 무리한 일이 다수 발생하였더라도, 이를 백성을 위한 혁명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토대로 성리학의 가치관 아래서 정당화될 수 있게 하였다.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중앙에서 학문을 전개한 학파를 관학파라고 할 수 있다. 정도전과 권근과 같은 학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관학파는 현실적인 국가경영에 참여하면서 중앙 관계의 요직을 두루 차지한 관료 유학자집단이다. 즉, 국가에서 세운 학습 체계를 이용해 발전해 나간다. 성균관에서 유학을 배워 등과한 다음 집현전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중앙의 학파들을 말하며, 요즘 말로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집단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다만 이들의 존재 시기는 불과 50년 정도로 매우 짧았다. 그러나 조선건국의 태조 때부터 문종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앞서 설명했던 조선 초기 성리학의 발전과 찬란한 문화적 성취에 있어 대부분의 큰 기여를 보였다는 의의를 갖는다. 관학파는 새 왕조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 민심을 얻으려 노력했다. 다만, 이름인 관학(館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무능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집단일 뿐 당시는 성리학의 초기단계에 불과했던 터라 유학에 대한 사상적인 조애가 깊지는 못했다. 그들이 겉으로 주장한 숭유억불과 국시로서의 유교 또한 있다.
    인문/어학| 2022.04.08| 5페이지| 1,500원| 조회(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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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홉스의 철학적 인간관
    홉스Thomas Hobbes1588-16791. 홉스의 생애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맘즈베리 근교에서 1588년 시골 목사인 아버지와 농가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존 오브리(John Aubrey)의 말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놀라 조산을 했다고 한다.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 또렷한 정신을 가질 만큼 정정하게 살았다. 시골 학교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14세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스콜라철학을 전공하였다. 당시 대학에서 가르쳐지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유물론의 영향을 받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카벤디슈 남작 집안의 가정교사를 하면서 한평생 그의 후원을 받으며 철학적인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추론하고 반성하기 위해 사회로부터 떨어져서 혼란이 없는 안정된 사회 속에서 살기를 원했으나 그가 살던 당시 영국은 엘리자베스 왕조가 끝난 후 크롬웰의 보호정치, 왕정복고 등이 일어나는 격동의 시기였다. 그는 그의 처녀작 ‘법학개론’(The Elements of Law 1640)으로 스튜어트 왕조를 지지하는 정치가로 지목되자 퓨리탄혁명 직전에 프랑스로 망명하여 유물론자 ‘가생디’와 철학자인 ‘데카르트’ 등과 알게 되었다. 1651년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그는 모순에 가득 찬 절대 왕정의 내막을 파헤쳤으며 또한 이 당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가톨릭을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왕당파와 결렬하고 무신론자로 지목되어 프랑스를 떠나지 않으면 안됐다. 그 후 크롬웰의 정권 하에서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정쟁에 개입하지 않고 오직 학문연구에만 힘썼다.왕정복고 후 찰스 2세의 우대를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물질적 유물론적 입장에서 F.베이컨과는 달리 귀납법만이 아닌 연역법의 상호관계에서 이성의 올바른 추리인 철학이 성립된다고 보고 학문에서 양자를 종합하려고 하였다. 그의 주요저서인 ‘철학원리’는 제1부 ‘물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 사실이 그들도 또한 때에 따라선 타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홉스는 다른 장소에선 그의 이기주의를 매우 상식적인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기도 하다.홉스는 선(good)이란 사람이 욕구(desire)하는 대상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유익,좋음]을 도모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그의 애당초의 주장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하면 타인을 도와주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욕구인 만큼, 많은 사람에게 선이요 이익이 되는 것은 타인을 도와주는 것이다. 따라서 홉스의 견해는 무해하거나 중립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학자들 사이에는 홉스가 과격한 이기주의자와 온건한 이기주의자의 견해 중 어느 쪽을 대변하고 있는지, 또는 양자 모두를 대변하고 있는지에 관해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다만 홉스의 견해를 그 전체적인 정신에서 파악한다면,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데 이기적인 동기가 비이기적인 동기에 선행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러나 각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한다는 것이 전제되면, 인간은 천성적으로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않고 따라서 제약을 받지 않으면 서로가 충돌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홉스는 ‘시민론’ 1장 2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사회생활이 우리 자연본성에 맞아서가 아니고 사회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어떤 이익이나 명예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개인으로서 인간은 그들의 이기적인 행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과 충돌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할 수가 없다. 결국 이와 같이 인간의 자연본성으로 인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창조해 낸 것이 바로 리바이어던이라 불리는 국가인 것이다.5. 국가론홉스는 그의 도덕, 법 및 국가에 관한 이론에서도 역시 일관성 있게 기계론적인 자연주의의 입장을 대변한다. 홉스는 절대 군주 국가 및 13장 9절에서 더할 나위 없이 극명한 필치로 기술되고 있으며, 또한 실제로 모든 홉스 연구자들은 이 문단을 그의 정치사상을 대표할 수 있는 구절로서 반드시 인용하고 있는 실정이다.“만인이 만인에게 적인 전쟁 상태에 수반되는 온갖 사태는 인간이 자신의 힘과 창의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보장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상태에 수반되는 사태와 동일하다. 이런 상태에선 근로가 자리 잡을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근로의 과실이 불확실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토지의 경작도 향해도 있을 수 없으며, 해로로 수입되는 물자의 이용, 편리한 건물, 다대한 힘을 요하는 물건의 운반이나 이동을 위한 도구, 지표면에 관한 지식, 시간의 계산, 기술, 문자, 사회 등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쁜 일은 끊임없는 공포와 폭력에 의한 죽음의 위험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빈궁하고 더럽고 잔인하면서도 짧다.”그러나 적지 않은 독자들이 자연 상태에 대한 홉스의 기술을 수긍하지 못하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홉스의 기술을 인간의 원시적 생존 조건에 관한 역사적 견해의 표현으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에는 홉스의 의도를 파악 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배제되게 된다. 사실 홉스 자신이 ‘리바이어던’ 13장 11절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자연 상태가 한때 세계 도처에 존재했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전통적으로 두 가지 방식이 자연 상태를 고찰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첫 번째 방식은 사유 실험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자연 상태를 일종의 가정적인 경우로서 고찰하는 것이다. 홉스 역시 이 방식에 따라 인간의 자연 본성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데, 이 규명 과정에 인간본성의 비본질적인 부분을 사상하는 사유 절차가 수반된다.결국 홉스에게서 이 방식은 인간들은 법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를 규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만치 홉스가 처음 자연 상태의 아이디어를 소개할 때 독자에게 그 상태에선 어벗어나려고 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인지상정이다. 인간 내부에 있어서 과연 무엇이 이와 같은 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인가? 홉스는 그 원동력의 일부는 정념(passion)에 있고 또 일부는 이성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은 죽음에 대한 공포, 또 한편은 안락한 삶의 영위에 대한 욕구야말로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노동을 통해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이성의 사용이 결국 자연 상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인간은 그래서 이성에 따라 자연법에 접근하게 된다.8. 자연법홉스의 자연법 정의는 ‘시민론’과 ‘리바이어던’에서 근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앞선 작품에선 홉스는 자연법을 인간이 자신의 생명과 건강의 보존을 위해 해야만 할 것 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한 올곧은 이성의 명령으로서 정의하고 있다. 홉스에서 법은, 진정한 법은 반드시 입법자가 있어야 하는데, 위의 정의에선 자연법에 대해선 이성 자체가 이 입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성은 인격(person)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온전한 입법자일 수 없는 만큼, 자연법은 온전한 의미의 법일 수는 없다. 그런고로 대다수의 학자는 홉스에게 선 자연법은 진정한 법이 아니고 차라리 일종의 타산적 격언(prudential maxims)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와 같은 해석에 따르면 자연법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결국, 홉스가 자연법에 관한 그의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 학자 대부분의 생각이지만, ‘리바이어던’에 와서 홉스의 논의가 다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학자가 소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리바이어던’ 14장 3절에서 제시되고 있는 자연법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자연법(lex naturalis)이란 이성에 의해 발견된(1) 계율 또는 일반 법칙(2)이며, 그것에 의해 사람은 그 생명을 파괴한다든가, 생명 보존의 수단을 제거한다든가와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이 금지되게 된다(3). 구성 요소 (1이익은 매우 크지만 적발될 가능성은 매우 적은 반면, 계약을 지키는 데서 오는 해(harm) 역시 매우 큰 상황을 상정해 보자. 이 경우 우리의 합리성(rationality, 계산 능력)이 명하는 것은 십중팔구 계약을 어기는 쪽일 것이며, 그런 한에서 우리로선 결국 자연법에 관한 홉스의 또 다른 견해, 즉 계약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의해 보증되고 있다는 견해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제1자연법: ‘평화를 찾아낼 수 있는 곳에선 평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곳에선 전쟁 수단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홉스는 ‘시민론’에서 제1자연법을 정식화하고 있다. ‘리바이어던’에 와선 홉스는 이 명제를 이성의 일반 법칙 또는 이성의 계율이라 부르면서 이 명제의 첫 번째 부분만을 제1자연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인간은 누구나 평화의 희망이 있는 한 평화를 추구해야만 한다.’가 제1자연법이고 나머지 부분, 곧 ‘평화가 가능하지 않은 곳에선 각자는 전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방어해도 좋다’를 자연권의 골자로서 규정하게 된다. 홉스가 최초의 명제를 이런 식으로 분할한 데는 ‘리바이어던’에선 [시민론과는 달리] 자연권에 좀 더 큰 역할을 부여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제2자연법: 여타 모든 자연법은 제1자연법으로부터 귀결되는 것으로 상정된다. 홉스는 ‘리바이어던’ 14장 5절에서 제1자연법에서 어떻게 제2자연법이 추론되는가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도록 명령하는 이 기본적 자연법으로부터 제2자연법이 다음과 같이 추론된다. 평화를 위해, 또한 자신의 방위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한에 있어서, 사람은 여타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면 만물에 대한 권리(즉 자연권)을 기꺼이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허용한 만큼의 자유에 자신도 만족해야만 한다.9. 사회계약홉스가 말하는 사회계약 개념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맺은 계약(covenants)을 상대방이 그것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있는 한, 이행해야 한이다.
    인문/어학| 2021.05.22| 13페이지| 1,000원| 조회(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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