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제례악 비교-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을 중심으로조선 시대 때 행해진 제사는 크게 천신제, 지신제, 인신제의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천신제는 하늘을 위한 제사로 원구제가 있으며, 지신제는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제사를 올리는 사직제와 같이 땅을 위한 제사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인신제는 사람을 위한 제사로 종묘 대제, 문묘 석전제, 선농제, 선잠제 등이 있다. 이중 오늘날 행해지는 제사는 종묘 대제와 문묘 석전제로 종묘 대제 때 연주하는 곡은 종묘제례악, 문묘 석전제 때 연주하는 곡은 문묘제례악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제례악은 우리 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음악으로서 연구의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그 음악의 용도와 사상적 배경이 명확하여 이 시대의 음악에 대한 정의와 미에 대한 개념, 그리고 시대적 배경과 사상, 철학 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은 연주 형태, 절차, 악기 편성 등이 유사하여 국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국악 연주자 또한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의 비교를 통해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대해 분명히 알고 더 나아가 전통 음악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자 한다.종묘제례악은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곡과 무용 일체를 의미한다. 종묘제례악은 우리나라에서 국가적인 제례에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 고려 왕조 초기부터 있던 음악은 아니다. 고려 초기에는 1116년 송나라의 휘종이 보내준 중국의 아악을 태묘에서 제례악으로 연주하였다. 그러나 이 음악은 중국 고대음악의 양식을 따르는 음악으로 중국의 음악이 문화가 다른 고려에서 그대로 전승되기는 어려웠고 이러한 사정으로 조선 건국 후에 고려의 옛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제사 음악의 가사를 새로 짓기도 하고 중국의 악기를 수입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조선의 종묘에서 중국풍의 아악이 연주되는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며 건국 초기에 지어진 의식 음악이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과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어려움을 찬양하는 데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음악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음악이 종묘제례악이며 이는 15세기 초에 만들어져 거의 6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종묘제례악은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 신에게 예물을 올리는 전폐례, 정성스레 마련한 제수를 올리는 진찬례, 그리고 석 잔의 술을 차례로 올리는 초헌·아헌·종헌례, 조상신이 복을 내려 준 음식을 제관이 나누어 먹는 것을 상징하는 음복례, 제기를 치우는 의식인 철변두, 신을 보내드리는 송신례, 마지막으로 제사에 사용된 축문을 태우는 망료례의 절차에 따라 연주된다. 종묘제례악은 왕들의 문덕을 찬양하는 보태평, 왕들의 무공을 찬양하는 정대업, 그리고 진찬악의 세 곡으로 연주된다. 이중 보태평은 ‘黃-太-仲-林-南’의 5음 음계, 정대업은 ‘黃-夾-仲-林-無’의 5음 음계로 구성되며 진찬악은 ‘黃-太-姑-仲-林-南-無-應’의 7음 음계로 구성된다. 음악을 연주할 때는 월대 위의 등가와 월대 아래의 헌가로 악대를 나누어 연주한다. 월대 위에는 비교적 음량이 작은 현악기 위주로 편성되며 월대 아래의 헌가에는 음량이 큰 관악기와 타악기가 편성된다. 종묘제례악에는 중국의 아악기, 중국에서 넘어와 우리나라화 된 당악기, 그리고 우리나라의 향토 악기인 향악기가 모두 편성된다. 악기의 위치를 살펴보면 등가의 오른쪽에 편성된 악기는 헌가의 왼쪽에 편성되고 등가의 왼쪽에 편성되는 악기는 헌가의 오른쪽에 편성된다. 이를 ‘대각편성’이라 한다. 그러나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축, 음악의 끝을 알리는 어는 대각편성 되지 않고 각각 악대의 오른쪽과 왼쪽에 편성된다. 종묘제례악의 선율을 살펴보면 주음에서 시작하여 주음으로 끝나는 ‘기조필곡’의 형태를 지니며 점차적으로 하강하여 종지한다.한편, 종묘제례악에는 일무도 포함된다. 일무는 줄을 서서 추는 춤이라는 뜻으로 종묘제례악에서는 64명의 사람이 8명씩 8줄로 서서 추는 8일무를 수반한다. 원래는 6명씩 6줄로 서서 추는 6일무를 수반하였으나 고종 이후 8일무로 바뀌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일무는 보태평에 맞춰 추는 문무와 정대업에 맞춰 추는 무무로 구분되는데, 문무는 왼손에 약(?), 오른손에 적(翟)이라는 악기를 들고 추며 무무는 앞 4줄은 검(劍), 뒤의 4줄은 창(槍)을 들고 춘다.반면 문묘제례악은 공자와 그의 제자인 안자, 증자, 맹자 등 중국의 유학자와 우리나라의 최치원, 설총 등 훌륭한 유학자를 모신 사당인 성균관 대성전에서 제사를 올릴 때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 일체로 석전악 또는 응안지악이라고도 부른다. 문묘제례악은 중국 상고시대 때부터 연주된 것으로 고려 예종 11년(1116)에 송나라의 휘종이 보내주었다. 그러나 문묘제례악은 고려 말기 때 많이 변질하였으며 부족한 점을 바로잡지 못하다가 세종 때 박연 등이 중심이 되어 주공단의 『주례』, 두우의 『통전』, 채원정의 『율려신서』, 진양의 『악서』, 임우의 『석전악보』, 주희의 『의례경전통해』 등에 의거하여 새롭게 고친 음악으로 본고장 중국에서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이며 오직 우리나라에만 남아 연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