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회복지 발달사목차Ⅰ. 서론Ⅱ. 본론1. 중세시대(1500년대 이전)2. 15세기~19세기3. 20세기4. 사회복지조직과 사회복지 전문직의 등장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복지국가(welfare state)라는 단어는 영국의 윌리엄 템플이 사용하면서 지금의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템플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의 주장은 영국의 사회복지 제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국가체계에서 이타주의와 상부상조의 흔적들을 두루 나타낸다. 이타주의와 상부상조는 사회복지의 주된 가치이자 복지국가 이전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말할 수 있고, 대체로 개인의 행복과 사회유기체 전체의 공익을 함께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공동생산과 공동소비의 생활 형태를 유지하였던 초기 인류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이타주의적 관점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돕는 활동, 상부상조의 생활문화를 유지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타주의와 상부상조는 동서양의 모든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복지적 가치이자 마을 공동체, 나아가 협동조합 등을 비롯한 각종 지역사회 조직 활동의 뿌리이다. 이러한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발달, 변천해 온 영국의 사회복지역사는 직, 간접적으로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여러 국가에 영향을 미치며 변화해 왔다. 영국의 사회복지는 어떤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배경 삼아 발달해 왔는지 주요 제정법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중세(~1500년대 이전) : 장원 영주와 교회에 의한 복지, 흑사병의 출현유럽의 중세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이 시기 의 사회복지 분야의 주된 서비스 제공자는 교회였다. 빈곤, 기아, 질병, 장애 등과 같은 문제 들은 정부 혹은 정치 영역의 관심사라기보다 교회의 의무와 활동 범위에 속하였다. 국가는 일하지 않는 빈민은 무능력한 자로 취급하였다. 국가 대신 교회와 함께 장원의 영주들은 지 역의 농노들의 궁핍과 같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최소한의 돌봄 형태로 농노를 보호 하였다.중세의 복지는 1340년의 흑사병의 출현으로 변화를 맞게 된다.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에 이르고 이로 인해 노동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게 된다. 노동자들은 더 높 은 임금을 주는 곳으로 이동하였고, 일시적 임금 상승 현상과 노동자들의 도심 이주로 인해 도심 빈민이 증가하였다. 임금인상이 지주와 도시 상인들에게 타격을 주자 1349년 에드워드 왕은 농민 규제령을 제정하였다. 농민 규제령은 농민은 자신이 사는 지역을 떠나서는 안 되 고, 영주가 시키는 노동을 영주가 주는 임금으로 의무적으로 노동을 해야 하였다. 빈민의 구 걸을 금지하였으며 근로 능력 유무에 따라 구제가치가 없는 빈민과 구제가치가 있는 빈민으 로 빈민을 구분하였다. 이는 장원영주와 도시의 부유한 상인에게만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책 이었다.2. 15세기~19세기 : 국가 개입의 시작과 산업혁명1)엘리자베스 구빈법(1601년)구빈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처음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구빈법을 집대성한 최초의 법이자 복지국가를 향한 국가개입의 전조로서 평가되는 법이다. 이 시기부터 정부는 실업의 원인이 부랑자의 게으름뿐만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여 구빈법 제정 이후 구빈책임이 교회 에서 정부로 넘어오게 되었다. 노동가능 여부에 의해 구제대상을 구분하였는데 노동 불가능 한 빈민에게만 구호를 제공하였고 나머지 노동 가능자에 대해서는 일을 통해 구호받는 것을원칙으로 삼았다.2)토마스 길버트법(1782년)임금이 생계비에 미달하면 그 미달 금액을 가구원수에 따라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노동능력 이 있는 빈민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동무능빈미에 대한 현금 급여를 제공, 나태한 자에 대 한 교정을 원칙으로 한 엘리자베스 빈민법에 대한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였다. 구빈에 대한 새로운 인도주의적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3)스핀햄랜드법(1795년)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가족 수에 따라 연동적 비율로 보충해주는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 었다. 최초의 빈곤선의 원조로 빈곤선 이하의 노동자는 지방정부에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4)산업혁명산업화 과정에서 빈민들을 위한 구호비용이 급격히 증가하자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빈민문제 를 풀어 나가려고 노력하였던 정부의 시도는 다시금 개인의 책임으로 그 중심이 옮겨졌다. 확대되어 가는 빈민정책들이 다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공장제는 기계와 분업을 기반으로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엄청난 부의 축적을 가져왔으나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임금을 받 는 가난한 노동자를 양산시켰다.5)나폴레옹 전쟁(1793~1815년)이후실질임금이 하가하고 실업자 규모가 대폭 증가함으로써 기계 파괴운동, 농민폭동, 노동자폭 동이 일어났다.6)신구빈법(1834년)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 사회복지의 근간을 이룬 법으로 빈민에 대한 임금보조수당을 폐지하고 열등처우의 원칙을 강조하였다. 빈곤을 비록한 문제인식의 초점을 사회구조적인 면으로 돌리게 된 계기가 되어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복지제도 개혁의 도화선이 되었고 공공부조에 매몰된 구빈행정이 아닌 국민의 권리에 입각한 사회복지제도의 도입과 실 천으로 연결되었다.3. 20세기 : 사회보험의 도입과 베버리지 보고서1) 배경찰스 부스와 벤자민 시봄 라운트리에 의해 빈민과 빈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실시되었 다. 두 조사는 빈곤이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데 기여를 하였다. 구빈법과 같은 빈민구제제도의 한계점을 드러내며 국가 책임 하에 공공부조제도가 실시되어야 하며 나아가 사회서비스 및 사회보험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이끌게 된 도화선이 되었다. 산업화로 인해 여러 문제들이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 요구됨으로써 사회보험의 시작이 예고되었다.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향상되고 정치세력으로 확산되면서 영국의 사회보험제도가 싹트 게 되었다. 복지에 대한 관점은 서서히 개인책임에서 국가개입으로 옮겨 갔으며 자유방임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자유당은 사회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1960년 총선에 승리함 으로써 과거 빈민법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하며 아래와 같은 정책들을 생산 해 내었다. 초창기 영국 사회보장제도는- 예견하지 못한 금전적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가 공동으로 대응- 사회 구성원에게 부가적 비용이 발생할 대 공동부담으로 사회적 형평을 도모-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지원-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 소득재원을 재분배하여 시기적, 계층적 부의 격차를 완화등 위와 같은 지향목표를 가지고 아래의 법들을 제정하였다.-근로자 보상법, 학교무료급식(1906)-노령연금법(1908)-국민보험법(국민건강보험 + 실업보험)(1911)2) 베버리지 보고서(1911)정부 책임의 통합 원칙, 포괄성의 원칙, 정액 기여의 원칙, 정액 급여의 원칙, 급여 적절성 보장의 원칙, 대상의 분류화 원칙으로 정리된 1911년의 베버리지 보고서는 근대 사회보험제도 운영과 자격요건을 마련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3) 1940년대 이후 영국 사회복지 역사의 변화내용과 특징-기여 및 급여수준이 점차 상향조정됨.-행정관리기구의 변천-사회보험원리의 변천-급부 형태의 변화4) 대처리즘과 신자유주의(1960~1970년대)전후 영국은 국가 주도하에 복지재정을 관장하면서 공공지출 확대를 통해 실업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가 주도적 복지국가였다. 대처의 분배정책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였고 복지제도의 원칙이 보편주의에서 잔여주의로 변화하였다. 1971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혜택 제도를 세계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1973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면서 유로달러 시장이 본격적으로 생성, 외환시장은 투기자본의ㅣ 표적이 되었고, 글로벌 신자유주의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시장 중심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더욱 탄력 받았고 경제 위기는 세계 각국, 특히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축소 및 시장지향형의 새로운 국가 경제 운영 이념을 낳게 되었고 이것이 대처리즘의 대표적 특성이 되었다.5) 노동당의 현대화론(1990년대)1979년 총선에서 패배한 노동당 정부는 총선 실패의 원인을 정부의 정책 실패로 보고 사회주의 정책의 강화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1984년 광부노조가 파업을 하였으나 파업이 패배하였고 노조가 대부분 온건좌파로 교체됨으로써 공공지출이 동결되거나 삭감 등의 긴축재정이 펼쳐졌다. 이에 따라 국가는 시장효율의 보조기구로 전락하였다. 이에 노동당의 토니블레어는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변화로 인한 유권자의 의식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하고 보수당에 빼앗긴 노동자 계급의 확보를 위해 현대화론을 당론으로 정하였다.6) 제3의 길1997년 블레어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후 1998년 고부담, 고복지, 저효율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노선과 고효율, 저부담, 불평등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지양하고 시민의 사회경제생활을 보장하는 동시에 시장의 활력을 높이자는 ‘제3의 길’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하였다. 전통적 복지국가의 실패의 이유로 보고 적극적 복지를 대안으로 보았다. 적극적 복 지란 국민에게 직접 경제적 혜택을 주기보다 인적자원에 투자하는 복지국가로 아래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였다.
미국 사회복지 발달사--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미국의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특징2. 미국 사회복지의 시대별 특징과1)암흑기2)태동기3)정착기4)성장단계5) 침체기Ⅲ . 맺음말*참고문헌Ⅰ. 서론1. 미완성 복지국가 미국미국은 캐나다, 유럽과 비교하여 사회복지 발전이 늦고 수준 또한 매우 낮다. 사회학자들은 미국을 미완성 복지국가, 마지못해 하는 복지국가로 부른다. 현재까지 미국은 잔여적인 복지국가로 계속 남아 있다. 미국에는 전 국민 건강보험도 없고, 상병수당, 출산수당, 가족수당, 육아휴직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쁜 위험들에 대해서만 표적화하여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왜 잔여적이며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로 남아있는 것일까? 유럽이나 선진 복지국가와 비교해 확연히 차이점이 있는 미국의 특색과 사회복지 발달 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Ⅱ. 본론1. 미국의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특징1)정치적 배경미국의 건국 초기부터 분권화가 발달하여 전통적으로 주정부의 독립성이 강하여 중앙정부의 권한이 약하였다.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권위를 지방정부에 이전, 분권화는 지방정부간의 재 정경쟁을 유발하였고 지방정부들을 재분배정책을 추진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유는 재분배정 책을 추진할 경우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게 될 저소득층들이 유입되는 반면, 재분배 정책에 소요되는 높은 세금으로 인해 기업과 부유한 개인들을 다른 지방으로 쫓아버리는 결 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 경쟁의 장이 분산되어 복지국가를 지 지하는 이익집단들의 힘이 약화된다. 권위가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다면 전국적으로 재분배 정책을 일률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자본과 노동의 이동으로 인해 사 회복지가 치명적인 위협을 당할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미국은 승자독식의 정치 제 도로 이 제도는 대통령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정당을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에 한정시킴으로써 사회복지에 우호적인 진정한 좌파 정당의 출현을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사회복지에 우호적이기는 하나 독일의 사회민주당이나 스웨덴의사회민주당보다는 사회복지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낮은 편이다.2)개인주의 문화미국은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국가로 불린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기회균등의 역사에서 형 성되었다. 미국은 산업화 초기에 대중교육을 강조하여 많은 미국의 노동자들은 평등한 교육 의 기회로 그들의 자식들은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고 느껴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이 약해졌 다. 미국은 공공경제보다는 민간경제, 집단적 선택보다는 개인 자치권에 가치를 더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는 사회복지제도 도입을 처음에는 지연시켰고 후 에는 그 범위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여 복지국가로 발달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19세기 미 국은 개인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달리 1930년대 대공 황이 오기 전까지 사회보험제도를 실시하지 않았고 대신 민간기관의 활동에 의지했다.3)높은 사회이동성미국의 광활한 토지는 그 자체가 생활보장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 초창기 미국인들은 주인없 는 광활한 토지를 찾아 독립적인 생활을 했다. 유럽의 국가들에 있어서 국민들은 문제해결을 국가에 요청하나 미국은 문제를 토지로 해결했다.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를 확대 하기보다는 기회의 평등을 강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았다.4)봉건제도의 부재유럽은 산업화가 되면서 봉건사회가 무너져 가던 시기에 농노계급과 귀족계급의 갈등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농노계급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면서 공장근로자 계급이 되어 점 차 조직화되고 세력이 확대되어 기존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고 이러한 현상의 해결 을 위해 귀족계급은 온정주의적 국가관료체제를 발전시키면서 노동자계급의 위협을 복지국가 의 형태로 효율적으로 대처했다. 그래서 유럽의 경우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 으로 복지제도가 발전한 면이 있으나 봉건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은 계층 간의 갈등이 없었기 때문에 계층 간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에 대처하는 사회복지의 발전이 지체되 었다.5)다양한 인종미국은 인종, 종교, 언어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회복지는 인구학적 동질성이 있을 때 발전하기 쉽다.2. 미국 사회복지의 시대별 특징과 사건1)암흑기(1)주정부와 민간단체 주도의 공공구호미국의 사회복지는 연방정부의 주도가 아닌 주정부나 민간단체의 주도로 이루어져왔다. 1935년 사회보장법의 제정가지 약 80년간 사회복지에 대한 연방정부 불개입 원칙이 고수 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복지 발전이 지체되었다.2)태동기(1)인보관 운동1886년 뉴욕을 시작으로 100개가 넘는 인보관이 생겨났다. 인보관운동은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사회연대의식을 기초로 한 사회개량주의의 입장을 취하였으나 사회보험이나 공공 부조제도의 도입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남성 주축으로 사회보장을 위한 사회개 혁 과정에 적극 참여했던 영국의 인보관 운동과 달리 여성들을 주축으로 한 문화와 교육, 탁아소 운영, 지역사회 개혁 등 사회보장이 목적이 아닌 사회정의 실현에 목적을 두었다.(2)사회복지 전문직의 등장자선조직협회가 영국에서 유입되기는 했으나 미국은 우애방문가를 훈련하기 위한 교육 과 정을 강화시켰고 자원봉사의 성격에서 나아가 유급직원으로 고용하기 시작하면서 직업화 된 사회복지사를 양성하는데 앞장섰다.(3)자선조직협회의 왕성한 활동1900년 이전의 미국 사회복지 방향과 빈민에 대한 사회사업은 국가 차원에서의 공공구호 를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자선조직협회가 주도했다. 자선조직협회는 열등처우원칙 을 근간으로 원외구호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자선조직협회가 성황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 는 자선조직협회의 기본 철학이 그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던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미국 사회복지의 기본 방향을 공적인 원외 구호 폐지와 민간 주체의 빈민원조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주체가 되는 사회보험 이나 공공부조제도는 도입이 될 수가 없었다.(4)민간기관의 사회보험 도입운동 실패진보당의 대통령 후보 루스벨트가 선거공약으로 노동자재해보상보험과 질병, 실업, 노령 등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험을 내세웠으나 선거에서 패배하였고 사 회보험제도 도입은 수포로 돌아갔다. 정치권과 달리 민간단체의 지식인들이 사회보험제도 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사회보험제도를 정치활동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 지 않았고 영국과 달리 강력하고 조직화된 정치적 배경의 부재로 민간기관에 의한 사회보 험 도입도 실패하였다.(5)노동자재해보상보험제도의 도입(경제적 효율성 제고를 위한 도입)미국의 사회보험 도입 운동의 목적은 사회적 효율이었다. 사회보험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 은 노동자재해보상제도는 사업의 안정을 가져오고 의료보험은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켜 생 산성의 향상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였다. 노동자의 산업재해 시에 법률문제의 해결을 위한 고용주의 이익에 근간한 노동자재해보상제도의 도입이었다.(6)건강보험제도의 도입실패1910년 전미제조업협회에서 노동자재해보상을 추인하였으나 강제가입의 건강보험은 미국 의 사상과 맞지 않고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되었고 노동자집단도 건 강보험제도 도입에 앞장서서 반대하였다.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건강보험 제정 캠페인은 완전히 실패하였고 1965년 노인에게만 제한된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었다.(7)실업보험제도 도입실패미국의 오랜 가치인 노동의 미덕을 해지며 독립정신과도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거부(8)노동자들의 사회보험제도 도입반대미국의 노동계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복지보다는 노동단체의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 다. 사회보험제도가 노동자들에 대한 지기들의 통제력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 에 사회보험제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가졌다.3)정착기(1)미국형 사회복지의 시작(뉴딜정책과 사회복지의 발달)미국의 사회복지 발전은 대공황 시기였던 1930년 시작되었다. 대공황은 미국경제 전반의 신용구조를 파괴하였고 실업률을 증가시키고 소득을 격감시켰다. 중산계층에 치명적인 위 기를 안겨줌과 동시에 빈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왔다. 개인의 결함이 사회구조의 결 함에 의해서도 가난해질 수 있고 실업상태에 놓일 수도 있다는 의식의 극적인 전환을 가져 왔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루즈벨트 행정부는 사회복지 확대와 공공사업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뉴딜정책을 수립, 1935년 사회보장법을 제정함으로써 노령연금제도, 실업보 험, ACD프로그램(공공부조제도)를 도입하였다.(2)타운센드 운동공황을 치유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60세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일하는 것을 중단하고 한달 내에 모두 소비하는 조건으로 매월 150달러의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회보장 법에 노인의 소득보장을 우선수위에 포함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3)사회보장법 제정(1935년 8월)고용이 가능한 사람들과 고용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여 각각에 적합한 제도를 도입하여 고용이 가능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실업과 노령이라는 두 가지의 정형화된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사회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고용이 불가능한 사람들 을 위해서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방정부가 주정부나 지방정부의 프로그램에 보 조금을 제공했다.4)성장단계(1)보수주의로의 회귀(냉전시대, 제2차 세계대전)1940년대 초반 경제가 회복되면서 절대빈곤율이 급감하며 정치권의 보수주의가 부활하였다. 냉전시대가 시작되며 국방비가 증액되었고 사회복지비가 동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 사회복지 발달사--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가치2. 시대별 변화3. 독일 사회복지의 배경과 특징Ⅲ . 맺음말*참고문헌Ⅰ. 서론19세기 각종 혁명과 혼란으로 유럽 대륙이 얼룩졌지만 결국 공산주의로 갈 수 있을 만한 높은 생산력을 소유한 발달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는 대신 두 갈래의 예상치 못한 길이 나타나게 된다. 첫째는 ‘자본주의 외부의 혁명’으로 자본주의의 초기 발달 과정에서 정치, 군사적 승리를 통해 아예 비자본주의적 길을 걷는 경우(구소련, 중국, 쿠바, 동유럽, 북한 등)이고 둘째는 ‘자본주의 내부의 혁명’이라 불리는 수정자본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길(대다수의 서구 유럽 국가)로 들어선 경우이다. 사회민주주의의 길은 독일에서 열렸다. 독일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보다 노동자 대중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명제하에 이른바 수정자본주의를 내걸게 된다. 온건파들은 맑스주의 및 구소련 중심의 공산주의와 결별하며 독특한 자본주의의 내적 발전의 경로를 선택하게 된다. 노동자 대중의 복지 증진을 위한 적극적 노력(비스마르크 사회보험의 확대)과 창의적 발상(실업보험, 사회수당)이 사회민주당과 노동당에 의해 관철되었고 대부분의 서구 유럽 국가는 자연스럽게 복지국가 체제로 들어서게 되었다. 영국과 함께 서구유럽 사회복지의 모델이 되고 있는 독일 사회복지의 배경과 특징을 그 정치적 배경을 알아보자.Ⅱ. 본론1.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가치사회민주주의는 독일 사회복지의 가치이자 시작이다. 그 가치로는 인간존엄, 사회연대, 사회정의를 들 수 있다.1)인간존엄 : 자신의 능력과 소양을 개발하려는 의지와 실천을 통해 발현되는 인간 고유의품격으로 복지국가는 구성원 모두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을 기본 가치로 삼는다.2)사회연대 : 타인의 존엄을 존중하고 호혜적 공존을 추구하는 개인이 타인들에 대해 가지는 공동체적 동료의식3)사회정의 : 구성원에 대한 보편적 인간애를 바탕으로 공정성이 보장되는 국가 운영의 원칙이 되는 가치위의 가치들을 바탕으로 독일의 복지는 어떻게 발전해 오는지 알아본다.2.시대별 변화1)19세기 말프로이센 제국에서 강력한 통일국가로 전환한 당시의 독일은 이들 대중의 소요를 근본적 으로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취하였다. 재상 비스마르크는 1878년 사회주의 진압 법을 통하여 노동자의 소요를 일으키는 주범들을 탄압했고 1880년대에는 노동자들을 노 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책으로 산업재해보험과 의료보험, 연금보험 등의 대책을 연달아 내놓았다. 이전까지는 빈곤층을 교회에서 돕거나 아니면 국 가에서 구빈원이나 작업장을 통해 보호하는 공공부조제도가 사회적 방어책의 전부였다면 19세기 말의 이 제도들은 자본주의하에서 복지제도를 통해 무산대중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었으며 이후 복지국가로 발전되는 디딤돌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 다.2)제1차 세계대전(1914~1918)대량 실업으로 사회보장 재정수입은 감소하였고, 실업자, 부상자, 유가족들을 위한 재정 지 출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8월 11일 바이마르 헌법이 선포되며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하 였다. 이 공화국은 옛 전통을 밀어내고 오랫동안 억제되어 있던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세계 복지사의 기준이 되는 복지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1)1920년 제국원호법 제정. 전쟁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보훈제도 확립(2)1923년 광산업종업원법(특별보험법)제정. 주별로 실시되던 노령, 장애, 질병에 대한 사 회보험을 전국적으로 통일(3)1924년 공적보호법 제정. 각종 빈민구제제도를 전면 재조정하여 단순화시키고 통일(4)1927년 직업보호 및 실업보험에 관한 법률 제정. 노동시장의 기능을 향상시켜 실업을 감소시키는 목적을 갖는 공공직업소개소의 발전과 결합되면서 실업보험제도가 도입.바이마르 시대의 최대 업적인 실업보험제도가 도입됨으로써 4대 사회보험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나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사회보험급여를 위한 부담이 1930년 사회민주당, 민주당, 중앙당 3당의 연립내각 붕괴를 촉발하는 이슈가 되면서 바이마르 시대는 나치스 전체주의 로 연결되었다.3)나치스 시대1933년 대공황의 극심한 경제 침체 속에 히틀러가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철도와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과 군수사업에 대한 과감한 공공투자정책을 통해 경기회복과 실업자 감소를 위 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3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는 호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사회보 장제도는 전체주의 국가의 목표에 따라 변화되었고 정치, 경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치당의 결정에 따라 사회정책의 제도나 운영이 ‘지도자 원칙’에 따라 개편되기 일쑤였다. 기존의 자 치원칙(사회보험에 관한 모든 결정을 노동자와 사용자의 자주적 결정에 맡기는 원칙)이 거 부되고 모든 사회보험 조직체에는 지도자 원칙을 업무에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관리자를 임명, 지휘하고 통솔하였다. 사회정책이 철저하게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었다. 사회복지서비 스 전달체계를 중앙 집권화 하여 독재정권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는 사회적 부적격자로 판단된 빈민의 급여가 급격히 축소되었고, 장애인에 대한 급여를 폐지하고 유전 적으로 건강하고 가치가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서비스 개념을 도입하였다. 사 회복지서비스 제공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를 건강하지 않은 유전자로부터 독일 민족과 문 화를 지키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파멸에 직면하였고 사회보장제도가 나치스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4)제2차 세계대전(1945~1974)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독일은 심각한 인적, 물적 손실을 경험하였고 나치스 시대의 권위주의 적 통치가 사라지고 경제사회적 재건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봉착하였다. 전쟁희생자 원호와 국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부담조정이 시급하였고 제국의 채권의 무효화로 사회보장의 재정 적 기반이 붕괴되었다. 서독과 동독으로 나누어짐에 따라 정책 역시 두 갈래로 나누어지게 된다.(1)서독 - 미국, 영국, 프랑스가 주둔함으로써 기존의 사회보장 골격을 유지하면서 약간의 변화가 가미됨. 1949년 5월 독일연방공화국의 기본법이 제정되고 하나의 사회국 가가 되었다. 패전의 원인이 집합주의라고 보고 중앙집권형보다 지방분권형을 채 택하였고 국가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복지정책보다는 경제정책을 우위에 두었다.(2)동독 - 소련이 점령, 새로운 보험제도를 채택.이 시기의 서독은 신자유주의를 기본 이데올로기로 하여 생존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에게만 사회보장을 해주는 인도주의적 구조였다. 경제발전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재정적으로 여 유가 생기면서 사회보장을 확충하기 시작하였고 1957년 제1차 연금개혁을 시작으로 포괄 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5)복지국가 위기의 시대(1975~1990)1970년 이후 독일은 출산율의 저하, 노인인구의 증가, 사회보험 급여의 지출증가로 노령연 금제도와 의료보험재정의 안정성 문제가 등장하였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와 단독가구 가 증가함으로써 서독 사회복지 모델의 핵심인 보수적 가정들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세계 석유파동이 일어나며 수출의존도가 높았던 독일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공공지출의 통제가 우선순위정책이 되었다.6)통일이후의 독일(1990년 이후)1990년 10월 1일 독일이 통일되었다. 사회보장의 모든 분야에 있어 구동독 주민들은 구서 독 사회보장의 법규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을 마련했음에도 동독의 실 업률은 서독보다 항상 높았고 빈곤문제와 사회환경적 불평등의 문제는 강화되었다. 사회노 동정책적 조치를 위한 재원도 고갈되었고 상이한 사회보험제도의 일원화 과정은 기술적, 조직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사회안정을 위하여 사회복지재정을 확충하고 연금을 개 혁하는 한편, 수발보험제도(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의료보장을 개혁하였다. 비 정규직 근로자들을 위한 사회보장 제도를 조치를 실시하기도 하였다.3. 독일 사회복지의 배경과 특징1)가부장적 전통1794년 발효된 아래의 프러시아 시민법의 내용에서 독일의 가부장적 전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시민들을 구호하고 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능력에 맞는 일이 주어져야 한다.- 나태나 비정상적인 성격으로 인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은 강제나 처벌과 같은 적절한 통제가 주어지면서 유용한 노동에 처해야 한다.- 시민들이 빈곤으로 전락하거나 지나치게 방종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위 와 같은 수단들을 사용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자격이 주어진다.- 모든 지역의 경찰기구는 다른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모든 빈민들을 구호해야 한다.2)조합주의적 사회보험비스마르크 시대부터 지위에 따라 분화된 조합주의 성격의 사회보험제도들을 구축하는 전 통이 출현했다. 독일의 사회보험제도들은 각기 고유한 규정과 재원, 급여 제공 구조를 가 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각 제도마다 수급자의 상대적인 지위 차이가 있도록 설계되었다. 계 급과 집단들에 따라 각기 서로 다른 프로그램들을 법제화함으로써 임금 소득자들 사이의 분열을 공고화하여 국가나 군주에 대한 개인의 충성심을 유발하였다. 단적인 예로 공무원 집단에게 특권적인 복지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공무원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높였다.
일본 사회복지 발달사--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시대별 사회복지 발달사와 특징Ⅲ . 맺음말*참고문헌Ⅰ. 서론일본은 정치, 경제적, 지형적인 면에서 우리나라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일본의 사회복지 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 등은 강제침탈의 이유로 말미암아 일본의 법과 제도를 모방, 아직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많다. 또 사회의 변화가 지역적 인접 특성의 탓인지 유사하게 변해가는 현상들도 많다. 일본 사회복지의 발달과 변천사를 통해 진작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보다도 더 빠르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서도 일본 노인들의 연금수령액의 50% 정도만을 준비한 우리나라 노령인구의 미래 등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보자.Ⅱ. 본론1. 시대별 사회복지 발달사와 특징1)근대이전(1)아스카시대(593~710)공적 구제제도의 시작. 쇼토쿠 태자에 의해 593년 ‘사개원’이 설립, 불교의 자비사상을 토대로 빈민 및 고아를 수용, 구제하였다. 이러한 구제제도나 활동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를 바꿔왔다.(2)메이지유신(1853~1857)-홀구규칙근대화의 시작. 메이지유신에 의해 전제적 중앙집권 체제가 성립되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신분제도의 해체와 재편성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구제대상이출현하였다. 이 메이지유신의 영향으로 홀구규칙(1874)이 공포되었다.(2)-1. 홀구규칙 : 일본 공적부조의 시초로 무능력빈민의 일부로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였다. 쌀값을 기준으로 한 현금급여 형식의 제한적 생활부조로 구체책임을 의리, 인정, 근친가족 또는 근린지연에 맡기는 형식적 공적부조로그 한계가 있었다. 훗날 구호법(1929)으로 대체되었다.2)근대사회(1)제1차 세계대전 이후(1920~1944)-구호법과 후생사업일본은 1920년 중반부터 사회과학적 체계가 이루어지며 사회사업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쇼와공황과 세계대공황이 도래하면서 대량의 실업자가 생기고농촌경제의 불황은 더욱 심화되어 노동쟁의, 소작쟁의와 더불어 사회운동의 격화로 계급갈등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기존의 구제제도로는 증대되는 빈고문제를 처리할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복지체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건강보험법과 의료보험을 실시해 국민의 질병치료와 건강한 노동력 확보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였다. 또 구호법의 제정으로 65세 이상 고령자, 13세 이항의 아동, 임산부, 불구, 질병 그 외 정신 또는 신체장애로 노동을 할 수 없는 자를 대상으로 생활부조, 의료, 생업부조, 장례 비를 지급하였으나 그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었다.-1921년 건강보험법 제정-1927년 산업노동자, 직장근로자 강제적용 의료보험 실시-1929년 구호법 제정일본은 전쟁 준비를 위해 1938년 내무성을 해제하고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내무성을 후생성으로 개칭하였다. 이는 전쟁 수행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인적자원으로서 국민의보호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재편성된 것이었다. 1941년 사회사업이란 용어 대신 후생사업이라는 용어를 사용, 전쟁의 승리, 국방을 위한 인적자원의 확보, 생산력의 증강, 내핍생활의 지도, 원호 등에 집중하였다. 후생사업이란 어떻게 하면 많은 군인을 동원할 수 있 을 것인가, 무기 탄약의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력을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출산장려)에 중점을 두었다. 1938년 제정된 사회사업법은 모성보호, 아동애호, 의료보호 등 인적자원의확보라는 점에서 중시되어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사회사업의 중심적 대상으로서의 피보호자, 노인, 중환자 등은 경시되었다. 이 시기의 일본 사회복지정책은 국민복지의 증진과 더불어 노동력 우지, 배양 등 전력증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1937년 군사부조법과 모자보호법 제정-1938년 국민건강보호법 제정-1941년 의료보호법-1942년 전시재해보호법(2)제2차 세계대전 이후(2)-1. 1945~1950년대 : 정부주도형 사회복지 정책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 1945년부터 10년간은 전재구호를 위한 입법기라 할 수 있다. 이시기 사회복지는 선별주의적 사회복지로 구제에 필요한 재원의 부족으로 경제요건을 기초 로 하여 사회복지 대상자를 선별하고 원조하는 방식을 취했다. 또 1957년 사회복지사업법을 제정, 일본 사회복지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복지사무소”를 전국 시군구에 의무적 으로 설치, 유급 사회복지사를 배치하였다.-1946년 생활보호법 : 공적부조사업을 체계화함-1947년 아동복지법 제정 : 전쟁고아 보호에 주력-1949년 신체 장애자복지법 제정 : 상이군경 구호-1951년 사회복지법 제정이후 일본은 전후 안정을 되찾으며 고도 경제성장에 따라 복지성장기를 맞게 된다. 경제 성장과 고용구조의 개선에 따라 사회보장의 중점이 종래의 구빈정책에서 일반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되어 사회보험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2)-2. 1960~1970년대 : 지방화 시대로의 지향이 시기의 사회복지의 특징은 ‘확대’로 경제 고도성장이 이루어지며 발생한 대도시의 인구집중 문제, 도시문제, 주택, 교통, 공해, 핵가족화, 노인문제 등이 속출함에 따라 정신박약복지법, 노인복지법, 모자복지법이 제정됨으로써 기존의 복지법제가 확대되었다.또한-1961년 건강보험, 모든 농어민과 자영업자에 확대 적용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적용 달성-1961년 농어민과 자영업자를 위한 국민연금제도 실시로 전 국민 연금적용 달성등 사회보장의 큰 축인 의료보장과 소득보장을 전 국민에게 확대 적용하였다. 1960년대는1940~50년대에 비해 집단적인 선별주의가 나타나고 보편주의적 사회복지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2)-3. 1970~1980년대 : 일본형 복지의 등장, 재가복지서비스의 등장고도성장을 이어가며 1인당 국민소득이 2배로 늘어남에 따라 노인문제와 연금수준의 문제, 의료비 대책 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아동수당법을 제정하여 아동 수당을 지급하였고 노인의료비 지급제도를 신설, 노인의료비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였다. 연금제도도 연금급여 수준을 대폭 인상하면서 연금액을 물가변동 수준과 연계시키는 물가 연동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1973년 오일쇼크로 일본의 경제는 침체기를 맡게 되면서 재 정난으로 인하여 복지재정은 개혁이 요구되었다. 확대를 멈추고 사회보장 정책을 억제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사회보장부분의 재정정책에 대한 수정을 통해 ‘일본형 사회복지’가 시작되었다. 일본형 사회복지의 핵심은 국민의 자기부담을 증가시키고 국가 부담을 감소시 키는 것이었다. 그 연장선으로 재가복지서비스가 전개되기 시작하였다.(2)-4. 1990년대 : 지방중심의 사회복지 시대, 골드플랜과 엔젤플랜①골드플랜(Gold Plan) : 인구의 고령화, 소자녀화로 초고령 시대로 진입하는 상황에서 21 세기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판단, 1989년 말 사회복지 3심의회 합동기획 분과회의에서 ‘고령자 보건복지 추진 10개년 전략’의 하나인 골드플랜(Gold Plan)을 내놓았다. 21세기 초 예상되는본격적인 고령사회에 대비, 지금까지 뒤떨어진 고령자 보건, 복지의 긴급정비를 행하고 홈헬퍼, 주간보호 등의 재가복지를 중심으로 한 시, 정, 촌을 중심으로 한 장기계획이 추진되었다. 골드플랜은 2차례에 걸쳐 수립되었고 2차인 신골드플랜이 서비스의 영역과 양적인 면에서 1차에 비해 대폭 확대되었다.②엔젤플랜(Angel Plan) : 일본 고령화의 주된 요인은 소자녀화를 꼽을 수 있다. 이에 육 아휴업법이 제정되고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이 안심하고 출산, 육아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내용의 엔젤플랜, 보육제 도 개편이 1944년 발표되었다. 1999년의 신 엔젤플랜으로 업그 레이드된 이 정책은 문부성, 후생성, 노동성, 건설성 등 6개성 장관들이 협의, 수립한 것으로 연장보육, 휴일보육, 방과후 보
한국 사회복지 발달사목차Ⅰ. 서론1. 사회복지란 무엇인가Ⅱ. 본론1.한국 사회복지의 시대별 발달사1)고조선2)삼국시대3)고려시대4)조선시대5)19세기 이후~일제강점기6)미군정기7)1950년대8)1960년대~1980년대9)1990년대10)2000년대~현재Ⅲ . 맺음말*참고문헌Ⅰ. 서론1. 사회복지란 무엇인가복지국가는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서구의 대부분의 국가가 자본주의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대안이다. 사회복지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인간답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인류가 개발한 해법인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빠지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집단적으로 방어해줌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한국 사회의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20세기 이후에 나타난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 사상이었지만 우리 역사속의 사회복지의 모습은 지배계급의 온정주의, 왕가 통치에 입각한 시혜적 구빈 조치에 불과하였다. 국가의 개입은 사회적 약자나 사궁(四窮)에 집중되었고 공적인 개입은 근대 이전까지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Ⅱ. 본론1. 한국 사회복지의 시대별 발달사1) 고조선시대고조선 시대에서 사회복지제도의 의미를 갖는 것은 8조법을 예로 들 수 있다. 홍익인간 사상을 바탕으로 집단공동체의 공동연대의식에 도움을 주거나 받는 활동이 이루어졌다. 8 조법을 통해 보면 고조선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 차원에서 백성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지키는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2) 삼국시대삼국시대는 농업기반의 사회로 농민이 주요 자산이자 자원이었다. 당시 백성들의 삶을위협했던 가장 큰 문제는 자연재해로 농사와 개인의 생활 모두에서 위기로 작용했다. 삼국시대에는 이런 농민의 위기를 구제하는 사업으로 진대법(賑貸法)과 창(倉)이 있었다.· 진대법 - 농민과 빈민에게 곡식을 빌려주는 대부제도· 진휼 - 이재농민과 환과고독(鰥寡孤獨)에게 국가의 곡창을 열어 양곡을 무상으로 지급· 창제 - 재해나 질병 시 왕명으로 비축양곡을 빈민에게 방출· 감면세역 - 빈민에 대해 각종 세금과 부역 등을 면해 줌.3) 고려시대삼국시대의 통치자에 의한 시혜적인 구휼방식이 좀 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흑창 - 평상시 비축한 곡물을 재난 시 빈궁한 백성들에게 진대하여 추수기에 상환하도록 하는 국립 구호기관· 의창 - 흑창제도가 중앙에서 확대되어 지방의 모든 주, 부의 사람과 가구 수에 따라 진대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국립 구호기관· 상평창 - 생활 필수품의 물가 조절 기능을 맡아 백성들의 경제생활 편의를 제공· 재면지제 - 수해 등의 천재지변을 당한 경우 그 피해 정도에 따라 조세나 부역을 면해주는 제도· 혜민국 - 서민의 질병치료를 위해 설립한 국립의료기관. 국내외의 약재와 백성이 필요로하는 약을 조제, 판매하였으나 빈민에게는 무료 지급.· 동서대비원 - 국립의료기관으로 의료사업과 구제사업을 수행하여 병자를 치료하고 행려자를 돌봄. 수도에 있는 가난한 병자, 무의무탁한 노인, 고아들을 치료하고보호, 양육4) 조선시대조선시대는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불교적 전통이 유교사상으로 변화된 시기이 다. 백성과 왕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빗대어 왕이 백성의 길흉화복을 책임져야 한다는 왕도정치 사상은 조선의 정책과 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의 사회복 지제도는 여러 법전과 국가에 의한 선제적 조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그 특징이 다. 중앙과 지방 정부 간 역할을 구분하여 지역 관료와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을 관활하기 시작한 것도 특징이다. 구휼제도가 정비되었고 의료를 비롯한 일부 사회서비스의 성격이 엿보이는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주요 정책은 구휼중심의 구빈제도로 의복과 음식, 의료조 치를 시행하는 것이 중심으로 주요 대상자는 환과고독 상태의 사람이었다.· 구황청 - 빈민구제 기관으로 인조 4년 진휼청으로 개칭, 전국 구호 양곡 방출과 급식을 실시· 혜민국 -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 의사를 교습.· 활인서 - 서울에서 발생하는 가난한 환자를 치료하는 곳· 기로소 - 70세 이상의 노인을 입소시켜 도움을 줌.· 유접소 - 진휼청 소속기관으로 유기된 아이나 떠도는 아이들을 수용, 보호· 사창 - 곡물 대여 기관· 의창 - 빈곤한 일반 서민 중 생산에 참여할 수 없는 자를 구호하기 위해 무상을 관곡을 지급하건 대여함.5) 19세기 이후 ~ 일제강점기19세기 세도정치 정점의 시기, 약 백년간의 정쟁으로 사회는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아 있었다. 프랑스, 미국, 일본의 침략을 차례로 겪으면서 외세의 위협적인 개항압력 과 무단 침범 아래 그대로 노출되었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던 다양한 사회제도와 관습 들이 약화, 소멸되면서 공공복지는 후퇴를 거듭하였고, 우리나라를 강제 침탈한 일본은 사회발전을 위한 어떤 정책도 시행하지 않은 채 회유를 목적으로 하는 자선적 조치들만 일부 시도하였다. 이 시기는 총독부가 민간의 참여를 장려하는 방식의 사회서비스가 이루 어졌다.· 은사진휼자금 관리규칙과 은사진휼자금 궁민구조규정 제정으로 임시 은사금을 사용.· 재생원 - 고아 등의 일부 아동과 일부 장애인을 위한 시설· 구휼어하사금 - 이재민과 극빈층을 구제하는데 사용. 정해진 금액 없이 일제 편의에 따라조성, 집행되었던 매우 일회적 제도· 사회보험 - 일부 군인, 총독부 관리, 유족 등 극소수 대상에게 한정된 연금과 부조· 조선구호령(1944) - 적용대상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급여의 종류 역시 지극히 한정됨. 부 양의무자 우선 부양의 원칙이 적용6) 미군정기미군정은 조기 안정을 목표로 삼았을 뿐 한국내의 자생적인 국가권력 수립에는 적극적이 지 않았다. 공공부조의 경우 일제 강점기와 차이가 없었다. 미군정하의 구호정책은 자선과 시혜의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구호제도 역시 국가책임의 측면을 제도화 하진 못했다. 단, 미성년자의 노동보호, 최고근로시간 제한 등 일련의 노동복지 관련 조항 들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진 시기이기도 하다.· 아동노동법규(1946) 제정· 미성년자노동보호법(1947) 제정 - 근로기준법이 제정되기 이전까지 아동복지와 인권보장 에 영향을 미침· 최고노동시간법(1947) 제정 - 최초로 노동 시간의 제한을 둔 법으로서 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제도의 원형· 부인국 설치 : 여성가족부의 원형7) 1950년대분단은 국가와 민족의 분열과 함께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국 전쟁 이후의 이승만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독재와 부정부패가 만연하였고 이로 인하여 1950년대를 전후로 한 한국의 사회복지는 권리에 기반 한 제도적 접근이 시 작되지도 못하였다. 사회복지 개입을 뒷받침하는 체계적인 사회복지제도가 정비되지 못했 고 외국 원조단체의 시설보호와 물자구호 및 민간 차원에서의 자선적 활동, 전쟁 이후 복 구와 지원에 국한된 일부 제도가 도입되었던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근로기준법(1953)· 어린이 헌장(1956)· 군사원호법(1950)· 경찰원호법(1951)· 전몰군경과 상이군경연금법(1952)8) 1960년대 ~ 19980년대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창출한 정부를 정권의 비정당성과 비민주성이라는 문제점을 은 폐하는 한편 지속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민심 확보를 골몰하였지만 국가재건과 경 제개발을 내세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는 복지제도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 시기부터 사회복지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 아니라 형식적은 틀만 갖추는데 그쳤다. 분배 보다는 성장 위주의 정책은 부의 편중과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하고 국가 복지 낙후의 원인 이 되었다. 일부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제도가 실시되었을 뿐 국민 전체는 고려 대 상이 아니었다.· 노동조합법(1963)· 생활보호법(1961)· 군인연금법(1963)· 산업재해보상보험법1970년대는 당근과 채찍의 일환으로 외형적으로는 분야가 다소 증가하기도 하였다.· 사립학교원연금법(1973)· 국민복지연금법(1973)· 의료보호법(1977)· 사회복지사업법(1970)· 심신장애자 종합복재대책1980년대는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사회서비스 관련 제도가 도입 확대되었고 민주화 과정 을 거치면서 사회안전망의 필요성과 의미를 인식하게 되었다. 또 1980년대 말 올림픽과 아 시안 게임의 실시 여파로 대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장애인편의시설 정비가 진행되었다.· 건강보험 의료보험법 개정·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경로우대제 도입· 무료노인건강진단제도 시행· 최저임금제 시행(1988)· 전국민연금제도 실시(1989)· 영유아 보육법 제정(1991)9) 1990년대1990년대는 이른바 세계화라는 흐름이 한국 사회복지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이다. 우리나 라는 이 시기에 OECD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세계 경제에 편입되어 세계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성장 중심의 세계화는 복지제도에서 순기능을 하여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을 향상 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대중 역시 서구의 제도를 도입하여 삶의 질 을 높일 수 있는 기대감을 가졌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사회복지에 대한 일반 시민의 인식을 전환시킨 계기로 작용하였고 이를 계기로 사회안전망과 사회복지제도들이 대폭 수 정되었다.· 사회보장법 제정(1995) - 사회보장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을 정하고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제도와 여 건을 실현하는 것을 그 기본이념으로 함. 국가 또는 지방자치 단체는 국가 발전의 수준에 부응하는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고 매년 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도록 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