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어 에반 핸슨의 주인공‘에반 핸슨’의 증상에 관하여목차■ 서론■ 본론1. 등장인물2. 인물의 주요 증상 분석1) 주요 증상 정리2) 증상의 특징3) 증상의 원인4) 예상 진단3. 주변 인물들의 대처 방법4. 치료 방법■ 결론■ 참고문헌■ 서론영화 「디어 에반 핸슨」은 10대의 학교생활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이다. 학교에서 친구도 없는 외톨이 ‘에반’이 우연히 ‘코너’라는 친구의 자살과 관련해 코너의 마지막 유언을 받은 둘도 없는 친구라는 오해를 받으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거짓말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름과 동시에 상처받은 가족들을 위로해주는 아이러니함이 많은 생각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영화나 소설 등의 작품들은 우리가 경험해보기 힘든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등장인물 중 누구에 이입해서 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감상을 선사한다. 작품 속 특정 인물에게 이입하게 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많이 닮은 인물을 보면 누구나 저항 없이 이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에반’이 그랬다.작품 속 등장인물에 이입하여 감상하는 것은 비단 상상력이나 이해심에 있어서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영역에서도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런 계기를 제공해준 영화가 바로 「디어 에반 핸슨」이었다.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과거 혹은 내면의 상처나 기억들을 직접 꺼내보이지 않더라도, 그저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위로가 되었던 영화였다.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보다 한 인물에 집중하여 몰입해본 영화 속 인물은 에반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나 심리적인 부분이 그랬다. 그동안은 공감의 우뇌를 통해 에반을 바라보았다면, 이번 과제를 위해 분석과 이해의 좌뇌를 통해 에반을 바라보는 것은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본론1. 등장인물- 에반 : 이야기의 주인공인 10대 남학생이다. 학교에 친구가 없으며 g through a window’의 가사에 에반의 주요 심리상태가 잘 묘사되어 있다.난 브레이크를 거는 법부터 배웠지시동을 걸기도 전에실수를 해보기도 전에최악의 나를 보기도 전에눈에 띌 일을 만들지 마피하면 실수할 일도 없어그 누구와 아무것도 나누지 마아무 말도 하지 마벗어나, 햇빛으로부터 벗어나데이기 싫다면햇빛으로부터 벗어나이미 알고 있잖아세상이 어떤지늘 홀로 창밖을 서성이네지금의 나를 벗어날 수 있을까?똑똑똑난 창문을 두드리며창가에 서서 손을 흔드네말을 하고 싶지만아무도 듣지 않아난 기다리네누군가 대답해주길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난 창가에서 손을 흔드네혹시 누군가 날 보고마주 손을 흔들어줄까?우린 눈에 별을 품고 태어나지모두가 함께라고 믿으며하지만 모두에게 태양이 뜨진 않아뭐가 문젠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지벗어나, 햇빛으로부터 벗어나데이기 싫으면햇빛으로부터 벗어나이미 알고 있잖아세상이 어떤지늘 홀로 창밖을 서성이네지금의 나를 벗어날 수 있을까?똑똑똑난 창문을 두드리며창가에 서서 손을 흔드네말을 하고 싶지만아무도 듣지 않아난 기다리네누군가 대답해주길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난 창가에서 손을 흔드네혹시 누군가 날 보고마주 손을 흔들어줄까?아무도 없는 숲에서 혼자 쓰러졌을 때정말 떨어진 거야?소리쳐 보긴 한 거야?아무도 없는 숲에서 혼자 쓰러졌을 때정말 떨어진 거야?소리쳐 보긴 한 거야?아무도 없는 숲에서 혼자 쓰러졌을 때정말 떨어진 거야?소리쳐 보긴 한 거야?아무도 없는 숲에서 혼자 쓰러졌을 때정말 떨어진 거야?소리쳐 보긴 한 거야?난 소릴 냈을까?작은 소리라도?한 번도 소리 낸 적 없지언젠간 낼 수 있을까?늘 홀로 창밖을 서성이네앞으론 좀 달라질 수 있을까?똑똑똑난 창문을 두드리며창가에 서서 손을 흔드네말을 하고 싶지만아무도 듣지 않아난 기다리네누군가 대답해주길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난 창가에서 손을 흔드네혹시 누군가 날 보고마주 손을 흔들어주진 않을까?마주 손 흔들어 줄 사람어디 없을까, 없을까?- 영화 Dear Evan Hansen (디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복도에서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함인지 극도로 몸을 움츠리고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에서는 항상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고, 긴장한 모습이며 착하지만 소심한 말투이나, 오직 엄마 앞에서는 비교적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복도에서 코너라는 아이가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을 때 겁에 질린 듯 호흡이 가빠졌으며 주변의 소리가 작아지는 연출을 사용했다. 이때 그의 짝사랑 대상인 조이가 다가와 말을 걸며 자신의 이름을 묻자 자기도 모르게 조이의 말을 반복한다. 그러곤 지나치게 미안하단 말을 반복한다. 이유는 사람들이 상대가 한 말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소한 불편감도 주기 힘들어하는 성향으로 보인다. 조이가 악수를 청하자 손의 땀을 셔츠에 닦다가 끝내 악수를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다. 자레드에게 ‘조이와 악수를 하려고 했지만 손에 땀이 많이 나 악수를 하지 못했어. 땀을 말리려 핸드드라이기에 손을 대고 있었지만 그냥 손만 엄청 따뜻해졌어.’라는 말을 농담 삼아 하는 장면도 나왔던 것을 빌어, 그가 긴장하면 손에 땀이 많이 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까 염려되어 스스로 조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도서관에서 코너를 다시 만났을 때 코너가 자신이 쓴 ‘에반 핸슨에게 (Dear Evan Hansen)’ 편지를 실수로 보게 되었고 마침내 그것을 코너가 가져가자 화장실에서 구토증세를 보인다.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라는 존재를 아는 사람이 생겨버렸고, 심지어 그것을 가져갔기에 SNS나 학교 친구들 사이에 알려져 창피를 당할까 걱정되어서이다. 이때 에반은 구토를 한 이후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비롯한 전신을 심하게 떨고, 호흡이 거칠고 가빠서 마치 공황증세와 비슷하게 보인다. 약을 꺼내려다 약통을 쏟아 바닥에 떨어진 한 알을 급하게 입에 넣는 모습도 나온다. 영화 전반에서 에반의 구토 장면은 한 번 더 나오는데, 죽은 코너를 위한 ‘코너 프로젝트’의 첫날에서 그렇다. 실은 아무 관계도 아니었던 자해한 코너의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함에서 비롯된 거짓말인데, 후엔 이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에반이 현실과 거짓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영화 전반에 나온 에반의 모습을 통해 보자면, 그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실망할만한 사실을 말할 바에 차라리 거짓말을 택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어머니에게 자살 시도를 사실대로 알리지 않은 것도 그렇다.그가 먹는 약은 졸로프트, 웰부트린, 필요시의 아티반이다. 졸로프트는 SSRI 계열, 웰부트린은 우울장애 치료에 쓰이는 약물이며 아티반은 불안, 긴장, 우울 증세에 쓰이는 약이다. 우울과 불안 증세로 복용한다고 말한다. 얼핏 복용하는 약만 보면 그의 증상이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약간의 공황 증상이 있는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증상에 단순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포함한 독특한 특징을 코너의 추모식 연설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단상에 홀로 올라 연설을 해야 했는데, 얼핏 보면 자신이 한 거짓말이 낳은 상황에 대한 두려움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보기엔 어딘가 이상한 점이 몇 가지 보인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졌으며 손을 심하게 떨었고 시선은 청중 쪽을 바라보지 못한 채 준비한 큐카드만 바라본다. 애써 정면을 바라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큐카드를 읽지만, 말은 지나치게 빠르고 목소리 톤이 이상하게 높아져 있다. 그가 보통 불안을 느끼던 모습과는 확연히 비교될 정도이다. 그가 처한 연설하는 상황에 주목해본다면, 수많은 사람의 주목을 한 번에 받는 상황이 그에게 극도의 긴장과 불안을 주는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한편 에반과 깊은 유대감을 쌓은 코너네 가족은 에반이 대학등록금을 직접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에반의 어머니에게 장학금을 제안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집을 나오고, 에반은 어머니를 붙잡으려 뒤쫓아간다. 자신의 앞에서 에반을 친아들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어머니에게 에반은 ‘다들 날 좋아해요. 엄만 안 믿기겠지만, 저분감추고 살지내 가장 못난 모습을그 모습을 모두가 본다면모두가 알게 된다면과연 그 모습을 좋아할까?아니면 그 모습도 싫어할까?난 도망만 치며 살아야 될까?진실로부터?늘 도망만 치는 내가어떻게 걸어나갈 수 있을까?저 밝은 햇빛을 향해- 뮤지컬 Dear Evan Hansen(디어 에반 핸슨) 中‘Words Fail’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아본 기억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방임에 대한 에반의 심리가 담겨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선 안 되며, 그것을 보면 누구든 자신을 부정할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어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인정받길 원하는 심리도 공존한다. 모든 거짓말을 인정하고 괴로워하던 에반은 자신이 자살을 시도하려 떨어졌던 그 나무 밑에서 이 넘버를 마무리한다. 나무를 한 번 올려다보고 집에 와 방안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에게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 사고가 아닌 자살 시도였음을 토로한다. ‘난 너무 외로웠어요. 나무에서 떨어진 거 사고가 아니에요. 내가 손을 놨어요. 내가 끔찍하죠? 그렇겠죠. 당연히. 엄만 몰라요. 내가 얼마나 엉망인지.’라는 대사에서는 자살을 시도했던 자신을 스스로조차 받아들일 수 없어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영화 전반에 걸쳐 에반의 ‘외로움’, ‘받아들여지지 못할 존재’라는 생각은 반복적으로 보여진다.2) 증상의 특징평소에 우울과 불안, 약간의 공황 증세를 보인다. 자살을 시도했던 이유는 ‘외로움’이며, 이는 우울감으로 인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다리를 심하게 떨거나 방 안을 서성거리고 목소리 톤이 부자연스러워지는데, 이는 불안할 때 보일 수 있는 행동이다. 또한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인 상황에 놓였을 땐 구토를 동반한 공황 증상을 보인다. 이를 통해 에반의 심리상태의 가장 기저에 깔린 것은 우울과 불안임을 알 수 있다.대중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큰 두려움이 있어 보인다. 연설 장면에서의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 과하게 떨리는 손, 금방이라도
고프만의 인상관리이론과한국 사회의 SNS 문화목차■ 서론■ 본론1. 인상관리이론2. 한국의 SNS 문화3. 문제점 : 자아정체감의 혼동, 다중 자아4. 나아갈 방향■ 결론■ 참고문헌■ 서론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은 대다수가 인정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타인에게 비춰질 스스로의 모습을 관리하고 신경 쓰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과거로부터 집단생활을 통해 마을을, 부족을, 국가를 만들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문명이 발전한 이후로 생활의 편리를 위해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였고, 자연스레 인간의 사회성이 미치는 영역이 인터넷상의 가상공간인 소셜미디어로 확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의사소통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은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공유하며 타인에 대한 정보까지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SNS의 대표적인 수단인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가상공간은 오로지 그 계정의 주인에 의해 선택되어진 정보들만 업로드됨으로써 인상관리를 위한 하나의 자기표현 수단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소셜미디어 속에서 비치는 스스로의 모습을 개인이 선택하고 꾸며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고프만의 ‘인상관리이론’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과도한 SNS 열풍으로 인해 SNS상의 자아와 현실 세계의 자아 사이의 괴리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문제점으로서 대두되고 있다. SNS상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SNS상의 자아를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 철저히 보장되는 익명성 아래에서 SNS상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을 분리하여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그만의 일상을 관리하기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이미 SNS가 만들어낸 가상사회에 종속되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따라서 이번 과거나 인상관리를 준비하는 공간은 무대 후면(back stage)에 해당한다. 그에 따르면 배우가 연극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듯 사람들도 특정한 목표에 따라 자아를 의도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인 인상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 인상은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혹은 단절시키는 수단’이며, 개인들은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인상에 기대어 그들과의 관계 깊이를 설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인상관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자기제시(Self presentation)는 타인들이 자신에 대해 형성하는 이미지를 관리하려고 시도하는 과정, 즉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조절하는 과정’이다. 자기제시는 사회적 적응 기능의 하나로, 개인의 의사소통 능력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인상을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비언어적 의사소통 속성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자기제시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호의적으로 만들어 상대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인위적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자아 표현은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간접적인 비대면 상황, 특히 SNS 게시물을 통한 소통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특히 SNS가 가지고 있는 비대면성과 익명성은 대면 관계에서 표현하기 힘든 본연적 자아의 표현을 오히려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2. 한국의 SNS 문화현재 우리나라의 SNS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이 주를 이룬다. ‘피드’를 꾸미기 위해 ‘인생샷’을 남기러 ‘핫플’에 가는 2030세대를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또 ‘타래’를 만들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리트윗’을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여 자신의 피드를 꾸며나간다. ‘좋아요’를 통해 관심과 취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방송을 보며 ‘슈퍼챗’을 날리면서 소통을 하기도 한다.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의 SNS 이용자 수는 24억 6천만 명으로 세계 게 좋아요나 좋은 반응의 댓글을 달면 자신도 상대에게 똑같이 좋아요와 댓글을 다는 행동을 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마치 ‘기브 앤 테이크’처럼 내 게시글에 좋은 반응을 보여준 상대에게 똑같이 반응해주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자 ‘매너’로 여겨지기까지 한다.또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SNS는 ‘자신의 최고의 순간’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열된 오늘날 한국의 SNS 문화에서는 이 점이 도리어 타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동이 무의식중에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개팅 어플에 과한 보정을 한 사진을 등록해 인기를 얻는다던가, 난장판이 된 방 안에서 잘 나온 부분만을 편집해 업로드하여 자신이 정돈되고 쾌적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자초해낸다. 이렇게 오직 좋은 면만 보여주는 행위를 보고 ‘행복 전시’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출처 : 김이나 컬쳐에디터 [문화트렌드] ‘좋아요’ 누르기 경쟁...카페인 우울증의 SNS세상 (2019.10.31.) 오피니언 뉴스(SNS상에 편집된 사진을 올리는 이용자를 꼬집은 사진이다.)오늘날 SNS 사용자는 철저하게 익명성이 보장된 소셜미디어상에서 타인을 관찰할 수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SNS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으로 작동하며 인상관리 형성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개인은 SNS의 프로필 변경 및 업로드, 좋아요 버튼과 공유, 이모티콘 사용 등을 통해 다양한 자기표현이 가능하다. 이러한 다양성이 존중되는 만큼, 그로 인한 문제점 또한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3. 문제점 : 자아정체감의 혼동, 다중 자아인상관리이론 관점에서 SNS는 타인에 의해 형성되는 인상을 관리하기 위한 자기제시를 시도하는 새로운 환경이다. 따라서 SNS상에서 개인은 자신이 바라는 온라인 자아(p간관계와 온라인 인간관계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은, 혹은 남이 나를 이렇게 봐줬으면 하는 부분만 잘라내어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연출한 것일 수도 있다. ‘나’지만 또 다른 ‘나’, 즉 남을 위하는 나를 SNS에 노출시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의견에 반응하면서 나의 ‘사회적 자아’가 형성되고 ‘사회화’된다. 이렇게 나 같지 않은 나를 꾸미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눈치 보다 보면, 내가 누군지,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게 된다.현대인은 여러 SNS를 사용하면서 멀티 페르소나를 형성하기도 한다. 트위터는 140자의 단문으로만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점과 빠른 재확산을 특징으로 한다. 페이스북은 실명 연락처를 기반으로 친목을 다진다는 점에서 관계 중심적이며, 인스타그램은 사진 게시물로 소통하는 실명 기반 매체다. 이런 SNS의 특성에 따라 게시글의 표현 방식과 목적이 다르다. 좋아하는 연예인 관련 글은 트위터에, 일상적인 글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식이다. 나라는 같은 사람이 겪은 일, 떠올린 생각이라도 플랫폼에 따라 게시글의 특징이 달라지는 것이다. 트위터에는 익살스럽거나 풍자적인 단문으로, 인스타그램에는 차분하고 감성적인 사진과 해시태그(Hashtag)를 달아 표현하는 식이다. 이렇게 플랫폼을 달리하여 각각 다른 자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SNS 플랫폼에 여러 계정을 만들고 각각 다른 자아를 부여하기도 한다. SNS에서 공개 계정과 비공개 계정을 별개로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을 이용할 때 계정에 따라 게시글 내용과 말투가 달라진다거나, 친한 지인들만 볼 수 있는 비공개 계정에선 공개 계정에서 말할 수 없는 개인적인 생각 등을 자유롭게 게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SNS의 종류가 많아지고 공개 대상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여러 정체성 중 드러내고 싶은 자아를 선택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얼핏 보면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SNS의 e)이 정돈되어있을 수 없으며, 정돈되지 못한 무대 후면은 준비되지 않은 자아와 같다. 언제 어떤 타이밍에 필요한 소품이 없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인 것이다. 이렇듯 불안정한 자아는 진정한 자아가 될 수 없으며, 결국 멋진 공연을 위해서는 자신이 만들어갈 하나의 무대와 그 무대의 후면부터 잘 알아가고, 깨끗이 정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대 후면은 오직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현실 세계에서의 자아와 SNS상의 자아 간의 간극을 좁히는, 한정된 무대 후면 안에서 한정된 소품과 의상들을 가지고 비슷한 무대를 꾸려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나’라는 ‘하나의’ 공연을 위해선, 하나의 무대와 진정한 하나의 자아 즉, 무대 후면을 잘 알고 정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요즘 같은 SNS 공간과 현실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때에는 온전한 ‘하나의’ 무대만을 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고프만은 자신의 저서 「일상생활에서의 자아표현(The Presentation of the Self in Everyday Life)」의 첫 부분에서 사회학자인 로버트 파크(Robert, E.P.)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사람(person)이라는 단어가 그 첫 번째 의미로 가면(mask)이라는 뜻을 지녔음은 결코 단순한 역사적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다소 의식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의 인식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들 속에서 서로를 아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아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역할들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비록 우리가 보여지는 모습을 신경 쓰고 가꾸는 것이 가면을 쓴 것 같을지 모르나, 그것 역시 우리의 모습이므로 하나하나가 나라는 개인의 역사의 한 줄 한 줄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의 ‘가면들’도 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수단들이라고 생각한다면 가면들 사이의 괴리감 역시 충분히 좁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나의 열등감을 건