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매체는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속의 통일이야기 강의는 통일을 미디어를 통화여 더욱쉽게 다가갈수 있는 강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타남북관계 영화는 남북분단이라는 환경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또한 북한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대안을 영화가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통일에 대한 인식을 한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영화에서 통일에 관해 다뤄진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반공영화는 한국전쟁 이후 권장되기 시작하여 박정희 정권 때 대거 양산된, 정부 주도의 영화 산업입니다. 실사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제작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55년에 상영된 피아골, 1966년에 상영된 5인의 해병 등이 있습니다.
주제: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나는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통일교육을 받아왔다. 통일교육에서는 항상 통일은 이루어 져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결론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통일을 꼭 해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먼저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통일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이 비용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통일비용이 분단비용보다 적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저러한 주장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라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젊은 층들은 자신들의 부담이 훨씬 커진다. 나는 나의 주변 젊은 층들에게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물어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이 반대를 한다. 찬성을 하는 사람들은 찬성에 대한 전제 조건이 붙는다. 예를 들어 ‘세금이 오른다면 찬성하지 않겠다.
1. 남북분단의 주도세력은 누구인가 남북 분단의 주도세력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김구 선생님이 일지에 쓴 문구를 살펴보자 김구 은 “나는 이 소식을 듣고 희소식이라기 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일제가 연합군에게 항복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서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우리 힘으로 광복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이 캄캄하다.”라고 서술하였다.이제까지 통념은 미국이 주도한 분단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소련 해체 후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소련의 국가이익을 위한 차원에서 미, 소가 주동이 되어 분단이 진행되었음이 밝혀졌다. 포츠담선언에서 미소 간의 밀약설이 우세하다는 것이 요즘 학계의 평이다. 일단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살펴보면 1941년 11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이후 일본의 의도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침몰시킨 후 미국과의 휴전협상으로 전쟁을 종식하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일본과 미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일본에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고, 미국은 고립주의를 벗어나 태평양전쟁을 통해 국제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1942년 6월 5일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을 통해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후 6개월 안에 일본 해군을 섬멸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