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학기 과제물역사와 비판적 사고독서노트_사유, 민주주의, 쾌락, 노동, 과학총 5가지 주제에 대한 ‘봄’과목명역사와 비판적 사고담당 교수교수님목차I. 사유에 대한 다시 봄과 새로 봄1II. 민주주의에 대한 다시 봄과 새로 봄3III. 쾌락에 대한 다시 봄과 새로 봄5IV. 노동에 대한 다시 봄과 새로 봄 7V. 과학에 대한 다시 봄과 새로 봄9사유에 대한 독서노트다시 봄사유 발표조는 순수한 사유를 통한 완전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유 발표조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많은 철학자들은 사유를 인간의 본질이라 주장하며 감각으로서의 사유와 순수한 사유를 구분했다. 철학자들은 순수한 사유에 더 집중했는데, 감각으로서의 사유는 단순히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의미한다면, 순수한 사유는 지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참된 인식을 말한다. 여기서 의미하는 지성이란, 개인이 가진 특수성을 배제하고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주어지는 욕구와 욕망에서 벗어나 완전한 객관성을 의미한다.이에 반대되는 사유는 번역한 사유이다. 번역한 사유는 순수한 사유에서는 배제하려고 하는 개인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개인이 가지고 고유한 특수성을 번역한 사유에서는 ‘Context’라고 하는데, ‘Context’는 개인을 이루고 있는 가치관, 관심사, 나라, 지역, 문화, 등 배경을 의미한다. 번역한 사유는 글을 읽을 때 저자의 의도보다 독자의 재구성을 더 중요시 여긴다. 완벽한 저자의 의도는 밝혀질 수 없으며, (저자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부분들로 인해) 그렇기 때문에 원인으로서의 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으로서의 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답은 없으며 독자들이 저자보다 글을 재구성하는 본인에게 더 집중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재구성하는 과정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Context’ 속에서 만드는 연결에 의해 이루어진다. 번역한 사유는 기존의 사유, 즉, 순수한 사유에게 전통적으로 부여되는 고결함을 탈피하고 사유를 일상의 것으로 가지고 왔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기서 더 나아가 누군가 순수한 사유를 하고 있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순수한 사유를 하는 사람뿐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순수한 사유, 즉, 육체와 욕망에서 벗어나 사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순수한 사유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발표조의 주장대로 인간이 사유할 때 자신의 ‘Context’를 배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순수한 사유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Context’에는 순수한 사유가 없는 것이므로, 순수한 사유가 무엇인지, 누군가의 사유가 순수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사유가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Context’를 배제하고 사유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순수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다음으로 번역한 사유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자면 번역한 사유가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다. 발표조의 주장대로 원인으로서의 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Context’ 내에서 재구성되는 번역한 사유는 과연 유의미한지 의문이 들었다. 발표조는 원인으로서의 저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저자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부분들을 이유로 들었다. 여기서 저자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부분들은 발표조가 이어서 설명하는 ‘Context’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주어진 글을 재구성할 때, 완전한 ‘Context’를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제외한 ‘Context’를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저자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Context’로 인해 저자의 의도가 그 자체로 인정받지 않는다면 인간이 자신의 자신이 아는 ‘Context’만을 바탕으로 하는 재구성 또한 인정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번역한 사유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원인으로서의 저자가이성의 원칙을 세우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다.프랑스 혁명은 인권선언을 통해 훗날 프랑스 헌법으로 이어지는 개개인의 평등한 시민자격, 보편적 법치, 집합적인 국민 주권 등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으며, 인권의 대상이 성별, 인종 등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계를 띄고 있다. 이러한 차별은 이성과 수의 갈등이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개인의 의지는 곧 군주의 의지라고 주장하는 홉스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일반적인 의지가 지배하는 사회를 주장하는 루소가 있다.프랑스 이외에도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 독립 혁명 등이 일어났다. 모두 절대 왕정을 개혁하였다는 면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으나 완전한 민주주의가 아닌 여성, 유색인종, 무산자 계급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4.19혁명, 5.18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이뤄냈다. 이와 다르게 프랑스는 짧은 기간에 많은 체제변화를 겪으며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했다.민주주의 발표조는 아이, 여성,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아야지만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하며 민주를 위해 노력하며 진정한 평등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주장을 정리하고 있다.새로 봄민주주의 발표조는 완전한 민주주의란 아이,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 등,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는 진정한 평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발표조가 말하는 완전한 민주주의와 진정한 평등의 개념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발표문에서는 여성과 유색인종, 노동자 등의 차별이 프랑스 혁명과 그 밖의 다른 혁명들의 한계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아이, 여성,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것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전제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대로라면 완전한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뜻하며, 진정한 평등 또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차별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차별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모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쾌락에 대한 독서노트다시 봄쾌락 발표조는 ‘쾌락을 추구하면서 선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발표를 준비했다. 쾌락 발표조의 주제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간의 총체적인 목표라고 정의했다. 칸트는 행복은 도덕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도덕법이 요구하는 최고선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라고 정의했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를 토대로 보자면 행복한 삶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로 사는 일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은 물질적 부나 지위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며 죽음만이 그 고통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주장은 흔히 볼 수 있는 주장으로 세속의 삶이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누구나 공감하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행복은 쾌락과 긴밀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 흔히 쾌락은 도덕적인 행위에서 오는 정신적 쾌락과 육체적 감각으로 나뉘는데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로 생각해 쾌락추구가 좋은 삶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쾌락주의는 심리적 쾌락주의이다. 쾌락주의는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며 최고의 선이라고 주장하며, 쾌락의 추구와 고통을 피하는 것을 도덕원리로 삼는다. 그러나 과도한 쾌락은 오히려 고통을 동반한다는 쾌락의 역설을 근거로 과도한 쾌락 추구는 지양한다. 퀴레네 학파는 두 종류의 쾌락을 모두 인정하는 반면, 에피쿠로스 학파는 정신적 쾌락만을 강조했다. 공리주의자 벤담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 욕구라 주장하며 개인 쾌락 추구가 전체의 쾌락을 극대화 하면 도덕적 행위라고 말했다. 쾌락 발표조는 쾌락을 도덕적 행위를 전제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고통이 없는 상태를 쾌락의 최고치라고 정의했다.쾌락 발표조는 좋은 삶이란 행복한 삶이라고 정의하며 행복을 인간 고유의 능력인 이성을 현실화하는 삶이라이 유발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도덕적 전제 아래에서 선을 행하기 위해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도덕적 전제아래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났으나 육체적 고통을 얻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만약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팔이 부러졌다면, 누군가를 구하지 않아 가지게 될 정신적 고통에서는 해방되었으나 그로 인한 육체적 고통을 수반했으니 이런 경우는 쾌락의 상태인건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 궁금하다.또한 쾌락이 넘치는 삶이야 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할 때, 행복을 인간 고유의 능력인 이성을 현실화하는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동물들은 쾌락은 느끼지만 행복은 느낄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싶다.나는 동물들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행위 그 자체로 생각한다. 행복은 보편성이 없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제시한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지만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행위 또한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쾌락 발표조에서 던진 ‘쾌락을 추구하면서 선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쾌락을 육체적, 정신적 쾌락 두 가지 모두로 보며, 본인이 중요시여기는 가치에 따라 그 둘 중 하나라도 이룬다면 그 자체를 쾌락 추구라고 생각한다.노동에 대한 독서노트다시 봄노동 발표조는 인간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노동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풀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노동의 일반적 정의는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노동을 두가지로 나눈다면, 수단으로서의 노동과 즐거운 노동으로 나눌 수 있다. 수단으로서의 노동은 단지 금전적인 목적이다. 수단으로서의 노동은 수단이 목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혹은 그저 덜 힘겨운 노동만을 찾으며 노동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회적 고립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대의 노동은 노예가 하는 천한 일로 인식되었다. 그 이유는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