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1. 조선시대 한국 음악적 특징을 서술 하세요.1. 임진왜란, 병자호란 으로 궁중 문화 쇠퇴, 선비들의 풍류음악인 정악과 서민들의 민속음악 이 크게 발달ㅡ악현의 축소2. 번음촉절: 가락이나 장단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악곡의 절주가 빨라짐고음화 : 높은 음역 으로 전환되어 변주되는 경향예) 기악곡으로 연주되던 보허자, 영산회상 등은 새로운 곡을 파생함3.성악곡의 기악화 ㅡ 여민락 18세기 완전히 기악곡화, 보허자 18세기 기악화 변주곡 파생낙양춘 18세기 기악화, 19세기 전기 거치며 청성 자진한잎영산회상 17세기 후반 기악화되고 많은 변주곡들이 파생4. 당악의 향악화, 향악의 발전 시조와 가곡이 발생5. 민속악 ㅡ 가악, 판소리, 민요, 산조, 풍물놀이 발전6. 다악장의 모음곡 완성 ㅡ 영산회상, 가곡7. 아악이 명맥만 유지 인조때 종묘제례악 부활, 궁중무용의 발전ㅡ 춘앵전, 헌선도, 포구락, 향장무 등8. 풍류의 발전 (줄풍류, 대풍류), 경안법에서 역안법으로 변화ㅡ시김새, 음악적 표현 풍부해짐2. 한국의 전통 현악기와 관악기의 종류와 특징을 서술 하세요.현악기- 가야금 -가야국의 가실왕이 6세기에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으며,좁고 긴 장방형의오동나무 공명판 위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걸고, 줄마다 그 줄을 받치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작은 나무기둥을 세워놓은 현악기이다.연주방법은연주자는 오른손으로 줄을뜯거나 퉁기고, 왼손으로 줄을 떨거나 눌러서 소리를 조절한다. 음색이 맑고 우아하며 연주기교가 다양하다- 거문고 -좁고 긴 장방형의 오동나무 공명판 위에 명주실로 꼰 6개의 줄을 걸고, 세 줄은 16개의 괘 위에 얹어 놓고, 나머지 세 줄은 가야금처럼 안족으로 받혀 놓았다. 안족 위에 얹힌 세 줄 중 두 줄은 왼손의 손가락으로 정해진 괘를 짚어 음 높이를 조절하고, 나머지 한줄과, 안족 위에 얹힌 세 줄은 모두 개방현으로 연주한다. 오른 손에는 술대를 끼고, 줄을뜯거나 밖으로 내어 타고, 때로는 세게 내리쳐 소리내기도 한다.《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의 제2상이던 왕산악(王山岳)이 중국에서 들어 온 칠현금(七絃琴)을 우리음악에 맞게개조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아쟁 -고려 때 중국에서 들어온 현악기로 《고려사》 악지에 보인다. 본래 7줄이나 요즈음에는 9줄로 만들기도 한다. 거문고보다 큰 몸통에 긁은 줄을 얹고, 개나리나무로 만든 활대에 송진을 바르고 줄을 문질러 소리낸다. 조선 전기에 이미 향악에 쓰기 시작하였다. 악곡에 따라 조현법이 조금씩 다르며, 국악기 중 합주때 저음역을 담당하는 악기이다. 활로 줄을 문질러 연주하는 찰현악기이므로, 관악합주에도 해금과 함께 편성된다.- 해금 -고려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찰현악기로, 본래 중국 요하(遼河) 상류 북방의 유목민족인 해족(奚族)의 현악기가 중국에 전래된 것이라 한다.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에 고루 쓰이며, 줄을 문질러 소리내는 찰현악기의 특징을 살려 관악합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굵은 대나무 뿌리에 오동나무로 복판을 댄 공명통 가운데에 길이 58㎝ 정도의 대나무를세우고, 명주실을 꼬아 만든 두 줄을 건다. 말총 활대를 두 줄 사이에 끼우고, 말총에 송진을 바른 다음 활을 밀거나 당기면서 줄을 문질러 소리낸다. 두 줄 중 안쪽의 줄이 중현(中絃)이며 바깥쪽의 줄이 유현(遊絃)인데, 두 줄은 완전5도로 조율한다.- 양금 -서양에서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타현악기로 쇠줄로 되어있다. 조선 영조 때 청나라에서 들어와 주로 민간의 풀류방에서 사용되었다. 사다리꼴의 공명판 위에 두개의 긴 괘를세로방향으로 세우고, 이 괘를 가로질러 14벌의 줄을 가로 방향으로 얹는데, 각 한 벌은 4가닥의 가는 철사이다. 오른쪽 괘에 얹힌 줄은 왼편 괘 위에 얹지 않고 아래로 통과시키며,왼쪽 괘에 얹힌 줄은 오른편 괘를 아래로 통과한다. 따라서 양금은 7음음계로 조율되고, 모두 21개의 음을 낼 수 있는데, 중복되는 음이 있어 음역은 두 옥타브 반이다. 채는 대나무를가늘게 깎아 만들며, 이 채로 줄을 쳐서 소리낸다.관악기- 대금 -황죽(黃竹) 또는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로 부는 관악기(橫笛).민요·산조·시나위 등을 연주하는 산조대금(또는 시나위젓대)와 궁중음악·풍류 등을 연주할때 쓰는 정악대금(正樂大?)이 있다. 통일신라 때는 대금·중금(中?)·소금(小?)을 삼죽(三竹)이라 하였다. 오늘날의 대금은 길이는 82㎝, 지름 2㎝ 정도이며, 입김을 불어넣는 취공과갈대의 속청을 붙이는 청공이 하나씩 있고, 손가락으로 막거나 떼어 음높이를 조절하는 지공 6개와 악기의 최저음을 결정하기 위하여 뚫어 놓은 칠성공이 한 두 개 있다. 취공(취구)에서 가장 가까운 지공부터 차례대로왼손 검지·장지·약지, 오른손 검지·장지·약지 순서로짚는다. 대금은 취공 쪽 끝을 왼쪽 어깨에 올려놓고 불며, 음역은 2옥타브 반 정도이다.- 단소 -세로로 부는 관악기의 하나로 《악학궤범》 등 조선시대의 문헌에 기록이 전혀 없다. 다만《백운암금보》에 단순히 ‘소(簫)’라고만 기록된 악기의 그림과 운지법, 악보가 소개되어있어, 이 악기가 단소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재료로는 오래된 황죽(黃竹)이나 오죽(烏竹)을 사용하며, 지공(指孔)은 위쪽 뒤편에 하나, 앞쪽에 네 개이나, 맨아래 지공은 사용하지 않는다. 음역은 두 옥타브에 이르며 음색은 맑고 청아하다.- 소금 -통일신라시대부터 전하는 3죽(三竹:大? ·中? ·小?)의 하나로 그 중 가장 작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중금과 소금의 제도와 보(譜)는 대금과 같고, 크기만 다를 뿐 지법(指法)이나 음계 등도 모두 대금과 같다”고 하였으나 청공(淸孔)과 칠성공(七星孔)이 없다. 취구(吹口)와 6개의 지공(指孔)이 있으며, 관악기가운데 가장 높은 음을 낸다.- 피리 -곧은 일자 모양의 대에 구멍을 뚫고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국악기나 서양악기, 또는 세로나 가로로 부는 악기를 구별하지 않고 통틀어 피리라고 부른다. 세 개의 지공(指孔)으로 반공(伴孔)을 막고 여는 연주법을 써서 십이율(律)을 내는 약(?)이라는 국악기로부터 열 개가 넘는 지공을 아홉 손가락으로 여닫아 반음까지도 연주할 수 있는 서양악기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모양·음색·조(調) 등은 실로 다양하다.- 태평소 -호적(胡笛)·쇄납(??)·날라리·대평소·소눌 등으로 불렸던, 이 악기는 1993년 국립국악원에서 새납으로 통일해 쓰기로 했으며 태평소라는 이름도 함께 쓰기로 하였다. 나무로 만든긴관에 혀(reed)를 꽂아서 부는 세로악기로 화려하고 강렬한 음색을 지녔다. 수입된 연대는분명치 않으나 《악학궤범》에 당악기(唐樂器)로 소개되어 있다. 처음에는 주로 군중(軍中)에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종묘제례학(宗廟祭禮樂) 《정대업(定大業)》의 〈소무(昭武)〉〈분웅(奮雄)〉 영관(永觀)〉에 사용하며, 대취타(大吹打)·농악·범패(梵唄:불교음악)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악기는 유자나무·대추나무·뽕나무 등 단단한 나무의 속을 파서 만든 원추형의 나무관(길이 약 35cm)으로 되었으며 앞에 7개, 뒤에 1의 지공(指孔)이 있다.- 나발 -흔히 나팔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나발과 비슷한 점으로 미루어 중국에서 흘러들어온악기인 것만은 확실하나, 문헌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세 토막의 짧은 관을 끼워 연결시키고 끝에 나팔꽃처럼 벌어진 벨(bell)을 붙여 만드는데, 길이는 114 cm 가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