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담은 영화 시청 감상문Ⅰ.서론내가 본 영화는 멕시코의 여성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담은 영화 ‘프리다’이다.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우선 이 레포트를 쓰기 전 주제를 보고 여성 미술 작가에 관한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고 싶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평소에 독립적이고 자기 삶을 진취적으로 사는 여성이나, 여자 리더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 인생에서 남자가 꼭 없더라도, 또 굳이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더라도 자기 인생을 멋지게 사는 여자들의 모습은 한때, 고양이를 키우면서 독신주의를 꿈꾸던 나에게 있어 동경이자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눈으로 읽는 미술사’ 수업을 들으면서 남성 미술 작가들은 많은데, 그에 비해 알려진 여성 미술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적어 늘 안타깝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여성 작가의 생애를 담은 영화를 보고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이 주제를 보고 떠오른 인물은 ‘프리다 칼로’였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 예전에 그녀에 관한 책을 먼저 읽었는데, 내가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 우연히 보게 된 ‘상처입은 사슴’이라는 그림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이나 장면을 보면 충격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기분이 충격이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사슴이 화살을 맞은 채 피 흘리는 모습은 미술을 잘 모르던 그때 당시의 내 기억 속에도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림으로 남아있다. 그 뒤로 호기심이 생겨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더 찾아보기도 하고, 그녀에 관한 책을 읽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그녀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불빛에 뛰어드는 나방’ 같다고 느껴졌다. 나방이 빛에 이끌리는 것처럼 화려함과 빛처럼 반짝이는 예술적인 삶을 좇고, 뜨거운 불빛에 계속 몸을 뛰어드는 나방과 잘못되고 나쁜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남편 디에고를 계속 선택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본론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화려하고 굴곡 많았던 그녀의 인생을 보면서 그녀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나의 삶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고자 이 감상문 쓰게 되었다. 프리다 칼로-상처입은 사슴. 30cm x 22cm, 섬유판에 유채, 1946출처 : 이호영, [이호영의 그림산책10, 끝]프리다 칼로 -그림 상처입은 사슴, 그 눈 속으로, 서울신문, 2018.04.12.Ⅱ. 본론우선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먼저 소개하자면, 1907년 프리다 칼로는 그 당시 혁명의 열기가 가득한 멕시코에서 태어난다. 6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한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밝고 쾌활한 그녀의 성격에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16살 때 하굣길에 오른 버스와 전차가 부딪치며 큰 사고가 났고, 강철봉이 그녀의 척추와 골반을 관통했다. 어깨, 대퇴골, 양쪽 다리가 부러지고 골절되어 꼬박 9개월을 누워만 지내야 했지만, 이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를 만든다. 이 사고를 통해, 그녀는 의사란 꿈을 버리고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당시의 사회운동가이자, 유명한 예술가인 디에고 리베라에게 자신의 그림을 인정받고 난 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면서 나이 차가 21살이나 나는 디에고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디에고는 2번의 결혼에 심각한 여성 편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이런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디에고와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사람들이 이 둘의 결혼을 보고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결혼 생활은 그녀의 바람대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늘 정착하지 못했고, 그녀의 친동생과도 외도를 저지르고, 몇 차례의 유산 등 그녀의 인생은 계속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 이어진 삶이었다. 그녀의 그림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12년만인 멕시코시티 대학 갤러리 그룹전에 처음으로 출품했다가 프랑스 초 현실주의 미술가인 앙드레 브르통의 찬사를 받으면서 부터이다. 이후 뉴욕과 프랑스에서 전시도 하고 국내에서 작가로 인정받기도 하면서 미술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 뒤로 남편과의 이혼과 재결합 늘 고질병처럼 달고 있었던 척추의 고통이 재발하기도 하고, 합병증으로 다리를 자르기도 한다. 그녀의 삶은 이렇게 화려하기도 하고 굴곡이 많은 인생이었다.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작가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녀 자신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은 그저 병마와 싸우며, 남편의 여성 편력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한 것이고, 유럽의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멕시코의 전통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년 7월 6일, 멕시코 - 1954년 7월 13일출처 : Wikimedia Commons특히 그녀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 많은 작품을 남기게도 한 디에고와의 결혼 생활을 표현하며 그녀가 한 말에 의하면 ‘나는 일생 동안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6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이다. 두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두 번째가 더 끔찍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나의 평생 소원은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남편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드러낸다. 프리다 칼로에게 있어 그녀의 남편은 남편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 같다. 남편을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고 그의 예술적 재능을 너무나도 존경하지만, 그가 가진 성향에 때문에 방황하고 상실감을 느끼다 결국에는 그의 이런 모습조차 사랑으로 감싸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내가 든 생각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결국에는 이 사람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으면,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잘못 꿴 단추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 했을텐데 그녀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다가도 미련스럽고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했다.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고통이나 아픔이 있을 때마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정착하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찢어지는 아픔이나 척추의 고통이 재발했을 때 조차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예술로서 처절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작품에는 자화상이 많은데, 이것들이 바로 이렇게 인생에서 기쁘거나 슬픈 일들이 있을 때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그래서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는 그녀의 인생이 녹아있다. 프리다 칼로- 부서진 기둥, 1944. 캔버스에 유채, 40x30.7cm, 돌로레스 올메도 컬렉션, 멕시코 시티출처 : 조성준 기자, 페미니스트의 아이콘 프리다 칼로, 매일경제, 2019.01.03.,Ⅲ. 결론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드러냈던 프리다 칼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20대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내 감정을 솔직히 마주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슬프면 슬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그런 감정을 회피하거나 드러내지 않고 삭히는 방법으로 나의 감정을
최근 5년 이내 국내 재난사고의 원인과 대책 작성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재난사고?원인2. 대책Ⅲ. 결론참고문헌국내 재난사고의 원인과 대책작성현대사회에서 재난은 우리의 일상에 늘 가까이 있다. 재난은 작은 실수나 부주의로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의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지역사회나 국가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재난을 예방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재난 발생 시에는 사후관리를 통해서 다시 재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해야한다. 화학물질 유출 사고의 예시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재난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 사고의 원인, 대책 마련을 해보면서 재난의 예방?대응?대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지한다.Ⅰ. 서론우리는 일상생활을 살면서 재난이나 사고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살까? 아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기탈출 넘버원’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안전불감증을 느끼거나 뉴스에 나오는 심각한 사고를 보고 나서도 심각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또한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재난?사고 등에 대해서 깊게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이러한 일은 우연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고 치부하며 살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재난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지 못하며 살아간다. 왜 재난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그 이유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재난은 우리의 일상에 늘 가까이 있다. 작은 실수나 부주의로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의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지역사회나 국가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재난의 상황에서 사람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난이 이미 발생한 경우에는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나 내가 주제로 선정한 화학물질 유출 사고는 특정 지역이나 기관? 연구소 등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관련 종사자가 아니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산업단지가 있지 않은 이상 훨씬 더 재난의 경각심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이 주제를 통해서 소개하면서 화학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 마련을 해보고자 이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Ⅱ. 본론1. 재난사고?원인내가 조사한 재난은 2020년에 울산공단에서 발생한 화학 사고이다. 이 사고는 2020년 8월 14일 일어난 사고로 오전 10시 44분 쯤 울산 온산공단 LG화학 공장 옥외 보관소에 있던 유독성 가스 물질이 유출되면서 다량의 연기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로 유출된 물질은 ‘CCTA’라고 불리는 ‘2-클로로-N-(시아노-2-티에닐메틸)-아세트아미드’이다. 유독물질인 CCTA는 삼키거나 피부에 접촉하면 유해하며, 피부와 눈에 자극을 일으키거나 알레르기성 피부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7월 29일에도 울산 온산공단의 화공약품 유통업체인 비봉 케미칼에서 공장 가동 중 저장 탱크에 있던 고농도의 황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누출된 황산은 약 50㎏ 규모로 파악됐으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LG화학은 CCTA를 작물 보호제 제품을 생산하는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 사고의 원인은 안전 부주의로 인해 발생했으며, 사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 메뉴얼이 있었지만, 근로자들이 우왕좌왕하며 이것을 정확히 따르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울산에는 지역 특성상 화학 공업단지가 많아 환경부가 화학사고 대피 안내지도를 만들고 대피 장소도 39곳을 지정했다. 이 지도에는 대피 장소명, 주소, 수용 가능 인원 정보와 화학사고 발생 시 주민 행동요령, 지역 내 위해 관리계획 주민고지 등록 사업장 등이 표시된다. 또 주민고지 정보 중 물질 위험성 정보와 주민 행동요령은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근로자들이나 주민들이 대부분 모르고 있어 실제 사고 발생 시 혼선과 함께 인명피해 확산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LG화학 유독가스 유출사고 당시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는 소방관들 ⓒ울산소방본부출처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툭 하면 터지는 울산공단 화학물질 유출사고, 시사저널 1651호, 2020.08.18., 네트워크면이처럼 울산은 연간 화학물질 및 유독물질 유통량 역시 각각 1억 3000만톤, 3400만톤에 달해 각각 전국 유통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화학사고의 위험이 가장 높은 도시다. 2020년만 해도 6건의 화학 사고가 2019년에는 5건의 화학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2020년 기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특히 화학물질은 그 특성상 열에 약하기 때문에 여름철에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한다. 환경부가 2015년부터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화학사고 총 401건의 발생 시기를 분석한 결과, 여름철인 7~8월에 발생한 사고는 월평균 9.2건을 기록한 반면 이 기간을 제외한 시기 발생한 화학사고는 월평균 6.2건으로, 1.48배 차이가 난다.2. 대책그렇다면 위와 같은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유출사고는 관리자들의 노력으로 충분히 사전 예방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장비나 시설설비, 유해물질의 보관 용기 등의 노후화나 부식, 파손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 특히나 화학 사고의 경우에는 작은 실수나 부주의 등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근로자들은 시설물 안전 규정을 늘 준수 해야 하며 자체적으로 정기적인 안전점검을 시행해야 한다. 사실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잘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화학 사고의 80% 이상을 예방할 수 있다.또한 위의 기사에서도 말했듯이 화학물질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위의 사고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것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근로자들이 대처방안 메뉴얼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화학 사고의 위험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근무환경에서 근로자들의 이런 태도는 더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사항이다. 따라서 근로자들에게 위험 사항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교육을 해야 하고 비상조치 계획의 주기적인 훈련을 시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역단체에서 인근 산업단지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주로 다루는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지역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교육을 해야 한다. 산업단지나 화학 공업단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경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상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 인식이 적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위의 사고에서처럼 대피장소가 있지만 지역민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점이나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마광의, 「자치통감」 해제(解題)목 차Ⅰ. 서론Ⅱ. 본론Ⅲ. 결론참고문헌사마광의, 「자치통감」 해제(解題)현대 사회는 급변하고, 점차 다원화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정도(正道)’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치통감 속의 다양한 일화 등을 통해 사마광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마광이 말한 것처럼 인간의 본질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우리는 과거의 성공담 혹은 실패담으로부터 현대의 삶을 살고, 미래에 가야 할 올바른 방향까지 정할 수 있다. 자치통감은 그런 길을 찾는 이들에게 해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Ⅰ. 서론우리의 삶에서 역사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내가 ‘자치통감’을 주제로 선정하게 된 배경과 관련이 깊다. 역사서는 우리에게 위기와 고난이 닥쳤을 때 해결방안과 지략을 알려주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또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통해 삶의 방향과 덕목으로 삼아야 할 교훈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나는 인생에서 인문학 책과 역사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바로 이러한 책을 통해 우리가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치통감은 역대 국가의 주요 통치자들도 삶의 지침서로 여겨 수십 번 읽었던 책이다. 그 일례로 중국의 마오쩌둥은 이 자치통감을 17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특히 이 책의 자세한 뜻을 알고 싶어 고대어 사전을 두고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고, 대장정 중에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 책에 대하여 ‘읽을 때마다 수확을 얻는 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다른 일례로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이 경연에서 직접 사용하던 ≪자치통감강목≫ 완질(59권 59책)이 2014년에 중국 상하이 도서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자치통감강목이란 것은 중국 송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중국 역사책 자치통감을 주희(朱熹)가 춘추의 형식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큰 제목으로 강(綱)을 들과 이 책에 관해서 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사마광은 이 역사서의 이름을 ‘통지(通志)’라고 지었다. 그러다가 후에 북송의 신종이 이 책은 ‘지난 일을 비추어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로 삼아야겠다’라고 생각해 특별히 ‘자치통감’으로 제목을 고치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급변하고, 점차 다원화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정도(正道)’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치통감과 같은 역사서가 그 길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내가 역사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자치통감을 읽고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과 연관 지어 올바른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이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Ⅱ. 본론우선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의 이력과 자치통감이 나오게 된 배경에 관해 소개하자면, 사마광은 관리 집안에서 태어나 20세가 채 되기도 전에 진사에 합격해 조정에 들어가 관리를 지냈다. 송나라 초기에는 절도사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바로잡고자 지나친 문치주의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것은 외교와국방 정책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한다. 사실 북송은 건국하면서부터 줄곧 북쪽에 있는 거란족의 요나라 그리고 서쪽에 있는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와 대결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북송 정부는 한편으로는 군사의 숫자를 늘리면서 이를 막으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재물을 주면서 회유하는 정책도 취하였다. 이 정책은 군비의 증가와 외족에 대한 세폐(歲幣)의 증가로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게 되었다.북송의 영종이 통치할 때 사마광은 여가 시간을 활용해 자치통감을 편찬했다. 자치통감의 첫 제목인 통지 8권을 완성한 뒤 원고를 영종에게 보여주자 영종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사마광의 역사서 완성을 지원하기 위해 영종은 특별히 그를 위해 서국을 설치하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인적?물적 지원을 해주었다. 영종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신종이 즉위했는데 신종 역시 사마광의 자치통감 편찬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신종은 북송의 혁론은 맹자의 사상을 근거로 들어 새로운 법제(法制), 즉 신법(新法)의 수립을 통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사마광의 생각은 달랐다. 개혁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개혁론으로 마음이 기운 신종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이에 신종은 정치를 신법당에게 맡기고 그에 반하는 구법당에게는 견제 역할을 맡김으로써 신법당의 전횡을 막고, 그 위에 황제권의 절대화를 꾀하고자 하였다. 그 방법은 사마광에게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나게 하는 대신 그의 소원대로 낙양에 가서 『자치통감』을 저술하게 하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낙양이라는 임지로 갈 때 그는 자신이 역사서를 편찬할 때 협조했던 서국도 함께 옮겨갔다. 사마광은 총 19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마침내 역사 대작을 완성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서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옆에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마광을 도와 원고를 교정해 주는 인원에 불과했고 구체적인 편찬 작업은 오로지 사마광 개인의 몫이었다. 낙양에서 15년 동안 그는 더더욱 편찬 작업에 매진했다. 그 기간에 그의 경제적 여건은 무척이나 열악해졌다.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 장례를 치를 돈도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유일하게 남은 약간의 농경지를 팔아 돈으로 바꿔 사용해야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험난한 일과 생활로 인해 그의 몸은 쇠약해지고 말았다. 그의 몸은 수척해지고 눈도 멀고 치아도 거의 남지 않고 정신 또한 쇠약해졌다. 그렇게 자치통감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마광(1019년 ~ 1086년), 북송시대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출처 : 네이버 ? 중국인물사전, 사마광자치통감은 편년체(編年體)역사서로 총 294권이다.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이 진(晉)나라 3경(卿 :韓, 魏, 趙氏)을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5대 (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인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내신을 스스로 추천한 고사에서 비롯된 고사성어이다. 전국시대 말 진나라는 전쟁을 치르며 다른 제후국을 차례로 통일하고 있었다. 진의 주난왕은 조나라의 ‘장평’이란 곳을 공격하게 되는데, 조왕은 장수 염파에게 요새를 지키라고 명한다. 염파는 성 안에서 지키고만 있고, 진나라와 직접 응전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고 있었다. 장평이란 지역은 진나라의 영토와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장기전으로 갈 경우 진나라에게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진나라는 쉽게 끝날 것이라고 예상한 전쟁이 속전속결로 처리되지 않자, 조나라의 장수인 염파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된다. 바로 ‘염파’가 반란을 꾸미고 있다’라는 얘기였다. 이것은 조나라 왕의 귀에도 들어가 조왕은 염파를 ‘조괄’이라는 장수로 갈아치우게 된다. 조괄은 염파에 비해 전쟁에 대해 실전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이에 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까지 포위를 하자, 조나라 왕과 평원군은 다른 나라에 지원 요청을 가게 된다. 이때 평원군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문무를 겸비한 20인을 선발하여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인재를 고르던 중 1명이 모자르게 되었는데, ‘모수’라는 자가 평원군에게 같이 가기를 청하게 된다. 평원군은 모수가 재능이 있는 자였으면 진작에 그 능력이 드러나고 쓰였을 텐데, 여지껏 모수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냐라는 이유로 거절을 한다. 하지만 모수의 계속된 간청에 결국 모수를 포함한 20인을 데리고 초나라로 떠나게 된다. 평원군이 초나라에 도착해서 초나라의 왕을 설득하여 조나라와 동맹을 맺자고 청하지만, 초나라의 왕은 ‘여지껏 여러 나라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전부 실패했다. 게다가 진나라가 너무 강성해져서 막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고 이 동맹의 화근이 초나라에게 미칠까봐 두렵다’라는 말을 하며 동맹을 거절하였다. 평원군이 오전이 지나도록 설득하였지만, 결국 동맹은 실패하게 되었다. 이때 모거보다 훨씬 큰 영토에 많은 군사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 것이냐’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나라가 초나라의 종묘를 훼손하고 대왕의 선조를 모욕했는데, 이 치욕스러운 일에 대해서 함께 복수를 하자’라고 말하며 초나라 왕을 설득한다. 모수가 초나라 왕인 자신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설득하는 모습에 초나라 왕은 이들과 삽혈로 맹세를 하고 동맹을 맺게 된다. 조나라로 돌아온 평원군은 모수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탄식을 했다. 그는 ‘앞으로 천하의 인재를 모두 알아볼 수 있다고 자처하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하며 모수를 상객으로 삼았다.그렇다면 이러한 자치통감 속의 다양한 일화 등을 통해 사마광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치통감 속에는 역대 중국의 황제들의 훌륭한 정치와 그를 잘 보필했던 신하들의 이야기, 도덕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것들, 때에 따라 적절하게 상벌을 내리는 것, 여러 인물들 사이의 처세술 등이 담겨있다. 현대의 삶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하고 달라졌다고 해도 인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의 역사서 또한 결국은 인물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성공담 혹은 실패담으로부터 현대의 삶을 살고, 미래에 가야 할 올바른 방향까지 정할 수 있다. 자치통감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잘 다스려지는 세상을 이룩하기 위한 밑천이 되는 통시대적인 거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마광은 이 말의 의미처럼 이 역사서를 읽게 될 이들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배우고 발전하며 앞으로의 길을 찾길 바라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또한 그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의미를 황제에게 전하고자 했다. 자기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 가정을 돌보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라는 이말의 의미 그대로 황제가 어진 정치를 하고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며, 적절한 상벌을 내리고 백성들을 돌보는 마음을 갖기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한 한 많은 인물들의 내용을 모으고, 고심해서 자치통감에 담았을 것이다. 사마광이 신종에 의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사례목 차Ⅰ. 서론Ⅱ. 사회적 책임의 이해1. 사회적 책임의 개념2. 사회적 책임의 특징Ⅲ.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사례1. 기업소개2. 사회적 책임 사례Ⅳ. 결론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사례요약 : 현대사회에 있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이것은 사회가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수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의 목적을 달성한다. 주류 회사인 오비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례를 통해서 이러한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업의 이익과 성패를 좌우하는 사회적 책임을 기업이 어떤식으로 달성해야하는 지 알아보도록 한다.Ⅰ. 서론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것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생각으로 단순히 용어만으로는 나와 관련이 없는 동떨어진 개념처럼 느껴졌다. 책에서 용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기업이 이해관계자 집단의 기대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기업과 이해관계자 집단 상호간에 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자신의 활동과 정책을 사회적 환경에 연관시키는 기업의 능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업에게 있어 이해 당사자라는 것은 소비자?지역사회?정부 등등 기업과 관련이 있는 여러 개인과 집단을 말하는데,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서 지역사회나 정부의 입장은 우선 뒤로 하고 소비자인 내 입장에서 어떤 기업을 선호하고, 기업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화장품에 있어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기업을 선호하고, 기업이 자원만을 이용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환경 오염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갖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업의 기사 내용을 보게 되면 그 기업 제품에 더 손길이 가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것이 아주 먼 개념이 아니라 내 일상에도 녹아있는 부분이었다. 기업의 최대 목적이자 존재의 이유는 경제적인 이윤의 창출이라고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단순히 사회에서 기업만이 잘 살고 기업이 사회적 문제에 나몰라라 하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발전해 나감에 따라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도 높아지고, 단순히 유명인이 나와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나 품질을 홍보하고, 기부와 같은 단순 자선활동만 한다고 하여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사회적 책임이란 것은 사회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업에게도 이익이 되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이란 것이 무엇이 있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사례를 보면서 이것을 이해하고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Ⅱ. 사회적 책임의 이해1. 사회적 책임의 개념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것은 위의 서론에서도 말했듯이 기업의 이해 당사자들이 기업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사회적 의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이다. 여기에 더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업 영역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 관심사들을 분석하고 수용하여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 당사자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이루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2. 사회적 책임의 특징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때 등장한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개발과 기업의 발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때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각국의 경제 · 사회 상황이 서로 상이하고 각 기업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해 국제적으로 통일된 방식이란 것은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4단계 범위로 구분된다. 제1단계는 경제적인 책임으로, 이윤 극대화와 고용 창출 등의 책임을 말한다. 제2단계는 법적인 책임으로, 회계의 투명성, 성실한 세금 납부, 소비자의 권익 보호 등의 책임이다. 제3단계는 윤리적인 책임으로, 환경 · 윤리경영, 제품 안전, 여성 · 현지인 · 소수인종에 대한 공정한 대우 등의 책임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제4단계는 자선적인 책임으로, 사회공헌 활동 또는 자선 · 교육 · 문화 · 체육활동 등에 대한 기업의 지원을 의미한다.Ⅲ.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사례1. 기업소개내가 조사한 기업은 오비맥주인데 이곳은 우리에게 카스나 호가든 등 다양한 맥주 생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비맥주는 1933년에 태동하여 80년 이상 한국 주류업계를 이끌어 온 대한민국 대표 ‘맥주 전문기업’으로서 과거 동양 맥주 주식회사로 두산의 계열사였으나 현재는 외국인 투자 기업인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ABInBev)의 자회사이다. 한국에서 프리미엄 OB, 카스, 카스 라이트, 카프리 등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2. 사회적 책임 사례오비맥주의 사회적 책임(CSR)은 크게 나눔, 건전음주, 환경 세가지 모토로 나누어져 있다. 오비맥주의 CSR은 기업의 지속 경영파트에서 전담하고 있고 글로벌 본사로부터도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CSR을 위해 마케팅 예산의 5% 이상을 꾸준히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사회적 책임을 시행하기 위해서 전담부서를 만들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이 기업이 책임감을 갖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느껴져서 이 기업의 이미지를 더 좋아 보이게 하고 신뢰감이 가게 만들었던 부분이다.나눔그럼 본격적으로 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첫 번째 모토인 나눔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오비맥주는 나눔을 위한 남다른 CSR 가치가 돋보이는 사업으로 ‘해피 라이브러리’라는 것을 시행하고 지역의 우수인재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해피 라이브러리’라는 것은 돌봄이 필요한 지역 아동들의 방과 후 학습환경 개선을 위해 전국 각 지역의 낙후된 지역아동센터를 최신 시설로 새 단장 해주고 각종 교육 자재와 도서 등을 무상 제공하는 CSR 프로그램이다. 지역 아동 센터 중앙지원단과 해피 라이브러리 MOU를 체결하고 지역 아동센터를 리모델링 해주고 임직원 자선 장터를 마련해 수익금을 지역 아동센터에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천, 청주, 광주광역시에 공장을 두고 있는 오비맥주는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해당 지역에서 판매된 제품의 일정 금액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장학기금을 조성해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듯 오비맥주는 미래를 이끌어갈 아동과 청소년들을 지원함으로써 나눔이라는 모토를 실천하고, 이들이 학업을 이끌어나가고 꿈과 희망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건전음주맥주 기업에서 건전한 음주를 위한 캠페인을 한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러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조사를 하면서도 가장 독특하게 느껴졌던 부분이고 주류 기업이기 때문에 주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행사와 홍보하는 활동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건강하게 술을 즐기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이를 위해 힘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오비맥주는 2015년부터 ‘패밀리 토크’라는 연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문화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방식의 가족 대화소통 캠페인으로 청소년 음주와 흡연, 게임중독 등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해 공론의 장을 만들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에 문제의 해결은 가족간의 대화와 소통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연극들을 보여주고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는 심리 상담가를 통해 관객들과의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또한 이외에도 다양한 건전음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는데 지난 2009년부터 매년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청소년의 음주를 막기 위해 서울 강남, 광주광역시 등 전국 주요 상권에서 ‘청소년 음주 예방 거리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는 글로벌 본사인 AB인베브가 정한 ‘글로벌 건전음주의 날(Global Beer Responsible Day, GBRD)’을 맞아 전 임직원이 참석해 건전음주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환경마지막으로 소개할 모토는 환경이다. 환경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해마다 봄이면 한국을 괴롭히는 황사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몽골의 사막화 및 황사 피해 예방, 생태계 복원을 위해 국제 NGO 푸른 아시아와 공동으로 몽골에서 ‘카스 희망의숲 가꾸기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비맥주가 몽골에서 나무 심기 봉사활동을 시작한 때는 2010년부터로 11년간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몽골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맥주 ‘카스’의 인기에 보답하고 황사의 진원지이기도 한 몽골의 사막화를 막는데 일조해야 한다는 인식이 이 캠페인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카스 희망의 숲은 몽골의 카스 유통회사인 ‘카스 타운’와 함께 몽골 내 판매금액의 1%를 적립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모아 사막화되고 있는 에르덴솜 지역에 2020년까지 15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한국과 몽골의 대학생 자원봉사자, 에르덴솜 지역주민, 환경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해 대규모 방풍림(防風林) 조성을 위한 나무 심기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4년에는 유엔사막화 방지협약(UNCCD)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생명의 토지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2021년에는 산림청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 15차 세계산림총회에서 ‘사회 공헌(CSR) 우수 사례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