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명으론 센카쿠 열도. 중국명으론 댜오위다오, 대만명으로는 댜오위타이로 불리는 조어도는 동중국해에 위치한 8개의 무인도서로 풍부한 어족자원과 석유,천연가스 매장량 및 해상 교통로의 요지로서 경제적.지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서입니다. 위치상으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약 410km, 중국과는 330KM, 대만과는 약 170KM 떨어져 있으면 현재 실효지배국은 일본입니다. 하지만 이 센카쿠 열도는 영토 분쟁 지역으로 중국과 일본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역사적으로 센카쿠 열도가 영토분쟁지역이 된 이유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894년부터 1895년 청일전쟁 당시입니다. 전쟁 패국인 청나라는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며 타이완 섬과 펑후열도 일본에게 넘겨주며 센카쿠 열도 또한 받게 됩니다. 그후 1941년~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일본은 1951년 9월 8일 미국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맺으며 오키나와를 미국으로 넘겨주게 되는데 이때 센카쿠 열도는 오키나와로 편입 되어있었습니다. 1972년 5월 15일 미국이 일본에게 오키나와와 센카쿠 열도의 행정 관할권을 반환하였고, 1978 중일 평화 우호 조약에서 센카쿠 열도 영유권에 대한 논의를 보류하게 됩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일본과 중국이 행동으로는 서로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듯이 행동하였고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 근처에 있던 중국어선과 일본의 갈등이 생기면서 일본이 중국 선장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일본 관광 금지와 희토류 수출금지를 표하며 각국의 반중, 반일 감정이 심화되었습니다. 2012년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 하겠다는 일본의 발언을 시발점으로 중국이 해양 감시선을 보내며 군사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였습니다.이에 대해서 우리는 각국이 자신들의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들을 파악해봐야 합니다.첫번째 근거는 역사적으로 누가 먼저 영유권을 주장했는가 입니다. 즉, 고대나 중세에 일본인과 중국인이 어떻게 섬과 접촉했는가가 영유권 주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일본은 1885년 이래 오키나와현 당국을 통해 여러 번 현지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섬은 무주지였고 청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는 국제법상으로 취득, 선점의 법리에 따라 일본의 영토임을 주장합니다. 일본은 중국 문헌 그 어디에도 중국인이 역사적으로 거주한 기록,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기록이 없음을 주장하며 1895년 센카쿠 열도를 일본령으로 편입시킵니다. 이를 최초의 영유권 조치 즉 선점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에 대해 중국은 16세기부터 중국의 역사 문헌에 댜오위다오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1534년, 문서를 통해 구메야마(류큐)보다 서쪽인 다이쇼지마 등이 중국령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명나라 시기 출판된 일본일람에도 작은섬, 대만의 부속도서라고 적혀있음을 통해 댜오위다오가 중국인이 최초로 발견한 땅이며 16세기부터 중국의 판도에 들어와있음을 주장합니다. 이를 국제법대로 발견을 영토취득의 근거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르면 최소 16세기부터 중국 판도에 들어있음을 시사합니다.두번째 근거는 1895년 센카쿠열도의 일본합병에 대한 관점의 차이입니다센카쿠열도는 시모노세키 조약 제 2조에 근거하여 청나라에게 할양받은 타이완과 펑후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정식적으로 센카쿠 열도를 일본령으로 편입했다고 보고있습니다.이에 대해 중국은 청일 전쟁이후 일본이 댜오위다오를 일본령에 넣고 청나라에게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여 타이완과 부속도서를 할양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는 침략 행위로 2차세계대전 이후로 일본은 댜오위다오, 타이완, 펑후열도를 중국에게 반환해야만했습니다. 1879년부처 1890년 사이 류큐와 청나라가 교섭할떄 댜오위다오는 류큐의 범위에 속하지 않음을 상호 확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마지막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각국의 주장이다.일본은 1895년부터 1970년까지 75년간 단 한번도 중국은 일본의 영유권에 대해 이의도 항의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하지만 중국은 1944년 댜오위다오 섬을 타이완주 관할로 설정하였고 오키나와를 반환하며 시정권을 일본측에게 돌려주었지만 미국은 시정권과 주권이 별개라고 생각하며 주권 문제에 대한 견해차는 당사국끼리 해야한다는 주장을 통해 댜오위다오에 대한 의견을 내비췄습니다. 1950년에는 중국의 모든 영토회복을 염원한 중국인들의 성명을 통해, 1970년 지리상의 위치,지질구조,역사 연계뿐만 아니라 타이완주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하여 사용해 온 점에서 댜오위다오는 이미 중화민국과 밀접하게 연관 있다고 생각하였고 미국의 류큐열도와 함께 댜오위다오섬을 이관함에 있어서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1971년 1972년 또한 계속적으로 댜오위다오가 타이완 부속이라는 견해를 내비치며 일본의 근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댜오위다오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내비쳤고 일본의 주장은 이로 인해 약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