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과거를 잇는 한국문화사 시험 대비 요약 정리[1주차]◈ 한국문화의 전통과 특징 이해*문화의 속성1) 선진 문명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경향2) 상류층의 문화가 밑으로 확산되는 경향(경제 수준이 발달 될수록 중류층이 상류층의 문화를 따라 하고,하류층도 중류층을 따라 상류층의 문화를 습득하고 이해하고 생활에 쓰게 됨)▶상징추론: 어떤 물건을 봤을 때 물건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생각해내는 힘: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 한국의 전통문화*한국문화와 중국문화의 연관성한국사회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왔고, 당시 선진 문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중국의 문명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맞지만, 이는 한국인의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불교와 유교가 중국을 통해 수용되었기 때문이다.중국과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가 불교나 유교를 수용하면서 삶의 방식이나 사상이 비슷해졌기 때문에 문화가 닮아 있는 듯 보이지만, 각 나라의 특성이 반영되어 변용들이 생겨났다.ex) 중국의 만두는 한국의 만두보단 꽃빵과 더 닮음, 고기 위주의 소가 들어간 몽골의 만두와 달리 한국은 김치 등의 채소가 많이 들어감 / 식사할 때 수저를 같이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긴 젓가락, 일본은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주로 사용함◈ 인류의 시작과 진화*인류의 진화인간은 유인원과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어왔고,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부터 허리가 펴지고 키가 커졌다. (그래서 허리디스크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질병이다.) 직립보행으로 손이 자유로워져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뇌 용량이 점점 커지면서 인간의 지능과 시각 능력이 발달했다. 무리 지어 사는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냥이나 농사를 지을 때 도구를 사용하여 협동함으로써 생산능력이 월등히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사회가 발전했다.*불의 사용1) 불 사용 이전에는 다른 동물처럼 생식을 했으나, 불로 인해 익혀 먹는 게 가능해지면서 많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었고, 이로인해 뇌 용량이 커짐 (요리의 시작)2) 과거와유화는 부여의 왕이었던 금와에게 보내진다. 어느 날 궁궐을 걷고 있던 유화는 해가 자신을 비추면서 따라오자 이를 피하다가 결국 햇빛을 맞아 임신을 하게 되고, 나중에 왼쪽 겨드랑이로 알을 낳는다. 이 알에서 주몽이 태어났고, 알에서 비정상적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숲에 버려진 주몽은 짐승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게 된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주몽은 말을 할 수 있었고, 화살로 파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활쏘기 실력이 뛰어났다. 주몽은 능력이 비범하여 금와왕의 일곱 아들로부터 견제를 받게 되고, 사냥을 나갔을 때 죽음의 위협을 받지만 주몽의 비범함으로 인해 그 위기를 극복한다. 하지만 이 일로 주몽은 부여왕의 눈 밖에 나게 되어 목장으로 추방당했고, 주몽은 목동 노릇을 하며 준마를 미리 알아본 후 일부러 혀에 바늘을 꽂아 비루먹은 말처럼 보이게 하여 선물로 준마를 얻어낸다. 이후, 오이/마리/협부라고 하는 세 부족을 데리고 부여를 탈출하여 남쪽으로 향한 주몽은 부여왕의 추격군을 피해 자라와 거북이들이 만들어준 다리로 개사수를 건너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성경에서 모세가 홍해를 갈라 바다를 건넜다는 이스라엘 건국 이야기와 유사함.*신라와 백제, 가야의 건국 이야기와 역사적 의미-삼국사기의 신라 건국: 첫 건국 당시, 신라가 아닌 서라벌(임금)이란 이름 사용함.: (고)조선이 망한 후 일부 백성이 경주 지역에 내려감, 6개 촌을 만들어 생활함(진한 6부).: 나정 우물(숭상의 대상)의 큰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남(바가지의 이름을 따 박씨가 되었음).: 알영 우물 옆에서 용의 오른 옆구리로 여자아이(알영 왕비)가 태어나 박혁거세의 왕비가 됨.? 알의 탄생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아 새로운 유형의 왕족 탄생임을 알 수 있음. 박혁거세, 왕비 = 성인.? ? 마야부인이 나뭇가지를 잡고 옆구리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석가모니의 탄생설화와 유사함.-삼국유사의 신라 건국: 진한 땅에 육촌의 지도자들이 모였는데, 자제들과 함께 알천에서 모임을 가졌음.: 임금이 없어 백성들단으로 몰려 처형될 때 그의 잘린 목에서 물이 나와 하나의 시내를 이룸)*순교 : 종교적 신앙심, 종교가 관습사회로 침투했을 때 부딪히는 저항을 보여줌.◈ 불교의 호국 신앙과 화랑도의 세속 5계*황룡사 건립- 불교가 수용된 후 국가와 관련하여 발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호국 신앙으로 발전함.- 왕실은 불교를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 사찰을 많이 지음.- 진흥왕이 경주 월성에 궁궐을 지으려다, 연못에서 황룡이 나와 그 위에 사찰을 짓기로 함.-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짓는 데 17년이나 걸림.- 선덕여왕 대에 당에 유학을 다녀온 자장율사가 여왕에게, 여왕으로서 부딪히는 문제들을부처님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거대한 황룡사탑을 지을 것을 권유함.- 9층 높이로 지어졌고, 각층 마다 적국의 이름을 적고 신라에게 항복하라는 기원을 담음.- 왕실 중심의 사찰로, 왕권을 상징하는 탑임.- 보물 2가지를 가져다 놓음. (장육상, 만파식적)? 장육상 : 사람 키보다 조금 더 큰 불상. 현재는 남아있지 x, 당시 신라의 제작기술 뛰어남.=>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12지파를 통합할 위상을 갖게 된 예루살렘의 성전처럼,황룡사 역시 확고한 제사장(왕)의 위상을 갖게 하고, 이념을 통합하는 주체가 됨.*국가 불교의 체계화- 승려의 계급화 : 국가가 승려를 관리하고 하나의 체계 속에 넣음.? 귀족 불교적인 성격, 교리나 계율의 형식화가 심했음.*미륵신앙의 유행지속된 전쟁으로 고단한 삶에 미륵이 등장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 믿음(메시아를 믿는 기독교 신앙과 유사함)미륵신앙 1. 상생 신앙 :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함.미륵신앙 2. 하생 신앙 : 사는 동안 미륵불이 하생하여 3회의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함.유물 : 미륵반가사유상*세속 5계의 내용: 1970년대 화랑정신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노력과 관련하여 등장.: 세속에 살고 있던 청년들이 승려 원광에게서 꼭 필요한 5가지 세속적 계율을 가르침받음.: 청년들이 화랑이었는지 확실하지 x.: 당시 서술 방법.? 이후 중국에서 편찬되는 역사서 구성 스타일이 기전체에 입각하여 서술됨.(사기=중국 역사책의 기본 모델)▷편년체 : 연도와 날짜별로 역사를 서술하는 기본적인 편찬 방식. (일기를 모으는 형식)? ex. ‘춘추’(공자), ‘조선왕조실록’ => 자료 찾으려면 전체 내용을 다 봐야 한다는 문제가 있음.=> 편년체 : 분류해서 자료를 선별하기 어려움.=> 기전체 : 분류해서 자료를 뽑아내는 대표적인 방법.? 국가 경영에 필요한 자료들을 분류해 모아놓음(유교적 시각에 입각하여 임무, 사건 평가)c.f) 기사본말체 : 사건별로 서술해둔 문체. (어떤 사건을 이해할 때 편리함)? (편년체 + 기전체), ex. ‘자치통감’, ‘연려실기술’*사기의 구성-본기 : 황제의 일을 기록함.-세가 : 황제에게 임명된 제후들의 일을 기록함.-열전 : 인간의 모습과 주변국에 관련된 일을 기록함.? 백이열전 : 은나라 마지막 현자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악랄한 도척은 부귀와 천수를 누리고 충성과 지조를 지킨 백이와 숙제는 굶어 죽음.=> 천도가 있는가, 없는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승리하지 못하는가)-서 : 예, 약, 율, 역, 천관 등을 기록함.-표 : 연대 상으로 정리하여 기록함.◈ 삼국사기에 대한 논쟁과 저술 배경▶삼국사기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 (1145년 고려 인종 23년에 편찬한 책): 사마천의 사기를 본떠 기전체적인 편찬으로 만들어짐. (본기+지+열전)? 열전 중 가장 처음에 등장해 가장 많은 분량을 가진 인물 : 김유신(= 김부식이 생각한 가장 중요하고 이상적인 인간)*삼국사기 논쟁 (부정적 평가)-자소: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사랑해주는 것-사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사대주의 (↔ 사대, 다른 의미): 주체성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것1. 금나라의 사대 요구에 반발하여 고려의 긍지를 지키려고 했던 묘청의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적 입장을 가졌을 것이다.2. 삼국사기에 들어있는의 경우 : 숙위군관, 일부 관료, 전쟁 같은 위급 상황 시 100일 탈상을 하도록 규정함.-시묘살이부모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매일 밥을 올리고 묘를 챙기는 것.-49재불교식 제례로 7일마다 재를 올림.◈ 왕릉과 황제릉의 형식적 차이와 의미*조선과 중국과의 관계-중국과 조선: 중국-조선의 관계는 천자-제후국의 관계임. =>조선 왕릉은 대부분 제후국 형식으로 지음.: 명, 청 모두 동일함.(원 간섭기, 중국과의 밀착성 증가)*조선의 왕릉- 조선 왕릉의 기본 모델 = 공민왕(고려 말기 왕)릉.? 고려 왕릉은 규모도 작고 석물도 많지 않았지만,내부는 조선왕릉과 다르게 벽화와 부장품이 많았음.- 풍수지리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 대부분의 왕릉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는 경우가 많음. (풍수 때문에)- 그 앞에 있는 다리는 금천교라고 불리며 이를 넘어서면 무덤의 영역에 가까워진 것임.- 하천을 지나면 홍살문이라고 하는 붉은 문이 있는데, 넘으면 신성한 곳(능역)에 들어온 것.- 홍살문을 지나 능역에 들어가면 돌로 깔린 길이 나오는데, 길의 높이차가 있음.? 향로(높은 길) : 귀신이 된 선왕이 다니는 길어도 : 왕이 참배를 위해 가는 길- 길을 지나면 정자각이라고 하는 T자형 건물이 나오는데, 여기서 제례를 지냄. (제향 공간)- 정자각의 옆에는 허드렛일 하는 하인이 머무는 수복방이 나옴.- 정자각엔 왕만 쓸 수 있는 계단이 있고, 그 옆엔 비각(무덤의 주인 관련 내용 적힘)이 있음.- 무덤 주위에는 사후 세계에서도 그 앞길을 환히 비출 수 있게 하는 석등과 석물이 존재함.? 석물 종류로는 돌로 만든 호랑이, 양, 문신, 무신 등이 있음.- 무덤 앞에는 커다란 돌로 된 상이 있는데, 혼이 그 위에서 논다는 의미로 ‘혼유석’이라 함.*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과 유릉-홍릉 : 고종, 명성황후-유릉 : 순종, 그의 부인들=> 이들은 대한제국의 황제 지위를 거침. 이들을 합쳐 홍유릉이라고 부르고, 일반적인 왕릉과 달리 황제릉의 형식을 띠고 있음.- 황제릉은 왕릉보다 더 다양한 종류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